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들에 대해 적는다. 특별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미나리'들이 정겹고 안쓰럽다. 내가 미나리 사촌쯤 되는 처지여서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미나리들도 아니다. 두 편의 시에 등장하는 미나리들에 대해 적는다. 하나는 권혁웅의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민음사, 2007)에 실린 시 '저 일몰'에 나오는 미나리다(나는 순전히 미나리 덕분에, 라면 과장이지만, 이 시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당신도 마음에 들 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건 나의 미나리일 뿐이니까.

그대 마음이 만만(滿滿)했다고
내가 거둬낸 건 거품일 뿐이라고
터지 미더덕에 덴 혀로
더듬거리는 저녁이 내게도 있었지
저 일몰 어디쯤
내가 앉기를 거절한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을지 몰라
그래서 온통 붉었던 건지도 몰라
레인지에 올려 둔 해물탕처럼 딱 한번
끓어넘치고는
굳기름처럼 어두워졌을지 몰라
입가에 묻은 술기를 닦아내며
먼 곳의 취기거나
수위를 가늠하는 시간, 나도
미역처럼 머리를 푼 여자와
못생긴 아이 하나쯤은 데리고 올 수 있었다고
풀죽은 미나리가 동서(東西)를 모르듯
여기까지 오려고 온 것은 아니라고 

일단 배경은 해물탕이다. "그대 마음이 만만"했다는 건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는 뜻이겠다. 다 끓은 해물탕처럼. 문제는 나. 하지만, '나'는 '거품'이나 거둬낸다. 고작 터진 미더덕에 혓바닥이나 데면서 실없는 소리나 더듬거렸겠다. 한마디로 '현명한 등신' 같이 처신한 그런 저녁이 있었겠다. 이런저런 계산으로 마음 복잡했을 저녁 식사 자리.

결국 "레인지에 올려둔 해물탕처럼 딱 한번/ 끓어넘치고는/ 굳기름처럼 어두워졌"던 것이 '나'의 마음이겠다. 잠시 '다른 삶'을 화끈하게 꿈꾸어보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 "입가에 묻은 술기를 닦아"냈을 법하다. 이젠 먼 곳으로 물러앉은 '취기'가 꿈꾸었을 다른 삶이란 어떤 삶인가? '수위를 가늠하며', 곧 냉정하게 따져본다. "미역처럼 머리를 푼 여자와/ 못 생긴 아이 하나쯤을 데리고 올 수 있었"을 삶이다. 그 다른 삶의 끝간데? '머리를 푼'에 상응하는 것이 '풀죽은 미나리'이다. 동서(東西)를 모르는 미나리란 앞뒤를 재지 않는 미나리이다. 그런 미나리다운 변명이 "여기까지 오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는 게 아닐까? '나'에겐 "미역처럼 머리를 푼 여자"와의 또다른 삶에 대한 욕망이 잠시 끓어넘쳤지만 따져보면 그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이 아니며 결국엔 '후회'하게 될 삶이다. '풀죽은 미나리'의 푸념만이 남을 삶이다. 그래서 '나'는 '저 일몰'의 유혹에서 비껴난다.

이 시의 '이야기'는 그렇게 읽힌다. 하지만 그 이야기와 무관하더라도 "풀죽은 미나리가 동서(東西)를 모르듯"이란 비유는 절묘하다. '동서(東西)'를 아는 것들은 이 절묘함을 모르리라...

 

 

 

 

이 '풀죽은 미나리' 때문에 떠올리게 된 또다른 미나리는 '복어탕의 미나리'이다. 시인이었던 소설가 이응준의 시 '어둠의 뿌리는 무럭무럭 자라나 하늘로 간다'에 등장하며 이 시는 <나무들이 숲을 거부했다>(고려원, 1995; 작가정신, 2004)에 수록돼 있다. 다소 길지만 전문을 인용하면 이렇다(시집을 손에 들고 있지 않기에 인용은 온라인에서 따온다).

아버지는 어린 내게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 속에서 망망대해를 떠돌더라도 살아남고 싶어했던 그 아버지의
아이는 이렇게 자라나
진 자가 되었다. 나는
가끔 내 오른 손목 동맥 근처의 송충이 같은 칼자국을 바라본다. 나는
적어도 책 한 권에 인생이 변했노라고 말하는 비열한 인간은 되기 싫었던 것이다.
이 세상의

원숭이들이 대충 무슨무슨 원숭이로 분류되는 것처럼 나와
내가 사랑햇던 그대의 種名은 지난날이다. 저
걸레로 닦아내고 싶은 검은 안개다. 쉽게 말해서 나는
여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반짝이는 이유가, 그들의
잎사귀 앞면과 뒷면의 푸름이 다르기 때문임을 너무 일찍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대라는 도끼가 찍고 난 뒤에 파인
떡갈나무의 바로 그 자리, 진물이 흐르는
상처가 되고 싶었다. 헐떡거리며 뭍에 오른
아가미이고 싶었다.

