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자크 라캉의 세미나 시리즈가 출간되기 시작했다. 세미나 11권이 제일 먼저 나왔는데,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새물결, 2008)이 타이틀이다. 출간일자는 작년으로 돼 있지만 배본은 최근에 된 듯싶다. 사실 이 세미나 시리즈는 수년 전부터 예고돼 있던 터이므로 출간 소식 자체가 놀랍진 않지만 과연 나오는 것인가란 의혹을 불식시켜준 것은 평가할 만하다. 물꼬가 트인 만큼 나머지 세미나와 <에크리>까지도 곧 한국어본을 얻으면 좋겠다. 이걸 어떻게 읽고 소화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이제 숙제로 남는다. 

 

자세한 책소개는 상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출판사 소개를 참조하면 되겠다. 일부만 발췌하여 옮기면 이렇다.  

라캉의 세미나는 1953년 시작되어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행해졌으며, 매 해의 세미나를 제자이자 사위인 자크­알랭 밀레가 편집해 책으로 발간하고 있다. 출간되어야 할 권수는 27권이고 프랑스에서도 아직 모든 세미나가 출간되지 않고 계속 발간 중이다. 그렇다면 총 27권의 라캉 세미나들 중에서 ‘세미나 11권‘이 최초로 번역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1973년에 발간된 ’세미나 11권’은 프랑스에서도 라캉의 세미나 가운데 최초로 출간된 것으로서, 1963~1964년에 행한 열한번째 ‘구술’ 세미나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말하자면 ‘세미나 11권’은 라캉의 정신분석이 프랑스 정신분석학계뿐 아니라 프랑스 사상계 전반에 걸쳐 본격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에 위치한 세미나이다. 

다른 한편 ‘세미나 11권’은 1950년대의 라캉과 일종의 ‘단절’을 시도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로의 회귀’를 외치면서 언어, 주체, 기표, 상징적인 것 등에 관심을 기울였던 그가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상징적인 것을 넘어서는 것들을 구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완전한 구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1950년대만 해도 라캉은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면서 구조주의와 언어학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세미나 11권’에서 라캉은 ‘구조의 완결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더욱더 많은 노력을 할애하게 되고, 그러면서 ‘실재’와 ‘대상 a’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미나 11권’은 라캉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의식을 개념화하고, 상징적인 것 너머의 것을 이론적으로 구성하고자 한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세미나 11권은 진작에 영어로 번역돼 있으며 <세미나 11권 읽기>(1995)까지 출간돼 있다. 한국어본이 출간되었다고는 하나 사실 여러 번역본과 주석을 참조하여 '교차적 읽기'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부득이 라캉의 미로를 헤맬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20세기의 가장 난해하면서 가장 중요한 이론가의 한 사람을 한국어로 읽는 '모험'은 도전해볼 만하다.  

 

 

 

 

 

 

  

특히 이번 번역은 이미 <라캉과 정신의학>(민음사, 2002)과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인간사랑, 2002) 번역을 통해서 라캉주의에 대한 이해를 선보인 역자들이 맡고 있어서 안정감을 준다(짐작에 라캉의 언어를 우리말로 옮길 수 있는 역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여하튼, 간만에 이론 읽기의 독서욕을 부추기는 '물건'이 나와서 반갑다(지난 연말에 나온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문학동네, 2008) 정도가 이에 견줄 수 있다)... 

09. 01. 07.  

Лакан Ж. Четыре основные понятия психоанализа. Семинары: Книга XI (1964). Кн.11

P.S. 참고로 러시아어로는 라캉의 세미나가 현재 여섯 권이 번역돼 있다. 그 중 11권은 지난 2004년에 출간됐다. 모스크바의 서점에서 기쁜 마음으로 집어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책도 책상맡으로 옮겨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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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9-01-08 04:00   좋아요 0 | URL
오호, 드디어 나왔군요!!! 멀리서 반가운 소식 접하니 그 반가움이 더욱 배가됩니다.^^

로쟈 2009-01-08 22:52   좋아요 0 | URL
'멀리' 나가 계신가요?^^

푸른바다 2009-01-08 21:43   좋아요 0 | URL
전 개인적으로 인간의 정신을 설명하는 라깡의 다양한 개념들이 상당히 흥미롭기는 하지만 지적인 유희가 너무 심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라깡은 물론 알튀세르, 푸코, 데리다 등이 폭로하는 즉물적 현실 이면에 놓여 있는 또 다른 진실에 물론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과연 이들이 주장하는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늘 아리송할 따름입니다.

로쟈 2009-01-08 22:52   좋아요 0 | URL
저도 라캉의 매력은 잘 모르겠지만(그는 자신을 직접 교주처럼 신비화하기도 했지요)지젝이 읽은 라캉이 흥미로워서, 그리고 '생산적'이어서 관심을 갖습니다..

yoonta 2009-01-08 23:55   좋아요 0 | URL
읽을수있는 리캉인지 아닌지..궁금하네요.
러시아에서는 라캉이 벌써 많이 번역되었나 봐요? 러시아어의 라캉이나 지젝번역들은 어떤가요?

로쟈 2009-01-08 23:59   좋아요 0 | URL
현재로선 최선의 번역이라고 봐야죠. 최상은 아니더라도. 라캉의 <에크리>도 아직 러시아어판이 없습니다. 세미나 6권과 <텔레비전>, <로마강연> 등이 소개돼 있어요. 지젝은 한국에서 더 많이 소개됐구요. 다만 <시차적 관점>은 러시아어판이 먼저 나와 있습니다. 러시아어 번역을 제가 품평할 정도는 안되고요, 영어나 한국어가 막힐 때 독해에 도움은 줍니다...

