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와 경험론에 대한 걸 정리해놓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특별히 '생산적인' 뭔가에 매달려 있는 것도 아닌데(이때 '생산'은 노동가치와 관련된다), 해야 할 일들이 계속 미뤄지는 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다(이런 '일' 때문인가?). '들뢰즈와 경험론'에 관련한 읽을 거리들도 머리속에 몇 개 생각해둔 게 있었는데,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다(책들도 분산돼 있기 때문에 한번에 작업을 끝내지 못한다). 

그나마 남아있는 아이디어는 서동욱의 <들뢰즈의 철학>(민음사, 2002) 중 '보론'으로 포함돼 있는 글 '경험론과 철학 - 들뢰즈, 레비나스, 데리다'를 정리하면서 살을 붙인는 것이었다. 이 보론은 짧지만 생각할 거리들은 많이 제공해주는 유익한 글이다. 나는 막바로 3절부터 시작하겠다. '경험론에서 계사는 존재 동사가 아니라 접속사이다'란 소제목을 달고 있는데, 들뢰즈와 데리다를 레비나스를 사이에 두고 비교하는 내용이다(인용문의 강조는 나의 것이다).

"많은 면에서 서로 전혀 다른 종류의 철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들뢰즈와 레비나스를 같은 종족으로 묶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은 사상적으로 그리스에서 온 자들이 아니라는 것, 로고스 없이 경험의 부스러기들만을 가진 자들이라는 점이다."(64쪽) 들뢰즈와 레비나스는 철학의 고향을 아테네가 아닌 다른 곳을 가정하므로 이러한 주장에 일리가 없지 않다. 대신에 레비나스가 '예루살렘'을 새로운 고향으로 지목하는 데 반해서, '노마드' 들뢰즈는 그러한 태생적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차이일까?

저자가 이어서 읽고자 하는 것은 <글쓰기와 차이>에 실린 데리다의 레비나스론의 한 구절인데, "경험론과 관련하여 데리다와 들뢰즈의 극명한 대립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줄 이 구절은 물론 레비나스 비판을 위해 씌어진 것이다."(65쪽) 그렇다면, 레비나스의 주장은 무엇이었나?

"레비나스는 존재자를 존재자이게끔 하는 본질인 '존재'를 존재자의 모든 이기적 권력의 원천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타인에 대한 폭력은 존재 사건 자체로부터 기인한다. 그러므로 참다운 윤리의 가능성은 '존재와 다르게'라는 부사구를 통해서 타인에게 접근하려고 할 때 비로소 희망해볼 수 있는 것이다."(이 '존재와 다르게'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저자의 <차이와 타자>, <일상의 모험>을 참조.)  그런데, 데리다에 따르면, 이 경우 "윤리적 언어는 '존재한다'라는 동사를 가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한데, 그런 언어는 불가능하다는 것. 즉, 레비나스여, 그게 가능합니까? 라고 젊은 철학자 데리다는 묻는다.

데리다 왈: "레비나스에 따르면 비폭력적인 언어는 동사 '존재하다'가 금지된 언어, 즉 어떤 술어적 기능도 없는 언어일 것이다. 술어적 기능은 최초의 폭력이다. 동사 '존재하다'와 술어적 활동은 모든 다른 동사와 모든 보통 명사 속에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비폭력적인 언어는 궁극적으로... 모든 '동사'로부터 정화된 언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언어가 여전히 언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을까?... 로고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준 그리스인들은 그런 언어를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플라톤은 우리에게... 명사들과 동사들의 얽힘을 전제하지 않는 로고스는 없다고 말한다."(65-6쪽)

데리다의 견해로는 레비나스적/윤리적 언어가 술어적 기능을 갖는 '존재' 사를 금지할 경우 그것은 그리스적 의미에서 '언어'란 이름에 값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레비나스의 윤리는 언어적 표현을 가질 수 없다는 것. 그와는 반대로, "타자들을 그들의 진리 속에 '내맡겨져' 있게끔 하는 유일한 것"이 존재이며(보가 구체적으로는 '존재(est/is)'라는 계사(copula)이며), "존재의 이 근본성 때문에 데리다는 동사 '존재하다'는 모든 다른 동사와 모든 보통 명사 속에 이미 함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가령, '책상'이란 말에는 '책상(이 있다)'가 함축돼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건은 경험론이 '존재하다'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가이며, "진정한 경험론은 존재 개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숙명 때문에 멸망하기는커녕, 바로 데리다가 레비나스를 비판하기 위해 옹호하는 그 존재동사 'est'를 극복해야 할 표적으로 삼는 데서 비로소 경험론으로서 존립한다. 데리다와 정반대로, 경험론은 모든 동사들과 명사들을 존재 동사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한다."(66쪽)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들뢰즈이다. 그가 <디알로그>에서 말하고 있는 경험론의 핵심은 이렇다: "철학, 철학사는 존재의 문제 때문에, 이다EST 때문에 방해받는다. 사람들은 속사(속성)의 판별(하늘은 푸르다le ciel est bleu)과 현존의 판별(신은 있다Dieu est)을 논의한다... 그것은 항상 '존재etre' 동사와 원리에 관한 물음이다. 오로지 영국인들과 미국인들만이 접속사들을 해방시켰고, (주어와 속사 사이를 맺는) 관계들에 대해 반성해왔다." 문단이 길기 때문에 잠시 쉰다. 여기서도 '앵글로-색슨' 들뢰즈의 면모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문법, 모든 삼단논법은, 존재 동사에 대한 접속사들의 종속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꿰뚫고 변조시키며, 존재를 손상시키고 무너뜨리는 관계들과 만나야 한다. EST를 ET로 대체해야 한다(A 'et' B). ET는 심지어 특정한 관계나 접속사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관계들의 기초를 이루는 것, 모든 관계들을 열어주는 길이다. 그것은 관계들이... 존재, 일자, 전체 바깥에서 짜이도록 만든다. ET는 특별한 존재extra-etre이고 사이의 존재inter-etre이다... EST를 사유하는 대신에, EST를 '위해' 사유하는 대신에, ET와 '더불어' 사유하는 것, 경험론에 이것 말고 다른 비밀은 없다."(66-7쪽)

경험론의 유일무이한 비밀을 누설하고 있는 만큼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는데, 국역본 <디알로그>(동문선, 2005)에서 한번 더 인용하기로 한다. 2장 '영미문학의 탁월함에 대하여'에 나오는 대목이다.

"철학, 철학사가 존재의 문제, 즉 -이다/있다(EST)의 문제에 사로잡혀 있는 만큼 이러한 관계들의 지리학은 그만큼 더욱더 중요합니다. 그들은 다른 것을 전제하는, 귀속판단(하늘은 파랗다)과 존재판단(신은 있다)에 대해 논하죠.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존재' 동사이고 원리의 문제입니다. 오로지 영미인들만이 접속사들을 자유롭게 하고 관계들에 대해 성찰했습니다. 이는 영미인들이 논리학에 대해 아주 특별한 태도를 지녔기 때문입니다."(109쪽)

서동욱의 인용에서 생략된 부분을 마저 인용하면 이렇다: "다시 말해 그들은 논리학을 제1원리들을 은닉하는 본래적 형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이렇게 말하죠. '당신들은 논리학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중 하나를 발명하게 되겠지요!' 논리학은 정확히 대로(大路) 같은 것으로, 처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이 안에서) 우리는 멈출 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해 관계들의 논리학을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관계판단의 권리들을 존재판단 및 귀속판단과 별개인 자율적 영역으로 재인식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접속사들(가령 '그런데' '그리하여' 등등)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관계들이 존재동사에 종속된 채로 남지 못하게 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요."(110쪽) 요는 관계판단 또한 존재 동사에 종속되는 것을 면치 못한다는 것.

즉, "모든 문법, 모든 삼단논법은 접속사들이 존재동사에 계속해서 종속되도록 하는 수단입니다. 접속사들의 존재동사의 둘레를 돌게끔 만드는 수단이죠. (따라서) 더 멀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관계들과의 마주침이 모든 것을 꿰뚫고 망가뜨리도록, 존재를 침식시키도록 만들어야 하고, 존재가 동요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다/있다(EST)를 그리고(ET)로 대체해야 하는 것입니다. A 그리고 B."

"그리고(ET)는 특별한 관계도, 특별한 접속사도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관계들, 모든 관계들의 길을 연결하는 것이죠. 관계들이 그 항들의 바깥, 그 항들 집합의 바깥, 존재나 일자나 전체로 결정될 수 있을 모든 것의 바깥에서 질주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불어에서 EST와 ET는 발음이 동일하다. 이게 영어로는 IS와 AND이다. 우리말로는 좀 번거루운데, '-이다/있다'와 '과(와)'가 거기에 해당할 것이다.

"열외-존재, 사이-존재로서의 그리고(ET). 관계들은 여전히 그 항들 사이에서 혹은 두 집합들 사이에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성립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고는 관계들에 다른 방향을 부여하고, 항들과 집합들이 능동적으로 창조하는 도주선 위로 차례차례 도주하도록 만듭니다. -이다/있다(EST)를 사유하거나 -이다/있다를 위해 사유하는 대신에 그리고(ET)와 함께 더불어 사유하기 - 경험론에는 이것 외에 다른 비밀이 결코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110-1쪽)

대동소이한 두 번역에 대해서 따로 이견을 달지 않겠다. 다만, "ET는 특별한 존재(extra-etre)이고 사이의 존재(inter-etre)이다"와 "열외-존재, 사이-존재로서의 그리고(ET)"란 번역에서 '특별한 존재'라는 건 약간 부절적하며, 두 경우 모두 '-존재'라고 풀어주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생각에 ET/AND는 무슨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존재-바깥'이며 '존재-사이'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존재론으로 포섭되거나 환원되지 않는.

