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

한겨레의 오피니언 란인 훅(hook)에 가끔 들러보는데, 인터넷 액티비즘에 관한 눈에 띄는 칼럼이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http://hook.hani.co.kr/blog/archives/9879). 필자는 이진순 교수다. 다른 기사를 보니 "1985년 김민석(민주당 최고위원)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총여학생회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현재 미 올드도미니언대에서 시민저널리즘과 뉴미디어, 국제커뮤니케이션 등을 가르치고 있다." 칼럼은 '위키피디아의 모든 것'을 압축해주고 있다.  

한겨레 훅(10. 08. 03) 위키시대의 지식인 

그 곳에 가면, 노무현과 이명박이 있고 김대중도 전두환도 있다. 원더걸스와 에픽하이, 슈퍼주니어도 있다. 김치와 보신탕은 물론, 찜질방(Jjimjilbang)과 막걸리(Makgeolli), 팥빙수(Patbingsu)도 있다. 여기서 “그 곳”이라 함은, 세계 최대의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폭발력 있는 사이트가 아니지만, 위키피디아는 방문객 숫자 면에서 전 세계 5대 사이트 중의 하나로 꼽힐 만큼 영향력 있는 매체이다. 방대한 분야 1,600만 여개에 달하는 주제어에 대해 주석을 달아 놓은 무료 온라인 백과사전으로,  매달 3억3천만 명이 찾는 인기 있는 사이트이다.  전 세계 272개 언어로 편찬이 되는데, 이 중 영어로 된  컨텐츠가 330여만 개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독일어와 불어가 각 100만여 개, 폴란드어와 이탈리아어, 일본어,  스페인어가 각기 60-70만여 개로 그 뒤를 잇는다.  한국어로 된 항목은 14만여 개로 전체 언어 가운데 21위를 차지한다.  유투브나 페이스북,  마이 스페이스등과 같은 대부분의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소유인데 비해, 위키피디아는 비영리법인인 위키미디아재단에 의해 운영되며 배타적 지적재산권이 아닌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협약에 의해 누구나 그  내용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누피디아는 왜 망했을까
위키피디아의 성공적 신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2000년 초, 미국의 웹 광고회사 대표인 지미 웨일스(Jimmy Wales)와 당시 오하이오 주립 대학의 철학과 박사과정 학생이던 래리 생거(Larry Sanger)는,  온라인 상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지식사전을 만들자는 취지로 누피디아(Nupedia)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수천 명의 전문가 메일링 리스트를 확보해서 그들 중 누군가가 내용을 작성하면 다른 전문가들에게 그  내용을 검토하고 감수 편집하게 하는, 일종의 피어리뷰 (peer-review) 시스템이었다.  취지는 참신하고 거창했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2000년 3월부터 2003년 9월까지 누피디아에 게재된 주제어는 고작 24개, 74개의 주제어는 여전히 검토 중인 채로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지미 웨일스는 훗날, 누피디아가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자신들이 전통적인 학계의 방식을 따르려 한 것이 실책이었다고 고백했다.

 “우리 스스로 전통적인 학술적 방식, 즉 위로부터의 편찬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출된 글들을 검토 비판하고 피드백을 준다는 면에서 기존 학계의 논문심사위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 자원 봉사하는 저자들에게는 아무 재미도 없는 작업이었겠지요. 그것은 대학원에서 논문을 다루는 방식과 다르지 않았고 결국 그들의 참여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누피디아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래리 생거는, 누구나 글을 작성해 올리고 아무나 감수 편집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 위키 소프트웨어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전문가 저자들에 국한되었던 내용 작성과 편집의 권한을 일반 대중에게 대폭 위임한 것이다. 2001년 1월, 사상 유례가 없는 오픈소스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그렇게 탄생했다. 위키피디아의 광범한 이용에도 불구하고 위키피디아의 신뢰성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여전히 인색하다. “아무나 아무 때 아무 내용이나 게재하고 편집할 수  있다면 도대체 그 내용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생들이 학생들 리포트에 위키피디아를 인용하지 말도록 권한다. 저자의 책임성을 물을 수 없고 그 내용이 수시로 변하는데다가 전문가의 감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지식생산의 패러다임은 변화했는데, 그 지식의 신뢰성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보수적이다. 정말 그런가. 위키피디아에 실린 글들은 믿을만한 소스가 되지 못하는가.

