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독서평설>(9월호)에 실은 갑론을박 꼭지를 옮겨놓는다. 헤르만 헤세의 가장 유명한 작품 <데미안>을 다루고 있다. 연재도 몇 차례 남지 않았는데, 한여름에 원고를 쓰면서 피로감으로 애를 먹은 기억이 난다. 헤르만 헤세의 몇몇 에세이집을 훑어볼 수 있었던 것이 개인적인 수확이다(<헤세로부터의 편지>로 소개된 <전쟁과 평화>가 대표적이다). 더 읽어야 할 책들의 리스트를 꼽아볼 수 있었던 것도. <데미안>을 읽을 때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창작과 수용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 하다는 것이 글의 요점이다(한국에서의 <데미안> 선호는 작품 자체와는 다소 무관해보인다. 1960년대 서구의 히피운동을 타고 건너왔고, 거기에 '전혜린 현상'이 기폭제가 되었던 듯싶다).  

  

고교 독서평설(09년 9월호) 알에서 나오기 위한 투쟁을 그리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헤르만 헤세(1877~1962)의 대표작 <데미안>(1919)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읽거나 들어 보지 못한 청소년은 거의 없을 것이다. 뭔가 수수께끼 같으면서도 의미심장해 보이지 않는가? 짐작하건대, 국내에서는 저자인 헤세보다도 인지도가 높은 작품인 <데미안>의 명성은 이 구절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을 성싶다. 그런데 알 듯 모를 듯한 이 구절처럼 <데미안>을 이해하는 일도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성장 소설 가운데 하나로, 주인공인 에밀 싱클레어가 자기 자신에 이르는 여정을 담고 있는 이 ‘정신의 자서전’은 청소년의 필독서로 세대에 걸쳐 권장되어 왔다. 하지만 인물과 상황에 대한 불명료한 묘사와 관념적인 내용, 신비주의적 모티프 등은 <데미안>을 읽는 데 장애가 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데미안』에서 모호한 상징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이며, 논란을 일으키는 부분은 어떤 곳인가.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헤세의 자전적 이야기
작품 전체의 시간적 배경이 언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데미안>이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쓰여 1919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은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챙겨 두어야 하는 사실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2년 전인 1912년부터 헤세는 스위스에 체류하고 있었다. 전쟁이 터지자 그는 독일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자원입대하려고 했다. 헤세는 베른 주재 독일 영사관에서 징병 신체검사에 응했지만 시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고, 그 대신 독일 대사관 부설 전쟁 포로 구호소에서 일하도록 명령받았다.  

하지만 전쟁 초기 당사국 간의 증오와 전쟁의 열기에 전혀 동조할 수 없었던 헤세는 1914년 11월, 스위스의 고급 일간지인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에 「벗들이여, 그렇게는 이제 그만!」이라는 반전(反戰)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글에서 지식인들의 편협한 국수주의와 애국주의를 비판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나는 조국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조국의 군인에게 자신의 임무를 외면하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적을 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면 자신의 임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격 명령이나 적군에 대한 증오 때문이 아니라 이 비극을 끝내기 위한, 더 가치 있는 활동에 대한 열망 때문에 이루어져야 한다. …(중략)… 이 불행한 세계 전쟁은 우리에게 적어도 한 가지를 확실히 말해 준다. 사랑은 증오보다, 이해는 분노보다, 평화는 전쟁보다 훨씬 더 고귀하다는 사실 말이다. 전쟁의 유일한 유용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헤세의 이러한 호소는 그에게 소외와 증오만을 안겨 주었다. 거기에다 연이어 발표한 기고문들로 그는 독일 언론에 ‘배신자’, ‘변절자’로 낙인찍혔다. 1946년에 그는 “독일은 내가 애국심과 군국주의를 비판했다는 사실 때문에 나를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 당시 단지 극소수의 인사들만이 그의 편이 돼 주었을 뿐이어서, 헤세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스위스에 체류 중이던 다른 독일 작가들과의 교제를 끊고, 어떠한 서클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1924년, 그는 아예 국적을 스위스로 바꾸었다. 

전쟁이 가져다준 정신적 충격과 전쟁 포로 구호 사업으로 인한 경제적 곤궁에 더하여, 헤세는 이 기간에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1916년 아버지가 사망했고, 아내와 막내아들은 신경 쇠약과 발작 증세로 자주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헤세 자신도 심한 우울증과 신경 쇠약에 빠졌다. 사실 그는 이미 10대 시절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었다.  

건강 회복을 위해 몇 군데를 전전하며 요양했지만 별 효과가 없자, 헤세는 정신 분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 저명한 정신 분석가인 칼 융(1875~1961)의 제자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 박사와의 대화 치료는 성공적이어서, 헤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 왔던 고뇌와 정신적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하게 된다. 그의 경우는 정신 분석 치료가 예술가의 창작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 그가 1917년 9월부터 10월까지 두 달 사이에 쓴 <데미안>이다. 헤세에게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작품”이었다. 



두 세계 사이에서의 방황을 그리다
당초 헤세는 <데미안>을 ‘에밀 싱클레어’란 가명으로 발표했다. 그것은 헤세가 말하듯 “늙은 아저씨의 이름이 젊은 독자들을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결의도 내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머리말에서 작가는 이 이야기가 “나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작가 싱클레어가 바로 헤세이므로 <데미안>은 누구보다도 헤세 자신의 이야기다. 

