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국민장이 치러지는 기간이었고, 애도와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론 몇 편의 원고를 억지로라도 써야 했던 한주였다. 주말이라고 한숨 돌릴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감정은 추스리고 기력은 다시 곧추세워야 할 시간이다(요즘은 피로도 만성적이 돼가는 듯하다). 넋을 놓고 있기엔 다급한 일들이 너무 많고 고인의 뜻을 계승하는 일도 앉아서 되는 일은 아닐 것이기에. 주말이면 북리뷰 기사들을 정리해서 올려놓곤 했는데, 이 주에는 휴업해도 좋을 정도다(개인적으론 두어 권 정도만 관심도서로 머릿속에 입력해놓았다). 대신에 향후의 과제를 짚어보는 기사와 칼럼을 하나씩 스크랩해놓는다(한겨레21의 특집기사 가운데 '시스템의 노무현 죽이기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5023.html' 등도 참조).    

경향신문(09. 05. 30) 민주주의 완성·국민 통합 ‘노무현이 남긴 꿈’  

‘그’는 떠났고, 이제 ‘우리’가 남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는 29일 그가 떠남으로써 우리 안에서 부활했고, 그 꿈은 미완인 채로 ‘산 자’들의 어깨에 남겨졌다.‘바보 노무현’이 남긴 과제는 무엇인가.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완성’과 ‘국민 통합’으로 요약된다. 인권·민주화를 가치로 평생 권위주의와 지역의 벽에 맞서고 ‘균형 발전’을 꿈꿨던 ‘노무현 정치’의 궤적 때문이다. ‘함께 잘사는 세상’이란 어릴 적 출발점부터 대통령 퇴임 후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희구까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다. 

◇필생의 신념 ‘민주주의’
노 전 대통령이 생의 마지막까지 고민한 화두는 ‘민주주의’였다. 퇴임 후 참모·학자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위해 만든 인터넷 카페는 그 고민을 모색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여기서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다.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진보의 미래’를 모색하는 작업을 했다. 퇴임 후 그가 믿었던 인권과 탈권위주의의 ‘정치 개혁’이 허물어지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우향우’ 현상에 대한 고뇌가 배경이다.

국민에게 돌려준 검찰·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독립성은 다시 흔들리고, 참여정부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된 정경유착과 권위주의 청산도 여전히 허약하다. “우리는 역사가 돈의 편이 아니라 사람의 편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길을 가는 것”이라던 사회적 약자의 정치·경제적 ‘인권’에 대한 가치도 부정당하고 있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계승해야 할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은 세 가지”라며 “인권,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 보호다. 이는 다름아닌 민주화 시대의 가치고 여전히 미완”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법은 그가 늘 “새 시대의 맏형”이고 싶었던 것처럼 ‘대결과 대립의 민주주의’가 아닌 대화와 타협의 ‘협치의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는 내 뜻을 관철하는 방법이 아니라 내 맘대로 못하는 걸 배우는 것, 내 마음에 다 들지 않지만, 그러나 일보 진전했다는 걸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을 배워나가는 과정”(2006년 4월3일 제주특별자치도 보고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South Korean opposition lawmaker Baek Won-woo (R) is blocked by security guards

◇필생의 과업 ‘국민 통합’
대통령 재임 동안 그가 심혈을 기울인 과업은 정치개혁과 함께 국민통합이었다. “격차는 갈등을 불러오고 갈등은 분열과 대립으로 이어진다. 분열한 역사는 모두 망하거나 엄청난 불행을 초래했다”(2005년 3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는 인식이 출발점이다.

이는 네 차례나 낙선하면서도 끊임없이 부산에서 영·호남 지역주의에 도전한 것처럼 ‘지역주의 타파’와 이를 위한 ‘균형 발전’, ‘남북 평화’에 대한 희원으로 표출됐다. 또 ‘외국인정책기본법’ 제정 등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 사람에 대해 인권을 존중하고 이를 확대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진보”(2006년 5월 외국인정책회의)라는 지역·계층·성별·세대·인종을 넘어선 통합과 공존에 대한 바람이었다.

경기대 손혁재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지역대결 구도의 화두를 가장 붙잡고 싸운 분”이라며 “흡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지만 분권과 균형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과거청산 작업을 시작한 것도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보수진영의 전원책 변호사는 “우리사회에서 이념·정책을 달리하는 측에서 우선 상대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대연정’까지 이야기했지만 문민정부 이후 4기 동안 내내 상대를 존중하지 않았다. 원인은 패거리 정치”라며 우리사회의 소통 노력과 파당적 정치의 혁신을 주문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우리사회가 변화해야 하고, 사회적 변화는 이성적 과정이어야 한다”면서 “슬픔에서 벗어나 내 박탈감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고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제도권에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시민이성’과 ‘시민권력’의 성장을 당부했다.

경희대 도정일 명예교수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칙을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한 사회는 언제든 무너진다”면서 권력기관 중립화 등 제도적·법률적 개혁의 복원 필요성을 제기했다.

중앙대 강내희 교수는 “지금의 신자유주의 흐름을 종식시키고, 그 흐름에 사람들이 동참하도록 하는 게 노무현 정부가 못다 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유지를 강조했다.(김광호·송윤경기자)     

한겨레(09. 05. 30) 문명사회는 아직 멀었다

마음이 몹시 아프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기는 선물로 받은 시계를 수사가 시작될 때 버렸다는 참으로 치욕스러운 얘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자존심 강한 사람이 저 모욕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아무리 꺾어버리고 싶은 정적(政敵)이라도 그렇지 자신의 전임자에게 이런 모질고 야만적인 공격을 해댄다는 게 과연 문명한 사회에서 가능한 일인가.

결국, 우리 사회가 문명사회로부터 멀다는 얘기인 것이다. 지금 이 나라는 적어도 인간사회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절과 법도마저 무너져버린 것이 분명하다. 하여튼 이 사회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라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 리가 만무하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살고 있음이 확실하다.

