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주목하는 작가의 소설집이 출간됐다. 정미경의 <내 아들의 연인>(문학동네, 2008). 표제작 외에 몇 작품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특히 '내 아들의 연인'은 소위 '대한민국 1%'의 내면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특출한 작품이었다. 평론가 김형중의 평을 빌면, "'내 아들의 연인'은 유한계급에 속하는 중년 부인을 화자로 등장시켜 계급간 단절의 강고함을 다룬다. 계급은 경제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부르디외 식으로 표현해 문화적 ‘구별짓기’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사실, 그리고 계급간 갈등이란 강자가 약자에 대해 베푸는 온정이나 약자가 강자에 대해 행사하는 투쟁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란 사실을 세심하게 보여준다. 19세기 영국 소설들의 예에 육박하는 섬세한 세부묘사와 심리묘사가 가히 압권이거니와, 손쉬운 온정주의와 도식적인 화해를 거부한 작가적 치열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내가 바라는 건 이런 작품들을 더 많이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한국일보(08. 06. 14) 자본주의에 새겨진 계층의 골 선연히…

정미경(48ㆍ사진)씨가 2001년 늦깎이 소설가 등단 이후-1987년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됐지만 큰 활동 없이 가정주부로 살아왔다- 보여주는 활력은 대단하다. 2002년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장밋빛 인생>을 비롯한 두 편의 장편과 2004, 2006년 각각 출간한 소설집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소설집을 펴냈다. 200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밤이여 나뉘어라’와 같은 해 한국일보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표제작을 비롯, 수록작 7편은 외적 후광 없이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 완성도를 갖췄다.

한국소설에서 드문 “유한계급의 삶의 세밀한 묘사”(평론가 김형중)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던 표제작은 가난한 여자와 교제하는 아들의 연애를 지켜보는 상류층 여성의 복잡한 심사를 그리고 있다. 가족과 컨테이너에 산다는 아들의 애인을 직접 만나보고 호감을 품으면서도 그녀는 “어째 착 붙는 느낌이 오지 않”음을, 그 이물감이 단순히 “컨테이너 때문은 아니”란 점을 직감한다.
아들의 일기를 통해 두 연인의 관계가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알아채면서 그녀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스스로도 “우울한 안도감”을 느낀다. “현이, 넌 걔의 가난이 싫은 거야. 간단한 얘기 복잡하게 하지 마라.” 끝내 빈부의 아비투스(습속) 차이를 극복 못하는 연애담에, 상류층의 삶의 감각을 보여주는 일상적 에피소드를 여러 겹 덧씌우면서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에 아로새겨진 계층의 골을 선연히 보여준다.

물질사회 속 비틀린 관계의 양상은 ‘너를 사랑해’에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한 재력가의 개인 자산관리사로 고용된 ‘나’는 저조한 실적을 무마하려 7년을 사귀어온 애인 Y를 여동생 친구로 속여 ‘영감’(재력가의 별칭)에게 소개한다. 영감이 Y에게 호의를 품고 물량 공세를 퍼붓는 것은 바라던 바이지만, 영감의 구애에 점차 끌려들어가는 Y를 향한 나의 질투와 원망은 미처 예측 못한 감정이다. 분노와 무기력으로 참담해하는 ‘나’에게 Y가 말한다. “우린 꽤나 멀리 왔어. 돌아서면, 그 순간 우린 둘 다 소금기둥이 되는 거야.” 돈과 욕망을 연료로 폭주하는 영구기관에서 도로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른 다섯 편은 욕망의 문제에 집중한다. ‘밤이여, 나뉘어라’는 의대 출신 영화감독 ‘나’와, 평생 그를 주눅들게 한 의사 친구 P의 이야기다. 주체 못할 재능과 욕망 속에 몰락해가는 P와, 그를 의식하며 꾸려온 자기 삶을 지키고자 친구의 추레한 모습을 기억에서 지우려 하는 ‘나’의 전도된 관계가 삶을 추동하는 욕망의 본질을 들춘다.

어긋난 욕망의 비극적 이중주는 ‘들소’와 ‘매미’에서도 들을 수 있다. ‘바람결에’는 한 불임부부의 거듭된 인공수정 시도가 정상가족 회복의 욕망에서, 파탄난 결혼생활을 기신기신 잇는 수단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묘파한다.