Poissondavril 2009-01-09 09:11   좋아요 0 | URL
이 책의 교정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저의 본업은 번역이지만 워낙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서 (사실은 역자들의 지명을 받아서...-_-;;) 교정에 참여했었습니다.
저 역시 현재 기대할 수 있는 번역으로서는 최선... 이라고 생각하고, 저 자신도 불어판, 영문판, 일어판을 모두 비교해가며 교정 작업을 했습니다. 제 작업 이후에도 몇 년 동안 수정과 검토가 이루어진 것으로 압니다.
다만, 자크 알랭 밀레가 굉장히 까다로운 번역 원칙을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독해가 녹록치 않을 겁니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용어가 아니면 역주를 달 수도 없고, 정신분석학적 주요 개념에 대해 설명하거나 역자의 해설을 달 수도 없도록 모든 번역본들에 대해 엄격한 원칙을 세우고 있거든요. 독자들은 좀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건 역자나 출판사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라캉의 세미나는 원래 그런 책이니까요.

로쟈 2009-01-09 21:37   좋아요 0 | URL
저도 <에크리> 교정에 참여할 뻔했습니다.^^ 그래도 <세미나>는 구술이어서 <에크리>보다는 사정이 나을 듯싶은데, 이게 계기가 되어 한국어 라캉이 연착륙하면 좋겠네요...

푸른바다 2009-01-09 00:13   좋아요 0 | URL
저도 한 동안 아주 머얼리 있었습니다. 한동안 한국 소식도 끊고 살았는데, 다시 접속한 순간 아니나 다를까 더 악화되 있어 모르는게 약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암튼 로쟈님 덕분에 저도 지젝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되긴 했으나 아직 가진 책이라곤 '삐딱하게 보기'밖에 없군요. 지젝이 기본 입장이 잘 기술되어 있다는 '이데올로기라는(의) 숭고한 대상'은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 없고, 다른 책들은 번역이 미심쩍다 하니 손이 안가고...

제 생각에 고전적인 사상들, 예를들어 유교, 불교, 플라톤 사상 등등은 비교적 뚜렷한 목적성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유교는 성인되기를 추구하고, 불교는 해탈을, 플라톤 역시 단견(doxa)을 초월하는 에피스테메에 이르를 것을 주장합니다. 헤겔의 매력도 아마 '절대지'에 이르는 여정을 투박하나마 제시한 데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맑스를 존경하지만, 그는 물질적이고 객관적인 삶의 여건의 개선에만 집중했을 뿐 인간이 가지는 궁극적인 관심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투박한 질문인지는 모르나 지젝이 철학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로쟈 2009-01-09 00:22   좋아요 0 | URL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http://blog.aladdin.co.kr/mramor/1545343 참조하시길...

글샘 2009-01-15 04:03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하우투리드 시리즈의 지젝이 쓴 라캉을 읽고 있는데요...
라캉은 너무 다양한 데서 개념들을 빌려다 혼용하는 통에...
저는 프로이트의 성도착적 개념도 맘에 안들지만, 거기서 더 나간 라캉을 읽기란 만만치가 않군요. 휴... 라캉을 제대로 읽을 날이 오긴 할까 모르겠습니다.

로쟈 2009-01-15 09:19   좋아요 0 | URL
뭔가 도움이 된다면 읽는 것이죠. 누구 말대로 책이란 기계장치 같아서, 작동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제대로'보다 중요한 건 그 작동 유무 같습니다...
 

지난 연말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 2008), <장기 20세기>(그린비, 2008) 등의 책이 출간된 조반니 아리기에 관해서는 몇 차례 포스트를 올려놓은 바 있는데, 이를 계기로 세계체제론의 계보를 짚어보는 기사도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8. 01. 08) 14년전 ‘금융위기 예언’ 조반니 아리기 환한 조명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체제론자 조반니 아리기(71·사진)가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자본주의의 반복되는 호황과 위기를 세계 패권의 순환이란 틀에서 분석한 그의 대표작 <장기 20세기>(그린비 펴냄)와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 펴냄)가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간다는 세계경제의 위기국면에 때맞춰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덕분이다. 

 

미국의 신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1994년 펴낸 <장기 20세기>에서, 아리기는 당시 미국 경제의 부활이 세계 패권의 쇠퇴기에 등장하는 일시적 호황에 불과하며, 머잖아 최종적 위기를 맞게 되리라는 사실을 앞선 네덜란드·영국 패권 쇠퇴기의 호황 국면과 비교해 제시함으로써 적잖은 파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예언’은 14년이 흐른 지난해 가을 월스트리트발 금융 공황과 더불어 현실화된 것처럼 보인다.  

아리기는 1960년 밀라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좌파 노동운동과 연계된 ‘그람시 그룹’에서 활동했다. 1979년 미국 뉴욕주립대에 자리를 잡은 뒤에는 ‘세계체제론의 지휘부’ 격인 페르낭브로델센터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이매뉴얼 월러스틴(78), 안드레 군더 프랑크(1929~2005), 사미르 아민(77)과 함께 ‘세계체제론 4인방’으로 불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세계체제론이 주목을 받았던 1990년대 말에도 월러스틴의 그림자에 가려 있었고, 10여년이 흐른 최근까지 10권이 넘는 저작과 100여편에 이르는 논문들 가운데 금융화와 미국 패권의 향방과 관련된 몇 개의 단편만 번역됐을 뿐이었다.  