헤세는 자신을 이렇게 규정한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구도자였으며, 아직도 그렇다.” 과연 무엇을 찾는 구도자인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전제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다.”라는 것이 그 전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 

각자의 삶이 중요하고 신성하다는 것이 인간 운명의 보편성이라면, 에밀 싱클레어의 삶은 그런 보편성을 개인적 차원에서 구현하고 있는 ‘보편적 단독자’의 삶이다. 이 작품이 젊은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한다면, 그것은 싱클레어의 이야기가 독자 자신의 이야기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싱클레어가 겪는 두 세계, 곧 ‘밤과 낮’ 또는 ‘어둠과 빛’의 세계 사이에서의 혼란과 갈등,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싶다는 갈망 등은 대부분의 청소년이 비슷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은 ‘아버지의 집으로 표상되는 밝은 세계’와 ‘그 바깥의 낯설고 무서운 세계’가 대립하고 있다는 세계 인식에서 비롯된다. 

싱클레어는 인생의 목표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처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찍부터 악당들과 탕아들의 이야기에 매료된다. 나쁜 짓거리를 자랑삼아 떠벌리는 자리에서 악동인 프란츠 크로머에게 자기도 과일을 훔친 적이 있다고 짐짓 이야기를 꾸며 댄 것은 싱클레어의 그런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크로머의 형상은 사실 싱클레어의 내부에 먼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싱클레어는 자신을 ‘아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겐 ‘카인’의 형상 또한 깊이 박혀 있었다. 크로머의 사주를 받아 아버지를 습격하여 살해하는 꿈은 싱클레어의 금지된 욕망이 노출된 사례로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싱클레어는 카인적인 욕망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부정되고 금지되어야 하는 욕망이다. 이 욕망과 금지 사이에서 고통받는 싱클레어를 구제해 주는 것이 데미안이다. ‘데미안(Demian)’이란 이름 자체가 ‘데몬’(demon, 고대 그리스의 다이몬(Dämon)에서 유래한 말로, 다이몬은 신에 가까운 존재 또는 신과 인간의 중간적 존재를 의미함)을 연상시키듯,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보호해 주는 ‘수호천사’이자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유혹자’이며 ‘악령’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성경>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의 이야기를 재해석해 준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우월한 표식을 가진 카인과 그 자손들을 무서워했던 사람들이 후대에 꾸며 낸 내용일 뿐이며, 실제로 카인은 강하고 늠름한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데미안의 ‘가르침’이 신에 대한 예배와 함께 악마에 대한 예배도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소개한 아브락사스는 바로 이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결합을 가리키는 신성이다. 데미안은 이렇게 말한다. “이봐,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아브락사스야. 그런데 그는 신이면서 또 사탄이지. 그 안에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  

이런 양면적이고 양성적인 세계를 동시에 구현한 형상이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이다. 물론 ‘에바(Eva)’란 말은 ‘이브(Eve)’에서 가져온 것이며, 궁극적인 근원이자 완전함의 모태(母胎)를 상징한다.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의 모습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꿈꾸어 온 이상적인 이미지를 확인한다. 남성성과 여성성, 젊음과 성숙함, 아름다움과 근엄함을 동시에 체현하고 있는 “수호자이자 어머니, 운명이자 연인”이 바로 에바 부인이었다. 데미안에게 이끌린 싱클레어의 자기 탐색이 에바 부인과의 만남과 포옹으로 일단락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럽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발견한 것이며, 이제 남은 건 그 운명과 일체가 되어 삶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태어나는 건 언제나 어려워요. 아시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를 쓰지요.” 



새로운 인간성이 태어나는 곳, 전쟁
그렇지만 <데미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작품의 핵심 모티프인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새의 형상’이 전쟁을 통해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머리말에서 헤세는 “만약 우리가 이제 더 이상 단 한 번뿐인 소중한 목숨이 아니라면, 우리들 하나하나를 총알 하나로 정말로 완전히 세상에서 없애 버릴 수도 있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쓴다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리라.”라고 말한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가 유례없는 대량 살상이 행해진 제1차 세계 대전의 경험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주목할 것은 ‘종말의 시작’이란 제목의 마지막 장에서 이 전쟁은 뭔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기 위한 징후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데미안은 전쟁에 장교로 참전하며 싱클레어 또한 징병 열차를 타고 전선으로 향한다. 그런데 싱클레어는 전장에서의 첫 경험에 실망한다. 수많은 사람이 이상을 위해서 죽어 갔지만, 그것은 ‘개인의 이상’이 아니라 ‘공동의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죽어 가는 사람들의 눈에서 ‘운명의 의지’를 보고, 전쟁의 깊은 곳에서 새로운 인간성 같은 무엇인가가 생성되고 있다고 이해한다. 그는 수많은 사상자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렇게 생각한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소산은 내면의 발산이며, 새로이 태어날 수 있기 위해 미쳐 날뛰고 죽이고 파괴하고 죽어 버리려고 하는 영혼의 발산이었다. 한 마리의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것이었다. 그 알은 이 세계였고, 따라서 이 세계는 산산조각 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곧 싱클레어는 전쟁을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간성이 탄생하는 과정으로 인식한 것이다. 포탄에 부상을 입고 호송된 그는 병동의 매트리스에서 다시 데미안과 대면한다. 데미안은 그에게 에바 부인의 키스를 전해 준다. 그리고 이제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에서 그의 친구이자 인도자인 데미안과 완전히 닮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반전주의자 헤세와 <데미안>에서 전쟁의 의미
이러한 결말은 과연 헤세의 반전 활동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헤세는 전쟁을 반대한 탓에 전쟁 옹호자들에게 욕설을 듣고 공격을 당하기까지 했다. 그는 “이른바 ‘위대한 시대’에는, 다수를 차지하는 집단과 다른 생각을 지닌 개인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공격당하곤 한다.”라고 냉소하기도 했다. 실제로 히틀러의 나치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헤세의 작품들은 불온서적으로 간주되어 출판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정작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 병사들의 배낭 속에 한 권씩 들어 있었다는 책 또한 <데미안>이었다. 나치는 헤세의 작품 출간은 금지시켰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병사들이 <데미안>을 탐독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 아마 막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에 긍정적인 의의를 부여하고 있는 작품이라면, 오히려 권장할 만하지 않았을까? 

