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담을 엮은 <테러시대의 철학>(문학과지성사, 2004)을 어디에다 두었는지 찾지 못해서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대출했는데, 복사한 영어본도 눈에 띄지 않아 그마저도 대출했다. 이럴 땐 '소장도서'란 말이 아주 무색하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아마도 2005년쯤인가 훑어보았는데, 얼마전 <데리다-하버마스 읽기(The Derrida-Habermas Reader)>(2006)를 구입한 김에 다시 정독해볼 요량으로 찾았던 것이다.

사실 수전 손택의 <문학은 자유다>(이후, 2007)에 대한 페이퍼를 써두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얘기가 좀 길어질 듯해서다) 잠시 펼쳐든 게 <테러시대의 철학>인데, 펴자 마자 또 오역이 눈에 띄기에 교정해둔다. 문제의 대목은 서론의 '철학이 역사에 관해 말할 것이 있는가?'란 절에 나온다. 첫문장이다.

"철학이 보편적 원리들과 역사의 개별 사건들을 연구한 이래로 '시조차도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랑스럽게 선언하였다."(22쪽)

 

 

 

 

이건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내용이다(국역본에서 전후맥락을 더 옮겨놓았으면 싶지만 네댓 권이나 갖고 있는 <시학>이 한권도 눈에 띄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얼핏 그런가 보다 싶지만 '시조차도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란 명제가 성립하기 위한 전제가 번역문에는 주어져 있지 않다. 원문을 전혀 엉뚱하게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원문은 이렇다.

"Aristotle famously declared that since philosophy studies universal principles and history, singular events, "even poetry is more philosophical than history.""(2쪽)

국역본은 'since'를 '-이래로'로 옮겼는데, 여기서는 '-이기 때문에'란 뜻이다. 그리고 'history'와 'singular events' 사이에는 동사 'studies'가 생략됐다. 다시 옮기면, "유명한 말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은 보편적인 원리들을 탐구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사건들을 다루기 때문에 '시조차도 역사보다는 더 철학적'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철학과 역사의 대비는 보편성 대 개별성의 대비이다. 그렇다면 시가 역사보다 철학적이라는 말은 역사보다 더 보편적이라는 뜻이겠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시'라는 말로 염두에 두고 있는 장르는 '비극'이다(알다시피 <시학>은 내용상 '극작술'을 다룬 책이다). "비극은 인간 존재를 움직이는 일련의 감정들을 합리적이고 보편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철학과 유사한 길을 가고 있다."(22쪽)란 내용이 뒤이어 나오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뒤집어 말하면, 철학은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말할 것이 없다.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역사에 대한 철학의 무관심은 18세기 중반까지 서구의 전통을 지배"했던 것이다(주목할 만한 예외는 비코 정도이다).

대담자이자 해제의 필자인 보라도리가 '철학이 역사에 관해 말할 것이 있는가?'란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하에서이다. 과연 철학은 9.11에 대해서 뭔가 말할 수 있는가, 란 의혹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서양철학적 전통에서는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필자는 그러한 의혹에 맞서서 철학이 9.11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더러 말해야만 하는 책임까지도 진다고 주장한다. 데리다와 하버마스, 당대 최고의 두 철학자를 대담의 자리에 부른 것은 그런 취지에서다. <테러시대의 철학>은 그렇게 시작된다, 시작되어야 한다...

08.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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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8-01-05 03:11   좋아요 0 | URL
또 하나의 통찰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08-01-05 09:34   좋아요 0 | URL
통찰은 철학자들의 몫이죠...
 

작년 세밑에 나온 책 중의 하나는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2000)와 <독서일기>(생각의나무, 2006)의 저자로 잘 알려진 알베르토 망구엘의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산책자, 2007)이다. 찾아보니 작년초에는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웅진지식하우스, 2007)이란 책이 출간됐었다. "보르헤스에 대한 오마주이자, 날카롭고도 엉뚱한 유머를 구사하는 문학 미스터리"라는 후자와는 달리 영어본의 제목이 'With Borges'인 전자는 말 그대로 '보르헤스와 함께 한 날들'에 대한 기록이고 증언이다(책의 부제는 '열여섯 소년, 거장 보르헤스와 함께 책을 읽다'이다). 갖고 있던 보르헤스 전기를 꼼꼼히 읽어보지 않은 탓에 망구엘이 국립도서관장 보르헤스의 '책 읽어주는 남자'였던 건 알았지만 불과 16살의 서점직원이었다는 건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분량이 소략해서 약간 아쉬움을 남기는 책인데, 좀더 두툼한 보르헤스 전기를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게 한다. 김홍근의 <보르헤스 문학전기>(솔출판사, 2005)를 어디에 두었더라... 