최근 백승욱 중앙대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된 <장기 20세기>는 제목과 달리 15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장기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이 점에서 아리기의 작업은 월러스틴이 집필 중인 <근대세계체제> 시리즈와 중첩된다. 다만 세계체제의 팽창과 순환을 설명하면서 월러스틴이 중시하는 콘드라티예프 순환이나 중심-주변부의 수직적 분업 대신 ‘체계적 축적 순환’이라는 개념을 앞세운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아리기에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네덜란드 패권기(17~18세기), 영국 패권기(19세기), 미국 패권기(20세기)를 거치며 진화해 왔는데, 각각의 시기는 패권국이 주도하는 독특한 축적체제를 갖는다. 이런 축적체제는 새로 등장한 패권국 안에서 형성돼 세계적 규모로 확장된 뒤 전성기를 누린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윤율 하락과 체제유지 비용의 증대로 위기를 맞게 되고, 결국 새로운 국가-기업 복합체가 주도하는 경쟁력 있는 축적체제로 대체된다. 

체계적 축적 순환에 대한 아리기의 분석에서 주목되는 것은, 모든 세계적 축적체제가 최종적 붕괴를 맞기 전 금융부문이 일시적으로 팽창하면서 ‘반짝 호황’을 누린다는 점이다. 축적체제가 활력을 잃게 되면 자본이 과잉축적되면서 생산·유통 부문의 이윤율이 금융수익률보다 하락하고, 유동자본을 얻으려는 국가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그 결과 실물부문의 자본이 금융으로 이탈하면서 두 부문 모두에서 이윤율이 일시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의 ‘벨에포크’(아름다운 시절), 1990년대 미국의 신경제 호황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이런 호황은 금융부문의 투기적 활황과 생산부문의 부분적 경쟁 완화를 통해 달성된 것이기에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이런 분석은 정보기술(IT) 거품과 과열된 주택경기 덕에 지탱되던 미국 금융호황이 최근 파국을 맞은 것에서도 입증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금융팽창이 경쟁력 있는 예비 패권국들로 자본을 이전시키면서 기존 패권국의 몰락을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아리기가 보기에, 18세기와 19세기 금융팽창의 수혜국은 다음 시기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영국과 미국이었다. 그렇다면 위기에 빠진 미국으로부터 패권을 넘겨받아 새로운 축적 순환을 주도할 주인공은 누구인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리기는 일본이 중심이 된 동아시아 경제권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는 10년 새 급속히 성장한 중국 경제로 시선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최근 집필한 <장기 20세기>의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서 아리기는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진 사이 중국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금융자산을 획득했고, 동아시아와 그 너머에서까지 미국을 대체해 상업적 팽창과 경제 팽창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고 기술한다. 그런데 아리기가 중국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외형적 성과 때문만이 아니다. 2007년 펴낸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에서 그는 중국의 경제시스템을 사회주의 복지제도에 기반한 ‘노동 집약-에너지 절약적’ 축적체제로 규정하고, 이것을 ‘자본-에너지 집약적’인 서구식 축적체제를 대체할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미래’로까지 격상시킨다.  

하지만 이런 아리기의 주장에 대한 서구 좌파학계의 평가는 냉담하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가 지난해 11월 <교수신문>에 소개한 영미권 학자들의 반응은 아리기의 관점이 “초기 자본주의와 다르지 않은 중국 자본주의의 착취구조에 대한 무지”(데이비드 하비 뉴욕시립대 교수)에서 비롯된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적 가설”(마크 엘빈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명예교수)에 가깝다는 것이다.(이세영 기자) 

09.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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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08 17:39   좋아요 0 | URL
분과 사회과학을 뛰어넘어 역사학까지 아우르는 이런 학자들...문사철하는 이들의 꿈이죠.
저 도표를 보면서 정성진 씨가 화내겠군요.트로츠키는 왜 빠졌느냐고...

로쟈 2009-01-08 22:50   좋아요 0 | URL
문사철은 좀 다른데요.^^ 그 안에서도 '데이터(팩트)'를 다루는 이들이 있고, '언어(글)'을 다루는 이들이 있으니까요. 사회과학의 꿈일 텐데, '역사적 사회과학'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딸기 2009-01-08 22:01   좋아요 0 | URL
재닛 아부루고드도 안 보여요...

로쟈 2009-01-08 22:48   좋아요 0 | URL
'4인방' 중심이어선가 봅니다...

딸기 2009-01-08 22:02   좋아요 0 | URL
그런데 유럽중심주의 절판이었는데... 다시 나왔나봐요?

로쟈 2009-01-08 22:47   좋아요 0 | URL
절판된 거 맞습니다. 개정판이 나올 거라고 하네요...

딸기 2009-01-12 16:32   좋아요 0 | URL
헤구구... 언제나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교과부가 '역사' 교과서에 이어서 '도덕' 교과서에까지 손을 댄다는 기사가 떴다. "교과서가 이념적·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데, 언제나 그렇듯이 그 '실재' 취지는 그러한 부인의 제스처 속에 숨어/드러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연말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도덕적으로 약점 없이 출범한 정권인 만큼 공직자가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도덕'이 자신의 아킬레스건임을 자인하는 것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도덕성'이 문제인 정권인 만큼 도덕 교과서를 손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겠다. 이미 걱정할 수준은 한참 지난 듯하다...   

한겨레(08. 01. 06) 교과부, 새 도덕교과서 ‘평화교육’ 통째 삭제

교육과학기술부가 2010년부터 중학생들이 쓸 새 도덕 교과서에서 ‘평화교육’ 부분을 삭제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으로 ‘집필기준’을 갑자기 바꿔 집필자들과 출판사에 보냈다. 도덕 교사들과 집필자들은 “민족 통합과 통일을 강조하는 교육을 포기하고 옛 냉전시대의 안보교육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5일 교과부와 도덕 교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교과부는 기존의 ‘중학교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평화의 가치와 갈등 해결 태도 및 기술을 중심으로 평화교육을 통일교육에 접목시킨다”는 등의 내용을 삭제한 ‘집필기준 수정안’을 지난달 새롭게 만들어 출판사 등에 보냈다. 기존의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은 옛 교육부가 교사와 관련 학회 등의 의견을 들어 2007년 8월 최종 확정한 것이다. 도덕 교과서는 2007년 2월 7차 교육과정 개정에 따라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뀌었으며, 검정 교과서는 교과부의 검정을 통과하려면 ‘집필기준’을 따라야 한다.