창밖 보름달이 홍역을 앓고 있다. 바로 그때 나는
방에 엎드려 성산문은 죽고 한명희는 정승이 된다는 세상의 이치를
문장으로 쓰고 있던 우울이었다. 그저 내가 어디론가
사라지기 바라던 사람들의 물살에 휩쓸려 가고 있을 뿐이었고

-바다의 금붕어
-늪의 상어
-태양 아래 두더지

라고 그들은 나를 표현햇다. 어쩌면
사랑하는 그대로 그랬는지 모른다. 치욕과 멸시가 아교의 끈적끈적한 감촉으로
내 산책에 닳은 구두 밑창을 햝던 그해, 나는
수음 직후의 뿌연 형광등 불빛 같은 생을
물 말아 먹어버렸노라고 고백했지만
도대체가 그들은 나를 복어탕의 미나리 정도로밖에는 생각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내 혈관에
쥐약 1g의 치사량이라도 있었더라면 피에 물들지도
눈물에 번지지도 못했던 이 슬픈 옷깃에 묻은
안개의 굵은 입자 따윈
쉽게 털어내버릴 수 있었을 텐데 이제

비로소 누군가에게 나는 죄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낱말들을 어려워하고 심지어는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았기에 내 죄가
뭔지도 모르는 것이다. 눈물이 마른 자리가 얼마나 더러운지도,
오늘이라는 노비문서에 불을 지르는 법도, 어둠의 뿌리가 무럭무럭 자라나 하늘로
올라간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다.

한때(아직 20대였다!) 복사해서 가방에 넣어다니기도 했던 시인데(그런 시들이 좀 된다), 다른 구절들은 차치하고 요는 "도대체가 그들은 나를 복어탕의 미나리 정도로밖에는 생각해주지 않았던 것이다"란 시구에서 '복어탕의 미나리'란 은유가 얼마나 절묘한가라는 것이다. 한 서점의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나는 시인에게 이 구절이 얼마나 경탄스러운가를 말했지만 그는 뜨듯미지근하게만 답했다. 이런 구절이 정겨운 건 아무래도 나 혼자 미나리 사촌이어서가 아닐까도 싶다. 

요컨대, 미나리들에 대해 늘어놓는 나는 '복어탕의 풀죽은 미나리'이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바닥까지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소 위안이 된다. 미나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미나리 아닌 것들은 미워하면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여기저기 해물탕들이 끓고 있겠다...

07.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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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11-01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물탕이나 끓여 달라고 와이프한테 이야기하면 욕먹겠죠? -_-a
요즘 많이 다운되신것 같은데 기운내시길 바랍니다..^^

로쟈 2007-11-01 23:05   좋아요 0 | URL
가을철에 좀 우울한 거야 감기만큼이나 흔한 병이죠. 저는 매운탕 대신에 라면 끓이고 있습니다.^^

2007-11-01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01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07-11-0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끔찍하게도 좋아하는 야채가 바로 미나리인데요. 유감스럽게도 저는 복어탕에 들어 있는 미나리는 먹어 보지를 못해서 그 미나리의 심사가 어떠한가는 잘 모르겠네요. 다만, 미나리를 너무 좋아하는데 엄마가 하도 미나리 무침을 안 해줘서 국민학교 5학년때인가 미술 선생님 집앞 또랑에 해질녘까지 숨어 있다가 미나리를 서리한 기억은 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엄마가 미나리 무침을 해줬는가는 기억이 역시 안 나고, 미나리 훔치려고 또랑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지리한 시간 동안 휘영청 밝기만 했던 달빛은 기억이 나는군요. 사는 게 하긴 뭐 그렇죠.

로쟈 2007-11-02 00:29   좋아요 0 | URL
정말 '끔찍하게도' 좋아하셨군요.^^

瑚璉 2007-11-02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어탕의 미나리는 굉장히 맛내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는 저에게는 좀 와닿는 것이 없는 싯구네요(^^).

로쟈 2007-11-02 01:23   좋아요 0 | URL
그게 비교대상이 '복어'입니다. 복어냐 미나리냐...

수유 2007-11-02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나리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겨자간장에 찍어먹는겁니다. 뜨거운 해물탕 위에 고스란히 얹혀져있는 그것들을 겨자간장에 듬뿍 적셔 먹으면 아주아주 맛있답니다 향이 살아나지요. 미나리는 미나리꽝을 생각나게 하고 미나리꽝은 거머리를 떠올리게 하며 그리하여 온전히 익지 않은 미나리에선, 또는 미나리꽝에 발을 담그고 있다간 거머리의 유충들이 살아, 또는 그 유충들의 어미가 우리 살 속을 파고들지도 모릅니다..우울하십니까? 나말고 우울한 이가 또 한사람 있으니 다행한 노릇.

로쟈 2007-11-02 19:50   좋아요 0 | URL
미나리꽝은 꽝이군요.^^ 그래도 저는 토성의 영향 아래 있지는 않습니다.^^;
 

구내서점에 들렀다가 <현대비평과 이론>(2007년, 봄-여름호)를 손에 들었다(원래는 가을-겨울호를 사려고 했지만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몇 권이나 팔릴까 싶은 잡지인데, 나는 자주 구입하는 편이다(일년에 두 번 나오는 게 다행이다!). '정명환의 문학과 학문'이 특집이어서 생각난 김에 '정명환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하지만 그가 대표작으로 꼽는 책들 가운데 <한국 작가와 지성>(1978), <졸라와 자연주의>(1982)는 절판된 지 오래이고 <문학을 찾아서>(1994)는 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리스트가 반쪽짜리밖에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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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가 적은 말. "내가 읽은 사르트르는 정명환과 박이문이 읽은 사르트르이다."
문학을 생각하다
정명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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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환의 평론집은 몇 권 되지 않는다. 해서 다 사두면 된다.
젊은이를 위한 문학이야기
정명환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12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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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갖고 있는 책.
현대의 위기와 인간
정명환 지음 / 민음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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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4월 2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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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무게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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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11-04 13:45   좋아요 0 | URL
<문학을 찾아서>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품절이라니, 저 역시나 아쉽고 안타깝군요.
 

