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영화로 읽다' 강좌

엊저녁에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한 5주간의 '도스토예프스키 깊이 읽기' 강좌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기'로 마무리됐다. 수강생 몇 분과 간단하게 뒷풀이자리를 가졌는데, 차후 강의 일정을 물어오시는 분들이 계셔서 9월 강의 일정이긴 하지만 미리 올려놓는다. 지난봄 '고전, 영화로 읽다' 강좌의 속편 격인데, 도서관에서 또 한번 영화로 고전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지난번에 다룬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형평을 맞추기 위해 이번에 고른 건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강좌는 무료로 진행되기에 도서관 근처에 사시는 분이라면 주말에 영화감상 나들이를 나오셔도 좋겠다. 이미 7월 일정은 이번 주말만 빼고는 진행이 됐고, 9월에 네 차례가 강좌가 더 남아 있다. 참고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강의는 9월 11일(토)에 예정돼 있으면 신청은 노원평생학습관 홈페이지에서 받는다고 한다. 전체 일정은 다음과 같다.   

영화제작소눈의 '상영+강좌'프로그램인 <고전, 영화로 읽다>가 도서관을 찾아갑니다. 서울문화재단의  '책, 예술과 만나다' 중 하나로 선정되어 4개의 도서관에서 8번의 강좌를 이어나가게 됐습니다. 다소 심심한 도서관의 주말 상영회를 좀 더 뜨거운 시간으로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하나의 책과 하나의 영화가 어떻게 서로를 흉내내고, 싸우며 때로 벗어나는지를 되도록 담백하게 듣고, 말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찾아와주세요. 혹은 찾아가주세요. 때로 도서관이 극장이 되기도 합니다. 아니면 극장에서 책을 발견해도 좋습니다. 수많은 진부한 책과 영화속에서 길을 잃은 당신이라면, 더욱 찾아와주길, 찾아가 주길 바랍니다.(수강신청은 각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정독도서관

1강(7월 10일) - 거울 앞에 선 소설과 영화 : 그 증감의 게임
코맥 매키시『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5 / 코엔 형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7
강사 : 김영남 (영화감독), <내 청춘에게 고함>, <보트> 등 연출 

2강(7월 17일 ) - 동시대성의 내연과 외연                  
가와바타 야스나리 『산소리』,1954 / 나루세 미키오 감독 <산의 소리>,1954
강사 : 이연호(영화평론가), 전 KINO 편집장, 영상원 강사,『전설의 낙인』등

 
고덕평생학습관

3강 (7월 24일) - 인형의 집 : 집나간 노라만 문제인가? 
헨릭 입센『인형의 집』, 1879년 / 패트릭 갈랜드 감독 <인형의 집>, 1973년
강사 : 장정일(소설가), 시집『햄버거에 대한 명상』,희곡『고르비 전당포』,소설『보트하우스』등

4강 (7월 31일) - 크로넨버그, 죽음과 욕망의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나귀 가죽』, 1831년 /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 <비디오드롬>, 1983년
사 : 이창익(종교학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한신대 강사,『종교와 스포츠』등

노원평생학습관 

5강 (9월 4일) - 오뒷세이아, 세계와 인간을 탐구한 서사시
호메로스『오뒷세이아』, 기원전 7세기 / 마리오 카메리니 감독 <율리시스>, 1954
강사 : 강대진(고전문헌학자), 정암학당 연구원,『고전은 서사시다』,『잔혹한 책 읽기』,『신화와 영화』등 



6강 (9월 11일) - 도스토예프스키와 인간의 구원
도스토예프스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880 / 피터 젤렌카 감독 <카라마조비>, 2008

강사 : 이현우(인문학자),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박사, 한림대학교 연구교수,『로쟈의 인문학 서재』등

거마도서정보센터 

7강(9월 18일) - (미정)
베른하르트 슐링크『더 리더』, 1995 / 스티븐 달드리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2008
강사 : 김진영(철학자), 아카데미 상임위원.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 미학을 전공. 

8강(9월 25일) - (미정) 

10.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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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30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30 0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30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30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헌내 2010-07-30 15:51   좋아요 0 | URL
요즈음, 한국학술정보원에서 해외 학술지를 무료로 복사해주고 있더군요....
(www.riss.kr)

그나저나 역시 지원해주는 인문사회과학 해외 학술지는 400건 밖에 안 됩니다. (인문학만이 아닌 인문+사회과학입니다 - 인문학 학술지는 100건도 안되는 것 같던데...)


P.S. 건방지게 지젝을 프로필 사진으로 씁니다 ㅋ

로쟈 2010-07-30 19:34   좋아요 0 | URL
지젝 덕분에 왠지 가족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재준 2010-07-30 17:39   좋아요 0 | URL
앗! 어제 뒷풀이 감사했습니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음을 성장과 미덕으로 여겨온 저를 돌아본 시간이기도 했거든요^^. 노원에 꼭 시간내서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로쟈 2010-07-30 19:35   좋아요 0 | URL
네, 노원에서도 뵈면 구면이겠습니다.^^

lifeisart 2010-07-31 11:04   좋아요 0 | URL
저 노원에서 뵐께용^^ 넘 멋진 강좌 기대됩니당~

로쟈 2010-07-31 14:52   좋아요 0 | URL
영화+강의여서 4시간 정도 잡으셔야 합니다.^^
 

죽이든 밥이든 마감을 훌쩍 넘긴 원고를 일단 보내놓고 다른 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쉬는 손으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아, 벌써 8월이구나, 라고 쓰려다 보니, 그런 표현이 가장 안 어울리는 달이 또 8월인 것 같다. 어제도 덥고 오늘은 더 덥고, 하는 날의 연속이니까. 그냥 내일 강의준비도 하면서 쉬엄쉬엄 책이나 고른다. 가만히 노는 꼴을 못 보는 걸 보면 이럴 땐 꼭 시골 할머니 마음이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추천한 문학분야의 책은 김은국의 <순교자>(문학동네, 2010)이다. "6ㆍ25전쟁을 배경으로 이념 대립으로 인한 사건을 통해 겪는 신앙과 양심의 갈등을 묘사한 책으로 한국계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재미작가 김은국의 대표작"이라는 게 소개다. 사실 지난 학기에 이 작품을 교양강좌 커리큘럼에 집어넣었다가 을유문화사판이 품절되는 바람에 다루지 못했는데(덕분에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었다), 문학동네판이 새로 나와서 내년 봄학기에 다루려고 한다. 김욱동 교수의 연구서 <김은국>(서울대출판부, 2007)도 강의준비용으로 구비해두었는데, 왠일인지 보이지 않는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이언 아몬드의 <십자가 초승달 동맹>(미지북스, 2010). "저자는 ‘유럽(Europe)’이라는 어원이 ‘아랍(Arab)’처럼 서쪽이나 암흑, 뒤처짐을 뜻하는 고대 셈어 ‘에레브(ereb)’에서 왔다는 사실처럼 유럽과 이슬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서, 11세기 에스파냐에서부터 19세기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동맹을 맺고 공동의 적과 싸웠던 사례를 5장에 걸쳐 전해주고 있다.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는 요즘말로 혈맹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공동 전쟁을 치렀다."  

원제에서처럼 두 가지 종교로 갈려 있음에도 같은 동맹군으로 싸운 전력이 있다는 것은 유럽/아랍의 이분법이 얼마나 유효한지 회의를 갖게 만든다. 이러한 이분법의 무력화는 딱 데리다식의 전략인데, 저자의 최신작이 아니나 다를까 <수피즘과 해체>(2010)이다. 데리다와 이븐 아라비를 비교하고 있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마리에타 맥카티의 <나를 찾아온 철학씨>(타임북스, 2010). 원제는 '철학이 어떻게 당신의 삶을 구제해줄 수 있는가'. 조금 자세한 소개는 이렇다.  

