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교수신문에 실은 동향기사를 옮겨놓는다. 슬라보예 지젝에 관한 글을 청탁받고 처음엔 사양했지만 결국은 쓰게 됐다. 대신에 마감에 쫓기느라 <시차적 관점>을 다룬 대목은 예전에 쓴 글을 약간 편집해서 옮겨놓았다. 대표작에 대한 소개도 포함해달라는 주문이 있어서다. 기사의 첫문단은 편집자의 멘트이다. 덧붙여, 현재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은 품절상태인데, 만약 절판된 거라면 조만간 새 번역본이 출간되면 좋겠다...  

교수신문(10. 40. 12) [흐름] 국내 학술출판계의 아이콘 ‘지젝’  

국내 학술번역서 리스트 맨 앞에 놓인 이름은 누구의 것일까. 슬라보예 지젝이다. 지젝 열풍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번역계에는 확실히 그가 ‘잘 팔리는’ 아이콘이다. 문제적인 철학자이자,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평가받는 지젝, 과연 그가 지식사회에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젝을 읽는 데는 이런 문제의식이 놓여 있다.   



하나의 유령이 우리의 인문학 동네를 떠돌고 있다. “마돈나가 싱글 앨범을 발표하는 것보다 더 정기적으로 책을 발표”하면서 “동시대의 정치적 무관심에서부터 이웃집 닭한테 잡아먹힐 걱정을 하는 남자에 관한 조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절대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그 유령의 이름이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이 ‘괴물’ 철학자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을 통해서 영어권 지식사회에 등장했을 때, 그가 우리 시대의 가장 문제적인 철학자이자 ‘가장 위험한 철학자’가 되리라고 점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슬로베니아 라캉학파의 일원으로 지젝을 처음 소개하면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조차도 “포스트 마르크시즘적 시대에 사회 민주주의적 정치 프로젝트를 구축하는 문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필독서가 되리라고 데뷔작의 의의를 한정했었다. 하지만 지젝은 이듬해 슬로베니아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후에 더 본격적으로, 그리고 전방위적으로 열정적인 ‘이론투쟁’을 개시한다. 그 결과 영어로는 이미 60권에 육박하는 단행본을 출간했고, 국내에 번역·소개된 것만 해도 30종이 넘는다. 가히 ‘지젝 현상’이라고도 할 만한 이러한 현황의 이면에는 그의 부지런한 다산성 못지않게 그의 이론적 사유에 대한 지식사회의 수요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MTV 철학자’라는 일부의 비아냥거림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론-실천 잇는 지적 다산성과 사유의 매력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 대한 이러한 열광을 낳는 것일까. 개인적으론 그를 통해서 비로소 헤겔의 철학과 라캉의 정신분석에 대해 진지한 흥미를 갖게 됐다는 걸로 이유를 대신할 수 있지만, 애초에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부터 지젝이 목표로 한 바이기도 하다. 그는 이데올로기 이론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 외에 라캉 정신분석의 기본개념에 대한 개설을 제공하는 것과 ‘헤겔로의 회귀’를 목표로 내세웠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가 서로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그는 ‘헤겔을 구출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 라캉을 경유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이러한 라캉적 독법과 헤겔의 유산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판단한다. 비록 “민주주의는 모든 가능한 체제들 중에서 최악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것도 그보다 낫진 않다는 것이다”라는 처칠의 주장을 반복하던 초기의 입장은 곧 철회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종언 이후,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그의 집요한 탐색은 그가 줄곧 견지하고 있는 과제다.   

흔히 ‘슬로베니아 라캉주의 헤겔주의자’라고 불리지만 지젝의 사유에는 마르크스와 대중문화가 이론적 틀로 더해진다. 그는 가장 난해한 두 사상가, 헤겔과 라캉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헤겔을 어떻게 라캉으로 읽을 수 있으며, 반대로 라캉은 어떻게 헤겔로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독해가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지형과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작업에 대해서 그의 담론이 세련된 라캉적 분석과 덜 해체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분열돼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그의 철학 ‘퍼포먼스’가 고상한 철학을 대중문화로 더럽힌다는 비난도 가해진다.

하지만 라캉을 따라서 ‘메타언어’는 없다고 주장하며 고상한 담론과 범속한 담론의 이분법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는 지젝은 그러한 비판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의 헤겔 독법에 유보할 지점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헤겔에 대한 새로운 독해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여라고 응수한다. 굳이 그러한 철학적 기여가 아니더라도 지난 20년간 현 세계의 다양한 정치경제적 이슈에 대해 지속적인 철학적 성찰과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제시하고 있는 철학자가 지젝 말고 더 있는지 궁금하다. 분명 손에 꼽을 정도이지 않을까. 게다가 그는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가 아닌가!  



대체 지젝은 어떤 사유와 이론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인가. 철학적 이슈와 정치적 쟁점을 종횡무진하는 지젝의 행보와 재담을 모두 따라가는 건 지젝의 애독자라도 어려운 일이지만 다행히도 그는 자신의 주저를 몇 권 꼽아놓은 적이 있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외에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까다로운 주체』, 그리고 『시차적 관점』까지 네 권의 책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차적 관점』은 “철학이란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란 그의 주장에 충실한 책으로 지젝의 이론적 사유를 따라가거나 그와 대결하기 위해서라면 필독해야 할 책이다.

