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를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아직 원고를 쓸 만한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어서(두뇌상태가 아니어서) 멍한 상태로 기사들을 잠시 훑어봤다. 역시나 '이건희 복귀'가 톱뉴스다. 한국 기자들의 저 풍부한 일거리! '김우룡 실언'에 대한 미디어 평론가의 시론도 읽었는데, 지난번 포스팅에서의 궁금점을 풀어주고 있어서 마저 스크랩해놓는다. 그의 '자폭 인터뷰'의 파장을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 거라는 분석이다. 별천지에 있었던 셈이다...   

경향신문(10. 03. 23) ‘김우룡 실언’의 진실 

‘신동아’ 인터뷰를 통해 MBC 장악 시나리오의 막전막후를 적나라하게 밝힌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사퇴했다. 예상됐던 일이며,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의 사퇴만으로 끝날 일도, 끝낼 일도 아니다.

그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MBC 인사에 권력기관의 개입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큰집’이 ‘조인트’도 까면서 김재철 MBC 사장의 계열사 사장 인사 등에 개입했음을 증언했다. ‘의외의 발언’에 놀란 기자가 “김(재철) 사장이 큰집에 들어갔다 왔느냐”고 확인하자 “밖으로 불러내” 만났다고 구체적인 정황까지 설명했다. 청와대 개입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발언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김재철 사장 선임 때 첫 번째 기준이 ‘말 잘 듣는 사람’이었으며, 김 사장의 주된 역할은 MBC 좌파를 쓸어내는 ‘청소부’ 역할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엄기영 전 사장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쫓아낼 생각이었으며, “2월까지 그만두지 않으면 해임하려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발언이 사실 놀랍거나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YTN과 KBS 사태를 거치면서, 또 MBC 임원진 일괄 사표 소동, 방문진의 일방적인 보도·제작본부장 선임, 그에 따른 엄기영 전 사장 퇴진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추론할 수 있었던 일들이다. 다만 그 구체적인 실상이 김우룡 이사장의 인터뷰를 통해 더욱 적나라하게 확인됐을 뿐이다.

이번 ‘김우룡 인터뷰 파문’에서 가장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바로 이 대목일 것이다. 그는 왜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자폭인터뷰’를 그리 당당히 했던 것일까? 신동아 인터뷰 기사를 보면 그는 이 인터뷰가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침이 없고, 자신감 넘치는 말투였다. 그는 인터뷰가 기사화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기자에게 ‘수위조절’을 부탁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한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는 그가 말한 내용이 이처럼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왜? 그동안 그가 주도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해왔던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MBC 보도본부장과 제작본부장을 방문진이 일방적으로 선임할 수 있다는 생각, 임기가 남은 사장이라도 방문진(권력)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는 생각, 방문진의 역사적 사명은 MBC내 ‘좌파 척결’에 있다는 보수언론의 성화 같은 요구와 응원, 그리고 평소 권력기관과의 기탄 없는 ‘의견 교환’이 일상화돼 있던 환경에서 그의 그런 인터뷰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었다. 일종의 권력중독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방문진의 일부 친여 이사들의 주장과 달리 그의 인터뷰 발언은 결코 실언이 아니다. 방문진 이사장으로서 평소 언행에 비춰 보더라도 그의 발언을 실언으로 볼 이유가 없다. 그런 만큼 그의 발언에 대해서는 명백한 규명이 필요하다. 특히 권력기관의 MBC 인사 개입에 대해서는 국회 차원에서의 국정조사를 통해서라도 그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그의 인터뷰 발언이 있지도 않은 내용을 과장해 말한 ‘실언’이라고 보는 청와대나 여당에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최소한 그것이 자멸에 이르는 ‘권력중독현상’인지, 아니면 ‘자폭적 실언’인지라도 가려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백병규 미디어평론가) 

10.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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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이룰수없는아련한첫사랑- 2010-03-25 10:45   좋아요 0 | URL
그런 모습으로 생각하니 조금 이해(?)가 되군요...우리같은 일반인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어 어찌 그랬을까 답답해 할 수 밖엔 없었던 것도...

comorin 2010-03-25 13:26   좋아요 0 | URL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무의식을 저렇게 순수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어 결국 권좌에서 내려오게 될 것 같습니다.