저자 마리에타 맥카티는 철학 클럽을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정답 없는 질문을 자신과 남들에게 던지면서 살아간다. 왜 정답 없는 질문을 철학자는 던질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창조적 사고를 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헬스 클럽에서 몸을 단련하듯이, 철학은 우리의 정신을 단련시킨다. 정신의 단련은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마치 근육이 성장하는 것은 파열의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맥카티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함, 의사소통, 시각, 유연함, 공감, 개성, 소속, 평온함, 가능성, 기쁨과 같이 지극히 평범하고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주제들이다. 현대 문명의 기술들은 우리 육체의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정신적 건강함에 대한 배려를 상실한다. 정신적 건강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대화와 토론을 이 책을 통해서 할 수 있다

마치 짝을 맞춘 듯한 제목의 책은 알렉산드르 졸리앙의 <고마워요, 철학부인>(푸른숲, 2010). "장애를 운명으로 여기며 자기를 부정하고 세상을 외면하던 알렉상드르 졸리앙이 철학을 통해 어떻게, 얼마나 달라지게 되었는지를 편지 형식으로 풀어 쓴 독특한 철학 에세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열어 보여준다. <고마워요, 철학 부인>은 단지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킨 깨달음으로서 철학을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라고 소개된다. 두 권 다 저자는 생소하지만, 그런 만큼 부담감 없이 읽어볼 수 있겠다. 옆집에 사는 철학씨, 철학부인을 만나는 것처럼.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고른 정치/사회분야의 책은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돌베개, 2010)이다.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은 마을에서 벌어진 갈등과 상호 학살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분석한 한국전쟁의 미시사이다. 이 책은 저자가 전라남도와 충청남도에 소재한 다섯 마을을 분석대상으로 삼아 10여 년간 해당 지역을 현장 답사하며 관련자 구술을 채록하고 희생자 씨족 가문의 족보까지 꼼꼼히 조사하여 얻은 연구 성과물"이다. 강정인 교수의 평은 이렇다.  

저자는 마을에 잠복해 있던 민간차원의 갈등이 남북한 국가권력의 침투와 맞물려 비극적인 충돌과 학살로 귀결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면서, 오늘날 남북관계나 한국사회에서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능력이 과연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되묻는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한 해에 출간된 이 책은 한국전쟁에 관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 구술사/미시사 책으로 작년에 나온 김영미 교수의 <그들의 새마을운동>(푸른역사, 2009)도 떠올리게 한다. 한편 저자의 다른 책으론 <한국 근현대사를 읽는다>(경인문화사, 2010)도 올해 나온 책이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고른 경제/경영서는 역시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군터 파울리의 <블루 이코노미>(가교출판, 2010)다. 제목대로라면 '청색 경제'를 주장하는 책인데,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의 저자 군터 파울리(Gunter Pauli)는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전 세계 지식인들의 모임인 로마클럽의 초창기 회원으로 활약했다. 로마클럽은 더 이상의 성장이 환경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올 것임을 경고한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라는 책을 출판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의 성장을 자제해야 한다는 결론은 사람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태도를 180도 바꿔 성장과 환경 보호가 양립가능한 명제라고 말한다. 4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녹색경제(green economy)를 대체할 ‘청색경제(blue economy)’를 주창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녹색경제는 환경 보호라는 목표의 달성을 위해 기업과 소비자에게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문제점을 갖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청색경제에서는 환경을 보호하면서 더 큰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난번에 <블루 이코노미>와 함께 묶었던 책은 재닌 베니어스의 <생체모방>(시스테마, 2010)인데(http://blog.aladin.co.kr/mramor/3855767), 생체모방, 생태모방이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필히 챙겨두어야겠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고른 과학분야의 책은 로널드 넘버스의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뜨인돌, 2010). 이미 적잖은 책들이 나온 주제인데, "이 책은 이러한 과학사의 전통적 통념이, 즉 과학과 종교가 끊임없이 대립하였다는 통념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과학적 관점 때문에 목숨을 잃은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지동설의 갈릴레오나 진화론의 다윈의 신앙 이야기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통해 과학과 종교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종교와 과학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으론 최근에 나온 칼 세이건의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사이언스북스, 2010)도 떠오른다. '신의 존재에 관한 한 과학자의 견해'가 책의 부제다. 그리고 물론 작년에 나온 <종교전쟁>(사이언스북스, 2009)도 다시 떠오르고.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아직 구입하지 않았군...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이기영의 <민화에 홀리다>(효형출판, 2010). 드디어 처음 보는 책이 등장했다. "외교학과를 나와 발전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어느 날 도자기에 빠져 도예가가 된 필자가 그동안 사랑했던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거기에 현대적 미감으로 민화를 다시 창조해내고 있는 작가 서공임의 작품 80여 점이 함께 우리를 매료시키는 책"이라는 게 소개의 변이다. 민화에 대한 책은 그간에 아주 드물지 않았나 싶다. 우리 옛 그림에 대한 책으론 김정애의 <우리 옛 그림의 마음>(아트북스, 2010)이 최근에 나온 책이고, 작년에 나온 걸로는 오주석 선생의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월간미술, 2009)이 있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분야의 책은 김동진의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참좋은친구, 2010)이다. 한국현대사와 긴밀한 연관이 있는 '파란눈'임을 예감할 수 있는데, '한국혼 헐버트'의 간단한 행적은 이렇다.  

한국 이름은 흘법(訖法) 혹은 할보(轄甫)였던 헐버트가 1886년 5월21일 벙커, 길모어 부부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조선에 도착한 것은 7월4일. 벙커나 길모어 부부 모두 청년 이승만의 개화정신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이 시절 이승만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곧 대한민국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이 때부터 20년간 한국에 살면서 헐버트가 보여준 활동의 범위는 말 그대로 눈부셨다. 교육자이자 한글학자, 역사학자이자 언론인, 선교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 그는 고종을 위해, 서재필을 위해 그리고 이승만을 위해 헌신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헐버트란 이름은 생소하지만 한국과 인연을 맺은 외국인 가운데 언더우드란 이름은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찾아보니 몇 권의 책이 나와 있다. <언더우드가 이야기>(살림, 2005)도 있고, <조선견문록>(이숲, 2008)도 있다. <언더우드가 이야기>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4대에 걸쳐 한국에 살며 120년간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을 함께 한 언더우드 가문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선교를 위해 한국에 도착해 선교 및 교육, 의료 사업을 진행했던 언더우드 1세부터 얼마전 출국한 언더우드 4세까지, 한국을 사랑한 한 서양인 가문 이야기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가 함께 펼쳐진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실용분야의 책은 매니 하워드의 <내 뒷마당의 제국>(시작, 2010)이다. 표지가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데, 가장 생소한 책이지만 소개는 가장 흥미진진하다.   