위키피디아의 비밀 
2004년 버팔로대학의 알렉스 할라바이스 (Alex Halavais)교수는 위키피디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하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기획했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오류가 담긴 13개 항목의 내용을 삽입하고 그 오류가 바로잡히는지 관찰한 것이다. 13개 중 몇 개나, 얼마 만에 제대로 수정이 되었을까. 그의 연구는, 13개 오류 모두가 불과 두 세 시간 안에 모두 바로잡혔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7년, 미국 콜로라도의 지역신문인 덴버포스트도 위키피디아 정보의 질을 조사했다.  문화와 인물, 자연과학과 인문지리가 두루 포괄되도록, “이슬람”과 “빌 클린턴” “지구온난화”와 “중국” “진화”등 다섯 가지 키워드를 선정하고,  해당 분야 다섯 명의 대학 교수들을 위촉해서 위키피디아에 실린 정보의 정확성과 수준을 면밀하게 검토하도록 했다. 그 결과, 다섯 명 중  네 명이 위키피디아에 대해서 “정확하고 정보적 가치가 있으며 포괄적이고 (accurate, informative, and comprehensive) 학생들과 독자들에게 훌륭한 자료가 된다.”고 평가했다. 나머지 한  명은, 생략된 부분이 있어서 세부사항을 전달하기에 부정확하다면서 “썩 좋은 것은 아니다 (not very good)”라고 했으나 이  역시 위키피디아의 근원적 오류를 지적했다기보다는, 그 불완전성에 주목한 평가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1968년 환경학자인 개릿 하딘 (Garrett Hardin)이 말한 “공유지의 비극 (tragedy of the commons)”은, 인간들이 저마다 이기적으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공공의 자산은 약탈당하고 황폐해 진다고 경고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너무나 손쉽게 누구나 작정만 하면, 원고지 수백 매 분량의 기사를 삭제해 버릴 수도 있고 “갑돌이는 멍텅구리다” 하는 악의적 내용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위키피디아에서는, 하딘이 말한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공유지가 확장되고 발전하며 진화하는 모습이 발견된다.  왜일까?  누구나 손쉽게 내용을 수정 편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보가 왜곡되고 훼손될 위험성도 높지만 다른 한편 그 위험으로부터 정보를 보전하고 신속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는 뜻이다. 밤 새워 쓴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저작권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위키의 사람들은 열성적으로 글을 올리고 고치고 업데이트한다. 위키피디아의 성공은, 인터넷의 공공재산을 악의적으로 망치려는 사람보다 고쳐서 발전시키려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너무 낙관적인 소리로 들리는가? 믿기 어렵지만, 그게 아니라면 위키피디아가 쑥대밭이 되지 않고 오늘날 이렇게 건재한 것을 달리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식생산의 새로운 패러다임
위키피디아가 망가지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장치가 몇 가지 있다. 모든 아티클은 아무나, 심지어 로그인을 하지 않고도 손을 댈 수  있지만 그 흔적은 모두 “히스토리” 섹션에 남는다. 아티클마다 붙어있는 히스토리 탭을 누르면,  맨 처음 작성된 두어 줄짜리 엉성한 내용부터 가장 최근에 업데이트된 내용까지, 몇 월 몇 일 몇 시에 누가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첨삭했는지 시간대별로 한 눈에 볼 수 있다. 누군가가 순간의 객기로 모든 내용을 삭제하거나 훼손한다 해도, 이전 내용을 복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이전 단계 글을 찾아서 덮어쓰기 하면 끝이다. 망치는 사람보다는 바로 잡는 사람이 많고, 망치는 속도보다는 바로 잡는 속도가 빠르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방대한 분량의 세계 최대 지식 데이터베이스를 이룬다. 그것이 집단지성의 힘이다.

혹자는 위키피디아가 편파적이며 비객관적이라고 말한다.  역사나 인물에 대한 기술에서 그런 비판은 두드러진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세상 어느 백과사전이 “엄정하게” 객관적이며 ”칼로 자른 듯이” 중립적일 수 있을까. 학계에서도 권위를 인정받는 브리태니커는 그럴 수 있는가. 기실 지식이란, 특히나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지식이란, 일정한 시각과 입장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브리태니커의 내용에 불만을 품고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하면, 편집진에게 편지를 보내고 정정을 요구하고  편집진과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현저하게 잘못된 내용일지라도 정정이 이루어지기까지 긴 과정 동안, 모르는 이들은 그 잘못된,  혹은 오래된 정보를 그냥 읽고 인용할 수도 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이런 수고가 줄어든다.  직접 고치면 된다. 때로 상이한 의견을 가진 이가 내가 쓴 글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지만,  갑론을박이 거듭될 만한 사안인 경우 ” 디스커션” 탭을 눌러서 장외 논전을 벌일 수 있도록 위키피디아는 설계되어 있다.

