이름을 붙이자면 '(속) 알 건 알아야지'쯤 되겠다. 이번엔 '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9’를 다루고 있는 <더 뉴스>(아시아네트워크, 2008)란 책 이야기다(http://h21.hani.co.kr/section-021015000/2008/08/021015000200808070722038.html). '결정적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몰랐던 사건들이다. 혹은 우리만 몰랐던 사건들이다. 기사를 읽으며 '아시아의 눈으로 아시아의 문제를 바라본다'는 말을 곱씹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입술을 깨물지도 모르겠다...

한겨레21(08. 08. 07) 우리만 몰랐던 결정적 사건들

1998년 필리핀에선 영화배우 출신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멋진 콧수염을 길렀고 스크린에서 악당들을 때려잡다가 이제 막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취임 첫 해가 저물 때쯤부터 에스트라다의 부패와 방탕한 생활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가 여성 6명과 적어도 자녀 11명을 낳았고 미인대회 우승자들과 즐기며 하룻밤에도 여러 여성들의 집을 전전한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그는 한마디로 마르지 않는 스캔들의 샘이었다.

필리핀의 ‘펜을 든 여전사들’
2000년에 접어들자 ‘펜을 든 여전사들’로 알려진 PCIJ(필리핀탐사저널리즘센터)를 이끌던 쉐일라는 에스트라다 문제를 진지하게 파고들 시점이라고 결정했다. 그는 모두 여성들인 전속기자 4명과 기고자 3명을 사무실로 불러모았다. 그들은 증권거래위원회 컴퓨터 단말기에서 대통령과 가족들이 주요 주주로 있는 회사들을 찾아내고 몇 달에 걸쳐 등기서류와 금융기록을 확보했다. 2000년 7월 대통령이 자산신고서에 누락시킨 재산들을 폭로하는 첫 보도가 나갔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에스트라다가 애인을 위해 몰래 짓고 있는 초호화 맨션을 포함해 대통령 소유의 부동산을 샅샅이 찾아내고, 주식거래와 관련된 불법 행위를 취재했다. 설계사, 변호사, 인테리어 디자이너, 건설 노동자 등 도움이 되는 사람은 모조리 만났다. 마침내 2000년 10월부터 대통령의 부패를 다룬 연속기획을 보도했다. 2001년 1월 필리핀 거리마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피플파워’의 물결이 넘쳐났다. 1월16일 쉐일라는 차를 몰고 집에 가다가 인파에 갇혀버렸다. 한 사람이 쉐일라를 알아보고 “PCIJ다”라고 외쳤다. 그 많은 인파는 PCIJ를 외치며 쉐일라에게 길을 터주었다. 나흘 뒤 에스트라다의 영화는 끝났다.

푸른숲이 만든 아시아 전문 출판사 ‘아시아네트워크’는 아시아의 눈으로 아시아의 문제를 바라보는 책들을 펴내고 있다. 모든 기획의 책임자는 그 바닥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분쟁지역 전문기자 정문태씨다. 아시아 기자들의 활약을 다룬 <더 뉴스>(쉐일라 코로넬 외 지음, 오귀환 옮김, 1만6천원)는 그 세 번째 책이다.

‘아시아의 눈으로 아시아의 문제를 바라본다….’ 우리는 이 문장을 좀더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엔 서구의 시선에 대한 어떤 반작용이, 혐오감이, 대립항이 숨어 있다. 정문태씨는 책의 서문에서 자신의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는 이야기를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는 그 서양 기자들 일터쯤으로만 등장한다. 그 투란 것도 대개 왔노라, 보았노라, 썼노라 같은 고대 점령자들의 낭만기가 물씬 풍긴다.” 지당한 말씀인데, 우리는 그 다음 대목을 더 들어봐야 한다. “우리는 서구중심주의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대신 아시아중심주의를 옮겨 심겠다는 뜻이 전혀 없음을 분명하게 밝혀둔다. …온전한 아시아의 눈으로 아시아를 보자는 결심 탓이다.” 정문태씨가 있는 자리는 바로 어떤 ‘중심주의’의 바깥이다.

<더 뉴스>의 부제는 ‘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9’이다. 그런데 당신이 평균 수준의 지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이 ‘결정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대부분의 사건들이 생소할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나라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들어본 바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아시아란 이름으로 우리와 꽁꽁 묶여 있는 나라들인데도. 이것이 바로 ‘중심주의’의 술수다. <더 뉴스>는 아시아 기자들이 직접 자신의 고난과 성공을 회고하며 쓴 글들을 묶은 책이다. 필리핀의 ‘여전사’ 쉐일라 코로넬 외에도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이야기들은 얼마든지 있다. 조금 더 감상해보자.

인도 보팔에 살고 있는 기자 라아즈쿠말 케스와니는 1978년 11월24일 하늘에 연기가 뒤덮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도로 북쪽에서 한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오며 외쳤다. “유니온 카바이드 공장에서 불이 났어요!” 살충제 등을 생산하는 미국계 화학기업인 유니온 카바이드는 보팔의 상징이자 자부심이었다. 1981년 크리스마스 이브, 라아즈쿠말의 오래된 친구이자 유니온 카바이드 공장의 설비 기사인 모하메드 아슈라프는 야간근무를 하고 있었다. 파이프 이음새를 교체하려는 순간 무서운 포스겐 가스가 덮쳤다. 이튿날 아침 친구는 숨을 거뒀다.