만약 전쟁에 대한 헤세의 생각과 <데미안>에서 전쟁이 갖는 의미가 상충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니체(1844~1900)의 영향을 받은 헤세의 엘리트주의와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싱클레어는 작품에서 표식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는데, 전자가 새로운 것과 개별화된 것 그리고 미래의 것을 지향하는 존재라면, 후자는 무엇인가를 고수하려는 의지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데미안은 인류가 가는 길에 영향력을 발휘했던 모든 사람은 그들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리 돼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만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자신의 종(種)을 구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그것은 발전사적 과정이며 생물학적 진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헤세적 여정 또한 마찬가지여서, 모두가 나름대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개구리나 뱀, 개미에 그치고 마는 경우도 많다. 이 여정에서 모든 사람은 동등하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데미안>의 제5장에 등장하는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의 말대로, “두 발로 걸어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인간은 아니며, 그들 가운데 많은 수는 물고기이거나 버러지이거나 거머리다”. 그들은 각각 인간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관점은 나치의 우생학과 그렇게 먼 거리에 있지 않다. 헤세의 ‘개인’을 나치는 ‘종족’으로 바꿔 놓았을 뿐이다. 

09. 09. 06. 

 

P.S. 헤세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의외였던 것은 이 친숙한 작가에 대한 평전이 알로이스 프린츠의 <헤르만 헤세>(더북, 2002)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프린츠는 <한나 아렌트>(여성신문사, 2002)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나마 프린츠의 책도 원고를 쓰면서는 참고하지 못했다(소장도서이긴 하나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한다). '나치 시대의 헤세'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찾아볼 생각이다. 한편, '구도자' '현자'의 이미지로만 채색돼 있는 것도 헤세의 '한국적 수용'이란 생각이 들었다(톨스토이의 한국적 수용도 그러하다). 여기엔 어떤 패턴이 있는 듯하다...


댓글(13) 먼댓글(2)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성장소설" 아닌 '성장소설, "순진함" 아닌 '순진함'
    from 게슴츠레의 공부터 2009-09-07 17:40 
    로쟈 님의 페이퍼를 보고 예전에 인도철학사를 수강하면서 제출했던 <데미안>서평이 생각나 찾아 업데이트해본다. 수업 레폿이라는 글의 형식은 근본적인 한계들을 가지는데 그 중 하나가 해당 수업의 내용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수업을 함께 듣지 않은 이들에게 보이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색을 맞춘답시고 어거지고 개념들을 구겨넣어야 했지만 기초적인 이해가 없어도 큰 무리는 없이 남에게 보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오히려 문제는 그런 부차적인 것이
  2. '수레바퀴 밑에서'와 '데미안'의 차이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1-07 10:42 
    <출판저널> 10월호에 실은 '로쟈가 읽은 책의 한 장면'을 다소 뒤늦게 옮겨놓는다. 새로 연재하는 코너인데, 제일 처음 다룬 책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쓰다 보니 분량제한에 걸려 애초에 구상했던 것만큼의 이야기는 늘어놓지 못했다(그래서 일부 내용은 이달 11월호에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로 번졌다). <출판저널>은 대개의 잡지들처럼 어렵게 꾸려지고 있지만
 
 
2009-09-06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6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09-09-06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데미안을 다시 읽고 있는데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많아요.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는 비판적이고 정치적 성향을, <데미안>에서는 치열한 내면의 응시과정을 통해 자기 발견에 이르는 과정을 다시 보고있어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도 이런 내용들이 읽히는지 궁금해 하던참에 또 헤세의 평전을 찾고 있던 참에 딱 맞춰 올려주셔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로쟈 2009-09-06 16:17   좋아요 0 | URL
헤세의 구도적 성향은 <싯다르타>에 더 잘 나타나고 서구에선 더 유명한 작품으로 보이는데, 유독 한국에선 <데미안>이 압도적입니다. 균형잡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9-06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은 헤세가 우리나라 정도의 인기는 없다고 하는데...아마 독일 소설가들 중 한국인들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유럽 작가들을 한국인 독자들이 어떻게 수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흥미롭지요.

로쟈 2009-09-06 16:14   좋아요 0 | URL
국적상으론 스위스 작가이기도 하지요. 수용시의 초기 조건이 상당히 많은 걸 좌우하는 듯해요. 톨스토이도 그랬고요...

푸른바다 2009-09-06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 중 가장 인상깊었던 책을 들라면 카라마조프 형제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리고 데미안 세 권을 들어야 할 것 같네요^^

로쟈 2009-09-07 14:36   좋아요 0 | URL
주제는 제각각인 듯한데요.^^

푸른바다 2009-09-07 17:13   좋아요 0 | URL
그렇죠^^ 데미안의 경우 전 '두개의 세계'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내면의 세계에 대한 사색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본 계기가 되기도 했죠... 베르테르같은 경우는 진솔한 감정묘사란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느끼게 해주었죠... 카라마조프는 사실 버거운 책이긴 했지만 인간 군상의 모순적인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책이었죠... 고등학교 때 읽었던 판본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베르테르와 데미안은 민음사 본으로 새로 장만했었죠^^ 카라마조프는 아직도 구매를 안했네요^^ 아마 다시 읽으면 굉장히 새롭겠지요...^^

펠릭스 2009-09-07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습니다. 85세에 세상을 뜬 사람은 후광(DJ), 스웨덴보그(영국 신비주의자) 그리고 헤세 등입니다. 지인이 85세까지 살 계획이라며 들여줘었을 때 놀라웠습니다. 죽을 나이도 계획하고 목표하는구나 싶어서요.