요컨대, 철학은 'EST철학'(IS철학)과 'ET철학'(AND철학)으로 대별될 수 있다(편의상 'IS철학'과 'AND철학'이라 부르겠다). 'IS철학'이 전통적인 형이상학으로서의 존재론을 집약하는 별칭이라면, 'AND철학'은 들뢰즈적인 접속론의 다른 이름이다. 들뢰즈의 용어를 더 갖다 쓰자면, 'IS철학'은 '나무-철학'이며, 'AND철학'은 '리좀-철학'이다.

이 두 철학은 세계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술/분절한다. 가령, "들뢰즈 IS 철학자"와 "들뢰즈 AND 철학자"로. 이 'AND철학', 혹은 들뢰즈적인 경험론은 IS(계사)라는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명사들끼리(혹은 머리들끼리) 막바로 헤딩하게 한다.  

 

 

 

   

여기서 콜브룩의 안내를 잠시 따라가본다(이 책은 순서상 '초월적 경험론' 장부터 읽는 게 타당하다). "들뢰즈에게 경험론은 철학적 이론이나 특별한 사상학파에 대한 인정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다."(<질 들뢰즈>, 135쪽). 여기서 '인정(commitment)'은 '관련' 정도의 뜻이다. 그리고, 이 경험론이 갖는 함축: "들뢰즈는 매개에 반대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관념들에 의해 매개되거나 질서 잡히는 삶이나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삶은 직접적이고 무매개적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의 관념들이 우리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세계 자체가, 그것에 대해 우리가 결과로서 드러나는, 그런 관념들이나 이미지들을 생산한다."(136-7쪽) 그리하여 "오히려 관념들은 경험의 결과이다."

너무 오래 끌고 있어서 '남은 비밀'은 다음에 누설하기로 한다...  

06. 04. 25 -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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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4-28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글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있었는데..다시 시작하셨군요...^^
팍팍 진행되길 바랍니다..

저는 들뢰즈의 계사존재론과 지젝이나 라캉의 주체론을 비교해서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는데..로쟈님은 이건 어떻게 보시는지...


로쟈 2006-04-2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팍팍'은 안되네요(--;). 일단 한두 권도 아닌 책들이 분산돼 있어서 한꺼번에 작업을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고, 또 견적이 견적인지라... '재미있는 이야기'는 yoonta님이 해주시면 안될까요? 저는 브리핑하기에도 벅찹니다.^^

yoonta 2006-04-2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낼정도로 구체화시키질 못해서요..지젝이나 라캉의 매개없는 주체..공백으로서의 주체와 들뢰즈의 계사존재론과는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데가 있다고 보거든요..로쟈님이 들뢰즈뿐만 아니라 지젝에 관심이 많으신분이라 한번 여쭤봤습니다.

로쟈 2006-04-2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뢰즈의 '계사존재론'은 아니죠.^^ '접속사론'이고, 이게 (지향하는 건) '존재론-바깥'이니까.

yoonta 2006-04-2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참 아이러니인거 같아요..계사"존재"론이 아니라는 님의 말도 맞지만 여전히 로고스적 언어(존재론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의 접속사론도 서양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의 전통속에 있다고 보거든요..그런점에서 계사'존재'론이라는 표현도 여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로쟈 2006-04-2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뢰즈가 말하는 건 적어도 AND존재론인데, AND가 '계사'는 아니지 않나요? 물론 "ET는 심지어 특정한 관계나 접속사도 아니다"라고 했으니까 '접속사존재론'이란 말도 어폐가 있긴 하지만, 뭐라고 부르기는 해야 하니까... 더불어, 들뢰즈가 여전히 '로고스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죽은 철학자가 좀 유감스러워할 거 같습니다. 그는 적어도 '비틀거리는 언어'로 쓰고 있는 거 아닌가요?(그래서들 읽기 어렵다고 하는 거지만)...

yoonta 2006-04-28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글고보니 제가 말을 잘못했네요..^^;; is가 계사고 and가 접속사죠..들뢰즈는 접속사존재론이라고 해야겠네요...
 

 

 

 

 

레프 도진의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모스크바 예술극장이 생각났다. 생각난 김에 자료들도 모아두고 몇 자 적기로 한다. 원래 이름이 '체호프 기념 모스크바 예술극장'인 것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 극장/극단은 안톤 체호프와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자신의 작품들을 무대에 올렸을 뿐만 아니라 예술극장의 배우였던 올가 크니페르(1870-1959)와 1901년에 결혼하기도 했으니까 예술극장은 어쩌면 극작가 체호프의 '전부'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문장은 <갈매기> 초연을 기념하기 위해 박아놓은 '갈매기'이다. 그리고 그 연출자가 스타니슬랍스키였다. 아래는 재작년 모스크바에 머물 때 시내에 나갈 때마다 지나가곤 했던 카메르게르스키 골목의 모스크바 예술극장 사진들이다.

 

Крупнее

이 극장의 현 예술감독이 저명한 배우이자 연출가인 올렉 타바코프(1935- )이다. 모스크바 예술극단 출신인 그는 자신의 극장을 따로 갖고 있으면서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감독직도 겸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국민배우'이자 연출가, 예술감독.

'몰리에르'와 '살리에리' 전문 배우로도 유명한 연극무대에서뿐만 아니라 그리고리 추흐라이의 <맑은 하늘>이나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전쟁과 평화> 같은 고전적인 영화에서부터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같은 대중영화, 그리고 니키타 미할코프의 1980년대 영화들에서도 타바코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래는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미할코프의 영화 <오블로모프>(1981). 국내에는 <오브로모프의 생애>인가란 제목으로 출시됐었던 작품. 그의 표정만으로도 게으르지만 선량한 오블로모프의 넉넉함이 묻어난다(미할코프는 영화에서 천하의 게으른 지주 오블로모프를 공감과 연민의 시선으로 포착한다).

06. 04. 25-27.

P.S.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규모에 걸맞는 이야기는 당분간 미루어두어야겠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건 '쇼케이스' 페이퍼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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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nwise 2009-11-20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만들어졌군요 저는 엊그제 이책을 읽어서 요즘 매일같이 러시아란 나라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군요
 

지난 1월인가 러시아의 저명한 연출가 레프 도진의 연극 한편이 올해 공연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 그 일정이 한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이번에 올려지는 '헝제자매들'은 생소한 작품인데, 공연시간은 무려 7시간이다. 9-10시간 짜리 공연 레퍼터리들도 드물지 않은 연출가이기 때문에 시간 자체가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도 관람을 권유한 만큼 나도 티켓을 알아봐야겠다. '워밍업' 차원에서 관련기사들을 두어 개 옮겨놓는다.  

먼저, 올해의 손꼽을 만한 공연들을 소개한 한국일보(2006. 01. 06) 기사에서 "연극-레프 도진의 연극 '형제자매들' " 꼭지. 

-2001년 7월, <가우데아무스>를 본 사람은 그들의 꿈에 감염되기 시작했다. 무대를 통해 인간은 다른 차원의 현실로 승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것이다. 군대 생활을 주제로 한 19편의 즉흥극은 그 흔해빠진 첨단 멀티미디어도, 테크놀로지도 없이 오직 인간의 현존만으로 이뤄지는 무대가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입증했다. 그것은 희랍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연극이란 기본적으로, 아니 근본적으로 ‘배우의 현존’이어야 함을 웅변했다. 눈만 뜨면 가상 현실이다 뭐다 해서 사이버 문명에 주눅들던 한국인에게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연극 집단 ‘말리 극장'은 인간의 꿈이란 무엇인지를 상기시켜 주었다.

-5월, 그들이 다시 온다. 이번에는 중간 휴식을 합쳐 공연시간 7시간의 대작 <형제 자매들>이다. 페드로 아브라모브 원작으로 1985년 초연된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스탈린 정권의 억압 아래서 러시아 민중이 어떻게 그 엄혹한 시간을 버텨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러시아 연극의 부흥을 일으킨 주역인 거장 레프 도진이 연출하고, 잘 훈련된 40여 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연극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위협을 받고 있는 한국에서 런던, 파리, 시카고 등지의 눈 높은 관객을 사로 잡은 도진의 휴머니즘과 연극론은 이번에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까. 5월 20, 21일 LG아트센터 공연. 러시아어에 한글 자막.

이어서 동아일보(2006. 04. 19)에 실린 서면 인터뷰 기사.

-'7시간 반짜리’ 연극이 온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의 <형제자매들>. 다음 달 20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리는 이 작품은 국내 공연 사상 가장 긴 연극이다. 휴식시간을 뺀 순수 공연만 6시간. 대학로 연극 네 편을 하루에 보는 것과 맞먹는 시간이다. 이 작품의 연출가인 레프 도진(62·사진)은 말리 극장의 예술 감독이자 러시아의 신화적 연출가. 러시아 연극계에서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황금 마스크 상을 3차례나 수상했고 피터 브룩, 피나 바우쉬 등이 받은 유럽연극상과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 상을 거머쥔 인물이다. 10시간에 이르는 도스토예프스키 원작의 연극 <악령>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 그에게 왜 이렇게 긴 연극을 하는지 e메일로 물었다.

―‘7시간 반 연극’은 관객 입장에서도 도전이다. 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않나?

“요즘 연극들은 점점 짧아지는 추세다. 모두들 TV의 영향으로 단절적 사고를 한다. 우리는 점점 더 속도전에 휩쓸려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과 예술은 속도의 공격에 맞서야 한다.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변화의 시기에 예술가는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은 연극인들조차 빨리 생각하는 것 같다. 빨리 생각하는 것은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대가 빨라질수록 연극은 점점 더 느리고 진지해져야 한다.”(공연작인 <형제자매들>은 1985년 초연 후 꾸준히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그의 대표작. 스탈린 시대를 배경으로 빈곤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민중의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연극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어느 연극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로부터 개인을 지키고, 타인을 모욕하는 사람들로부터 인간을 지켜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만큼 스스로를 괴롭히고 모욕하는 인간도 없으니까. 연극이 하는 가장 값진 역할은 관객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 안에서 진정한 인간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인간 본성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인간의 영혼은 연극의 가장 중요한 탐구 주제다. 인터뷰에서 말하기엔 너무 광범위한 주제이고 한도 끝도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7시간, 10시간짜리 긴 연극을 만든다. 나는 인간의 본성은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죽기 때문이다. 영혼은 태어나면서부터 투쟁해야 하며 이는 인간의 숙명이다.”