내가 가르치는 공공저널리즘 수업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직접 자신들이 조사하고 취재한 내용을 위키피디아에 올리라는 과제를 준다. 그들이 올린 글이 뒷 사람에 의해서 삭제되거나 수정되어도 점수에는 상관없다고 여러 번 강조해도, 막상 자기 글이 다른 사람에 의해 고쳐지게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당황하고 불쾌해 한다. 몇몇은 나를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고, 또 몇몇은 자기 글을 수정한 이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서 논쟁을 벌이고 그들이 작성한 아티클을 찾아내서 똑같이 검열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복”을 한다. 자기 글이 삭제되지 않고 다른 이들에 의해 더 추가되고 발전된 경우, 그 학생들이 가지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재차 삼차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찾아 고치고 새로운 정보를 추가한다. 게재된 자기 글에 대해 일종의 주인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학생들로 하여금 더 많은 자료조사와 공부를 하도록 만든다고 나는 믿는다. 학기 말에 위키피디아 과제물에 대한 소감을 쓰게 하면, 자기 글이 삭제당해 핏대 올리던 학생이나 자기 글이 줄줄이 새끼를 쳤다고 기세 등등하던 학생이나,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대목이 있다. “위키피디아에 글을 올리는 과정이 이렇게 간단한 줄 몰랐다”, “내가 쓴 글이 정보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 순간, 그들은 완제품으로 포장된 지식의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되새김질을 통해 지식을 생산하는 자가 된다. 적어도 노폭시내의 “하이랜드 파크“ 지역이나 ”오션뷰 초등학교“에 관한 한, 그들은 할 얘기가 아주 많다.

지식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  지식은 한 사회의 규범과 도덕과 가치관을 가름한다. 일부 지식생산전문가가 이제 그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되었다 해서 애달파할  일은 아니다. 지금, 위키피디아의 아무 사이트나 들어가 보라. 찾고자 작정하면, 오류와 불완전함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면, “아 역시 아마추어 대중이 하는 짓이란…”하고 혀를 끌끌 차는 것으로 자칭 “전문가”의 자존심을 채울 것인가. 당신이 돌아서서 “내가 뒤져 봤는데, 위키피디아 그거 엉터리더라구…” 핏대 올리는 동안, 누군가는 그 아티클을 바로잡고 새 내용을 추가할 것이다. 참여 없이 평가만 하는 이들의 지적 권위란 그렇게 사정없이 뭉개지기 마련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될 것인가
벌떼처럼(swarm-like) 들끓고 천방지축인 이 시대의 시민들에게 “지성”이란 타이틀을 내주기 아쉬워 버티기는, 오늘날 한국의 좌우 양 극단이 마찬가지다. 그들은 공히 “대중은 변덕스럽고 예측불가능하며 신뢰할 수 없다”고 비평한다. 차이가 있다면, 한 쪽은 “누가 배후인가” 뒤쫓는 유령놀음에 빠져 있는 데 반해 다른 한 쪽은 “배후를 거부하는” 개념 없는 대중을 개탄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산정 높이 올라가 고고하고 외로운 성채를 짓고 멀리 산 아래를 관망하며 품평하고 한탄하고 혀를 찬다. 그들 중 상당수는, 80년대 삶과 노동의 현장에서 인생을 배우겠다며 공장이나 농촌으로 향했던 이들이다. 이제 역사는, 산 아래 저 떠들썩한 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산채에 머물며 조악한 구닥다리 망원경으로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는 이들은 여전히 끼리끼리 모여 토론하고 논쟁한다. 이제는 하산해서 현장으로 갈 때다. 고민해서 만든 텍스트가 있으면 온라인에 전면 공개해서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토론하고 비판받는 것이 어떨까. 우선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이라도 좀 친절하게 써 주면 좋겠다. 내가 조국, 김두식, 한홍구 교수와 같은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의 시각에 전면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글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읽기 편하고 명료하기 때문이다. 킬리만자로 산정에서나 통하는 지식인의 은어를 버리고,  현장의 언어로 이야기하자. 광장의 언어를 쓰지 않으면서 누구와 어떻게 소통을 한단 말인가