뉴욕에서 요리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던 저자가 로커보어를 자처하면서 푸드마일 실험에 도전했다. 직업으로 미뤄 음식에 일가견이 있고, 도심에 살면서 가장 가까운 곳의 식재료를 추구하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집 뒷마당에 눈길이 꽂혔다. 마당을 갈아엎어 농사를 짓고, 축사(畜舍)를 손수 지어 가금(家禽)을 기르면서 진행한 농장 6개월 프로젝트의 결과는? 참담한 실패다. 교본을 따라 해도 이상하게 작물은 자라지 않았고 가축은 쉽게 배반했다. 토네이도가 농장을 때려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런 곡절 끝에 첫 만찬에 올라온 찬거리는 구운 닭 반 마리와 콜라도 그린(Collard green, 배추 비슷하게 생겼다), 토마토 세 조각. 땅의 정직함, 계란 하나와 가지 한 조각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책 중간 중간에 배치된 사진이 실험의 치열함을 말해준다. 배수로를 확보하기 위해 가슴팍까지 구덩이를 파는 모습, 닭을 잡아 털을 뽑아 요리하는 장면 등이 서바이벌 게임의 치열함을 말해준다. 가장 극적인 후일담은 아내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히스와 제이크를 품에 안고 떠나지 않은 아내가 고맙다”. 마당에서 뛰노는 닭을 보기는커녕 고구마 하나 제 손으로 캐보지 않았으면서 식탐에 젖은 사람이 읽으면 쿵∼ 감동이 내려앉을 책이다. 

책의 부제가 '자급자족에 도전하는 뉴요커의 리얼 생태 서바이벌'. 이보다는 덜 격렬하지만 유사한 컨셉의 책으론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은 다마무라 도요오의 <전원의 쾌락>(뮤진트리, 2010)도 있다.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부부가 밭농사를 지어보겠다며 멀리 일본 알프스가 바라보이는 신슈지역 해발 850m 도부마치의 언덕에 집을 짓고,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들 만큼 고된 초보 농사꾼의 수습 기간을 온 몸으로 겪어낸 몇 년간의 시간을 토마토 페이스트처럼 진하게 농축시켜 열두 달의 일상으로 유쾌하게 그려낸 것"으로 소개되는 책이다.   

한국책도 하나 얹자면 서화숙의 <마당의 순례자>(웅진지식하우스, 2009) "27년간의 기자생활로 독해진 마음을 풀고, 22년간의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진짜 삶을 찾은 동화작가이자 한국일보 기자인 서화숙의 에세이"이다. 부제는 '부암동 푸른 마당에서 누리는 고혹한 자유'. 부암동이란 동네는 언젠가 한번 가봤는데, 독특한 정취를 뽐내는 곳이었다(같은 서울인데도 '관광객'들이 많아서 불편하기도 하다고). 큼직한 도서관만 하나 있으면 금상첨화겠다... 

10. 루이스 멈퍼드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은 루이스 멈퍼드(멈포드)다. 어차피 8월 마지막 주에 <메트로폴리탄 게릴라>(텍스트, 2010)의 저자인 박홍규 선생과 대담을 하게 돼 있어서(http://blog.aladin.co.kr/mramor/3933690) 일독해봐야 하는 책들이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이번에 나온 <유토피아 이야기>(텍스트, 2010) 외 <예술과 기술>(민음사, 1999)뿐이니 큰 부담은 없다. 하지만 전에 소개됐던 <역사 속의 도시> 등이 다시 나오면 좋겠다.  

10. 07. 28.  

P.S. 8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카프카의 <소송>이다. 최근 들어 매년 새 번역본이 출간되고 있어서 '입맛'을 다시고 있던 차였다. 계획은 세 종의 번역서를 대조해서 읽고 뭔가 써보는 것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오손 웰스의 영화 <심판>도 다시 보고 싶군. 답답한 여름에 갑갑한 영화를 보는 것도 이열치열의 한 가지일까... 

  

10. 0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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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 2010-07-31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뒷마당의 제국> 소개글을 보니, 미국 기자의 프랑스 남부 정착기 <프로방스에서의 1년>이 생각나네요. 약간은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묘사되어서 한 때 프로방스 붐을 일게 했다는... 사회학적 내지 생태학적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한 책들을 비롯해서 "도시 지식인의 귀농기"라는 주제도 한 아름은 되겠군요.

로쟈 2010-07-31 09:38   좋아요 0 | URL
이번주 국내서에도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이 있네요...

종이달 2022-04-27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날씨는 이상적이었다”

문학동네 블로그에 연재하는 '로쟈의 스페큘럼'을 옮겨놓는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를 일단 마무리하는 내용이다(다음 회에 약간 더 부연될 수 있다). 어젯밤과 오늘 오전에 쾌적하지 않은 컨디션 상태에서 쓴 글인데, 블로그에는 깔끔하게 정리돼 올라와 있다. 전문은 http://cafe.naver.com/mhdn/16729 를 참고하시길. 

 

잠시 철학사 상식을 들추자면, 칸트를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게 한 것’은 <인간본성론>의 저자 데이비드 흄(1711-1776)이었다. 칸트 자신의 고백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지 않은 또 다른 인물이 있으니 스코틀랜드의 사상가 헨리 홈(1696-1782)이다. 칸트 연구자인 한스 파이잉거에 따르면 칸트는 홈은 <비평의 원리>(1762)란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과 <네이션과 미학>(도서출판b, 2009) 등에서 대략 이렇게 정리해주고 있다. 

“칸트가 홈에게서 배운 것은 ‘취미판단’, 즉 미학적 취미판단의 가능성에 대한 반성과 그 근거에 대한 연구였다. 홈은 취미판단의 보편성, 즉 미추의 기준을 찾아 그것을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원리에서 도출해내려고 애를 썼으며, 미추에 관한 인간 감수성의 선천성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홈과 칸트에게서 공통적으로 문제된 것은 취미판단의 주관성(개인성) 주장과 보편성 요구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때 칸트가 도입한 것이 일반성과 보편성의 구별이다. 취미판단은 규칙에 의거하지 않기에 일반성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모든 사람의 동의를 요구할 수는 있다. ‘공통감각(sensus communis)’을 통해서다.  

공통감각이란 무엇인가. 고진은 이 공통감각을 개인의 쾌/불쾌, 쾌적함과는 구별하면서 ‘공동의 언어게임’ 문제로 재규정한다. “취미판단에서의 보편성은 서로 다른 규칙체계를 소유하는 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이니까.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상대방(타자)의 입장이 돼보는 일이다. <도덕감정론>의 저자이기도 한 아담 스미스가 ‘공감(sympathy)’이라고 부른 이것이 바로 칸트가 말하는 ‘상상력’이다. 즉 스미스의 ‘도덕감정’이란 칸트식으로 말하면 “자유로운 존재로서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도덕법칙”이다. 요컨대, 도덕감정의 바탕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봄으로써 공통감각의 토대를 마련하는 상상력이다.  



<가든파티>에서 ‘예술가 타입’ 로라가 갖고 있는 자질 또한 이 상상력이다. 천막을 치러 온 일꾼들을 감독하기 위해 어머니와 언니들을 대신하여 나선 로라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을 어른스럽게 가장하는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버터 바른 빵조각을 손에 들고 있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어머니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했다 그렇지만 끔찍하게도 꾸민 것처럼 들려서, 창피해진 나머지 조그만 계집아이처럼 말을 더듬었다. “아, 저, 용건이…… 천막 때문에 오신 거죠?”