헤세는 40세부터 수채화를 그렸습니다. 자신과 세계와 전쟁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싶은 자연스러운 취미였습니다.(왜 너무 슬프면 웃는 경우 처럼) 국내 소설가중에 그림 재능이 있는 작가는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님 입니다. 취재시 참고가 될 장면이나 장소를 크로키 했다고 합니다. 제가 수채화에 대한 매력을 갖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알프스 산간마을에 칩거한 헤세처럼 저도 노년에 은둔하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어디서나 '아포리즘'에 해당된 문장이 남용되었습니다. 반감이었던지 헤세의 작품(데미안 외)을 읽기가 불편했습니다.(천만이상이 보는 영화를 보기 싫은 것 처럼)

2002년 전주에서 해르만 헤세전이 있었으며 뉴스('해르만헤세박물관'을 짓는다)의 뜻을 이해 못했습니다. 최근 강릉에서 이 박물관 건축에 대해 재검토중이라고 합니다. 특이하게 국내에 외국 작가에 대한 박물관 건립이 우리 정서에 맞을까 싶습니다.말처럼 외국의 특정 작가들의 작품들이 우리 나라에서 인기를 누리게 된 까닦들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일부는 연구되었겠지만)

로쟈 2009-09-07 14:54   좋아요 0 | URL
헤세 박물관 소식은 처음 접하는데요.^^

고티 2009-09-07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기도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 "오솔길이 있다. 누구나 같은 길을 간다".. 이 부분들이 기억에 남는군요. 20대의 꽤 오랜 기간 동안 마음에 울림을 주었던 귀절들이네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지나친 합리화를 조장하는 내용이 아닌가 싶어서 별로 달갑게 읽히지는 않더군요. 걸러서 읽었었습니다.

로쟈 2009-09-07 14:56   좋아요 0 | URL
자체로는 특별하지 않은 구절들인데, 개인적인 인연이 있으신 듯하네요. 하긴 대개 독서 경험이 그렇지요...
 

토요일이지만 등교일에 늦잠을 잔 딸아이가 잔뜩 투정을 부리다 학교에 갔다. 자칭10대가 되면서 말대꾸도 많아져 아침마다 쥐어박고 싶지만 오후에 하교할 땐 또 '상태'가 달라지기에 참아주고 있다. 공연히 훈계라도 했다가 "아빠는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란 소리를 들으면 본전도 못 건질 테니까. "사춘기라서 그래"라고 얼버무리는 게 미봉책이자 상책이다. 내가 겪은 10대의 기억이 나름 생생함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나 지금 중학생인 조카를 이해하기 어렵고 말을 붙이는 것도 어렵다(나는 부모님께 말대꾸한 적은 없다). 그들에겐 다른 애로 사항이 있는 것일까? 10대들의 육성을 모아놓은 책이 있어서 눈길이 간다.  

 

문화일보(09. 09. 04) 10代의 좌절, 이 정도일 줄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안쓰럽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 땅에서 자라는 10대들입니다. 특히 술이라도 마시고 밤 늦게 귀가하다 학원가에서 이들을 마주칠 때의 느낌이란…. 무거운 가방에 짓눌린 채 그 시간까지 학교와 학원을 오간 이들의 눈빛은 희망을 담기에는 너무 지쳐 보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쉽잖은 10대를 보냈고 이 땅에서 살아온 이치고 어렵지 않은 10대를 보낸 세대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들에게 슬픔을 느끼는 것은 기자가 감상적인 탓인가요.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김순천 글, 김정하 사진/동녘)는 저자가 2007년 겨울부터 최근까지 만난 10대 14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책에서 이야기를 풀어놓은 아이들은 각양각색입니다. 타워팰리스에 살며 이미 조기유학을 다녀온 아이도 있고, 지방고에서 1등을 한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수학 문제를 보면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공간이 생기면서 그림이 그려지고 답이 딱 나왔다는, 보기 드문 영재도 있습니다. 공부 대신 식은 땀이 나도록 운동을 한다는 아이도 있고, 음악을 공부하며 보컬 트레이너로서의 꿈을 키워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대안학교에서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한 뒤 뭘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초인적인 힘을 느낀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하나같이 우울함뿐입니다. 집과 학교와 학원에서 공부만 하는 것에 지치고 봉사마저 점수로 계산되는 전쟁같은 입시에 지친 강남 아이의 소원이 “불 다 끄고 닷새 동안 실컷 잠만 잤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1등 하면 행복한 줄 알았더니 외려 우울해져 “새벽까지 깨어 있고, 라디오에서 무슨 사고 소식만 들어도 슬프고, 거리를 걷다가도 내가 왜 이러지” 했다는 아이도 슬프긴 마찬가지입니다. 수학 영재이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해 일반 중학교에 갔던 아이는 하루의 반을 매를 맞다시피하며 보내다 못해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고 하는군요. 1학년 땐 담임이 반에서 말을 가장 안 들을 것 같은 애랑, 친구들이랑 가장 못 지낼 것 같은 애를 투표하게 한 뒤, 다섯 표 이상 나온 아이들은 왜 맞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울면서 맞았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격심한 분노마저 느껴집니다.