노일전쟁 때의 일화다. 노일전쟁의 영웅으로 지금도 일본인들이 기리는 육군대장 노기 마레스케는 자신의 두 아들을 포함한 수많은 병사의 희생 끝에 여순 함락에 성공했을 때, 러시아군 지휘관 스테셀의 항복을 받는 자리에서 적장(敵將)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지극히 공손한 자세로 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패장이 무장해제를 당하지 않고 회담장에 들어오도록 배려했고, 러시아군의 용기와 전술의 훌륭함을 아낌없이 칭송했다. 게다가 본국으로 돌아간 스테셀 장군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자, 노기 대장은 파리 주재 일본 무관을 통해 스테셀 구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엄혹한 상황에서, 게다가 자신의 아들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상대에 대한 예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정신적 기율이야말로 인간을 드높이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리고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인문적 교양과 문화적 축적의 결과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균형감각 역시 그러한 축적 없이는 불가능한 자질이다. 지금 특히 평범한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꼈던 전직 대통령의 비상한 죽음을 깊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그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말과 글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지식인들에 의한 공식적인 추도문은 공정하고 균형 잡힌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고인에 대한 추모의 감정이 간절할지라도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라, 공적 인물에 대한 추도문이라면 충분한 예를 갖추되 그 생애와 업적에 대한 묘사는 엄정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A hearse, second from top, containing the body of former South Korean President Roh Moo-hyun

사실 공적 인간의 죽음을 기록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가리키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서구 선진사회의 언론들이 주요 인물의 부음을 전할 때 거의 반드시 짧지 않은 추도문을 게재하여 그 인물에 대한 때로는 냉정하기까지 한 평가를 기술하는 것은 공적 공간에서의 인간 행동이 갖는 의미의 무거움을 깊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노무현과 그의 이상은 여러모로 매력적이고 찬탄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지도자로서 그는 좀더 신중하고 지혜로워졌어야 할 대목이 많았다. “대통령 하기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거나 “권력이 국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본심이야 어쨌든 그는 서툴고 경솔한 일처리 방식으로, 아마도 역사상 최악의 정권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큰 정권의 탄생에 기여했고, 그 때문에 마침내 자신도 희생되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09. 05. 30. 

P.S. 기사에서 '시민이성’과 ‘시민권력’의 성장이 요청된다는 대목, 칼럼에서 '인문적 교양'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국민통합'은 선결과제들의 해결 이후에나 가능할 일이다). 하루 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더 바삐 움직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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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5-30 12:43   좋아요 0 | URL
이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남겨진 과제들을 돌아봐야 할 시간인 것 같네요... '노무현의 재평가'는 아마도 중요한 화두가 되겠지요.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노무현 전대통령도 많은 실수와 실책을 범했습니다. 문제는 그의 죽음 이전에는 이 실수와 실책에 대한 좌우를 막론한 과도한 비판이 긍정적인 부분까지 압도해 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긍정적인 부분이 훨씬 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악의 정권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은 정권의 탄생'에 그가 기여했다는 역설적인 상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우선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의 원인을 노무현 일인에게만 돌리는 특이한 담론 구조에 대판 비판적 성찰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로쟈 2009-05-30 19:13   좋아요 0 | URL
'특이한 담론 구조'를 낳은 어떤 '특이점'도 있지 않을까요?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민은 그를 지지하고 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주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죠. 그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의지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인지 개인적으론 궁금합니다...

자유새 2009-05-31 13:09   좋아요 0 | URL
개인적인 한계도 무시하기 어렵지만,내부의 적- 당시 여당과 지지세력들이 지녔던- 한계와 극복방안에 대안 성찰이 더욱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성인 혹은 절대자로 추앙하는 예수조차도 부활이라는 수단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로쟈 2009-05-31 14:37   좋아요 0 | URL
저로선 그 '지지세력'의 한계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궁금합니다(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통령에 당선됐었지요). '무능한 정권'이란 수구언론의 프레임이 결국은 먹히도록 만든...

자유새 2009-05-31 15:12   좋아요 0 | URL
"왕좌에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욱 힘들다"는 속된 말이 떠오르는군요.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동력이 비단 그의 삶의 궤적이나 개인적 매력만이 아니
었던것처럼 제가 판단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정치적,정책적 과오 역시 그의 책임
이 가장 무겁다고 생각하지만 그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여깁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당의 한계와 지지세력의 한계의 성격을 동일선상에 놓는 건
아닙니다.

우선 `여당`의 한계를 지목한 것은 열린우리당내의 다양한 세력들의 입지로
부터 기인한,그리하여 그의 발목을 잡은 분열상을 지적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지지세력의 범주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비판적
지지자들의 한계를 지칭했다기보단 소위 노빠라고 일컬어지는 맹목적인 지지자
들의 과도하게 온정적인 행태를 지적한 것입니다.

로쟈 2009-05-31 15:22   좋아요 0 | URL
아, '분석'은 자유새님에게 요청한 건 아니구요, 앞으로 그런 분석이 나오면 좋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죄송.

자유새 2009-05-31 15:19   좋아요 0 | URL
뻘쭘~ @,.*

베네치아 2009-06-02 17:38   좋아요 0 | URL
독야청청 홀로 완전한 듯 도덕적 우월감 속에서 또아리 튼 녹색평론의 김종철 씨의 글은 참으로 안타깝군요. 정치라는 거치른 들판에 서보지 못한 아니 서보려고도 하지 않는 온상의 수목이 어찌 거치른 들녁의 푸르른 소나무이고자 하는 자의 고뇌와 고통을 짐작이나 하겟습니까? 멀리 안전한 곳에 앉아서 관전평 쓰기란 뛰고 있는 선수들의 땀에 대해 결코 냉정해서는 안되는 법입니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 아닐까요?

로쟈 2009-06-02 22:26   좋아요 0 | URL
김종철 선생도 '활동가'입니다. '인간 노무현'과는 달리 '대통령 노무현'은 사실 좌우 양쪽에서 비판을 받았었지요. 일부 정책에 대해선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도 반대했습니다. 적어도 당시엔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했죠. 지난 대선 결과가 말해주듯이. 그의 '진의'가 좀더 빨리, 더 잘 소통될 수 있는 방도는 없었을까란 뒤늦은 의문을 갖게 됩니다...