집필기준 수정안을 보면,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되”라는 부분을 삭제하도록 했다. 또 애초 기준에서 ‘새터민’과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용어를 구분해 쓰도록 한 것을 ‘북한 이탈 주민’으로만 쓰도록 했다.

북한에 대한 서술 기준도 대폭 수정됐다. 애초 집필기준에는 “남북한 간 체제의 차이와 경제적 우월성”을 구분하고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북한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부각하기보다는 긍정적 측면도 포함해 균형 있게 기술”하며, “북한의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교과서 내용 체제를 구성한다”고 돼 있었으나, 이런 대목이 대부분 삭제됐다. 대신 수정안은 “남북한 간 차이와 북한 사회에 대해서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균형적으로 기술”하고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통일 환경의 변화에 대해 진술하고, 통일 대비 과제들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기술”하도록 했다. 김일성 항일무장투쟁과 주체사상의 경우 애초 기준에서는 역사적 증거 자료가 확인되면 언급할 수 있게 했지만, 수정안에서는 아예 다루지 못하게 했다.

현재 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는 출판사별로 이미 집필이 끝나 검정 절차에 들어갔으며, 중학교 2~3학년용은 최근 집필이 시작됐다. 진영효 전국도덕교사모임 회장(서울 상암중)은 “교과서가 냉전시대 북한을 바라보던 관점으로 돌아가고, 통일교육이 안보교육으로 바뀌는 것 같다”며 “남북 체제 차이를 인정한 민족 통합적 통일이 아닌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한 흡수통일을 강조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교과서가 이념적·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시각’을 배제한 채 사실관계 위주로 기술하자는 의견이 있어 수정안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김소연 기자) 

한겨레(08. 01. 06) 거꾸로 가는 통일교육…체제 우월성 내세워 북한 적대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달 중순 만들어 고시한 ‘중학교 도덕교과서 집필기준 수정안’은 체제의 우월성을 내세워 북한을 적대시하는 등 옛 냉전시대의 통일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2007년 8월 마련된 집필기준을 근거로 도덕교과서 집필을 해온 저자들은 “어떻게 여론 수렴도 없이 이처럼 갑자기 내용을 바꿀 수 있느냐”며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과부의 집필기준은 18쪽 분량으로, 중학교 1~3학년 공통 기준과 학년별 집필기준으로 나뉜다. 이번에 수정된 통일교육 영역은 △북한 사회에 대한 서술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언급 △평화교육 시각 도입 등 8개 항목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평화교육’ 항목은 완전히 빠졌다. 평화교육은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낮추고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차원의 미래지향적 교육으로 도입됐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법학)는 “통일교육에서 평화교육을 빼자는 것은 어떻게 보면 통일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이런 식의 서술 방향 지시는 남북관계의 성과를 부정하고, 우리의 우월성을 앞세워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평화통일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사안이고, 교육과정에도 ‘평화교육’이라는 용어가 없어 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중학교 도덕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는 한 교사는 “교과서를 쓰는 데 집필기준은 하나의 가이드라인”이라며 “기준에서 평화교육이 빠지면 교과서를 집필할 때 ‘평화교육’ 자체를 언급하기가 어려워지는 등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번 집필기준 수정안은 북한 사회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는 관점을 부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의 인권 문제와 남북한 차이에 대해 ‘객관적 사실’를 강조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과 잣대로 북한을 대하는 것은 북한을 대화와 협력의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자칫 대결구도를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교과서 집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집필기준을 수정하면서 여론을 수렴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학교 도덕교과서 집필자인 또다른 교사는 “전체적인 (교과서) 틀 구상이 끝났는데, 관점이 바뀐 집필기준이 고시되니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진영효 전국도덕교사모임 회장은 “2007년 당시 교사·학자 등 7개 단체가 치열한 토론을 거쳐 평화교육 도입 등이 집필기준에 반영된 것”이라며 “이번 수정안은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일방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용어변경 수준의 수정이기 때문에 따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김소연 정민영 기자)    

한겨레(08. 01. 06) [사설] 이번엔 ‘도덕 교과서’ 조작인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검인정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을 느닷없이 바꿔, 출판사들에 보냈다고 한다. 정부 직권으로 검인정 ‘근현대사’ 교과서를 누더기로 만들더니, 이번엔 집필이 끝났거나 집필 중인 도덕 교과서마저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다시 쓰도록 한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는 정부의 집필기준에 따라야 채택되는 만큼 출판사로선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야 한다.

변경된 집필기준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더 큰 문제는 변경 절차와 배경이다. 교육부는 국정이던 도덕 교과서를 검인정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2007년 8월 집필기준을 마련했다. 역사는 물론 윤리나 경제·사회 영역의 경우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시각과 해석 평가가 존재하는 만큼, 이런 요소들을 반영하는 과정은 집필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 그 때문에 당시 교육부는 집필기준을 마련하기까지 오랜 시간 교육 현장과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이번엔 어떤 의견 수렴 과정도 없었다. ‘이명박식 속도전’을 교과서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물론 이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집중적으로 변경된 집필기준은 통일교육 영역이었는데, 통일연구원은 지난해 5월 통일교육 지침서를 만들어 1만여 초중고교에 배포한 바 있다. 그러나 그건 국정 체제에서 교사 참고용으로 배포됐을 뿐, 학계나 교육 현장,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과는 무관하다. 지침에 포함된 것은 오로지 정파적 시각으로 무장한 뉴라이트 계열의 의견뿐이다.