―한국은 뮤지컬에 밀려 연극은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러시아는 어떤가? 연극의 앞날을 낙관하나?

“한국이나 러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연극하기는 힘들다. 매스미디어, 대중문화의 공격을 받고 있고 연극인들은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럴수록 자신감을 갖고 저항해야 한다. 연극은 사람들의 영혼에 필요하다는 믿음을 간직해야 한다. 연극에서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연극이란 인간에게 본원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오페라 연출도 활발히 하는데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오페라도 공연 예술의 한 갈래이고 위대한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데 매력이 있다. 하지만 오페라 작업은 연극과 모순되는 부분도 많아 최소한으로 맡으려 한다. 가을까지 오페라 <살로메>를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끝내야 하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카체리나 이즈마일로바>(사진) 완성해야 한다.”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는 러시아 작가 레스코프의 소설 <므첸스크 군의 멕베스 부인>이 원작인 쇼스타코비치의 대표적인 오페라이다(*레스코프의 소설은 최근에 <러시아의 멕베스 부인>으로 번역/출간됐다).

 

 

 

 

원작은 몇 차례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가장 최신 (번안)버전은 발레리 토도로프스키의 <모스크바 근교의 밤>(1993)이다. 영어 제목으론 'Katya Izmailova'인데, 우리말 제목은 엉뚱하게도 <마이 러브 카티샤>가 되었다('케테리나'의 애칭인 '카챠'를 '카티샤'로 잘못 옮긴 것). 그런 제목으로 버젓하게 개봉됐었고(기억에는 중앙극장에서였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본 적이 있다(러시아 영화일 거라 짐작을 했지만).

내용은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의 러시아-소비에트 버전인데, 며느리 타이피스트와 시어머니 작가, 마마보이 남편, 그리고 건장한 별장지기 사이에 벌어지는 불륜극. 줄거리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카티샤'는 '카챠'로 수중했다).

"모스코바 카챠는 32세의 타이피스트. 저명한 작가인 시어머니 이리나가 쓰는 소설 원고를 처리해 타이핑하며 단조로운 나날을 보낸다. 카챠샤의 남편 미티아는 자신의 어머니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남자이다. 이 세사람의 생활범위는 모스코바 아파트와 여름을 지내는 피서지의 별장 뿐이다. 어느 여름날 예년과 다름없이 별장을 찾아온 세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별장지기 세르게이였다. 카챠는 별장에서 타이핑 작업을 계속하고. 카챠는 세르게이에게 점차 매력을 느끼고 그의 관능적이며 광적인 사랑은 그녀의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어간다. 남편의 출장 중 그녀는 세르게이와 별장에서 위험한 정사를 나눈다. 두 사람은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시어머니 이리나에게 현장을 들키고만다. 그녀의 불륜을 질타하던 이리나는 심장발작으로 쓰러지고. 약을 가져오던 카챠는 이리나의 침대위에 걸린 르느와르의 퍼즐그림에 시선을 두며 움직이지 않는다. 심장발작을 멈추지 못해 이리나는 결국 죽게 되고 출판계에 큰 충격을 안겨준다. 그녀의 소설 엔딩 부분을 읽고 싶어하는 독자들은 늘어만 가는데..."

감독 발레리 토도로프스키는 <인터걸>의 감독 표트르 토드로프스키의 아들이기도 한 중견감독이다. 카챠로 나오는 배우 잉게보르가 답쿠나이트는 <위선의 태양>에도 코토프 대령의 아내(아래 사진)로 출연했던 배우.

결론은 도진의 <형제자매들>을 한번 관람해 보시라는 것이다. 연극이란 인간에게 본원적으로 필요한 것이란 믿음을 공유하신다면...

06. 0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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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 2006-04-25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스코프의 원작 소설 [...맥베드 부인]에선 '시어머니'가 아닌 '시아버지'가 카챠(+그녀의 정부)에 의해 살해됐던 것 같아요. 길이는 얼마 안 되지만, 도..키의 [백치]에 맞먹는 '정념'의 드라마라고 할까요.

로쟈 2006-04-25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도로프스키의 영화는 현대판으로 각색한 것이라 좀 다르죠. 아무튼 러시아에서는 드문 경향의 작품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쇼스타코비치 버전에서는 정치적 뉘앙스도 가미되는 듯하고...
 

필요 때문에 바타이유에 관한 자료들을 읽고 있는데 문득 켜놓은 TV에서 오래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에 눈에 들어왔다. 대번에 그리스의 영화감독 테오앙겔로풀로스의 <영원과 하루>(1998)란 걸 알 수 있었는데, 신문의 프로그램란에서 확인하니까 맞다. 그의 영화다. 4월 22일(토) 밤 11시. <영원과 하루>.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11번째 영화이자 1998년 칸느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지난 2004년 11월에 개봉한 걸로 돼 있지만, 내가 본 건 그보다 훨씬 전 한 영화제에서였다(기억에는 동숭아트센터에서 봤다). 대부분의 시간을 졸면서!(나는 <율리시즈의 시선>도 영화관에서 볼 때는 반은 졸면서 봤다). <영원과 하루>에서도 인상적인 몇 장면이 있었지만 그걸 위한 132분은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러시아 감독 타르코프스키와 겉보기에는 가장 유사한 영화적 스타일의 감독이지만, 그의 영화들을 나는 즐기는 편이 못된다(그의 영화들에서 가장 인상적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은 영화'음악'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수면제 대용으로 보는 이들을 내가 기이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하는 것은 내게 앙겔로플로스의 영화가 수면제이기 때문이다. '예술 영화'임에는 분명한데, 자신의 인생 여정을 영화에 비유하기도 하는 이 거장의 어떤 면이 내게 친숙하지 않은 걸까라는 게, 좀 미안한 마음에서 내가 갖게 된 자기변호성 의문이다. 

이번에 EBS에서 방영된 <영원과 하루>를 잠시 보다가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씨네21>에 실린 짐 호버만의 평에서 일말의 해답을 찾았다(예술 감상에서 동지를 만나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이번주 <씨네21>에 난 영화소개 기사와 함께 2년전에 실렸던 호버만의 영화평을 같이 옮겨놓는다(인용문에서의 강조는 물론 나의 것이다).

씨네21(2006. 04. 20)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를 글로 풀어내는 일은 참으로 덧없게 느껴진다. 말이 덧붙여질수록 그의 영화적 세계는 점점 멀어진다. 그의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옳은 태도는 입을 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그저 감상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열한 번째 영화가 궁금한 독자들께서는 이 글이 영화 감상에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는 점을 미리 인지하시기 바란다.

-<영원과 하루>는 죽음을 앞둔 그리스의 늙은 시인, 알렉산더의 이야기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병원에서 보내는 대신 19세기의 시인, 솔로모스의 시어들을 찾아 나서는 데 보내기로 한다. 불멸의 시어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그는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고, 알바니아 난민 소년을 만나 시적인 경험을 나누기도 한다. 영원한 진리를 찾아 떠난 여행이지만, 결국 그는 진리란 그가 경험한 시간 속에 내재된 것임을 깨닫는다.

-이 영화는 노년에 접어든 음유 시인 앙겔로풀로스의 회고록 혹은 자화상이다. <안개 속의 풍경>의 어린 소년부터 그의 많은 영화들 속에 등장했던 ‘알렉산더’라는 이름의 남자가 이 영화에서는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이 된다. 알렉산더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여 생의 상처를 온몸에 새기고 이제 그 생의 끝에서 영원성을 갈망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 영원성이 알렉산더의 예술세계 혹은 누군가의 시적세계에 잠재된 것이 아니라, 아내와의 아름다웠던 추억, 난민 소년의 입을 통해 나오는 시어, 버스에서 잠을 자는 혁명군 등에게서 빛처럼 퍼져나오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앙겔로풀로스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외부의 관념적인 영원성으로 퇴각한 것이 아니라, 역사와 시간 속에 더욱 침투하여 불멸의 순간들을 포착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뒤늦은 후회나 회환이 아니라, 영원이란 ‘이미 그곳에’ 늘 존재해왔음을 깨달은 노년의 쓸쓸한 성숙함이다(*이 영화가 지루한 것은 내가 아직 '노년'과 친숙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게 나의 잠정적인 결론이다).

-그의 다른 영화들처럼, <영원과 하루>에서도 익스트림 롱숏과 딥 포커스, 카메라의 느린 움직임은 영화에 시간의 무게를 실어준다. 안개가 낀 회색빛 그리스의 풍경, 침묵으로 말하는 여백의 공간 역시 여전하다. 솔로모스의 시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들과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풍경들 속에서 과거와 현실과 미래는 만나고, 젊은 앙겔로풀로스와 노년의 앙겔로풀로스는 조우한다.(*그래도 이 대목이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이었다.) 그의 영화세계 속에서 역사는 그렇게 교차하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남다은 기자)

씨네21(2004. 12. 15)  "자아 도취의 향연" -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가장 미약한 작품 <영원과 하루>

-유럽 예술영화의 쇠망을 느끼게 하며 칸영화제가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에 때를 맞춰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었고 엄청나게 자기중심적인 거장들의 최근작 두편이 선보였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원과 하루>,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하나의 선택>으로 보건대 유럽 예술영화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둔하기 짝이 없다.(*'거장'이란 말에 기죽지 않고 이렇게 말해주는 비평가가 국내에는 드물다. 가령, '국민감독' 임권택에 대해서 누가 이렇게 말하는가?)