멋진빤스 2009-06-02 18:06   좋아요 0 | URL
항상 감사히 읽기만 하다 노무현을 사랑하던 사람으로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여당이 다수당이 되었는데 왜 '실패'하였는가에 대해 변명 한 번 달아보려 합니다.
노무현에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김대중의 민주당이나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노무현이 추진하려던 많은 개혁정책들이 여당의 확실한 지원사격을 받았었나
챙겨보셨으면 싶습니다.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 같은 경우도 노무현 대통령은 무척이나
원하였고 지원사격을 했음에도 다수여당이 통과시키지 못하였지요.
또하나 열린우리당 자체의 태생적 한계도 있습니다.
당이 만들어지고 다수당이 되고 나서의 당원단합대회였나 거기에서
(알고보면 열린우리당 내의 소수인) 유시민 의원이 울부짖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끝내선 안된다고... 당의 정체성이나 나아갈 길에 대한 더욱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로쟈 2009-06-02 22:21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사정들이 보다 자세하게 기술되고 분석된 책을 읽고 싶습니다...
 

하루라도 어이없는 뉴스가 뜨지 않으면 MB식 대한민국이 아니다. CBS의 시사자키를 '다시듣기'하다가 알게 된 것인데, 정부가 오늘 있을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 쓰일 대나무 만장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궁여지책으로 PVC를 대신 쓰게 됐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도 못하게 했으니 '정부' 혹은 '관계자들'의 대뇌구조가 궁금할 따름이다. 한마디로 쓰XX들이다(어떤 수준을 상상하든지 간에 그 이하를 보여준다). 못 믿을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관련기사를 찾아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05. 29) 정부, 盧 노제용 ‘대나무 만장’ 금지…불교계 반발 

정부에서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불교의례에 맞춰 제작된 대나무 만장(輓章)을 금지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조계사에 따르면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때 사용될 만장 2000여장을 불교의례에 맞게 대나무로 제작될 예정이었으나, 28일 정부의 금지조치로 인해 갑작스럽게 PVC관으로 변경했다. 

조계사 관계자는 “최근 시위에서 등장한 대나무를 죽창으로 규정해 놓고 노제때 사용될 만장까지도 시위용품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반대해 결국 PVC로 대체됐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그러면서 “정부에서 장례문화를 시위문화로 보고 있다”며 “문화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기본적인 이해조차도 없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정부의 이 같은 대응은 서울 시청광장 봉쇄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덕수궁 대한문 앞 분향소 주변에 차벽 설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모사 반대까지 맞물려 각계 안팎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조계사 조문객들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더니 지금까지 유래돼왔던 대나무 만장을 PVC관으로 교체하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이는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는 수많은 시민불자들을 잠재적인 불법 폭력시위자로 보는 것”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조계종 미등스님도 “대나무 만장문화는 장례문화 중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화장 이후에는 모두 소각해 고인과 함께 보냈다”며 “그런데 대나무를 금지시키고 PVC를 태워야 하는데 이는 스스로 우리 문화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서상준기자) 

09.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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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la 2009-05-29 04:4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뉴스가 제일 어처구니없더군요. 어안이 벙벙해졌어요.
오죽하면 이젠 MB 정부의 공포증이 병 수준이니까 우리가 이해해야지 싶어요;;
PVC 만장이라니...
이게 정말 역사도 문화도 모르는 세계적으로 망신스런 일이죠...

참 책 너무 잘 묶였던데요! 온라인과 다른 맛이 좋습니다. 축하합니다.

로쟈 2009-05-30 09:00   좋아요 0 | URL
망신 정도에 신경 쓸 정부는 이미 아니죠... 책 얘긴 감사합니다. 편집자가 좋아할 듯하네요.^^

비로그인 2009-05-29 12:45   좋아요 0 | URL
pvc가 물품 특성상 그 끝을 자르면 더 날카롭고 위험한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로군요.

로쟈 2009-05-30 09:01   좋아요 0 | URL
'강압적 무지'라고 해야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5-29 15:41   좋아요 0 | URL
어처구니가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네요.

로쟈 2009-05-30 09:02   좋아요 0 | URL
사실 그런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 때문에 고인을 원망하게도 됩니다...

동동 2009-05-29 18:03   좋아요 0 | URL
어제 조계사갔다가 그 만장을 보았지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로쟈 2009-05-30 09:02   좋아요 0 | URL
--;

비로자나 2009-05-29 20:49   좋아요 0 | URL
PVC는 태우면 역한 유해물질이 발생하니...
태우지 말고 싸그리 모아서리 청와대 앞에다가 주르륵 꽂아브르지요 뭐.
"죽(竹)의 장막" 대신 "PVC의 장막"을 선물해줍시다.
왜, 아늑하고 좋을 거 아녀...

콘테이너로 성벽을 쌓고 PVC로 숲을 이루니 이 아니 아름다울손가!

로쟈 2009-05-30 09:04   좋아요 0 | URL
상식도 안 통하지만, 공통감각도 도저히 맞출 수가 없는 정권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다(경찰의 허술한 수사로 보아 '자살'도 확정된 사실은 아닌 듯하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국내외 정세가 어수선하다. 두 사건의 절묘한 '타이밍'이 이번에도 의혹을 품게 하는데, '음모론'을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남북한의 대립정국이 강경파들의 입지를 더 강화시켜줄 것임은 자명하다(오늘 뉴스를 보니 전시작전권 환수조차도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모양이다). 소위 '적대적 공존관계'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관련 인터뷰기사에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시사자키(09. 05. 27) “북한, MB 구출 작전에 나섰나?” 

