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주의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어제 수유너머N에서 발표한 '지젝의 레닌주의와 과거로부터의 교훈'의 나머지 대목을 마저 옮겨놓는다. '코뮌적' 공간에서 '레닌주의'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한다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밤기차로 지방에 문상을 가야 했던 탓에(오늘 새벽차로 올라왔다) 뒷풀이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발표회는 여러모로 유익한 경험이었다. 아래의 글은 약간 조정한 걸 제외하면 거의 그대로이다. 단, 오탈자를 바로잡고 'wholesome terror'의 번역을 수정했다.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는 제가 작년에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길, 2009)과 함께 ‘올해의 책’으로 꼽기도 했지만, 소위 ‘지젝의 혁명론’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대단히 흥미로우면서도 자극적인 책입니다(들뢰즈적 감응(affect)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과거로부터의 교훈’은 전체 3부 가운데 제2부에 해당하며 로베스피에르부터 마오까지의 혁명적 테러(4장), 스탈린주의(5장), 포퓰리즘(6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기에, 저로선 책의 내용을 조금 더 편하게 풀어서 전달하는 것도 의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먼저 로베스피에르의 주장입니다.   

 

“평화로운 시기 인민정부의 동력이 덕(virtue)이라면, 혁명의 와중에 있는 인민정부의 동력은 덕과 동시에 폭력이다. 덕이 없는 폭력은 맹목적이며, 폭력 없는 덕은 무력하다. 폭력은 즉각적이고 엄중하며 불굴의 정의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덕의 분출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가장 절박한 필요에 조응하는 민주주의의 일반원칙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 특별한 원칙이다.”(<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240쪽)
“평상시에 인민정부를 움직이는 동인이 미덕이라면, 혁명의 시기에 그 동인은 미덕과 공포 양쪽 모두입니다. 덕이 없는 공포는 재난을 부르고, 공포가 없는 덕은 무력합니다. 공포는 신속하고 엄격하며 강직한 정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공포는 미덕의 발현체이며, 구체적인 원칙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의 일반원칙이 조국의 절박한 필요에 응답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로베스피에르: 덕치와 공포정치>, 13쪽, 231쪽)

마지막 문장의 원문은 “It is less a special principle than a consequence of the general principle of democracy applied to our country's most pressing needs.”입니다. 요점은 ‘혁명적 폭력(terror)’ 혹은 ‘공포정치’가 특수한 원칙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 일반원칙을 긴박한 상황적 요구에 적용한 결과라는 것이죠. 더불어, 로베스피에르에게서 혁명적 폭력은 정확히 전쟁과 대립하는 것이었다고 지젝은 지적합니다. 국가 간 전쟁은 보통 개별 국가 내부의 혁명적 투쟁을 봉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이죠(물론 이것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적입니다). 실제로 루이 16세는 체포되기 며칠 전에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프랑스와 유럽 국간들 간의 대전을 일으킬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왕은 애국자연하면서 프랑스 군대를 이끌다가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이고 그의 권력을 다시금 회복될 수 있었을 겁니다. 즉 ‘평화로운’ 루이 16세란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유럽을 전쟁으로 내몰 준비가 돼 있는 군주였던 것이죠. 지젝은 자코뱅의 혁명적 폭력에 대해서도 부르주아적 법과 질서의 ‘초석적 범죄’라고 절반쯤 정당화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것을 벤야민이 말하는 ‘신적 폭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참고한 건 엥겔스의 말입니다.