변경된 내용도 국민 정서나 시대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통일교육을 미래지향의 평화교육에서 냉전회귀의 대결교육으로 돌려놓은 게 고작이다. 북 체제와 변화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관점 대신, 안보 위협 요인으로서 북한, 실패한 체제로서의 북한 등 대결적 관점을 요구한 것이다. 학생에게 식민지 근대화론, 독재체제 불가피론, 냉전적 체제 대결론을 주입하려 했던 근현대사 교과서 왜곡과 같은 맥락이다.

검인정 제도는 같은 사안이라도 다양한 시각·해석·평가를 제시하고 학생이 주체적으로 판단하도록 해 창의적 학습력을 키우려는 제도다. 이렇게 정치권력의 목적과 이해관계에 따른 시각과 해석을 강제하고 학생의 사고와 판단을 조작하려 하면서, 검인정 교과서를 표방하는 것은 사실상 사기다. 사기꾼 소리를 듣느니, 시대착오적 독재자라는 비난을 듣더라도 국정 체제로 되돌리는 게 차라리 떳떳할지 모른다. 

09.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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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1-06 09:25   좋아요 0 | URL
하하 이런.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군요.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09-01-06 22:50   좋아요 0 | URL
아프님의 '교과서 이야기'가 아직 안 올라오네요. 재미있을 듯싶은데요.^^

마늘빵 2009-01-07 20:02   좋아요 0 | URL
쓰더라도 수위조절을 해야 해요. -_- 아직 발표도 안 난 교과서고, 회사에서 보면 안되니까요. 하하.

비로그인 2009-01-06 11:26   좋아요 0 | URL
고국의 어린 학생들이 걱정입니다.

로쟈 2009-01-06 22:52   좋아요 0 | URL
사실 학생들이야 어차피 별로 신경도 안 쓸 문제인데(역사도 그렇지만 교과서만 갖고 공부하는 건 아니니까요)저로선 이게 집권층과 관료층의 수준을 말해주는 지표라서 우려스럽습니다. 하긴 '우려'할 단계도 지났죠...

무해한모리군 2009-01-06 11:51   좋아요 0 | URL
걍 교과서 만들어서 배포하지 왜 저럴까요?

로쟈 2009-01-06 22:53   좋아요 0 | URL
네, 정답입니다. 드라마도 알아서 만든다고 하니까. 조만간 교과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비로그인 2009-01-06 23:06   좋아요 0 | URL
"우려할 단계도 지났다"고 하시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는군요. 조금 전, 아침 일찍 자동차 엔진 오일을 갈기 위해 딜러 서비스에 갔다 왔습니다. 대형 TV가 켜져 있는 대기실에서 몇몇 미국인들과 1시간 정도 기다렸습니다. TV에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이 간간히 보도되고 있었지만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각자 책을 보거나 옆 사람과 잡담을 할 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TV에서 뉴욕 거리의 유태인 두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모두 오바마가 이스라엘 폭격을 조금도 차질없이 전폭 지지할 것을 촉구하더군요. 아침부터 이런 광경을 보고 와서 그런지 로쟈 님의 댓글이 더욱 어둡게 느껴지는군요.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출판면 기사를 옮겨놓는다. 최근 출간된 <레닌과 미래의 혁명>(그린비, 2008)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근간 예정인 '혁명' 관련서들에 대한 소식을 덧붙였다. 이미지를 찾다 보니 (지면기사에 쓰인 건 못 찾겠고 대신에) 레닌 포스터에 오바마의 얼굴을 붙인 것이 눈길을 끈다. 포스터에 씌어진 문구는 "레닌은 살았다, 레닌은 살아 있다, 레닌은 살아있을 것이다!"이다. 더불어 '1917년'은 '2008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2009년이다...

 

한겨레21(09. 01. 12) 혁명의 시대, 레닌을 생각한다

"레닌은 생각도 하지마!”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자들, 그러니까 반공 우파뿐만 아니라 급진 좌파까지도 공유하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면 그것은 레닌에 대한 ‘사고금지’다. 2008년 5월 국내에도 소개된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펴냄)의 편저자 슬라보예 지젝이 레닌을 반복하려는 기획을 시도하면서 처음 접했던 반응이 빈정거리는 폭소였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마르크스는 좋다, 하지만 레닌이 뭔가?”라는 식이다. 그러한 반문이 전제로 하는 레닌은 마르크스주의를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의 실패이며, 20세기 정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역사적 재앙이자, 독재로 치달은 현실 사회주의 실험의 원흉으로서의 레닌이다. 요컨대, 레닌은 현실사회주의 몰락과 소위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가져온 실패이자 재앙이고 원흉이다. 이것이 혁명가 레닌에게 들씌워진 표준적 이미지다.    

 

‘레닌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다!’는 구호를 내걸고 출간된 <레닌과 미래의 혁명>(그린비 펴냄)은 시류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레닌에 대한 표준적이면서도 상투적인 이미지에 괄호를 치고 현재의 자본주의 위기 국면에서 레닌과 러시아혁명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이 처음 발의된 것은 박노자 교수가 러시아혁명에 대해 강의한 2007년이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그린비출판사의 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된 것이 2008년 7월이었다. ‘촛불 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레닌과 러시아혁명’이 심포지엄의 타이틀이었다. 이번에 나온 책은 발제자로 나선 세 명의 발표문과 현장 토론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고 보리스 카갈리츠키의 러시아 자본주의론과 루이 알튀세르의 레닌론 등이 보충되었다.     

이 모임의 형식이 ‘심포지엄’이라는 단어로 표현됐지만 러시아어로는 ‘소비에트’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발제자의 한 사람인 박노자 교수가 짚어주는 대로 소비에트란 원래 ‘조언’이란 뜻이며 러시아 혁명기의 소비에트란 무엇보다도 서로 조언을 주고받고 논의하는 기구이자 장소였다. 조언은 명령이 아니며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 수평적 소통을 지향한다.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소비에트, 혹은 평의회가 촛불집회를 계기로 레닌을 재평가하기 위해 열렸던 셈이다. 그 ‘소비에트’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지금 레닌을 불러낸다는 것은 뼈아픈 실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실패 속에서 실패를 사유하는 것이다.(...) 그 실패를 통해 새로운 출구를 찾는 것이다”는 발언 속에 집약돼 있다.   