지젝이 말하는 ‘시차’란 과학용어로 동일한 대상을 서로 다른 곳에서 보았을 때 서로 다른 위치나 형상으로 보이는 것을 말한다. 가장 단순하게는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각각 한쪽씩 가리고 보았을 때 나타나는 약간의 차이가 시차다. 서로 다른 시각(관점)이 만들어내는 차이를 시차라고 하면, 이것은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난다. 양자물리학에서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신경생물학에서 의식현상과 회백질 더미, 철학에서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 정신분석학에서 욕망과 충동 사이의 간극, 그리고 성적 삽입의 대상이면서 출산의 기관이기도 한 질(바기나)의 시차 등등. 지젝은 이러한 두 층위 사이에 어떠한 공통 언어나 기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변증법적으로 매개·지양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율배반’을 시차로 재정의한다. 그리고 철학과 과학, 정치라는 세 가지 주요 양식에 나타는 시차적 간극에 개념적 질서를 부여하고자 한다.   



‘시차적 관점’이라는 아이디어는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에서 얻어오는데, 이미 『이라크』(2004)에서도 ‘시차’란 개념을 사용해 이라크전쟁의 ‘진리’를 설명한 바 있다. 곧 “민주주의는 인류에 대한 신의 선물”이라는 부시의 말이 집약해주고 있는 대로 서구민주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믿음이 이 전쟁의 첫 번째 이유이고(상상계), 새로운 세계질서 안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주장하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라면(상징계),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세 번째 이유(실재계)라는 것이다. 여기서 요점은 어느 하나가 나머지의 ‘진리’라는 게 아니라, ‘진리’란 관점의 이동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것이 말하자면 시차적 관점에서의 진리다.

이러한 시차적 관점의 도입을 통해서 지젝은 궁극적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을 재건하고자 한다. 그가 보기에 시차란 개념은 변증법적 사유의 장애물이 아니라 그 전복적인 핵심을 간파하도록 해주는 열쇠다. 이 열쇠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가령 ‘저항’의 교착상태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젝은 알랭 바디우를 따라서 시스템이 더욱 부드럽게 작동하게끔 만들어주는 국지적 행동에 참여하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진정한 위협은 수동성이 아니라 유사-행동이며, ‘능동적’이고 ‘참여적’이 되려는 이 충동은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視差’ 개념 통해 변증법적 유물론 재건 시도
예컨대, 사람들은 언제나 개입해 ‘뭔가’를 하고, 학자들은 무의미한 ‘논쟁’에 참여한다. 가령 자유주의적 좌파 또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들도 혁명을 말하지만, 그들은 혁명을 위해 치러야 할 실제적 대가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자신의 학술적 특권이 전혀 위협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거나 급진적인 담론을 쏟아내는 데 열중하는 ‘강단좌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발언을 뒷받침하고 있는 발언 위치, 곧 물적 토대와 시스템 자체는 결코 건드리지 않으며 위험에 빠뜨리지도 않는다. 

이러한 유사-행동에 대해 지젝은 비판적인 참여와 행동을 통해서 권력을 쥔 자들과 ‘대화’에 나서기보다는 ‘불길한 수동성’으로 퇴각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달리 제국주의, 식민주의, 세계대전이라는 1914년의 파국적 조건 속에서 혁명의 기획을 재창조하려고 했던 레닌의 제스처를 오늘날 반복해야 한다는 그의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사회주의 운동사에서 전례 없는 패배의 국면이었던 1914년에 레닌은 좌절하지도, 그렇다고 즉각적인 정치적 해답을 내놓지도 않았다. 대신에 스위스 베른의 도서관에 틀어박혀 이듬해 5월까지 헤겔의 『논리학』 연구에 매진했다. 알다시피, 그가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키게 되는 것은 불과 그 2년 뒤의 일이다. 

10.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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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0-04-16 10:23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숭고한 대상 — 로쟈
 
 
poptrash 2010-04-14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데올로기라는... 은 출판사에 전화한 결과, 절판이고 다시 낼 계획도 없다고 해요. 이유가 뭘까요. 수요가 없는 책도 아니고, 인간사랑 출판사 중에서는 잘 나가는 축에 드는 책이었을텐데... 계약 만료라면 다른 곳에서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인데, 과연 언제 나올런지.

로쟈 2010-04-14 00:18   좋아요 0 | URL
짐작엔 계약기간이 만료된 거 같아요. 출판사만 바뀔지, 역자도 바뀔지는 두고봐야겠네요. 몇몇 대목을 교정하면 예전 번역도 나쁘진 않았는데요...

