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한국에서 경계적 지식인을 다룬 커버스토리를 옮겨놓는다. 다큐영화 <경계도시2>가 빌미가 돼 한국사회에서 경계적 지식인의 문제를 살폈다.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지목돼 나도 인터뷰에 응했고, 몇 가지 언급이 기사화됐다. '경계'라는 말이 다의적인 만큼 '경계적 지식인'도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내 경우엔 학계와 대중 사이를 오간다는 의미다. 그런 역할도 그다지 오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주간한국(10. 04. 20) <경계도시2> 경계인을 생각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2'를 보고 난 관객들의 뜨거운 응원소리가 전해진다. 개봉한 지 한달여가 지난 지금까지 칼럼니스트, 변호사, 소설가, 가수, 대학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지식인 인사들의 자발적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릴레이 방식으로 관객과 만나 자유롭게 영화를 본 소감을 얘기하거나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유명 인사들만이 아니다. 영화를 관람한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가정주부들도 리뷰를 쏟아내고 있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최다 관객리뷰를 기록할 정도다. 이 같은 반향이 시사하는 바는 뭘까? 그것은 이 사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성찰의 다큐멘터리라는 점이다. 그러면 단지 이념 논쟁에 대한 성찰일까?
영화는 2003년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귀국을 둘러싼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것은 여전한 레드 콤플렉스뿐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한 사상의 다양성에 대한 관용의 부재, 그리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시선의 결핍과 심각한 쏠림 현상이다.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으로 살기 힘든 한국적 사회현실에 대해 '경계도시2'는 냉정하게 렌즈를 들이댄다.
왜 경계인 생존이 힘든 사회인가
송두율 교수는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규정한다. 소통이 불가능한 배타적인 두 경계를 허물기 위해 그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인을 자처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경계인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이쪽 아니면 저쪽을 택하라고 윽박지른다. 경계인 송두율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가혹한 희생양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경계인으로 살기 어려운 것이 송 교수뿐일까? 영화는 보다 포괄적으로 경계인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 작품을 만든 홍형숙 감독은 전화 인터뷰에서 "분단이나 레드 콤플렉스 저변의 중요한 문화코드에 대해서도 말하고자 했다"고 답했다. 집단적인 선택과 요구가 강요되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갖기 쉽지 않은 문화를 지적했다. 그는 "그러한 문화 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 역시 이념논쟁을 비롯한 어떤 '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고,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사실 경계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경계인은 일반적으로 진보와 보수, 좌와 우, 학계와 대중 등 분리와 극단의 경계선상에서 양쪽과의 소통과 통섭을 시도하는 사람이다. 또, 주류에 반기를 드는 재야 지식인,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도 포함된다.
어느 사회를 불문하고 경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사회가 경계인의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뭘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는 연고주의나 패거리주의를 근거로 삼은 출세주의가 한 이유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 근대화의 후발주자로서 치열한 내부경쟁으로 경제적 성공을 이룬 나라다.
한국인들은 극렬한 경쟁에 치를 떨면서도 경쟁만이 살 길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패거리를 중심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인다. 우리는 그런 투쟁을 곧잘 이념투쟁이나 지역투쟁으로 착각하지만, 그 실체는 이익투쟁이다. (2009년 12월27일 한겨레신문)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권력을 가진 자와 같은 학교나 고향 출신이라는 연고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기 영역을 확장하고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는 경계인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대학의 붕괴를 거론한다. 지성의 영역이어야 할 대학이 사라지고 상업적 성과를 중시하는 이상한 풍토가 독자적으로 사유하는 지식인을 멸종시켰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빨리 연구하고, 빨리 성과를 내는 기업적인 연구문화가 만연하게 됐고요. 또,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은 연구논문들 가운데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는 안 되는 학문적인 분야가 너무 많아요. 비정상적인 지식 연구 패턴이 대학, 그리고 더 나아가 지식인을 없애고, 제도권에 대한 지식의 종속을 심화 시키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경계도시2'를 통해 심각한 지식의 종속을 발견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진보인사들조차 여론몰이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제도와 권력에 대한 지식의 종속을 반영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이자 대중적인 인문교양서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펴낸 이현우 박사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출판 시장을 경계인으로 살기 힘든 환경으로 꼽는다. 그는 인터넷에서 인기 서평 블로그를 운영하는 등 학계와 대중 사이를 오가는 경계적 지식인이다.