‘레닌의 정치학에서 외부성의 문제’를 다룬 이진경 교수는 계급과 당, 국가와 혁명, 사회주의와 이행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외부성’의 사유가 레닌에게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본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그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그리고  혁명적 정치 모두가 부르주아 국가권력에 대해 외부적이고, 외부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가 보기에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후 국가장치를 이용해 국가장치를 사멸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 난감한 역설을 돌파하기보다는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레닌은 외부성을 사유했지만 그것을 끝까지 관철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비판의 요점이다.   

한편, 조정환 다중네트워크 대표는 ‘제헌권력’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 레닌을 다시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헌법에는 성문화된 헌법을 가리키는 형식적 헌법 외에 헌법을 제정하는 행위로서의 물질적 헌법이 있다. 이 경우 물질적 헌법이 형식적 헌법에 선행하며 더 우선적이다. 레닌은 이 두 가지 헌법의 차이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1917년 2월 혁명 이후 사회주의의 물질적 헌법(프롤레타리아 독재)과 형식적 헌법(소비에트 헌법)의 쟁취를 주장한다. 하지만 1917년 7월 이후에는 제헌권력의 최종심을 소비에트에서 볼셰비키로 귀속시키게 되며, 조 대표는 이것이 소련 사회주의는 물론 세계 사회주의 역사에 혼란과 불행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닌에게 배우기'는 '레닌을 극복하기'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 발제에 나선 박노자 교수는 레닌에게서 반자유주의적, 혹은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는 다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데,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이 소비에트의 시발은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위한 공장주와의 협상에 대표자를 내보낸 것에서 비롯한다. 소비에트는 혁명기에 볼셰비키들과 ‘협력’했지만 그들의 지도에 ‘순응’하지는 않았으며 특정 정당의 하부조직으로 편입되지도 않았다. 다른 볼셰비키들과 달리 레닌은 소비에트의 잠재력을 크게 평가하고 소비에트와의 동등한 협력관계를 강조했다. 박 교수가 보기에, 이러한 ‘민주주적인’ 레닌이야말로 정치가로서 그의 비범한 면모다. 하지만 내전으로 치달은 혁명 이후의 과격한 상황은 레닌으로 하여금 자신의 민주적인 원칙을 지킬 수 없도록 했고, 내전의 종료와 함께 소비에트 민주주의도 의미를 상실하게 됐다. 레닌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실패와 좌절의 교훈을 지금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되새길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한다.   

 

이미 지난해 ‘촛불 정국’에서도 확인한 바 있지만 대의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와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들이닥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국면은 새로운 사회와 체제에 대한 사유를 요구한다. 이에 발맞추어 올해 출판계의 한 가지 화두는 ‘혁명’이 될 전망이다. 올해 프레시안북에서는 ‘레볼루션(Revolutions)’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전체 10권 가운데 마오쩌둥의 <실천론․모순론>, 로베스피에르의 <덕치와 공포정치>, 호치민의 <식민주의를 타도하라>, 예수의 <가스펠>,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등이 1월 중 발간될 1차분에 포함될 예정이다. 그리고 도서출판 마티에서도 이번 봄에 슬라보예 지젝을 포함하여 에티엔 발리바르, 프레드릭 제임슨, 테리 이글턴 등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철학자들의 레닌론을 묶은 <레닌 재장전>(가제․Lenin Reloaded)을 출간할 계획이다. 바야흐로 출판계에서만큼은 “혁명이 문 앞에 있다!”  

09. 01. 05.  

P.S. <지젝이 만난 레닌>에 대해 작년에 쓴 글은 '자본론보다 더 긴요한 책'(http://blog.aladin.co.kr/mramor/2146648)을 참조. 그리고 그린비출판사의 학술심포지엄 스케치는 출판사의 블로그(http://greenbee.co.kr/blog/296)에서 읽어볼 수 있다. 이번에 나온 <레닌과 미래의 혁명>은 레닌과 러시아혁명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면 흥미로운 독서를 제공한다. 전체 3부 가운데, 초심자라도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대목은 2부의 토론이다. 발제자들이 자신의 발표를 요약/정리해주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대의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2부를 먼저 읽는 게 좋을 듯싶다. 가령 박노자 교수의 이런 비교는 어떤가. 

레닌의 생명력이 궁금하다면 1917년도, 혁명의 해에 레닌의 움직임들을 자세히 봐야 합니다. 나중에 레닌이 독재자란 비판을 받짐만, 1917년 10월까지만 해도 레닌은 모범적인 소비에트 민주주의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1917년 러시아의 부르주아 임시정부는 이명박 정권하고 어떤 면에서 비슷하기도 했어요. 이명박보다는 훨씬 약했지만, 외부 권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차원에서는 비슷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임시정부는 자구책으로서 독일과의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도 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연합국들의 채권 때문이죠.(...)   

지금 대한민국이 그것보다 국력 상태도 좋고, 여러 가지 점에서 당시 러시아처럼 파산 위기는 아니라고 할 수는 있죠.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이 미국 자본주의에 상당한 의존성을 보이고 있고, 또 그것이 대(對)국민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게 보이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상황을 보면 왠지 1917년의 임시정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시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다른 점은 전자에게는 이렇다 할 경찰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전의경이 없었던 것이죠.(166-7쪽)  

흠, 말하자면 임시정부의 수장이었던 케렌스키에게는 이명박과는 달리 어청수가 없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는 얘기겠다...   