10.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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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0-08-09 11:36 
    위키시대의 지식인 — “그들은 공히 “대중은 변덕스럽고 예측불가능하며 신뢰할 수 없다”고 비평한다. 한 쪽은 “누가 배후인가” 뒤쫓는 유령놀음에 빠져 있는 데 반해 다른 한 쪽은 “배후를 거부하는” 개념 없는 대중을 개탄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via 로쟈)
 
 
얼그레이효과 2010-08-05 14:03   좋아요 0 | URL
학생들에게 위키피디아에 내용을 올리는 숙제를 내주고 그것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살피는 대목이 흥미롭네요.(너무 나간 맥락일 수 있으나)한국의 커뮤니케이션학 가르치는 분들 현실 보면..아직 "예전 방식"에 안주해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로쟈 2010-08-05 15:16   좋아요 0 | URL
고고한 표범들이 많이 계시죠...

쟈니 2010-08-05 14:17   좋아요 0 | URL
축적된 기록과, 기록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로쟈 2010-08-05 15:18   좋아요 0 | URL
국내에서도 주목받은 건 4년 정도밖에 안됐는데, 10년후가 궁금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8-05 22:54   좋아요 0 | URL
킬리만자로 산을 직접 올라가 본 사람들이 그러는데 거기는 표범이 안 산다고 하던데요...

로쟈 2010-08-05 23:00   좋아요 0 | URL
거긴 벌써 다 죽었나 보네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문과 쟁점'을 집약한 책이 출간됐다. <천안함을 묻는다>(창비, 2010). 여전히 조사가 진행중(?)인 이 사건이 어떻게 귀결될지 궁금한데, 짐작엔 머지 않은 장래에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기 전에!)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한다. 책은 손 가까이에 둔다고 해놓고 못 찾고 있는데, 일단은 리뷰기사만 옮겨놓는다.  

경향신문(10. 08. 04) 천안함에 ?를 던질 수밖에 없는 이유  

<천안함을 묻는다, 의문과 쟁점>(창비)은 지난 3월26일 천안함 침몰 이후 시민사회와 과학계·언론계·군사전문가들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제기한 합리적·상식적인 의심과 의문, 과학적 반론을 집대성한 책이다.

책은 1~4부에서 사건의 발생부터 사태 전개과정, 정치·외교·안보 문제까지 두루 짚고 있다. 주목할 만한 곳은 2부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5월20일 조사결과 발표는 ‘중간’조사 결과였다. 하지만 정부와 합조단은 5월15일 백령도 앞바다에서 발견한 어뢰 후미부 추진체 등을 20일 ‘결정적 증거물’로 제시하며 사실상 조사를 마무리했다.

이에 이념·정파와 상관없는 과학자들은 정부 발표에 잇달아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 측은 묵묵부답하다 겨우 해명의 장에 나오고, 또 기존 발표 결과를 번복하기도 했다. 과학자인 서재정 존스홉킨스대 물리학과 교수와 이승헌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는 ‘결정적 의문, 결정적 증거’란 글을 실었다. 이들은 ‘외부폭발’-‘1번 어뢰’-‘1번 어뢰=북한 어뢰’로 완결된 합조단 논리 중 한 가지라도 입증되지 않으면 논리적 연결고리가 끊어져 북한이 천안함을 파괴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송태호 KAIST 교수는 2일 국방부에서 “어뢰 추진부에서 20도 이상의 온도 상승은 일어나지 않았다. ‘1번’ 글씨 부분은 0.1도의 온도 상승도 없어 글씨 등이 열 손상을 입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1번 어뢰’는 고열로 타버렸을 것”이란 주장과 비교해도 좋을 듯하다. 이 교수는 책에서 “알루미늄 파우더가 프로펠러에 접촉하는 순간 액체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알루미늄 용융점은 660도이므로 폭발 때 프로펠러 인근에 그 이상의 고온이 가해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송 교수의 “0.1도의 온도 상승이 없었다”는 주장은 탄두에서 디스크(1번이라 쓰인 부분)보다 멀리 떨어진 프로펠러에 폭약 성분인 알루미늄이 왜 흡착됐는지 설명 못하는 셈이다.