▶ 진행 : 변상욱 대기자(CBS 라디오 '시사자키 변상욱입니다')
▷ 출연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손호철 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원망이 치솟는 듯했습니다만, 바로 뒤이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주춤하면서 모두가 당혹스러움과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PSI 전격 가입을 선언했으니까 잠시 뒤면 북한에서 뭔가 툭 튀어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들은 그런 얘기 많이 하죠. “참 잘도 맞아들어간다, 북한이 아예 때를 보면서 저렇게 해주는 것 아니냐, 현 정부가 정말 운도 좋다, 어떻게 적이 아니라 아군이 하나 있는 것 같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일부 학계에선 '이런 게 적대적인 의존관계'라는 해석도 나오는데요. 손호철 교수와 함께 이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현 남북 상황을 두고 '적대적 의존관계, 적대적 공범'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요. 이런 개념은 예전부터 있었던 겁니까?

▷ 손호철 교수> 그렇게 오래 되진 않았지만 십여년 전부터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적대적 상호의존’, ‘적대적 공존’, ‘적대적 공생’, 이런 단어들을 쓰는데요. 겉으로 보기엔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공생관계인 것, 즉 자신의 존재가 상대방에 의존하고 있는 관계를 흔히 얘기하는 것이고요. 과거에 우리 군사정권, 소위 우익이라고 부르는 극우정권들, 그리고 사실 세습까지 해서 그걸 좌파라고 불러야 할진 모르겠지만 북한의 좌파정권이 서로 대립하지만 사실은 북한이란 존재가 있음으로써 한국의 극우세력은 소위 반공논리로 자기를 유지할 수 있고요. 북한의 경우엔 마찬가지로 남한정부나 미국이 있음으로해서 자기네들의 논리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은 의존하는 관계, 이런 걸 흔히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이건 평소 서로 간에 교감이 은밀하게 오고 간다는 것과는 다른 거죠?

▷ 손호철 교수> 그건 다른 거죠. 음모설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상 구조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의도하지 않게 서로 도와주고 있는 관계를 지칭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예를 들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김영삼이라고 하는 야당의 두 지도자는 아주 오래된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역시 나름대로 수긍이 가는데요. 지금의 이 상황,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된 이 상황도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 손호철 교수> 북한의 핵실험 소식을 듣고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 구출작전에 나섰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데요.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건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이명박 정부는 상당히 위기에 봉착해있고, 그런 국면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함으로써 사실상 굉장히 국민의 관심이 다른 쪽으로 흘러가고 이명박 정부가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줬다는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와 북한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게 이명박 정부를 도와주는 공생의 관계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것에 대응해서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미뤄왔던 PSI에 전면 참가하겠다고 얘기했는데요. 그렇게 되면 북한의 강력한 대응에서 우리도 강공책으로 대응하는 것인데, 남한의 PSI 가입이라는 게 북한 체제에 상당히 군사적 위협이 됩니다. ! 그래서 북한 국내적으로 경제도 어려운데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북한 체제를 강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후계구도에도 도움을 주는, 그래서 사실상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서로 그 대립을 통해서 득을 보는 측면이 있는 거죠. 그런 것이 적대적 상호의존관계,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불리는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북한으로서는 이렇게 한 대 툭 치면 보나마나 저쪽에서 반발이 일어날 테니 그걸 업고 자기들의 내부결속도 다질 수 있는 거겠군요?

▷ 손호철 교수> 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이게 교감이 이뤄져서가 아니라 서로 운명적으로 그런 관계에 놓여있다는 말씀이겠죠?  

▷ 손호철 교수> 네.

▶ 진행/변상욱 대기자> 다른 나라에도 이런 예가 있나요?

▷ 손호철 교수> 그렇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게 냉전시기에 미국의 강경파, 특히 군부군수업체와 소련의 강경파 군부는 서로 공생관계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상대방이 군비를 늘리면 우리도 '야, 저거 봐라, 저기도 미사일 만들고 하는데 우리도 무기를 늘려야 한다'고 해서 국방예산을 늘리고, 그만큼 자기들의 영향력은 더 강해지는 것이고요. 그래서 사실 우리가 보면 탈냉전 이후에 힘을 잃어버린 군부가 서로 짜고서 의도적인 긴장을 만들어낸 영화들이 나오는데, 바로 그런 것들이 냉전시기에 있었던 소련과 미국이나 이런 국가들간에 강경파들의 의존적 관계를 얘기한 것이고요.  

 

또 가까이는 9.11 테러가 있었는데요. 오사마 빈 라덴과 거기에 아주 극우적인 대응을 했던 부시 대통령의 관계도 그런 대립적인 관계죠. 결국 9.11 테러라는 게 부시라고 하는 냉전적이? ?극우적인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시켜줬는데, 그것이 결국 이라크 침공으로 일어나게 되니까 이슬람 강경파들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악순환이 이뤄졌기 때문에 서로는 대립하지만 미국 내에서의 부시라고 하는 강경파의 입지, 그리고 이슬람 지역에서 오사마의 입지라는 건 서로 의존하고 있는 관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말씀을 듣고 보니 중국에서 동북아공정을 하면 일본에서 역사 왜곡을 하고, 그럼 우리도 대마도도 우리 땅 만주도 우리 땅이라고 나올 수도 있는 거군요.

▷ 손호철 교수> 그렇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그런데 시민사회 입장에서 보면, 나름대로 세력을 가지고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그룹들이 이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 마치 가운데서 왔다갔다 농락당하는 기분도 들고요. 그럼 시민사회는 이걸 어떻게 파악하고 대처해야 할까요?

▷ 손호철 교수> 동북아를 얘기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그런 대립을 반대하는 의식 있는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 이런 사람들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그런 상호의존의 악순환을 깨는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그런 적대적 상호의존에 반대되는 비적대적인 연대 같은 게 적대적인 상호의존을 깰 수 있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09. 05. 27. 