로라는 ‘어머니를 흉내내는 조그만 계집아이’다. 이 ‘아이’는 인부들을 ‘사무적’으로 대하려고 하지만 친근감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녀는 인부들의 웃는 모습에서 “기운내요, 잡아먹지는 않을 테니까”란 ‘메시지’를 읽어내며, 천막을 치기에 적당한 장소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인부들과 ‘공통감각’을 만들어낸다. 가령, 로라가 백합 잔디밭쪽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자 한 인부는 별로라고 말하면서 “저기, 천막 같은 것은요. 눈을 팍 때리는 그런 데다 쳐야 하거든요. 무슨 뜻인지 아시려나.”라고 덧붙인다. 로라는 잠시 ‘눈을 팍 때린다’(bangs slap in the eye)란 표현이 예의에 맞는지 미심쩍어 하지만, 그의 말뜻은 잘 이해한다(she did quite follow him). ‘공동의 언어게임’ 공간이 확보되면서 이해의 가교가 놓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때문에 로라가 인부들의 모습에서 상당한 호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아, 일꾼들은 어쩌면 저다지도 멋질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춤 상대가 되고 일요일 밤 저녁식사에 오기도 하는 바보 같은 남자애들이 아니라 일꾼들과 친구가 되면 왜 안되는지? 이런 사람들하고 훨씬 더 잘 지낼 수 있을 텐데.
키 큰 남자가 뭔가 둥글게 매달아놓거나 늘어뜨릴 것을 봉투 뒷면에 그리는 사이, 그녀는 모두가 이 말도 안되는 계급적 구분 탓이라고 단정했다. 자기만큼은 그런 차이를 느낀 바 가 없다. 전혀, 눈곱만큼도……

그러니까 로라의 생각으론, 같은 계급의 ‘바보 같은 남자애들’보다 더 멋진 ‘일꾼들’과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건 말도 안되는 ‘계급적 구분’ 탓일 뿐이다. 그녀는 그런 구분에 동의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어리석은 인습’으로 경멸한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일꾼 처녀(work-girl)’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느낀다. 하지만 바로 그런 ‘깨달음’의 순간을 깨뜨리는 것은 “로라, 로라, 어디 있니? 전화 왔다, 로라!”라는 목소리다. 이 목소리야말로 그녀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며 원래의 자리로 ‘소환’하는 역할을 한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일꾼 처녀’는 로라의 상상이 빚어낸 가상의 정체성이자 일시적인 ‘기분’일 뿐이지만, ‘전화’는 현실이다. 가정용 전화가 매우 드문 시절이었기 때문에 ‘전화’라는 말 자체가 그녀의 ‘계급성’을 말해준다. 그것은 하나의 지표다. 일꾼들과는 결코 동일시될 수도, 동질화될 수도 없는 계급성의 지표인 것이다.(...)

이미 셰리던 집안의 자녀들은 이웃 빈민가에는 근접하지 않도록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은 터다. 하지만 로라와 로리 남매는 가끔씩 그 골목을 지나가본 경험이 있고, 무엇보다도 ‘예술가 타입’인 로라는 이웃의 불행에 대해서 특유의 공통감각을 발휘한다. 그녀는 “거기다 그 불쌍한 여자한테 악단 소리가 어떻게 들리겠어.”라고 조스에게 말하고, 어머니한테는 “악단도 오고 모두들 올 텐데. 그 사람들한테도 다 들릴 거예요, 엄마. 이웃이나 마찬가지잖아요!”라는 이유를 대며 파티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고집한다. “엄마, 우리가 정말 너무 무정하게 구는 게 아닐까요?”라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아무도 로라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으며 셰리던 부인은 로라에게 파티용 모자를 씌워줌으로써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이 모자는 네 거다. 너한테 딱 어울리네. 내가 쓰기에는 너무 젊은 취향이잖니. 이렇게 그림처럼 예쁜 네 모습은 처음이네. 자, 한번 봐!”라고 말하며 손거울을 들이민다. 로라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지만 맨스필드가 준비한 건 또 한 번의 반전이다.

“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로라는 말하고 재빨리 방에서 빠져나와 자기 침실로 들어갔다. 정말 우연히도, 방에 들어섰을 때 맨 처음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황금색 데이지로 장식한 까만 모자에 긴 까만 벨벳 리본을 맨, 거울에 비친 이 매력적인 소녀의 모습이었다. 자기가 이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해보았다.  

여기서 ‘예술가 타입’의 심미적 주체는 나르시시즘적 주체이기도 하다. 이웃의 사고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오빠 로리와 상의하려다가도 그가 옷차림과 모자가 근사하다고 말해주니까 로라는 “결국 그에게 한마디도 못하고 말았다.” 로라의 윤리적 가능성과 한계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장면이다. 파티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다시금 이웃의 불행이 화제에 오르자 셰르던 부인은 남은 음식을 갖다 주자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로라는 다른 의견을 피력한다.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가져다주다니. 그 불쌍한 여자가 그것을 정말 달가워할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역시나 로라의 공통감각이 가능하게 한 의문일 것이다. 적어도 그녀는 전형적인 부르주아적 도덕을 자연스럽게 체현하고 있지는 않다.

부르주아적 도덕이란 무엇인가? 파티용 차림 그대로 음식 바구니를 가지고 가면서 셰리던 부인은 칸나 백합도 같이 가져가라고 권한다. “그 계층(class) 사람들은 이 꽃을 대단하게 여기거든”이라는 게 이유다. 여기에도 공통감각이 작용한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이 공통감각은 곧바로 ‘현실주의’의 저항에 직면한다. 꽃줄기에 레이스옷이 망가질 거라는 게 조스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것을 받아들여 결국 셰리단 부인은 로라가 바구니만을 들고 가게 한다. 요컨대, “이웃을 도와야 한다, 하지만 나의 옷을 더럽히면서까지 도움을 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 부르주아적 도덕이다. 그것은 정해진 한계를 초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한으로서의 타자’에 대한 책임에 붙들리는 윤리와 구별된다. 로라는 과연 그러한 도덕적 주체에서 윤리적 주체로 넘어갈 수 있을까?   

로라가 바구니를 들고 남편을 잃은 스콧 부인을 문상하러 간 장면이 <가든파티>의 결말이다. 그녀를 맞는 것은 미망인의 언니다. 로라가 이웃이나 마찬가지(they're nearly neighbors)라고 했던 스콧 부인과 죽은 스콧이 소위 그녀의 ‘타자’다. 이 결말 장면에서 로라는 그들과 차례로 조우한다. 먼저, 스콧 부인과의 대면하는 모습이다.

그 순간 화롯가의 여자가 돌아보았다. 눈이 퉁퉁 붓고 입술도 퉁퉁 부은,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이 끔찍해 보였다. 로라가 왜 거기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였다. 무슨 일인가? 이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어째서 바구니를 들고 부엌에 서 있는 것인가?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리고 그 가엾은 얼굴은 다시 일그러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지만 여기서는 어떠한 ‘만남’이나 ‘교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런 커뮤니케이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들은 서로에게 타자다. 그것이 ‘살아있는 이웃’이 타자로서 갖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이웃’은 어떤가? 

거기에는 한 젊은 남자가 깊은 잠에 빠진 채 - 너무나 곤히, 너무나 깊이 잠들어서 두 사람 모두에게서 멀리, 멀리 떨어진 채 - 누워 있었다. 아, 이렇게 초연하고,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다시는 그를 깨우지 마라. 그의 머리는 베개에 파묻혀 있고, 눈은 감겨 있었다. 감은 눈꺼풀 아래 두 눈은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온통 꿈에 빠져든 것이었다. 가든파티니 바구니니 레이스 드레스니 하는 따위가 그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심지어 망자는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만족한다고.”까지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게 보는 시점은 로라의 것이다. 여기서 로라의 시점은 망자의 시점과 일체가 되고 있다. “그는 만족한 듯 보였다”가 아니라 “나는 만족한다”라고 기술된다. 말 그대로 ‘공통감각’의 실현이다. 특이한 것은 이 죽음이 아무런 ‘타자성’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정말 멋있고 아름다웠다. 그들이 웃어대고 악단이 연주하는 동안, 이런 기적이 이 골목에 찾아온 것이다.”라고 로라는 느끼며, 죽은 스콧은 더없이 행복한 모습이다. 이런 발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그에게 무언가 말도 없이 방에서 나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로라는 큰 소리로 어린애처럼 흐느꼈다. “이 모자, 용서해주세요.” 그녀는 말했다.