안정된 서사 구조, 미세한 정서를 포착해내는 문장이 정씨의 작품을 빛낸다. “계층이나 직업을 묘사할 때 입체감을 주려 디테일 리서치를 많이 한다”는 작가의 성실성은 의사, 영화감독, 조각가, 대학강사 등 작품집 속에 등장하는 다종한 전문직 종사자들의 생생한 모습을 통해 증명된다.(이훈성기자)

08. 06. 14.

P.S. 작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http://blog.aladin.co.kr/mramor/994556 참조.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연두부 2008-06-1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 읽어볼께요..감솨!

로쟈 2008-06-14 16:21   좋아요 0 | URL
^^

다락방 2008-06-1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신문에서 정미경의 이 소설집이 나왔다는 걸 알고(조선일보였어요 --)앗 정미경이로구나, 하면서 구매하려고 알라딘에 들어왔는데 로쟈님의 이 페이퍼가 있네요. 정미경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국내 작가예요. 그녀의 모든 작품을 읽은 것 같은데(확실치는 않지만) 저는 특히 [장밋빛 인생] 과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가 좋았어요. 로쟈님께서도 주목하시는 작가로군요!

로쟈 2008-06-15 11:04   좋아요 0 | URL
네, 안정감을 주는 작가입니다...

비로그인 2008-06-15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미경의 소설집이 나왔군요. 저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기대가 되네요.

비로그인 2008-06-15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ss에 추가해서 수시로 들르는 눈팅유저입니다.^^

로쟈 2008-06-15 11:04   좋아요 0 | URL
99%에 속하시군요.^^
 

중대 대학원신문의 서평기사를 담비에서 옮겨온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S1N5&rsec=&idxno=10644). 아주 두툼한 책 <The left, 1848~2000: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뿌리와이파리, 2008)에 대한 리뷰이다. 전국민적인 촛불집회 덕분에 우리는 현단계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기회도 얻게 되었는데, 그러한 성찰/상상에 요긴한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담비(08. 06. 07) [구양봉의 橫書竪說] 민주주의의 확장을 상상하기 위한 필독서

무려 1천28쪽에 달하는 <The left, 1848~2000: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2002)는 영국의 역사가 제프 일리가 20여 년에 걸쳐 집필한 역작이다. 20여 년에 걸쳐 유럽 좌파의 150여 년을 정리한 이 책을 10여 개월에 걸쳐 전문 번역가 유강은씨가 깔끔히 번역해냈고, 이런 노고가 빛을 발했는지 5만 원의 고가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3쇄(총 발행부수 3천500 부)까지 찍었다고 한다.

현재 미국의 미시건대학 칼 포트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일리는 원래 독일사 전문가이다. 일리가 먼저 유명세를 타게 된 것도 독일사 부문으로서, 동료인 데이비드 블랙번과 공저한 <독일 역사기록의 신화>(1984)는 독일이 여타 유럽 국가들과는 다르게 발전해왔다고 주장하는 독일 역사계의 이른바 ‘특수한 길’(Sonderweg) 테제를 정면으로 비판한 ‘숨겨진 걸작’ 이다. 이 책은 같은 해에 <독일사의 특수성(The Peculiarities of German History)>이라는 제목으로 영역됐고, 국내에도 작년에 <독일 역사학의 신화 깨트리기> 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물론 이 책은 적어도 지금까지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고, 그래서 유독 ‘한국에서만’ 숨겨진 걸작이 되어 버렸다.



일리의 정치적 성향을 굳이 추적하자면 정통 맑스주의자는 아니지만 넓은 의미에서 좌파이고, 좀 더 한정해서 말하자면 그람시주의자에 가깝다. 일리의 이런 성향은 이처럼 자칫 헛발을 내딛기 쉬운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동력의 하나가 된 듯하다. 일례로 일리는 좌파 역사가들이 좌파가 밟아온 지난날의 영광과 오욕을 다루면서 종종 누락하고 있는 여성운동과 환경운동 등을 정당하게 복권하고 있는데, 이 점은 일리의 이 책에 버금갈 만한 유일한 책인 도널드 사순의 <사회주의 1백 년: 20세기의 서유럽 좌파>(1988)가 상대적으로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에 지면을 아끼고 있는 점과 비교해 볼 때 더욱 더 빛을 발한다.