-칸의 1998년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원과 하루>는 수년 동안 내가 앉아 버티며 시청한 대여섯개의 앙겔로풀로스 영화들 중 가장 미약한 작품이다. 시 구절과 제멋대로의 피아노 연주, 해변가 아이의 멋진 이미지, 그리고 병원에 입원할 준비를 하고 있는 유럽을 상징하는 알렉산더 역의 브루노 간츠와 함께 영화가 시작되는데 알렉산더는 진부한 배역에 맞게 위대한 작가이며 꽉 찬 중년에 시한부 질병을 앓고 있다. 그의 지병을 거대한 망상이라고 부르자. 앙겔로풀로스는 알렉산더가 하는 모든 일에 거의 세계사적인 의미를 부여할 테니까.(*타르코프스키의 <희생>에는 그러한 '거창한' 나르시시즘이 없다.)

-작가는 깨끗하게 다듬어지고 우스꽝스럽게 조용한 레브라도 개를 딸에게 맡기려고 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날을 시작한다. 그리고 납치되어 부유한 남색자들로 가득 찬 버려진 모텔로 끌려온 알바니아 소년을 구하게 된다. 이제부터 무뚝뚝하고 지겹게도 찰리 채플린의 <키드>가 반복되지만 영화 내내 형사 콜롬보가 입었을 듯한 레인코트를 입고 등을 꾸부정하게 하고 있는 간츠의 배역은 너무 기력이 쇠약해 그저 상냥하게 자신의 꼬마를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노인과 소년, 부자와 가난뱅이, 베푸는 이와 귀염둥이, 문명과 그 불만족의 이 상징적인 공생관계는 알바니아의 수용소가 소개되고 알렉산더가 자신의 영혼지기로 생각하는 유배된 19세기 그리스 시인에 대해 임종의 상념에 젖어 있을 때 일종의 역사적 깊이를 얻게 된다. 하지만 내 참을성을 밀어버리게 만드는 것은 영화감독의 지루하고 답답한 스타일이다. 연구의 대상이자 유머가 부재한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는 졸립게 하는 일련의 장면들과 거만한 줌의 사용들, 느려터진 화이트아웃들로 특징된다.(*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 효과는 거의 없지만 미장센은 어울리지도 않게 매혹적이다. 모든 집들은 건축 잡지의 사진들처럼 불이 밝혀져 있고 병원조차 잘 보존된 지방의 박물관 같은 느낌을 발산하며 도시의 시체 보관실도 유행하는 스테인리스스틸 느낌의 일류 식당처럼 느껴진다.

-<영원과 하루>는 드러내놓고 자기도취적이어서 알렉산더가 죽은 아내의 간지러운 러브레터들에 심취해있을 때조차 쉽게 이게 앙겔로풀로스가 자신에게 쓴 편지려니 싶어진다. 뭐가 더 터무니없을까? 알렉산더가 자기 개를 맡기기 위해 충실한 하인 아들의 가짜 민속결혼식에 방해가 되는 장면일까 아니면 길거리의 아이들이 죽은 동지의 어쭙잖은 소유물을 태우는 장면에서 오보에가 들려오고 카메라가 냉혹하게 움직일 때일까? 추상적 비표현주의자라고 불릴 만한 앙겔로풀로스에겐 인물들을 상상해내거나 배우들을 지도할 특정한 능력이 없다. <영원과 하루>에 좀더 위상있는 배우들이 나왔다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뻣뻣하고 빈약하며 거만하고 한순간 그 자신의 효과에 취했다가 허위 철학에 눌려버린 완전히 예술영화판 <보이지 않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보이지 않는 위협>은 <스타워즈의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가리키는 게 아닌지? 한편, 주연을 맡은 배우 브루노 간츠는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로 나왔던 배우이다.)

-앙겔로풀로스의 단점이 있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율리시즈의 시선>은 그 어떤 웅장한 무관심을 받았다. 아니 적어도 2번가에 있는 거의 버려진 황량한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의 빈 극장에서는 보여줄 만한 그런 영화였다. 그걸 봤다면 누구나 앙겔로풀로스가 마지막 유럽 예술영화를 만들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링컨센터의 위상 속에서 개봉되어 평범한 머천트와 아이보리의 공격적인 광고에 힘입고 있는 <영원과 하루>는 그런 분위기의 기이한 요약에 더 가깝다.

-“나 왜 유배 속에 삶을 살아왔나?”, “왜 우린 사랑할 줄 모르고 있었나” 따위의 영원한 질문들을 뻔뻔스럽게 헤대며 앙겔로풀로스는 잉마르 베리만의 무거운 망토를 걸치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도덕적 고통을 머리에 쓰고 미클로시 얀초의 형식주의를 사용하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비유적인 풍경을 찾다가 결국 바닷가에서 음치에다 뻣뻣하게 춤을 춰대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대단원을 맞는다.(짐 호버만)(*감독 자신이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음을 알고 있을 때, 그의 영화는 지루해진다.)

 

참고로 지난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던 앙겔로플로스와의 인터뷰들 중 하나를 옮겨놓는다.

nkino(2004. 10. 15) "우리 시대 최고의 거장을 만나다"

-부산영화제와 한국을 처음 찾은 소감이 어떤가?
-테오 앙겔로플로스 |
솔직히 말하면 한국을 느낄 시간이 전혀 없었다. 호텔 방에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웃음) 주변의 호텔은 어느 나라나 다 비슷하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호텔 방에서 바로 바다가 보인다는 것 정도다. 시간이 되면 부산 관광이라도 하고 싶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리스의 좌파적인 전통 속에서 영화를 시작한 것으로 안다. 젊은 시절의 역사 체험이 영화에 미친 영향은 어떠한가?
-내가 영화를 시작한 때는 그리스가 한창 군부 독재 중이던 1970년이었다. 나나 조국인 그리스에게나 어려운 시기였다. 그 전에는 좌파계 신문사에서 영화비평가로 활동했다. 군부 독재가 시작되면서 군인들이 도시를 점령했다. 군인들은 내가 일하던 신문사를 파괴하고, 아테네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첫 영화인 <범죄의 재구성>을 찍었다. 이 영화는 산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다. 어느 정도는 고대 그리스 비극과 신화에서 모티프를 따오긴 했지만, 결국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보통 외지인들이 그리스에서 떠올리는 이미지, 예를 들어 태양빛이 작열하는 유명한 섬들이나 관광지의 그런 이미지가 아닌, 그리스의 이면을 그려냈다. 남자들은 모두 다 외국으로 떠나고 나이든 여자들만 가득한 폐허가 된 그리스 마을. 결국 이 또한 당시 그리스 현실에 대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는 영화 검열이 엄격한 나라였다. 검열과 규제는 당신의 영화에서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쳤나?
-당연히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범죄의 재구성>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내용이 없어서 큰 문제는 없었는데, 문제는 두 번째 영화인 <1936년의 나날>에서부터 시작했다. 이 영화가 프랑스에서 개봉되었을 때는 정치적인 이슈를 간접적이고 암묵적으로 이야기하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는 그리스 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파시즘의 광풍에 휩쓸려 있었다. 이 영화가 대학생들을 상대로 상영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영화 상영을 마쳤는데, 모인 사람들 누구도 영화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극장 안에는 대학생 들 뿐 아니라 검열 당국에서 나온 형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담겨있는 당시 그리스 상황에 대한 은유와 상징들을 그들이 눈치챌까봐 두려웠던 거다.(웃음)

-세 번째 영화인 <유랑극단>은 정치적인 주제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데 지친 나머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주제를 드러낸 작품이다. 영화가 혹시 개봉을 못한다고 해도, 일단 한 번 질러보자는 심사였다. 하지만 역시 사전 검열 문제 때문에 시나리오 없이 촬영을 진행해야만 했다. 혹시 문제가 생길까봐, 배우나 스탭, 제작자의 이름 모두를 크레딧에 올리지 않았다. 배우들도 촬영 당일이 되어야 자신들이 어떤 연기를 해야할 지 알게 되는 그런 도둑 촬영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의 영화 감독들 중 특별히 눈여겨 보는 감독이 있는가?
-사실 요즘에는 다른 사람들의 영화를 보기가 더 힘들어진다. 이렇게 영화제에 가도, 인터뷰에 각종 행사에 끌려다니다 보면 영화 한 편 보기가 힘들다. 타인들의 영화가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는 태국 감독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이 맘에 들었다. 그 외에는 아테네에서 본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작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러시아 영화 <귀환>, 그리고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등도 생각난다.

-당신은 그리스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감독이다.
-나는 그리스 국내에서 영화 작업을 하는 유일한 그리스 감독일 것이다. 물론 내게도 외국에서 일하자는 제안은 많이 오지만, 그리스에 남기로 결정하고 작업을 해왔다. 엘리아 카잔이나 존 카사베츠 같은 감독들은 그리스 출신이지만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고, 그리스에서 작업한 감독은 <희랍인 조르바>를 만든 마이클 카코야니스 정도가 있을 뿐이다. 현재 그리스 영화는 그리스 내부에서만 알려져 있다. 조금 더 그리스 영화가 해외에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유일한' 그리스 감독이라는 게 좀 놀랍다.)

내친 김에 인터뷰 하나 더. 인터뷰어는 오마이뉴스 심은주 기자이다. 타이틀은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만약에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영화는 아직 종말에 다다르지 않은 것이 되겠다.)

오마이뉴스(2004. 10. 13) "여기, 영화 감독을 꿈꾸는 영화 학도가 있나요?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개인적인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며 이 영화 거장은 말문을 열었다. 그리스 출신의 영화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작가주의 예술영화의 최고 경지에 이른 감독으로 유명하다. 역사적·정치적 문제를 서정적인 느낌의 화면에 담아내는 그의 솜씨는 이미 세계 3대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인정 받아왔다.