모자란 2010-03-25 20:23   좋아요 0 | URL
MB정권은 투명하기가 거의 비닐봉다리 수준인 것 같아요. 뭔가 한꺼풀 벗겨볼 필요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 그대로...이니 -_-;;

쉽싸리 2010-03-26 08:53   좋아요 0 | URL
그런데 동아일보는 또 뭔가요? 그들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을까요?
상상 초월의 시대입니다.

루체오페르 2010-03-26 15:42   좋아요 0 | URL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인터뷰 받은 사람은 그렇다쳐도 편집이란 필터링이 남아있는데 왜 신동아에선 그대로 내보냈을까요? 음...

comorin 2010-03-26 15:46   좋아요 0 | URL
동아일보와 신동아는 같은 계열회사이긴 하지만, 조금 논지가 다르다고 합니다. 오히려 동아보다 신동아가 그나마 조금 사실을 보도한다고도 하더군요.

돈케빈 2010-03-26 19:00   좋아요 0 | URL
신동아는 동아의 의외일 때를 종종 볼 수가 있죠!

로쟈 2010-03-26 22:44   좋아요 0 | URL
종편 집입을 놓고는 조선, 중앙과 경쟁관계에 있는 동아가 나름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걸로 해석하더군요...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에서 진행하는 '고전, 영화로 읽다' 강좌에 대한 안내이다. 러시아문학과 영화에 대한 강의를 한 꼭지 섭외받고 정한 것이 <안나 카레니나>인데, 하자센터에서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안나 카레니나>(1935)를 감상작품으로 골랐다(러시아판 <안나 카레니나>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의는 4월 10일부터 9주간 진행되며,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강의와 감상은 5월 15일에 예정돼 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 강의 개요 

강의명 : 고전, 영화로 읽다
시간 : 매주 토요일 15:00 ~ 19:00
기간 : 2010년 4월 10일 부터 6월 5일까지 총 9회
장소 :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2층 999클럽, 203호
대상 : 고등학생 이상의 일반인
모집인원 : 50명
수강료 : 8만원
대표메일 : nivriti@naver.com

▶ 강의 일정 

1강 (4월 10일)|죽음의 운명을 수용하라
호메로스『일리아스』,기원 전 8세기 경 / 로버트 와이즈 감독 <트로이의 헬렌>,1956
강사 : 강대진(고전문헌학자), 정암학당 연구원,『고전은 서사시다』,『잔혹한 책 읽기』,『신화와 영화』등

2강 (4월 17일)|영화로 읽는 카프카의 문학
프란츠 카프카『성(城)』,1926 /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카프카>,1991
강사 : 김진영(철학자),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 미학을 전공.

3강 (4월 24일)|당통과 로베스피에르
게오르그 뷔히너『당통의 죽음』,1835 / 안제이 바이다 감독 <당통>,1982
강사 : 장정일(소설가), 시집『햄버거에 대한 명상』,희곡『고르비 전당포』,소설『보트하우스』등

4강 (5월 1일)|고전, 깊은 강에 몸 담기 
혼란과 음울 / 데이비드 린치 감독 <블루 벨벳>,1986
강사 : 김성태(영화학자), 파리 3대학 영화학 박사,『영화,존재의 이해를 위하여』,공저『세계영화사 강의』등

5강 (5월 8일)|영화로 번역하는 소설
코맥 매카시『로드』,2006 / 존 힐코트 감독 <더 로드>,2009
강사 : 정영목(전문번역가),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겸임 교수, 옮긴 책으로 『책도둑』,『맛』,『불안』,『지젝, 레닌을 만나다』,『눈먼 자들의 도시』,『 융-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로드』등 