로라의 ‘모자’는 그녀의 나르시시즘과 가든파티의 성공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이 모자, 용서해주세요(Forgive my hat)”란 사과를 통해서 로라는 규범적인 차원에서 예의를 갖춘다. 그렇게 하여 상가를 나온 로라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작품은 종결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맨스필드는 오빠 로리와의 만남은 마지막에 남겨놓았다. 로라에게는 분신이자 멘토 격의 인물이다. “그렇게 끔찍했니?(Was it awful?)”라는 로리의 질문에 로라는 “아니, 그저 경이로웠어.(It was simply marvellous.)”라고 답한다. 경이로웠다는 느낌은 물론 행복해보이던 시신과의 조우를 떠올린 것이겠다. ‘죽은 이웃’과의 대면 말이다.  

하지만, 로라는 아직 ‘끔찍함’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살아있는 이웃’과의 만남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윤리적 주체는 이제 형성중인 주체다. 그런 미진함이 ‘인생’에 대한 정의를 어렵게 만든다. 머뭇거리게 하고 말을 더듬게 한다. “인생이란 게-”를 반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작품에서 이 열린 물음에 대한 봉합은 “그러게 말이야, 응?(Isn't it, darling?)”이란 로리의 대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물론 이것을 임시방편적으로 보는 시각도 가능하다. 아직 제대로 답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 로라의 물음은 텍스트를 빠져나와 독자에게 전이된다. “그리고 어쨌든 날씨는 이상적이었다”란 작품의 첫 문장에서 ‘그리고’가 끌어들인 효과와 마찬가지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로라에게 “따뜻하고 사랑이 담긴 목소리”로 답해줄 준비가 돼 있는가? 지금은 곤란하다고?.. 

10. 0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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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7-28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이상적인 날씨와 참 그런 삶이 만나는군요...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로쟈 2010-07-28 09:01   좋아요 0 | URL
글이 좀 긴 편인데,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

구보 2010-07-2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긴 편이었군요.의식 못하고 단숨에 읽었습니다.스콧부인과 교감이 이루어졌다면 그렇고 그런 통속소설이 됐겠지요. 가능성의 영역일망정 그만한 시도조차 용기로 느껴집니다.


로쟈 2010-07-28 21:34   좋아요 0 | URL
네, 그건 어려운 일이죠. 이 문젠 맨스필드의 다른 작품을 통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사를 한 달 못 되게 남겨놓은 탓에 방안은 책으로 거의 포화상태다. 지난주 교수신문 기사를 스크랩해놓으려고 두리번거리다 김욱동 교수의 <번역과 한국의 근대>(소명출판, 2010)도 10분만에 찾았다. 손 닿는 곳에 놓았다는 책도 그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 글을 쓴다는 나 자신이 신기하다(가끔은 차포 떼고 장기를 두는 기분이다). 여하튼 책을 찾았으니 관련 리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교수신문(10. 07. 19) “번역은 근대화의 빗장 연 열쇄” … 金億, 번역사의 분수령이었다  

2007년 한국번역비평학회가 출범한 이래 번역에 대한 관심 역시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번역의 역사를 훑는 통사적 접근은 드물었다. 이런 와중에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가 번역과 관련한 두 권의 책 『번역과 한국의 근대』(소명출판), 『근대의 세 번역가』를 상재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두 책은 근대와 번역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번역과 한국의 근대』는 번역과 한국의 근대가 일본과 달리 ‘重譯된 근대’란 익숙한 주장을 펼친다. 『근대의 세 번역가』는 서재필, 최남선, 김억 등 근대에 활동했던 세 명의 번역가를 통해 중역에서 직역으로 넘어가는 근대 번역의 모습을 인물에 집중해 풀어냈다.

번역은 한국 근대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번역과 한국의 근대』는 갑오개혁에서부터 기관지 <해외문학>이 발행되던 1920년대 말엽까지 한국번역의 역사를 육하원칙에 따라 심도 있게 밝힌다. 김 교수에 따르면 번역은 일본과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근대화의 빗장을 열어젖히는 열쇄가 됐다. 때문에 만약 서구 문헌이 번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한국의 근대화는 뒤늦게 이뤄졌거나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을 것이란 주장이다.

이중번역이 근대를 왜곡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근대를 ‘중역한 근대’로 결론짓는다. 이 같은 주장은 일본의 두 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의 대담집 『번역과 일본의 근대』(1998), 리디어 류(Lydia H. Liu)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의 『통언어적 실천』(1995)이 모태가 됐다. 특히 류 교수는 중국이 서양 문헌을 번역함으로써 근대화를 이룩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의 근대를 ‘번역한 근대’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중역한 근대’가 비롯되는 지점이다. 한국의 번역은 대개 서구 언어에서 일본어를 거쳐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이중 번역이었다. 심지어 서구 언어에서 일본어와 중국어를 거치거나 제3세계 언어에서 서구 언어와 일본어를 거치는 삼중 번역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근대화는 굴절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자못 안타깝다는 지적이다.

일본인 번역가나 중국인 번역가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번역해 놓은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때론 한국에는 필요 없거나 오히려 해롭기까지 한 문헌까지 무작위로 들어오게 됐다. 이것은 일찍이 1909년 1월 <대한매일신보>의 논설 ‘번역가에게 일고함’에서도 지적된 사항이다. 번역자는 서양 문헌을 번역하되 반드시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유길준 역시 서구 문물의 맹목적인 수용을 경계하면서 겉모습만 따르는 개화를 ‘개화의 병신’이라고 날카롭게 꼬집는다. 중역의 문제는 언어의 문제가 아닌 근대 사상이 문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중역의 문제를 당시 어쩔 수 없었던 차악의 선택이라 변호한다. “만약 이러한 중역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어두운 중세의 터널을 지나는 데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며 “‘중역한 근대’가 바로 우리 근대의 모습이더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김욱동 교수의 두 책은 한국번역사 연구에 선구적 역할을 한 김병철 교수의 『한국근대번역사연구』(1975), 『한국서양문학이입사연구』(1980)에 맥이 닿아있다. 그러나 기존의 번역 이입사 연구는 자료 수집 차원에 머물러 있었던 게 사실이다. 김욱동 교수는 김병철 교수가 이룩한 작업을 토대로 번역과 근대화의 상관관계를 규명함으로써 기존 성과를 한 단계 구체화 한다.

공리성의 굴레 벗어난 ‘김억의 번역’ 
『번역과 한국의 근대』가 근대 계몽기 번역이 한국 근대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규명한다면 『근대의 세 번역가』는 한국 근대 문학을 본 궤도에 올려놓는 데 가장 공헌한 세 번역가를 집중 조명한다. 세 번역가는 바로 松齋 서재필, 六堂 최남선, 岸曙 김억이다.

김 교수는 이들 세 번역가를 역사의 시대 구분에 빗대 국내 번역사에서 서재필은 고대, 최남선은 중세, 김억은 근대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서재필을 번역가로 부르는 데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분명 문명개화를 부르짖는 과정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역설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한 단편적이나마 직역을 피하고 의역을 주장하는 등 나름의 번역이론을 전개했다.