P.S.2. 대부분 그렇지만 마감에 쫓겨 원고를 넘긴 탓에 이번에도 제대로 퇴고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교열부에서 손을 봐준다는 점인데, 이번호 지면기사에서는 몇 가지 이견도 생겼다. 첫 문단에서 "그러한 반문 전제로 하는 레닌은"이 지면에서는 "그러한 반문 전제로 하는 레닌은"으로 수정됐는데, 나는 전자의 뜻으로 썼다. 그리고 고유명사 표기 두 가지. 지면에서는 '알튀세르'가 '알튀세'로, '호지민'이 '호찌민'으로 수정됐는데, 한겨레의 방침에 따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거명한 책에서의 표기는 전자이며 내가 지지하는 쪽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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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닌 재장전' 예고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1-14 12:13 
    2009년에 이어서 2010년에도 '1월의 책'은 '레닌'이다. 두툼한 분량의 <레닌 재장전>(마티, 2010)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부제는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 아래가 원서의 표지이고, 번역본의 표지는 좀 크게 넣었다.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과  박노자 외, <레닌과 미래의 혁명>(그린비, 2008)에 이어
 
 
2009-01-06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6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재작년부터 연말이나 연초에 교수신문에서 학술출판 트렌드에 관한 기사를 옮겨놓았다(아래쪽의 '학술출판'이란 태그를 클릭해보시길). 올해는 며칠 늦어진 셈인데, 사실 작년의 출판 전망과 결과를 대비시켜보는 페이퍼를 연말에 계획하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상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이럴 땐 '로쟈 2'가 있었으면 싶다). 그냥 올해의 전망기사를 읽어보는 걸로 넘어갈까 한다. 얼른 보기에 아주 예기치 않은 기대작이나 대작은 눈에 띄지 않아서 좀 실망스럽긴 한데, 그건 기사가 올해의 라인업을 다 망라해서 보여주지는 못하기 때문인 듯싶다. 그런 허전함을 채워줄 예기치 않은 책들과 분명 맞닥뜨릴 수 있으리라고 믿어본다. 흠, 올해도 이제 시작이다!.. 

교수신문(08. 12. 31) 2009년 미리 보는 출판 트렌드

주요 학술출판사들이 올해 출판을 계획하고 있는 책의 면면을 보면, 갑갑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물색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들의 출간예정 도서목록을 보면 무겁지만 역량이 기대되는 책들의 귀환이 점쳐지고 있다. 멀게는 이국의 저자에서부터 가깝게는 국내 신진 저자의 뚝심이 역력한 책들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우선 ‘혁명적 에너지와 상상력의 귀환을 꿈꾼다’라는 모토의 세기의 혁명가들의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는 프레시안북이 눈에 들어온다. 마오쩌둥, 로베스피에르,  호치민, 예수, 트로츠키, 카스트로, 제퍼슨, 볼리바르, 페인, 마르크스 등의 저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살림출판사는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민음사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을, 도서출판 길은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와 그 적자들』과 에른스트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 그리고 울리히 벡의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반대권력』을 내놓는다. 특히 프레드릭 제임슨의 저작은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어, 좀처럼 역자들이 달겨들지 않은 저작이라, 국내 첫 번역이 자못 기대된다.   

국내 필진 이론적 역량 과감히 선보여
국내 필진이 직접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현실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책으로 펼쳐내는 경향도 엿보인다. 서울대학교출판부는 『한국사회 트렌드를 읽는다』(정진성 외), 『한국의 사회운동가 진보정당』(임현진) 등의 저서를 출간 예고하고 있다. 도서출판 길은 『소수자의 정치학』(이정우)과 『스피노자-현대철학에의 함의』(진태원) 등의 책으로 사회를 근본에서 해독하는 국내 필진의 이론적인 높이를 과감히 선보일 예정이다. 이정우 박사는 들뢰즈·가타리 철학에 기반을 둘 것이고, 진태원 박사는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철학에 기반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참에 두 저자의 관점차를 비교하면서 프랑스 철학 내부의 이론적 긴장을 파악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매진은 『학출-80년대와 공장으로 간 대학생들』과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을 통해 이미 전설이 되고 있는 뜨거웠던 시절을 돌아보고자 한다. 따듯한 방구석에서 ‘설’만 풀어내기에 바쁜 요즘 지식인들의 현주소를 반추하는 계기도 기대해본다. 단, 한 때 유행했던 ‘후일담’의 토로에 그치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공존한다.

한편 정치사상의 울타리를 벗어나 보다 세부적이고 다양한 각도에서 미래를 고민하는 저작도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우선 꾸준히 출판 트렌드의 상수로 자리 잡은 여성주의 관련 저작도 올해 역시 선을 보인다. 책세상은 『여성, 섹슈얼리티, 국가』(이성숙)와 『식민지 이후를 사유하다-차이의 정치학, 탈식화와 재식민화이 경계』(권명아)등의 저작들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 권리 옹호』와 올리브 슈라이너의 『여성과 노동』을 번역서로 준비 중이다. 무게 있는 철학서로 알려진 철학과현실사도 『여성 리더쉽의 공간과 철학』(윤혜린)과 『지구화 시대 여성주의 철학』(윤혜린)을 내놓을 예정이다. 여성주의 관련 저작의 경우, 예전의 단순 개괄서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심층적인 주제를 신선한 포맷으로 서점에 등장하는 것이 최근 추세다. 올해 출간이 예고되는 몇몇 저작들이 동어반복적인 주장을 하지 않길 기대해본다.  



