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국일보(06. 05. 23)의 '이재현의 가상 인터뷰' 꼭지는 최근에 <모크샤>(싸이북스, 2006)가 출간됨으로써 다시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영국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1894-1963) 편을 다루고 있다. 매주 화요일 연재되는 이 '가상 인터뷰'들 가운데 내가 전문을 다 읽은 건 이번 헉슬리 편이 처음이다. 그건 그만큼 이 신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최근에 나온 책들' 코너에서 번듯하게 소개하려고 했지만, 지난 주말 한겨레의 리뷰를 비롯해서 언론에서 비교적 크게 다루고 있기에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에 대해서 몇 마디 하기가 어렵게 돼 버렸다. 해서, 일단은 그 '대안'으로 이 가상 인터뷰를 옮겨오고 몇 마디 군소리를 덧붙인다.

-영국의 소설가, 시인, 비평가. 그의 대표작은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룬 고전 소설인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ㆍ1932)이다. 원래 이 소설은 그의 친구인 생물학자 홀데인(J. B. S. Haldane)이 에세이 <다이달로스 혹은 과학과 미래>(Daedalus, or, Science and the Futureㆍ1923)에서 미래 사회의 과학기술의 진보를 너무 낙관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으로 묘사했던 것에 대한 비판적 대응으로 쓰여졌다.

-헉슬리보다 먼저 철학자 버트랜드 러셀도 에세이 <이카로스 혹은 과학의 미래>(Icarus, or The Future of Scienceㆍ1924)에서 홀데인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다룬 바 있다.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는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로 밀랍으로 만든 날개로 하늘을 날려고 시도한다. 유토피아의 반대말인 디스토피아(dystopia)는 가상적 미래 세계가 우리가 사는 현재의 세계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1953년 헉슬리는 정신과 의사 입회 하에 환각제 메스칼린을 복용한 이래 10년에 걸쳐 메스칼린 네 번, LSD 네 번, 사일러사이빈 두 번 등 총 10번의 환각제 복용에 의한 환각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메스칼린은 미국 남서부 인디언들이 애용했던 페요테 선인장에서, LSD는 맥각균으로부터, 사일러사이빈은 멕시코 무당들이 신성시했던 버섯으로부터 합성 추출해낸 환각 물질이다. 헉슬리는 자신의 환각 체험에 기대서 사이키델릭 문화의 고전, 또는 히피의 경전이라고 이야기되는 에세이 <지각의 문>(1954), <천국과 지옥>(1956) 등을 집필했다(*<지각의 문>에서 그룹 '도어즈'이 이름이 탄생했다고 한다). 헉슬리는 시인 윌리엄 버로우즈, 심리학자 티모시 리어리와 더불어 20세기 사이키델릭 문화의 선구적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이재현(이하 현): 선생님, 최근 한국에서 선생님의 저서가 번역되었습니다. <모크샤>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약물 복용에 의한 환각 체험을 다룬 각종 에세이, 칼럼, 강연, 인터뷰, 서신, 르포 등을 엮은 책이지요. ‘환각의 사회문화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요.

헉슬리: 모크샤(Moksha)란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해방 또는 해탈을 뜻한다네. 내가 말년에 쓴 다른 소설 <섬>(1962)에서 가상의 섬 주민들이 복용하는 환각제의 이름이기도 하지.



현: <멋진 신세계>의 등장 인물들은 ‘소마’(Soma)라는 약물을 복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던데, 소마와 모크샤는 어떻게 다른가요?

헉슬리: 소마는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통치 수단이고, 모크샤는 정신이 고양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이지. 중독성이 있는 소마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도피를 하게 만들지만 모크샤는 그렇지 않네.

현: 선생님의 관점이 바뀐 것이로군요. 그 사이에 선생님의 환각 체험들이 있었던 것이구요.

헉슬리: <지각의 문>에서 썼던 것처럼 우리 지각의 문은 평소에 흐려져 있네. 내 주장의 요점은 환각 체험에 의해서만 그 흐려진 지각의 문이 열린다는 거지.

 

 

 



현: <지각의 문>이라는 구절은 낭만주의 시인이자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예언서 <천국과 지옥의 결혼>에서 인용한 것이고, 록 그룹 도어즈의 이름은 바로 선생님의 글 <지각의 문>에서 따온 것이지요?

헉슬리: 판타지 소설 <나르니아 연대기>의 저자로 알려진 C. S. 루이스의 <위대한 이혼>도 바로 블레이크의 그 작품과 연관이 있네만, 블레이크의 원작에서의 해당 대목은 이러 하다네. “지각의 문이 깨끗이 닦인다면/ 모든 것은 인간에게 있는 그대로 무한하게 나타나리라/ 왜냐하면 인간은 그 스스로를 이미 닫아버렸기에/ 그의 동굴의 좁은 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때까지.”

현: 블레이크는 <신곡>의 단테나 <실락원>의 밀튼과는 달리, 지옥을 처벌의 장소가 아니라 디오니소스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장소로 보았던 거로군요.

