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금요일이어서 언론사 북리뷰들을 훑어보았다. 눈길이 가는 책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주중에 '처리'한 책들이 여러 권 되는지라 따로 스크랩해둘 만한 리뷰는 많지 않다. 그 중에서 새 번역본으로 다시 나온 슈퇴리히의 <세계철학사>(이룸, 2008)에 대한 리뷰를 옮겨놓는다. 저자나 책보다는 박민수라는 역자가 눈에 띄어서다. 에른스트 벨러의 <데리다-니체 니체-데리다>(책세상, 2003) 이후에 믿을 만한 번역자로 꼽아두고는 있었지만 그새 독일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활발한 저술/번역 활동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분량에서도 알 수 있지만 <세계철학사>는 저자뿐만 아니라 역자에게도 '역저(!)'라 할 만하다...

한겨레(08. 10. 04) 전공자들도 몰래 읽는 교양 철학사
독일 학자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의 <세계 철학사>는 수많은 철학사 책들 가운데 돋보이는 자리에 놓일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나 읽지만 아무도 언급해서는 안 될 책’으로 통한다고 한다. 철학사를 명료하고도 일관성 있게 알려주기 때문에 읽으면 큰 도움을 받지만, 한편 일반인을 독자로 삼아 쓴 교양서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모른 체해야 하는 책이라는 뜻이다. 1915년에 태어난 지은이는 철학과 법학 두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 연구자이면서 오랫동안 출판 편집인·번역가·사전 편찬자로 활동했다. 이런 독특한 이력이 대중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품은 철학사 책을 쓰게 한 힘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1950년 처음 출간된 뒤 1999년까지 모두 17번이나 판을 갈았다. 그때마다 내용을 보충하고 확장했으며, 그 결과로 20세기 현대 철학 전반을 마저 아우르게 됐다.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마지막으로 나온 1999년 판이다.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은 인도·중국 철학을 주목한 데 있다. 지은이는 책의 제1부를 ‘동양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인도·중국 철학의 성립과 전개에 할애한다. ‘동양철학’에 대한 이런 관심은 초판이 나온 시점에서 보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 공정성은 개별 철학자들의 사상을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데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은이가 서술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철학자가 없는 것은 아닌데, 그 중심이 그가 ‘서양 철학의 정점’으로 평가하는 이마누엘 칸트(1724~1800)다. 칸트 철학을 설명하는 데 한 장(챕터)을 할당한 것도 그렇거니와, 철학사 서술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칸트는 나침반 노릇을 한다. 말년의 칸트는 자신의 연구가 세 가지 물음에 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는데, 그 세 가지 물음이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인식),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행위), ‘우리는 무엇을 믿어도 좋은가?’(믿음) 흥미로운 것은 “철학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이 물음들은 칸트가 나열한 것과는 정반대의 순서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먼저 종교적 믿음이 출현했고 이어 인간 행위를 문제삼는 윤리학적 물음이 나타났으며, 세계 자체에 관한 앎의 문제가 마지막에 솟아났다는 것이다. 이 세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변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 철학사 서술의 기본 방향이 된다.
명확성과 체계성이라는 이 책의 장점은 인도 철학사를 설명하는 부분만 보아도 분명해진다. “인도는 철학적 인간 정신의 탄생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인간 문화 발상지 중 하나다.” 아리아족의 정복과 함께 성립한 브라만교는 철학적 사고의 첫 씨앗을 품고서 전개됐다. 고대 인도 철학의 모든 물음은 ‘브라만’과 ‘아트만’이라는 개념으로 응축됐다. 브라만이란 애초 지배자인 승려 계급의 기도·주문을 뜻하다가 이어 ‘신성한 지식’이란 뜻으로 확장됐고, 마침내 ‘세계 창조의 원리’로 승격됐다. “자신 안에 머물면서 모든 것을 탄생시키고 또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쉬고 있는 거대한 세계정신”이 브라만이었다. 브라만이라는 관념에 이어 아트만이라는 관념이 생성됐다. 본디 입김·호흡을 뜻했던 아트만은 ‘우리 자아의 가장 깊은 핵심’이란 뜻으로 진화했다.
인도 철학에서 결정적인 지점은 이 브라만과 아트만이 하나라는 인식에 도달했다는 데 있다. 이 놀라운 인식의 도약은 동시에 지배이데올로기 강화 기능을 포함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거기에 대항해 유물론이 나타나 오직 감각적 세계만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을 설파했다. 브라만교에 가장 강력한 타격을 가한 것은 기원전 6세기에 출현한 불교였다. 불교는 브라만이니 아트만이니 하는 영원한 실체를 모두 부정하고, 무상한 감각적 세계만을 인정했다. 그러나 전 시대의 유물론처럼 이 감각적 세계를 즐기라고 하지 않고, 이 세계에 대한 애욕과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쳤다. 그 벗어남이 바로 ‘타던 불이 꺼진 상태’를 뜻하는 ‘니르바나’(열반)였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불교의 도전에 맞서 브라만교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목숨을 걸다시피 한 이 사상 투쟁은 유례없이 풍요로운 사유의 마당을 열었다. “여러 정신사조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이 시대의 인도만큼, 철학 문제에 대한 관심이 일반 민중에게까지 퍼진 경우는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찾기 어려울 것이다.” 도처에 철학 학당이 들어섰고, 철학 논쟁이 가는 곳마다 벌어졌다. 논쟁은 흡사 로마 시대 검투사들의 싸움판 같았고, 관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인도 철학의 이런 장관은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 지역에서도 나타났다. 소피스트들의 활보와 함께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라는 3대 천재의 시대가 열렸다. 특기할 것은 페리클레스가 이끌던 아테네 민주주의의 황금기가 저물고 난 뒤에 철학이 만개했다는 사실이다. 지은이는 여기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야 날아오른다”라는 헤겔의 명제를 확인한다.(고명섭기자)
08. 10. 03.
P.S. 슈퇴리히의 <세계철학사>는 예전에 저자가 '슈퇴릭히'로 표기되어 <세계철학사>(분도출판사, 초판1978)로 나온 적이 있다. 임석진 선생 번역에 상/하 두 권짜리였다. '세계철학사'나 '세계문학사'란 개념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류의 책들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기억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단, 이번에 나온 슈퇴리히의 책에는 관심이 간다. 내용보다는 철학사의 개념과 용어들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궁금해서다. '누구나 읽지만 아무도 언급해서는 안 될 책’이라고 하니까 이런 관심도 비밀로 해야할까?..


