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북리뷰를 챙겨놓으려다가 그만둔 책은 레베카 크누스의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알마, 2010)이다. '책 학살'을 다룬 또 다른 책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아서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이 책에 대한 소개기사만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10. 03. 20) 책, 이데올로기의 칼을 맞다

2008년 7월 한국 사회는 ‘국방부 불온서적’ 문제로 잠시 떠들썩했다. 당시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세계적 석학 노엄 촘스키의 저서를 비롯, 23종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정하고 “군부대 내에 무단 반입된 불온서적을 적극 수거하라.”고 지시했다. 불온서적이 “장병의 정신전력에 저해요소가 된다.”는 이유였다.  
 
●나치, 도서관 책도 대량학살
이 사건은 불온서적들이 오히려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희극적인 결말로 끝이 났지만,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히 행해진 책에 대한 탄압이라는 점에서 결코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신간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알마 펴냄)를 펴낸 레베카 크누스 하와이대학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봤다면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21세기 책학살”이라고 욕했을 것이다.

크누스 교수는 책에 대한 탄압이 “한 집단의 역사적 연속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말살하는 행위”라고 본다. 그말대로라면 국방부 불온서적 사건은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북한찬양 정서 등을 가진 집단의 정체성을 국가적으로 말살”하려는 섬뜩한 시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국방부 불온서적 사건은 크누스 교수가 ‘… 책을 학살하다’에서 보여주는 20세기 역사 속 책 학살에 견주면 ‘귀엽게 봐줄 만한 해프닝’이다. “책을 파괴해 정체성을 말살하자.”는 야만적인 기획은 똑같지만, 크누스 교수가 소개하는 책학살은 그 규모가 훨씬 크고 결과 역시 더 비참하다. 오죽하면 집단학살(genocide), 문화학살(ethnocide)과 비슷한 맥락으로 ‘책학살(libiricide)’이라는 조어를 썼겠는가. 거기다 크누스 교수가 소개하는 책학살들은 대부분 집단학살이나 문화학살이 함께 자행된 것들이라 서글픈 느낌을 더한다.

대표적인 예가 나치의 책학살. 집단학살이란 대범죄를 저지른 독일 나치는 책학살 분야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1930년대 정권을 잡은 나치는 독일 내 도서관에서 없애야 할 책의 ‘블랙리스트’와 갖춰야 할 책의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체검열을 통해 전체 도서의 76%를 스스로 불태워 버렸다. 또 전쟁 중에는 영국 내 50여개 도서관을 폭격해 2000만권의 책을 없앴고, 폴란드에서는 학교와 공공도서관 장서 90%가량을 파괴했다.

●독재보다 잔인한 이데올로기 
이유는 간단했다. 적국의 경제 생산을 마비시키기 위해 공장을 폭격하듯, 문화 생산을 중지시키기 위해 책을 파괴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치는 끔찍한 인종말살의 전초전 또는 후환을 말끔히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파괴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는 주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거나 독재자의 힘의 표현에 그쳤다면, 20세기 책학살은 이데올로기의 옷을 입고 합법성과 사회적 승인으로 치장하고 있어 더 잔인하다고 크누스 교수는 봤다. 책은 나치와 함께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발칸반도에서, 이라크가 아랍지역에서, 중국 문화혁명기 홍위병들이 국내와 티베트에서 저지른 잔인한 책학살들을 다룬다. 역사학, 정치학, 심리학, 윤리학, 통신학, 문헌정보학, 국제관계학 등 다양한 분야들을 교차 비교해 자료를 해석했다.(강병철기자) 

10. 03. 22.  

P.S. 지난주에 마땅한 소개기사가 없어서 따로 언급하지 못한 책으론 데이비드 로지의 <소설의 기교>(역락, 2010)와 매튜 키이란의 <예술과 그 가치>(북코리아, 2010)도 있다. 그 자신 소설가이기도 한 문학이론가 로지의 책은 소설의 서두에서 결말까지를 50개 장으로 나누어, 각 주제별로 대가들의 솜씨를 소개하고 분석한다. 직접 소설을 쓰는 작가나 작가지망생들에겐 요긴한 매뉴얼이고, 일반독자들에게도 소설에 대한 안목을 키워줄 수 있는 흥미로운 교본이다. 프랜신 프로즈의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민음사, 2009)와 같이 읽어봄직하다.    

  

<예술과 그 가치(Revealing Art)>는 미학이론서다. "저자 매튜 키이란은 예술이 어떻게 우리를 감동시키는지, 또 어떻게 역겹게 하는지, 예술적 판단은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인지, 그리고 만약 예술이 비도덕적이거나 외설적이라면 검열되어야 하는지 등을 분명하게 질문한다."는 소개대로, 미학 혹은 예술철학의 기본적인 질문들을 다룬다. 개인적으론 영미 예술철학계의 최근 동향이 궁금해서 구매한 책이다. 그러자면 후속작인 듯싶은 <예술과 그 인식(Knowing Art)>도 읽어봐야 하겠지만. 마저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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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이룰수없는아련한첫사랑- 2010-03-23 16:44   좋아요 0 | URL
나치는 음악 분야에도 학살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한 제한을 가했죠...유대인을 포함한, 국민성을 일깨울 수 있는 음악가들을 선정해서 금지 list를 발표하고 활동을 막았었답니다. 어떻게 보면 문화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했던 거겠죠^^ 언론, 정치인 뿐 아니라 문학, 음악, 모든 예술에까지 단속을 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로쟈 2010-03-28 09:46   좋아요 0 | URL
네, 보이지 않는 단도리는 요즘도 작동하는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