한국일보(08. 01. 05) 보르헤스에게 책 읽어주던 소년 老 작가의 '도서관 낙원' 엿보다

1964년 어느날 초저녁,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구미문학 전문서점 ‘피그말리온’에 단골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가 찾아왔다. 당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소설가이자, 국립도서관장이었던 보르헤스는 16세의 서점 직원인 알베르토 망구엘(1948~)에게 “저녁에 집에 와서 책을 읽어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유전적으로 약한 시력을 타고난 보르헤스는 30세 무렵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다가 50년대 후반엔 실명한 상태였다. 지금은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소설가로 활약 중인 망구엘은 문호의 청을 받아들여 일주일에 서너 번씩 4년간 보르헤스가 노모와 함께 사는 작은 아파트를 드나들었다. 이 책은 망구엘이 책을 읽어주러, 구술 작품을 받아쓰러 다니며 보고 들은 보르헤스에 관한 기록이다. 100쪽 가량의 본문 분량(남은 60여 쪽엔 보스헤스의 생애ㆍ작품 해설, 연대기, 어록이 실렸다)이 말해주듯 세세하고 정치한 기록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스페인어 원서를 출간한 것이 2004년, 그 시절을 40년쯤 흘려보내고 난 뒤다. 망구엘도 “이건 기억이 아니다. 이건 기억의 기억의 기억”이며 “기억들을 일으킨 사건들은 몇 개의 잔상, 몇 개의 낱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고백한다.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다. 책 1권을 독자 100명이 읽으면 100권의 책이 탄생한다는 것이 당시로선 선구적인 보르헤스의 지론이었다. 망구엘은 작가를 두 부류, “세계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내려는 작가”와 “그보다 드물기는 하지만 세계가 한 권의 책이어서 본인과 다른 이들을 위해 그 책을 읽으려는 작가”로 나누고 보르헤스는 단연 후자라고 썼다.

보르헤스는 존재와 세계를 해석의 여지가 무한히 열린 텍스트로 본 것이고, 그 점에서 이 책은 매우 보르헤스적인 보르헤스에 관한 글쓰기다. 저자는 보르헤스의 독서를 공들여 서술한다. 그는 처음 보르헤스의 서재를 봤을 때 “낙원을 도서관의 형태로 상상한다는 사람의 서재치고는” 규모가 작아 실망했다고 말한다. 낡은 책꽂이는 키플링, 스티븐슨, 체스터턴,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마크 트웨인 등 영미 작가 작품과 쇼펜하우어, 슈펭글러, 기번, 리하르트 마이어 등의 철학ㆍ역사서로 소박했다. 하지만 곧 노작가에게 장서의 양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곧 깨닫는다. 스스로 ‘쓰레기 하치장’이라 부른 놀라운 기억력 덕분에 보르헤스는 언제든 필요한 구절을 읊어 인용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는 현실의 정수가 책에 있다고 믿는 텍스트주의자였다. 그는 책을 읽고 쓰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수천 년 전에 시작돼서 한 번도 끝난 적이 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인식했다.” 그에게 역사는 바로 책이었던 셈이다. 망구엘은 책등을 쓰다듬으며 그 제목과 저자를 정확히 알아내는 보르헤스를 묘사하며 “그와 책 사이에는 생리학의 법칙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어떤 관계가 존재한다”고 찬탄한다.

망구엘은 공정한 저자다. 문자를 편애한 탓에 보르헤스가 음악, 그림 등 다른 장르엔 별다른 조예가 없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균형 잡힌 서술 덕에 이 책은 거장의 인간적 약점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르헤스는 자신에게 헌정하는 작품을 낭독하는 작가를 면전에서 모욕하는 심술을 부리거나, 이따금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반면 그는 좋아하는 사랑 노래를 듣고 싶어 여러 번이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보러가자고 어린 조력꾼을 조르거나, 서부극이나 갱 영화를 보며 몰락한 영웅을 눈물로 애도하는 천진한 노인이기도 했다.