이런 점에서 일리가 자신의 책에 원래 “민주주의 벼리기”(Forging Democracy)라는 제목을 단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일리가 좌파의 역사를 기록하게 된 이유가 바로 “모름지기 좌파의 역사는 인간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왜곡하며, 공격하고 억압하고, 때로는 심지어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하는 불평등의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좌파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에 별반 기여하지 않았다면 일리는 좌파의 역사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일리가 유럽 좌파의 역사를 뒤바꿔놓은 분기점 중의 하나로 꼽는 1968년의 유산을, 그리고 그 유산에 기대어 등장한 정체성의 정치학(특히 동성애 운동과 성애의 정치학 등), 혹은 말 그대로 새로운 정치학(반문화 운동과 빈집점거 운동 등)을 비교적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일리가 보기에 이 새로운 운동‘들’은 “민주적 실천의 새로운 영토들을 지도상에 기입”함으로써 “민주주의가 가질 수 있는 의미 역시 변화”시켰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이런 점에서 이 책은 J. 호머먼의 재기발랄한 책 <붉은 아틀란티스: 공산주의가 부재한 공산주의 문화>와 겹쳐 읽을 만하다. 공산주의를 ‘20세기 최대의 미학적 프로젝트’로 해석하는 이 책은 공산주의가 열어놨지만 우리가 간과해 왔던 ‘새로운 영토들’을 보여주고 있다.)

앞표지

물론 이 책에서 굳이 아쉬운 점을 찾으면 없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리가 스페인, 더 나아가 세계 곳곳의 아나키즘에 별반 주목하지 않은 게 못마땅하다. 일리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오직 혁명을 통해서만, 또는 적어도 내가 유럽 근대사회의 위대한 헌법제정 국면들이라고 부르는 몇몇 집중적인 변화의 시기를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었다”고. 그렇다. 일리의 이 말을 되받아 말하면 나는 아나키스트들이야말로 이런 혁명, 이런 국면들을 앞장서 열어젖힌 인물들 중의 하나라고 말하련다. 어떤 점에서 사회주의자들(공산주의자들)은 아나키스트들이 맺어놓은 열매를 받아먹거나 망쳐오지 않았을까? 1848년, 1871년, 1917년, 1968년이 모두 그랬다.



올해는 “잃어버린 10년”에 분통을 터트리던 보수 우파들이 승리의 샴페인을 터트린 해이다.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해방 이후 50여 년을 도둑맞았다”라고 비웃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손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일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20세기의 좌파가 추구했던 미래의 일부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우리는 미래의 나머지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나머지 미래’에 뭔가를 변화시키려면, 우리는 20세기 좌파의 유산 속에서 “실행 가능한 형태의 민주주의의 확장을 다시 상상하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이 책이 갖고 있을지 모를 단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일독을 강력히 권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08. 06. 11.

P.S. 리뷰를 읽다가 개인적으로 일리의 <민주주의 벼리기>보다 더 관심을 갖게 된 책은 호버만의 <붉은 아틀란티스>다(도서관에 없길래 해외주문을 넣었다). 찾아보니 LRB에 피터 울른(웰렌)의 리뷰가 지난 1999년에 실린 바 있다(http://www.lrb.co.uk/v21/n23/woll01_.html). 울른은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는데, <영화의 기호와 의미>(영화진흥공사, 1990)의 저자이다. 리뷰의 제목이 'Stalin at the Movies'인 것으로 보아 책은 스탈린시대를 다루고 있는 듯하다. 궁금하고도 궁금하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yoonakim 2008-06-11 22:04   좋아요 0 | URL
피터 월렌은 작가-구조주의를 표방한 이론가로 바쟁의 리얼리즘을 비판하죠.^^ 근데 저 책의 번역은 좀 그래요^^ 워낙 월렌의 글이 명료해서 그나마 의미가 통한다고 해야하나....