최근 사회-민주주의적 실리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단어에 대해 건강한 폭력을 마음속에 떠올리고 있다. 좋다. 신사 양반들, 이 독재가 무엇과 같은지 알고 싶은가? 파리 코뮨을 보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다.”(<잃어버린 대의>, 244쪽)

최근 들어 사회민주주의적 속물들이 다시 한 번 이 말을 듣고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좋습니다, 여러분. 이 독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까? 그럼 파리코뮌을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독재였습니다.”(<덕치와 공포정치>, 16쪽)

첫 문장의 원문은 “Of late, the Social-Democratic philistine has once more been filled with wholesome terror at the words: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입니다. 요즘 들어 사민당의 속물들이 ‘프롤레타리아독재’란 말에서 공포감을 느끼는데, '독재'라는 말의 어감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두려울 게 없다, 파리코뮌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독재였다는 것이 엥겔스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지젝은 엥겔스의 말을 받아서 1892-94년의 혁명적 폭력 또한 프롤레타리아독재와 함께 ‘신적 폭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신적 폭력=비인간적 폭력=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등가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죠. 거기서 ‘신적 폭력’이란 말의 해석은 정확히 ‘백성의 소리는 신의 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고대 로마의 격언을 따른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중요하지만 오해된 대목이기도 해서 다시 인용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인민의 의지를 수행하는 도구로서 행위하고 있다’라는 도착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고독한 주권적 결정의 영웅적 승인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이뤄진(살인의 결정, 자기 자신의 삶을 상실할 위험을 무릅쓴) 결정. 대타자에 근거하거나 그것에 보호받지 않는 결정이다. 만약 그것이 삶의 유한성을 초월하지 않는다면, 즉 ‘불멸’이 아니라면 그 실행자에게 천사의 무고함으로 살인할 면허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신적 폭력의 모토는 ‘세상이 망하더라도 정의는 세우라’이다. ‘인민’(익명의 ‘몫 없는 자들’)이 테러를 강요하고 다른 몫 있는 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정의를 통해서, 정의와 복수 사이의 구분 불가능한 지점을 통해서이다.”(<잃어버린 대의>, 246쪽)
“‘우리는 인민의 의지를 반영하는 수단으로서 이 폭력을 사용한다’는 식의 왜곡된 의미가 아니라, 자주적 결정의 외로움에 대한 대담한 가정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위험에 빠뜨리거나, 목숨을 잃게 만드는) 결정은 거대한 타자가 떠맡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고독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이 도덕 외적인 것이라고 해서 부도덕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천사와 같은 무구한 마음으로 분별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도 아니다. 신성한 폭력의 모토는 ‘세상이 무너질지라도 정의를 세워라’이다. 이것은 정의와 복수를 구별할 수 없는 지점에 존재하는 정의를 말한다. 이 정의로움으로 ‘민중’(역할이 없는 상태에서 익명의 역할을 맡은 부분, 즉 비부분의 부분)은 공포를 부과하고, 다른 역할을 맡은 부분이 대가를 치르게끔 만든다. 그때라 바로 기나긴 억압과 착취와 고통의 역사에 대한 심판의 날이다.”(<덕치와 공포정치>, 17-18쪽)

첫 문장에서 ‘고독한 주권적 결정의 영웅적 승인’ ‘자주적 결정의 외로움에 대한 대담한 가정’이라고 옮겨진 것은 “the heroic assumption of the solitude of a sovereign decision”입니다. 저는 ‘고독한 주권적 결정의 영웅적인 수임(受任)’이란 뜻으로 이해합니다. ‘결정’과 ‘수임’의 주체는 동일합니다. “만약 그것이 삶의 유한성을 초월하지 않는다면, 즉 ‘불멸’이 아니라면 그 실행자에게 천사의 무고함으로 살인할 면허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는 착오에서 빚어진 오역인데, 원문은 “If it is extra-moral, it is not 'immoral,' it does not give the agent the license just to kill with some kind of angelic innocence.”입니다. “이 정의로움으로 ‘민중’(역할이 없는 상태에서 익명의 역할을 맡은 부분, 즉 비부분의 부분)은 공포를 부과하고, 다른 역할을 맡은 부분이 대가를 치르게끔 만든다.”도 부정확한 번역입니다(‘몫이 없는 자(part of no-part)’는 랑시에르가 즐겨 쓰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로베스피에르는 바로 그러한 입장에서 혁명적인 ‘신적 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한 휴머니즘적 동정을 비판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코뱅의 역사적 유산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지젝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혁명적 폭력의 (자주 탄식할 만한)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폭력의 이상 자체를 거부하도록 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오늘날의 전혀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반복하여 그 현실화로부터 그것의 잠재적 내용을 부활시킬 방법이 있는가?” 지젝의 대답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사건을 반복하는 가장 정확한 방식은 (로베스피에르의) 휴머니즘적 폭력으로부터 반-휴머니즘적(오히려, 비인간적) 폭력으로 이행하는 것”이라는 게 지젝의 주장입니다.

