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다 돼서야 편의점에 가 신문을 사들고 왔다. 즐겨 마시는 카페오레를 사러 간 길이었다. 북리뷰란은 이미 인터넷으로 훑어보았기에 관심을 갖고 읽어본 건 칼럼란이다. 마침 어제 <김예슬 선언>(느린걸음, 2010)도 읽은 김에 두 고대생과 오늘날 대학 문제를 짚어본 칼럼을 옮겨놓는다. 참고로, 오늘날 대학문제를 집약적으로 다룬 책으론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에서 엮은 <지식사회 대학을 말한다>(선인, 2010)도 있다.  

 

경향신문(10. 04. 17) 김연아와 김예슬 그리고 대학 

한 대학생이 자신의 대학을 '방문'했다. 그 학생은 등교하자마자 총장실로 직행해 총장, 부총장, 학생처장 등과 '환담'을 나눈다. 총장은 그 학생에게 미래를 위해 외국어도 공부하라고 권유하고 학과장은 어떤 책을 원서에 번역서까지 선물한다. 그리고 그 학생은 학장의 안내로 학과건물을 시찰(?)한 후 강의실로 들어갔다. 9시에 시작한 수업에 1시간 40분이나 늦게 들어간 그는 다음 약속 때문에 10분만 앉았다가 나왔다. 그 학생의 측근(?)은 그가 언제 다시 학교에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2학년에 재학 중인 이 학생은 1학년 때도 딱 한 번 학교에 갔다. 그때도 총장 등 보직 교수들과 차를 마시며 환담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돌아갔다. 그럼에도 졸업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요즘 이 학생의 근황을 듣는다. '은퇴'를 고민 중이란다. 학생이 무슨 은퇴? 도대체 그 학생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다니지도 않을 학교를 도대체 왜 들어갔나.

자본주의 사회의 ‘초극강 상품’
누구의 이야기인지 다들 아실 것이다. 바로 김연아다. 그는 귀국 후 광고계약을 맺은 한 의류매장에 가기도 하고 '삼성 애니콜과 함께하는 스마트 데이트'라는, 재벌기업의 브랜드명으로 뒤범벅인 팬미팅 행사에 나타나기도 했다. 김연아는 그러나 분명 대학생임에도 학생으로서의 신분이나 그에 따르는 의무에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결국 '학벌'만을 위해 대학에 간 것인가. 어쨌든 학생이 학교를 외면하는 모습, 학교가 학생을 모시는 모습, 수업을 안 들어와도 학교 광고만 되면 그게 '장땡'이라는 모습은 이 시대 대학의 굴욕이다. 



이러한 모습 위에 겹쳐지는 또 다른 기억은 나를 더욱 씁쓸하게 한다. 지난 달 김연아와 같은 대학의 김예슬이라는 학생은 자퇴를 선언했다. 그는 '자격증 브로커' 또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한 대학에서 재벌기업이 원하는 상품이 되어 간택되기를 열망하기보단 인간이 되는 길을 선택하기 위해 자퇴한다고 했다. 또 그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리는 것을 기뻐"했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비정하고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을 개탄했다. 그래서 김연아가 택한 학벌을 그는 버렸다.

김연아와 김예슬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경쟁'이 아닌가 싶다. 한쪽은 세계챔피언이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1등 인간'이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미디어시대 자본주의사회의 '초극강 상품'이다. 그래서 그 대학이 모셔갔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거대한 자본의 탑에서 돌멩이에 불과한 인간이다. 그 끝없는 경쟁의 트랙을 질주하다가 결국 방황하는 젊은이다. 결국 자본이 요구하는 상품이 되기를 거부한 그가 택한 것은 자퇴였다. 이렇듯 완벽하게 대비되는 두 젊은이가 '고려대'라는 공간 안에서 뒤범벅이 되어 존재한다.