 
6강 (5월 15일)|열정의 논리와 삶의 윤리
톨스토이『안나 카레니나』,1877 / 클라렌스 브라운 감독 <안나 카레니나>,1935
강사 : 이현우(인문학자),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박사, 한림대학교 연구교수,『로쟈의 인문학 서재』등

7강 (5월 22일)|초인이 되기 위한 감성의 스파르타 훈련
프리드리히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1 / 프랭크 다라몬트 감독 <쇼생크 탈출>, 1994
강사 : 정여울(문학평론가),『미디어 아라크네』,『모바일 오디세이』,『시네필 다이어리』등

8강 (5월 29일)|삶과 죽음의 이어짐
가와바타 야스나리『산소리』,1954 / 나루세 미키오 감독 <산의 소리>,1954
강사 : 이연호(영화평론가), 전 KINO 편집장, 영상원 강사,『전설의 낙인』등

9강 (6월 5일)|타자 지향의 욕망
요한 볼프강 폰 괴테『파우스트』,1831 /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The Fly>,1986
강사 : 이창익(종교학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한신대 강사,『종교와 스포츠』등   

10.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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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로 읽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7-30 01:37 
    엊저녁에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한 5주간의 '도스토예프스키 깊이 읽기' 강좌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기'로 마무리됐다. 수강생 몇 분과 간단하게 뒷풀이자리를 가졌는데, 차후 강의 일정을 물어오시는 분들이 계셔서 9월 강의 일정이긴 하지만 미리 올려놓는다. 지난 봄 '고전, 영화로 읽다' 강좌의 속편 격인데, 도서관에서 또 한번 영화로 고전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지난번에 다룬 톨스토이의 &l
 
 
다크아이즈 2010-03-25 00:25   좋아요 0 | URL
네,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니 로쟈님 말씀대로 <참고>나 하는 처지네요. 제목이 너무 인문학적이군요. 좀 호리낭창한 낭만적 접근도 괜찮을 것 같은데 ㅎㅎ

로쟈 2010-03-25 09:15   좋아요 0 | URL
기획자가 정한 <안나 카레니나> 꼭지 제목은 '지금의 나는 진짜인가?'였어요.^^

2010-03-25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5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러시아문학을 전공한다지만, 러시아 아동문학에 대해서 내가 아는 바는 거의 없다. '러시아 아동문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는 코르네이 추콥스키(1882-1969)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아, 시인 알렉산드르 블록에 대한 책은 읽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그의 동화집이 번역되고 있다니 반갑다(그는 동화작가이면서 시인, 역사학자, 언어학자, 번역가이기도 했다). 아직 어린 조카들에게는 용도가 닿을지 모르겠다.  

  

일단 그의 동화론으로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양철북, 2006)가 출간돼 있다(영역본도 있다). 소개를 보면, "코르네이 추콥스키가 40년 동안 수집하고 채록한 아이들의 말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저자는 아이들이 쉴새없이 뱉어내는 말을 조사하고 연구해서 어떤 아동학자나 심리학자들도 접근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생각에 대한 여러 가지 규칙을 발견했다."고 돼 있다.   

물론 아이들을 읽을 책이 아니라 부모나 유치원 교사, 동화작가들이 참조해볼 만한 책이겠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집으론 두 권이 출간됐다. <악어>(양철북, 2009)와 <강도 바르말레이>(양철북, 2009)가 그것인데, 계속 더 나오는 듯싶다.

 

러시아판을 찾아보니 15권짜리 전집 가운데 첫 권이 '아이들을 위한 창작'으로 돼 있고, 600쪽 분량이다.    

 

영어로 번역된 책들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추콥스키의 일기다. 무려 69년간 쓴 일기. 저명한 러시아문학자 빅토르 어얼리치가 편집자다. 이건 한번 구해봐야겠다...

 

10. 03. 22. 