구보 2010-04-14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를 이제 막 읽었습니다.
앞으로 가서 다시 읽기를 반복하며 진도 나갔는데 로쟈님 글로는 왠지 정리가 잘 되네요.
몇몇 문장은 요령부득이라 과외라도 받고 싶습니다^^

로쟈 2010-04-14 23:33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뒷부분은 남겨놓고 있는데요.^^;

빵가게재습격 2010-04-14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대중적인'이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은 아니죠?!^^;;; 뒤적거려보다가 혼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레닌의 제스처'가 좀 선정적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체제가 생각만큼 견고한 게 아니다. 체제를 넘어서는 질적변화는 단번에 포착될 수 있다. 란 암시를 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굳이 레닌이라는 거인까지 나와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분명 제가 이해 못해서 그런 것이겠지만요.^^;;) 페이퍼 잘 읽고 가면서 몇 마디 끄적이고 싶어 댓글 남겼습니다. 아 그리고 외람되지만, 로쟈님 서재에 '책을 너무 읽어야 해서 자살'해야 하는 즐거운 비명이 가득 차기를 기원합니다. 그 비명 들으러 자주 들를께요. 건강하세요.^^

로쟈 2010-04-14 23:34   좋아요 0 | URL
네, 비명은 아니더라도 신음은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흠...

푸른바다 2010-04-14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이 책방에 널려있을 때는 왠지 하나의 유행서에 불과한 것 같아서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로쟈님 덕분에 관심을 갖게되어 막상 읽어보려고 하니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이 되어 버렸더군요. 이 책은 헌책방에서도 매우 드문데, 저는 운좋게 헌책을 구해서 작년 중하순 쯤에 완독을 했습니다^^

로쟈 2010-04-14 23:35   좋아요 0 | URL
지젝의 남은 책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푸른바다 2010-04-15 09:51   좋아요 0 | URL
위에 이미지를 로드하신 지젝의 책들 중에 두권 빼고 모두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미지를 로드하지 않으신 책들도 몇 권 더 가지고 있지요. 그 책들을 모두 읽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10-04-15 18:42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그게 몇 권만 완독하셔도 되긴 합니다.^^

허스키 2011-11-07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색하다보니 김서영씨께서 번역하신 <시차적 관점>의 번역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이 몇몇 보이던데 로쟈님께서 보시기엔 어떤가요? (워낙 오래된 포스팅에 붙이는 질문이라 보시게 될지 모르겠네요)
 
인문좌파란 무엇인가

아침신문을 밤중에야 읽었다. 최근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글항아리, 2010)를 펴냈을 뿐만 아니라 한겨레21('노 땡큐!'란)과 교수신문의 연재(격주로 '세계사상지도'를 다룬다)를 새로 시작하는 등 문화비평가로서 '시즌2' 활동에 나선 이택광 교수의 인터뷰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사실 낮에 한겨레21에서 드라마 <추노>에 대한 칼럼도 읽었기에 이런 정도의 활동 빈도라면 '기록'해두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향신문(10. 04. 12) 이 시대 ‘합의된 아름다움’을 깨라 

왜 사람들은 ‘꿀벅지’와 ‘초콜릿복근’에 열광하는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42)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합의된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먹는 것’ 그 중에서도 ‘달콤한 것’으로 상상되는 아름다움은 특정 시기의 사회적 산물이다. 
 
 

이 교수는 최근 서울 홍대앞 한 카페에서 ‘지금 우리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하며 “새로운 것은 합의된 아름다움과 다른 것을 상상하는 데서 나오고 그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잡지 ‘1/n’이 마련한 이 강연에서 이 교수는 이마누엘 칸트와 자크 랑시에르를 많이 언급했다.

이 교수는 칸트의 말을 빌려, 사람들이 ‘소녀시대’와 ‘짐승돌’의 몸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쾌락적 판단’에 기반한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쾌와 불쾌를 나누는 ‘판단’이다. 그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예로 들었다. 지금은 누구도 인상파 그림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19세기 파리 시민들은 그리다 만 것 같은 이 그림들을 보고 비명을 지르거나 졸도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들에서 배운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몸, 그림이 되려면 “지금 이 사회에서 합의되어 있는, 욕망에 기반한 자본주의 상품화의 쾌락 원칙”에 들어맞아야 한다. 



이 교수는 합의된 쾌락 원칙을 ‘감각적인 것의 나눔’, 즉 미학으로 불렀다. 그런데 합의라는 말에 바로 전환의 가능성이 들어있다. 합의는 깨면 되기 때문이다. 즉 “예술이 학습되는 것이라면 미학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가능하다”. 여기서 계급적 배경처럼 물려받은 감각에서 자유로워진 ‘무관심한 판단’이 중요해진다. 이 교수는 랑시에르가 1848년 프랑스혁명 당시 한 노동자의 일기를 살펴본 것에 주목했다.

“미장공이 갑자기 일을 멈추고 자기가 만든 방을 바라보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무심한 마음으로 그는 갑자기 그 방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요. 바깥에는 오후 햇살이 환하고 창문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 순간 미장공의 노동이 배어 있는 방은 완전히 낯선 사물로 재발견됩니다.” ‘무관심한 시선’의 발견이 랑시에르의 독창성이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무관심한 판단이 있고서야 합의된 아름다움을 상대화시켜 보게 되고, 그것을 깨는 것도 가능하다. 이 교수는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10대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거리로 나온 것도 그렇게 해석했다. “촛불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은 ‘10대들은 어른들과 다르다’는 공동체의 합의를 넘어서는 감각을 서로 나누고 있었던 겁니다.” 



