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꼽아본 지도 딱 1년이 됐다. 해서 '10월의 읽을 만한 책'이란 제목은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단다. 이렇게 10번, 같은 제목을 달면 후딱 10년이 지나갈 터이니 그땐 50대 지천명이요, 인생무상이겠다. 바라건대, 그런 불상사는 없었으면 싶다(좀더 폼나는 일들이 있지 않겠는가?). 절반은 마지 못해서 하는 일이니 빨리 해치우도록 하겠다(도서 이미지의 사이즈가 변경된 탓에 이번부터는 분야별로 3권씩만 꼽는다). 여러 가지 사정상 책읽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을 만한 책들'을 꼽자니 적개심까지 솟는다. 책들에게 묻고 싶다. "나오기만 하면 다야?" "니들이 독자를 알어?" (약간 과장해서) "요즘 밥 먹기도 힘들어!" 들은 체도 않는군...

1. 문학

작가 신경숙씨가 꼽은 문학분야의 책은 아모스 오즈의 <숲의 가족>(창비, 2008). 작가의 이름은 생소하지 않지만 나는 읽은 작품이 없는 작가다. "아모스 오즈는 이스라엘 출신의 지식인이며 세계적으로는 명망 있는 작가이다. 여기에 소개하려는 <숲의 가족> 이외에도 많은 저서를 가지고 있으며 이스라엘에서 영향력이 크고 존경을 받는 작가이다. <숲의 가족>은 겨우 138쪽밖에 되지 않은 짧은 소설이지만 다 읽고 나면 그 울림이 큰 소설이다." 얇은 소설이므로 더이상은 소개는 옮겨오지 않도록 한다.

곧 시즌이 다가오지만 심심찮게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오즈의 책으론 <나의 미카엘>(민음사, 1998)을 비롯해서 여러 권이 출간돼 있다. <지하실의 검은표범>(지식의숲, 2007)이 작년에 나온 책이고, 먼저 나온 책들 가운데는 <여자를 안다는 것>(열린책들, 2001/2006)이 눈길을 끈다. 타이틀상으로는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스라엘 작가로는 에프라임 키숀 외에 아모스 오즈 정도가 아는 이름이다. 더 소개된 작가가 있는지?..

2. 역사

이덕일씨가 꼽은 역사분야의 책은 '인물로 보는 남북 현대사'를 표방한 <남과 북을 만든 라이벌>(역사비평사, 2008)이다. "박정희와 김일성(정치), 염상섭과 한설야(문학), 유진오와 최용달(법학), 이태규와 리승기(과학), 윤봉춘과 문예봉(영화) 등 각 분야의 대표적인 인물을 통해 남북 각 분야의 흐름과 현재의 동향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 책이다. "각 분야의 대표적인 두 사람의 삶을 통해 때로는 남북의 이질성을, 때로는 동질성을 느낄 수 있다"고.  

라이벌이라고 하니까 최근 첫 세 권이 출간된 손세일의 <이승만과 김구>(나남, 2008)이 떠오른다. 분량으로 미루어보자면,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가장 방대한, 따라서 가장 자세한 평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콜린 에번스의 <라이벌>(이마고, 2008)도 같은 컨셉의 책이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 속의 10대 앙숙들'이 부제. 별로 재미는 못본 책인 듯싶은데, 그 10대 앙숙들의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세계사'의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시야가 좀 좁긴 하군).

엘리자베스 1세 vs 메리 | 종교문제로 위장된 두 여왕의 권력 다툼
올리버 크롬웰 vs 찰스 1세 | 지상의 왕과 천상의 왕이 맞붙다
애런 버 vs 알렉산더 해밀턴 | 상대방에 대한 음모와 술수로 결국 자신을 파멸시킨 미국의 두 정객
해트필드가 vs 매코이가 | 돼지 한 마리로 시작된 두 가문의 유혈 복수극
요시프 스탈린 vs 레온 트로츠키 | 철의 장막 뒤에 감추어진 검은 음모와 비정한 암살극
로알드 아문센 vs 로버트 F. 스콧 | 죽음을 통해 패배를 승리로 뒤바꾼 대역전의 드라마
심프슨 부인 vs 퀸 마더 | 왕비가 되고 싶었던 미국 여인과 왕비가 되기 싫었던 영국 여인
버나드 로 몽고메리 vs 조지 패튼 | 실리보다 명예를 좇다 오점을 남긴 연합군의 쌍두마차
린든 B. 존슨 vs 로버트 F. 케네디 | 존 F. 케네디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두 야심가
에드거 후버 vs 마틴 루터 킹 | 20세기 미국의 진정한 우상은 누구인가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꼽은 철학분야의 책은 제롬 클레망의 <하루 10분 딸과 함께 문화논쟁>(에코리브르, 2008)이다. 생소한 책인데,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문화를 놓고 펼치는 부녀간의 대화이다. 아버지는 저명한 문화 행정가이고 딸은 열일곱의 발랄한 학생이다. 이야기는 일상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쉽고 짧게 이어진다. 복잡하고 추상적인 말은 없고 엄숙한 이론도 없다. 있는 것은 일단 커다란 세대차이다. 세대차이가 커다랗게 벌어지다가 다시 좁혀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대화는 다양한 주제들을 가볍게 풀어가고 있다. 인종, 종교, 언어, 전쟁, 예술, 문학, 영화, 철학, 유행, 독서, 인터넷, 게임, 드라마, 햄버거, 청바지 등등이 그런 것이다."