최남선은 신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비록 중역의 형식을 빌려서나마 외국문학 작품을 한글로 번역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少年>(1908)과 <靑春>(1914) 등을 창간해 서구 문학작품을 집중적으로 번역해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작품 창작 과정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번역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 번역사는 김억을 분수령으로 중역에서 직역으로 전환한다. 김억은 특히 프랑스 상징주의 시와 러시아, 영국의 시를 집중적으로 번역했으며 1921년 한국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를 출간한다. 김 교수는 김억의 번역시가 한국 근대시에 미친 영향을 천착한다.

한국 최초의 순수문예지 <창조>(1919)와, <폐허>(1920)의 탄생에 산파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근대 문학으로 하여금 공리성의 굴레를 벗어나게 했다. 문학의 심미성과 쾌락성에 좀 더 무게를 실은 김억의 번역시로 인해 공리성에 기울어져 있던 당시 문단은 어느 정도 균형점을 찾게 된다. “김억에 이르러 비로소 번역은 일본 식민주의 굴레에서 해방을 맞이하였다”는 결론이 가능한 이유다.

김 교수는 “1920년대 말엽 한국 번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외국문학연구회의 활동을 미처 다루지 못한 것은 이번 저술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며 과제를 남겼다. 1926년 가을 일본에서 외국문학을 전공한 유학생들이 결성한 외국문학연구회는 그 이듬해 기관지 <해외문학>을 간행해 한국의 번역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김 교수는 이들의 활동을 다룬 단행본을 계획 중이라며 다음을 기약했다.

국내 출간 도서 중 30퍼센트는 번역서가 차지한다. 그럼에도 국내 번역은 늘 오역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뇌의 무도』가 번역된 지 한 세기가 가까워 오는 지금 김 교수의 이 같은 작업이 국내 번역의 안정된 기반 구축에 한 계기가 될지 그 행보를 기대해 본다.(우주영 기자) 

10. 07. 25.    

P.S. <번역과 한국의 근대> 서문에서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지만, 두 가지 사항을 덧붙인다. 먼저, 김병철 교수의 공적. "나는 이 책을 쓰는 데 누구보다도 기병철 교수님한테서 진 빚이 무척 크다. 교수님께서는 <한국근대번역문학사연구>(1975)를 집필하시어 한국번역사 연구에 그야말로 선구적인 역할을 하셨다."고 저자는 정당하게 지적한다. 일반 독자에겐 그냥 '자료집'처럼 여겨질 테지만 "한국번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마치 금강석 원석을 보관하고 있는 창고"와 같은 책이다. 러시아문학 번역사와 관련하여 나도 참고한 적이 있는데, 아쉬운 것은 도서관에서나 이용할 수 있는 절판된 책이라는 점. 시중에 남아있는 건 속편으로 나온 <한국현대번역문학사>(상, 하) 정도다(그마저도 알라딘에서는 품절이다). 다시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어둔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제목에서 이미 풍기고 있지만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데 자극이 된 책 두 권. 기사에서도 "일본의 두 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의 대담집 『번역과 일본의 근대』(1998), 리디어 류(Lydia H. Liu)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의 『통언어적 실천』(1995)이 모태가 됐다."고 밝혔다. 저자는 두 사람의 책이 "내 책의 어버이"라고까지 했다. 한데, 특이한 건 <통어적 실천>이란 책의 번역서가 '리디아 리우'의 <언어횡단적 실천>(소명출판, 2005)이라고 나와 있음에도 참조되지 않은 점이다(참고문헌에도 빠져 있다). 저자가 번역서의 존재를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모양새다. 전자일 걸로 짐작되지만, 문제는 출판사쪽. 다른 곳도 아니고 같은 출판사에서 낸 책의 서지사항을 "리디어 류의 <통언어적 실천>"이라고 기재되도록 '방치'한 건 너무 무심한 처사다. 그들은 자기가 무슨 책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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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지 2010-07-2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소명은 참 좋은 출판사인데... 마지막 부분은 좀 .. 희비극적이네요.

로쟈 2010-07-26 01:07   좋아요 0 | URL
주로 독자의 무관심을 탓하게 되는데, 가끔씩 출판사들도 무심할 때가 있지요.^^;

2010-07-26 0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6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6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편의점에 갔다가 신문판매대에 걸려 있는 중앙일보 1면에 최장집 교수의 사진이 크게 실려 있는 걸 보고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현재 후마니타스출판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최장집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와 관련한 인터뷰기사였다. 자료삼아 스크랩해놓는다('최장집 정치철학'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오마이뉴스의 관련기사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20838 참조. 

중앙일보(10. 07. 24) 최장집 “마르크스 이론 치명적 결함은 정치의 역할이 없다는 것이죠” 

진보학계의 거장 최장집(67) 고려대 명예교수. 대학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그가 요즘 새롭게‘열공 모드’에 들어갔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점심 시간도 잊은 채 독서 삼매경이다. 아예 약속 자체를 안 하는 분위기다. 60대 후반에 다시 시작하는 ‘최장집의 새로운 도전’이다. 독서야 평생 해온 일. 하지만 이번엔 뭔가 좀 다르다. 주제가 달라졌다. 민주주의론에서 정치철학으로.

7월 16일 오후 그의 연구실. 세트로 짝을 맞춘 책꽂이의 목록이 싹 바뀌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그 자리엔 민주주의와 비교정치 관련 책이 주인 노릇을 했다. 지금은 다른 종류의 도서가 그 자리를 채웠다. 마키아벨리·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홉스·베버…. 고대에서부터 근대에 이르는 서양 정치철학 책이 가득하다. 책상 위에도 중간중간 메모지를 끼워놓은 10여 권의 정치철학 책이 펼쳐 있다. 왜 정치철학일까. 



7월 21일 오후 4시 서울 지하철 합정역 근처. 후마니타스 출판사가 있는 건물의 강의실을 찾았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강의가 한창이다. 계단에 붙은 ‘최장집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라는 타이틀이 눈에 띈다. 7월 7일 개강한 그의 정치철학 강연이다. 이미 개강 첫날 플라톤의 『공화국』을, 14일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주 교재로 강의했다. 앞으로도 매주 수요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서양 정치철학의 대표선수들을 통사적으로 쭉 훑을 작정이라고 한다.

#‘마키아벨리=사악한 권모술수’ 오해 풀어야

● 왜 갑자기 정치철학입니까.

“한국 사회에 만연돼 있는 정치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고 싶어서입니다. ‘정치의 부재’야말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최대 적입니다.”

● 우리 국민 대부분이 정치 전문가일 정도로 정치가 활성화돼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잘 보세요, 정치에 대한 턱없는 기대와 폄하가 교차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과도한 유토피아의 낭만적 정서가 퍼져 있어요. 실현 불가능한 기대치를 정해놓고 그에 미달했다고 정치를 폄하하곤 하지요. 그러곤 정치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려고 합니다. 정치를 배제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결과에 무책임한 것입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죠. 정치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길을 찾는 행위입니다. 거기엔 실천적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결과가 좋아야 다 좋은 것은 물론 아니지만, 결과까지 책임지는 행위, 그것이 바로 이 시대 우리 사회에 요청되는 사려 깊은 분별력의 정치 행위입니다.”

● 전공이 비교정치이지요.

그렇습니다. 나의 전공은 비교정치고, 정치사회학이며 경험적으로는 한국정치를 집중적으로 공부해 왔어요. 그렇다고 내게 정치철학이 완전히 낯선 분야는 아닙니다. 석사학위 논문을 홉스의 정치철학으로 썼고, 미국 시카고대 유학할 때도 정치철학을 틈틈이 수강하거나 청강했어요. 정치철학에 대한 문제 의식은 오래됐습니다.” 