환경 역시 오늘을 사유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고민거리 중의 하나이다. 도서출판 한울은 『비판적 생태학과 환경정의』(최병두)와 찰스 하퍼의 『환경과 사회』를 잇달아 출간할 예정이다. 단순한 자연 보호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환경정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법론이 주목을 끈다. 다만 자칫하면 인간 중심주의로 환경을 사유하는 한계에 갇힐 수도 있는데, 저자들이 어떤 지혜를 발휘할지 지켜볼 대목이다. 민음사의 『저탄소 경제, 경제의 지도를 바꾼다』(김현진)는 정책적인 관점에서, 인간사랑의 『마르크스의 에콜로지 : 유물론과 자연』(존 벨라미)은 사상적 관점에서 환경의 문제를 사유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라는 지역에 대한 연구 성과를 선보이는 저작도 포진을 하고 있다. 휴머니스트는 『동아시아사』(제임스 팔레 외)를, 도서출판 한울은 『중국과 베트남 : 비대칭의 정치학』(브레틀리 워맥)을, 창비는 『21세기에 다시 보는 동아시아 3국 근대이행기』(김동노 외)와 『일본의 역사인식 비판』(미야지마 히로시)를 예고하고 있다. 그린비가 출간 예정 중인 『80년대 중국과의 대화』(자젠잉 외)와 『거울 속에 있는 듯』(다이진화)은 현대 중국에 초점을 맞춘 저작들이다.

동아시아를 읽는 차분한 시선들
아울러 동아시아에서 활약한 유명인들의 자서전 내지는 평전도 다수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삼인출판사는 『히로히토 평전』(허버트 빅스)과 『문동환 자서전』(문동환)을 준비하고 있고, 시대의 창은 『안중근 평전』(김상웅)을 예고하고 있다. 돌베개도 『황종희 평전』(쉬딩바오)을 선보인다. 동아시아 지역 연구는 아무래도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무관할 수 없어 편향된 주장을 할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경향은 차분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어 기대가 된다.  



예년에 비해 대안적 삶과 사회를 염두에 둔 저작들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통 철학 저작들이 위축된 것은 아니다. 학술 연구의 무게가 더해져야 실천적 고민의 질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와 역자 그리고 출판사들이 모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들의 인식 변화이겠지만 말이다. 학술 출판의 좌장격인 아카넷은 무게있는 학술서 다수를 출간 예고하고 있다. 딜타이의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을 가다머 전공자인 김창래 교수가,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칸트 전공자인 백종현 교수가 준비하고 있으며, 꾸준히 하이데거 책을 번역해 온 신상희 박사가 하이데거의 『횔덜린 시의 해명』을 번역한다.

아카넷이 간혹 프랑스철학서를 번역해왔지만, 올 예정 책들은 독일철학에 편향된 것이 눈에 걸린다. 독일철학은 무거운 학술 고전의 대접을 받고, 프랑스철학은 유행에 영합하는 대중용 서적의 취급을 받는 현실을 반영하는 듯해 개운하진 않다. 고전의 번역 이전에 무엇이 고전인가, 고전을  선정하는 기준은 객관적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소하고 기발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학문적 깊이를 유지하고자 하는 최근 역사학 저서의 경향은 올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휴머니스트는 『소문사설-조선의 기술사』(부유섭 외)와 『조선의 문자생활사』(심경호), 『동다기-차의 문화사』(정민)를 소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같은 출판사의 『인과성의 문화사』(스티븐 컨)도 기대를 모은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사소해 보이는 것들의 역사에 정통한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는 것은 이런 책들의 기여 덕분이 아닐까.  



고전은 어떻게 선정되는가
모티브북은 셸던 와츠의 『전염병의 역사: 질병, 제국주의의 힘』을 선보인다. 전염병과 역사는 이미 출판시장에서 여러 번 재미를 보았던 소재인데, 이번엔 다른 관점과 주장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는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시리즈를 예고한다. 『한국의 김치』(김숙희) 등이 그것이다. 서양의 차, 전염병, 관습, 의상 등 별의별 사소한 것들의 역사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는 출판 시장의 트렌드에 비춰 눈길이 가는 소재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올해는 특히 우리의 일상사에 대한 출판계의 관심이 큰 듯하다. 일조각은 『경기민요』(정동화)를 내놓을 예정이고, 소나무는 『한국의 아악은 없는가?』(한흥섭)와 『육담 박물관』(김선풍)을 준비하고 있다. 돌베개의 『한국 주거의 미시사』(전남일 외)도 빼놓을 수 없다.

건축 관련 저작들도 예년에 이어 꾸준히 흐름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휴머니스트는 『노마드철학과 서양건축』(이진경)을 통해 서양건축에 대한 철학적 독해를 선보일 예정이다. 동녘은 『표면의 건축』(데이빗 레더 배로우 외), 『전통건축 해체도』(김왕직 외), 『영건의궤와 조선의 건축』(김동욱 외) 등 건축 관련 저작을 대거 내놓을 전망이다. 소나무 역시 『건축학과 함께 하는 백제 도읍지 기행』을 내놓을 예정인데, 전통 건축을 역사와 접목해 소개하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책이다. 건축에 대한 관심은 종합적 문화에 대한 열망을 일정 부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오주훈 기자)  

09.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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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2009-01-05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들러 구경만 하고 갑니다. 새해가 며칠 지나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로쟈 2009-01-05 22:57   좋아요 0 | URL
오늘은 댓글도 다셨네요.^^ 복많이 받으시길..

마늘빵 2009-01-05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보 감사합니다. ^^ 글에 익숙한 분이 계시네요.

로쟈 2009-01-05 22:59   좋아요 0 | URL
네, 발모님이 계시네요. 연말에 뵀지요...^^

사량 2009-01-0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몇 책들은 이미 한 해 전 같은 기사에서 언급된 책들이네요. ^^; 올해에는 꼭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9-01-05 23:02   좋아요 0 | URL
제때 내기 어렵죠. 저도 작년에 내려던 책이 역량이 부족해 미뤄져서 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