로쟈 2008-06-12 08:07   좋아요 0 | URL
그래서 영어본까지 구했던 기억이 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6-12 23:22   좋아요 0 | URL
돕 -스위지 논쟁이 자본주의 이행논쟁의 전부인줄 아는 이들에게 일리-블랙번의 주장을 들어보라고 하고 싶어요.저는 독일 역사논쟁 중 두번째로 흥미로왔어요(가장 흥미로운 논쟁은 하버마스_놀테 논쟁).
독일은 시민계급이 약해서 절대주의에 가까운 프로이센,제 2제국,나치 등의 독재가 생겼다는 기존의 주장에 맞서 독일도 이미 자본주의의 길은 걸었으며 독일의 특수한 길과 반대되는 정상적인 그런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게 있느냐...영국 자본주의라고 순탄했는줄 아느냐고 일갈했는데 어쩐지 이진경이 사과방에서 식민지 반봉건론자를 비판할 때 내세운 주장과 비슷하다고 여겼어요.외국인이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기에 독일역사학계에서 대단한 논쟁이 일어났다는데...우리나라에선 진짜 조용하네요.

로쟈 2008-06-12 23:54   좋아요 0 | URL
그런 대목들을 짚어주는 글을 한번 써보시죠.^^

노이에자이트 2008-06-18 23:52   좋아요 0 | URL
사회사학파(빌레펠트 대학학파)의 구조적 연속론(독일의 시민계급이 약해서 제2제국,나치가 생겼다는 이론)에 대항해서 싸우던 독일 보수파(기민-기사당 지지자)들은 일리ㅡ블랙번의 이론을 대대적으로 환영합니다.진보파(사민당 지지자)인 사회사학파들은 난데없이 같은 편인줄 알았던 좌파에게 얻어맞죠.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자이퉁의 문화부장이던 요아힘 페스트는 1982년경 이 신문에 일리-블랙번을 호의적으로 소개합니다.이어 후속편은 1986년 역사논쟁.여기서는 페스트,놀테에게 콜 수상이 편들어 주면서 하버마스와 사회사학파의 거물들을 난타합니다.이때 페스트,놀테는 <나치는 볼세비키를 방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주장을 내세웁니다.당연히 반공색채가 강한 미국 레이건 정부까지 독일 보수파의 손을 들어주죠.결국 독일 통일로 보수파 승리.역사논쟁은 당파성이 강하다는 걸 증명해주는 사건입니다.

로쟈 2008-06-18 23:58   좋아요 0 | URL
놀테와 역사논쟁은 지젝도 자주 언급하기 때문에 익숙한데, 사회사학파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 해서, 댓글로 읽기에는 아까운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6-19 23:26   좋아요 0 | URL
사회사학파의 대표인 한스 울리히 벨러와 위르겐 코카의 책은 국역도 되어 있고 요즘 신문에 글 자주 쓰는 김호기 씨가 빌레펠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역사가 논쟁 때 벨러는 당연히 하버마스 편에 섰고 보수파인 미하엘 슈티르머(당시 콜 수상 브레인)는 놀테 편에 섰습니다.벨러와 슈티르머는 똑같이 비스마르크 전공인데 벨러는 독재자로 그리고 슈티르머는 사회주의 탄압법을 옹호하는 등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20세기 러시아 최대 작가 중 한 사람인 미하일 불가코프의 대표작 <거장과 마르가리타>(문학과지성사, 2008)가 다시 번역돼 나왔다. 작품의 지명도에 대해서는 '러시아문학 20세기의 책 20권'(http://blog.aladin.co.kr/mramor/842940)을 참조하시길(이번에 업그레드했다). 러시아에서는 연중 연극으로 공연되며 2005년에 10부작 TV드라마로 제작되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예고편은 http://kr.youtube.com/watch?v=VGGgIjVPfv0 참조). 올여름에는 이 '풍자적이고 공상적인' 러시아 판타지의 세계에 한번쯤 빠져보시길(요즘 같아선 우리에게도 1930년대 모스크바를 휘젓고 다니는 흑마술사 볼란드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2월 9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0년 11월 07일에 저장

거장과 마르가리따 - 상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양탄자배송
2월 9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0년 11월 07일에 저장

거장과 마르가리따 - 하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양탄자배송
2월 9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0년 11월 07일에 저장

거장과 마르가리타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혜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5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2월 9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08년 06월 10일에 저장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드팀전 2008-06-10 09:12   좋아요 0 | URL
오홍...생각보다 빨리 나왔군요. <거장과 마르가리타>..지난 번에 소식을 알려주셔서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로쟈 2008-06-12 08:04   좋아요 0 | URL
네, 여름에 한번 시간을 내시길.^^

포월 2008-06-10 15:06   좋아요 0 | URL
불가코프의 애독자인데, 전공자이시니까 여쭤보고 싶습니다. 지난 번역(박형규 교수)에 혹 문제가 좀 있었던건가요?