물론 “자코뱅이 급진적 테러에 의존한 것은 경제 질서의 근본적 기초를 흔들어놓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일종의 히스테리적인 행동화(acting out)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란 비판은 이미 제시한 바 있습니다. 사실 지젝이 보는 자코뱅의 위대함은 테러의 연출이 아니라 일상의 재조직에 관한 정치적 상상력에 두어집니다. “여성의 자기-조직화에서부터 모든 늙은이가 평화와 존엄 속에서 말년을 보내는 공동체 가족까지, 불과 2-3년 사이에 응축된 열광적인 활동”을 지젝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러시아의 10월 혁명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진정한 혁명의 순간은 1917-18년의 봉기도 아니고 이어진 내전 상황도 아닌, 1920년대 초반에 새로운 일상생활의 의례들을 창안하려고 했던 강력한 실험에서 찾을 수 있다는 그는 주장합니다. “어떻게 혁명 이전의 결혼 의례나 장례 의례를 바꿀 것인가? 어떻게 공장과 집단 거주지에서 공산주의적 교류를 조직할 것인가?” 같은 문제의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상을 재조직하기 위한 ‘구체적 테러(concrete terror)’가 없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충분하지도 완결되지도 않았던 것이죠. 지젝이 여기서 도출하는 결론은 “민주주의적 절차보다 상위에 있는 이런 과잉의 평등-민주주의는 오직 자기 대립물로서 혁명적-민주주의의 테러의 형태로만 ‘제도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마오의 모순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모순의 보편성이 내재하는 곳은 정확히 모순의 특수성 속에서라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교조적 맑스주의자들’을 비판할 때 마오는 옳았습니다. 또 ‘변증법적 종합’을 ‘대립물간의 투쟁을 포괄하는 고차원적 통합’ 내지 대립물의 ‘화해’로 보는 통상적인 관점을 거부할 때 역시 옳았다고 지젝은 평가합니다. 하지만, 그가 이 거부를 정식화하여 ‘대립물이 영원한 투쟁’에 대한 일반적인 우주론-존재론에 따라 일체의 종합이나 통합에 대해서 갈등과 분열의 선차성을 주장할 때 그는 틀렸다는 게 지젝의 주장입니다. 마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엥겔스는 세 가지 범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그 범주들 중 두 가지는 믿지 않는다.(...) 부정의 부정이란 없다. 긍정, 부정, 긍정, 부정... 사물의 발전 속에서, 사건들의 연쇄 속의 모든 연관은 긍정인 동시에 부정이다. 노예제 사회는 원시사회를 부정한다. 하지만 봉건사회와 관련해서는 거꾸로 긍정을 구성했다. 봉건사회는 노예제 사회와 관련해서는 부정을 형성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와 관련해서는 긍정을 구성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봉건사회에 대해서는 부정을 형성했지만 사회주의 사회와 관련해서는 긍정을 구성했다.”(<잃어버린 대의>, 284쪽; <마오쩌둥: 실천론․모순론>, 21쪽, 241-2쪽)