“꿈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 시도는 해봤지. 그런데 성공한 적이 없는 것 같아”란 몽상가적 발언을 전하며 저자는 지난 세기를 풍미한 보르헤스의 환상문학의 연원을 보여준다. 라틴문학의 또다른 거장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비오이 카사레스-실비나 오캄포 부부와의 유쾌한 잡담은 보르헤스가 어떤 일상에서 창작의 동력을 얻었는지를 알게 한다.(이훈성기자)

08. 01. 04.

P.S. 유튜브의 자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망구엘과 보르헤스에 관한 영상자료도 올라와 있는데(http://www.youtube.com/watch?v=QX0i5F7P2Dg) 스페인어인지라 고유명사밖에는 알아듣지 못하겠다. 'Manguel'에서 'u'가 묵음이기 때문에 '망겔'이라고 발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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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1-05 01:21   좋아요 0 | URL
'Manguel'의 경우 'u'가 묵음이라기보다는 '헤'로 발음되는 것(예를 들자면, 바로 '보르헤스(Borges)'^^)과 '게'로 발음되는 것을 구분하기 위한 'u'의 사용이 아닌가 합니다. 곧 'gu'가 모음 'e' 앞에 오면 [ge] 발음이 나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또한 그래서 '멋진 오빠' Luis Miguel 또한 '미구엘'이 아니라 '미겔'인 것.^^)

로쟈 2008-01-05 01:55   좋아요 0 | URL
네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네요. 이게 불어도 그렇듯이 g나 q 다음에 'i'나 'e', 'a'가 올 때 그 음가를 보전하기 위해서 사이에 'u'가 들어간다고 고등학교 때(!) 배운 것 같습니다. 최근에 나온 책을 보니 Guattari를 '구아타리'라고 표기했던데(그게 맞다면서) 맞는 건가요?..

람혼 2008-01-06 03:34   좋아요 0 | URL
'e'나 'i' 앞에서는 [g] 발음의 음가를 위해 'g' 다음에 'u'가 붙는 것은 맞는데(예를 들어 'guerre'나 'guide'의 경우), 'a' 앞에서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ga'는 에스파냐어나 프랑스어에서 그대로 [ga]로 발음되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저 또한 실제로는 '관습적으로' Guattari를 '가타리'라고 발음하고 있긴 하지만,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gua-'는 [gwa-]로 발음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곧 일관된 표기법과 발음법에 따르자면 정확히는 '과타리'나 '구아타리'가 맞는 것이겠죠(개인적으로는 '과타리'라는 표기를 더 선호하게 되네요).

로쟈 2008-01-06 09:12   좋아요 0 | URL
애초에 '과타리'란 표기도 쓰였었는데, 어떻게 '가타리'로 굳어진 것인지 궁금하네요. 이 경우엔 관행을 존중해야 할지 발음을 존중해야 할지 헷갈립니다('구아타리'는 물론 오버 같고)...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다. 1월 4일이 그의 기일이라고 한다. 덕분에 카뮈와 함께, 그리고 <이방인>과 함께 스물 살 청춘을 잠시 떠올려본다. <이방인>을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지만, <시지프의 신화>를 읽은 건 아마도 만 열아홉 살 때였을 것이다. <이방인>을 더 읽은 기억은 없지만 <시지프의 신화>는 한두 번 더 읽었던 듯하다. 한때는 불어로 <이방인>을 읽어볼까도 했었는데, 이젠 러시아어본과 함께 <이방인>을 읽는 건 어떨까 생각해본다. 아마 생각으로 그칠 것이다. '이방인'으로 살기엔 '스케줄'이 너무 빡빡하다...

