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

한겨레의 오피니언 란인 훅(hook)에 가끔 들러보는데, 인터넷 액티비즘에 관한 눈에 띄는 칼럼이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http://hook.hani.co.kr/blog/archives/9879). 필자는 이진순 교수다. 다른 기사를 보니 "1985년 김민석(민주당 최고위원)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총여학생회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현재 미 올드도미니언대에서 시민저널리즘과 뉴미디어, 국제커뮤니케이션 등을 가르치고 있다." 칼럼은 '위키피디아의 모든 것'을 압축해주고 있다.  

한겨레 훅(10. 08. 03) 위키시대의 지식인 

그 곳에 가면, 노무현과 이명박이 있고 김대중도 전두환도 있다. 원더걸스와 에픽하이, 슈퍼주니어도 있다. 김치와 보신탕은 물론, 찜질방(Jjimjilbang)과 막걸리(Makgeolli), 팥빙수(Patbingsu)도 있다. 여기서 “그 곳”이라 함은, 세계 최대의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폭발력 있는 사이트가 아니지만, 위키피디아는 방문객 숫자 면에서 전 세계 5대 사이트 중의 하나로 꼽힐 만큼 영향력 있는 매체이다. 방대한 분야 1,600만 여개에 달하는 주제어에 대해 주석을 달아 놓은 무료 온라인 백과사전으로,  매달 3억3천만 명이 찾는 인기 있는 사이트이다.  전 세계 272개 언어로 편찬이 되는데, 이 중 영어로 된  컨텐츠가 330여만 개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독일어와 불어가 각 100만여 개, 폴란드어와 이탈리아어, 일본어,  스페인어가 각기 60-70만여 개로 그 뒤를 잇는다.  한국어로 된 항목은 14만여 개로 전체 언어 가운데 21위를 차지한다.  유투브나 페이스북,  마이 스페이스등과 같은 대부분의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소유인데 비해, 위키피디아는 비영리법인인 위키미디아재단에 의해 운영되며 배타적 지적재산권이 아닌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협약에 의해 누구나 그  내용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누피디아는 왜 망했을까
위키피디아의 성공적 신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2000년 초, 미국의 웹 광고회사 대표인 지미 웨일스(Jimmy Wales)와 당시 오하이오 주립 대학의 철학과 박사과정 학생이던 래리 생거(Larry Sanger)는,  온라인 상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지식사전을 만들자는 취지로 누피디아(Nupedia)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수천 명의 전문가 메일링 리스트를 확보해서 그들 중 누군가가 내용을 작성하면 다른 전문가들에게 그  내용을 검토하고 감수 편집하게 하는, 일종의 피어리뷰 (peer-review) 시스템이었다.  취지는 참신하고 거창했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2000년 3월부터 2003년 9월까지 누피디아에 게재된 주제어는 고작 24개, 74개의 주제어는 여전히 검토 중인 채로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지미 웨일스는 훗날, 누피디아가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자신들이 전통적인 학계의 방식을 따르려 한 것이 실책이었다고 고백했다.

 “우리 스스로 전통적인 학술적 방식, 즉 위로부터의 편찬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출된 글들을 검토 비판하고 피드백을 준다는 면에서 기존 학계의 논문심사위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 자원 봉사하는 저자들에게는 아무 재미도 없는 작업이었겠지요. 그것은 대학원에서 논문을 다루는 방식과 다르지 않았고 결국 그들의 참여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누피디아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래리 생거는, 누구나 글을 작성해 올리고 아무나 감수 편집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 위키 소프트웨어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전문가 저자들에 국한되었던 내용 작성과 편집의 권한을 일반 대중에게 대폭 위임한 것이다. 2001년 1월, 사상 유례가 없는 오픈소스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그렇게 탄생했다. 위키피디아의 광범한 이용에도 불구하고 위키피디아의 신뢰성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여전히 인색하다. “아무나 아무 때 아무 내용이나 게재하고 편집할 수  있다면 도대체 그 내용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생들이 학생들 리포트에 위키피디아를 인용하지 말도록 권한다. 저자의 책임성을 물을 수 없고 그 내용이 수시로 변하는데다가 전문가의 감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지식생산의 패러다임은 변화했는데, 그 지식의 신뢰성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보수적이다. 정말 그런가. 위키피디아에 실린 글들은 믿을만한 소스가 되지 못하는가.