라아즈쿠말은 포스겐이나 메틸이소시아네이트와 같은 무서운 화학물질에 노출돼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유니온 카바이드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허술한 안전관리에 대한 여러 검증을 거친 뒤, 라아즈쿠말은 자신이 운영하는 발행 부수 2천 부의 주간신문 <라파트>에 기사를 실었다. 그 뒤 여러 차례 유니온 카바이드 공장의 가스 누출 위험과 그 치명적 결과를 경고하는 기사들을 실었으나 회사와 관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1984년 12월2일 일요일 밤이었다. 막 잠자리에 들려던 라아즈쿠말은 역겨운 냄새를 맡고 숨이 막혔다. 급히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요?” “유니온 카바이드 가스탱크에서 가스가 누출됐소.” 그는 즉시 오토바이 한 대에 부모와 남동생을 태워 피신하도록 했다. 자신은 이들과 반대쪽으로 방향을 돌려 유니온 카바이드 공장으로 갔다. 그는 공식 사망자만 1만5천 명이 넘는 ‘보팔 참사’를 예언한, 탱크 폭발 현장을 취재한 유일한 기자가 됐다. <뉴욕타임스> 기자들은 그의 헌신적 도움을 받으며 3회짜리 시리즈물을 만들었으나 기사에 ‘라아즈쿠말’이라는 이름을 넣지는 않았다.

독재권력과 재벌권력의 이중주
인도네시아의 아흐마드 타우픽은 1994년 8월 수하르토 독재에 맞서는 언론단체를 결성하고 대안매체 <인디펜덴>을 발행했다. 1995년 3월16일 체포돼 ‘정부에 대한 증오 확산’ 혐의로 3년형을 받았다. 이 넉살 좋은 친구는 소매치기, 마약사범, 도박업자, 정치범, 부정부패 연루 관료 등과 친해졌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도 일을 계속했다. 그는 살렘바 교도소에서 간수의 눈을 피해가며 옆방에 있던 동티모르 독립운동가 사나나 구스마오를 인터뷰했다. 기사는 아내가 면회 왔을 때 어린 아들의 팬티 속에 숨겨넣었다. 당연히 그는 교도소 당국의 골칫거리였으며 이곳저곳으로 계속 이감됐다. 그동안 흥미로운 죄수들 얘기가 감옥발 기사로 여러 매체에 실렸다.

1998년 수하르토가 쫓겨나고 인도네시아의 대표적 진보 시사주간지 <템포>가 복간되자, 그도 편집국에 합류했다. 2003년 3월8일 편집국 직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빨리 와주셔야겠어요. 토미 위나타 패거리가 <템포>를 공격할 거래요.” 불법 사업 조직을 거느린 도박업자 토미 위나타의 조직원들은 그동안 테러와 범법 행위를 일삼아왔다. 그들의 불법 사업 중 하나를 비판하자 조직원들이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군부독재가 물러나니 재벌권력이 밀려왔다. 그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구타를 당했다. <템포>는 300억원짜리 송사에 휘말렸고 아흐마드 타우픽은 허위 보도 혐의로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

<한겨레21> 편집장과 <한겨레> 편집국장 등을 거치며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일해온 번역자 오귀환씨는 책을 통해 “새로운 각도에서 뉴스와 인간의 관계를 깊이 응시할 수 있었다”고 썼다. 독자들은 아시아 언론인들이 지나온 길을 읽으며 뒤늦게 놀라게 될 것이다.(유현산기자)

08.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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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8-15 20:52   좋아요 0 | URL
흐음..세상엔 내가 모르는게 너무 많구나.
아니지, 내가 너무 무관심하구나.

지구는 파괴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로 나뉘는 이상한 균형의 세계.
지금, 마침,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 노래를 듣고 있어서인지, 슬프네요.

로쟈 2008-08-15 20:58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나쁜 세상이지만, 누구 말대로 가만 있으면 더 나빠지는 세상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6 16:25   좋아요 0 | URL
수하르토 저 영감.사람 엄청나게 죽이고 대통령 됐죠.집권 후에도 정적 죽이는 것도 모자라 동 티모르에서 대학살을! 그런데 저런 인간말종들이 천수를 다 누리고 죽다니!

로쟈 2008-08-17 00:37   좋아요 0 | URL
한둘이 아니니까 하늘도 무심하다고 할 수밖에요...

딸기 2008-08-19 16:07   좋아요 0 | URL
저 시리즈 4권 중 3권을 한겨레 기자 or 전직 한겨레 기자가 번역했는데...
저렇게 홍보해도 되는 걸까요 ^^
(물론, 홍보를 해야만 하는 책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ㅋㅋ)

로쟈 2008-08-19 16:31   좋아요 0 | URL
세 권만 뜨는데, 한 권 더 있나요?..

딸기 2008-08-20 18:27   좋아요 0 | URL
앗 죄송... 실은 제가 저 프로젝트하고 좀 관련이 있어서요. ^^
아마도 나머지 한권은 아직 출간 안 된 듯해요.

로쟈 2008-08-20 22:04   좋아요 0 | URL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메일함을 여니 창비주간논평이 들어와 있다(http://weekly.changbi.com/blog_post_279.aspx).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됐는데, 최근 KBS 사태 등을 다루면서 작금의 민주주의 농단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현 정세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만 짓기엔 상황이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지 않기에 일독해보시길 권한다.

  

창비주간논평(08. 08. 13) 붉은 여왕의 민주주의

맑스는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을 이렇게 시작한다. "헤겔은 어디에선가 모든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은 두번 나타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처음엔 비극(悲劇)으로, 그다음에는 소극(笑劇)으로." 나는 두 사상가의 내공은 인정하지만 이 표현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무엇을 사건으로 보고 누구를 인물로 볼 것인가' '두번의 유사성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주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레토릭이지 엄격한 명제는 아니다.