로쟈 2008-06-12 08:05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비교해서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차원은 아니고요, 아무래도 젊은 세대가 새로 한 번역이라는 게 장점이지 않을까 싶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6-11 01:11   좋아요 0 | URL
제가 구입한 책은 삼성판 세계 현대문학전집 박형규 역.근데 제목이 <악마와 마르가리타>.노어mactep은 영어의 master이니 나중엔 거장이라 번역한 것 같군요.노어는 발음할 줄만 알아요.노어사전은 1년에 두번 정도나 찾을 둥 말 둥...고대 러시아 문화연구소에서 나온 노한사전이예요.

로쟈 2008-06-12 08:06   좋아요 0 | URL
데딘하십니다!^^

2008-06-11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6-12 08:06   좋아요 0 | URL
아, 불가코프를 좋아하신다고 했었죠?^^
 

일본문학 번역자인 유숙자씨의 <자화상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살림, 2008)가 출간됐다. 올해로 사망 60주년을 맞는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의 문학과 삶을 돌아본 책이라 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의 소설들을 몇 권 읽은 감상이 떠오르면서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사실 그가 그려내는 '인간실격자'들은 연민을 자아낸다. '권력실격자'들과는 종류가 다르다). 물론 내가 읽은 건 <인간실격>, <사양> 등의 소설이며, 저자는 이들 작품만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세계가 가려지는 게 안타까워서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하므로 이 책의 독서는 '교정'의 의미도 갖겠다. 230쪽 정도의 분량이 너무 소략한 게 아닌가 싶지만 입문서로도 삼을 만하겠고. 이미 절판된 책들도 많은데, 다자이 오사무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1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자화상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 인생에 대한 친밀한 고백의 기록
유숙자 지음 / 살림 / 2008년 5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08년 06월 06일에 저장
절판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2월 9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08년 06월 06일에 저장

사양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소화 / 2002년 10월
6,000원 → 5,700원(5%할인) / 마일리지 180원(3% 적립)
2008년 06월 06일에 저장
품절

옛 이야기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소화 / 2005년 9월
8,000원 → 7,600원(5%할인) / 마일리지 230원(3% 적립)
2008년 06월 06일에 저장
절판



1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노이에자이트 2008-06-07 00:23   좋아요 0 | URL
일본 소설가 중에선 한국의 대중들은 여전히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작가 지망생들은 미시마 유키오나 다자이 오사무를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그러고 보니 둘 다 자살했네요.자살하는 방법은 미시마 쪽이 훨씬 끔찍하긴 했지만요...

로쟈 2008-06-07 00:34   좋아요 0 | URL
좀 나이든 '작가지망생'들이 아닐까 싶은데요.^^; 요즘 미시마나 다자이 류의 한국소설이 나온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노이에자이트 2008-06-07 00:56   좋아요 0 | URL
문학지망생들에게 죽음의 미학이니 퇴폐니 하는 소재는 지금은 인기가 시들한가요? 음...한때는 꽤 인기가 있었는데요...

로쟈 2008-06-12 08:09   좋아요 0 | URL
요즘은 퇴폐보다 '쿨'과 '재미'가 강세입니다...

Kitty 2008-06-07 06:11   좋아요 0 | URL
저도 무라카미 하루키<<<<<<다사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에요.
미시마 유키오의 '봄의 눈'은 처음 일어 배울 때 뭣도 모르고 원서 잡았었는데
첫 장에서 한자사전 붙잡고 2시간 씨름하다 포기한 기억이 나네요;;;

로쟈 2008-06-12 09:00   좋아요 0 | URL
미시마의 숨은 팬들이 많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6-10 00:34   좋아요 0 | URL
미시마 가장 멋진 순간은 전공투 학생들과 논쟁하기 위해 강단에 섰을 때 건장한 팔뚝을 드러낸 사진...유미주의자 중 진짜 행동파 사나이는 이태리의 가브리엘 다눈치오와 미시마 유키오 뿐..사상은 다르지만 매력있는 사나이임은 분명하죠.