-그런 그가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참가를 위해 처음으로 부산을 찾았다. 영화제 측이 감독과 관객들의 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처음 마련한 마스터클래스는 예매시작부터 매진을 기록할 만큼 관심이 높았다. 12일 오후 1시에 열린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마스터클래스는 어제 허우 샤오시엔에 이은 두 번째 시간.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많은 한국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2시간 여 동안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은 문학과 법학 등을 공부했다. 굳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9살 때 마이클 커티스 감독의 영화 <더러운 얼굴의 천사(Angels with dirty face)>를 보고 놀란 이후로 영화가 내 삶 속에 들어왔다. 고교 졸업 후 영화학교에 들어갔는데, 특히 감독 일에 관심을 가졌었다. 당시 '영화가 날 필요로 하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고, 난 영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소규모의 영화 한 편을 찍었다."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평을 하자면?

"그 질문에 대한 내 의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영화를 스스로 평가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영화가 내겐 '여행'과 같다는 것이다. 단순한 작업이 아닌, 삶 그 자체다. 특히 시나리오나 사전 작업이 아닌, 촬영의 순간이 이런 기분을 더해준다. 난 촬영을 좋아한다."

-<안개 속의 풍경>은 흔히 희망에 대한 영화라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희망이란 무엇인가?
"희망을 정의할 순 없다. 하지만 희망은 심오하고 깊은 감정이라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안토니오니의 영화 <유랑>에서 인물들이 모두 자살을 택하자, 이를 본 관객들은 그 영화가 희망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안토니오니는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행위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이다. 나에게 희망은 영웅적인 절망이다."

-당신의 시선은 늘 발칸반도에 머무른다. 다른 곳을 이야기할 생각은 없는가?
"일본에 갔을 때 한 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다. 인간의 비극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많았다. 한참 둘러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울며 내게 달려들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라 소개한 그는, 내 영화 <유랑극단>을 보며 자신의, 자기 민족의 이야기 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내 생각엔 인간의 정신나간 행동을 발칸 지역을 배경으로 해서 보여줘도 한국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본다. 영화처럼 국제적인 것이 없다. 국수주의가 모든 이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당신의 영화는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회화적이다. 좋아하는 화가가 있다면? 
"난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었기에 대신 영화 만드는 일을 한다. 실제 모든 회화의 역사는 내 영화와 연관이 있다. 꼬집어 특정 화가를 말할 순 없지만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피카소를, 달리의 그림을 보면 달리를 흡수한다. 잘 되든, 안 되든 회화 속의 색이나 이미지를 소화해서 영화에 반영하고자 하는 편이다.

-영화에서 당신은 클로즈업을 거의 안 쓴다. 왜 그런가?
"내 작품들은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시테라섬으로의 여행> 이전엔 정치와 역사를 담아내는 데 몰두했고, 그 이후엔 역사는 배경에 두고 전면에 개인과 인간의 운명을 담아냈다. <유랑극단>이나 <알렉산더 대왕> 같은 영화들은 브레히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들이다. <시테라섬으로의 여행> 이후엔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의 정의와 브레히트의 연극의 정의를 함께 사용한다. 브레히트의 연극의 정의 가운데 '거리감'은 베르히만과 고다르에게도 영향을 끼쳤고, 내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거라 생각하나?
"내 영화 중 하나인 <비키퍼>는 혁명으로 죽었으나 그래도 계속된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많은 이가 TV만 보며 정치와 역사적인 문제들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우린 꿈을 갖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해야만 한다."

-당신 영화의 배우들은 연기가 훌륭하다. 특별히 지도하는 바가 있다면?
"배우들은 각자가 모두 다르다. 그런 만큼 '소통'이 중요하다. 이 때의 소통이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의 교환을 통해 가능해야 한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스킨십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율리시즈의 시선>을 보면 생각한다. 도대체 당신에게 시선의 해방과 구속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율리시즈의 시선>에서 조셉슨은 시네마떼끄 관장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을 '없어져 버린 시선을 수집하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이를 통해 나는 시선에 대해, '과연 나는 아직도 진실을 보고 있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처음 내가 카메라 화면을 보았을 때,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발견했듯 계속 그러고 싶단 소망이 있다. 그 소망을 담고 싶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마스터 클래스 시작과 끝에 플라톤의 말을 인용했다. "자신을 알려면 타인에게 자신을 비추어야 한다." 그는 관객없는 영화는 그저 필름이란 물질일 뿐이라며 감독의 시선이 타인의 시선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마지막에 자신이 준비한 시를 읽어주며 그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에 답례했다...

06. 0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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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er 2006-04-23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짐 호버만의 글은 제 친구가 번역하고 있는데요,
이 글을 보고 반가와서 링크해줬더니 잘 읽었다고 전해달라는군요.
말씀하신 대로 '보이지 않는 위협'은 '보이지 않는 위험'의 오타였다고 하네요. ^^
한편 호버만은 브루노 간츠를 제외한 전체 캐스트가 빈약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하는군요.
덩달아 저도 잘 읽었습니다. ^^

로쟈 2006-04-23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친구를 두셨네요.^^ 이미 읽으셨던 글일 텐데 잘 읽으셨다니 머쓱합니다...

푸른별 2006-04-2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난감함이 아주 명확하게 설명이 되는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러시아계 한국인) 박노자 교수가 지난달 18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정교-진보운동-사회주의'라는 주제의 초청강연을 가졌다(이날 강연에는 학생들과 시민 17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그 녹취록이 있기에 옮겨온다. 많은 분들이 일독해 보시도록 권유하기 위해서이다(종교에 관한 우리의 '상식'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녹취록은 '푸하'님의 서재에서, 그리고 강연회 사진은 '데일리서프라이즈'에서 갖고 온 것이다. 군데군데 굵은 글씨로 표시한 강조와 간혹 덧붙여진 군말은 나의 것이다.  