한국일보(08. 01. 04) [오늘의 책<1월 4일>] 이방인

1960년 1월 4일 알베르 카뮈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숨졌다. 47세였다. 그는 여전히 신화다. “카뮈는 소설가도 철학자도 아니다. 그는 예술가이며 신화의 창조자다.”(로제 키요의 <이방인> 50주년 기념 논문에서)

카뮈의 첫 소설 <이방인>이 출판된 것은 파리가 나치 점령 하에 있던 1942년 7월이다. 알제리의 평범한 샐러리맨 뫼르소, 어머니가 죽은 다음날 지중해에서 여자친구와 해수욕을 하고 정사를 가지는 그는 며칠 후에는 친구와 불량배들과의 싸움에 말려들어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재판에서 ‘태양 때문에’ 살인을 했다며 속죄를 거부한 뫼르소가 사형선고를 받고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써 나를 맞아” 주기만을 바라는 것으로 <이방인>은 끝맺는다.

“이 인물을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 것일까?” 사르트르는 이렇게 물었다. 카뮈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20세기 후반의 세계와 인생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질문, ‘부조리’라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이방인>이 부조리에 대한 카뮈의 사상을 이야기로 쓴 것이라면, 그가 몇 개월 후에 출간한 <시지프의 신화>는 그 주석에 해당한다. “비록 인간의 삶이 부조리한 것이라 해도, 난 계속해서 ‘오직’ 인간이기를 원한다… ‘인간적이지 못한’ 신의 구원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며, 미래나 영원에 대해 희망이나 기대를 갖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의 삶에 충실할 것이다.” 카뮈에게 시지프의 형벌은 ‘위대한 행복’이었고,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 싸우는 ‘반항’이야말로 그가 본 인간의 운명이었다.(하종오기자)

08. 01. 04.

P.S. 유튜브에서 카뮈의 육성을 옮겨온다(http://www.youtube.com/watch?v=_d8iXGHwG-s). <이방인>의 첫 대목을 읽는 카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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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8-01-04 01:17   좋아요 0 | URL
그럼 바로 오늘이 카뮈의 기일이군요.
새벽이라 그런가. 갑자기 그 얘길 들으니 마음이 짠해지고 난리네요 그냥. -_-
스무살의 젊은 지성들에게 한번쯤 꼭 권해주고픈 작가에요. 카뮈는.

로쟈 2008-01-04 01:28   좋아요 0 | URL
'스무살, 내 청춘'에 가장 어울리는 작가죠.^^

겨울나기 2008-01-04 01:49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이방인의 뫼르소가 하는 말을 이해했다고 생각 했는데..지금 보니 어렵네요.
사실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 쿨해보이는 인상에만 심취한듯해요. 아 어렵다.

로쟈 2008-01-04 16:38   좋아요 0 | URL
뫼르소-카뮈는 문학의 제임스 딘이죠. 인상만으로도 한 포스 하는...

이네파벨 2008-01-04 09:35   좋아요 0 | URL
하핫 가운데 있는 카뮈의 저 사진...
어릴적...저 사진의 포스터(?)를 어떻게 구해서...제 방에 걸어놓았더랬죠...
(원래 전신사진 아닌가요? 저 컷은 원래 사진의 일부이고...
비오는 날..바닥에 괸 물에 그림자가 반질반질하게 비치는 광경이 멋지게 포착된..꽤 유명한 사진작가의 사진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아닐수도 있고요..제 기억이 거의 엉킨 스파게티 수준이라..ㅠ.ㅠ)
암튼 웬만한 영화배우는 울고갈 외모죠^^

오늘이 그의 기일이군요...
“카뮈는 소설가도 철학자도 아니다. 그는 예술가이며 신화의 창조자다."라는 인용문에 동감 한 표입니다.

저는 중학교때 나름 불문학에 심취(???) 했더랬지요...
계기는 집에있는 몇십권짜리 문학전집 속에 있는 사르트르의 <파리떼>라는 희곡...
그 책 빼고는 사르트르의 다른 책들은 거의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책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저에겐 epiphany의 체험을 준 책이라...
어린 맘에 사르트르를 마구 사랑하고..보봐르에 자신을 동일시하며..(그녀의 소설들은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유치한 감이...ㅡ,.ㅡ...하지만 그녀의 자서전 <처녀시절>은 책장이 다 떨어지도록 읽었더랬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까뮈...
까뮈의 책들은 다..........좋아했어요.
소설들도 사르트르보다 접근하기 쉬웠고...
<결혼.여름>이라는 수필집은 어찌나 아름다웠는지....(그가 철학자가 아니라 예술가라는 말에 공감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죠...그의 탐미적 문체..삶과 욕망, 쾌락에 대한 긍정...)