신자유주의에서는 대학마저 요지경이 되는 것인가. 대학이 보도자료까지 뿌려가며 김연아의 등교를 광고한다. 김예슬은 뒷문에 학교를 거부한다는 대자보를 붙인다. 대학이 '완제품' 김연아를 모셔와 '광고모델'로 활용한다. 그러는 사이 학교의 관심을 받지 못한 평범한 학생 김예슬은 방황하다 자퇴한다. 오직 경쟁능력에 따라 한 학생은 대접 받고 다른 학생은 자퇴의 길을 택한다. 가르치고 길러내는 곳이 대학일 터인데 '완제품'은 대접받고 '방황하는 청춘'은 설 곳이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대학의 모습이어야만 하는가. 한국사회 대학은 과연 '大學'다울 수 있을 것인가.

상품화 거부 ‘방황하는 청춘’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대학에게도 최소한의 자존심과 지조는 있어야 한다. 마침 고려대와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의 와세다대에서 날아온 소식이 눈을 끈다. 이 대학 3년생인 후쿠하라 아이는 국가대표 탁구선수면서 CF를 찍을 정도의 인기 스타다. 현재 세계랭킹 8위인 그는 런던올림픽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학교 출석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올림픽 메달을 노리는 스타학생에게 와세다대는 어떤 배려를 했을까. 학교는 안 와도 좋으니 메달만 따라고? 그래서 학교의 명예를 빛내라고? 천만에. 학교가 제시하는 출석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게 된 후쿠하라는 지난 달 자퇴해야 했다.(정희준 | 동아대 교수·문화연구) 

10. 04. 17. 

P.S. 칼럼의 요지에 동감하지만 "대학이 '완제품' 김연아를 모셔와 '광고모델'로 활용한다. 그러는 사이 학교의 관심을 받지 못한 평범한 학생 김예슬은 방황하다 자퇴한다. 오직 경쟁능력에 따라 한 학생은 대접 받고 다른 학생은 자퇴의 길을 택한다."라고 한 대목은 오해의 소지도 있는데, 김예슬은 '학교의 관심을 받지 못해' 방황하다 자퇴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말을 빌리면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현재 한국 대학의 현실에 절망하여 자퇴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진리'는 학점에 팔아넘겼다. '자유'는 두려움에 팔아 넘겼다. '정의'는 이익에 팔아 넘겼다. 나를 가슴 벅차게 했던 그 세 단어를 나 스스로 팔아 넘기면서, 그것들이 모두 침묵 속에 팔아 넘겨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려대학교는 '삼성'과 '글로벌'과 '이명박 대통령'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이건 고려대학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학大學 없는 대학. 순수한 영혼과 진리와 자유와 비판과 정의와 저항의 대학이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진리 탐구의 전당과 대학문화라는 벽이 무너지면서, 세상 모든 대학이 자본과 시장의 탐욕에 활짝 열려 버렸다.(35쪽)  

천안함 사건에 묻힌 감이 있지만, '특별한 대학생' 김연아를 '환대'한 이기수 고려대 총장은 며칠 전 대교협 신임 회장에 취임하면서 기여입학제 도입 찬성 등의 발언을 토해내 한번 더 구설수에 올랐다(지난 1월에 한국 대학의 등록금이 너무 싸다고 발언한 장본인이다). 자퇴생 한 명 정도는 안중에는 없는 듯하다. 사설 하나를 옮겨놓는다.   