P.S. '자살'도 확정된 사실은 아니라고 적었는데, 적어도 현재까지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다음의 아고라에서는 타살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데, 추측이긴 하나 경찰이 제시하고 있는 시나리오가 워낙에 허술하고 설득력이 떨어지기에 오히려 더 눈길을 끈다). 여기서는 정식으로 보도된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국경제(09, 05. 28) VIP 혼자 두고… 119 연락 않고…업고 뛰고…풀리지 않는 의혹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이병춘 경호과장(45)에게 심부름을 시킨 뒤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운우 경남경찰청장의 발표에도 불구,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한 몇 가지 의문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정확한 사망시점은 언제인지,상식을 벗어난 응급처치와 경호수칙을 무시한 경호관의 행동,5분 거리의 119센터에 신고하지 않은 배경 등이 핵심 의혹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호수칙 왜 안 지켰나
경찰 조사 결과 노 전 대통령은 사고 당일 경호관과 떨어져 혼자 있는 동안 투신했다. 이는 '경호 대상을 시야에서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경호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전직 청와대 경호실 관계자는 "특수한 경우까지 세세하게 명문화돼 있지는 않지만 대통령이 뭔가를 지시하면 자신은 대통령의 곁을 지키고 무전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요인 경호의 상식"이라고 설명했다. 경호관 한 명이 노 전 대통령을 수행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김창호 경기대학교 경호학과 교수는 "보통 경호는 군대 경계근무처럼 복수의 인원을 통해 상호감시한다"며 "상식적으로도 전직 대통령이 산행을 하는데 경호관이 한 명밖에 수행하지 않은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응급처치 ABC도 몰랐나
이날 경호를 맡았던 이 과장은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사고현장에서 업고 공터로 내려와 인공호흡을 실시한 걸로 밝혀졌다. 하지만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추락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술 등 구급조치 요령을 알고 있는 대통령 경호관의 대응으로 보기에는 '어이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왕순주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사건현장에서 이 과장이 기본적인 생사 확인 절차를 거쳤는지 알 수 없다"며 "통상 추락환자를 발견했을 때 똑바로 눕혀 숨을 쉴 수 있도록 기도를 확보한 뒤 머리를 잡고 인공호흡을 하는 게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리하게 업고 옮기면 부러진 뼈가 내장을 찌르는 등 심각한 부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인공호흡 조치 이후에는 119센터에 연락해 기다리는 게 최선책"이라고 덧붙였다. 추락환자에 대한 구급조치 요령을 모를 리 없는 대통령 경호관이 119센터에 신고하지 않고,낙상한 노 전 대통령을 들쳐 업고 옮겼다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왜 119센터에 신고하지 않았나
김해 봉하마을 사저에서 불과 4.19㎞ 정도 떨어진 곳에 진영 119센터가 있다. 응급차로 5~6분 거리다. 지난번 사저 뒷산에 산불이 났을 때도 진영119에서 출동했었다. 환자가 심장이나 호흡에 심각한 장애가 있다면 사고 발생 후 5분 이내에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받아야 한다. '5분이 목숨을 살린다'는 소방격언도 있다.

하지만 23일 사고 당일 진영 119센터에는 노 전 대통령 추락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 진영 119센터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온 적도 없고 모든 이송 과정을 청와대 경호팀에서 한 걸로 알고 있다"며 "온몸에 골절상을 입은 위급환자를 119응급차가 아닌 승용차로 옮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의아해했다.

◆정확한 사망 시점은
서거한 지 4일이 지났지만 노 전 대통령의 정확한 사망 시점은 여전히 의문이다. 세 차례 경찰조사 발표 어디에도 사건당일 사고현장에서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정확한 신체 상태에 대한 진술은 찾아볼 수 없다. 발견 당시 숨을 쉬고 있었는지,맥박은 뛰고 있었는지 등 사망 시점을 가늠해볼 만한 진술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 다만 시신을 수습한 부산대병원이 발표한 '23일 오전 9시 30분'이 노 전 대통령의 공식 사망 시간으로 기록돼 있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을 응급치료한 병원 두 곳도 당시 상황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당일 오전 7시에 경호차로 실려온 노 전 대통령을 가장 먼저 살펴본 김해 세영병원 측은 "도착 당시 의식불명 상태"라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공식 사망을 발표한 부산대병원 의료진도 "호흡이 없고 심장이 뛰지 않아 사망상태라고 판단했고 심폐소생술은 응급조치 절차상 이뤄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현재로선 사고발생 후 119응급차량이 노 전 대통령을 후송하지 않아 현장에서 즉사했는지,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망했는지 전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봉하마을=이재철/김일규/서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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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5-27 23:44   좋아요 0 | URL
셋이 빼닮았군요. 판박이에요.

로쟈 2009-05-28 07:40   좋아요 0 | URL
닮아가는가 봅니다...

푸른바다 2009-05-28 00:14   좋아요 0 | URL
자살이 확정된 사실이 아닌 건 아니겠지요... 아마 경호책임의 문제 때문에 허위진술이 있었을 것입니다...

로쟈 2009-05-28 07:40   좋아요 0 | URL
상식적으론 그런데, 사건의 진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의문점이 많습니다. 알려진 내용도 너무 적고...

푸른바다 2009-05-28 09:48   좋아요 0 | URL
의문점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여기서 온갖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여지가 있겠지요. 여기서 기사는 경호원 'FM'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FM이란 말의 출처인 군대를 비롯해서 우리 사회 곳곳에는 'FM'이 지켜지지 않는 게 상식입니다. 제 경험으론 FM을 많이 말하는 한국 사람이 특히 FM을 지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투신'은 아마 그 경호원 입장에서 볼 때 단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충격적인' 사태였을 것입니다. 그 경호원도 그 상황에서 아마 누구도 느껴보지 못한 당혹과 충격 그리고 고독을 느꼈을 것입니다. 물론 훌륭한 경호원이었다면 FM에 따른 행동을 했겠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네요.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태에 대한 불안감, 이를 모면하려는 심리 등등이 비FM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아무튼 이 문제는 본질적인 사항은 아닌 것 같습니다...

merci 2009-05-28 09:35   좋아요 0 | URL
의문점이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각도 있군요. http://basil83.egloos.com/4960116 유의미한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푸른바다 2009-05-28 09:44   좋아요 0 | URL
인용하신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제 생각과 비슷하네요...
 