"영어권 국가나 일본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출판시장이 작고 열악해서 지식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대학이나 기업, 혹은 국가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제 책의 경우에도 1만 부가 팔려 인문학서적으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저자가 받는 인세는 1500만원도 안 됩니다. 학진(학술진흥재단)에서 프로젝트를 받아 연구를 하면 1년에 논문 한 편을 써서 3000만원 정도를 받아요. 그러다 보니 제도권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지식의 길을 택하는 이들이 매우 드물게 되고, 지식이 국가 등 기득권에 예속 되는 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봐야겠죠."
경계인이 필요한 이유
하지만 경계인이 자생하기 힘든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경계인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계인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소통의 문제 때문이다. 강준만 교수는 저서 '대한민국 소통법'에서 우리사회가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승자독식주의, 서울 중심의 초강력 중앙집권주의, 다른 이념에 대해 약간의 신축성도 보이지 않는 이념의 사유화 등을 꼽았다. 그리고 소통의 조건으로 이 같은 무리의식과 이해관계가 그어놓은 경계에서 벗어날 것을 제시한다.
여기서 좌파와 우파를 비롯해 소통 불가능한 경계를 넘나들며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경계적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한국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발행인 성일권 씨는 경계인이 많아져야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경제, 사회, 정치 등의 분야에서 활약 중인 몇몇 국내 경계적 지식인을 거론하며 "제도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주류 지식에 편입되지 않고 자유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경계인이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유롭게 주류세력을 비판할 수 있는 경계적 지식인이 많은 프랑스를 예로 들었다. 프랑스는 주류에 반대하는 진보적 지식인, 즉 경계인의 영향력이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큰 나라다. 이들은 사회 주류세력의 독주를 견제하고, 사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사회기류는 기존의 주류 문화와 제도에 반기를 들었던 '68혁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68혁명은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대학교육의 모순과 관리사회에서의 인간소외, 사회적 모순 등에 반대해 학생과 근로자들이 연합해 벌인 대규모 사회변혁운동이다.
"68혁명으로 인해 비록 기존의 체제와 문화가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그랑제꼴 중심에서 대학으로 교육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졌고, 대중문화를 당당히 문화의 주류 반열에 올리는 데 성공했지요. 이후 주류문화에 도전하는 지성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사회의 변화와 견제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 봅니다."
경계적 지식인은 지식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이현우 박사는 "대학의 도제제도나 파벌주의, 업적주의 그리고 국가, 기업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경계적 지식인이 없는 한 세계를 보는 눈을 바꿔 놓는 지식의 탄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왜 론 처노와 같은 전문 저술가가 나올 수 없는지 반문한다. 시사 평론가이자 금융전문 작가인 처노는 '금융제국 J.P. 모건'이나 '부의 제국 록펠러'를 통해 미화되고 은폐되기 쉬운 거대 기업가의 숨은 면모를 낱낱이 파헤쳐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또 '과학의 탄생'이나 '16세기 문화혁명' 같은 세계적인 저작이 과연 국내의 재야 지식인에게서도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가 든다고 덧붙였다.(전세화 기자)
10. 04. 21.
P.S. 참고로, 우리의 '출판시장' 혹은 '지식시장'의 현실과 관련해서 내가 답변한 내용은 이렇다.
'지식시장'은 또 다른 의미에서 '동정 없는 세상'이죠.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훈련'받지 않은 터라 생존확률이 그만큼 떨어진다고 봅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는 건 어려운 일이어서 국내 인문학자 가운데서는 손에 꼽을 정도이니까요. 분야는 다르지만, <금융제국 J.P모건>이나 <부의 제국 록펠러> 등을 쓴 론 처노 같은 '전문 저술가'가 국내에서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고요, <과학의 탄생>과 <16세기 문화혁명> 같은 저작이 역시 국내의 재야 지식인에게서 나올 수 있을지 회의가 듭니다. 개개인의 역량 이전에 사회문화적 여건의 문제이고, 학문적 온축의 문제이기 때문에요. 20-30년 후라면 좀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