 

● 그런데 왜 마키아벨리인가요. 뜻밖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온갖 권모술수 정치의 대명사인데.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도 ‘잔학한 마키아벨리’라는 부정적 평판을 내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악함과 부도덕·무도덕의 정치를 마키아벨리와 연결짓는 게 일반적이죠.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닙니다. 마키아벨리를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후자 쪽의 마키아벨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이 오늘 한국 정치의 문제를 푸는 데 요긴하다고 생각합니다.”

● 마키아벨리의 어떤 점이 우리 정치에 도움이 된다는 겁니까.

마키아벨리의 정치학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정치 현실을 초월한 이상적 윤리규범이나 신앙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마키아벨리를 최초의 근대적 정치철학자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요. 권력과 폭력, 그리고 악의 문제를 현실적 차원에서 생각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본 겁니다. 마키아벨리는 권력·폭력·악과 같은 것들을 정치의 영역에서 배제돼야 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어요. 정치의 기준을 윤리규범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 권력이라는 현실은 정치의 출발점입니다. 폭력과 악을 정치를 실천하는 하나의 조건으로 간주했지요. 그 조건들을 다루는 게 정치고, 정치를 통해 공공선을 이룩해 가는 것입니다. 애초에 현실을 초월한 유토피아를 설정해 놓고 그리로 몰고 가는 것은 혁명이지 정치가 아닙니다. 마키아벨리는 도덕이나 규범에서 좋은 정치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플라톤을 한번 보세요, 정치와 윤리가 혼합돼 구분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는 플라톤 계열이지요.”

최 교수의 강의에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그는 크게 두 개의 흐름으로 정치철학을 분류했다. 하나는 ‘이상의 정치’이고, 다른 하나가 ‘현실의 정치’다. ‘이상의 정치’ 그룹엔 플라톤·로크·루소를 배치했다. ‘현실의 정치’ 그룹엔 마키아벨리·아리스토텔레스·몽테스키외·토크빌·베버가 자리 잡는다. 전자를 대표하는 인물이 플라톤이고, 후자는 마키아벨리가 대표한다. 그의 강의는 두 흐름을 포괄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후자의 흐름, 즉 마키아벨리류의 ‘현실 정치철학’에 비중을 뒀다. 거기에 정치의 본질이 있다고 보는 것이며, 무엇보다 그 현실의 정치가 오늘 우리 사회에 가장 취약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 마르크시즘 아닌 좋은 정치 이끌 실력 필요

● 그러고 보니 정치철학 강의 목록에도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가 보이지 않습니다.

“일부러 뺐어요. 마르크스 이론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읽혔고 진보파들에게는 ‘유일한 지식’이라 할 정도로 보편화되었죠.”

망설임 없는 즉답이 돌아왔다. 이 정도 강의안을 짜려면 적어도 올 초엔 준비를 마쳤을 터다. 그의 생각이 급조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그는 계속 이어 이렇게 답했다.

“마르크스 이론의 치명적 결함은 정치의 역할이 없다는 점이지요. 마르크시즘이 현실 속에서 작동을 못하고 실패한 이유는 거기에 있어요. 정치는 없이, 이상과 규범만 강요됐기 때문에 권력의 문제를 잘 다룰 수 없었지요. 그런 이상과 당위의 논리는 우리에게 넘쳐요. 오늘 한국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그런 규범이 아니라 좋은 정치를 이끌 실력이라고 봐요.”

● 마르크스보다 마키아벨리가 더 필요하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래요. 지금 한국 정치에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마키아벨리라고 보는 겁니다. 오해는 마세요, 바로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 대한 진단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 사회에서 정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길이라고 보는 겁니다.”

● 이명박 정부 초기 ‘광우병 촛불시위’ 때 최 교수님은 ‘직접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했고, ‘대의 민주주의’를 성숙시켜야 한다고 말하셨죠.

“독재와 민주가 대립하던 시절, 윤리적 도덕성이 최고 덕목이었던 시절에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깊어만 갔습니다. ‘이상의 정치’와 ‘운동의 정치’는 함께 갑니다.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운동의 정치’는 그 나름의 정당성을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할 오늘에도 여전히 운동과 이상의 정치가 지속되어도 좋은가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상의 정치가 아니라 ‘현실의 정치’라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현실주의 정치철학자로서 마키아벨리를 재평가하자는 것은 일종의 대증요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최 교수님의 베스트셀러입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문제의식을 마키아벨리의 입을 빌려 심화시켜 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며 했던 말을 기억하나요. ‘나는 워싱턴을 바꾸러 온 것이 아니라 정치를 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대통령이 되는 순간 정치를 안 하지요. 정치의 가치를 잘 이해하는 정치인이 결국 중요합니다. 다른 의견, 다른 세력과 대화하고 타협하고, 정치적 목적을 정치를 통해 설득하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 ‘정치와 통치의 기술’에 눈 떠야

● 이상과 윤리규범을 전제로 한 정치학의 전통은 오래돼 왔는데요.

“정치적 실천을 개척하는 지혜라고 할까요, 이젠 현실 정치의 얽히고설킨 것을 푸는 실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지혜나 정치적 실력은 선악의 이분법에선 나오지 않아요. 리얼한 정치의 본질과 역할을 직시해야 합니다. 한국 정치의 수준을 높이는 일은 정치와 철학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폭력과 악을 배척만 할 것이 아니라 정치의 중심에 놓고 정면으로 대화해야 합니다. ‘저항의 정치학’만으로는 이제 안 됩니다. ‘정치와 통치의 기술’에 눈을 떠야 합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적시하신다면.

“가치나 이념의 주장만 난무하고 정치는 없는 현실. 세종시가 그렇고, 4대 강이 그러하며, 천안함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치에 대한 오해, 강한 유토피아 지향성, 정치철학의 부재 등등…. 윤리규범으로서의 이념만이 과도하게 큰 소리를 내는 현상은 이제 마감할 때입니다.”  

듣고 보니 좌나 우, 진보와 보수 모두가 생각해 봐야 할 지적이었다. 최장집 교수는 인터뷰에서 최근의 지방선거 결과 등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 6·2 지방선거 결과를 어떻게 보나요.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의 결과가 보수 한나라당의 일방적 승리였습니다. 민주주의에서 일방적으로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이번 지방선거는 그 균형을 제도 안에서 이룬 결과로 봅니다. 한국 유권자의 투표 패턴이 최소한 민주주의의 규범을 중요한 가치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요.”

● 무상급식이 핵심 이슈였는데.

“복지 이슈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이자 발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복지의 측면에서 하나의 단편적 이슈였지요. 나는 교육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교육을 통한 계층적 상향 이동이 상당히 어려워졌어요. 옛날엔 있던 상향 이동의 사다리가 없어져서 경쟁은 비교할 수 없이 강해졌지만 혼란과 불확실성이 크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를 불안정하게 하고 예측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거죠.”

● 진보 성향 교육감도 많이 당선됐습니다.

한국의 교육이 보수적 틀로 강하게 짜여 있었어요. 그 속에서 부패도 자랐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보수의 독점체제가 진보와의 경쟁체제로 들어간 것은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교육의 내용을 너무 과격하게 바꾸려고 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봅니다.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을 제대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지요.”

●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야당의 역할은.

“지방선거 결과는 야당을 긍정적으로 본 게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발로 보입니다. 야당에 대한 적극적 지지가 아니라 소극적 지지입니다. 야당이 여기에 안주하면 희망이 없을 겁니다. 이익집단적 성격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계층으로 기반을 넓혀야 합니다.”