그런데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을 둘러싼 사태를 보면서 전에 본 듯한 기시감(deja-vu)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노태우정권 때인 1990년에 이미 같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감사원의 해임요구, 이사회의 해임제청, 고위인사의 압박, 대통령의 해임 그리고 새로운 사장. 그 수순은 18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차이라면 예전의 사건은 언론말살의 비극이었지만 지금의 사건은 정신나간 소극이라는 것이다. 사건이 반복될 때 뒤의 사건이 소극이 되는 이치는 단순하다. 세월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되풀이되면 시대착오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국민의 반응이 '분노'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반응은 '실소'에 가깝다. 어차피 유유상종이기 때문에 내 주위의 반응들이 나처럼 하나같이 비판적인 것은 당연하지만, 그 반응들이 '어처구니없다' '황당하다' '어이없다'인 것은 사건의 본질이 시대와 동떨어진 소극임을 보여준다.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과연 그저 웃기고 자빠진 일인가? 주로 성희롱적이거나 성차별적인 유머만을 전문적으로 구사하던 분들이 갑자기 이렇게 수준높은 개그를 할 리가 없다. 이것은 우리의 반응과 달리 대단히 진지한 사건인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은 성인이 된 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군사독재,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변해가는 흐름 속에서 권력이 '소수에서 다수로' '밀실에서 광장으로' '폭력에서 논리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아왔고, 그것이 사회의 법칙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군사독재에 뿌리를 둔 정치세력이 승리하더라도 사회경제적인 문제야 할 수 없다 치고 민주주의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의 느낌은 20년 전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을 때의 비참한 심정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정권이 교체되는 것도 길게 보아서 나라에 도움이 될 거라는 낙관적 견해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반년도 되지 않아 국민들은 분노해야 할지 실소해야 할지 모를 사태들에 끊임없이 직면하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붉은 여왕과 함께 미칠 듯이 달리지만 이상하게도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때 붉은 여왕은 깜짝 놀란 앨리스에게 말한다. "여기서는 같은 자리에 계속 있고 싶으면 힘껏 달려야 해. 다른 곳에 가고 싶다면, 적어도 그 두배는 빨리 달려야 하지." 그렇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적어도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제자리라도 지키려면 죽을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는 것, 그 노력을 게을리할 때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뒤로 처지고 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민주주의의 문제는 너무 시급해져서, 시한폭탄을 장착한 것 같은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조차 사치스러울 지경이다.

민주주의는 죽을힘을 다할 때 지켜지는 것
이제 이명박정부는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정치사찰만 하면 군사독재정부와 똑같은 정부가 된다. 앞의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뒤의 것은 장담할 수 없다. 어느 현명한 판사에게 재판과 관련한 전화를 걸었다가 망신당한 국정원 직원의 사례는 어떤 징조를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이 정부의 정체는 무엇일까?

보수인사들이 입만 열면 지키겠다는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몇가지 원리는 잘 알고 있다. 주권자는 국민이고,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기 곤란한 부분을 대리인들에게 위임했다는 것. 맡겨진 권력은 주권자를 위하여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만들어진 법은 게임의 규칙으로서 누구나 존중해야 한다는 것. 나는 보수적인 견해보다는 진보적인 견해에 귀를 기울이게 되지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게임의 규칙'만 준수한다면 어떤 보수적인 견해에 대해서도 함께 토론하고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약자라서 불리할 것 같은 때에만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권력을 쟁취한 후에는 그것을 사유화하는 자들, 국민들에게만 법의 지배를 받으라 하고 막상 자신들은 힘의 지배가 사회의 냉혹한 규칙이라고 믿고 실천하는 자들과는 한 세상에서 살 수 없다. 그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제 배를 불리고 공공의 이익을 말하는 척 패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공의 적이며, 민주주의의 파괴자다.



그대들에게 '게임의 규칙'을 묻는다
혹시 그대들이 민주주의와 법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가? 한번 따져보자. 뜻을 모아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판사의 조정 아래 분쟁을 합의하여 처리한 것이 왜 사장의 배임인가? 이득은 도대체 누가 보았는가? 그렇다면 판사와 국세청장도 공범이란 뜻인가? 어느 법률가가 그따위 법률해석을 하는가? 도주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을 출국정지하여 괴롭히는 것이 공권력의 집행인가? 공권력은 필요한 경우에 최소한으로 행사하게 되어 있는 것을 그대들이 정녕 모르는가? 해임할 빌미를 찾기 위하여 정해놓고 하는 감사가 '바른 감사'인가? 그대들이야말로 감사대상이다.

나는 KBS가 경영을 어떻게 했는지는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경영상의 잘못이 있다 쳐도 그것이 사전적 의미에서 '비위(非違)'라는 표현에 들어맞는가? 그대들은 일상생활에서 '비위'라는 말을 그런 경우에 쓰는가? 그렇다면 쇠고기협상이야말로 엄청난 '비위' 아닌가? 이전의 법에서 '임면권(任免權,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규정한 것을 '임명권'이라고 고친 것이 해임할 권리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국회가 심심해서 문장을 다듬었다는 뜻인가? 진실을 구부려 권세에 아부하는 그대들의 논리는 '비위'가 상해서 더이상 못 들어주겠다.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은 아무리 적이라도 온당한 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 배제하라고 말한다. 그게 불가능하면 법을 고치든가, 법을 고칠 수 없으면 참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법과 '게임의 규칙'과 '인간에 대한 예의'와 심지어 '국어의 원칙'을 무시한다. 이기는 것밖에 관심이 없는 무리에게는 더이상 관용이 적용될 수 없다. 그대들은 우리의 신성한 민주주의의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그대들은 승자인 자신들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프로레슬링 시합에서 상대의 눈을 찔러 비만한 배에 챔피언벨트를 찬 반칙왕에 지나지 않는다.