굳이 철학서로 분류할 필요는 없을 성싶은데(알라딘 분류상으론 '청소년을 위한 문화/예술'이다. 내가 못보고 지나칠 만하다), 나도 딸아이를 두고 있는지라 눈길이 조금 머물기는 한다(그런 대화라면 나는 10년쯤 후에 해봐야겠다). 실제 청소년을 위한 교양철학서로 생각나는 것은 빗토리오 회슬레의 <철학이 알고 싶어요>(문학사상사, 1997)이다. 독일의 이 저명한 철학자가 노라 카라는 12살짜리 소녀와 2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토대로 한 책이라 한다. 국내서로는 김용규의 <지식을 위한 철학 통조림>(주니어김영사, 2006) 시리즈를 들 수 있겠다...

4. 정치

손호철 교수가 꼽은 정치분야의 책은 육성철의 <세상을 향해 어퍼컷>(샨티, 2008)이다. 소개를 읽어봐야 감은 잡을 수 있는데, "일상에 부딪히는 부조리와 인권침해에 대해 굴종하지 않고 싸운 38명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책이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론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 소송을 제기한 사연 중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사건들을 소개한 이 책은, 인권문제를 거창하고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의 이웃의 이야기를 통해 깨우치게 해 주는 뛰어난 인권교과서이다."

인권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이 분야의 책들을 활발하게 펴내고 또 소개하고 있는 조효제 교수이다. 지난 여름에 나온 <인권의 풍경>(교양인, 2008)과 함께 그가 번역한 <세계인권사사상>(길, 2005) 정도는 기억해둘 만하다. 책 이름을 기억하는 것 정도는 돈 드는 일이 아니다(기억해두면 나중에 도서관에서라도 손길이 미칠 수 있다).

5. 경제/경영

이번달부터는 추천자가 정운찬 교수에서 이준구 교수(서울대 경제학부)로 바뀌었다.  첫 추천도서는 <상식 밖의 경제학>(청림출판, 2008). 표지는 좀 값싸보이는데, 은근히 입소문이 난 책인가 보다. MBC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의 진행자 유종일 교수의 추천사는 이렇다. "경제학에 과연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올까?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가정 하에 성립된 표준경제학의 강력한 이론들이, 과연 행동경제학이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체계적인 비합리성’의 증거 앞에서 천동설처럼 무너지고 말 것인가? 경제학의 새로운 기초를 놓아가고 있는 행동경제학의 맛과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책이다." 재미있는 책인가 보다.

똑같이 상식과 통념에 도전한다고 광고되었던 책은 스티븐 레빗 등의 <괴짜경제학>(웅진지식하우스, 2005)이 있다.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였다는 이 책은 "마약 판매상은 왜 어른이 되어도 부모와 함께 사는걸까? 어린이에게 어떤 것이 더 위험할까, 총 아니면 수영장? KKK와 부동산 중개업자의 공통점은? 낙태의 합법화가 범죄율을 줄였는가? 온라인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거짓말은?" 등의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나도 구입했던 책이다. 더불어, 도모노 노리오의 <행동경제학>(지형, 2007)도. 1년에 내가 구입하는 경제분야의 책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므로 예외적인 책들이기도 하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꼽은 사회분야의 책은 로빈 메레디스의 <마오를 이긴 중국 간디를 넘은 인도>(이슬, 2008)이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67억 세계인구의 약 37%를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가 국가경제의 틀을 어떻게 혁신함으로써 세계인이 주시하는 고성장 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는가를 저자 특유의 통찰과 풍부한 예증으로 알기 쉽게 풀이한 시사성 교양서이다." 재미있게도 원제는 '코끼리와 용(The Elephant and the Dragon)'이다.

중국을 다룬 책으로 손호철 교수의 현지 르포 <레드로드>(이매진, 2008)도 꼽을 만하다. 인도에 관한 책으론 인도문화 전도사를 자임한다는 델리대 김도영 교수의 <인도인과 인도문화>(산지니, 2007)도 눈에 띈다. 20년 동안 인도에 살면서 들여다본 인도인과 인도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꼽은 과학분야의 책은 얼마전 같이 사고를 당한 제자의 가족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해 기사가 뜨기도 했던 이상묵 교수(와 강인식 기자)의 <0.1그램의 희망>(랜덤하우스코리아, 2008)이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서 다시 과학자로서 재기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므로 과학분야의 책이라기보다는 인물/평전분야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교수가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기도 하는 만큼 같이 생각나는 책은 <스티븐 호킹 과학의 일생>(해냄, 2004). 그의 전 아내 제인 호킹이 쓴 <스티븐 호킹: 천재와 보낸 25년>(흥부네박, 2000)도 오래전에 출간됐었다. 과학자의 사생활이야 사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고, 때론 모르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지만...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작가, 2008)이다. '작가'는 책을 낸 곳이다. 재작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이 '오늘의 영화'는 1년간 국내에 소개된 영화들의 면면과 의의를 짚어보는 기획으로 유익해 보인다. 가령, 이런 식이다. "2008년에 국내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두 편의 영화는 국내의 <밀양>과 국외의 <색, 계>였다. <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는 이 두 작품을 포함한 총 20편의 영화를 ‘2008년의 영화’로 뽑았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다양한 해설과 평, 그 영화의 독특한 작품성 등을 재미있게 실었다."