번역하신 김화영교수님에게까지 동경과 존경의 염을 품고...막연히..나중에 그 분의 제자가 되어 불문학을 공부하고싶다는 생각을 했더랬죠...
(그러다가 불어를 안배우는 고등학교로 배정받아 그 꿈은 간단히 깨져버렸습니다. 어쩌다보니 중3때부터 완전 이과체질로 변신하면서...문학에 대한 관심도 식고요...)

아...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예전에 사랑했던 책들과 다시 만나고픈 마음이 간절한 요즘입니다..

좋은 소개 감사해요~

로쟈 2008-01-04 16:37   좋아요 0 | URL
카뮈의 팬이셨군요. 아니 까뮈!^^

마늘빵 2008-01-04 09:49   좋아요 0 | URL
오늘 그래서 네이버 오늘의 책에도 이방인이 걸려있던거군요.

로쟈 2008-01-04 16:37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람혼 2008-01-05 01:26   좋아요 0 | URL
저는 얼마 전 연말 공연에서 '랜덤으로' 관객에게 <시지프의 신화>를 선물했었는데... 아마도 그 선물을 받았던 관객도 거의 <시지프의 신화>를 처음 읽으셨던 때 즈음의 로쟈님 나이와 비슷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로쟈 2008-01-05 09:51   좋아요 0 | URL
아주 '부조리한' 공연 광경입니다.^^
 

파트리샤 피스터르스의 <시각문화의 매트릭스>(철학과현실사, 2007)도 출간된 김에(신뢰할 만한 번역서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들뢰즈와 영화' 읽기를 다시 시도한다. 개인적인 필요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이 철학자의 딸이 영화감독인 걸 보면 들뢰즈는 정말로 '영화 애호가'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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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문화의 매트릭스- 들뢰즈와 함께 보는 현대 영화
파트리샤 피스터르스 지음, 정민아 옮김 / 철학과현실사 / 2007년 12월
20,000원 → 20,000원(0%할인) / 마일리지 0원(0%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8년 01월 04일에 저장

시네마 1- 운동-이미지
질 들뢰즈 지음, 유진상 옮김 / 시각과언어 / 2002년 6월
17,000원 → 16,150원(5%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2008년 01월 04일에 저장
품절
시네마 2- 시간-이미지
질 들뢰즈 지음, 이정하 옮김 / 시각과언어 / 2005년 6월
25,000원 → 23,750원(5%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08년 01월 04일에 저장
품절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 영화를 읽는 강력한 사유, <시네마>에 대한 예술철학적 접근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 지음, 김지훈 옮김 / 그린비 / 2005년 5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08년 01월 04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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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1-05 01:32   좋아요 0 | URL
2000년도 계간지 <세계의 문학>의 어느 호를 통해서였던가요, 들뢰즈의 글 <뇌는 스크린이다>가 번역 소개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로쟈 2008-01-05 01:56   좋아요 0 | URL
플랙스먼의 책에도 들어가 있는 듯한데요...
 

저녁에 서가에서 생각없이 빼어든 책이 안광복의 <처음 읽는 서양철학사>(웅진지식하우스, 2007)이다. 아마도 새해초라는 '시간의식'이 '처음 읽는'이란 제목에 눈길이 가도록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는 대학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즐겁게 철학하기'를 실천하고 있다고.

 

 

 

 

내가 처음 읽은 철학사는 예전에 적은 대로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문예출판사)였는데, 그게 고3 겨울방학 때였으니 21년 전 이맘때이다. 아마도 대학의 논술시험을 앞두고 있었던 듯한데, 합격자 발표 이전인지 이후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그런 와중에 읽은 책이 <철학이야기>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었다(<중국철학 이야기>란 얇은 책도 있었다). 지금의 고3 혹은 예비 대학생이라면 어떤 책을 '처음 읽는 철학책'으로 고를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지난 달인가 검토해보려고 했던 책이 바로 안광복의 <처음 읽는 서양철학사>와 남경태의 <철학>(들녘, 2007) 등이었다(김민철의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그린비, 2007)는 아직 구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검토는 나중의 일이더라도 잠깐 펼쳐든 김에 두 권에 대한 간략한 인상을 적는다. 빌미가 된 건 얼핏 발견한 오류들이다. 별로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여하튼 어떤 책을 읽든지 간에 오탈자와 오류들에 눈길이 가는 게 거의 습관이 돼 버렸다. 이걸로 밥벌이를 하는 건 아니지만 일종의 '직업병'이다(직간접적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관여해온 탓이다).   