5부 ‘천안함 사건의 출구와 해법’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최문순 민주당 의원, 강태호 한겨레신문 기자가 천안함 사건의 정치·사회적 의미와 정부의 외교 문제를 논의한 좌담이다. 1977년부터 통일 업무를 해온 정 전 장관이 구체적·현실적 진단과 해법을 제시했다. 정 전 장관은 행위 주체가 빠진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을 거론하며 “결론은 ‘대화로 풀라’는 것인데,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그렇게 요란을 떤 것인가”라며 “천안함 사건 이후 외교는 자해 행위가 됐다. 이 문제를 불러온 것은 이 대통령의 외교안보 인식 결여, 철학 부재”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남북관계는 최악이었는데도 95년 6월 북한에 쌀 15만t을 지원했다”며 인도적 지원도 강조했다. 그는 “소망교회, 순복음교회에서 대북지원을 해야 한다고 나섰다”며 “대통령은 ‘그분들이 하는 일을 말릴 수는 없지 않은가’ 식으로 화해협력으로 나갈 토대를 만들고, 6자회담이 열렸을 때 나가는 좋다”고 했다. 또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경제공동체 형성 토대가 허물어졌다”며 “‘북한 경제의 중국화’ 현상을 방치하는 것은 민족사적으로 큰 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종목 기자) 

10.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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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원고 때문에 체스터턴(체스터튼)의 <오소독시>(이끌리오, 2003)를 들춰보다가(이 책은 현재 절판된 듯싶은데 대단한 파괴력을 지닌 책이다. 개정본이 다시 나오면 좋겠다. 번역은 좀 부정확한 대목도 있다) 이 독특한 작가이자 언론인, 평론가, 기독교 변증가 G. K. 체스터턴(1874-1936)의 책을 좀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다작의 작가이고 너무 많은 책들을 남겨놓은 게 문제이긴 하지만, 다행히 국내에 번역된 건 그렇게 많지 않다. 추리소설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대부분이다. 체스터턴은 조지 버나드 쇼, 허버트 조지 웰스, 버트란드 러셀 등과 동시대인으로 100권이 넘는 책을 써낸 걸로 돼 있다. '역설의 대가'로도 불린다.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목요일이었던 남자- 악몽
G. K. 체스터튼 지음, 김성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3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0년 08월 03일에 저장
품절

The Man Who Was Thursday: A Nightmare (Paperback)
G. K. Chesterton / Penguin Group USA / 2008년 6월
18,500원 → 15,170원(18%할인) / 마일리지 76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2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08월 03일에 저장

오소독시-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G. K. 체스터튼 지음, 윤미연 옮김 / 이끌리오 / 2003년 1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0년 08월 03일에 저장
품절
Orthodoxy (Paperback)
Chesterton, G. K. / Moody Pub / 2009년 6월
18,480원 → 15,150원(18%할인) / 마일리지 76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3월 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08월 0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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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8-04 15:54   좋아요 0 | URL
관심을 갖는 작가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번역이 별로 없네요.
출판사에 문의해 보니 기독교 관련서인데 은 내년 상반기에 번역 출간 된다네요. <목요일이었던 남자>부터 찬찬히 읽어보렵니다.
리스트 정보 고맙습니다^^

로쟈 2010-08-04 16:31   좋아요 0 | URL
제목이 빠졌네요. <이단>이 출간되나요? <정통>과 짝인...

파고세운닥나무 2010-08-17 14:57   좋아요 0 | URL
어떻게 제목만 사라졌는지 모르겠네요^^;
"The Everlasting Man"입니다. <이단>이란 책도 있는가 보군요?

로쟈 2010-08-04 21:48   좋아요 0 | URL
네, 합본된 원서도 있습니다.

2010-08-05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5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침경 2010-08-06 00:40   좋아요 0 | URL
저도 오래 두고 관심 갖는 작가인데 로쟈님의 페이퍼로 한번 더 생각하네요.
처음엔 가장 유명한 '브라운 신부'시리즈로 접하고, 필립 얀시의 <내 영혼의 스승들>에서 체스터튼에게 바친 한 챕터를 읽고 <정통>을 알고 번역본을 읽었습니다. 그의 대표 저서 중 성 프란체스코 전기문을 꼭 읽고 싶은데 번역이 안되고 있군요.