영화관련서로는 조흡 교수의 <영화가 정치다>(인물과사상사, 2008), 그리고 '코리안 뉴 웨이브 영화의 이행기적 성찰'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김소연의 <실재의 죽음>(도서출판b, 2008)도 한번쯤 손에 들어봄 직하다. 전자가 현단계 한국문화에서 영화가 놓여 있는 컨텍스트를 분석하고 있다면 후자는 한국영화의 한 흐름에 대한 자세한 정신분석적 비평을 시도하고 있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꼽은 교양분야의 책은 최절주의 <해피...엔딩, 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궁리, 2008)이다. 저자나 책이나 모두 낯선데, 저자는 전직 언론이고 책은 죽음의 철학이 아니라 죽음에 관한 심층취재 다큐멘터리라 한다. "크게 보면 1부에서는 미국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 2부에서는 일본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다룬다"고.

바로 떠오르는 책은 얼마전에 출간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죽음과 죽어감>(이레, 2008) 소위 '사망학' 분야의 고전인데, "불치병에 걸린 환자들이 겪는 심경의 변화를 상징화한 '죽음의 5단계'를 정리.소개해 지금까지 줄곧 죽음을 앞둔 환자 자신뿐 아니라 시한부 환자들을 대해야 하는 의사 및 간호사, 그리고 그 환자들 곁에서 도움을 주는 성직자들과 호스피스 봉사자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고 하는 책이다. 그 5단계를 선구적으로 묘파하고 있는 소설이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작가정신, 2005)이다. 죽음뿐만 아니라 톨스토이를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책이다.  

10. 언어

보통 평전류를 마지막으로 꼽고는 했는데, 이달에는 '죽음' 얘기도 나온 김에 언어의 죽음을 주제로 한 책들을 골라놓는다. 최근 출간된 <언어의 종말>(작가정신, 2008)을 비롯해서 <언어의 죽음>(이론과실천, 2005),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이제이북스, 2003) 등이 관련된 책들이다. 몇몇 언어만이 팽창/확장해가는 '언어 제국주의' 시대에 언어의 다양성의 문제에 대해서 한번쯤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올해는 또 영어 공용어화 논란이 있은 지 10년째 되는 해이기도 한데,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에 대해서도 한글날에 즈음에 생각해보면 좋겠다...

08. 10. 01.

P.S. 이달의 고전은 내친 김에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룬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원전 번역을 포함하여 여러 종의 번역이 나와 있으며 예전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고 더 많이 소개됐던 책이다. 박홍규 교수의 <소크라테스 두번 죽이기>(필맥, 2005)도 길잡이 삼아 읽어보면 좋겠다. '길잡이'라기보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반민주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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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0-0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세일 씨는 약 40년 전 <이승만과 김구>를 펴낸 후 정말 엄청난 증보판을 내기 시작하는군요.초판의 10배는 될 걸요.월간 조선 연재할 때 보니까 최근의 연구성과도 두루두루 섭렵했더라구요.70이 넘었는데 대단한 열성이죠.

로쟈 2008-10-01 22:36   좋아요 0 | URL
40년전 초판이면 대체 언제 나온 건가요?!.. 아, 1970년에 냈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10-01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시사평론선인 <인권과 민족주의>엔 1975년 글 중에서 이승만 살리기를 비판하는 것이 있어요.4,19정신이 시들해져가는데 이승만 살리기는 말도 안된다...그런 내용이지요.초판<이승만과 김구>는 구하기가 힘들어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헌책방에선 <인권과 민족주의>를 샀죠.

로쟈 2008-10-02 22:23   좋아요 0 | URL
균형감각은 있는 언론인이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10-03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정희 시대 때만 해도 이승만과 차별화하려는 노력 때문인지 그다지 지금 같은 이승만 살리기는 탄력을 못 받았던 것 같아요.이승만이나 장면은 모두 구시대 정치인이고 군인인 자기들이 진보나 근대화 세력이라는 자부심에 그 전임자들을 깎아내렸죠.사실 박정희 열풍도 문민정부 이후의 현상이죠.

로쟈 2008-10-03 21:13   좋아요 0 | URL
박정희주의자들의 이승만 숭배는 넌센스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10-03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을 생산해내는 방식의 변화라고나 할까요...

로쟈 2008-10-04 09:22   좋아요 0 | URL
생산해내면서 편의적으로 이용해먹는 방식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