‘부정의 부정’에 대한 마오의 이러한 부정은 어떤 결과를 낳는 것일까요? 지젝은 “혁명적 부정성을 진정으로 새로운 긍정적 질서로 이동시키는 시도의 실패”로 귀결되었다고 봅니다. “모든 혁명의 일시적인 안정화는 결국 낡은 질서의 복권으로 귀착되고 말았다. 그래서 혁명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부정이라는 ‘가짜 무한성’으로, 이것은 결국 거대한 문화혁명에서 정점에 도달했다.”는 것이 지젝의 판단입니다. “문화혁명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길과 공간의 청소라는 의미에서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성에 대한 무능의 지표라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혁명이란 ‘혁명고 함께 하는 혁명’, 혁명과정에서 자신의 출발점이었던 전제 자체를 혁명하는 혁명이지만 마오는 그 ‘부정의 부정’에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죠(<터미네이터2>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T-101)가 스스로 용광로 안으로 들어가 ‘자살’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혁명적 시도의 문제는 ‘너무 극단적’이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충분히 극단적이지 못했다’는 데, 그리하여 혁명적 시도 자체를 문제 삼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데 있다는 것이 지젝의 핵심적인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혁명적 과정의 두 가지 계기는 무엇일까요? 프레드릭 제임슨을 따라서 지젝은 첫째, ‘극단적인 부정의 제스처’, 그리고 둘째 ‘새로운 삶의 창안’이라고 말합니다. 그 창안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정신분석에 대한 참조를 통해서 지젝이 말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근본적인 혁명 속에서 사람들은 단지 ‘그들의 오래된 꿈을 실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꿈꾸는 방식 자체를 다시 창안해야 한다.(...) 요컨대 우리의 꿈을 위해 현실을 변화시키기만 하고 이런 꿈들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조만간 우리는 과거의 현실로 다시 돌아가고 만다.”  

문화혁명의 실패는 바로 이런 점에서 실패했다고 그는 보는 것이죠. 물론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새로운 경제적 조직과 일상생활의 재조직을 겨냥했지만, 그리고 그런 점에서 유토피아 실행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새로운 일상의 형식을 창조하는 데는 실패합니다. 지젝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뒷담화도 들려줍니다. 문화혁명의 마지막 시기에, 마오 자신에 의해서 소요사태가 봉쇄되기 전에 ‘상하이 코뮌’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의 공식 슬로건에 따라 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국가의 소멸과 심지어는 당 자체의 소멸을 요구했고, 직접 코뮌적 사회를 조직하고자 시도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오는 군대를 동원하여 질서를 회복합니다. 인민에게 ‘반란의 권리’를 갖고 있다고 스스로 독려하고 부추긴 문화혁명의 온전한 결론 앞에서 그 자신이 후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마오가 충분히,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오늘날 중국에서 자본주의적 폭발을 위한 공간을 연 것이라는 게 지젝의 평가입니다. 그리하여 마오의 사례에서 얻는 교훈은 “다시 시작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베케트)입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 스탈린의 공포정치도 보도록 합시다. 참으로 대단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졌는데, 1937-38년 2년 동안에 이루어진 결과만 보아도 이렇습니다.  

“다섯 명의 스탈린 정치국 동료들이 살해되었고, 139명의 중앙위원 중에서 98명이 살해되었다. 우크라이나 공화국 중앙위원 200명 중에서 오직 세 명이 살아남았고, 93명의 콤소몰 조직 중앙위원 중 72명이 죽었다. 1934년 제17차 대회에서 1,996명의 당 지도자들 중 1,108명이 체포되거나 살해되었다. 385명의 지방 당 비서 중 319명이, 2,750명의 지역 비서들 중 2,210명이 죽었다.” (<잃어버린 대의>, 376쪽) 

이 대숙청은 네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1933년과 1935년에는 무력한 하급 당원들을 체로 숙청하기 위해서 모든 계층의 노멘클라투라를 동원합니다. 이때 지역 지도자들은 자기 조직을 강호하고 ‘불편한’ 사람들을 쫓아내는 데 숙정작업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1936년에는 모스크바의 노멘클라투라가 지역 엘리트를 숙청하기 위해 하급 당원들 편을 듭니다. 그리고 1937년에는 노멘클라투라에 대항하는 당 대중(party masses)을 동원합니다. 이로써 당 엘리트들을 초토화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1938년에는 지역 노멘클라투라의 권위를 강화함으로써 숙청 기간 동안 무너진 당내 질서의 회복을 꾀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러한 사건들에서 초자아적 차원을 발견할 수 있다. 공산당에 의해 공산당원들 자신을 향해 가해진 이 폭력은 체제의 극단적 자기-모순을 증명한다. 즉, 그것은 체제의 기원에는 ‘진정한’ 혁명적 기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끝없는 숙청은 체제 자체의 기원적 흔적을 지우는 것일 뿐 아니라 일종의 ‘억압된 것의 귀환’ 속에서 체제의 중핵에 있는 근본적인 부정성의 잔여물이기도 하다.”(<잃어버린 대의>, 379쪽)  