붉은 여왕은 우리가 저들로부터 소중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하고, 그래야지 제자리나마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저들은 힘과 반칙과 불법과 기만으로 국민을 능멸하지만 국민은 오로지 비폭력, 민주주의, 법치주의, 선거 그리고 단결로써 저들을 심판하자. 저들을 신성한 민주주의의 경기장에서 기필코 퇴장시키자.(조광희/ 영화제작자)

08. 0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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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한알 2008-08-13 18:01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블로그에서 제 글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로쟈 2008-08-13 22:02   좋아요 0 | URL
앗, 그러셨군요! '저들'이란 표현이 맘에 듭니다. 더 자주 쓰시면 더 자주 옮겨놓지요.^^
 

대회 초반부터 한국 선수들이 선전하는 바람에 베이징 올림픽의 열기가 뜨겁다. 겸사겸사 올릭픽을 바라보는 중국 지식인의 시각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한겨레21의 '중국 지식인 연쇄인터뷰'가 첫꼭지로 경제학자 쭤다페이 교수와의 인터뷰를 싣고 있어서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8/08/021003000200808070722037.html). 좌파이면서 중화민족주의자라고 하다(그의 책은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듯하다). 인터뷰어는 박현숙 전문위원이다.

한겨레21(08. 08..07) "애국주의 열정은 정당하다”

“당신들이 중국을 알아? 도대체 우리의 무엇을 이해한다는 거야?”
“인권? 보편 가치? 웃기지 말라고 그래. 그렇게 인권을 부르짖는 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유혈전쟁을 부추긴단 말이야! 서방은 우리에게 인권을 말하기 전에 자신들의 인성부터 들여다봐야 해.”

지난 7월22일 오후 베이징의 시즈먼교 부근 한 찻집. 2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는 새, 그는 시종일관 서방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중국의 개혁·개방은 “외국 기업들에 중국의 노른자를 고스란히 ‘갖다바친’ 매국 정책이며 중국을 파멸로 이끌었다”라는 노골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 학계와 언론에서는 이런 그를 ‘타고난 좌파’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의 성씨 역시 ‘좌’(左·쭤)다. 그는 한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좌파’인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자신이 중국 좌파 중에서도 가장 ‘좌’에 속한 사람이라고 당당히 밝힌 바 있다.

쭤다페이, 1952년생인 그는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연구원이자 교수다. 문화대혁명 당시 가장 어린 ‘홍위병’ 중 한명으로 ‘활약’했으며, 2년간 중국 동북지방의 한 농촌에서 ‘하방 생활’을 했다. 그 뒤 군복무를 거쳐 몇 년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했으며,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인 1978년부터 랴오닝대학과 중국사회과학원 등에서 경제학 공부를 했다. 2002년 출간된 대표작 <혼란의 경제학>에서 그는 ‘중국 특색의 경제자유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중국 지식인 사회에 일대 논쟁을 불러왔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현재 중국의 경제정책은 소수를 위해 다수 사람들과 국가 이익은 고려하지 않으며, 소수가 마음대로 공동의 재부를 강탈하도록 방임하고 있다. 또한 국제자본이 중국에서 이윤을 약탈하는 데 일조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사유화를 낳았을 뿐 아니라, 가장 야만적이고 잔혹한 사유화를 가져왔다. 다시 말해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한 대가로 소수는 폭발적인 부를 이뤘고, 중국은 국제자본의 통치와 수탈을 당하고 있다.”



개혁·개방 30주년이다. 개혁·개방이 중국 사회에 가져온 득과 실은 무엇인가.
=가장 큰 성과는 빠른 경제발전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방향의 견지라는 측면에서는 중대한 문제를 드러냈다. 소유제 문제에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실제로 자본주의가 경제의 주도적 역량이 됐다. 중국 정부는 비록 공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한다고 발표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이미 사유제를 실행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과거보다 개인의 자유가 많이 확대됐고, 공산당의 통제력도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개혁·개방 뒤 전면적인 사유화는 사회적으로 빈부 격차를 확대시켰고, 외국 기업에 대한 지나친 우대 정책은 중국의 많은 이익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중국에 많은 대기업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핵심적인 기술이 없다. 핵심 기술은 죄다 외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사회 모순의 확대 역시 큰 문제다. 개혁·개방 뒤 중국 사회 내부에 많은 대립이 존재하고 있다. 빈부 모순, 정부와 인민대중 간의 모순 등이 곳곳에서 민중봉기와 시위를 유발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민족주의·애국주의 열풍이 뜨거운데.
=시장경제 환경이 발전할수록 민족성과 지역성은 더욱 강렬해진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봐라. 한국인은 자발적으로 미국을 배척한다. 중국인도 마찬가지다. 민족주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요인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시장화가 더욱 발전할수록 민족주의 경향도 강화된다.