위키피디아의 비밀 
2004년 버팔로대학의 알렉스 할라바이스 (Alex Halavais)교수는 위키피디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하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기획했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오류가 담긴 13개 항목의 내용을 삽입하고 그 오류가 바로잡히는지 관찰한 것이다. 13개 중 몇 개나, 얼마 만에 제대로 수정이 되었을까. 그의 연구는, 13개 오류 모두가 불과 두 세 시간 안에 모두 바로잡혔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7년, 미국 콜로라도의 지역신문인 덴버포스트도 위키피디아 정보의 질을 조사했다.  문화와 인물, 자연과학과 인문지리가 두루 포괄되도록, “이슬람”과 “빌 클린턴” “지구온난화”와 “중국” “진화”등 다섯 가지 키워드를 선정하고,  해당 분야 다섯 명의 대학 교수들을 위촉해서 위키피디아에 실린 정보의 정확성과 수준을 면밀하게 검토하도록 했다. 그 결과, 다섯 명 중  네 명이 위키피디아에 대해서 “정확하고 정보적 가치가 있으며 포괄적이고 (accurate, informative, and comprehensive) 학생들과 독자들에게 훌륭한 자료가 된다.”고 평가했다. 나머지 한  명은, 생략된 부분이 있어서 세부사항을 전달하기에 부정확하다면서 “썩 좋은 것은 아니다 (not very good)”라고 했으나 이  역시 위키피디아의 근원적 오류를 지적했다기보다는, 그 불완전성에 주목한 평가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1968년 환경학자인 개릿 하딘 (Garrett Hardin)이 말한 “공유지의 비극 (tragedy of the commons)”은, 인간들이 저마다 이기적으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공공의 자산은 약탈당하고 황폐해 진다고 경고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너무나 손쉽게 누구나 작정만 하면, 원고지 수백 매 분량의 기사를 삭제해 버릴 수도 있고 “갑돌이는 멍텅구리다” 하는 악의적 내용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위키피디아에서는, 하딘이 말한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공유지가 확장되고 발전하며 진화하는 모습이 발견된다.  왜일까?  누구나 손쉽게 내용을 수정 편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보가 왜곡되고 훼손될 위험성도 높지만 다른 한편 그 위험으로부터 정보를 보전하고 신속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는 뜻이다. 밤 새워 쓴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저작권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위키의 사람들은 열성적으로 글을 올리고 고치고 업데이트한다. 위키피디아의 성공은, 인터넷의 공공재산을 악의적으로 망치려는 사람보다 고쳐서 발전시키려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너무 낙관적인 소리로 들리는가? 믿기 어렵지만, 그게 아니라면 위키피디아가 쑥대밭이 되지 않고 오늘날 이렇게 건재한 것을 달리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식생산의 새로운 패러다임
위키피디아가 망가지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장치가 몇 가지 있다. 모든 아티클은 아무나, 심지어 로그인을 하지 않고도 손을 댈 수  있지만 그 흔적은 모두 “히스토리” 섹션에 남는다. 아티클마다 붙어있는 히스토리 탭을 누르면,  맨 처음 작성된 두어 줄짜리 엉성한 내용부터 가장 최근에 업데이트된 내용까지, 몇 월 몇 일 몇 시에 누가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첨삭했는지 시간대별로 한 눈에 볼 수 있다. 누군가가 순간의 객기로 모든 내용을 삭제하거나 훼손한다 해도, 이전 내용을 복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이전 단계 글을 찾아서 덮어쓰기 하면 끝이다. 망치는 사람보다는 바로 잡는 사람이 많고, 망치는 속도보다는 바로 잡는 속도가 빠르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방대한 분량의 세계 최대 지식 데이터베이스를 이룬다. 그것이 집단지성의 힘이다.

혹자는 위키피디아가 편파적이며 비객관적이라고 말한다.  역사나 인물에 대한 기술에서 그런 비판은 두드러진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세상 어느 백과사전이 “엄정하게” 객관적이며 ”칼로 자른 듯이” 중립적일 수 있을까. 학계에서도 권위를 인정받는 브리태니커는 그럴 수 있는가. 기실 지식이란, 특히나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지식이란, 일정한 시각과 입장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브리태니커의 내용에 불만을 품고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하면, 편집진에게 편지를 보내고 정정을 요구하고  편집진과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현저하게 잘못된 내용일지라도 정정이 이루어지기까지 긴 과정 동안, 모르는 이들은 그 잘못된,  혹은 오래된 정보를 그냥 읽고 인용할 수도 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이런 수고가 줄어든다.  직접 고치면 된다. 때로 상이한 의견을 가진 이가 내가 쓴 글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지만,  갑론을박이 거듭될 만한 사안인 경우 ” 디스커션” 탭을 눌러서 장외 논전을 벌일 수 있도록 위키피디아는 설계되어 있다.