헉슬리: 그렇지. 블레이크의 관점에서는 천국이야말로 지각이 통제되어 있는 권위주의적인 시스템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지. 블레이크의 목적은 관습적인 윤리와 제도적 종교의 억압적 성격을 사람들에게 밝히려고 했던 거야. 그 당시로서는 매우 전복적이고 선구적인 주장이었지.

현: 그럼, 선생님은 환각제의 복용을 옹호하시는 겁니까?

헉슬리: 나는 환각제 복용이 부정적인 효과를 줄 수도 있고 중독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경고해 왔네. 다만 우리의 제한된 지각의 틀을 넘어서는 초월의 계기를 환각제 복용이 가능하게 해 준다는 것이지.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환각제를 복용하면 좋다는 얘기야. 환각제를 달리 정신 활성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도 다 그 때문이지.

현: 그러니까, 선생님의 주장은 일부 환각제가 술이나 담배, 혹은 의사가 처방해주는 각종 수면제나 진정제보다도 훨씬 더 그 사회적, 문화적 효용이 뛰어나다는 것인가요?

 

 

 


헉슬리: 대마초는 담배보다 중독성도 덜하고 부정적 효과도 없다네(*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옹호는 고종석의 <코드 훔치기>에서도 읽을 수 있다. 가끔씩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마초 파동'은 도덕적 알리바이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또 인류는 알콜 중독으로 인해서 매년 천문학적인 돈을 써버리고 있어. 이러저러한 비용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또 금지한다고 해서 환각 체험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환각제를 지혜롭게 사용하자는 게 내 주장이야. 내가 해 본 바로는 메스칼린, LSD, 그리고 사일러사이빈은 대마초보다도 부작용이나 중독성이 덜한 반면 그 효과는 훨씬 더 뛰어난 환각제일세.



현: 저는 해보지 않아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헉슬리: 환각 체험을 통해 내가 추구하려는 초월은 인간 정신 속의 또 다른 가능 세계로 가는 것이네. 이 세계는 평소에 우리가 자각하고 있는 의식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인데, 환각제가 아니면 맛볼 수 없다는 게 내 주장일세.

현: 그 초월적 환각은 종교적이거나 예술적인 체험에 의한 것과는 어떻게 다른 건지요?

헉슬리: 크게 보면 한편으로 같은 것이기도 하고, 달리 보면 종교나 예술에서의 초월은 아무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지. 반면에 환각제는….

현: 그렇지만 환각제의 부작용이나 중독성은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데요?

헉슬리: 아까 얘기한 대로 그 부작용이나 중독성은 담배나 술보다 덜 하다니까 그러는군, 자네는. 문제는 그것들에 빠져서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길을 찾는 거야.

현: 하지만 환각제 복용은 한국에서 아예 토론의 여지가 없는 이슈예요. 무조건 나쁘다는 거지요.

헉슬리: 그것은 사회문화적 관습에 해당하는 것이네.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에서는 이런 이슈가 과학적, 심리학적, 정치적으로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반면에 한국에서는 애당초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일 뿐이네. 내 관점에서는 의사가 처방해주는 신경안정제야말로 아편과 마찬가지로 나쁜 것이라네. 어쨌든 간에 모든 마취제, 흥분제, 진정제, 환각제들은 원시인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태고적부터 쓰인 것이지. 그 역사를 무시할 수는 없는 거야. 이런 맥락에서 나는 “아편은 인민의 종교”라고 했던 것이네.

(*)이에 대한 흥미로운 저작이 오오키 고오스케의 <마약-뇌-문명>(정신세계사, 1991)이다. 요점은 우리 뇌 안에 마약 수용체가 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마약복용도 가능하다는 것. 그러니까 마약에는 체내마약과 체외마약이 있으며, 우리 스스로가 마약의 기운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 한가지는 체내마약으로서의 도파민이 문명의 산파라는 것.  

현: 그 말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말을 패러디한 것인데요. 선생님은 마르크스주의자인가요?

헉슬리: 아닐세. 내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등장인물인 버나드 마르크스와 레니나 크로운이 부정적으로 다뤄지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네. 버나드 쇼와 마르크스, 레닌에 대한 내 평가를 담고 있는 인물들일세.

현: 한국에는 국가보안법이 있어서 사회주의가 법적으로 금지되고 있지요. 그런데 환각제의 복용은 사상적인 범죄보다 더 죄질이 나쁜 것으로 처리가 되어왔습니다.

헉슬리: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네. 내 관점에서는 아파트 평수를 늘리려 한다든가 배기량이 더 큰 차를 사려고 한다든가 아이들을 일류대학 보내려고 노심초사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으로 심각한 중독 현상이라네.

현: (허걱!) 선생님 말씀은 마치 그런 일들이 범죄일 수도 있다는 걸 함축하고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얘깁니다.