운동을 한다는 아이는 교사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관심의 절반만이라도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하기도 합니다. 대안학교에서 깊은 내면을 갖췄다는 아이는 이른바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조차 쉽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 맞닥뜨리며 견디어낼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줄은 짐작했지만, 이들의 아픔과 좌절이 이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우리가 그랬듯이 이들도 힘들어도 한때이겠거니, 그 와중에도 참고 견디며 꿈을 키워가겠거니 하고 생각했지요. 그저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며 내 아이 좋은 성적 받기에만 급급해하다 보니 대다수 아이들이 꿈다운 꿈 한번 제대로 꿀 수 없는 괴물같은 세상을 만들어 버린 겁니다.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좌절한 10대들이 슬픔을 딛고 일어서고 진실로 꿈을 가질 수 있게 교육 패러다임을 개혁하는 것, 10대와의 대화를 담은 책은 이것이 구호로 그치기에는 너무 화급한 문제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줍니다.(김종락기자)    

세계일보(09. 09. 05) 꿈…사랑…우정…10代로 살아 간다는 것

10대들은 늘 꿈을 꾼다. 오늘은 대통령이 되고 싶고, 내일은 우주비행사나 월드컵 무대를 꿈꾸는 축구선수를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결코 녹록지 않다. 꿈은 공부를 잘해야 이룰 수 있고, 그러려면 일류 대학에 진학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외고나 특목고에 가야 하고, 각종 경시대회에 입선해야 하고…. 과외에 내몰리고, 내신등급을 관리하며 10대는 흘러간다. 인생에서 가장 발랄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어야 할 10대에 아이들은 벌써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혀 좌절과 상실감과 맞닥뜨려야 한다.

르포작가 김순천의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는 인문계고·실업계고·대안학교·자퇴생·복학생 등 각각 다른 유형의 학교와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10대 14명의 이야기를 생생히 옮긴 인터뷰집이다. 이들은 같은 시기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10대를 보내고 있다는 공통점을 빼고는 하나같이 생각과 꿈이 달랐다. 그러나 모두 똑같은 것도 있었다. 10대를 굉장히 우울하게 보내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뿐만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늘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이 사회에 순응하고 있다는 점도 같았다. 그들은 ‘꿈이 무엇이냐’보다 ‘공부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중요한 듯 보였다. 꿈보다는 성적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자퇴생 한결이는 학교 안에서는 성장할 수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중학교 때 가출했다 지금은 공고에 다니는 미진이는 학교에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총희는 학교가 공부 를 잘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불평하고, 자퇴 후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예지는 학교가 답답했기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전교 1등만 했지만 대학에 떨어진 혜원이는 지방에서 학교에 다닌 자신이 너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학파인 덕훈이는 뉴질랜드와는 너무 다른 한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빈부 차, 지역 격차, 세대 갈등, 가정·폭력 문제 등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10대들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인 셈이다.

 

‘사춘기, 마음을 말하다-10대들이 직접 쓰고 번역한 리얼 심리 보고서’는 어른이 되기 위한 치열한 성장통을 겪는 사춘기 청소년 심리를 다룬 책이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쓴 청소년 문제 전문 작가들의 책을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영어를 공부한 고교 1∼2학년 8명이 공동으로 번역했다. 

책에는 ‘사춘기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 ‘나에게 힘을 주는 것’, ‘아주 특별한 인연’, ‘사랑과 우정 사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마음이 아플 때’, ‘곤경에 빠지는 순간’ 등 사춘기 아이들의 일상과 속마음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사소해보이지만 10대들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문제들이라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그 절절한 마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조정진기자) 

09. 09. 05.


댓글(4) 먼댓글(3)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09-09-06 08:01 
    (책)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 — via 로쟈
  2. 초딩의 근심
    from 아흐퉁! 미잔트롭 2009-09-09 23:35 
    http://www.diodeo.com/id=minsegki&movie=001187817&pt_code=02 
  3. 뿌리부터 말라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
    from Fly, Hendrix, Fly 2009-10-03 01:40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 - 김순천 지음/동녘 2008/03/31 - [Reviews / Previews/Social Science] - 위기의 학교 - 배틀로얄의 시대가 온다! 김순천, 공감하는 인터뷰어 김순천이 인터뷰했던 를 읽은 적이 있다. 김순천은 반찬 값을 벌려고, 아이들 학원비를 마련하려고 까르푸 시절부터 일했던 이랜드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한편의 완결된 글로 만들어냈다. 지승호의 인터뷰가 인터뷰이의..
 
 
마냐 2009-09-05 09:55   좋아요 0 | URL
이제 막 10대 부모 자격을 얻은 초보로서 마음이 넘 다급해지는군요. ㅠ.ㅜ

로쟈 2009-09-05 12:38   좋아요 0 | URL
저는 별로 해주는 게 없어서 입 다물고 있는 편입니다.^^;

펠릭스 2009-09-06 10:16   좋아요 0 | URL
곧 10대가 20대로 가겠지요.
"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잉 앵글을 넘어"도 읽어 볼만 합니다.

노화가 20대 초반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어쩜 10대는 '첫'자가 많이 붙을 나이대죠. 첫사람, 처음 봤던, 처음 들었던
등 10대 중,후반에 여행과 대화 그리고 독서와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 등을 많이 해보면서 자신의 이상을 찾아가는 생활이어야 하는데
(개별로 잘들하지만), 아쉬운게 많습니다.