최근 중국의 ‘80후세대’(1980년 이후 태어난 세대) 사이에서 나타나는 민족·애국주의 운동의 이면에는 맹목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걸 안다. 중국 정부는 비록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애국주의 운동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조직화’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화되지 않고 리더가 없는 운동은 자칫 비이성적으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이들의 애국주의 열정은 정당하다. 서방이 먼저 자극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중화민족주의를 지지한다. 서방세계는 중국의 ‘굴기’(성장·불쑥 솟아오른다는 뜻)를 걱정한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 중국위협론을 떠들어왔다.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중국의 굴기는 필연이며, 단지 옛날로 돌아가는 ‘회귀’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청조 말기 중국은 서방의 발전을 무시했다. 그들은 최근 200년 동안 무기를 이용해 중국을 개방시켰고, 경제발전 역시 중국을 훨씬 더 앞섰다. 이는 중국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자존심을 회복해가고 있다. 중국이 다시 일어나려고 하니까 서방세계는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을 다시 분할시키고 흠집내고 싶어한다.

민족주의·애국주의 열풍이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뜻인가.
=그렇다.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마오쩌둥은 1949년 중국 공산당 창당 29주년 기념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방을 선생으로 여기고 싶지만 왜 선생은 학생을 항상 때리기만 하는가.”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원래 중국은 서방의 비위를 맞추면서 올림픽을 치르고 싶어했으나, 그들이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 생각해봐라. 만일 결혼식 집 앞에서 누군가 난동을 부린다면 혼주 입장이 어떻게 되겠는가? 중국인이라면 이런 상황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중국은 지금 잔칫집이다. 그런데 잔칫집 앞에서 그들은 온갖 난동을 부린 셈이다. 이것이 중국인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좌파 지식인들은 베이징 올림픽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올림픽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반감을 가지고 있다. 반대하지 않는 이유는 중국 인민들의 정서를 고려해서다. 중국인들은 오랫동안 서방세계에 대해 열등감을 느껴왔다. 그래서 올림픽을 통해 민족적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한다. 세계인으로부터 존중을 받고자 한다. 그럼에도 올림픽에 반감을 갖는 것은 올림픽을 통해 중국이 더 ‘세계화’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개혁·개방 정책이 가져온 경제 자유주의와 사유화,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인한 중국 경제의 세계화는 이미 중국을 다국적 기업의 이윤 쟁탈·약탈장으로 만들었다. 또 올림픽을 통해 서방은 자신들이 보편적 가치라고 믿는 것들을 중국에 주입시키고 싶어한다. 그런 의도를 경계하기 때문에 올림픽에 반감을 갖는 것이다.

중국 내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경제적으로는 시장화를 취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일당독재의 폐해와 언론자유, 인권 등 보편적 가치의 부재를 지적하는데.
=공산당 체제는 크게 보면 인권을 보장한다. 부족한 것은 단지 다당제일 뿐이다. 다당제는 사실 중국에 맞지 않는다. 서방은 인권과 보편 가치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중국 쓰촨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당연하다’ ‘싸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예를 들어 미국의 유명 여배우 샤론 스톤은 “당해도 싸다”라는 발언을 했다. 중국이 티베트를 탄압했기 때문에 ‘인과응보’라는 식이었다. 이게 인권을 중시하는 태도인가? 그렇게 인권을 중시하고 인도주의 등의 보편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이나 서방세계가 이라크와 옛 유고슬라비아 등지에서 저지른 일들을 생각해봐라. 그리고 그들이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일으킨 세계적인 전쟁과 유혈 사건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자들이 중국을 향해 감히 보편 가치를 떠들어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중국이 나아가야 할 가장 합리적인 방향은 뭔가.
=현재 중국에는 사유화를 둘러싸고 격렬한 좌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 교육, 부동산, 노동계약법 등의 시장화 문제 역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시장화에 반대한다. 특히 의료 방면의 시장화는 절대 안 된다. 이것들은 최소한의 사회주의적 요소다. 자유주의·개방파 지식인들은 국유경제를 없애고 전면적인 사유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국유경제는 보존돼야 한다고 본다. 최소한 국유경제가 경제의 선두 작용을 해야 한다. 경제에도 일정 정도 계획성이 보존돼야 한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상대적인 독립 자주를 해야 하고 대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중국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경제에서 주도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반드시 중국 기업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국유기업이 주도적 지위를 점해야 한다. 언론자유 등 민주주의 확대에 찬성하지만 서방식 민주주의는 절대 반대한다.

08. 08. 12.

P.S. 지면기사로 읽어보니 '연쇄인터뷰'의 두번째 편도 마저 실려 있다(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8/08/021003000200808070722052.html). '체제비판자 허웨이팡 교수'와의 인터뷰인데, 같이 옮겨놓는다.

한겨레21(08. 08. 07) "정부의 통제는 달라진 게 없다”

“언론 자유도 없는데 무슨 자유로운 토론이 있고 논쟁이 있을 수 있나? 중국 공산당은 지식인들이 모여서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 지식인들은 중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합의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모이지 말라, 토론하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진정한 논의가 이뤄지겠는가?”