헉슬리: 그렇게 타협적, 패배주의적으로 얘기해버린다면 자네는 ‘짝퉁’ 지식인에 불과한 거라네. 내 주장은 이 모든 것에 관해서 편견 없이 차근차근 제대로 따져보자는 것일세.

현: 글쎄요? 요즘 한국 정치판에서는 짝퉁이 명품보다 더 인기가 있어요.

헉슬리: 그럴수록 환각 체험이 더 필요한 거라고도 할 수 있다네. 내 책에서 말했듯이 “환각 체험은 아름다움과 참됨, 강렬한 미와 강렬한 진실이 동시에 드러나는 것”이라네.

현: (헉) 더 생각하고 고민해 봐야 할 문제로군요, 선생님 주장은. 아무튼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06. 05. 23.

 

 

 

 

P.S. 참고로, 한국대중문화의 키워더 가운데 하나인 '대마초 사건'에 관한 기사를 옮겨온다. 필자는 대중예술평론가인 이영미이며, '한겨레21'(546호, 2005. 02. 02)에 실렸던 내용이다. 제목은 '노래 군기, 확실히 잡다'.

-1975년 대마초 사건은 청년문화의 자유주의적 분위기를 일소하기 위해 유신정권이 만들어낸 기막힌 사건이었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포크나 록을 하던 가수 윤형주·김세환·신중현·김추자·이장희 등과 영화감독 이장호에 이르기까지 청년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던 대중예술인들을, 대마초를 피웠다고 구속하고 공식 활동을 완전히 금지해버렸다.

-대마초 바람은 1960년대 미국의 히피이즘에서 우리나라 청년문화로 스며들었다. 우리의 청년문화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에서는 미국의 그것과 일치했으나 미국의 반전과 평화, 반청교도주의를 표방했던 ‘60년대 정신’과는 달리 일제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전후세대들의 새로운 대중문화·생활문화 세대교체 바람이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말하자면 미국 청년문화에서 대마초나 마약이 프로테스탄티즘이나 월남전 징집에 대한 반항의 표현이었던 것에 견줘, 우리에게는 그러한 사회의식을 동반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당시 젊은이들이 대마초에 대해 마약으로서의 의식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삼베의 재료인 대마는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며 담배 피우듯 할 수 있는 새로운 기호품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우리의 청년문화가 그다지 높은 사회의식이나 정치의식을 동반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전 사회를 군대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싶어했던 유신정권으로서는 그 정도의 자유주의적 분위기를 허용할 수 없었다. 파시즘은 취향의 영역까지 파고들어왔으며, 노래나 영화 같은 예술은 물론이고 패션이나 언어습관까지 통제하고 싶어했다. 이미 대마초 사건이 일어나기 몇년 전부터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경범죄로 처벌하기 시작했다. 외래어로 된 가수 이름은 양파들(어니언스), 토끼소녀(바니걸즈), 김세나(김세레나) 등으로 바꿔야 했고 “긴 머리 짧은 치마 아름다운 그녀를 보면”(<토요일밤에>)의 가사가 “긴 머리 분홍치마”로 바뀌는 해프닝이 속출했다.

-어떻게든 이 체제에서 살아남아 활동을 계속해보려던 이들의 노력은 확연했다. 조영남은 방송에서 김민기의 <아침이슬>의 “태양은 묘지 위에”를 “대지 위에”로 바꿔 불렀고, 쉐그린은 아예 “어머님의 말씀 안 듣고 머리 긴 채로 명동 나갔죠.… 바로 그때 이것 참 큰일났군요. 아저씨가 오라고 해요./ 어머님의 말씀 안 듣고 짧은 치마 입고 명동 나갔죠.”(<어머님 말씀>) 같은 ‘건전한’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일찌감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같은 건전가요를 지었던 신중현은 1975년에 나온 음반에서 <뭉치자> 같은 노골적인 건전가요를 지어 부르는 ‘성의’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소용없이 그는 대마초 사건의 수괴로 지목돼 구속됐다.

-대마초 사건은 1970년대 대중예술사의 전·후반기를 나누는 결정적인 사건이 됐다. 이전까지는 일부 대학생·고등학생들의 전유물이었던 포크와 록이 1974년 드디어 어니언스의 <편지>와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으로 남진과 나훈아를 제치고 최고 인기가요가 되고, 영화계에선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과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이 완전히 대세를 장악하던 상황은, 대마초 사건으로 급전직하의 국면을 맞이했다. 상당수의 대중예술인이 활동을 할 수 없게 됐고, 포크와 록은 트로트 등 기성의 취향과 결합해 기성 가요계로 편입됐다. 이제 가수들은, 청바지가 아니라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성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노래를 불렀다. 박정희 정권은 이렇게 대마초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군기를 잡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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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4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5-24 10:26   좋아요 0 | URL
**님/ 퍼가셔도 됩니다. 한데, 이미지 하나가 먹통이 됐네요...

비로그인 2008-09-03 08:57   좋아요 0 | URL
저도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