"철학은 정신의 체조"라고 정의하는 저자는 <처음 읽는 서양철학사>에서 모두 38명의 철학자를 다루고 있다. 체조의 38개 동작쯤 될까? 예상할 수 있는 바이지만 개별 철학자들에 대한 소개는 너무 소략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나 같은 독자를 염두에 둔 책은 아니니 나의 투정은 군소리에 불과하겠지만. 저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책은 <고교독서평설>에 연재한 '인물철학사'를 묶은 것이다. 거기서 초점은 '철학'보다는 '인물'에 더 맞춰져 있어서 각 꼭지는 대부분 개별 철학자들의 삶에 대한 요약으로 채워져 있다. "철학 사상을 이해하고 싶다면 철학자들의 삶을 먼저 꼼꼼하게 살펴보자"(5쪽)는 게 저자의 기본 입장.

나는 책의 마지막 꼭지부터 잠시 읽기 시작했는데 '이해는 역사적이다'란 장이 다루고 있는 철학자는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1900-2002)이다. 첫문단은 이렇다.

"가다머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변할 때면 언제나 '그건 내가 잘 모르는 것'이라는 말을 먼저 했단다. 그는 우호적이고 개방적이며 관대했을 뿐 아니라, 더 알고 싶어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여든 살이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을 때도, 당시에는 피라미 대학 강사에 지나지 않았던 로티의 강의를 열심히 청강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436쪽)

여기에 무슨 오류가 있는가? 마지막 문장이다. 가다머가 여든 살이 넘었을 때면 1980년대인데, 그때 작년에 세상을 떠난 철학자 리처드 로티(1931-2007)가 고작 '피라미 대학 강사'에 지나지 않았다는 건 또 다른 로티가 있지 않는 한 잘못된 정보다. 이미 50년대 말에 대학강단에 선 로티는 1961년부터 1982년까지 프린스턴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이후엔 버지니아대학의 인문학 석좌교수, 그리고 스탠포드대학의 비교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피라미 강사'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가다머의 말버릇처럼 "그건 내가 잘 모르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모를까.

 

 

 

 

알다시피 가다머는 2002년에 백두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주저인 <진리와 방법>이 국내에서는 완역되고 있지 않은 게 유감스럽다. 올해엔 그의 책이나 연구서라도 더 출간되면 좋겠다(국내 필자의 연구서 한 권은 예정돼 있는 듯하지만). 가다머의 책이라면 그의 자서전은 어떨까?

"가다머는 자신의 자서전이나 마찬가지였던 <철학적 수업시대>에서 배움에는 끝이 없음을 강조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대화하고 반성하여 철학적 깨달음을 얻는 삶은 지적이면서도 유쾌하다. 그러나 이는 충고하기는 쉬워도 자신이 하기는 어려운 인생훈이다."(444쪽)

이 <철학적 수업시대>와 함께 소개되었으면 싶은 책은 가다머의 예술론이다. 영역본으로는 <미적인 것의 현실 관여성과 그밖의 에세이>란 제목.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이기에 조만간 소개될 수도 있지 않을까란 기대를 가져본다.

한편, 번역가와 저술가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 남경태의 <철학>은 <처음 읽는 서양철학사>와는 레벨이 좀 다르다. '사유의 예술'로서의 철학을 즐기자고 제안하는 저자는 역사를 '현실의 역사'와 '생각의 역사'로 크게 나누고 이 '생각의 역사'를 철학사로 규정한다. "서양 철학사를 다룬 이 책은 서양 문명사를 구성하는 절반의 역사, 즉 생각의 역사를 일관성의 측면에서 정리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 책 또한 '철학 전문가'를 위한 책은 아니라서 "철학자나 철학의 갈래"를 깊이 파고 들지는 않지만, "구슬을 꿰듯 철학사의 '재료'들을 꿰어 맞추었다는 데" 미덕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상당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하겠다(책의 부제가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다!)

