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에 나온 가장 두꺼운 책은 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1>(들녘, 2009)이다. '불에서 프로이트까지'가 부제. 대체 얼마만큼의 책을 읽어야 이런 규모로 쓸 수 있는지 경탄하게 만드는 책이다. 전체로는 부담스럽지만 36개의 장 각각은 만만한 분량이다. 염소들이 풀어 뜯어먹듯이 조금씩 뜯어 읽으면 되겠다. 원저만 보고서는 대체 왜 '생각의 역사1'이란 제목이 붙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2권'은 나중에 나온다고 한다. 같은 저자의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문화일보(09. 07. 31) 철학사·과학사·예술사·정치사… 인류 둘러싼 ‘모든 것의 발자취’ 

두껍다. 1240쪽으로 200자 원고지 7000여장 분량이다. 그림이나 사진도 하나 없다. 그야말로 글자로만 씌어진 영상시대를 거스르는 책이다. 하지만 한번 들면 책을 손에서 놓기 어려운 도저한 매력이 있다. 부제 ‘불에서 프로이트까지’에서 보듯 시공을 초월해 이어붙인 철학과 과학, 문학, 예술, 그리고 정치, 사회, 경제의 다양한 사실들의 거미줄 위로 읽는 이의 상상력이 마구 달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책이지만 성격을 간단히 정리하기 어렵다. 기존 역사책의 줄기가 되는 ‘왕과 황제, 왕조, 장군들이 빠진, 군사원정, 제국 건설, 정복과 평화조약이 누락된 역사’로 인간 생각의 기원에서 부터 실체, 과정과 결과 등 인간의 삶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글자의 3분의1쯤 크기로 된 133쪽짜리 각주는 인간의 생각을 글로 표현한 ‘거의 모든 책’들을 포함해 인류 문화예술과 지성의 목록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의 매력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의 반전을 통해 기존의 관념을 확장시키는 데 있다. 만유인력을 발견, 현대 물리학의 기초를 확립한 뉴턴이 사실 미신으로 치부되는 연금술에 집중한 주술사였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철학자의 돌’을 찾으려는 연금술사의 호기심과 방법론이 만유인력의 발견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같은 시각교정을 바탕으로 기존의 역사, 지식들을 명쾌한 직관으로 꿰뚫어 일목요연하게 정리, 새로운 인식의 창을 활짝 열어 풍요로운 상상의 공간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인간을 폴리스의 일부로 본 아리스토텔레스와 인간이 살기 위해 폴리스에 적응한 것으로 보는 에피쿠로스에서 개인주의의 탄생을 추출해 내는 식이다. 방대하게 펼쳐진 이 책의 핵심은 영혼, 유럽, 실험에 집중된다.

왓슨은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의 진화 경로를 따라 생각의 중심, 영혼을 추적한다. 그는 인간의 영혼과 세계의 본질을 궁구했던 그리스 자연철학에서 이상적인 불변의 세계의 존재를 발견했고, 이것이 이원론과 종교로 넘어가게 된다고 봤다. 중세의 영혼의 관념은 내세를 발명, 중세를 그리스도교의 시대로 만들었다. 근대에 들어 영혼은 심리학의 ‘자아’로 연결됐고, 20세기에는 정신분석학의 ‘무의식’을 낳았다는 것이다.

왓슨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생각의 배양기인 고대 그리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세계가 태어났고 이것이 중세의 암흑기를 지나 과학혁명으로 엄청난 질주, 서구 중심의 오늘의 세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유럽중심주의로 지나친 자부가 없지 않아 보이지만 이슬람, 중국, 심지어 한반도의 구석기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까지 설명할 정도로 다양한 정보제공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왓슨은 또 다양한 논거를 통해 낭만주의가 관념의 대규모 혁명이었음을 밝혀내는 등 모두 36개 장에 걸쳐 ‘인간 역사의 거의 모든 것’을 신문기자 출신답게 명쾌한 근거로 설득력있게 풀어낸다. 10월 출간예정인 ‘생각의 역사2-20세기 지성사’도 벌써부터 기대된다.(김승현기자) 

09.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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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8-01 09:36   좋아요 0 | URL
생각의 역사, 책의 제목을 읽고, 상상해봅니다. 어떤 내용일까, 처음 미팅장소에 나갈때의 설램처럼,,,

로쟈 2009-08-02 12:23   좋아요 0 | URL
너무 무거워서 미팅장소에 들고 가는 건 불가능한 책이구요.^^

stella.K 2009-08-01 10:34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으실거군요. 염소가 풀을 뜯어 먹듯이 조금씩...!
저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을 것 같네요.ㅜ

로쟈 2009-08-02 12:23   좋아요 0 | URL
'사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