이 교수의 생각은 최근 출간된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글항아리)에서 좀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여기서 ‘인문좌파’란 합의된 공동체의 윤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로 ‘정치적 좌파’나 ‘인문학자’와 구별된다. “진보운동이 진보정당이라는 합의제 민주주의에 갇혀 있고, 소통 담론이 진보 세력의 전략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이 교수는 “민주주의보다 정치적인 것을, 소통보다는 불통을 설파”한다. “갈등과 모순을 강조하고, 고정성보다 우발성에 주목하는 이론들을 통해 진보정당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 ‘비가시적인 정치’를 찾아내는 것이 인문좌파의 임무”라는 것이다.(손제민기자) 

10. 04. 12. 

P.S. '문화평론가'란 직함으로도 칼럼을 쓴 적이 있지만(담당기자는 내게 '백수를 고상하게 부르는 이름'이라고 정의해주었다) TV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기에 내게 '문화비평'은 다른 동네 얘기에 가까운데, 그래도 이런 정도의 얘기는 알아들을 수 있다. 이택광 교수가 이번주 한겨레21의 '추노, 근육질의 시대'란 칼럼에 적은 내용이다.   

80년대 할리우드의 람보나 코난 시리즈가 60년대 반문화 운동의 형식을 빌려와서 보수주의적 내용을 담아냈다면, <추노>는 반대의 경우다. 80년대나 통했을 보수적 형식에 이명박 시대의 '계급투쟁'이 드라마에서 주된 내용을 이루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는, 특히 대중문화는 고정적이지 않다. 언제나 경험하는 것과 재현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는 법이고, 이로 인해 동일한 형식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판이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추노>의 문제성은 보수적 형식에 담긴 '계급투쟁'이란 내용에 있다는 것. 일반 대중이 그렇게 보거나 말거나와 무관하게 그것이 말하자면 그 드라마의 진리내용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비가시적인 정치'를 찾아내는 것이 그가 말하는 '인문좌파의 임무'가 아닌가라고 나대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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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3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3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민주주의론

격주간 기획회의(269호)에 실은 인문분야 전문가 리뷰를 옮겨놓는다. 가라타니 고진의 대담집 <정치를 말하다>(도서출판b, 2010)를 다루고 있다.  

기획회의(10. 04. 05) 가라타니 고진 다시 읽기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비평가이자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을 소개하는 문구이다. <정치를 말하다>는 이 걸출한 비평가이자 사상가의 궤적을 한 눈에 일별하도록 해주는 대담집이다. 대담이라는 형식의 성격상 ‘대중적’이지만 그렇다고 얄팍하지는 않다. 가라타니를 전문적으로 소개해온 역자에 따르면, 고등학생까지 독자로 염두에 두고 쓰인 <세계공화국으로>(도서출판b, 2007)의 자매편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나는 가라타니 고진 ‘다시 읽기’의 매뉴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일본근대문학의 기원>(민음사, 1997)이 얼마전 개정 정본판의 새 번역으로 다시 출간됐기에 ‘다시 읽기’의 명분은 충분하다. 가라타니 고진 수용에도 하나의 ‘사이클’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가라타니를 다시 읽기 위한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본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이 아니라 <탐구>(새물결, 1998) 연작을 통해서 가라타니 고진에 ‘입문’했다. 1980년대 중반의 저작이며 대략 그 이후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에 이르는 ‘중년 가라타니’의 행적과 이론적 모색에 대해서는 어림하는 편이다. 그래서 <정치를 말하다>를 읽으면서 나의 관심은 우선 ‘청년 가라타니’를 향했다. 이 대담은 ‘청년 가라타니’에게서 핵심적인 사항이 ‘1960년과 1968년의 차이’라고 말해준다. 이것이 첫 번째 포인트다

1960년대에 대학에 입학한 가라타니는 자신을 ‘안보세대’라고 부른다. 안보투쟁 세대라는 뜻인데, 안보투쟁은 1960년 일본이 미국주도의 냉전에 가담하는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을 강행하자 이에 반대하여 일어난 대학생․시민주도의 대규모 평화운동을 가리킨다. 일본에서는 1968년에도 전공투(전학공통회의) 중심의 대규모 학생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주도한 세대는 ‘전공투세대’라고 한다. 넓게 보아 두 세대를 모두 ‘1960년대인’이라고 지칭할 수 있겠지만, 가라타니 자신은 ‘전공투세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왜 그런가? 두 세대 간에는 차이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라타니의 분석에 따르면, 유럽, 특히 프랑스의 ‘68혁명’에서 학생운동은 노동조합이나 공산당과 대등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경우에 68년 시점에서 이미 공산당은 권위가 없었고 노동운동, 농민운동은 쇠퇴해 있었다. 가라타니도 참여한 1960년 안보투쟁에는 모든 계층과 세대가 참가했지만, 1968년의 전공투는 학생 중심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의 ‘68년’과 닮은 것은 오히려 일본의 ‘60년’이라는 것이다. 물론 제도권 공산당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신좌익운동이 등장하는 것은 전세계적 추세였지만, 일본의 경우엔 일본 공산당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유럽보다도 일찍 그런 일이 벌어졌다.  