허웨이팡 베이징대 법학과 교수는 생각보다 훨씬 ‘자유롭게’ 발언을 했다. 많은 지식인들이 간접화법을 통해 현 체제를 비판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것과 달리, 그는 일관되게 직접화법으로 얘기했다. 심지어 최근 들어 중국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에 대해서도 “도대체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예전에 비해 변화된 건 거의 없고 개혁도 변죽만 울리고 있다. 언론·사상에 대한 통제는 예전보다 훨씬 강경해졌다. 그들이 뭔 일을 하고 있는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허 교수는 지난 2006년 3월4일, 중국 국무원 산하 경제체제 개혁연구회가 주최한 중국 시장화 개혁 방향 토론회(‘시산회의’로 더 유명하다)에서 일대 파장을 몰고 온 발언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 회의에서 “공산당은 헌법에 위배되는 조직”이라는 폭탄 발언을 한 데 이어, 공개적으로 다당제와 군대의 국가화, 전면적인 언론·집회의 자유 등 대대적인 정치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그의 발언이 외부에 알려진 뒤 인터넷을 중심으로 중국 정치 개혁에 관한 좌·우파 진영의 거센 논쟁이 일기도 했다. 지난 7월24일 오후 베이징대 앞 서점 ‘만성서원’에서 1시간30분가량 허 교수와 마주 앉았다.

올림픽은 중국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에 민주정치를 촉진하는 등 일련의 변화를 가져왔다. 마찬가지로 지난 2001년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이후 중국 내 많은 지식인들은 올림픽을 통해 중국 사회가 변화하길 희망했다.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확대되길 바랐다. 하지만 (티베트 시위 사건 등) 올해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그로 인한 올림픽 분위기 변화는 이런 희망이 사실상 실현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올림픽 기간 중 일시적으로 언론·취재의 자유 등이 보장될 수 있겠지만 올림픽 뒤에는 다시 예전과 같은 통제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현재 중국 사회 발전 방향의 대세가 민주·개방으로 가는 것임은 확실하다.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압제하는 사회주의 관리 방식이 이미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들은 중국과 세계의 관계가 아주 밀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시장경제와 합리적인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사회가 관리돼야 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3~5년 이내에 그다지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올림픽이 중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 뿐이다.

장기적으로 중국 사회가 민주·개방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보는 근거는?
=중국인들은 이미 개방사회에 익숙해 있다. 사람들의 민주의식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일당 집권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인민대표대회가 공민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지 여부, 정당과 군대의 관계, 언론 자유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언론이 돼가고 있다. 이미 인터넷은 많은 지식인들이 정보를 얻는 주요한 경로가 됐기 때문에 강경한 언론 통제 체제는 조만간 유지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중국은 지금 과도기에 처해 있다. 민주·개방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아직도 많은 장애가 도사리고 있고, 중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공통된 인식 기반도 없다. ‘무엇이 당연히 변화해야 하는 것들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개혁·개방 30주년이다. 개혁·개방은 국가와 사회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왔나.
=개혁·개방의 가장 큰 성과는 빈곤을 줄였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개혁·개방은 확실히 성공했다.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도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개인들의 자유가 확대된 것이다. 예전에는 국가가 모든 개인을 통제했고 모든 개인은 자신의 ‘단웨이’(單位·회사나 기관)에 소속돼 모든 개인 행위를 통제받았다. 개혁·개방은 이런 통제에 변화를 가져왔고, 개인을 통제하던 단웨이 체제는 해체됐다. 그 결과 개인들은 일정한 자유를 갖게 됐다. 당과 정부, 공민의 관계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왔다. 당과 정부는 더 이상 인민들의 주인이 아니며, 정부의 말이나 마오쩌둥의 어록이 진리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심지어 국가 지도자의 일부 발언이 종종 사람들의 농담거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 개혁·개방은 옛 소련의 개혁 방식과는 다르다. 소련의 개혁은 모든 것을 하룻밤 사이에 뒤집어엎었지만, 중국은 지난 30년간에 걸쳐 아주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다. 특히 이데올로기의 변화는 다른 경제·사회 구조 변화에 비해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 당과 정부의 통제 스타일에도 변화가 없다. 개혁·개방 뒤 중국 사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일 변화 중이지만 전체적인 변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3월14일 티베트 시위 사건 뒤 중국인들, 특히 신세대들 사이에서는 반서방·애국주의 운동이 강하게 불고 있다.
=‘정보’의 문제다. 중국 정부는 사실 서방매체에서 보도한 내용 중 극히 편향적인 것들만 부풀려서 제공했다. 서방매체가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다. 2007년 중국은 이미 외신들에게 취재 개방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티베트 문제에 대해 중국 정부는 서방매체의 취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것이 서방매체로 하여금 중국 정부를 비판하게 만들었다. 흔히 ‘80후 세대’라고 일컫는 중국 신세대들의 민족주의 열풍도 정부가 조장한 것이다. 신세대들은 자신들이 구세대에 비해 개방적이고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많이 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는 문화대혁명 등과 같은 중국 정치사의 민감한 사건을 연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세대들은 문화대혁명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며, 이 때문에 마오쩌둥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티베트나 신장위구르족 통치정책은 서방인들 눈으로 보자면 제국주의 정책과 다를 바 없다. 자치구라고 하지만 사실상 자치가 허용되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은 농노 사회였던 티베트를 해방시켰고 경제를 건설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티베트인들은 독립을 원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인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고 있는지, 그들의 종교 신앙을 존중하고 있는지다.