● 정부·지자체의 세금 운용이 문제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누굴 뽑고 임명하는 데만 관심이 높았습니다. 그들이 국가 예산을 어떻게 쓰는지를 이젠 정밀하게 감시해야 합니다. 이것만큼 중요한 정치적 이슈도 없지요. 광화문광장을 걸어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세금을 이렇게 써선 안 됩니다. 세종시·4대 강·천안함 문제 등을 모두 세금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 최 교수의 대표작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24쇄가 최근 출간됐습니다. 개정판을 더 내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뭔가요.

“진보·보수 정부를 다 경험하면서 이제 정권의 변화를 따라가지 않고도 일반화할 수 있는 한국 정치의 특징을 짚어낼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 그렇게 정리해 낸 한국 정치의 특징은 뭔가요.

정당 체계가 다른 부문의 발전에 비해 극히 지체돼 있다는 점이지요.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하게 하는 장애 요인입니다. 엘리트가 아닌 서민대중, 소외계층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화는 되었지만 민주화 이전의 구질서, 즉 한국사회가 만들어졌던 구조는 변화하지 않고 있지요. 이 말은 좌파 정당이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의 사회적 세력으로는 존재하는데 정치적으로는 대변되지 못하는 구조, 거기서부터 발생하는 문제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보수정당의 실력도 문제가 많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하고 통합해 내는 데 편협하고 무능력한 겁니다. 실력을 갖춘 미래의 정부로서 정당이 발전해야 합니다.”

● 후학들을 위한 조언은.

“한국의 엘리트들은 너무 바쁩니다.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지요. 각종 자문회의나 프로젝트 등의 사회적 참여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 지식인들은 공부에 더 열심이어야 합니다. 교수는 교수로서의 자기 직분에 충실해야 합니다.”

j 칵테일 >> 마키아벨리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16세기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정치이론가이자 역사학자다. 그를 기점으로 정치철학은 근대와 전근대로 나뉜다. 대표작 『군주론』을 통해 그는 근대 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핵심은 도덕과 정치의 분리다. 정치를 윤리 규범과 다른 영역으로 파악했다. 그 이전엔 신앙과 윤리가 정치의 자리를 대신했다.

마키아벨리만큼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도 없다. 특히 우리에게는 권모술수와 동의어로 쓰일 만큼 나쁜 이미지가 퍼져 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동기가 선하다고 해서 결과도 선한 것일까. 역사는 그렇지 않은 사례를 많이 보여준다. 고상한 목적이 권력과 결탁돼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중세 종교재판, 프랑스 혁명기의 자코뱅 테러, 근대의 공산주의 혁명이 그렇다. 오히려 ‘더러운 손’이 실제로는 깨끗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아이러니가 일어나는 게 정치 현실이다. 



그의 이론이 쉽지만은 않다. 『군주론』의 키워드인 ‘비르투(virtu)’ 같은 용어부터 간단하지 않다. 최장집 교수는 ‘비르투’를 단순히 ‘덕성’으로 번역할 수 없다고 했다. 용기·대담성·결단력·의지·능력·교활함·위용 등으로 그때그때 다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배영대기자) 

10. 07. 25.   

P.S. 인터뷰를 읽으며 든 단상은 두 가지다. 하나는 레오스트라우스와 최장집. 짐작에 "미국 시카고대 유학할 때도 정치철학을 틈틈이 수강하거나 청강했어요."라고 할 때 그가 수강하거나 청강한 강의는 레오스트라우스나 그 제자들의 강의였을 것이다(부시 행정부 시절 레오스트라우스는 네오콘의 이론적 지주로 자주 도마에 올랐다). 마침 레오스트라우스가 엮고 공저자로 참여한 <서양정치철학사>(인간사랑) 1권이 절판됐다가 최근에 다시 나왔는데, 이 시리즈의 '마키아벨리' 편은 의당 레오스트라우스가 집필했다. 최장집 교수의 강의가 책으로 묶여 나오면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최장집과 강유원. <인문 고전 읽기>에도 <군주론> 읽기가 포함돼 있지만, 강유원의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가 비슷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마저 나오게 되면 역시나 최장집 교수의 강의와 비교해볼 수 있겠다. 사실 두 사람은 오래 전에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민음사, 2001)에서 대담을 나눈 바 있기에 구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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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0-07-25 18:04   좋아요 0 | URL
레오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받았다면...ㅎㄷㄷ... 니체 철학이 이렇게도 공포스럽게 변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로쟈 2010-07-25 18:49   좋아요 0 | URL
마키아벨리나 니체나 레오스트라우스나 엘리트주의란 점에선 다 공통적이죠...

Daniel 2010-07-26 00:33   좋아요 0 | URL
선생님 글 덕분에 춘아, 춘아~ 책에 최장집 교수님 관련 글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최장집 교수님 책은 구입할 수 있는 것은 되도록이면 다 구입하려고 노력하는데; 강유원 선생님과의 대담을 전에 인터넷에서만 봤고 출처가 어딘지를 몰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덕분에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책을 구입할까 하고 검색해봤는데 절판이군요... 출판사에 전화하면 재고라도 있을런지 모르겠네요.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절판된 책들 중에서는 출판사에 전화하면 반품되었던 재고라고 있는 경우가 가끔 있더군요. 물론 상태는 완전 새것(?)일 순 없지만 경우에 따라선 반품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좋은 상태의 책들도 더러 있던데...
보통 절판되었다고 나오면 언제까지 출판사 창고(?)라든지 본사에 반품 등 재고가 남아 있을까요. 여쭤보는 이유는 당장에 돈은 없는데 책은 절판되었고... 그런데 출판사에는 이렇게 반품 명목으로 들어온 재고가 있는 경우에 고민을 좀 하게 되거든요... 당장 그거라도 구입하지 않으면 다시는(?) 혹은 당분간은(?) 못구할텐데;;; 뭐 이런 심리인데 반품 등 재고의 생명주기(?)를 알게 되면 조금 여유를 가지고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여줘봅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10-07-26 00:39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내용이 아닌데, 짐작엔 출판사마다 다 다를 겁니다. 창고 사정이 다 다를 테니까요. 절판된 책은 요즘은 (인터넷)중고서점이나 헌책방을 알아볼 수밖에 없고, 저 같은 경우는 도서관에서 대출해봅니다(필요한 부분은 복사하고요). 어렵게 구한 책인데 또 개정판이 나오는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에 너무 매달리진 않아도 될 듯해요...

Daniel 2010-07-26 00: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물론 복사가 좋긴 한데(절판되었으니 합법적으로(?) 복사...) 복사해두면 이상하게 더 보질 않게 되고 보관하기도 힘들고...
아무튼 너무 매달리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마이리스트가 바뀌어서 바로 들어와봤더니 이리 빨리 답을 얻게 되어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십시오.

노이에자이트 2010-07-28 15:55   좋아요 0 | URL
최장집 씨가 영향을 받았다면서 자주 언급하고 권하는 저서는 아담 쉐보르스키,E.E.샤츠슈나이더,로버트 다알 등 주로 자본주의하에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민주정치와 정당정치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탐구한 정치학자들입니다.저도 이들 중 앞의 두 사람은 최장집씨 덕에 알게 되었지요.최장집 씨가 마키아벨리를 언급한 것은 요즘 우리나라의 진보주의자들이 너무 운동권 정서에서 못벗어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정치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좀 더 뿌리부터 탐구해 보자는 뜻에서 한 것 같습니다.요즘 신문사와의 대담에서 부쩍 진보주의의 교조주의 성향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구요.이 대담도 평소 최장집 씨의 그런 지론을 반복하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