경제적인 차와 무관하게 공교육이 담당해 줘야 되는데, 물론 예전보다는
좋아진 것들이 꽤 있습니다. 과밀학급 해소나 과학기자제 등,,,,

하지만 일본 등 선진 교육보다 더 투자할 것 같습니다.
우리 대학에서 사용하는 분석기기 등이 일본 중.고교의 과학실험실에
비치되어 앞선 학습을 하지만, 특히 우리의 20대는 국방의무에 대한
시간을 빼야하는 특수성 있습니다.

만약에 제가 공약을 낸다면 '수업공간에 대한 변화'를 시도하겠습니다.
현재 중.고생 교실의 책상을 거두고, 한 두개의 중소형 원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어딜가나 한 곳을 바라보는 수업형태도 좋지만 개인의 다양한
자세나 음성 등을 존중하는 관계도를 생각해서요.

로쟈 2009-09-06 14:00   좋아요 0 | URL
'인적자원' 양성이 교육의 목표로 간주되는 한 별로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번주 신간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책은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이다. 이건 이 서재를 자주 드나드는 분들에게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닐 것이다. 나름대로는 '지젝 전도사' 비슷한 일을 그간에 해왔기 때문이다. 두께가 만만찮지만 지젝 '전문' 번역자의 솜씨인 만큼 읽기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반가운 마음으로 리뷰기사도 챙겨놓는다.  

 

경향신문(09. 09. 05) 자본주의 시대, 다시 혁명을 말하다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승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징후는 무엇일까. 그것은 최근 20~30년 동안 자본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실질적’으로 흔적을 감췄다는 사실이다. 몇몇 고루한 마르크스주의자를 빼곤 자본주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반(反)세계화 혹은 반신자유주의라는 용어에 바통을 넘겨준 형국이다. 반세계화는 제국주의를 겨눈다. 노동착취 같은 자본주의 매커니즘을 타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제국 미국’을 적으로 삼는 경향이 농후하다.  



저자는 이러한 반세계화를 자본주의의 교묘한 기획으로 파악한다. 자본주의가 자신에게 돌아올 칼끝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좌파로 분류되는 철학자 상당수도 자본주의 전략의 유혹에 굴복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자의 해부로 드러난다. 자크 랑시에르와 안토니오 네그리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개념을 비웃는 것은 쉽다. 하지만 오늘날의 지배적인 경향은 ‘후쿠야마적’이다”라는 지젝의 주장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유토피아 논의를 압도하는 듯 보인다. 민주주의와 평등에 대한 논의가 자본주의라는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현실에서 지젝은 ‘혁명’이라는 카드를 꺼낸다. 혁명은 우리가 잃어버린 ‘대의(Cause)’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책은 자본주의의 실질적 비판이 여전히 필요하며 혁명의 중요성 또한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저자는 ‘디카페인화된 혁명’ 즉 ‘혁명 없는 혁명’을 제시하는 어설픈 좌파나 자유주의자의 논리적 무기력함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지젝은 마르크스 사상과 로베스피에르의 ‘폭력적 혁명’을 옹호한다. 폭력은 유혈 충돌이나 물리적 테러 같은 의미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폭력은 단번에 비민주적인 것을 제압할 수 있는 방식에 다름아니다. 바스티유 감옥으로 돌진하듯이 말이다.

자유주의적 관용보다 적대감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그런 맥락에서 읽힌다. 책은 자유민주주의의 대안에 대한 모색이다.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자신이 서있는 자리, 즉 계급적 시선을 거두지 말라는 주문이기도 하다.(서영찬기자) 

09. 09. 0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펠릭스 2009-09-0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의 블랙홀에서 흥미(과거픽션)을 풀어내는 소설가처럼
자본주의라는 블랙홀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을 구출하려는 "지젝"의 "혁명"
(대의중 하나,비민주주의 단번 제압용)은 미래픽션(유토피아의 논의) 이라
생각됩니다.

로쟈 2009-09-05 09:16   좋아요 0 | URL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는 게 혁명의 요구이니까요...
 

어제 배송받은 잡지는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펴내는 컬처 매거진 <브뤼트>(제4호)다(http://www.sangsangmadang.com/magazine/brut/). '우리 시대의 텍스트'란 기획특집 설문에 참여하여 '우리시대의 고전' 10권을 추천하고(애초에 '우리시대의 텍스트'라고 했으면 목록이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그중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에 대해서는 간단한 설명도 붙였다. 짧은 글이지만 옮겨놓는다(오타들은 수정했다). 

  

브뤼트(09년 9월호) Our Generation, New Text - <트랜스크리틱>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1941- )의 <트랜스크리틱>은 스스로가 ‘특별한 책’이라고 자부한 대표작이다. ‘나쓰세 소세키론’으로 데뷔한 문학평론가이기도 하지만, 가라타니는 도쿄대학 경제학부 출신으로 그의 평생 화두는 마르크스와 <자본론>에 대한 새로운 독해다. 이미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4)을 통해 첫걸음을 뗀 고진은 마침내 <트랜스크리틱>을 통해서 청년시절부터 40년간 골몰해온 문제를 마침내 일단락짓는다.  

가라타니가 골몰해온 문제란 ‘자본주의 국가체제’의 극복이 어떻게 가능한가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의 <자본론> 독해에 동의할 수 없었고 경제학자들의 제한적인 <자본론> 해석에 불만이었다. 가라타니의 독특한 착안은 흔히 헤겔과의 관계에서 읽는 것이 보통인 마르크스의 이론을 칸트와의 관계 속에서 읽고자 한 것이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면, “내가 트랜스크리틱이라 부르는 것은 윤리성과 정치경제학 영역의 사이, 칸트적 비판과 마르크스적 비판 사이의 코드 변환, 즉 칸트로부터 마르크스를 읽어내고 마르크스로부터 칸트를 읽어내는 시도이다.”  