로쟈 2008-06-12 09:00   좋아요 0 | URL
^^
 

'지젝 신드롬의 허와 실'을 다룬 한겨레의 '우리시대 지식논쟁'에서 마지막 꼭지를 옮겨놓는다. '지젝 전문' 번역자이기도 한 이성민씨의 글이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91981.html).

우리시대 지식논쟁/ 지젝 신드롬의 허와 실 ③ 지젝을 제대로 읽는 법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에 대한 마지막 글이다. 3주 전, 논쟁의 운을 뗀 이현우씨는 우리 시대의 이념적 지형을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며 지젝의 급진성에 주목했다. 박정수씨는 이러 주장을 반박하며 지젝의 사유에 새로운 세계를 창안하는 실천적 돌파구가 결여돼 있다고 했다. 이 논쟁의 마지막 글을 맡은 이성민씨는 박정수씨를 다시 반박한다. 지젝이 말하려는 것은 혁명 그 자체가 아니라 ‘혁명의 조건’이라고 지적한다. 그 조건의 핵심은 욕망하고 향유하는 각 개인, 곧 주체다. (제도로서의) 대안을 말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욕망을 향유하는 개인의 변화다. 그런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지젝이 던지는 급진적 사유의 중핵이라는 게 이성민씨의 생각이다.(안수찬 기자)

한겨레(08. 06. 07) 혁명의 주체가 혁명의 대상이다

오늘날, 미국식 세계 자본주의가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지구상에서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물론 오늘날 미국적 문명 자체의 궁극적인 위태로움이 조금씩 감지되고 있지만 말이다. 아마도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정도로 사람들은 또한 저 위태로움을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치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기라도 하는 듯 끊임없이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가 슬라보예 지젝이다. 그런데 그의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누구보다도 혁명이 오늘날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유럽문명의 미래와 관련하여, 혁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젝의 정치적 저술들을 읽을 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혁명에 대한 직접적인 요청으로 읽을 때 반드시 그를 잘못 읽게 된다. 박정수씨는 지젝의 정치적 기획이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결합한 글로벌한 국가체제(제국)를 수립하는 것에 있다고 하면서, 이현우씨의 글을 오독했을 뿐 아니라, 지젝 자신을 오독했다. 지젝은 그런 말을 한 적이 단적으로 없다. 게다가 이러한 오독을 염려하여, 지젝은 레닌의 반복이 레닌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님을 명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오히려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비롯한 레닌의 방식들을 따져보면서, 오늘날 혁명의 조건 그 자체를 탐색하고 있다.

이렇게 말해본다면, 지젝은 혁명 가능성의 조건을 탐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오늘날 혁명이 가능하다고 말하기에 앞서서 반드시 묻지 않으면 안 될 물음을 묻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생략될 수 있는 물음이 아니다. 그것은 혁명에서 혁명적 주체를 생략할 수 없는 만큼 생략할 수 없는 물음이다.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지젝은 전통적으로 정치적 혁명에 대해 가장 회의적이었던 사상을 끌어들인다. 그것은 바로 프로이트에 의해 개시된 정신분석이다. 프로이트는 볼셰비키 혁명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회의적이었다. 라캉이 서유럽의 68혁명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회의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지젝의 혁명에 대한 단적인 규정은 이렇다. “근본적 혁명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오래된 해방적인 꿈을 실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꿈꾸는 양태 그 자체를 재발명해야만 한다.” 정신분석적 통찰을 담고 있는 이 말은 무의식을 건드리지 않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혁명은 단지 국가를 전복하는 행위에 불과하지 않다. 그런 일이라면 사실, 서유럽인들은 몰라도 한국인들은 이미 여러 번 해본 경험이 있다. 정신분석이 혁명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는 주체 편에서의 변화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술에 의지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 유명한 남자들이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지젝이 이와 같은 정신분석적 통찰을 자신의 정치적 사유에 끌어들이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혁명을 하지 말자고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혁명에 대한 더욱 근본적인 규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혁명에 대한 이와 같은 규정은 생각해보면 결코 새로운 규정이 아니다. 그것은 예컨대 새로운 학문적 발견이 아니다. 그것은 실상 우리가 심중에서 잘 알고 있는 진리이다. 하지만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어떤 것이다. 오늘날 진보적인 정치학자들이나 활동가들은 지금도 새로운 변혁의 전략을 짜느라고 분주할지 모른다. 혹시 그들이 진보를 믿고 있다면 말이다. 오늘날의 상황이 좌파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명박씨의 눈물 나는 참회가 잘 알려주듯이, 우파에게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의 자부심인 민주주의는 바로 이만큼 정치가들에게 공평한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해서 조금 더 말해보자. 한때 지젝은 민주주의를 최선책은 아니지만 차선이라고 하면서 옹호했다. 서유럽 학자들이 근본적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을 때, 그도 이러한 희망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취소했으며, 민주주의는 궁극적 대안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궁극적 대안이 무엇인지 자기 나름의 의견은 전혀 밝히지 않으면서 말이다. 언뜻 위선적으로 보이는 그의 제스처에서 진리를, 이 시대의 증상을 읽어보자.