-하필이면 왜 이 주제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일종의 변명 같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1∼2년 전에 민중 신학과 가까운 한 기독교 계통의 잡지로부터 현대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을 청탁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결국엔 '죄송합니다. 못쓰겠습니다'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제 학술 분야가 원래 기독교보다 고대사였기 때문에 불교 공부를 좀더 많이 한 부분도 있었고, 또 신자가 아닌 신분으로 비판하기에는 뭔가가 쉽게 내키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사실 그때 제가 거절의 말씀을 드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   이건 굳이 기독교뿐만 아니라 결국 불교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만   '기업 활동에 대해서 이념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기업 활동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얼핏 보면 신을 모독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신에 대한 발언이 아니라 현존하는 종교 조직에 대한 발언입니다.(*종교사회학에서는 상식적인 얘기이다. 교회 성장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자리' 곧 '좋은 목'이라는 사실을 목사님들의 상식이듯이. 이미지는 김종서 교수의 <종교사회학>(서울대출판부, 2005)을 가져왔는데, 내가 오래전에 종교학 과목을 수강하며 읽었던 책은 오경환의 <종교사회학>(서광사, 1990)이다.) 그리고 사실은 외국의 사회인류학이라든가 사회학 같은 부문에서는, 특히 종교사회학에서는 요즘  '종교 시장'이라는 용어를 거의 별 거부감 없이 쓰다 보니까 저도 약간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어쨌든 한국의 경우 사찰이든 교회든 예외적인 소수를 제외하면, 일종의 기업 활동으로 보이는 신앙 활동의 형태가 많이 보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떤 이념적 입장에서 비판하기가 왠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업 활동이란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아는 소위 기복 장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꼭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사찰이나 교회를 찾을 때는 마음 속에 일종의 거래를 하는 듯한 마음으로 찾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말씀이지요. 예컨대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기도하면 내 아들이 서울대에 입학하겠지" 하고 생각할 때 여기서 신의 축복이란 게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물질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신앙 생활 잘 하고 기도를 잘 하면, 대학교 입학뿐 아니라 예컨대 직장에서도 인간 관계가 원만해져서 안 짤리겠죠. 그러니까, 난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결국에는 여유있는 생활하고 잘 살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신통력이 있다, 신이나 어떤 초자연적인 힘과 거래할 수 있다"는 조직에 가입해서, 헌금이라는 이름이든 성금이란 이름이든 불전이란 이름이든, 어떤 명목으로 거기에다 일종의 물질적 대가를 바치고 그 대신에 상당히 현실적인 성격의 축복을 돌려 받는, 성격의 신앙 생활이 우리한테는 아주 익숙해진 것이고,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기복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기복 신앙은 꼭 구체적으로 '자녀 입학하게 해 달라', 아니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 하는 것뿐만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현실 생활이 원만하고, '현실적인 잣대'로 봤을 때 행복한 생활을 초자연적 힘에 의해서 돌려받으려는 것이 기복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찰이든 교회든 수많은 종교단체에서 이와 같은 넓은 의미의 기복을 제공함으로써 상당한 대가를 받고, 또 그 대가로 사찰의 경우엔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대형 불상을 짓고, 교회 같으면 단일 교회로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고, 말하자면 기복 장사를 잘 한다는 것을 건물이나 여러 가지 종교적 상징물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결국 그런 거래나 장사에 대해서 이념적 입장에서 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기복 장사, 종교를 신통력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와 거래하는 곳으로 이해한다는 것, 또는 종교의 대상으로 신이나 초자연적 힘, 또는 그 힘을 빌려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제그제 생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비판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혹시 고등학교 때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신라의 이차돈이 누군지 기억하십니까? 신라 법흥왕 때의 순교자 이차돈을 잘 기억하시겠지만, 왕이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를 도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법흥왕이 이차돈을 희생시킨 거죠. 대신들하고 화해하기 위해서 이차돈을 죽였는데, 결국 대신들의 반대가 무로 돌아가고 불교가 받아들여졌다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적인 이야기인데, 혹시 여러분은 이차돈이 순교했을 때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삼국유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그것이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동기가 됐는데, 이차돈이 참수당하기 직전에 '만약 부처님에게 신통력이 있다면, 부처님에게 기적을 일으킬 권세가 있다면, 내가 죽고 나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예언하고 참수당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피 대신에 하얀 물, 그러니까 우유와 같은 색깔의 하얀 물이 갑자기 목에서 솟아 나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대신들이 부처가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무서운 신인 줄 알고 거기에 감복하고 불교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분히 설화적인 이야기이고, 불교를 믿는 수행자의 목을 칠 때 하얀색의 액체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붓다의 본생담(本生譚), '자타카'에서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교의 설화로서는 유래가 깊은 설화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신라에서 생긴 설화도 전혀 아닙니다. 어쨌든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신라 사람들한테 초기의 붓다, 초기의 부처가 바로 기적을 일으킬 만한 힘을 가진 그런 신통한 존재였고, 불교를 믿는 사람들, 승려나 순교자 이차돈 같은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킬 만한 신통력의 소유자로 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백제가 불교를 일본에 전달했다는 것을 상당한 민족적 긍지로 삼는데, 만약  일본서기 , 일본의 공식 역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백제 성왕이 일본에 불교를 전수했을 때, '부처를 믿으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이고 붓다가 나라를 지켜줄 수 있다'는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제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일본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붓다라는 신이 힘이 세고 무서운 신통력을 갖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초자연적 존재였던 것이죠. 그런 면에서 종교에다 초자연적 힘을 부여하고, 종교 전문가들, 성직자들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섭고도 신비한 도사로 생각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고 우리 역사 속에 상당히 깊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건드리기가 상당히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기복과 오늘날의 기복은 상당히 다릅니다. 기복은 복을 빈다는 이야기인데, 복을 누구를 위해서 비는가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예컨대, 자녀가 수능시험을 볼 때 어머님이 사찰에 가서 대입 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입 기도라는 게 결국 내 옆에서 기도를 하는 다른 아줌마의 아들보다 내 아들을 먼저 입학시켜 달라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청중 웃음), 기도는 같이 하지만 결국 그 속에는 상당한 경쟁 관념이 내재해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현대의 기복은 완전히 장삿속이 되기도 하지만, 아주 원자화된 개인, 말하자면 옆의 아줌마 아들이 아니라 내 아들만을 입학시켜 달라는, 개인·개체 위주의 장사인데, 전통적인 기복이 이것보다는 약간 차원이 높았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 시대 때 미륵상이나 아미타상을 만들고 거기에다 어떤 명을 새겼는가 하면, 나의 부모를 비롯한 칠세(七世) 친척들을 극락왕생하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 국토가 태평하고 모든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게끔 하소서 하는 명을 새겼습니다. 결국 나뿐만 아니고 국가 전체가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뭔가를 받도록 비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기복 신앙이라는 것이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이미 문화 속에 얽히고설킨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제가 그때는 그것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기가 왠지 참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때 제게 어떤 생각이 들었냐하면,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 삼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기복 장사에는 사찰이나 교회라는 공급자가 있는가 하면, 그 장사를 제발 해 달라고 하는 수요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사찰들이 갑자기 없어지고 수요만 그대로 남는다면, 예를 들어 무당이나 점쟁이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수요자로 하여금 이런 기복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바뀌지 않는다면 공급자나 수요자만을 인격적으로 탓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삼을 순 없다 하더라도 소위 '상도덕'은 문제삼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상도덕' 아시죠? 장사할 때 그래도 어기면 안 되는 일종의 '상도'가 있는데, 기복 장사하는 과정에선 이것이 너무도 많이 어겨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 재벌들끼리 장사를 해도, 만약 LG 휴대폰 쪽에서 '삼성 휴대폰이 곧 고장날 것이니 삼성 휴대폰을 사는 사람은 그것을 행복하게 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악성 흑색 광고를 낸다면 이것은 아마 당장 재판을 받아 상당한 돈을 물을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불신지옥'이라고 외친다면 이건 사실 LG 휴대폰만이 진리고 삼성 휴대폰이 거짓이라는 말과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같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인데. 그걸 또 '불신지옥'이라고 외칠 때에는 꼭 '불신(佛信)지옥', 그러니까 '불교를 믿는다면 지옥이다' 라고 들리기 때문에... (청중 웃음) 이것은 상도덕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장사를 열심히 하겠다고 발벗고 나서도 장사를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청중 웃음)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기업체에서는 고용자를 막 다루면 안 되지 않습니까?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한다고 해서 삼성을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삼성말고 무노조 경영하는 곳이 '종교 재벌'들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혹시 대형 교회나 대형 사찰에서 노조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없죠?(청중 웃음)

-사실은, 삼성보다 대형 교회에서 주인이 아닌 '밑에 사람'으로 일하기가 훨씬 불안합니다. 대형 교회의 부목이나 전도사, 운전사 정도면   뭐 월급이 박한 건 그렇다 치고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이죠. 주목의 마음에 안 들고 노선을 달리 하면 자르는 데 별 절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노조를 만드는 시도를 2년 전부터 한 것 같은데, 아직 대다수 대형 교회들에 노조가 없습니다. 고용된 사람들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대형 교회도 그렇지만 최근 부산의 삼광사라는 대형 사찰에서 노조 탄압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비정규직 사찰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다 사태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매일노동뉴스>에서 알게 됐습니다. 결국 장사를 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장사를 해서는 무노조 삼성보다 더 못된 장사가 될 것 같아서 좀 문제가 있습니다.

-또, 예를 들어, 아무리 장사를 많이 한다 하더라도 기업체가 정치에 부당하게 압박을 주면 안 된다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지금 한국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FTA 투자 협정을 맺고자 하는데 실제로는 이 협정이 체결되면 가장 혜택을 볼 기업체가 어느 기업체인지 뻔하거든요. 삼성입니다. 삼성에서는 아마도 FTA가 맺어지기를 대단히 바라고 있겠지만, 만약에 삼성이 이를 위해 정치권에 상당히 노골적인 로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형 교회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와서 미군을 찬양한다든가 'We Love America!'를 부른다면 이것도 결국엔 일종의 기업체의 정치적 압박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형 교회의 경우에는 미국과의 역사적 관계도 있고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 전체의 정치를 한 집단 위주로 하려고 한다는 건 문제입니다.

 

 

 



-또, [그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올 때 드는 생각은, 미국의 정치인들이나 주류 지식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유 중 하나, 즉 미국을 '새로운 로마제국'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로마제국'처럼 미국이 전 세계를 다스리면서 사람들한테 라틴어 대신 영어를 가르쳐 주고 공동 문화를 만들어 주고 문명의 공간을 확보해 준다." 이것은 미 제국의 주류 지식인들이 제국을 옹호하는 입장의 골자 중 하나인데, 그러면 미 제국의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결국에는 새로운 로마제국의 깃발을 들고 다니는 꼴이 되는데, 예수를 못 박아 죽인 것은 바로 로마제국이 아닙니까?(청중 웃음) 그러니까, 그런 역사적 관계까지 생각하면 이것은 상당히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로마제국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숭배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무한의 힘의 상징인 성조기를 숭배하는 것인지 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업체에 대해서 한 가지 문제 삼는 부분이 '탈세'인데, 종교단체 같은 경우엔 탈세도 아니고 '무세'입니다. 세금을 아예 안 냅니다(청중 웃음). 만약, 주요 종교단체들의 수익이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많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예컨대 대형 교회에서 세금을 내서 그 세금 전액이 무상 의료나 무상 교육의 실천에 쓰인다든가, 아니면 단순히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선에 쓰인다든가 이런 조건을 내세워 세금을 낸다면 이것은 교리에 반대되는 부분이 전혀 없을 텐데, 어쨌든 탈세도 아닌 '무세'라니 이건 참 '상도덕'상 문제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있습니다(청중웃음).



-또, 제가 늘 한국 종교에 관해 문제 삼고자 하는 또 하나의 부분은 '상품 강매'입니다. 일반 회사가 그렇게 하면 당장 걸리겠지만, 예를 들어 종교 재단이 세운 학교에서 학생들한테 예배시키는 것은 결국 '상품 강매'와 다른 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인들이 신앙 시장에서 본인들의 상품을 열심히 마케팅하고 추진하는 것까진 좋은데, 본인들의 회사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학생들한테까지 그 상품을 사게끔 강제한다면 이건 헌법상의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상도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주류 종교를 얘기할 때, 이것은 단순히 기복 장사로만 얘기할 수 없는 성질의 훨씬 더 복합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의 한인 사회에 왜 하필이면 교회가 그렇게 많은가 물어보면 그것은 신앙이 강해서라기보다는 교회가 일종의 네트워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미국의 한인 사회나 유럽의 한인 사회에서는 '왕따'를 당하게 돼 있습니다. 교회들이 일부러 왕따 시키지 않더라도 저절로 당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바깥에서는 그것이 좀더 극명하게 나타날 뿐이지만, 한국 안에서도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교연, 즉 교회와 교맥을 통해서 맺어지는 것까지 포함하면, 한국에서 흔히 '관계 자본'이라고 말하는 3연, 즉 학연·혈연·지연말고도 '교연'을 분명히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나 사찰의 경우에는 또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존 사회나 기존 질서에 뭔가 신성한 듯한 외피를 덮어 주고 기존 질서를 합리화하는 데 신의 도움을 받는 그런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적인 한국 사람이 평생 살면서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공인(public figure)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주 일찍 초·중·고등학교에서 국가주의적인 주입을 받아 국가를 대단한 숭배 대상으로 삼을 수 있지만, 국가를 존경하기가 좀 힘들어요.