이런 이유에서 스탈린 시대는 노멘클라투라가 지배한 사회가 아니었으며 ‘관료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스탈린체제는 효과적인 ‘관료조직’이 결여된 체제였습니다. 노멘클라투라가 사회적으로 안정화되는 것은 브레주네프 시기이며, 그때서야 비로소 ‘현실 사회주의’라는 것이 출현하게 됩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체제가 자신의 공산주의적 전망을 포기하고 실용적인 권력 정치에 안주한다는 징표입니다.       

포퓰리즘에 대한 지젝의 시각도 간단히 정리해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포퓰리즘이 실천에서는 (가끔씩) 옳지만 이론에서는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그것을 때로는 실용적 타협의 일부로 인정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 개념 차원에서는 비판적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지젝의 주장입니다. 2005년 유럽 헌법 제정안에 대한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부결을 사례로 들면서 지젝은 ‘우파 인종주의 포퓰리즘’의 교훈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우파 인종주의 포퓰리즘은 오늘날 ‘계급투쟁’은 한물 간 퇴물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로부터 좌파가 배워야 하는 교훈은 포퓰리즘적 인종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증오를 외국인들에게 전치/신비화시키는 것에 대칭적으로 ‘아이 씻은 물과 함께 아이까지 버리는’ 듯이, 다문화주의적 개방성의 전치된 계급적 내용은 은폐하고 그것을 포퓰리즘적 반-이민 인종주의와 대립시키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관용에 대한 단순한 주장은 반-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가장 은혜로운 형식이다.”(<잃어버린 대의>, 402쪽)

두 번째 문장 이하의 원문은 “the lesson the Left should learn from it is that one should not commit the error symmetrical to that of the populist racist mystification/displacement of hatred onto foreigners, and to "throw the baby out with the bath water," that is, to merely oppose populist anti-immigrant racism with multiculturalist openness, obliterating its displaced class content - benevolent as it wants to be, the simple insistence on tolerance is the most perfidious form of anti-proletarian class struggle...”입니다.   

여기서 ‘its displaced class content’를 ‘다문화주의적 개방성의 전치된 계급적 내용’이라고 옮겼는데, ‘populist anti-immigrant racism’의 ‘전치된 계급적 내용’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the most perfidious form of anti-proletarian class struggle”을 “반-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가장 은혜로운 형식”으로 옮긴 것은 착오로 보입니다. <레닌 재장전>에서 같은 문단을 다시 옮긴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우파 인종주의 포퓰리즘은 오늘날 ‘계급투쟁’이 시대에 뒤떨어진 퇴물이 아니라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가장 좋은 사례다. 여기서 좌파가 배워야 하는 교훈은 포퓰리즘적 인종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증오를 외국인들에게 전치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내다버려서는 안 된다. 즉 다문화적 개방을 명분으로 포퓰리즘적 반-이민 인종주의에 대해 그 전치된 계급적 내용을 간과하고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호의적 의도에서라 하더라도 단순히 다문화주의적 개방만을 고집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에 반대하는 가장 기만적인 형식이다.”(<레닌 재장전>, 132쪽) 

포퓰리즘이 갖는 이러한 ‘계급적 내용’ 때문에 지젝은 거기에서 ‘네오-파시즘’의 그림자를 읽어내는 자유주의적 태도에 반대합니다. “새로운 포퓰리즘적 우파와 좌파가 공유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본래적 의미에서의 정치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인식 말이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점입니다.  