그런 견지에서 가라타니는 <자본론>에 비견될 수 있는 유일한 책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마르크스에 대한 새로운 발견임과 동시에 칸트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낳는다. 가라타니는 코뮤니즘의 형이상학이 어떻게 재건될 수 있을까란 관점에서 칸트를 다시 읽으며, 칸트적 ‘지상명령’의 문제로 마르크스의 코뮤니즘을 재해석한다. 그 결과 전지구적 세계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이론적 원리를 구축하게 된다.   

가라타니가 보기에 현재의 자본주의 국가는 각기 상이한 교환양식에 근거한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의 삼위일체 체제다. 따라서 자본에 대한 대항은 동시에 네이션=스테이트에 대한 대항이어야 하며, 국가의 강화를 통한 자본제 폐지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사회민주주의 대신에 그가 제안하는 것이 ‘어소시에셔니즘’이다. 노동자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로서 참여하는 생산-소비의 협동조합의 조직화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모델로서 제시된다. 거기서 비자본제적 생산-소비 협동조합의 지역통화는 “화폐가 없으면 안된다”와 “화폐가 있어서는 안된다”라는 <자본론>에서의 이율배반에 대한 칸트식 해법이기도 하다.  

가라타니가 제안하는 ‘대항운동’이 얼마나 현실적이며 어느 정도까지 실현가능한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는 운동이 자본과 국가를 넘어서는 원리를 스스로 실현하지 못할 때, 장래에 자본과 국가를 지양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가라타니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트랜스크리틱>은 충분한 탐독과 고구(考究)의 대상이 될 만하다.  

09. 09. 05.  

P.S. 책에서의 인용문도 한 단락 포함됐는데, 내가 고른 세 핵심 대목 가운데 아래의 것이 책에 실렸다.  

폴라니는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암에 비유했다. 자본주의는 농업적 공동체나 봉건적 국가 ‘사이’에서 시작되었고, 곧 내부로 침입해 그것들을 자신들에 맞춰 새롭게 만들었지만 여전히 기생적인 존재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노동자=소비자의 초국가적(transnational) 네트워크는 자본과 국가라는 암에 생기는 대항 암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제거할 수밖에 없다. 유통의 장을 거점으로 한 내재적 또는 초출적 대항운동은 완전하게 합법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어떠한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도 손을 댈 수가 없다. <자본론>은 그것에 논리적 근거를 부여했다. 가치형태에서의 비대칭적 관계(상품과 화폐)는 자본을 낳지만, 동시에 거기에 자본을 종식시키는 ‘전위적인’(transpositional) 모멘트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대한 트랜스크리틱이다.(60쪽)


댓글(7)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9-05 0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5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09-09-05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암에 비유했다.~기생적인 존재이다" 를
생물학 용어인 "형질전환" 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가치형태에서의 비대칭적 관계(상품과 화폐)는 ~ 트랜스크리틱이다" 처럼
생성된 대항세포가 자가추적하여 타겟세포(암세포,잉여가치인 자본)를 죽이
면 정상 세포가 생성되도록 하는 치료법도 연구중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사유가,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라고 한다면,
고진의 사유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입니다.
그의 사유는 "개인과 조직(구조)" 사이(트랜스크리틱)에 있는듯 합니다.

로쟈 2009-09-05 09:17   좋아요 0 | URL
책임은 <윤리21>에서 다루는 주제입니다. 필독할 만한 책입니다...

펠릭스 2009-09-05 19:27   좋아요 0 | URL
명성황후 시해범 후손이 사죄하는 것도

2009-09-05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5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수신문에서 2학기에 출간될 학술도서 목록을 미리 짚어주는 기사를 옮겨놓는다. 이미 몇 권은 출간된 상태인데, 눈길을 끄는 타이틀이 여럿 된다. 참고해둘 만하다.  



교수신문(09. 09. 01) 2학기 학술도서 출간, 무엇이 기다리고 있나 

“인생은 아름다웠고, 역사는 발전한다.” 한 시대의 아포리즘이다. 이 아포리즘이 학술서들에 반영되려면,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고, 야위고 하는 시간들이 필요할 것이다.  

기존 기획서들 꾸준히 발간
열화당의 모색은 흔들림 없다. ‘우현 고유섭 전집’(전10권) 2차분 네 권을 출간한다. 제3,4권『조선탑파의 연구(상·하)』,제5권『고려청자』,제6권『조선건축미술사 초고』등이다. 특히 『조선건축미술사 초고』는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 通史라고 할 수 있다. 한길사의 한길그레이트북스는 최술의 『수사고신록·수사고신여록』(이재하), 레이몽 부동의 『사회변동과 사회학』(민문홍) 등이 출간을 서두르고 있다. 19년 전 출간 당시에는 ‘자유의적’ 냄새 때문에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던 부동이 오늘 어떻게 수용될지 궁금하다.   