흥미로운 건 1960년에 한국에서는 4.19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물론 4.19는 신좌익운동과는 무관하게 한국사적 맥락에 기초한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당시 한국의 학생운동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1960년은 말하자면 서양과 한국의 중간에 있습니다”는 것이 가라타니의 분석이다. 그가 보기에, 구미 선진국의 첨단적 문제와 함께 후진국이나 아시아가 갖고 있던 고유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 1960년의 일본이었다. 가라타니는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60년’에서 생각하는 쪽이 ‘68년’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좀더 글로벌한 문제를 사고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세대론과 국지적 관점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보편적 관점을 지향해온 그의 사상 편력 자체가 바로 ‘60년’ 시점의 강점을 입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가라타니가 강조하는 것은 세대론이 아니라 인식론이며, 역설적이지만 그 인식론의 배경에는 그가 ‘60년’의 인간이라는 사실이 놓여 있다. 그리고 이 점이 그가 특권적인 입각점에서 사고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1968년에서 70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전공투세대 사람들에게는 처음 겪는 것이었지만, 1960-61년에 그러한 일을 이미 겪은 가라타니에겐 두 번째 경험이었고 그는 이후에 다른 경로를 선택한다. 경제학을 전공하던 그가 문학으로 관심을 옮기고, 동시에 마르크스가 ‘엉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업신여기게 된 시점에서 진지하게 마르크스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마르크스를 읽는 것, 그것도 <자본론>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문학비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비평관이 오늘날의 가라타니를 만든 독자적인 관점이다.    

가라타니를 읽기 위한 두 번째 포인트는 그의 도미(渡美) 체험이다. 1975년에 그는 미국 예일대학의 객원교수로서 일본근대문학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쓰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이기도 하지만, 그가 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벨기에 출신의 저명한 문학비평가로서 예일대학 비교문학과에 재직하고 있던 폴 드 만 과의 만남이다. “드 만과 만나서 좋았던 것은 그로부터 뭔가를 배워서가 아닙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과 처음으로 만났던 것입니다.”라고 가라타니는 고백한다. 가라타니의 <자본론> 독해인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 대해 칭찬하고 격려해준 인물이 바로 드 만이었다. 이를 계기로 가라타니는 화폐 및 자본의 문제를 언어학이론과 수학기초론을 도입하여 사고하고자 시도하며 이러한 작업을 그는 “드 만에게 보이기 위해” 썼다. 일본의 한 ‘문예비평가’가 ‘이론가’로서 재탄생하게 된 시점이 그래서 1975년이다.     

그리고 세 번째 포인트는 이론적 교착상태에 있던 가라타니가 마침내 ‘돌파’를 이루게 되는 1998년이다. 칸트에 대한 다시 읽기를 통해서 ‘구성적 이념’과 ‘규제적 이념’의 차이를 도입한 그는 코뮤니즘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이 유행이 된 시기에 코뮤니즘의 형이상학을 재건하고자 시도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문제를 재구성하며 ‘자본=네이션=국가’라는 관점을 획득하게 된다. 국가나 네이션을 상품교환과는 다른 교환양식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는 것이 요점이다. 마르크스가 생산양식의 관점에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사고했다면, 가라타니는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을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재고한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노동자가 가장 약한 입장인 생산지점만이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소비자 운동과 협동조합, 지역통화 운동 등이 가라타니만의 고유한 착상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자부대로 거기에 이론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가라타니의 독창적인 기여다. 그러한 맥락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를 말하다>는 가라타니 고진 입문서로 최적이다.  

10. 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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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4-12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라타니 고진의 책만 봤지 정작 고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는데...
고맙습니다.

로쟈 2010-04-12 21:38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평이한 책이어서 고진의 독자라면 챙겨둘 만합니다...

yoonta 2010-04-13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대로 "고진입문서로는 최적"이더군요. 그의 사상의 대략에 대해서 이보다 더 잘 "일별"해 주는 책도 없다 싶은 책입니다. 저도 "탐구"를 통해서 고진에 입문?했다고 할수있는데 로쟈님과 공동점하나를 발견했군요. ㅎㅎ

책에 나와있는 고진의 행보에서 한가지 아쉽다고 해야 할까했던 부분이 자신이 수학기초론과 관련해서 자본론을 독해하려고 했던 시도의 실패입니다. 물론 나중에 칸트와 교환양식을 통한 '시차적 관점'의 발견도 충분히 독창적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좀더 개진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해버린 수학기초론으로 보는 자본론도 매우 흥미로왔을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지요. <은유로서의 건축>이라는 책을 보면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유의 단초를 제시하려다가 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결국은 그의 "이론적 교착상태"때문이었다라는걸 이책을 보고 알게 되었네요.