중국은 올림픽을 계기로 ‘중화민족이 일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서방에서는 이런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는데.
=중국 정부는 사실 예전만큼 강하게 ‘중국의 굴기’를 선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변 국가와 서방세계가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비록 중국은 ‘평화로운 굴기’를 주장하지만, 외부에선 중국이 인권을 존중할 것인지와 외교에서 정의의 관점을 유지하는지 여부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수단의 다르푸르 문제나 버마 군정 문제에서 중국이 취했던 자세를 들 수 있다. 서방 국가에서 중국의 굴기를 위협으로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최근 들어 중국 내 민족주의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과 중국의 정치제도가 예전과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외부 세계의 ‘중국 위협론’을 잠재우기 위해 중국 정부는 최근 ‘연성 권력’(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얼마 전 쓰촨에서 지진이 났을때 <북경완보>와 <남방주말>이라는 두 유력지 간에 재밌는 논쟁이 있었다. <남방주말>은 기사에서 지진을 통해 중국은 생명이나 인권·인도주의에 대한 ‘재발견’을 했고, 이것은 중국 사회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 기준을 향해 진보하는 증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경완보>는 반박 기사를 통해 그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공산당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이며, 지진 극복 과정은 바로 중국 공산당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 얼마나 웃긴 말인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마저도 부정하는데, 무슨 ‘소프트 파워’를 건설할 수 있겠는가. 먼저 우리 사회 내부에서 논쟁의 자유와 언론집회의 자유 등이 보장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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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바바 2008-08-12 23:05   좋아요 0 | URL
'구좌파'군요. 사실 이런 중국 지식인들은 널린거 같습니다. 물론 자유주의자들이 다수인 듯도 하지만... 사실 요즘 '대화'가 통할만한 지식인이 얼마나 되는지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가장 궁금합니다.

로쟈 2008-08-12 23:23   좋아요 0 | URL
네, 상식적으론 '특이한' 포지션인데, '다수'인 모양이군요. 그게 '모순적인 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노바바 2008-08-13 13:28   좋아요 0 | URL
저도 중국은 잘 모르지만, 중국 전공한 분들한테 줏어들인 얘기입니다. 좀 단순하게 얘기하면 '비판적'이라는게 대개 정부와 미국에 비판적이라는 뜻이고 '진보적' 이라는건 자유주의자라는 뜻이라더군요. 지식인이라고 하면 저 둘 중 하나라고 보면 그리 틀리지 않다고... 그런데 비판적이면서 좌파이면서 민족주의인 모순적인 경우는 이미 한국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잇엇지 않습니까? 그게 모순적이다못해 이제는 반동적이기까지 하지만요. 국내에 소개된 저자로 따지면 쑨거, 왕샤오밍 같은 사람이 그나마 비판적이면서 자유주의자는 아니면서 중화주의자도 아니라더군요.

로쟈 2008-08-13 22:01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진보주의자에 대한 정의는 러시아와 비슷하네요. 러시아에서도 진보주의자는 자유주의자이지요. 반대로 보수주의자는 공산주의자를 가리키고요...

로쟈 2008-08-14 08:59   좋아요 0 | URL
유태인과 중국인의 상술을 비교하는 건 자주 접하지만, 제가 과문해서인지 유태인과 중국인이 대표적인 디아스포라라는 건 처음 듣습니다. 참고할 만한 책이 있으신지요?..

로쟈 2008-08-15 14:28   좋아요 0 | URL
유태인의 경우엔 2천년간 국가가 없어서 '디아스포라로서의 유태인'이란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중국은 경우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위키피디아에도 주로 20세기에 중국인 디아스포라가 많아진 걸로 나와 있고요. 그리고 모든 중국인을 '화교'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 구별해야 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아스포라의 개념에 대해서 제가 특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인가 해서 질문을 드렸던 것이구요...

로쟈 2008-08-16 09:29   좋아요 0 | URL
통계를 보니 소위 '화교'가 4천만쯤 되는군요. 재외 한국동포가 6백만입니다. 당연히 중국 디아스포라의 숫자가 훨씬 많지만 인구비율을 놓고 보자면 한국이 훨씬 더 높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산'으로 인한 고통은 한국인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구요. 저는 중국인 좌파지식인이 "당신들이 뭘 알아?"라고 특권적으로 말할 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섬나무 2008-08-19 15:23   좋아요 0 | URL
음...미묘하고 미세한 감성의 차이 같은데 좀 더 근원적인 차이네요.
로쟈님 건재하셔서 감사하구요...
 

지난주 신간 가운데 클레어 콜브룩의 <이미지와 생명, 들뢰즈의 예술철학>(그린비, 2008)이 있다. '리좀총서'의 한권으로 나온 것인데, 제목 때문에 몇 군데 검색을 해봤었다. 콜브룩의 책 제목으로는 생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국역본의 제목은 '미끼'였다.

 

 

 

 

좀 뒤적거리다 알게 된 사실은 이 책이 콜브룩의 또 다른 들뢰즈 입문서 <들뢰즈(Deleuze: A Guide for the Perplexed)>(2006)를 우리말로 옮긴 책이라는 점. '당혹한 이들을 위한 가이드(A Guide for the Perplexed)'란 부제는 이 책이 포함된 컨틴뉴엄 출판사의 시리즈 제목이다. 철학자 입문서 시리즈인데, 플라톤부터 시작해서 칸트, 헤겔, 니체, 그리고 리쾨르, 데리다 등까지 망라돼 있다. 비록 콜브룩의 책이 이번엔 <철학이란 무엇인가>와 <시네마> 두 권에 초점을 맞춘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들뢰즈 입문서'인 것이다. 그러니까 '들뢰즈의 영화론을 중심으로 정리한 들뢰즈 철학의 핵심' 정도가 아닐까 싶다. 들뢰즈를 조금 읽으려다가 '이게 뭥미?'하며 투덜거릴 독자들을 위한 가이드.