이 시대는, 이렇게 말해본다면, 문명사적 문제를 우리에게 서서히 내밀고 있다. 이는 단지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문제라거나 어떤 전지구적 문제가 있다는 모호하거나 동원력이 없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류가 스스로의 소비와 향유방식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재고해야 하는 때가 도래하고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오늘날 인류가 처한 환경적 재앙의 문제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본연의 환경 운동은 오늘날, 정치적 장을 벗어나 광범위한 소비 운동과 병행되고 있다.

이러한 문명사적인 문제는 단지 정치적 제도나 경제적 제도 내에서만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이나 예술이나 교육이나 연애 등을 비롯해서 인간의 문명적 활동 전 영역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지젝은 향유를 정치적 요소로서 보아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향유와 향유의 방식 그 자체가 문제라는 핵심적 요점을 담고 있기에 올바른 방향에 서있는 말이다.

아마도 미국인들이 북한에서 발견하고 싶은 첫 번째는 코카콜라나 맥도널드 광고판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의 향유 방식이 이슬람권이든 북한이든 가리지 않고 전세계에 유통되기를 원할 것이다. 아시아인들이나 유럽인들은 그 방식이 얼마나 저급한 것인지를 알 정도의 문명적 존엄감을 아직은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라캉의 가르침에 따라서, 향유를 정치의 핵심적 요인으로 제출하는 지젝의 제스처를 우리가 함께 떠맡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동시에 우리는 민주주의나 여타의 대안적 정치 체계에 대한 논의보다 훨씬 중차대한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감각을 획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안적인 구체적 정치 체계에 대한 지젝의 집요한 침묵에서 내가 읽고 싶은 진리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문명을 구성하는 일체의 것을 재발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다면, 오늘날 각자가 스스로 선택한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은 실로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지젝의 통찰을 빌려, 욕망을 상실한 오늘날의 우울한 주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이성민/도서출판 b 기획위원)

08. 06. 06.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paul 2008-06-0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을 접하게 된 것이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였는데, 당시 지젝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상태에서 무엇인가 '발견했다'는 기쁨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물론 '이해한다는 것'은-그것이 창조적인 오독이라 할지라도- 무척 어려웠지만.....때로는 이해에 앞서서 무엇인가 전율과 진실을 느끼게 하는 글들이 있는데 지젝의 경우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의 번역 덕분에 느낄 수 있는 행복이었습니다.
이제는 이 서재에 매번 들르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건강하시길 빕니다. 앞으로도 멋진 번역 부탁드립니다.....

참, 우문 한 가지~ 지젝이 꼽은 네번째 주저 "The Parallax View"는 현재 번역 중에 있는건가요?^^+

로쟈 2008-06-08 22:13   좋아요 0 | URL
제가 번역한 게 아닌데요.^^; <시차적 관점>은 짐작에 하반기나 내년에 나올 거 같습니다. 저도 번역을 맡을 뻔하긴 했지요. 저는 좀 짧은 논문 한편을 번역하게 될 거 같습니다...

김상호 2008-06-10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근데요. The Parallax View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건가요? 똑같은 이름의 영화는 '암살단'으로 번역되거든요. 궁금궁금

p.s. 그 책 뒷 날개 사진이 참 재미있던데요.

로쟈 2008-06-10 13:12   좋아요 0 | URL
'시차적 관점' 정도로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시간차가 아니라 시선(시각)의 차란 뜻의 '시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