로쟈 2010-04-14 00:19   좋아요 0 | URL
여전히 수학쪽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바디우도 읽으시나요?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이경민의 <제국의 렌즈>(산책자, 2010)에 대한 것이다. 저자의 전작인 <경성, 사진에 박히다>(산책자, 2008)이 사진으로 보는 '근대 문화사'라면, 이번에 나온 신작은 사진으로 보는 '탈식민주의 정치학'이라 부를 만하다. 이미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은 책이어서 따로 리뷰거리를 골라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한겨레21(10. 04. 19) 그들이 편집한 한국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이미지는 어쩌면 사진이 만들어낸 표상 효과일지도 모른다.” 근대 사진에 투영된 ‘재현의 정치학’을 살피는 <제국의 렌즈>(산책자 펴냄)의 문제의식이다. ‘서양의 동양에 대한 지식 체계 또는 표상 방식’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정의한다면, 근대적 학문체계가 수립되는 시기에 발명된 사진술이야말로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유력한 수단일 것이다. 독일어로 ‘앞에 세움’(Vorstellung)이란 뜻을 가진 ‘표상’ 혹은 ‘재현’의 가장 대표적인 매체가 사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대의 사진 아카이브가 근대 학문과 마찬가지로 지배 권력의 통제 기술로 활용돼왔다고 지적한다. 누가 사진기 앞에 세워지며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가란 문제에 유의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의 근대를 바라볼 때 안타까운 일은 우리 스스로 재현의 주체가 되지 못한 시대였다는 점이다. 일본과 서양이라는 타자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 가지 사례를 따라가 본다.   

먼저, 사진술에 늦게 접한 탓에 일본인 사진사 무라카미 텐신을 촉탁사진사로 고용해야 했던 조선은 황실의 이미지메이킹을 조선 통감으로 부임해온 이토 히로부미에게 내맡긴 형국이었다. 사진의 표상 효과에 일찍 눈뜬 이토는 조선 책략의 의도를 담아낼 수 있는 표상을 무라카미에게 주문했다. 1907년 일본 황태자의 한국 방문 기념사진은 그러한 표상의 일례다. 화면의 중심에 팔을 허리에 올리고 발뒤꿈치를 약간 벌린 황태자 요시히토를 세워놓음으로써 부동자세로 찍은 순종과 영친왕보다 그가 더 당당하고 권위 있는 모습으로 보이도록 연출하는 식이다. 1909년 조선에서는 전례가 없던 순종 황제의 남도(南道) 순행도 모두 이토에 의해서 기획된 시각적 스펙터클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각적 표상화는 명백한 정치적 의도 하에 대한제국의 재현 체계가 일제의 재현체계 안에 포섭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일본 인류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도리이 류조의 조선조사 사진들은 사진이라는 ‘재현의 창’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도리이가 형질인류학적 맥락에서 촬영한 신체 측정 사진들은 조선인을 ‘조선 인종’으로 호명하고 조선반도의 ‘원주민’으로 표상했다. 그의 인류학적 사진 속에서 조선인의 ‘몸’은 일본민족의 인종적 우월성과 대비되는 한 원시성과 야만성, 전근대성과 반문명성의 몸이었다. 그는 함경북도에서 제주도, 그리고 울릉도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전역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조선인 모습을 사진에 담았지만 그가 본 조선은 제국주의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이었다. 비록 일본 학계가 최근에 와서 근대를 표상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하고는 있지만 제국주의시대에 식민지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사진에 숨긴 이데올로기를 읽어내는 데는 인색하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조선을 대상화한 타자의 시선은 물론 일본만의 것이 아니었다. 1892-94년까지 부임했던 프랑스의 외교관 이폴리트 프랑댕은 사진 150점이 부착된 두 권의 사진첩을 남겼는데, 그가 보기에 한국은 무엇보다도 ‘진흙과 새끼줄의 나라’였다. 한국의 ‘원시적’ 건축술을 프랑스와 비교한 그는 인종과 풍속, 문화 모든 방면에서 문명과 야만의 잣대를 가지고 한국을 폄하했다. 한국의 의식주에서 불결함은 고질적이고, 남녀의 복식은 야만스러움과 기괴스러움 자체라는 것이 그의 평가였다. 이러한 관점에서라면, 최고선으로서 문명화를 위한 서구의 지배는 불가피한 숙명으로 간주된다.  

문제는 이렇듯 타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담론과 이미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의 정체성으로 ‘재표상’된다는 점이다. 곧 우리가 보는 한국은 ‘그들’이 ‘편집’하고 ‘마사지’한 한국인 셈이다. 한일병합 100년을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재현의 정치학을 음미해야 하는 이유다. 

10. 04. 12.   