슈퇴리히의의 <세계철학사>와 함께 시중에서 같은 타이틀로 돌아다니던 책은 중원문화사에서 나온 10권짜리 <세계철학사>였다. '소비에트 과학아카데미 철학연구소 편'으로 돼 있었고 이을호 편역이었다.


그랬던 책이 올해 임석진 감수로 재출간됐다. 10권짜리 한 질의 정가가 30만원이니까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출판사 제공의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철학사전>(임석진외 20여명 지음)과 함께 출간한 책으로 2년간의 번약과 편집을 거쳐 완성된 책이다. 본래 이 <세계철학사 History of Philosophy>는 러시아연방 사회과학 연구소에서 30여년의 연구를 걸쳐 완성하여 방대한 세계철학을 일목요연하게 실천적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는 '철학사'를 이을호씨가 재편집하였으며 임석진박사께서 책임가수 하셨다. 이 책은 유럽을 기점으로 하여 인도, 중국, 한국은 물론 아메리카 철학까지 폭넓게 저술하고 있으며 철학을 공부하는 모든 이에게 많은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설마 이런 교정 상태일까?


짐작에 러시아어판에서 바로 옮긴 것은 아닐 테지만, 원 대본이라 할 소련과학아카데미판 <철학사>(1957)는 4권짜리다. 전체분량은 2720쪽이고, 현재 가격으로는 10만원 정도.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철학사>는 무엇일까 알아보니, 한 인터넷서점을 기준으로 러셀의 <서양철학사>다. 올해에 새 판이 다시 나온 걸 보면 신빙성이 없지는 않다(러시아어판을 구해오려다 참았었는데). 대학 1학년때 집문당 번역본으로 읽은 기억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