반면에 “다문화주의적 관용에서 가장 웃기는 점은 물론 계급 구별이 그 안에 기입되는 방식이다. 상층 계급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개인들은 그런 다문화주의적 관용을 이용하여 하층 백인 노동자들의 ‘근본주의’를 꾸짖는데, 이것은 (이데올로기적인) 공격에 (정치 경제적인) 모욕까지 더하는 꼴이다.”(<지젝이 만난 레닌>, 278쪽)  

마지막 문장은 “adding (ideological) insult to (politico-economic) injury”를 옮긴 것으로 앞뒤가 전도돼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상류계급 사람이 다문화주의적 관용을 말하면서 하층 백인들의 ‘근본주의’(혹은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경제적) 상처에다가 (이데올로기적) 모욕까지 더하는, 말하자면 상처에다 소금까지 뿌리는 짓이라는 것이죠(우리 같으면 빈곤층의 부도덕과 무교양에 대한 비판에 해당할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훈은 분명하다고 지젝은 말합니다. “근본주의적 포퓰리즘이 좌파적 꿈의 부재한 공백을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포퓰리즘은 제도화된 탈정치의 어두운 분신으로 출현하고 있지만, 그 한계 또한 분명합니다. 지젝의 주장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포퓰리즘’은 정의상 부정적인 현상, 거절에 기반한 현상, 심지어는 무력함의 암묵적 승인이다. 우리 모두는 가로등 아래 흘린 열쇠를 찾는 한 남자에 대한 오래된 농담을 알고 있다. 어디서 잃어버렸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캄캄한 구석에서 잃어버렸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그는 왜 여기 불빛 아래서 찾고 있는가? 왜냐하면 여기가 훨씬 더 잘 보이기 때문이라고. 포퓰리즘에는 항상 이런 종류의 속임수가 있다. 이것이 포퓰리즘이 오늘날의 해방적 기획이 기입되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만 뜻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의 해방적 정치의 주된 임무는 - 그것의 생사를 건 임무는 - (포퓰리즘처럼) 제도화된 정치를 비판하면서도 포퓰리즘의 유혹을 피할 수 있는 정치적 동원의 형식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제안해야 한다.”(<레닌 재장전>, 152-3쪽)

10.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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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젝의 레닌주의와 과거로부터의 풍경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4-15 23:55 
    <레닌 재장전>에 대한 서평을 옮겨놓다 보니 지난 2월 수유너머N에서 가졌던 화요토론회 자리가 생각났다. 안 그래도 토론회 장면을 찍은 사진을 홈피에 올려놓았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던 참이어서 들어가봤다(http://nomadist.org/xe/galary/13552). 이런저런 근심으로 무거운 머리를 잠시 내려놓는다. 발표문은 이미 두 개의 페이퍼로 정리해놓은 바 있으니 참고하시길.    10.
 
 
빵가게재습격 2010-02-2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습니다.^^

로쟈 2010-02-24 18:34   좋아요 0 | URL
고생이랄 건 없는데, 다른 일들이 밀려서 문제지요.^^;

2010-02-24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4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4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ta 2010-02-2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도 생각보다 번역이 좋지 못한가 보군요. 역시 꼼꼼히 독해하려면 원서와 대조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글을 읽으면서 생각난점 몇가지만 적어보겠습니다.

위에 문화혁명당시 소위 상하이코뮌에 대한 마오의 대처를 보면 마치 크론슈타트 반란에 대한 레닌의 대처를 생각나게 하는군요. 마오나 레닌은 혁명이 인민 스스로에 의해 급진화되어 당의 통제를 벋어나는 시점에서 일종의 반혁명?을 통해 당에 의한 통제력을 회복했다는 점에서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젝의 말대로라면 마오나 혹은 스탈린의 문제점은 혁명을 오히려 충분히 급진화시키지 못했다고 말하고있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레닌의 전략을 옹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좀 모순되지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관되게 급진적이려면 레닌이나 마오 혹은 스탈린등이 주장한 당 주도의 혁명이 아니라 인민의 코뮌적인 직접지배를 목표로하는 그런 혁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고 레닌이나 스탈린 혹은 마오식의 당주도에 의한 혁명이 될 경우 위에서 예로든 스탈린의 노멘클라투라에 대한 숙청도 그리고 마오의 문화혁명도 결국은 스탈린이나 마오의 개인숭배나 독재를 위한 통치전술의 일환으로서의 폭력일 뿐이 라는 해석도 가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 민주주의"를 위한 신적 폭력이라기 보다는요.