내일자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은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다루고 있다. 문득 20년전 대학시절이 떠올라 기사를 옮겨놓고 몇 자 적는다. 아마도 그해 여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와 함께 민음사의 세계시인선으로 읽었던 이 시집은 <비가>와 함께 비의적인 매혹을 품고 있어서(사실 시보다도 발레리의 '정신'이 더 매혹적이었다) 이후에 발레리의 책들이나 그에 관한 책들을 주섬주섬 사모았던 기억이 있다. 젊은 날 시를 쓰고 한 20년 절필을 해야지, 하고 마음 먹은 것도 내 딴엔 발레리 흉내쯤 된다(그 20년이 다 돼 간다!)...

Поль Валери Об искусстве

내가 아끼는 책은 러시아어판 <예술론>(1993). 3년전 모스크바대학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구한 책이다.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한국어 발레리는 몇 권 되지 않는다. <나르시스는 말한다>(태학당, 2000)나 <발레리 선집>(을유문화사, 1999), <젊은 운명의 여신>(혜원출판사, 1987) 등이 문학평론가 김현이 젊은 시절 옮긴 <해변의 묘지>(민음사, 1973)와 함께 한국어로 나온 시집들이고 산문집으론 <드가-춤-데생>(열화당, 1977), <발레리 산문선>(인폴리오, 1997), <신체의 미학>(현대미학사, 1997) 정도가 나와 있는 듯하다(그밖에 두어 권의 연구서가 있다). 개인적으론 영역본 산문집들을 몇 권의 한국어본에 보태어 갖고 있다. 여하튼 여유가 없어서인지 그간에 모아놓기만 한 책들을 미처 읽지 못했는데, 삶의 의욕이 수시로 저하되는 요즘인지라 한번쯤 뒤적여보고 싶기도 하다. 아래 사진은 릴케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발레리의 모습.  

한국일보(07. 10. 30) [오늘의 책<10월 30일>] 해변의 묘지

1871년 10월 30일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정점에 올려놓은 시인이자 20세기 최대의 산문가로 꼽히는 폴 발레리가 태어났다. 1945년 74세로 몰. 가장 잘 알려진 발레리의 시는 <해변의 묘지>다. 남불 항구도시의 수부(水夫)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지중해는 언제나 정신의 고향이었다. 죽어서 그는 고향 해변의 묘지에 묻혔다. ‘바람이 인다! … 살려고 애써야 한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김현(1942~1990)은 <해변의 묘지>의 마지막 연 첫 구를 ‘바람이 인다! … 살려고 애써야 한다!’로 번역했지만, 개인적으로 ‘바람이 분다! … 살아야겠다!’는 번역이 우리말로는 더 매력있게 느껴진다. 20세기말 한국의 한 시인은 이 구절을 이렇게 변주하기도 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남진우의 시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에서).

“언어의 한쪽 끝에는 음악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대수학이 있다.” 시에서 모든 불순물을 제거한 순수시를 지향했던 발레리의 엄밀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발레리에 감동한 릴케가 발레리의 평생의 지기였던 앙드레 지드에게 보낸 편지에 쓴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모든 작품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날 나는 발레리를 읽었다. 그리고 내 기다림이 끝이 난 줄 알았다”는 구절은 유명하다. 경구처럼 쓰이는 문장 “기억하라,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도 발레리의 시구다.(하종오기자)

07. 10. 29.

P.S. 그래, 내게 그만한 호사가 허락된다면 죽어 해변의 묘지에 묻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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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10-30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닷가 풍경이 이쁩니다.

로쟈 2007-11-01 21:20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래도 고른 사진입니다...

필라멘트 2007-10-30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 선생이 번역한 프랑시들을 읽으면서 자주 느끼는 거지만 교수나 비평가가 번역한 시는 뭔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입니다. 시번역 만큼은 외국어에 능통한 시인이 번역하는 게 좋을 듯 한데요. 물론 외국어에 능통한 시인이 그리 흔하지는 않겠지만요. 황동규 시인이 번역한 엘리어트 시나 강은교 시인이 번역한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번역자들이 시인들이어선지 번역이 무난하더라구요.

로쟈 2007-11-01 21:21   좋아요 0 | URL
가장 좋은 번역은 역시 전문학자나 번역자가 시인과 공역을 하는 것이죠. 러시아의 경우 한국시(조)선 번역에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아흐마토바가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초역은 번역자가 하고 그걸 '시'로 만드는 것이죠...