P.S. 아래는 러시아어판 <강도 바르말레이>의 표지다. 짐작대로 애니메이션 버전도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XJqAMtyv4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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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jjismy의 생각
    from jjjismy's me2DAY 2010-03-22 23:31 
    코르네이 추콥스키가 40년 동안 수집하고 채록한 아이들의 말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저자는 아이들이 쉴새없이 뱉어내는 말을 조사하고 연구해서 어떤 아동학자나 심리학자들도 접근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생각에 대한 여러 가지 규칙을 발견했다.
  2.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0-04-13 16:58 
    [책]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 코르네이 추콥스키가 40년 동안 수집하고 채록한 아이들의 말에 대한 기록 (via @julymon)
 
 
igor5474 2010-03-23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동문학에 대해서 잘 모르면 함부로 서평 쓰지 마세요!
아동문학에서는 올바른 한글이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이오덕 선생이 얘기한 올바른 한글!
아동문학을 함부로 건드려서 대중들을 현혹하지 마세요!
 

계절을 거슬러가는 듯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 영향도 없진 않을 듯싶은데, 내내 무기력이다. 그래서 할일을 못하고, 할일을 못하니 다시 무력감에 빠진다. '자서전' 원고도 또 미루고, 담당 편집자와 통화한 후에 일기를 다시 뒤적여봤다. 내나 책 얘기들뿐이다. 10년 전 기록의 한 토막을 옮겨놓는다. 일기란 10년 후에 읽기 위해서 쓰는 것 같기도 하다...    

00. 03. 23. 
종로에 나가 교보에도 들르고 영풍에도 들렀다. 영풍에서 모처럼 큰맘 먹고 원서를 샀다.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대한 지상 심포지엄이 <Ghostly Demarcations(마르크스주의와 해체)>란 제목으로 나왔다. 3만 3천 몇 백원을 주고 샀다. 학교에서는 <공산주의 이후의 루카치>와 랑쿠르-라페리에르의 <러시아의 노예혼>을 대출했다. 후자는 도서관의 러시아 역사 파트에서 우연히 찾아낸 책이다. 마조히즘을 키워드로 하여 러시아문학과 문화를 분석한다. 저자는 드물게도 꾸준히 정신분석학을 러시아 문학에 적용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런저런 참고문헌을 쉽게 얻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공부의 가장 큰 장애란 바로 자료의 문제라는 게 서글프면서도 엄연한 현실이다. 러시아 역사쪽에 꽤 읽을 만한 책들이 있다. 러시아문학 입문서를 구상중인지라 관심이 간다. 나이를 덜 먹은 것도 아닌데, 언제쯤 만족할 만한 책을 쓸 수 있을는지...   

 

민음사에서 <철학과 문학의 만남>이란 표제의 책이 나왔지만, 당장 손에 들지는 않았다. 동문선에서 나온 부르디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서관에서 대출한 키에르케고르의 <그리스도교의 훈련>(영역본)도 꽤 두꺼운 분량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도서관과 서점에서 뒤졌지만, 내가 원하는 부분의 번역을 구할 수 없었다. 종로서적에 가봐야 했을까? 아무튼 읽을 건 차고 넘친다. 반쯤은 자포자기해도 될 만큼. 그런데 왜 욕심은 버려지지 않는 것인지?...   