내가 가르치는 공공저널리즘 수업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직접 자신들이 조사하고 취재한 내용을 위키피디아에 올리라는 과제를 준다. 그들이 올린 글이 뒷 사람에 의해서 삭제되거나 수정되어도 점수에는 상관없다고 여러 번 강조해도, 막상 자기 글이 다른 사람에 의해 고쳐지게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당황하고 불쾌해 한다. 몇몇은 나를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고, 또 몇몇은 자기 글을 수정한 이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서 논쟁을 벌이고 그들이 작성한 아티클을 찾아내서 똑같이 검열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복”을 한다. 자기 글이 삭제되지 않고 다른 이들에 의해 더 추가되고 발전된 경우, 그 학생들이 가지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재차 삼차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찾아 고치고 새로운 정보를 추가한다. 게재된 자기 글에 대해 일종의 주인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학생들로 하여금 더 많은 자료조사와 공부를 하도록 만든다고 나는 믿는다. 학기 말에 위키피디아 과제물에 대한 소감을 쓰게 하면, 자기 글이 삭제당해 핏대 올리던 학생이나 자기 글이 줄줄이 새끼를 쳤다고 기세 등등하던 학생이나,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대목이 있다. “위키피디아에 글을 올리는 과정이 이렇게 간단한 줄 몰랐다”, “내가 쓴 글이 정보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 순간, 그들은 완제품으로 포장된 지식의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되새김질을 통해 지식을 생산하는 자가 된다. 적어도 노폭시내의 “하이랜드 파크“ 지역이나 ”오션뷰 초등학교“에 관한 한, 그들은 할 얘기가 아주 많다.

지식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  지식은 한 사회의 규범과 도덕과 가치관을 가름한다. 일부 지식생산전문가가 이제 그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되었다 해서 애달파할  일은 아니다. 지금, 위키피디아의 아무 사이트나 들어가 보라. 찾고자 작정하면, 오류와 불완전함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면, “아 역시 아마추어 대중이 하는 짓이란…”하고 혀를 끌끌 차는 것으로 자칭 “전문가”의 자존심을 채울 것인가. 당신이 돌아서서 “내가 뒤져 봤는데, 위키피디아 그거 엉터리더라구…” 핏대 올리는 동안, 누군가는 그 아티클을 바로잡고 새 내용을 추가할 것이다. 참여 없이 평가만 하는 이들의 지적 권위란 그렇게 사정없이 뭉개지기 마련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될 것인가
벌떼처럼(swarm-like) 들끓고 천방지축인 이 시대의 시민들에게 “지성”이란 타이틀을 내주기 아쉬워 버티기는, 오늘날 한국의 좌우 양 극단이 마찬가지다. 그들은 공히 “대중은 변덕스럽고 예측불가능하며 신뢰할 수 없다”고 비평한다. 차이가 있다면, 한 쪽은 “누가 배후인가” 뒤쫓는 유령놀음에 빠져 있는 데 반해 다른 한 쪽은 “배후를 거부하는” 개념 없는 대중을 개탄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산정 높이 올라가 고고하고 외로운 성채를 짓고 멀리 산 아래를 관망하며 품평하고 한탄하고 혀를 찬다. 그들 중 상당수는, 80년대 삶과 노동의 현장에서 인생을 배우겠다며 공장이나 농촌으로 향했던 이들이다. 이제 역사는, 산 아래 저 떠들썩한 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산채에 머물며 조악한 구닥다리 망원경으로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는 이들은 여전히 끼리끼리 모여 토론하고 논쟁한다. 이제는 하산해서 현장으로 갈 때다. 고민해서 만든 텍스트가 있으면 온라인에 전면 공개해서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토론하고 비판받는 것이 어떨까. 우선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이라도 좀 친절하게 써 주면 좋겠다. 내가 조국, 김두식, 한홍구 교수와 같은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의 시각에 전면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글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읽기 편하고 명료하기 때문이다. 킬리만자로 산정에서나 통하는 지식인의 은어를 버리고,  현장의 언어로 이야기하자. 광장의 언어를 쓰지 않으면서 누구와 어떻게 소통을 한단 말인가

10.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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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0-08-09 11:36 
    위키시대의 지식인 — “그들은 공히 “대중은 변덕스럽고 예측불가능하며 신뢰할 수 없다”고 비평한다. 한 쪽은 “누가 배후인가” 뒤쫓는 유령놀음에 빠져 있는 데 반해 다른 한 쪽은 “배후를 거부하는” 개념 없는 대중을 개탄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via 로쟈)
 
 
얼그레이효과 2010-08-05 14:03   좋아요 0 | URL
학생들에게 위키피디아에 내용을 올리는 숙제를 내주고 그것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살피는 대목이 흥미롭네요.(너무 나간 맥락일 수 있으나)한국의 커뮤니케이션학 가르치는 분들 현실 보면..아직 "예전 방식"에 안주해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로쟈 2010-08-05 15:16   좋아요 0 | URL
고고한 표범들이 많이 계시죠...

쟈니 2010-08-05 14:17   좋아요 0 | URL
축적된 기록과, 기록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로쟈 2010-08-05 15:18   좋아요 0 | URL
국내에서도 주목받은 건 4년 정도밖에 안됐는데, 10년후가 궁금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8-05 22:54   좋아요 0 | URL
킬리만자로 산을 직접 올라가 본 사람들이 그러는데 거기는 표범이 안 산다고 하던데요...

로쟈 2010-08-05 23:00   좋아요 0 | URL
거긴 벌써 다 죽었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