뭉실이 2007-10-3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추워진날씨에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는
싯구가 확 땡긴다는...*^^*

로쟈 2007-11-01 21:22   좋아요 0 | URL
콧등이 때리는 북서풍이 불면 사정은 또 다르죠.^^;
 

느지막이 학교에 나오는 길에 점심은 오천원짜리 순대국밥으로 때웠다. 학교식당에서보다야 비싼 점심이었지만 '국밥'은 왠지 '때웠다'와 잘 호응할 성싶다. 덕분에 조간신문 기사들을 두루 읽었다. 특히 경향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기획기사 '2007 한국인의 자화상'(http://news.khan.co.kr/kh_news/khan_serial_list.html?s_code=af055)을 '눈물나게' 읽었다. '어린 가장들'을 다룬 기사였다. '죽음으로 내몰린 양극화 절망'이란 1면 기사에서 이미 41분마다(하루 36명) 자살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자살자의 대부분은 생활고를 못 이기고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하니 실상은 '사회적 타살'이란 지적을 읽은 터였다.  

조금 인용하면 이렇다: "1970~80년대에 전태일 열사와 대학생들은 민주화와 사람답게 살 권리 쟁취를 위해 몸을 불살랐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은 지금도 생활고·장애·산재 극복 등 최소한의 삶의 질 보장을 요구하며 자살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화 투쟁 20년을 맞은 한국의 참담한 현주소다.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사회에 남겨진 것은 ‘20대 80’이라는 양극화다. 하위 30%는 한푼도 저축할 수 없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미래도 희망도 약속할 수 없는 삶이다. 양극화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승자독식, 1등지상주의, 신자유주의의 구호 속에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서민들은 경쟁에서 낙오된 패배자 정도로 치부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성장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등 보수정당과 그 대선후보들은 성장중심의 경제공약을 경쟁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잘못된 현실인식에서 나온 잘못된 해법이다. 하층민을 대표해야 할 진보정당은 가치실현을 위한 세력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이어서 읽은 게 여고생 김정은양 이야기(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10281747391&code=210000)와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17세 안재우군 이야기이다. TV 프로들에서도 자주 접하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이 얼마간은 대견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한 자화상으로 김정은양의 이야기를 옮겨놓는다. 그와 대조적인 사설과 함께. 졸렬한 공무원들에 관한 사설이다.

경향신문(07. 10. 29) 어린 가장들-혼자 사는 여고생 김정은양

“가끔씩 학원 다니기 싫다고 투정하는 친구들 보면 ‘내가 대신 가줄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갈 때가 있어요. 저는 수업 시간에 절대 자지 않아요. 졸릴 때는 손톱으로 허벅지를 꼬집어요. 정말 피곤하면 머리카락을 하나씩 뽑아요. 그리고 속으로 몇 번씩 나 자신과 이야기 하죠. ‘이거라도 듣지 않으면 나는 배울 기회가 없다’ ‘수업시간에 잠깐 졸 권리조차 나에게는 없다’…”

김정은양(16)은 새벽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친구들을 과도한 입시경쟁의 희생양으로 묘사하는 것을 들을 때 피식 쓴 웃음을 짓는다. 돈이 없어 학원 문턱도 가보지 못한 정은이에게는 학원 강의 듣고 새벽별을 보면서 집으로 가는 게 소원이기 때문이다. 구르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한창 멋을 부릴 여고 1학년. 하지만 지난 24일 경기 수원의 한 고등학교 근처에서 만난 정은이는 생각이나 말씨가 ‘완벽한 어른’이었다.

“반 친구들은 저를 ‘정은이 형’ ‘정은이 형님’ ‘정은이 이모’ ‘정은이 엄마’라고 불러요.” 정은이가 좋아하는 가수는 요즘 10대들에게 인기있는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아니다. 요즘 10대들은 이름이나 들어봤을까. 정은이가 좋아하는 가수는 ‘김광석’이다.

“노래를 듣는 순간 김광석에게 끌렸어요. 김광석의 잔잔한 노래가 제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노래를 듣다보면 김광석이 왜 자살했는지 알 것 같아요. 이루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늘 동경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이….”

10대 소녀가 사춘기를 거치지 않고 훌쩍 어른이 돼 버린 사연은 김광석의 노랫가락만큼 애절하다. 정은이의 부모님은 7년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모두 돌아가셨다. “경찰로부터 부모님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어요. 믿어지지 않았죠. 이상하게 처음에는 눈물도 나지 않았어요. 6살 아래 동생을 챙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동생에게는 ‘엄마 죽었대’라고 담담하게 말했어요.”

하지만 정은이는 평생 흘릴 눈물을 그날 모두 쏟았다. 동생이 잠든 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밤새 울었다. 정은이는 “그후로 한번도 울지 않았다”고 말했다. “살아 남아야 했고, 부모님 대신 동생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은이는 동생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인터뷰 내내 생기 발랄함을 잃지 않았던 정은이도 동생 이야기에는 표정이 굳어졌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정은이와 동생은 대구에 있는 숙모와 살았다. 숙모는 남매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았다. 정은이는 숙모에게 많이 맞았다. 숙모가 가방을 던져서 연필 심이 머리에 꽂힌 적도 있다. 아직도 흉터가 있다. “잦은 폭력 때문에 24시간 내내 ‘경계태세’를 갖추고 살았어요. 당시 저는 비쩍 마른 채 반 미친 상태로 하루하루를 이어갔죠. 5년간 구타를 견뎠어요. ‘절대 무너지지 말아야지’라고 마음 속으로 수만번 기도를 했어요.”