-국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지 다들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추상적인 국가'를 숭배해도 '구체적인 국가'를 존경하기란 좀 힘듭니다. 존경하고 싶어도 곧잘 무슨 최연희 의원의 성파문이든 무슨 파문이든 (청중 웃음)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추상적으로 운동 경기에서 우리 팀이 꼭 이겨야 한다든가 태극기로 상징되는 추상적인 대한민국이 숭배 대상이 돼도 구체적인 대통령, 국회의원, 고급관료들이 존경 대상이 되기는 아무래도 조금 힘들어요.

-그런데 그런 것도 그렇지만, 예를 들어서 어떤 학교 의식이라든가 어떤 공적인 의식에 대통령을 모신다고 하면 아마 참석자들이 대단히 좋아할 것입니다. 근데 그것은 노무현 씨라는 한 개인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아직 대통령직에 추상적으로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이죠. "대통령도 왔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위계 서열에서는 대단히 높은 사람이 온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아마도 노사모 빼고는 인격적으로 노무현 씨를 아주 진심으로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청중 웃음)

-그러니까, '추상적인 권위 인정'과 '구체적인 인격적 존경,' 이 두 가지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우리가 제도적으로도 존경하게끔 돼 있지만, 좀 신비한 옷을 입고 신비한 말씀을 하고 뭔가 신성한 듯한 아우라(청중 웃음), [즉] 후광을 갖고 나타날 추기경님이나 큰스님이다 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제도적인 인정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존경까지도 하게 돼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런 공인된 종교 지도자들이 이 체제가 나쁘다든가, 이 체제를 우리가 빨리 바꿔야 한다든가, 이 체제의 문제점이 무엇이라는 말씀을 잘 안 하시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청중 웃음), 사실 맞다고 할 수도 없고 틀리다고 할 수도 없는 말씀을 하도 잘하시기 때문에, 이 분들의 존재 자체는 체제를 상당 부분 합리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으신 스님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나 <중앙일보>에 인터뷰하시고 법문다운 좋은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에는 별 문제가 없어도   어차피 그 말씀 상당 부분이 당나라 후기나 송나라 때 선사들의 책에서 다 베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말씀이라 별 문제는 없는데   주류 언론에다가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는 대한민국 제도권의 권위를 높여주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이 체제가 인간이 살 만하고 이 체제가 인간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라는 환상을 피지배자들한테 상당히 효과적으로 덮어씌우는 면이 있는 건데 이것은 굳이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작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실,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사람이 여러 가지 주장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피임을 종교적 죄악으로 본 겁니다. 그것이 종교적으로 맞다 틀리다 하는 건 제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서 뭐라 할 수는 없는데, 어쨌든 아프리카, 특히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에이즈가 지금 대단히 치성(熾盛)을 부리고 있어서 예컨대 잠비아나 나미비아의 경우에는 에이즈에 전염된 사람이 이미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까지입니다. 이미 나라가 멸종으로 치닫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보호 없는 섹스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대단히 위협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성교시에 피임하지 않을 경우 곧잘 에이즈가 전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교황의 말씀을 듣고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에이즈에 걸려 죽은 사람이 과연 몇 만 명이 되는지 대단히 궁금할 따름입니다.

-낙태 수술에 대한 교황의 입장도 아주 단호하셨는데, 현실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는 어차피 키울 수 없는 아이를 낳았다가는 결국 사회적 살인처럼 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낙태를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종교 입장을 따라서 많은 여인들이 결국 낙태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는데, 결국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빠뜨렸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요한 바오로 2세가 죽었을 적에 한국 언론들도 그렇지만 외국 언론에서도 그것을 언급하는 언론이 몇 군데밖에 안 됐고, 대다수는 요한 바오로를 거의 새로운 성인으로 모시고 그랬습니다. 요한 바오로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을 여러 언론 중에서도 한두 군데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 지도자의 권위는 세계 지배계급에게 그만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굳이 한국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러한 신성하다 싶은 지도자로 상징되는 종교가 원자화·개체화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결국 '여러분이 불행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나 인격의 문제가 되는 것이고, 여러분의 불행은 여러분이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인격을 수양해서 언제든지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리고 구조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신과 종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거래하면 일단 개인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죠.

-그런데, 이 메시지는 이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 예수님이나 부처님하고는 별 관계가 없고 바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비자이자 노동자들한테 모든 사회적 문제를 인격이나 수양 문제로 돌리기를 원하는 게 아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기복 장사하는 기업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기업체의 정체는 체제 전체를 합리화하고 공고화하고 아주 당연할 뿐만 아니라 거의 신성하다 싶은 것으로 만드는 기능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맑스가 종교에 대해서 한 말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이 제일 유명해졌는데, 그 문장에서는 그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종교는 맑스가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이자 민중을 위한 아편'이라고 이야기한 건데, 그런 면에서 맑스는 신음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종교를 찾게 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맑스는 종교가 단순히 위에서 강요하는 '아편'이라기보다는 이 상황을, 행복할 수 없는 상황을 사람들이 바꾸지 않는 한은  결국 민중이 저절로 찾게 돼 있는 불가피한 것, 또는 일부분이나마 민중의 현실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특히 전근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종교 이단들이 바로 민중의 반항 의지, 저항 의지를 대변했고, 말 그대로 민중의 신음소리를 담았다는 것이 맑스의 종교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지금의 한국 현실을 중심으로 본다면 종교는 과연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에 더 가깝습니까, 아니면 '민중을 위한 아편'에 더 가깝습니까? 둘 다 종교의 기능을 묘사하는 얘기인데 저는 잘 모르겠지만 얼핏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보다 그 신음 소리를 진통시켜 주고 침묵을 강요하고, 그래서 결국에는 상처가 아프지 않게 진통시키는 일종의 마취제에 더 가까운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아주 아플 때 마취제를 먹게 돼 있지만, 마취제·진통제를 먹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당분간 아프지는 않겠지만 상처는 그래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무엇이냐면, 지금의 종교가 기존 체제를 옹립하고 합리화하고 체제로 인한 개인의 불행을 개인적인, 상당히 자기 기만적인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들의 원래 모습이 과연 맞는가 하는 점입니다. 종교가 정말 민중을 위한 아편 정도라면 하필이면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왜 그렇게 오래도록 존재해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거든요. 기만이라면 상당히 빨리 깨우칠 수 있는 부분인데, 또 실제로는 신음하는 소리, 짓밟힌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담지 않은 종교는 지금 봤을 때는 그렇게 오래 안 가요.

-예컨대, 최근에 만들어진 소위 신흥종교들 중에는 상당히 빨리 쇠퇴하는 종교들이 꽤 있는데, 통일교만 해도 1960∼70년대에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서 교세 확장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실제로 교세가 상당히 쇠미해졌습니다. 기존의 신자도 많이 탈락하고 새로운 신자 확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는데,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실제 통일교 교리에서는 이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를 거의 들어볼 수 없다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선명한테 카리스마가 있지만 문선명이 미국의 지도층·지배층하고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아무래도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 듣기에는 조금 어려운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신흥종교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대개 아픈 사람의 신음 소리를 담아 주지 않는 종교는 장수하지는 못합니다.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이 때까지 장수해 온 비밀이 있다면,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이 분명히 민중 편에 섰던 것이고, 민중의 그 신음 소리를 많이 담고 민중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쪽으로 나아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나 붓다, 무하마드의 카리스마를 이용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용하려면 일단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데 결국 붓다나 예수님, 무하마드에게 그 카리스마를 만들어 준 것이 아마도 종교 속에 담겨 있는, 그러니까 초기 불교나 초기 기독교, 초기 이슬람에 담겨 있는 상당히 강력한 평등 정신이나 저항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저항 정신이란 말이 아마 지금의 불교를 보면 어울리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제도 불교는 저항과 전혀 어울리는 모습은 아닌데, 실제로 붓다라는 사람 - 원래 상류계급에 속했다가 진리를 찾겠다고 혼자 뛰쳐나와 6년 동안 고생해 결국 뭔가를 깨달았다는 그 붓다 - 은 그 깨달은 것이 공(空)과 연기(緣起)라는 진리였는데, 이 진리대로라면 당시 인도 계급 제도인 카스트 제도나 남녀차별이 사실 존재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부처님이 실제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불경을 통해서는 읽어내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대다수 불경들이 붓다가 죽은 뒤 4∼5백 년 뒤에 만들어진 글들입니다. 거기에 붓다가 그렇게 말했다고 돼 있지만, 그건 사실과 전혀 관계 없습니다. 실제 붓다의 육성에 가장 가까운 초기 경전들 중에서도 붓다의 말씀을 거의 그대로 담았다고 믿어지는 것은 아마 <숫타니파타> 라든가 그 정도 경전 몇 개이고요, <니카야>, <아함경(阿含經)> 이라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기 경전도 붓다가 죽은 지 훨씬 뒤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붓다가 실제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마  숫타니파타 를 보면 대충 알 수가 있겠지만   윤색된 부분도 있고 가미된 부분도 있습니다만   붓다는 처음에 깨닫고 나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평등을 많이 얘기했습니다.

-진정한 바라문이 무엇이냐? 바라문은 인도의 성직자 계급입니다. 당시에는 계급 질서 맨 위에 있었다는 성직자 계급인데, 이 바라문에게 붓다가 얘기한 것은 사람 귀하다는 것이 결국에는 남에게 자비를 베풀고 탐욕을 내지 않는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 절대 차별을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 사이에서는 '내 종이다, 내 종이 아니다. 동류다, 이류다' 이렇게 서로 차별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다 똑같다 이런 얘기를 한 것입니다. 붓다가 깨달은 이치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공허하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 만들어지는 이유와 결과의 순환이다" 이런 것이었는데, 거기에서는 영구한 계급 차별이라는 부분이 개입될 수 없는 그런 가르침을 만든 것입니다.