00. 03. 24.
종로서적에 갔었는데, 키에르케고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비롯해서 찾는 책 모두가 절판이고 품절이었다. 하긴 요즘에 누가 키에르케고르를 찾을 것이며, 베르자예프를 읽을 것인가. 대신에 표재명 교수가 번역한 <들의 백합, 공중의 새>(21세기선교출판사)와 황동규의 신작시집 <버클리풍의 사랑노래>를 들고 왔다. 시집은 매달 한 권 정도의 구매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내일은 학교 도서관에서 강의자료를 복사하고, 국립도서관에도 가볼 작정이다. 도스토예프스키 관련자료들을 복사하기 위해서다. 외대나 고대 도서관에도 시간을 내서 가봐야겠는데, 국내에서 자료를 구하는 일도 그렇게 쉬워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일이다. 그게 공부보다 더 큰 일이라는 게 우리 학문의 현주소인 듯하여 씁쓸하다. 학문후속세대의 연구환경 보장, 즉 생계보장과 함께, 연구자료와 정보의 민주적 공유는 학문의 사활이 걸린 2대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포지올리의 <불사조와 거미(The Phoenix and the Spider)>에서 '러시아 리얼리즘의 전통'이란 글을 읽는다. 다소 오래된 글이긴 하나, 몇 가지 시사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다. 푸슈킨, 고골 두 작가와 리얼리즘 작가들 사이의 연속성보다는 단절성에 대한 주목이 그것이다. 그리고 체홉의 말.  

“나의 목적은 돌멩이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는 것이다. 즉 삶의 진실한 측면들을 묘사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삶이 이상적인 삶에 얼마나 못 미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아, 나의 현재는 이상적인 삶에 얼마나 못 미치고 있는 것인지!.. 

10. 0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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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3 0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5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phie 2010-03-23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이 너무 많은신거에요. 앞으로 계속 바쁘실 것 같으니까 잘라낼 건 잘라내시고 비서 하나 두시지요.^^ 건강에 각별히 신경쓰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요즘은 매실청으로 따뜻한 차를 타 드셔도 좋고 홍삼도 액체가 아니라 정제로 나와서 먹기가 간편하답니다. 몸짱은 아니라도 좋아하시는 운동 하나 정해서 계속 하시구요. 이상은 담임선생님의 훈화말씀이었습니다.

로쟈 2010-03-25 09:18   좋아요 0 | URL
네, 잘 새겨듣겠습니다. 홍상도 선물받은 게 있어서 먹고는 있습니다. 운동은 '먼나라' 일이지만요.^^;

비로그인 2010-03-24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련(과거지향)과 동경(미래지향) 사이, 젊은 로쟈님이 서성이셨네요(지금도 젊으신 것 같지만^^).

로쟈 2010-03-25 09:18   좋아요 0 | URL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들이예요. 20대초반도 그렇고...
 

주말에 북리뷰를 챙겨놓으려다가 그만둔 책은 레베카 크누스의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알마, 2010)이다. '책 학살'을 다룬 또 다른 책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아서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이 책에 대한 소개기사만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10. 03. 20) 책, 이데올로기의 칼을 맞다

2008년 7월 한국 사회는 ‘국방부 불온서적’ 문제로 잠시 떠들썩했다. 당시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세계적 석학 노엄 촘스키의 저서를 비롯, 23종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정하고 “군부대 내에 무단 반입된 불온서적을 적극 수거하라.”고 지시했다. 불온서적이 “장병의 정신전력에 저해요소가 된다.”는 이유였다.  
 
●나치, 도서관 책도 대량학살
이 사건은 불온서적들이 오히려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희극적인 결말로 끝이 났지만,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히 행해진 책에 대한 탄압이라는 점에서 결코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신간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알마 펴냄)를 펴낸 레베카 크누스 하와이대학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봤다면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21세기 책학살”이라고 욕했을 것이다.

크누스 교수는 책에 대한 탄압이 “한 집단의 역사적 연속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말살하는 행위”라고 본다. 그말대로라면 국방부 불온서적 사건은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북한찬양 정서 등을 가진 집단의 정체성을 국가적으로 말살”하려는 섬뜩한 시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국방부 불온서적 사건은 크누스 교수가 ‘… 책을 학살하다’에서 보여주는 20세기 역사 속 책 학살에 견주면 ‘귀엽게 봐줄 만한 해프닝’이다. “책을 파괴해 정체성을 말살하자.”는 야만적인 기획은 똑같지만, 크누스 교수가 소개하는 책학살은 그 규모가 훨씬 크고 결과 역시 더 비참하다. 오죽하면 집단학살(genocide), 문화학살(ethnocide)과 비슷한 맥락으로 ‘책학살(libiricide)’이라는 조어를 썼겠는가. 거기다 크누스 교수가 소개하는 책학살들은 대부분 집단학살이나 문화학살이 함께 자행된 것들이라 서글픈 느낌을 더한다.

