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거슬러가는 듯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 영향도 없진 않을 듯싶은데, 내내 무기력이다. 그래서 할일을 못하고, 할일을 못하니 다시 무력감에 빠진다. '자서전' 원고도 또 미루고, 담당 편집자와 통화한 후에 일기를 다시 뒤적여봤다. 내나 책 얘기들뿐이다. 10년 전 기록의 한 토막을 옮겨놓는다. 일기란 10년 후에 읽기 위해서 쓰는 것 같기도 하다...



00. 03. 23.
종로에 나가 교보에도 들르고 영풍에도 들렀다. 영풍에서 모처럼 큰맘 먹고 원서를 샀다.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대한 지상 심포지엄이 <Ghostly Demarcations(마르크스주의와 해체)>란 제목으로 나왔다. 3만 3천 몇 백원을 주고 샀다. 학교에서는 <공산주의 이후의 루카치>와 랑쿠르-라페리에르의 <러시아의 노예혼>을 대출했다. 후자는 도서관의 러시아 역사 파트에서 우연히 찾아낸 책이다. 마조히즘을 키워드로 하여 러시아문학과 문화를 분석한다. 저자는 드물게도 꾸준히 정신분석학을 러시아 문학에 적용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런저런 참고문헌을 쉽게 얻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공부의 가장 큰 장애란 바로 자료의 문제라는 게 서글프면서도 엄연한 현실이다. 러시아 역사쪽에 꽤 읽을 만한 책들이 있다. 러시아문학 입문서를 구상중인지라 관심이 간다. 나이를 덜 먹은 것도 아닌데, 언제쯤 만족할 만한 책을 쓸 수 있을는지...


민음사에서 <철학과 문학의 만남>이란 표제의 책이 나왔지만, 당장 손에 들지는 않았다. 동문선에서 나온 부르디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서관에서 대출한 키에르케고르의 <그리스도교의 훈련>(영역본)도 꽤 두꺼운 분량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도서관과 서점에서 뒤졌지만, 내가 원하는 부분의 번역을 구할 수 없었다. 종로서적에 가봐야 했을까? 아무튼 읽을 건 차고 넘친다. 반쯤은 자포자기해도 될 만큼. 그런데 왜 욕심은 버려지지 않는 것인지?...



00. 03. 24.
종로서적에 갔었는데, 키에르케고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비롯해서 찾는 책 모두가 절판이고 품절이었다. 하긴 요즘에 누가 키에르케고르를 찾을 것이며, 베르자예프를 읽을 것인가. 대신에 표재명 교수가 번역한 <들의 백합, 공중의 새>(21세기선교출판사)와 황동규의 신작시집 <버클리풍의 사랑노래>를 들고 왔다. 시집은 매달 한 권 정도의 구매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내일은 학교 도서관에서 강의자료를 복사하고, 국립도서관에도 가볼 작정이다. 도스토예프스키 관련자료들을 복사하기 위해서다. 외대나 고대 도서관에도 시간을 내서 가봐야겠는데, 국내에서 자료를 구하는 일도 그렇게 쉬워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일이다. 그게 공부보다 더 큰 일이라는 게 우리 학문의 현주소인 듯하여 씁쓸하다. 학문후속세대의 연구환경 보장, 즉 생계보장과 함께, 연구자료와 정보의 민주적 공유는 학문의 사활이 걸린 2대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포지올리의 <불사조와 거미(The Phoenix and the Spider)>에서 '러시아 리얼리즘의 전통'이란 글을 읽는다. 다소 오래된 글이긴 하나, 몇 가지 시사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다. 푸슈킨, 고골 두 작가와 리얼리즘 작가들 사이의 연속성보다는 단절성에 대한 주목이 그것이다. 그리고 체홉의 말.
“나의 목적은 돌멩이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는 것이다. 즉 삶의 진실한 측면들을 묘사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삶이 이상적인 삶에 얼마나 못 미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아, 나의 현재는 이상적인 삶에 얼마나 못 미치고 있는 것인지!..
10. 0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