P.S. 책을 읽으며 관심을 갖게 된 건 우리보다 한발 앞선 일본의 '재현의 정치학'이다. 메이지 천황의 어진영부터가 활용대상이 되는데, 이에 대한 책들이 번역돼 있다. 타키 고지의 <천황의 초상>(소명출판, 2007)은 <제국의 렌즈>에서도 언급되고 있으며, 그밖에 와카쿠와 미도리의 <황후의 초상>(소명출판, 2007)과 가와무라 구니미쓰의 <성전의 아이코노그래피 - 천황과 병사, 그리고 전사자의 초상과 표상>(제이앤씨, 2009)도 이 분야의 참고할 만한 책이다. 여기서도 '일본이라는 방법', 곧 '편집공학'을 떠올리게 된다. 요컨대 '문화학'을 '표상문화론'으로, '역사학'을 '역사정보론'으로 파악하는 것이 일본식이고 일본이라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방법이야 요즘에서는 PR과 광고마케팅의 '기본'이 돼 있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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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모드에 빠져 있다가 조금 기운을 내 히로세 다카시의 <제1권력>(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을 펼쳤다. 화급한 일이 너무 많다 보면 자포자기가 돼 오히려 여유가 생긴다. 저자는 서장에서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추리소설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 얘기를 꺼내는데, 기억엔 초등학교 때 읽은 듯하다(그러니 30년 여년 전이다!). 내가 갖고 있는 건 펭귄클래식으로 새로 나온 <바스커빌 가문의 개>(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해설에 따르면, "여러 측면에서 <바스커빌 가문의 개>는 진정한 네오고딕 양식의 탐정소설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공포영화로 만든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고, 모든 홈즈 소설 가운데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것이다." 흠,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하군.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 반장 겸 독서부장을 하면서 학급문고로 읽은, 나폴레옹 솔로 주인공의 첩보소설들도 잠시 떠올렸다. 원작자가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 읽으면 얼추 상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JP 모건이 미국 남북전쟁 때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읽다가(북군에게 총을 사들였다가 6배의 가격으로 되팔았다. "한마디로 영약하기 짝이 없는 사기꾼 일당"이었다)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인물과사상사, 2010)에는 어떻게 나오나 살펴봤다. 3권 '남북전쟁과 제국의 탄생'에 잠깐 이름이 비치는데, 론 처너의 책 <모건가>(1990)을 인용하고 있다(참고문헌에 서지가 빠져 있다. <금융제국 JP 모건>(플래닛, 2007)으로 번역된 책이다). 존 피어폰트 모건(1837-1913)에 대한 얘기다.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은, 그는 남북전쟁을 봉사의 기회가 아닌 돈벌이의 기회로 삼았다는 것이다... 여느 유복한 집안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이 피어폰트도 게티즈버그전투 이후 징집되었으나 300달러를 주고 자신의 대역을 고용했다. 불공정한 이 일상적 관행은 1853년 7월에 일어난 징집폭동의 원인이 되었다."

징집폭동이란 링컨의 징집정책에 반대하여 일어난 대규모 항의시위가 일부 지역에서 폭동으로 전화된 걸 말한다. 또 한 대목은 허버트 스펜서와 윌리엄 섬너의 사회진화론의 유행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1870년대로 접어들면서 영국에서는 스펜서의 학설이 내리막길에 서게 됐지만 미국에서는 크게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1860년에서 1900년까지 50만권 가량이 팔려나갔는데, 요즘 기준으론 수백만 권에 해당한다고. 이유는 짐작대로, 부자들이나 부자 지망생들에게 어필했기 때문("부자 되세요!"가 인사말인 사회에서 스펜서나 섬너의 책이 소개되지 않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이미 체화하고 있기 때문일까?). 

"존 D. 록펠러나 J.P. 모건 등과 같은 거대 부자들이 '가난에서 부유함으로(from rags to riches)'의 본보기로 부각되면서 빈곤은 가난한 사람들의 결함 때문이라는 사상이 풍미했다."

'미국의 스펜서'라고도 불렸다는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1840-1910)는 어떤 인물인가?  

엄격한 청교도인 섬너는 2년간 미국 성공회의 목사로 목회를 한 뒤 1872년 예일대 정치학 및 사회과학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대표작으로는 <사회계급들이 서로에게 빚지고 있는 것>(1883), <사회적 관행>(1906) 등이 있다.

당면한 사회문제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거나 과학적인 방법으로 진보를 이룩할 수 없다고 믿었다는 섬너의 주장을 강준만 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특별한 창조라고 하는 종교적 교리를 포기하면서 확신에 찬 진화론자가 된 섬너는 노골적인 '부자옹호론'을 폈다. 그는 "백만장자는 자연도태의 산물"이며, 그들은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선정된 사회의  대행자로 보는 것이 마땅하며, 그들의 존재는 사회적으로도 이로운 것이라고 단언했다.

보수적 자유주의자로도 분류되는 섬너에게 사회적 약자의 고통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걸로 간주된다.  

"인간의 삶에 따르는 고통은 자연의 본성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과의 투쟁을 통해서 생존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떤 고통을 받는다 해서 그것을 이웃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자유로운 국가에서는 누구도 남에게 도움을 청할 권리가 없고 또 어느 누구도 타인을 도와야 할 부담을 지지 않는다."