정은이는 알고 지내던 아주머니의 아들이 군대를 가게 돼 방 하나가 비게 되면서 지난해 수원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동생을 두고 온 게 아직도 마음에 응어리가 되어 있다. 정은이는 “부모님 돌아가신 후 동생을 양자로 보내야 했다”고 자신을 질책했다. “양자로 들어갔으면 지금쯤 잘 먹으면서 잘 살았을 수도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정은이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졌다.

동생과는 가끔 e메일을 주고받아요. 동생이 너무 보고 싶어요. 함께 사는 게 소원이에요. ‘동생이랑 같이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어요. 동생은 내 인생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인도자예요. 저는 ‘부모가 없어서 저런다’는 말을 안 들으려고 진짜 노력을 많이 했어요. 동정 섞인 말을 하면서 연락하라는 사람을 믿지 않아요. 도와준다는 사람이 몇번 있었는데 말뿐이라는 것을 알아요.”

정은이는 지금 60대 할머니가 혼자 사는 아파트의 조그만 방에 세들어 살고 있다.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자 정은이는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는 정은이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밥 먹는 것도 눈치를 준다고 했다. 정은이는 세들어 사는 집에서도 구박을 받고 있었다. 정은이는 “할머니가 ‘매일 약속 없냐, 누구는 여기 살 때 음식도 많이 사들고 왔다, 전깃불 함부로 켜 놓고 물쓰지 마라’며 잔소리를 매일 늘어 놓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정은이는 주인 할머니 세탁기도 사용할 수 없어 교복을 직접 손빨래하고 있다. 정은이의 손바닥은 가사에 지친 40대 주부마냥 거칠었다. “시험 기간 동안 밤 늦도록 공부하기도 쉽지 않아요. 할머니가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눈치를 줘요. 할머니가 그러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돼요. 가난하기는 마찬가지거든요.”

정은이의 한달 생활비는 5만원이다. “제 앞으로 들어오는 보조금 중 일부를 숙모가 매달 보내주세요. 그렇지만 제 앞으로 들어오는 보조금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몰라요.” 정은이에게 5만원은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학생들의 용돈과는 개념이 다르다. “그 돈으로 밥도 먹어야 하고, 문제집도 사고, 교통비로도 사용해야 돼요. 가끔 학교에서 장학금 10만원이라도 받을 때는 사고 싶었던 문제집을 왕창 사요.” 정은이는 “책값이 너무 비싸 절망적이다”고 말했다.

정은이는 그래서 꾀를 냈다. “수학 문제집을 한권 사서 책장이 구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노트에 그대로 정리해서 풀고, 완전한 새책을 다시 팔았어요. 책값을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요. 그렇지만 정말 새책인데 1000원도 안쳐주더라고요. 그래도 덕분에 헌책을 사서 공부하면 되겠다는 요령을 터득했어요.”

정은이는 항상 돈에 쪼들린다. 주인 할머니 눈치 때문에 밥을 밖에서 사먹느라 돈이 더 들어간다. 아침에는 주로 1000원짜리 ‘칼로리 바란스’를 먹는다. 살을 빼기 위해 먹는 다이어트 식품이 정은이에게는 주식인 셈이다. 점심은 학교 급식, 저녁은 보통 분식으로 해결한다.

부모 없는 가난한 소녀에게 학교 생활은 쉽지 않다. 특히 과제물을 컴퓨터 워드 문서로 제출하라는 숙제는 정말 힘들다. “선생님들 생각이 잘못돼 다들 집에 컴퓨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5만원으로 1개월을 버텨야 하는데 컴퓨터 살 꿈은 엄두도 못내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PC방을 가요.”

일부 선생님의 편견도 견디기 힘들다. 초등학교 때는 한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정은이가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해 화가 정말 많이 났다. “선생님에 대한 복수심이 일었어요. 선생님 말을 더 안들었고, 그래서 그 선생님한테 많이 맞았어요. 다른 애들은 때리면 부모님이 항의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으니까 거리낌없이 때리는 것 같았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만난 지금의 담임 선생님은 그에 비하면 천사다. 선생님과 진로도 상담하고, 사는 이야기도 나눈다. 정은이는 “지금까지 학교 다니면서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만난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교칙같은 거 한번 어겨보려는 친구들 보면 한심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친구들에게 ‘그러지 마라’고 충고도 자주 하죠. 친구들이 음식점에서 밥 남기는 것도 용서하지 않아요. 친구들은 저보고 ‘60년대 아줌마’라고 놀리지만 애들이 나중에는 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가난과 폭력, 사회의 편견에 정은이는 지금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내성적이 됐지만, “요즘 세상은 내성적일수록 손해보는 게 많다”는 이치도 깨달을 만큼 성숙했다. 정은이는 밝게 보이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중이다. “저는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풍족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죠.” 정은이 삶의 신조도 ‘나부터 잘하자’다. “내가 잘해서 남에게 피해 안주는 게 남을 도와주는 길”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정은이의 꿈은 회사원이 되는 것이었다.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할 거예요. 하지만 여기 저기서 들리는 취업난 이야기 때문에 겁이 나요. 대학교를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다는데…. 돈을 벌면 제일 먼저 지금 사는 곳에서 나와 방을 얻고, 그 즉시 동생을 수원으로 데리고 올 생각이에요.”