-붓다는 만인 평등을 외치기도 하고, 동물 죽여서 제사 지내는 것을 반대하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가 원칙적으로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또, 붓다의 생활 방식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탁발 아니었습니까? 탁발이라 하면 동냥을 구하는 것인데, 실제 붓다가 탁발하면서 뭘 했었냐면 요즘 말로 아마 심리정신과의 상담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중이 밥을 줄 때는 뭘 물어보지 않습니까? 붓다가 그 대답을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생활 문제 풀어 주고 어떻게 바르게 살아야 하는지 얘기해 주고, 말하자면 상담을 해 주고 식량을 받는 그런 거래를 하는 것인데, 그것은 민중과 아주 가까운 생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붓다는 기적을 절대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신통력이나 기적이라는 부분은 붓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들을 부활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한 여자한테 붓다는 '그래요? 한 번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그런데 당신 마을에서 친척 중에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사람을 한 번 찾아 주면 제가 당신 아들도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하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무슨 얘기냐면, 붓다의 원래 가르침은 신통력, 초자연적 힘, 신이라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겁니다. 붓다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던 거죠. 민중한테 붓다는 존경받는 스승이었습니다.

-그런데 붓다에게 한 가지 좀 아쉬운 점은, 붓다는 일종의 초기 공산주의적인 공동체인 승가를 만들기 위해 국가 권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자기 제자, 수행자들과 함께 숲 속에서 살기로 한 것인데요. 그것은 어찌 보면 민중과도 가까운 거리에서 사는 효과가 있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그런 저항의 태도, 아주 소극적인 저항의 태도에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붓다는 자기 부인 야쇼타라와 아들 라후라를 내버려두어도 그들을 먹여 살릴 만한 사람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훨씬 더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붓다의 제자들 중에는 대개 수행 생활을 해도 되는 상당한 재력과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결국 그 사람들이 붓다가 죽자마자 붓다의 가르침을 자기 편한 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붓다의 제자 중에는 노예 출신들도 있었는데, 붓다가 죽고 나서는 노비는 스님이 될 수 없다는 계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노비나 왕의 고용자한테는 스님이 되는 기회를 막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붓다가 했는지 아니면 그 제자가 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초기 불교의 주류 승단에서 한 것 같은데, 처음부터 여성이 승려가 되는 데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팔경법'[尼八敬戒]이라는 건데, 여덟 가지로 여승이 남자 승려를 공경해야 한다, 아무리 나이 어린 남자스님이라 하더라도 나이 많은 여자 스님이 먼저 꼭 절해야 한다든가 하는 법들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붓다에게 가탁(假託)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 제자들이 만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불교는 상당 부분 아주 초기부터 왜곡되기 시작했고 체제에 편입되기 시작했는데, 인도를 통일했다는 아쇼카왕 때는 불교가 왕의 국교가 돼서 거의 원래 정신을 이미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으로 유입된 불교는 이미 절대평등주의적이고 남녀평등주의적인 붓다의 가르침과는 거의 관계 없다 싶은, 이미 체제에 완전히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런데 붓다라는 스승의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후기의 승단, 후기의 승려들이 그것을 계속 이용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고, 바로 그런 붓다의 카리스마는 불교가 그래도 죽지 않고 계속 민중들한테 인기가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한 묘사는 기독교에 대한 묘사와 놀랍게도 비슷합니다. 아마도 복음서를 읽으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특히 누가복음에는 계급투쟁적이라 할까요. 상류 계급에 대한 상당한 혐오감이 담겨 있습니다. '배부른 사람들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배고픈 사람들이 배부르게 되리라' 하고 돼 있고,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렵다'는 말은 체제에 편입된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도 그렇지만 그런 체제 반대적인 발언들이 가장 많은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올 것으로 기술을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 로마제국이 망할 것이고, 로마제국에 협력했던 부자들이 결국 벌을 받을 것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복음서들이 최종 편집되는 것은 180년대라고들 추정하고 있습니다. 180년대에 이미 기독교는 거의 체제에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체제에 협력하고 있던 교단 지도자들이 '부자들이 복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 갈 수 없다'는 예수의 진짜 말씀을 남겨 놓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예수의 카리스마가 그 사람들한테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만약에 부자들이 하늘나라로 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과연 기독교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겠습니까? 이미 2세기의 기독교는 상당히 보수화됐는데, 그래도 예수의 원래 정신은 상징적으로라도 복음서에 담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고, 그런 예수의 정신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짓밟힌 사람들한테 영감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의 편집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게 4복음서 - 마태·마가·누가·요한 복음 - 에는 재미있게도 노예의 존재나 노예제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는 겁니다. 예수가 살았다고 믿어지는 1세기 초반에는 노예제가 경제의 주춧돌이었습니다. 노예들이 대단히 많았고, 예수가 부자 보고 하늘나라 못 간다고 했다면 분명히 노예 문제에 대해 발언을 안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노예에 대한 얘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 그러니까 기독교 보수화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이 나중에 '종들이여, 주인들에게 복종하라' 하고 말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그대로 신약에 담겨져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그 편집 과정에서는 말하자면 대중한테 어필할 수 있는 미끼 밥을 남겨 두기는 했는데, 상당 부분은 바울 사도와 그 제자들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로 메워진 것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기독교도 그렇지만 또 아주 재미있는 예가 이슬람입니다. 이슬람을 창시한 무하마드라는 사람은 메카라는 상업 도시에서 '거지가 왜 이렇게 많은가. 왜 부자들은 이렇게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왜 이렇게 못사는가' 이런 불만이 출발점이 돼서 새로운 종교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무하마드와 그 공동체가 메디나에서 망명중이었을 때, 당시에 예배할 수 있는 장소가 무하마드의 집뿐이었는데, 그 집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예배를 봤습니다.

-그런데 무하마드가 죽고 나서 무하마드의 계승자 우마르가 거의 맨 먼저 개악을 한 것 중의 하나가 '남자와 여자는 예배를 따로 봐야 한다'는 법률을 정한 겁니다. 무하마드의 원래 육성을 담은 코란의 기록을 보면 여성의 권리를 상당 부분 주장했습니다. 이혼권이나 피임권리나 유산상속권이나, 여자와 남자는 원래 알라신에 의해서 평등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등 여성 권리에 대한 주장들이 상당히 많은데, 나중의 이슬람 율법을 보면 이게 상당 부분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슬람권의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상당 부분 서구의 페미니즘에서도 영감을 받지만, '무하마드의 진짜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슬람을 페미니즘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슬람을 보든, 기독교를 보든, 불교를 보든 우리가 살고 있는 계급 사회에서 고등 종교의 스토리는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제가 뭔가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기존 종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것을 결론 삼아 끝내겠습니다.

 

 

 



-결국 지금 성직자 집단이 대표하는 기존의 제도권 종교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 가르침은 그 종교를 만들었다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사실, 옛날에 한용운 스님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만약 붓다의 가르침이 맞다면 나도 붓다가 될 수 있는 존재인데 왜 사찰에 가서 불상 앞에 절해야 하는가. 나 자신에게 절해도 되는데" 하고 말했습니다. 또는 "명부전에 가서 부모님들이나 내 자신이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 재판관한테 뇌물 주는 것하고 무엇이 다르냐. 결국에는 내가 죄가 없으면 왕생할 거고 죄가 있다면 아무리 빌어도 안 될 텐데, 뇌물 주듯이 비는 게 다 뭐냐" 하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살려서 우리가 기존 종교가 분명히 그 원래 정신과 다른 부분을 당연히 비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맑스주의자가 된다 하더라도 속류 맑시스트나 스탈린주의자들처럼 '종교, 그 정체는 무용지물이다. 마약이다' 하고 버리기보다는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의 진짜 의지가 무엇이었는지, 왜 그 사람들한테 그렇게 많은 민중이 모였는지, 왜 그 사람들이 지금도 민중한테 이렇게 귀중한 이름들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베네수엘라의 수많은 빈민들의 집에 딱 두 개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차베스 대통령이죠. 그러니까 양쪽을 상당히 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하여튼 왜 하필이면 수많은 빈민들한테 예수는 지금도 이렇게 영감을 주는지, 우리가 진정한 맑시스트라면 스탈린주의 식으로 종교를 무조건 팽개치기보다는 종교를 비판함과 동시에 종교에 대한, 원래 종교의 모습에 대해 나름으로 애착을 가지는 것도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사실 이 문제는 러시아의 볼셰비키들에게도 고전적인 문제였다. '건신론(God-building)'을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이다. 고리키의 <어머니>나 <고백> 같은 작품에는 그런 문제의식이 많이 반영돼 있다. '오래된 미래'는 '종교-진보운동-사회주의'의 문제에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적 예수의 삶으로부터 진보운동의 영감을 얻고자 하는 김규항의 경우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06. 0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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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04-22 13:56   좋아요 0 | URL
좀 길어서 일단 퍼갑니다. ^^;; 곧 읽고 답글 다시 달겠습니다. ~

로쟈 2006-04-23 02:22   좋아요 0 | URL
마이페이퍼 쓰기의 툴바가 말썽이어서 매번 작업이 지체되고 있는데, 벌써 퍼가셨군요.^^

와넬 2006-05-11 14:02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푸른하늘 2006-05-21 18:20   좋아요 0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평소 한국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 논지를 취하고 있었던 저에게 상당히 공감을 주는 글입니다..

로쟈 2006-05-21 18:39   좋아요 0 | URL
좋은 글이 아니라 '좋은 강연'입니다.^^

곰돌이 2006-07-13 10:04   좋아요 0 | URL
박노자 교수... 어떻게 이렇게 민감하고 어려운 주제를 이렇게 너무나 쉽게 잘 전달할 수 있는지... 그 능력에 혀를 내두룰 수 밖에 없네요... 정리 감사하구요 퍼갈게요.

비로그인 2009-02-03 16:28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제 개인홈으로 퍼가도 될까요? 물론 출처는 밝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