몰인정한가? 하지만 더 나쁜 사회는 자연적인 경쟁을 독려하는 사회가 아니라 '강자' 혹은 '부자'를 일방적으로 보호하는 사회다. <미국인의 역사>(비봉출판사, 1998)의 저자 앤디 브링클리의 지적이다.  

"사회적 진화론은 대기업 중심 경제현실과 많은 관련이 있는 이념은 아니었다. 동시에 기업가들은 경쟁과 자유시장의 덕목을 찬양하면서, 자신들을 경쟁에서 보호하고 시장의 자연적 기능을 자신들의 거대한 기업연합의 통제로 대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스펜서와 섬너가 찬양하고 건전한 진보의 근원이라 불렸던 사악할 정도로 투쟁적인 경쟁은 사실 미국 기업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면서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권용립 교수에 따르면, 섬너의 사회진화론은 '개인 책임주의'를 역설한 것으로 그는 '자연적 독점'에는 찬성했지만 보호관세나 제국주의 정책 같은 '인위적 독점'에는 반대했다. 보수적 자유주의자인 그가 '반제국주의 운동가'이기도 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사회진화론의 양면성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사회진화론은 쇠퇴했는가? 경제학자 갤브레이스의 대답은 다르다. "아무도 스펜서나 섬너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아직도 부자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 거지에게 자선을 베푸는 행위를 억제시키고 있다."(<불확실성의 시대>)  

이런 정도까지 읽고 윌리엄 섬너를 검색해보다가 관련 신간이 나온 걸 알게 됐다. 미국 대공황기의 역사를 다시 짚어본 애미티 슐래스의 <잊혀진 사람>(리더스북, 2010)이다. 뉴딜 정책의 허와 실을 분석하고 있는 책으로 비판의 요지는 이렇다.   

당시 뉴딜 추진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 대신 '유익한 손'을 옹호했다는게 저자의 시각이다. 자유주의 경제를 비도덕적으로 여기며 유권자를 중요시하는 경제정책을 펼쳤다는 것. 소련의 집산주의 모델에서 영향을 받은 전국부흥청이나 테네시계곡개발공사(TVA) 등 규제·원조·구호 기관을 통한 대규모 프로젝트는 미국경제에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했다고 본다.

일부 정책들은 경제에 활력을 넣으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내기도 했지만 거기에 투입된 정부 지출을 감안할 때 완벽하게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경제 회복에 기여하는 민간 부문의 활동을 억누르는 다양한 제도와 계속되는 세금신설로 기업을 압박했고 기업 활동은 더 위축됐다. 결국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한 뉴딜 정책이 대공황을 더 깊고 오래 유지시키는 데 일조한 셈이라는게 저자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뉴딜 시대의 희생양은 누구인가. 저자는 당시 앨런 그린스펀 격인 앤드루 멜런을 거론한다. 그는 하딩과 쿨리지 및 후버 정권에서 재무장관을 지내며 시장주의를 고수했지만 정부는 그를 기소했다. 또 뉴딜 담당자들이 대폭락의 책임을 전가한 유틸리티 업계의 거물 새뮤얼 인설, TVA의 전력산업 국유화에 대항했던 민간회사 커먼웰스앤드서던의 웬델 윌키 등도 희생양으로 거론한다.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던 시기에 정부정책으로 어린 가축까지 죽여야 했던 농민, 양계업자 등 유명무명의 사람들도 예로 든다. 저자는 이들을 '잊혀진 사람'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거시경제적 집단들 틈에 끼여 잊혀져 버린 미시경제적 주체'라고 설명한다.

대공황이 시작되기 50여년 전인 1883년.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 예일대 교수는 '잊혀진 사람(The Forgotten Man)'이라는 논문을 통해 정부정책이 평범한 시민들에게 사회적 프로젝트의 비용을 부담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책의 제목 '잊혀진 사람'은 여기서 나왔다.(한국일보, 오미환기자)

 

하여, 예기치 않게도 오늘의 인물은 윌리엄 섬너, 오늘의 상식용어는 '잊혀진 사람'이 됐다. 다시 <제1권력>으로 돌아가거나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다시 읽거나, 바우만의 <액체근대>를 읽어야겠다. 아니 그보다 더 급한 일들을 빨리 처리해야 할 텐데... 

10. 04. 11.  

P.S. '잊혀진 사람' 대신에 '잊혀진 여인(The Forgotten Woman)'을 따로 고르자면, 히로세 다카시가 헐리우드 영화사의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언급한 '잇걸It Girl' 클라라 보우(1905-1965)다. 무성영화 시대의 대표적인 육체파 배우였다고. 어쩐지 이미지는 낯설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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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4-12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7년인가 2008년 무렵 이상돈(중앙대 법대 교수)이 월간조선에 연재한 글 중에 잊혀진 사람을 꽤 길게 언급하면서 뉴딜을 비판하더군요.정부의 개입을 반대하고 시장과 기업의 자유를 옹호하는 측에서 보는 뉴딜관입니다.물론 좌파들이 뉴딜을 비판하는 것은 각도가 또 다르지요.

로쟈 2010-04-12 17:29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정상적인 보수라면 '4대강'에도 반대해야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입니다. 좌파와는 다른 이유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