 

몰입은 계속된다, 고전을 찾아라
철학 전문 출판사인 서광사의 한 우물 파기가 멈출 줄 모른다. 플라톤의 『플라톤의 법률』(박종현 역주)이 눈에 띈다. 헬라스어 원전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주석을 단 책으로, 플라톤 원숙기에 접어든 사상을 보여줄 것이다. 아카넷 역시 딜타이의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을 내놓을 예정. 한길사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심경호 역주)와 타키투스의 『역사』(김경현·차전환 옮김)를 준비한다. 연암의 문체가 당대 조선을 뒤흔들었음을 생각할 때,연암의 빛나는 사유를 어떻게 ‘완전주석’ 해냈을 지 관심이 쏠린다. 도서출판 길에서 내놓을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김덕영 옮김)은 200자 원고지 3천매 분량, 전공자에 의한 결정판본 번역으로 기대된다.

국내 필진들의 내공 들여다 볼 기회
국내 저자들의 이론적 내공을 확인해 볼 수 있는 학술서 목록도 두툼하다. 하반기에 만날 수 있는 책들은 문자, 사상, 문화, 역사 등에서 스펙트럼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삼인출판사가 내놓을 『한자는 중국을 이렇게 지배하였다』(가제, 김근), 사회평론사의 『안견과 몽유도원도』(안휘준), 『상인과 미술』(양정무), 학고재의 『역사와 사상이 담긴 조선시대 인물화』(안휘준 외), 『크로스컬쳐』(박준형), 생각의나무에서 준비중인 『크로스 오버 하이데거』(이승종), 『시장과 문화』(여건종), 아카넷에서 출고 대기중인 『중국의 다구르어와 어웡키어의 문법, 어휘 연구』(성백인 외), 서광사의 『기호 유학 연구』(황의동) 등의 리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크로스 오버 하이데거』는 제목 그대로 다양한 관점에서 하이데거 철학을 재해석하는 시도인데, 어떤 접점을 읽어낼 지 기대된다. 지식산업사의 『백제의 사회사상사』(노중국)도 제법 무거운 저작이다. 이 책은 올해 1월 익산 미륵사지에서 「사리봉일기」가 발견되기까지 모든 자료를 동원해 백제의 사회와 사상을 총체적으로 그려낸다.   



왕년의 저명 학자들 돌아오고, 현실 더 깊게 읽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깊게 파고들면서 삶의 방식을 개조하려는 노력에 공력을 쏟은 왕년의 스타 저자들의 책도 잇따라 번역된다. 앙드레 고르, 라클라우, 상탈 무페, 에티엔 발리바르의 이름이 눈에 띈다. 중국과 동아시아의 부상을 눈여겨 본 조반니 아리기의 이름도 있다. 위험사회로 잘 알려진 울리히 벡이나, 『상상의 공동체』로 이름 날린 베네딕트 앤더슨의 신간도 과거의 책만큼이나 관심을 끌지 궁금하다.  



생각의나무에서 내놓을 앙드레 고르의 『프롤레타리아여, 안녕』(박수현 옮김), 후마니타스에 야심차게 준비한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이승원 옮김), 에티엔 발리바르의 『우리는 유럽 인민인가』(진태원 옮김), 라클라우의 『포퓰리즘의 근거에 관하여』(임승준 옮김), 소나무에서 출간할 『우리 종교』(하비 콕스 외, 박태식 외 옮김), 도서출판 길이 내놓을 조반니 아리기의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강진아 옮김),  책갈피를 통해 소개될 크리스 하먼의 『부르주아 경제학의 위기』(이정구 옮김), 책과함께의 리스트에 오른 『중국사상문화사전』(미조구찌 유조 외, 김석근 외 옮김), 이후출판사가 소개할 수전 스트레서의 『쓰레기와 필요』(가제, 김승진 옮김) 등이 주목된다. 

좀 더 현실의 문제에 착근한 책들도 예상된다. 진보, 반전 평화운동, 환경, 이슬람, 공화주의, 한국 자본주의 등의 코드가 보인다. 도서출판 길의 예정 신간인 로레르토 웅거의 『진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병천 옮김)는 신자유주의 이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진보진영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삼인출판사가 내놓을 신시아 콕번의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전쟁, 여성 운동 그리고 페미니즘 분석』(가제, 김엘리 옮김)은 반전 평화운동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 활동가들의 인터뷰와 분석을 담는다.  

이후출판사의 『갯벌, 사람과 만나다』(김준)는 ‘갯살림’과 해양문화, 습지문화를 폭넓고 풍부하게 조명한 책이다. 책갈피에서 나올 마리얌 포야의 『이란의 이데올로기와 저항: 여성, 노동, 이슬람주의』(정종수·차승일 옮김)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이슬람, 특히 이란 현대사의 속살을 보여줄 것이다. 도서출판 길에서 마련한 『공화국을 위하여』(조승래)도 최근의 공화주의 논의를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길사가 출간할 『한국자본주의의 선택』(백종국)은 해방 후 한국사회가 걸어왔던 자본주의 전체 모습을 조감하면서 한국 자본주의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체제는 무엇인지 논의한다.(정리 최익현 기자) 

09. 09. 03.  

P.S. 참고로, 지젝의 책 가운데는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가 이미 출간됐고, <레닌 재장전> 등도 하반기에 출간될 예정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펠릭스 2009-09-04 12:36   좋아요 0 | URL
2학기 개강과 동시에 입각하셨습니다.
세간에선 "테니스코트에서 야구가 잘 되겠냐"며 묻습니다.
고등학생이 물었습니다.
'총장님, 공부와 독서중에 어떤 것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 개인적으론 '독서'가 먼저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총장님, 다시 공부하시면 어떤 공부를 하시고 싶으신지요?
- 역시 경제학이며, 다음은 철학, 다음은 정치학 입니다.

로쟈 2009-09-05 09:19   좋아요 0 | URL
독서와 공부가 다른 건가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