정은이는 부모 없는 아이를 동정적으로만 대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저는 부모가 없어서 의지할 사람은 없어도,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많이 배웠어요. 다른 사람들의 부모님도 언젠가는 돌아가시는데 나에게 그 시간이 빨리 왔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제발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아주세요. 부모 없다는 것이 창피한 일이 아닌데, 주위에서 가엾어 하는 시선 때문에 부모님이 안 계신 걸 숨기게 되거든요.” 정은이는 맑은 웃음으로 붙임성 있게 재잘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고생이었다. 그 웃음에는 혼자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지가 묻어 있었다. “저는 열심히 살거예요.”

경향신문(07. 10. 29) [사설] 대학생 리포트 베껴 연수보고서 낸 공무원들

공무원들의 해외연수가 낭비성, 놀자판으로 흐르는 것은 왜 일까. 한마디로 감독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가 무슨 일을 해도 상부에서는 알 길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없으니 실컷 놀다 와도 괜찮다는 생각이 공무원들 머리 속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래서 귀국후 내는 보고서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여기 저기 남의 것을 보고 짜깁기해 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국회 행정자치위 김기현 의원이 행정자치부와 경찰청 직원들이 제출한 해외연수보고서를 분석해본 결과 이런 부실·표절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행자부 공무원이 제출한 ‘2006년 제2기 선거제도 해외연수보고서’는 앞부분이 인터넷에 있는 900원짜리 대학생 리포트와 토씨까지 똑같았다. 괄호속 영문 및 숫자표기나 ‘~함으로써’라고 써야할 문구를 ‘~함으로서’라고 맞춤법이 틀리게 쓴 대목까지 완벽하게 같았다. 일자 일획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베껴서 낸 것이다. 경찰공무원이 낸 연수보고서 역시 인터넷 사이트에서 1200원에 살 수 있는 대학생 리포트와 말만 조금 다를 뿐 내용은 사실상 같았다고 한다. 누구나 인터넷에서 클릭 한번이면 쉽게 볼 수 있는 문서를 베껴놓고도 버젓이 귀국보고서라고 제출한 것이다.

이들이 유독 강심장이어서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이들의 선배 동료들이 엉터리 보고서를 써도 사후에 검증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공직사회의 경험칙이 그런 표절 행위를 낳았을 것이다. 얼마전 감사원이 국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벌인 국외여행 실태 감사에서 그런 분위기가 확인된 바 있다. 이미 종료된 국제기구 행사에 참석한다며 출장을 떠나 관광만 하고 돌아온 경우, 자료수집이란 같은 명목으로 수십명이 특정 도시를 수차례 반복적으로 방문한 경우 등 사후 검증시스템이 작동한다면 있을 수 없는 놀자판 출장·연수 사례가 수없이 적발된 것이다. 공무원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탓하기에 앞서 정부의 감독 시스템 부재를 꾸짖지 않을 수 없다.

07. 10. 29.

P.S. 비록 불우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정은이의 장래가 그렇게 어두워보이지만은 않는다. 김광석을 좋아하는 '정은이 이모' 성격에다가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그녀의 자산일 것이기 때문이다(김광석의 '일어나'를 정은양에 대한 선물로 링크해놓는다. http://www.youtube.com/watch?v=6lx1JHZ63T0). 요컨대 정은이는 많은 시련을 겪으며 삶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비록 현실은 노예 같은 삶일지언정 자기 삶의 '주인'이 됐다. 거기에 비하면 사설에서 꼬집고 있는 양심불량 공무원들이야말로 '천박한 노예들' 아닌가? 연구보고서로 대학생들 리포트나 베껴내는 인생들이 무사안일 호의호식하며 사는 사회라면 비전 없는 사회다(공공기관 개혁에 관해서는 강준만 교수의 칼럼 http://h21.hani.co.kr/section-021128000/2007/05/021128000200705310662073.html 참조). 그래도 이 정도 굴러가는 것이 언제나 미스터리하긴 하지만. 여하튼 정은이의 10년후, 20년후의 모습에 기대를 건다. 우리가 아주 엉터리 같은 사회에 살았던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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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 2007-10-29 18:12   좋아요 0 | URL
철밥통 속 나이 값 보다 어린 김정은양의 산전수전 돋보이네요. 주변에서 공무원 고시 준비하라는 소릴 많이 듣는데, 공무원 만큼은 정말 되기 싫더군요. 아직은 미덥지 않아서 그단 소리나 듣는 저도 반성할게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저도 꼴값은 안떨어야 할텐데.

로쟈 2007-10-30 00:15   좋아요 0 | URL
책읽는 공무원이라면 리포트 베껴내진 않겠죠.^^

이잘코군 2007-10-29 22:45   좋아요 0 | URL
제 이번 추천은 로쟈님이 아니라 정은이를 향한거에요. ^^

로쟈 2007-10-30 00:14   좋아요 0 | URL
네, 정은이는 추천받을 만합니다. 아니 표창을 줘야죠!..