다들 비슷한 처지겠지만, 어제부터 책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할일은 태산이건만 자꾸 뉴스나 클릭하고 TV화면에 눈길을 준다. 사적인 인연은 없으니 비통하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조문 사진들을 보다 보면 저절로 눈물도 난다. 뭔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어렵다. 5공 청문회부터 현재까지 그가 살아온 역정이 대부분 '공적 기억'에 입력돼 있으니, 즉 '우리의 기억'이니 이런 상실감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3김 시대'와는 또 다른 것이다). 작고한 평론가 김현이 팔봉 김기진을 두고 '뜨거운 상징'이라 부른 바 있는데, 아마도 노무현 또한 한국 정치사의 '뜨거운 상징'으로 우리에게 남을 듯싶다. 그걸 해석하고 거기에 적절한 의미부여를 하기까지, 그 의미를 실천할 때까지 우리는 망연할 듯싶다. 정처 없을 듯싶다...   

마음을 붙잡기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지난주에 출간된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도서출판 숲, 2009)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천병희 선생의 노고로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전집이 완역되었다(예전에 나온 단국대출판부판의 개정증보판이겠다). 다음 세대의 번역이 나오려면 한 30년은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널리 읽혀서 얼른 보급판까지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어둔다.      

한겨레(09. 05. 23) 비극의 한가운데 스스로 두 발로 선 인간 

‘그리스 정신의 가장 위대한 구현’으로 불리는 3대 비극작가의 작품이 완역됐다. 그리스·로마 고전 번역에 매진하고 있는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말 <아이스퀼로스 전집>(전 7편)과 <소포클레스 전집>(전 7편)을 펴낸 데 이어 이번에 <에우리피데스 전집>(전 19편)까지 완역·출간함으로써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작품 전체가 국내 최초로 원전 번역을 통해 한국어본을 얻었다. 그리스 정신의 깊숙한 곳을 우리말로 읽어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세 비극시인은 그들의 고국 아테네의 전성기가 낳은 아들들이자 기원전 5세기를 그리스 문화의 황금기로 만든 주역들이다. 후대의 그리스인들은 세 사람을 모두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과 연결해 기억했다고 한다. 살라미스 해전은 페르시아 대군의 침략에 맞서 아테네가 승리함으로써 그리스 패자가 되는 기점이다. 아이스퀼로스(기원전 525~456)는 45살 때 이 해전에 전사로 참가해 싸웠다. 10대 소년이었던 소포클레스(기원전 497~406)는 해전 승리를 찬양하는 축제에서 합창단 선창자로서 신을 찬미하는 노래를 불렀다. 또 그리스인들은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5~406·사진)가 이해에 출생했다고 믿었다. 실제로는 그보다 4~5년 앞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쨌거나 이 일화에는 세 비극시인을 살라미스 해전과 함께 기억하려는 그리스인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 요컨대, 세 비극작가는 아테네의 영광과 거의 동일시되는 인물들인 것이다.

세 사람은 그리스 비극 전성기의 초기·중기·후기를 각각 대표한다. 가장 앞선 아이스퀼로스는 합창 중심의 조잡한 무대에 대화를 도입함으로써 비극을 정립한 사람이다. 아이스퀼로스와 더불어 비극이 비극으로서 탄생했다. 소포클레스는 극중 대화 장면을 늘리고 규모를 키움으로써 비극을 완성시켰다. 이어 에우리피데스는 인물들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구현함으로써 비극의 성격을 전환했다. 에우리피데스 이후로도 그리스 비극은 만들어졌지만 한번도 앞 시대의 영화를 재현하지는 못했다. 3대 비극작가와 함께 그리스 비극은 태어나고 완성되고 변모한 뒤 사멸하고 만 것이다. 그것은 그대로 아테네 문화의 흥성과 쇠퇴를 반영한다.  


»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5~406) 

세 비극작가의 작품은 거의 모두 영웅 신화를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주제로 들어가면 세 사람의 작품 세계는 뚜렷하게 나뉜다. 아이스퀼로스 비극의 주인공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이다. 신들은 인간들의 운명에 직접 개입한다. 인간은 ‘죄와 벌’의 사슬에 묶여 극한의 고통에 몸부림친다. 아이스퀼로스의 최고 성과로 꼽히는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이 죄와 벌의 긴 사슬을 장대하게 보여준다.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 출전하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자, 왕비 클뤼타임네스트라는 돌아온 왕을 죽여 딸의 원수를 갚는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게 복수한다. 오레스테스의 복수는 모친 살해라는 또다른 죄를 낳을 수밖에 없는데, 갈등하는 오레스테스에게 복수를 명령하는 이가 아폴론이다. 신이 주재하는 질서 안에서 한없이 고통받던 인간이 그 고통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는 것이 아이스퀼로스가 비극을 통해 보여주려 한 세계인식이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인간이다. 주인공이 신에서 인간으로 바뀐 것이다. 소포클레스에게 신들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며, 그들이 인간에게 부과하는 운명은 당혹스러운 수수께끼다. 그 운명 안에서 인간은 결연한 의지로써 난국을 돌파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은 운명의 수렁에 빠져든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자기 나라에 역병이 돌게 된 원인이 선왕의 억울한 죽음에 있다는 말을 듣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선왕 살해자를 찾아내 응징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결국 그 자신이 범인으로 밝혀지는데, 스스로 현명하다고 믿었던 오이디푸스는 ‘보고도 보지 못한’ 자신의 눈을 찌르는 자기 응징을 감행한다. 소포클레스와 더불어 ‘비극적 아이러니’는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며 운명에 갇힌 인간의 한계를 겸허히 인식하게 한다.