국민일보(10. 04. 15) 혼란만 키운 대교협 회장 발언 

대학들을 대표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신임 회장이, 그것도 취임식 날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사회적 중론을 모아 정리된 대학입시 기준을 완전히 깔아뭉개는 듯한 말을 했으니 입시생과 학부모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기수 대교협 신임 회장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학이 입학사정관 전형 공통기준을 어기더라도 가급적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겨도 불이익 없는 기준은 있으나마나한 셈이니 결국 공통기준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대교협은 지난 7일 공통기준을 발표하면서 어기는 대학을 제재할 것이라고 했었는데 며칠 사이에 이렇게 오락가락하니 고교들은 입시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게 됐다. 논란이 일자 대교협이 내놓은 해명자료가 더 가관이다. “자율 규제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인데, 안 지켜도 된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이 회장은 또 “우수한 외국어 학교라면 필요한 자격을 갖춘 학생에게 가산점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시행하겠다는 이야기다. 이 회장이 총장으로 있는 고려대는 2009 수시전형에서 고교등급제를 시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이제 고교등급제가 전체 대학으로 확산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했지만 “100억원 정도 들여 건물을 지어주는 사람의 2, 3세가 수학능력 검증을 거쳐 정원 외 1% 정도 입학을 허용하는 제도는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기여입학제를 옹호했다. 기여입학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부정적 여론이 많아 당분간 도입하지 않기로 한 상황에서 대교협 회장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는 얼마 전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이 교육의 질에 비해 싼 편”이라고 말해 비난을 받았었다.

이 회장의 가벼운 입도 문제려니와 입학사정관제 공통기준이 과연 지켜질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입시생들은 공인 어학시험이나 경시대회를 챙겨야 하는 것인지 필요가 없는 것인지 더 헷갈리게 됐다. 이런 것도 정리하지 못해 국민을 골탕 먹이는 교육과학기술부라면 차라리 해체하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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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2010-04-18 09:59   좋아요 0 | URL
젋은이 들보다 더 많이 살아온 어른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숭례문을 태워 버리지 않나, 강의 모양을 확 바뀌버리지 않나 등 그 만큼 사회적 능력이 많아서 겠지만요. 고교때 종교의 자유를 외첬던 대학생, 입학여 대학의 행태에 실망하여 자퇴하게된 여대생 등이 우리 사회의 소금이 될거라 믿습니다.

로쟈 2010-04-18 22:24   좋아요 0 | URL
소금을 배격하지 않는 사회가 먼저 돼야겠지요...

paul 2010-04-18 11:38   좋아요 0 | URL
첫번째 글을 읽으며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김연아와 김예슬 양의 단순한 대비), 역시 로쟈님이 찝어주신 대목을 보니, 보다 명쾌해지는군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회 속에서 대학의 세례가 갖는 힘을 알기에, 부끄러움과 답답함이 동시에 드는군요....

로쟈 2010-04-18 22:22   좋아요 0 | URL
대졸자 주류 사회란 표현을 쓰는데, 이미 졸업장이 별로 없는 시대가 되었죠. 그런 시대에 등록금만 올라가고 있다는 건 넌센스입니다...

비로그인 2010-04-18 22:46   좋아요 0 | URL
진정한 의미(?)의 대학은 다른 의미에서 '잃어버린 10년'의 귀결(작년 강내희씨 칼럼에 대한 댓글에서 몇 마디 늘어놨던 것이 떠오릅니다)을 어떻게 감당하며 만회할 것인지, 저도 '사실상' 대학에 절망한 지 오래된 한 사람으로서 답답함을 느낍니다. 2007년부터 저에게 대학 역할을 해준 이가 강유원씨, 로쟈님 등이었죠...

로쟈 2010-04-18 22:56   좋아요 0 | URL
양다리(?) 걸치고 있는 저도 헷갈립니다. 갱신이 필요한 건지, 종언이 필요한 건지...