테렌티우스 2007-10-30 02:31   좋아요 0 | URL
음 마음이 아프네요... 저는 아동학대하는 어른들을 보면 살인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는 ...

유교 이데올로기 때문에, 예를 들면, 부모 살해보다 더 끔찍하고 더 비인간적인 자식 살해, 어린이 살해가 덜 주목받는 우리나라...

인간의 고통을 필터링하여 그 고통을 못 느끼도록 혹은 선택적으로 공감하게 만들고 훈련시키는 이 도덕이라는 놈을 잘 분석해야 합니다...

여하튼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

정은이 화이팅입니다!!!^^

로쟈 2007-10-30 13:57   좋아요 0 | URL
'동정 없는 세상'이라는 걸 이미 아는 아이니까 잘해나갈 거라고 믿습니다...

뭉실이 2007-10-30 23:45   좋아요 0 | URL
'저는 열심히 살거예요'라는 정은양의 마지막말이 저를
반성하게 하네요. 봄의 새싹같은 그마음이 주위로도
쭈욱 퍼저갈것같아요 ^^

로쟈 2007-11-01 21:23   좋아요 0 | URL
실상은 다들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건데요...
 

이번주 리뷰들에서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 2007)과 함께 눈길을 끄는 책은 제레미 시브룩의 <다른 세상의 아이들>(산눈, 2007)이다. 부제대로 '세계화 시대의 야만, 어린이 노동'을 다루고 있는 책인데, 그러고 보니 모두 '조화'와 '신의 섭리'에 대한 이반 카라마조프의 맹렬한 비판의 논거로 쓰임직한 책들이다. 내가 읽은 리뷰들을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7. 10. 27) '경제성장’만이 아동착취를 막을수 있을까

서구 국가들은 1999년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회담을 통해 제3세계 국가들의 아동 노동 착취와 학대를 문제 삼으며 ‘문명세계의 표준’을 제시하려 했다. 그러자 방글라데시와 같은 후발개도국들은 강력 반발했다. “왜 너희들은 이미 다 해놓고, 우리는 못하게 하느냐.” 그들은 서구 국가들의 ‘사악한 보호주의’를 읽었던 것이다. 어린이 노동을 문화적 야만성 또는 도덕적 문제로 간단하게 치부할 수 없는 한 단면이다. 이는 마치 이라크를 침략한 미국 네오콘이 일상적으로 “폭력만은 안돼”라고 말하는 것에서 보듯 폭력에 대한 논의가 간단치 않은 것과 비슷하다.

영국인 시민활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산업혁명 초기인 19세기 영국의 아동 노동과 21세기 방글라데시의 아동 노동을 오버랩시키며 아동 노동에 대한 서구의 논의가 얼마나 위선적인지, 그리고 문제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짚고 있다. 저자는 서구의 인권단체와 국제기구들이 제3세계 아이들을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구해내야 된다고 할 뿐, 그 아이들이 ‘구출된’ 뒤에는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왔다고 꼬집는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아직도 이 문제가 경제 성장으로 해결되리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마치 17세기 북미의 노예무역과 19세기 영국 공장에서의 아동 착취라는 악습이 사회 전체의 부가 쌓이고 그것이 빈곤층에까지 흘러넘치며 완화됐듯이 말이다. 하지만 영국이 식민지라는 자국 아동 노동을 대체할 보루가 있었던 반면 방글라데시는 그런 식민지를 가질 수는 없다. 더 가난한 부족민들이 사는 지역을 공략할 수는 있을지언정 말이다.

어린이 노동을 문화적 야만성이나 도덕성의 문제로 생각하는 서구의 논의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것이다. 사진은 학교를 가는 대신 일을 하고 있는 네팔 어린이의 모습.

많은 이들이 말한다. 현재로서는 가혹한 아동 노동에 대해서만 철저히 규제하도록 하고, 근본적으로는 세계화와 시장 원리에 충실함으로써 더 많은 부를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것만이 아동 노동의 폐해를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 논리는 모순임이 드러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은 국가가 자국민의 복지, 건강, 교육, 영양분야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인데,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노동시장으로 유입된다. 그런데 해결책이라는 것이 그 세계화와 자유시장에 의한 부의 창출밖에 없다니. 모든 대안들이 사라지고 아이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바로 그 원인이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아이러니인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두바이의 인공섬과 아랍에미리트연합에 낙타경주 기수로 팔려온 남아시아 어린이들을 예로 든다. “두바이의 인공섬은 진보한 현대 사회의 문명을 한눈에 보여준다. 하지만 남아시아의 3~4세 아이들이 돈 몇 푼에 팔려와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낙타 등에 꽁꽁 묶인 낙타경주 기수로 이용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포에 질린 아이들의 비명은 낙타를 자극해 더욱 빨리 달리게 만들고, 밧줄이 풀려 아이들이 죽기도 한다. 경제성장과 기술진보에 의한 부의 창출이 모든 인류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리라는 믿음은 비현실적이며, 근거 없는 희망이다.”