에우리피데스에 이르러 인간은 신과 무관한 인간 자신이 된다. 인간들은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되 모든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존재다. 이때 비극을 끌어가는 힘으로 등장하는 것이 인간 내면의 심리작용이다. 증오와 사랑, 고통과 환희라는 내면의 격정이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에우리피데스 비극의 인물들은 격정 속에서 복수의 칼을 휘두른 뒤 후회와 두려움에 휩싸인다. 에우리피데스가 비극을 쓰던 때는 아테네 정치가 위태로운 국면에 접어든 때였다. 그의 작품에는 쇠락해가는 시대의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으며, 안으로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밖으로 제국주의적 행패가 심해진 아테네에 대한 깊은 걱정이 담겨 있다. 옮긴이는 이런 시대비판적 태도 때문에 에우리피데스가 앞 시대 작가들만큼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의 우려는 펠로폰네소스전쟁 패배 후 아테네 몰락으로 현실이 된다.(고명섭기자)   

서울신문(09. 05. 23) 천병희 교수 희랍 원전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번역 출간

“아무도 안 하기에 그냥 재미로 시작했다.”는 번역일이 벌써 30여년. “뛰어난 후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희랍어 문학 번역에서 천병희(70) 단국대 명예교수는 여전히 독보적 존재다. 이번에는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숲 펴냄)을 두 권으로 옮겨냈다. 이로써 지난해 나온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전집과 함께 고대그리스 3대 비극시인의 작품을 모두 정리해 낸 것. 3대 시인 작품을 희랍어 원전 번역본으로 가진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뜻깊을 것 같은데 그는 그저 “전집을 내면 좋겠다 싶었는데 내고 나니 그냥 좋네.”라고만 말한다. 그가 처음 3대 비극시인의 작품에 손을 댄 건 1970년대 초다. “그때는 나도 힘이 들고 출판 사정도 그렇고 3대 시인들 대표작만 모아서 냈어. 더 냈으면 냈으면 하면서 한편 두편 늘리다 결국 이번에 그리스 비극 33편을 모두 끝낸 거지.”

처음 희랍어 원전 ‘아가멤논’, ‘오이디푸스왕’을 묶은 뒤 이번에 완역까지 35년가량 걸린 셈이다. 물론 그 사이 ‘일리아드’, ‘오디세이’ 등 문학작품은 물론 헤로도토스 ‘역사’, 플라톤 ‘국가’ 같은 역사·철학서들도 그의 손을 거쳤다. 하지만 그는 “35년 세월동안 다른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늘 거기 가 있었다.”고 한다.

희랍어와 인연을 맺은 지 50년이 지났지만, 그 시작은 우연에 가까웠다. “라틴어 수업 들으려다가 시간표가 안 맞아서 그냥 희랍어를 들었지. 처음에는 별로 재미가 없었는데 장익봉 교수의 플라톤 ‘향연’ 강독을 들으면서 푹 빠졌지.” 강독이라지만 너댓명 정도 학생이 돌아가며 읽고 번역하는 수업, 학생이 하나둘 빠지더니 언젠가는 혼자 강의를 들은 날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술자리 이야기처럼 편안한 ‘향연’을 읽는 게 너무 좋아 계속 희랍어를 공부했다. 그러다 “아무도 하지 않고 있더라.”는 이유로 번역까지 손댄 것이다.

그는 “희랍 문학 등 서양 고전을 모르면 문화 전반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힘주어 말한다. 요즘에는 좋아하는 ‘향연’같은 술자리도 가지지 않고 “본래 작가의 뜻을 최대한 냉정히 전달하겠다.”며 하루 7시간씩 번역에 매진한다는 천 교수. 지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번역 하고 있다. “그거 끝나면 쫌 쉬어야지. 철학서적 번역이야 잘하는 후배들 많은데 뭐. 다음에는 쉬엄쉬엄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이나 정리하려고.” ‘쉬엄쉬엄’이란 그의 말이 가벼이 들리지 않는다.(강병철기자) 

09. 05. 24. 

 

P.S. 주요 그리스 비극 작품이 완역되었다는 것은 이제 그리스 비극에 관한 입문서나 연구서를 마음놓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천병희 선생의 <그리스 비극의 이해>(문예출판사, 2002), 김상봉 교수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한길사, 2003), 그리고 임철규 교수의 <그리스 비극>(한길사, 2007)이 국내서로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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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5-25 08:54   좋아요 0 | URL

한겨레에서 에우리피데스 완간 기사를 읽었습니다.
지난주 신문에서는 큰 기사던 작은 기사던 로쟈님 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알라딘에서는 종합 1위군요...^^

로쟈 2009-05-25 09:19   좋아요 0 | URL
네, '홈그라운드'라고 많이 응원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릴케 현상 2009-05-25 10:36   좋아요 0 | URL
지금은 사회과학 주간베스트 2위네요^^ 홈그라운드 응원이 좀 더 필요해!!요

로쟈 2009-05-25 23:36   좋아요 0 | URL
1위가 <예수전>이예요. 불경한 일은 삼가하렵니다.^^;

가넷 2009-05-25 20:08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전면적으로 광고 해주는 건가요? 접속하자마자 크게 뜨네요.ㅋㅋㅋ;;

로쟈 2009-05-25 23:37   좋아요 0 | URL
아직도 뜨나요?^^

드팀전 2009-05-25 21:16   좋아요 0 | URL
오늘 낮에 서점에 나갈 일이있어서 간 김에 샀습니다. ^^ 편집이 갈끔하데요...앞쪽 진열대에서 어떤 뇌성마비 총각이 로쟈님의 책을 힘겹게 넘기며 훑어보는 것을 봤습니다. 이제 잘 나가줘야 할텐데요...

로쟈 2009-05-25 23:38   좋아요 0 | URL
제가 봤다면 감동할 뻔했습니다.^^ 책이 좀 무겁죠?^^;

[해이] 2009-05-25 21:37   좋아요 0 | URL
악... 책을 읽고싶어 미치겠습니다. 빨리 다음달이 되어야 카드를 긁을수가 있기에ㅋㅋ

사회과학서적1위 재탈환을 위한 대장정을 시작해야지요 ㅋ

로쟈 2009-05-25 23:38   좋아요 0 | URL
그게, 글의 제목을 서재에서 검색하시면 한 80%는 읽으실 수 있는데요.^^

베토벤 2009-05-27 00:58   좋아요 0 | URL
저작권때문이겠지만 로자님이 직접 링크하셨던 사진들이 없어서인지 살짝 밋밋한 느낌이. ^^; 물론 모니터가 아니라 책의 질감을 느끼면서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로쟈 2009-05-27 01:19   좋아요 0 | URL
네. 이미지는 제약이 많더군요. 김기덕 영화의 포스터를 넣지 못해서 개인적으론 아쉽습니다...

sophia49 2009-05-29 05:17   좋아요 0 | URL
천병희교수님의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구입했습니다.
우리아이...책 표지목록이 하나 더...늘어갑니다.
어제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민음사>를 가지고 놀고있더군요...