이미 <질 들뢰즈>(태학사, 2004), <들뢰즈 이해하기>(그린비, 2007) 등을 통해서 탁월한 입문서 쓰기 능력을 과시한 바 있기에 콜브룩의 신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신뢰를 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궁금한 것. 왜 출판사는 책의 원제를 노출시키지 않았을까?(알라딘의 책소개에도, 그리고 출판사측의 소개에도 원제는 누락돼 있다. 그건 <들뢰즈 이해하기>만 하더라도 '원제 Understading Delueze'가 병기돼 있는 것과 비교된다. 이건 실수일까 의도일까? 짐작은 후자쪽일 듯하다. <들뢰즈 이해하기>의 속표지를 보니 저자 약력에 <들뢰즈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라고 기재돼 있고, '리좀총서'의 근간 리스트에도 역시 <들뢰즈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라고 돼 있다. 그렇다면 제목이 바뀐 것이고, 그 의도는 들뢰즈 '입문서'보다는 들뢰즈의 '예술철학'에 방점을 찍고 싶었기 때문 아니었을까('가이드'는 좀 식상하니까). 그런데, 그런 '의도'가 애꿎게도 잠시 나 같은 독자를 당혹스럽게 했던 것이다.  

 

 

 

 

들뢰즈의 영화론에만 한정하더라도 사실 적잖은 책들이 나와 있다. 데이비드 로도윅의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그린비, 2005)에서부터 파트리샤 피스터르스의 <시각문화의 매트릭스>(철학과현실사, 2007)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짐작엔 콜브룩의 책이 가장 쉬운 책일 것이다(가장 얇기도 하다. 물론 <들뢰즈: 철학과 영화>(열화당, 2004) 같은 책이 더 얇긴 하지만, 나로선 건질 게 없는 책이었다). 이후에 좀더 깊이 있는 독서를 원한다면 로도윅의 책이나 로널드 보그의 <들뢰즈와 시네마>(동문선, 2006)를 집어들 수 있지 않을까? 로도윅의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의 1장 읽기는 '영화의 짧은 역사'(http://blog.aladin.co.kr/mramor/714446) 참조. 지젝의 들뢰즈론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은 거기에 선택사양으로 부가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리좀총서' 가운데 가장 고대하고 있는 책은 장-자크 르세르클의 <들뢰즈와 언어>(2002)이다. <언어의 폭력> 등의 저작을 갖고 있는 르세르클은 루이스 캐럴과 무의미 문학의 전문가이다(그의 '앨리스론'과 '롤리타론'도 챙겨둘 만하다). 최근작으로는 그레고리 엘리어트와 공저한 <마르크스주의 언어철학>(2006)도 눈에 띈다. 들뢰즈의 예술철학 이상으로 중요해 보이는 것이 내겐 그의 언어철학이어서이다...

08. 08. 12.

P.S. 한가지 덧붙이자면, 또 다른 입문서로 토드 메이의 <질 들뢰즈>(경성대출판부, 2008)도 이번에 출간됐다. '들뢰즈 입문서의 지존'이 어느 책으로 판가름날지 살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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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AV 2008-08-12 15:36   좋아요 0 | URL
그런 것이었군요;; 무슨 책일까 했네요;;
시리즈물은 한 출판사에서 시리즈물로 같이 내주는 것이 보기 좋은데 말이죠. ^^;

마이모니데스 책 제목을 빌려 온거니,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 누구누구』 이렇게 해서 말이죠.

로쟈 2008-08-12 21:18   좋아요 0 | URL
앨피에서 나오는 시리즈가 드문 경우이고, 시장성 때문에 시리즈물을 다 내기는 무리죠.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 같으면 100권이 넘는데, 이런 기획에 사활을 걸 출판사는 별로 없을 듯합니다...

yoonta 2008-08-13 11:04   좋아요 0 | URL
이 책 조금 봤습니다만 들뢰즈를 읽고 당혹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 읽고도 당혹해할 확률도 꽤 높을것 같네요. 입문서이긴 하지만 제법 난이도가 있는 책입니다. 태학사에서 나온 <들뢰즈> 정도가 저자가 쓴 입문서들 중에서는 제일 읽기 평이한 것으로 보입니다.(그만큼 건질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됩니다만)

제가 리좀총서에서 가장 기대되는 책은 르세르클의 책도 있지만 마누엘 데 란다의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입니다. 들뢰즈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수학과 과학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로쟈 2008-08-13 11:12   좋아요 0 | URL
그 난이도 때문에 국역본에서 '가이드(입문서)'란 제목을 기피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데 란다의 책은 하도 유명해서 저도 갖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제가 좋아하는 분야는 수학이 아니라 언어(문학)입니다.^^

marr 2008-08-13 22:40   좋아요 0 | URL
아, 좋은 지적입니다. 들뢰즈의 예술철학에 관한 훌륭한 입문서는 한국에도 한 권 있습니다. 이룸에서 출판된 <들뢰즈>라는 박성수의 책입니다.

로쟈 2008-08-14 00:11   좋아요 0 | URL
네, 그 책도 영화와 미술쪽을 주로 다루었죠...
 

밀란 쿤데라의 신작 에세이집 <커튼>(민음사, 2008)을 읽고 있다(달리 '휴가' 기분을 낼 수 있는 방법도 없기에). 80년대 후반 처음 소개된 이후 90년대 전반까지 한국의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어필한 작가 중 한 사람이지만 현재는 그의 많은 책들이 절판된 상태다. 격세지감을 다시금 느낄 수밖에 없다(더불어 느끼는 건 그가 일급의 에세이스트라는 것. 하긴 허름한 에세이를 쓰는 일급의 소설가도 있는지는 의문이다). 남은 책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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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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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책세상 / 2004년 11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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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향수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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