이러한 자신감은 참고문헌은 물론 단 한 개의 각주도 달고 있지 않으면서도 인명의 경우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 '라캉(Jacques Marie Émile Lacan, 1901-1981)'하는 식으로 장황하게 표기해주는 데서도 드러난다. 물론 인명사전을 들추거나 잠깐만 인터넷 검색을 해보아도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긴 하지만.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경우다. 저자는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1991)'(478쪽)라고 적어놓은 것. 올해로 탄생 100년을 맞은 레비스트로스가 이미 17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 그대로 생사람 잡는 오류이다(그가 죽을 때도 되었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물론 기원전 3000년경부터 훑어내려오는 저자의 통큰 철학사 서술의 유창함에 견주어보면 '옥에 티' 정도라고 해야겠지만.

 

 

 

 

레비스트로스 얘기가 나온 김에 올해는 그의 주저들도 마저 소개되었으면 싶다. 대저 <신화학>이야 계속 나올 예정이라고 쳐도 "비록 소쉬르에게 선구자의 명예는 양보했으나 그의 언어학적 사상을 이어받아 구조주의의 기틀을 확립한 사람은 레비스트로스다."(478쪽)라고 할 때 근거가 되는 책, 곧 <구조인류학> 정도는 완역돼 나왔으면 싶은 것이다.

두 권 분량의 이 책은 예전에 <구조인류학>(종로서적, 1987)이라고 절반 정도만 소개됐었다. 이 거장이 타계하기 전에 한국어로 다시 읽어볼 수 있을는지?..

07. 0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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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3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3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엔리꼬 2008-01-03 18:25   좋아요 0 | URL
네이버 레비스트로스 쳐보니 1991년 사망으로 되어 있네요. 네이버는 두산백과사전을 인용했고. 아마도 백과사전 자체가 잘못된 모양입니다.
네이버 만능주의라는 마수의 손길이 여기까지 미친 걸까요? 안그래도 아는 교수님께 전해들었는데, 교수님이 학생의 답변이 틀렸다고 지적했더니 학생 왈 "이거 맞는데요. 이거 네이버에 있는 건데요?' 라고 항변해서 쓴웃음을 지었다는 씁쓸한 이야기가 있네요..

로쟈 2008-01-03 23:26   좋아요 0 | URL
못 믿을 사전이로군요. 레비스트로스가 또 있나 봅니다.^^;

caline 2008-01-04 01:22   좋아요 0 | URL
네이버만이 아니라 의외로 레비스트로스가 91년에 사망했다고 표기한 책이 제법 되는것 같같군요.....일례로 시공 로고스총서 레비스트로서도 그렇게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레이트 한길사에서 나온책에서는 현재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있다라고 만 표기되어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전 오히려 후자가 잘못된 정보인줄 알았다는...^^;

로쟈 2008-01-04 01:27   좋아요 0 | URL
제가 더 신뢰하는 쪽은 위키피디아입니다. 어디에서 사망했다는 얘기는 없는데, '사망설'의 출처가 어딘지 모르겠네요...

caline 2008-01-04 01:33   좋아요 0 | URL
어쨋든 구조주의 빠돌이로서 레비스트로스 영감님이 살아게시다니 괜히 흐뭇하네요..(웃음) 덕분에 러셀경은 장수랭킹 3위로 밀려버렸지만...

로쟈 2008-01-04 16:19   좋아요 0 | URL
'구빠'신가요? 요즘은 '포구빠'들만 워낙에 많아서.^^

테렌티우스 2008-01-05 01:16   좋아요 0 | URL
프랑스판 위키페디아에 1908년 11월 28일 출생 백세 생일을 앞두고 있다고 나오는 걸 보면 아직 안 죽은 거 확실합니다. 프랑스 사람이니 만치 죽었다면 최소한 지성계에선 난리날테고 그렇다면 위키페디아 불어판에 반영이 안 되었을리가 없으니까요...

(잠시후) 르 몽드 사이트에도 죽었다는 기사가 없는 거 보면 레비-스트로스 안 죽은 건 백 프로 확실합니다...^^

근데...철학자들은 좀 오래사는 경향이 있죠? 저도 철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될라나...^^(썰렁~)

로쟈 2008-01-05 01:56   좋아요 0 | URL
요절한 철학자들도 있지 않나요?^^

테렌티우스 2008-01-06 00:47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