대표적인 예가 나치의 책학살. 집단학살이란 대범죄를 저지른 독일 나치는 책학살 분야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1930년대 정권을 잡은 나치는 독일 내 도서관에서 없애야 할 책의 ‘블랙리스트’와 갖춰야 할 책의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체검열을 통해 전체 도서의 76%를 스스로 불태워 버렸다. 또 전쟁 중에는 영국 내 50여개 도서관을 폭격해 2000만권의 책을 없앴고, 폴란드에서는 학교와 공공도서관 장서 90%가량을 파괴했다.

●독재보다 잔인한 이데올로기 
이유는 간단했다. 적국의 경제 생산을 마비시키기 위해 공장을 폭격하듯, 문화 생산을 중지시키기 위해 책을 파괴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치는 끔찍한 인종말살의 전초전 또는 후환을 말끔히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파괴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는 주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거나 독재자의 힘의 표현에 그쳤다면, 20세기 책학살은 이데올로기의 옷을 입고 합법성과 사회적 승인으로 치장하고 있어 더 잔인하다고 크누스 교수는 봤다. 책은 나치와 함께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발칸반도에서, 이라크가 아랍지역에서, 중국 문화혁명기 홍위병들이 국내와 티베트에서 저지른 잔인한 책학살들을 다룬다. 역사학, 정치학, 심리학, 윤리학, 통신학, 문헌정보학, 국제관계학 등 다양한 분야들을 교차 비교해 자료를 해석했다.(강병철기자) 

10. 03. 22.  

P.S. 지난주에 마땅한 소개기사가 없어서 따로 언급하지 못한 책으론 데이비드 로지의 <소설의 기교>(역락, 2010)와 매튜 키이란의 <예술과 그 가치>(북코리아, 2010)도 있다. 그 자신 소설가이기도 한 문학이론가 로지의 책은 소설의 서두에서 결말까지를 50개 장으로 나누어, 각 주제별로 대가들의 솜씨를 소개하고 분석한다. 직접 소설을 쓰는 작가나 작가지망생들에겐 요긴한 매뉴얼이고, 일반독자들에게도 소설에 대한 안목을 키워줄 수 있는 흥미로운 교본이다. 프랜신 프로즈의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민음사, 2009)와 같이 읽어봄직하다.    

  

<예술과 그 가치(Revealing Art)>는 미학이론서다. "저자 매튜 키이란은 예술이 어떻게 우리를 감동시키는지, 또 어떻게 역겹게 하는지, 예술적 판단은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인지, 그리고 만약 예술이 비도덕적이거나 외설적이라면 검열되어야 하는지 등을 분명하게 질문한다."는 소개대로, 미학 혹은 예술철학의 기본적인 질문들을 다룬다. 개인적으론 영미 예술철학계의 최근 동향이 궁금해서 구매한 책이다. 그러자면 후속작인 듯싶은 <예술과 그 인식(Knowing Art)>도 읽어봐야 하겠지만. 마저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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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이룰수없는아련한첫사랑- 2010-03-23 16:44   좋아요 0 | URL
나치는 음악 분야에도 학살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한 제한을 가했죠...유대인을 포함한, 국민성을 일깨울 수 있는 음악가들을 선정해서 금지 list를 발표하고 활동을 막았었답니다. 어떻게 보면 문화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했던 거겠죠^^ 언론, 정치인 뿐 아니라 문학, 음악, 모든 예술에까지 단속을 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로쟈 2010-03-28 09:46   좋아요 0 | URL
네, 보이지 않는 단도리는 요즘도 작동하는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