따라서 지젝이 간과하는 것은 결국 이러한 당주도에 의한 혁명이나 권력의 속성이 가진 치명적 문제점을 과소평가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고 또 그가 말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급진적인 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레닌이나 마오적 혁명전략보다는 오히려 아나키스트적인 코뮌적 권력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지요.

“다시 시작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이와같은 실패를 반복하기 위해서 참조해야 될것은 비록 권력투쟁과정에서 일종의 권력의 공백상태를 허용하게 되어 실패하기 쉬운 혁명인 일종의 코뮌적(혹은 아나키즘적) 혁명전략이 오히려 더 필요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파리코뮌이 러시아혁명보다도 더 인민에 의해 주도된 혁명이라는 점에서는 시사점이 많은 사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로쟈 2010-02-28 14:49   좋아요 0 | URL
지젝의 주장은 레닌이 실패한 자리에서, 하지만 그가 열어놓은 가능성의 공간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레닌 이전'이나 '레닌 말고'가 아니고요. '아나키스트적인 코뮌적 권력'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레닌주의와의 거리는 분명해보입니다...

yoonta 2010-03-01 21:01   좋아요 0 | URL
코뮌적 권력이라는 건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당주도의 권력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레닌이나 스탈린이 열어놓은 가능성의 공간에서 시작하자는 이야기도 여기에 마찬가지로 적용시킬수있는 것이지요. 레닌이나 스탈린 혹은 마오가 실패했던 방법들을 반복하지 않기위한 것이므로.

로쟈 2010-03-01 22:37   좋아요 0 | URL
그렇담 '소비에트'도 그런 '코뮌적 권력'이 아니었던가요?..

yoonta 2010-03-02 00:21   좋아요 0 | URL
어떠한 소비에트인가에 따라 다르지요. 10월혁명이후 볼셰비키에 의해 장악된 소비에트냐 아니면 10월혁명의 추동력이 되었던 자발적 저항조직으로서의 소비에트냐. 10월혁명이후의 소비에트를 본래적 의미에서의 노동자나 인민의 평의회로 보기는 힘들죠. 어디까지나 볼키를 위한 조직이 되었으므로. 따라서 레닌이 4월테제에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고 외쳤을때의 그 소비에트는 10월 이후에 볼셰비키주도로 운영되는 소비에트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라고 봐야합니다.

러시아아나키스트들은 10월 혁명이후 볼셰비키로의 권력집중현상을 이런 시각으로 비판하였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에게로라는 표어는 아나키스트들에게 결코 전적으로 수용뢸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10월봉기 이전까지는 그래도 행동을 촉구하는 '진보적 '외침이었다고 그는 (그리고리 막시모프) 설명했다. 그 당시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진영에 몰려들었던 자위주의자들이나 기회주의자들과 달리 혁명세력으로 구성되어있었다. 그러나 10월의 일격이후 레닌과 그의 무리들은 혁명적 역할을 포기하고 대신 정치적 지배자가 되었으며 소비에트를 국가권력의 저장소로 변질시켰다는 것이다. 소비에트가 권력의 매개체로 남아있는 한 모든 아나키스트들은 그것에 항거할 의무가 있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러시아아나키스트 1917> 101~102쪽)

이처럼 문제는 어떠한 소비에트냐 즉 파리코뮌적 소비에트냐 볼키라는 국가권력을 위한 소비에트냐를 구분해야 하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