비로그인 2010-04-20 12:10   좋아요 0 | URL
제가 학교 다닐 때부터도 의심스러웠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학문화'나 '대학공동체'란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현장 분위기를 도통 모르겠네요. 대학교가 그저 캠퍼스가 '큰 학교', 대학원이 그저 '큰 학원'이 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로쟈 2010-04-22 00:34   좋아요 0 | URL
요즘 대학 분위기는 저도 잘 모릅니다. 강의실만 들락거려서요.^^;

mirror 2010-04-19 02:53   좋아요 0 | URL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점을 신자유주의로 환원하는 신자유주의 환원론을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대학들의 말도 안 되는 행태가 신자유주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를 발명한 미국과 영국의 대학들이 한국과 같은가요? 그들 대학은 한국 대학과 같은 미친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대학들의 이 행태는 신자유주의와 무관합니다. 미국 대학들에는 학원스포츠가 한국보다 더 발달해 있지만, 운동선수들도 다른 학생들처럼 공부하고 학점을 따야 졸업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천박함과 반지성주의, 한국 사회의 본질적이지 않은 영역에서의 극도의 경쟁은 신자유주의와 무관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의 원인이 신자유주의라면, 신자유주의의 종주국들도 똑같은 문제들을 보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안 그렇지 않습니까? 4대강 사업의 원인이 신자유주의가 아닌 것처럼, 한국 대학의 문제들을 야기한 원인도 그것이 아닐 것입니다.
김예슬이도 그렇습니다. 자본주의의 부속품이 되는 교육을 반대하다고 했죠? 김예슬이 다닌 학과가 경영학과입니다. 만약 김예슬이 노어노문학과나 역사학과 철학과 또는 사회학과를 다녔다면, 기업의 사원이 되는 교육만을 받았을까요? 고려대 정도의 역사학과나 국문학과에서 취업교육을 시키지는 않습니다. 김예슬은 자신이 학과를 잘못 선택하고 적응하지 못한채 엉뚱한 짓을 했던 것입니다. 경영학과에서 기업의 사원이 되는 교육을 시키지 도대체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하나요? 경영학과에서 지젝에 대해서 가르쳐야 합니까? 고려대 경영학과는 교수가 100명이나 되는 좋은 학과입니다. 이 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죠. 김예슬은 예초부터 이 학과에 가지 말았어야 합니다. 엉뚱한 학과 선택이 이 엉뚱한 짓의 원인인 것이죠. 어린 학생의 치기어린 행동에 이토록 환호하는 것 또한 아주 우스운 일이 아닐까요.
현대사회에서 대학이 국가나 사회 경쟁력의 핵심적 지위를 차지해야 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공과대학, 경영대학은 모두 기업의 사원을 기르기 위해서 만들어진 학과죠. 이런 학과들이 한국 대학들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은 상당부분 자본주의의 사원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이죠.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죠. 그러나 한국의 대학들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합니다. 김연아가 대학생이라고 적을 두는 것 자체가 대학들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이죠.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는 원인을 신자유주의로 돌리는 것은 문제점에 눈감은 것과 같습니다.

로쟈 2010-04-19 08:21   좋아요 0 | URL
장문의 댓글 감사합니다. 한국대학의 행태는 신자유주의보다도 더 나쁜 것이다, 로 정리하겠습니다. 한데, '신자유주의'란 말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기원적 의미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도입한 이들의 용례에 어긋나는 건 아닙니다. CEO총장이 유행했듯이, 기본 바탕은 대학을 '제품'을 생산해내는 '기업'으로 본다는 것이죠. 이건 '학과 선택'의 문제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그런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인문학과들이 축소되거나 폐과되는 것이 한국 대학의 현실입니다. 고작 '대학 부적응' 학생의 자퇴선언에 호들갑이냐 싶겠지만, 한국대학의 문제점들을 응집시켜놓은 '컨테이너' 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논쟁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사실 <김예슬 선언>을 읽어보니 단순한 대학 거부가 아니라 "비즈니스 문명, 도시기계문명, 자본권력의 세계체제'에 대한 거부였습니다. 그래서 '유나바머 선언'을 떠올렸구요. 그런데, 그건 또 문제의 확산이자 다른 맥락이어서 초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의미있는 문제를 제기한 거라면 생산적인 논쟁이 가능하겠지요. 두고볼 일입니다...

2010-04-19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9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