로쟈 2009-05-30 10:09   좋아요 0 | URL
^^
 

국민적 애도 분위기 속에서도 책은 읽어야 하고 밀린 원고도 써야 하는 게 현실이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마크 마조워의 <암흑의 대륙>(후마니타스, 2009)이다. '20세기 유렵 현대사'가 부제이긴 하나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파시즘이라는 세 개의 경쟁적인 이데올로기의 투쟁에 초첨을 맞추고 있는 '독특한' 역사서다(현대 유럽사가 원래 이런 방식으로 씌어지는 게 아니라면). 그러한 이데올로기 투쟁이 아직도 한반도의 경험적 현실인 점을 고려하면 여러 모로 반면교사가 될 만한 책이겠다(저자는 그 20세기 유럽사를 통해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하며 유럽이 본래 얼마나 전체주의적인가를 보여준다). 관련리뷰를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9. 05. 23) 20세기 유럽사, 중세보다 더 암흑적인…

악다구니 드잡이를 가리켜 "구라파 전쟁"이라 하는 관용적 표현은 옳다. 유럽의 자중지란적 양상은 절대왕정, 제국주의를 거쳐 현대로 올수록 더하다.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정치ㆍ경제적으로 통합돼 현재 27개의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는 유럽연합(EU)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대략 1세기 동안 유럽은 '암흑기'였다. 그 양상은 중세의 암흑보다 더 궤멸적이었다.  



이 책은 20세기 유럽을 두고 "거대한 묘지 위에 세워진 실험실"이라 축약한다. 민주주의, 진보, 자유 등의 가치 위에 20세기 유럽사가 기반한다는 어설픈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뭐라 둘러대도, 그 결과가 고작 나치의 인종주의적 파시즘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었다는 사실은 살아남은 자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저자는 지난 세기 각축을 벌였던 전체주의(파시즘), 자유주의, 사회주의(공산주의) 가운데 가장 유럽적이었던 것이 전체주의라고 단언한다. 현대 사회의 모든 가치들을 세계대전이라는 현장에서 과격하게 실험했던 유럽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 당시를 재현한다.

20세기 유럽사는 야만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하루에 6,000여명씩, 모두 800만여명의 남자가 숨졌다는 악몽을 떨쳐내기 위한 각종 노력에서 이미 감지됐던 바이다. 1차대전의 악몽에 시달리던 좌우 진영은 우생학, 즉 보다 나은 인간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열망에 매달렸다.  

나치당은 권력을 잡게 되자 정신질환자는 물론 혼혈아와 청소년 범죄자에게까지 불임 수술을 강제로 실시했다. 나치에서 볼셰비키까지, 국가는 "우생학적 입장에서 인적 자원의 양뿐만 아니라 질에도 관심을"(142쪽) 기울여야 한다는 구실로 집시 박해 등 인종 청소의 징후를 드러냈다. 아우슈비츠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시도했던 자본주의 실험은 우리 시대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무솔리니가 경제적 자유주의를 사문화시키고 시도했던 '파시즘적 자유주의, 서유럽 진영이 시도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등은 자본주의적 질서로 통합된 21세기가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할 대목이다. 두 차례 대전의 사이, 유럽은 공적 권력과 사적 권력 간의 균형점을 모색했고 민족경제에 눈떠 경제 호황의 길을 열었다.

유럽이 유럽인 것은 미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등 일상의 부문에서 미국의 영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반미주의, 다민족사회의 가능성 등은 유럽을 왜 다시 읽어야 하는지 환기시켜 주고 있다. 미국의 20세기가 물질문명의 탐욕과 증식을 보여준다면 유럽의 20세기는 그 후속편이다. 저자는 "1989년 격변의 진정한 승자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였다"(533쪽)며 "과거의 정치적 이정표가 사라지고 선두에서도 밀려난 유럽은 이제 다양성과 차이의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가야 할 것(540쪽)"이라 전망했다.

복잡다단한 사실들의 틈바구니에는 현대를 통찰할 촌철살인적 명제가 숨어 있다. 1930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가 했다는 "민주주의가 없는 민주주의는 대내외적으로 위험하다"(46쪽), 1941년 히틀러의 "유럽은 지리적 실체가 아니라 인종적 실체"(222쪽), 1953년 이탈리아의 한 경영인이 했다는 "여성이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이 개와 말이고, 남자는 제일 마지막이다"(410쪽)는 등의 말은 21세기를 내다본 것은 아니었을까. 



영국 출신으로 미국 콜럼비아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 마크 마조워(사진)는 이 책으로 '에릭 홉스봄, 닐 퍼거슨과 함께 현대 유럽사 3대 연구자'라는 저간의 평가를 새삼 확인시켰다.(장병욱기자) 

09. 05. 24.   

P.S. 발칸 지역 연구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는 저자 마조워의 책으론 <발칸의 역사>(을유문화사, 2006)가 먼저 소개돼 있다. 히틀러 시대에 관한 두 권의 책, <히틀러의 제국>과 <히틀러의 그리스>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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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09-06-02 13:28   좋아요 0 | URL
로쟈라니,어쩐지 러시아냄새가 난다 했는데...결국...내 짐작이 완전 틀린 것은 아니었어. 처음엔 박노자인가 했던 것을...아무튼, 한마디 덧붙이면 가지않은 길 출판사는 로쟈씨가 아는 사람이 야심차게 동업(?)했던 출판사였다는 사실을 로쟈는 모르겠지....돈도 벌고 세상도 빛나게 하고...하지만 둘은 양립불가능하다는 사실과 꿈이 모호하면 오래 갈 수 없다는 진실을 일깨워준 경험이었던....그 옛날, 그야말로 12년 전이 생각나는군.

로쟈 2009-06-02 13:32   좋아요 0 | URL
"가지않은 길 출판사는 로쟈씨가 아는 사람이 야심차게 동업(?)했던 출판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