그러면 노동을 전혀 하지 않는 서구 아이들은 행복한가. ‘일과 완전히 분리된 유년’이라는 신화 자체가 최근에 생긴 것이다. 최상층만을 제외하면 세계화 이전에도 아이들은 소 풀을 먹이거나 집에서 떡(케이크) 만드는 것을 돕는 식으로 노동을 해왔다. 서구의 아이들은 제3세계 아이들이 돌을 깨기 위해 망치를 잡는 그 나이부터 소비의 주체가 됨으로써 노동하는 아이들과 불가분의 운명체로 묶이게 된다. 이들은 ‘공부’ 외에는 어떤 직분도 부여받지 못한 채, ‘쓸모없는’ 성인으로 성장하기 쉽다. 아동들에게도 일과 여가 사이의 적정한 선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아이들을 이 양 극단에 놓음으로써만 비로소 안도하는 사람들은 시장원리를 외치는 많은 어른들이 아닐까.(손제민기자)

 

 

 

 

 

 

 

 

 

 

 

 

 

 

 

 

 

 

 

 

 

 

 

  

한국일보(07. 10. 27) 무서운 세상이, 너희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구나

#1 쇠가죽 채찍이나 잘 마른 가죽끈에 못 이겨 시계태엽처럼 일하는 소년들, 또는 여자아이들도 심심찮게 목도할 것이다. 열한살 먹은 어느 아이는 나무 뭉둥이에 다리가 부러졌고, 또 다른 소녀는 면직공장의 감독관 형상을 한 무자비한 괴물에게서 판자로 얻어맞았다.

#2 열네살의 한 소년은 트럭운전사 보조다. 새벽 5시에 일을 시작하는데 운행일정은 종종 밤 11시나 12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는다. 그는 한 달에 약 2만원을 버는데 그 가운데 3분의 2는 가족- 그는 9남매 중 한 명이다- 에게 보낸다. 그는 트럭에서 살고 좌석에서 잔다.

19세기초 영국의 사회개혁가 존 필든이 당시 미국 노동현장을 기록한 보고서(#1)와 현재 세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사는 한 소년 노동자의 일상에 대한 르포(#2)를 읽어보자. 어떤 차이를 느낄 수 있는가? ‘안티 나이키 운동’이 잘 보여주듯 제3세계에서 자행되는 어린이 노동착취의 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지도 꽤 됐다. 그것이 ‘제도화된 가장 극악무도한 부정이고, 성장ㆍ개발 모델의 수치’라는 주장을 반박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반(反)세계화 운동가이자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제레미 시브룩은 이 책을 통해 어린이 노동착취의 문제에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한다.

복잡하게 얽힌 역사ㆍ경제ㆍ문화적 맥락을 신중히 들여다봐야 문제의 근절,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개선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선 ‘이런 일은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문화적으로 열등한 나라에서나 생기는 일이라는 식의 시각은 위선’이라며 어린이노동 착취 문제에 대한 시각의 교정을 주장한다. 그는 엥겔스나 영국 학자 E P 톰슨을 인용, 현재 제3세계의 어린이 노동착취는 18,19세기 영국의 노동지대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대농장에서 벌어졌던 비극의 반복임을 주지시킨다.

‘어린이 노동은 비윤리적이니만큼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대의명분은 훌륭하지만 수혜자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순진한 논리다. 가령 1995년 영국의 한 TV가 모로코의 12~15세 여자아이들이 영국에서 마크 앤 스펜서로 납품되는 잠옷을 만들어왔다고 폭로하자, 많은 모로코 소녀들이 해고됐다. 소녀들의 가정은 이 정도의 노동은 충분히 받아들일 만하다고 봤지만 결과적으로 어린이노동의 금지는 소녀의 가족들을 더욱 깊은 가난으로 몰아넣었다.

동의하기 쉽진 않겠지만 문화의 상대성도 고려해야 한다. 가령 벵골어에는 태어나서부터 열여덟살까지를 의미하는‘미성년’이라는 단어가 없다. 따라서 방글라데시에서는 ‘노동에 대한 어린이들의 권리’라는 말이 거부감없이 동의를 얻는다. 하지만 세계자본주의 착취구조의 최하부에 어린이들의 노동이 깔려있고 이를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전제다. 저자는 3, 4세의 어린이를 낙타 위에 밧줄로 묶고 경주를 위해 이들의 공포감을 자극하는 아랍에미리트의 낙타경주나, 먼지와 기름을 뒤집어쓰고 금속성의 굉음에 시달리는 10대 초반의 소년을 무급으로 부려먹는 방글라데시의 자동차정비소의 사례를 들어 이런 노동의 비인간성을 폭로한다.

그렇다면 제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착취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을까? 문제는 다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환원된다. 저자는 비관적이다. IMF 같은 국제금융기구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프로그램 때문에 각국 정부는 건강, 영양, 교육 같은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이는 빈곤층에 가장 큰 타격을 준다. 그것은 곧바로 결손가정, 아동 성매매, 노동시장에 유입되는 아동의 증가로 이어진다. 저자는 어린이노동을 당장 근절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 우선 가장 위험하고 유해한 노동부터 금지시키는 일이 실천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제 ‘Children of Other Worlds’(2001).(이왕구기자)

07. 10. 28.

P.S. 제레미 시브룩의 경우에도 <세계의 빈곤, 누구의 책임인가?>(이후, 2007)가 지난봄에 소개되었기에 구면이다. 빈곤 문제에 대한 독서 리스트를 내달에는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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