로쟈 2010-08-06 01:12   좋아요 0 | URL
뭐 워낙에 많이 쓴 작가라서요.^^;
 

내주부터 매주 두 차례(화, 목)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http://blog.aladin.co.kr/zizek)이 연재된다. 자음과모음의 웹진 형태로 알고 있는데, 연재 공간이 벌써 만들어져 있기에 깜짝 놀랐다. 한창 첫 연재분 구상을 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대략적인 소개가 이미 나갔지만 조금 보충하자면 이런 취지다.  

'첫 십년의 교훈'?! 지젝의 최근작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의 서론 제목이다. 돌이켜 보면, '9.11' 특별한 날짜로 시작된 2000년대의 첫 십년은 그 직전 1990년대의 10년만큼이나 다사다난했으며 세계정세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우리의 일상과 생각에도 자극과 충격을 주었다. 과연 세계는 어떻게 달라졌으며, 우리는 이 첫 십년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을까? 슬라보예 지젝은 아마도 이 문제가 가장 골몰해온 철학자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그가 동시대의 철학자로서 개념적으로 파악한 지난 첫 십년을 <실재의 사막으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국역본은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 <이라크>,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라는 세 권의 책을 되읽어나감으로써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런 기획을 잡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의 책이 더 많이, 더 잘 읽히면 좋겠다는 바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작업과 열정에 대한 경의의 표시다. 내게 이 일을 수행할 역량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책임은 있다고 믿는다. 책임이란 '응답'이니까. 또한 '첫 십년의 교훈'을 잘 되새긴다면, 우리가 '다음 십년'은 혹 더 잘 생각하며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을 해야만 갈 수 있다."라고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은 되뇌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젝을 읽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하여 우리는 '여배우' 대신에 '지젝'을 만날 참이다. 바야흐로 개봉박두! 많은 기대와 지도편달을 부탁드린다... 

10.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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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3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3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포지 2010-08-03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주 두 번씩 지젝에 대해서 페이퍼를 써야 한다는 말인가요? ... 아 저로선 생각만해도 멀미가 나는 스케쥴이네요...

로쟈 2010-08-03 11:28   좋아요 0 | URL
그나마 몇가지 아이템 가운데 가장 편하다고 생각한 게 '지젝 읽기'였어요.^^;

마태우스 2010-08-0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전문가이신 로쟈님의 면모를 볼 수 있겠군요. 그거 다 읽으면 저도 지젝 좀안다고 딴데가서 우겨도 되는 거겠지요?

로쟈 2010-08-03 17:02   좋아요 0 | URL
전문가라는 건 어폐가 있지만, 가장 반기는 독자 중 한 사람인 건 맞을 것 같고, 그에 대한 '책임'입니다.^^;

2010-08-03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3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4 0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4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바다 2010-08-04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되는 연재로군요. 로쟈님의 '지젝 이해'에 대해 전모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인 이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는 번역본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연재에서 문제있는 부분들의 교정도 볼 수 있는지요?

로쟈 2010-08-04 11:45   좋아요 0 | URL
네 불가불 그렇게 진행할 예정입니다. 버리기엔 아까운 책이어서요...

2010-08-05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5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전에 <디자인>이란 잡지를 택배로 받았다. 8월호 '오피니언' 란에 쓴 칼럼 덕분이다. 디자인에 대해 몇마디 해달라는 청탁을 꽤 오래 전에 받았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지난달에야 급조한 글이다. 그런 곤욕스러움도 글에는 배여 있다. 그래도 지면에 번듯하게 실은 글이니 여기에도 옮겨놓는다. 

디자인(2010년 8월호) 형태와 불륨에 바치는 예찬

디자인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의상, 공업 제품, 건축 따위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조형 작품의 설계나 도안”으로 돼 있다. 내 기억에 그런 디자인을 해본 건 중학교 2학년 기술 시간에 양철 쓰레받기를 만든 게 전부가 아닌가 싶다. 물론 창조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교과서에 나온 설계도면을 양철판에 그대로 옮겨오는 일이었지만, 그것도 잘 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으로 나뉘었다. 손재주가 없는 편에 속하지만 이때만은 교과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다. 물론 그런 인연으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이후에 디자이너를 꿈꾼 적도 없고 디자인에 대해 깊이 숙고해본 적도 없으니 대략 나는 디자인과 무관한 부류다.   

그럼에도 뭔가 디자인에 대해 할 말을 찾다 보니, 떠오르는 건 ‘형태’뿐이다. 디자인을 구성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형태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입체적인 차원에서 어떤 부피를 뜻하는 ‘볼륨’이라고 해도 좋겠다. 이 형태나 볼륨에 시간이란 차원을 추가하면 ‘진화 형태론’이 된다. 진화 형태론의 관심사는 어떤 형태적 자질이 진화적 압력을 견뎌낼 수 있는 안정적인 전략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사실 디자인 또한 그렇지 않은가. 제품 디자인의 경우, 구매자의 호응이라는 시장의 압력에 대응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 유력한 자질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니까. 다만 진화적 압력이 시장의 압력과 다른 점이라면 시간의 스케일일 것이다. 지질학자들이 얘기하는 이른바 ‘깊은 시간(deep time)’이 우주적 진화의 시간이다.   

이성적으로 우리는 10억을 의미할 때 10뒤에 0이 몇 개나 붙는지는 잘 안다. 하지만 10억 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건 단지 비유를 통해서만 가능할 따름이다. 가령 이 깊은 지질학적 시간을 1마일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역사는 마지막 몇 인치를 차지한다. 또 우주 달력을 예로 든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제야의 종이 울리기 불과 몇 분 전에 나타났을 뿐이다. 한 지질학자는 지구의 역사를 왕의 코에서부터 쭉 뻗은 손끝까지를 거리로 쟀던 옛 영국식 야드 자로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왕의 가운뎃손가락의 손톱을 손톱줄로 한 번 갈면 인간의 역사는 지워져 버리고 말 것이다. 이러한 깊은 시간 앞에 놓일 때 인간은 가련한 존재일 따름이다. 그것은 광활한 우주 공간 속에 내던져지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이것을 ‘우주적 공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갈대’에게 방책이 없는 건 아니다. 우리에겐 ‘깊은 시간’에 대응하는 ‘깊은 개별성’이 특권처럼 주어졌기 때문이다. 로버트 폴락의 <생명의 기호>에서 한 대목을 인용해본다. “다른 모든 종들이 태어나서 얼마 동안 살다가 자손을 낳고 그리고 언젠가 죽는다면, 우리 종의 운명도 그러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큰 뇌는 사람에게, 의식과 기억과 불멸성에 대한 꿈을 가져다주었고 또한 우리 종이 자연선택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이며 종의 생존은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기 힘들게 만드는 깊은 개별성을 주었다.”  

이 ‘깊은 개별성’이란 특권은 모든 망각을 주도하는 매우 막강한 것이다. 이것을 나는 달리 ‘유한성의 방어기제’라고 부르고 싶다. 그것은 모든 ‘무한성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한다. 흔한 말로 ‘자기 앞가림’이고, ‘생활’이다. 그런 앞가림에서 벗어날 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두려운 진실이다. 우주적 공간에 상응하는 무한한 시간과의 조우. 형태에 대한 진화적 압력이란 시간의 압력이다. 곧 시간은 형태의 적이다. 시간은 형태를 마모시키고, 어렵게 가꾸고 다듬은 볼륨을 무너뜨린다. 디자인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건 두려운 일이고 견디기 힘든 일이지 싶다. 그래서? 예의 우리는 자신의 발등만을 주시하며 자신의 일생에만 목을 맨다. 이걸 겸손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의 압력에서 살아남은 형태들은 내게 그런 겸손을 떠올려준다. 하지만 그것은 영웅적 겸손이기도 하다. 비록 한시적일지라도 무한성의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한 역량을 뽐내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한편으론 우리를 경탄케 하는 형태와 볼륨에 대한 어떠한 예찬도 과도하지 않다고 해야겠다

10. 0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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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솝 2010-08-0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디자인이라는 말을 어원으로 풀기를 즐겨합니다.
디자인의 말 뜻을 어원으로 나누면 'Design = De + Sign'이 되고 이 두 단어의 뜻을 풀어보자면 기존의 형식(Sign)을 해체(De)하는 행위가 디자인(Design)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기성세대가 '상식'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모든 것을 두들겨 부셔서, 다시 해석하는 행위. 그것이 디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로쟈 2010-08-02 22:16   좋아요 0 | URL
네, 오래전 강의때 저도 애용한 기억이 나네요. 기호학 강의였거든요.^^

미지 2010-08-03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급조하셨다고는 해도, 큰 글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10-08-03 23:10   좋아요 0 | URL
그게 급하게 '편집'한 원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