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한 달 못 되게 남겨놓은 탓에 방안은 책으로 거의 포화상태다. 지난주 교수신문 기사를 스크랩해놓으려고 두리번거리다 김욱동 교수의 <번역과 한국의 근대>(소명출판, 2010)도 10분만에 찾았다. 손 닿는 곳에 놓았다는 책도 그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 글을 쓴다는 나 자신이 신기하다(가끔은 차포 떼고 장기를 두는 기분이다). 여하튼 책을 찾았으니 관련 리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교수신문(10. 07. 19) “번역은 근대화의 빗장 연 열쇄” … 金億, 번역사의 분수령이었다  

2007년 한국번역비평학회가 출범한 이래 번역에 대한 관심 역시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번역의 역사를 훑는 통사적 접근은 드물었다. 이런 와중에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가 번역과 관련한 두 권의 책 『번역과 한국의 근대』(소명출판), 『근대의 세 번역가』를 상재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두 책은 근대와 번역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번역과 한국의 근대』는 번역과 한국의 근대가 일본과 달리 ‘重譯된 근대’란 익숙한 주장을 펼친다. 『근대의 세 번역가』는 서재필, 최남선, 김억 등 근대에 활동했던 세 명의 번역가를 통해 중역에서 직역으로 넘어가는 근대 번역의 모습을 인물에 집중해 풀어냈다.

번역은 한국 근대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번역과 한국의 근대』는 갑오개혁에서부터 기관지 <해외문학>이 발행되던 1920년대 말엽까지 한국번역의 역사를 육하원칙에 따라 심도 있게 밝힌다. 김 교수에 따르면 번역은 일본과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근대화의 빗장을 열어젖히는 열쇄가 됐다. 때문에 만약 서구 문헌이 번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한국의 근대화는 뒤늦게 이뤄졌거나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을 것이란 주장이다.

이중번역이 근대를 왜곡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근대를 ‘중역한 근대’로 결론짓는다. 이 같은 주장은 일본의 두 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의 대담집 『번역과 일본의 근대』(1998), 리디어 류(Lydia H. Liu)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의 『통언어적 실천』(1995)이 모태가 됐다. 특히 류 교수는 중국이 서양 문헌을 번역함으로써 근대화를 이룩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의 근대를 ‘번역한 근대’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중역한 근대’가 비롯되는 지점이다. 한국의 번역은 대개 서구 언어에서 일본어를 거쳐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이중 번역이었다. 심지어 서구 언어에서 일본어와 중국어를 거치거나 제3세계 언어에서 서구 언어와 일본어를 거치는 삼중 번역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근대화는 굴절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자못 안타깝다는 지적이다.

일본인 번역가나 중국인 번역가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번역해 놓은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때론 한국에는 필요 없거나 오히려 해롭기까지 한 문헌까지 무작위로 들어오게 됐다. 이것은 일찍이 1909년 1월 <대한매일신보>의 논설 ‘번역가에게 일고함’에서도 지적된 사항이다. 번역자는 서양 문헌을 번역하되 반드시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유길준 역시 서구 문물의 맹목적인 수용을 경계하면서 겉모습만 따르는 개화를 ‘개화의 병신’이라고 날카롭게 꼬집는다. 중역의 문제는 언어의 문제가 아닌 근대 사상이 문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중역의 문제를 당시 어쩔 수 없었던 차악의 선택이라 변호한다. “만약 이러한 중역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어두운 중세의 터널을 지나는 데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며 “‘중역한 근대’가 바로 우리 근대의 모습이더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김욱동 교수의 두 책은 한국번역사 연구에 선구적 역할을 한 김병철 교수의 『한국근대번역사연구』(1975), 『한국서양문학이입사연구』(1980)에 맥이 닿아있다. 그러나 기존의 번역 이입사 연구는 자료 수집 차원에 머물러 있었던 게 사실이다. 김욱동 교수는 김병철 교수가 이룩한 작업을 토대로 번역과 근대화의 상관관계를 규명함으로써 기존 성과를 한 단계 구체화 한다.

공리성의 굴레 벗어난 ‘김억의 번역’ 
『번역과 한국의 근대』가 근대 계몽기 번역이 한국 근대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규명한다면 『근대의 세 번역가』는 한국 근대 문학을 본 궤도에 올려놓는 데 가장 공헌한 세 번역가를 집중 조명한다. 세 번역가는 바로 松齋 서재필, 六堂 최남선, 岸曙 김억이다.

김 교수는 이들 세 번역가를 역사의 시대 구분에 빗대 국내 번역사에서 서재필은 고대, 최남선은 중세, 김억은 근대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서재필을 번역가로 부르는 데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분명 문명개화를 부르짖는 과정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역설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한 단편적이나마 직역을 피하고 의역을 주장하는 등 나름의 번역이론을 전개했다.

최남선은 신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비록 중역의 형식을 빌려서나마 외국문학 작품을 한글로 번역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少年>(1908)과 <靑春>(1914) 등을 창간해 서구 문학작품을 집중적으로 번역해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작품 창작 과정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번역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 번역사는 김억을 분수령으로 중역에서 직역으로 전환한다. 김억은 특히 프랑스 상징주의 시와 러시아, 영국의 시를 집중적으로 번역했으며 1921년 한국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를 출간한다. 김 교수는 김억의 번역시가 한국 근대시에 미친 영향을 천착한다.

한국 최초의 순수문예지 <창조>(1919)와, <폐허>(1920)의 탄생에 산파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근대 문학으로 하여금 공리성의 굴레를 벗어나게 했다. 문학의 심미성과 쾌락성에 좀 더 무게를 실은 김억의 번역시로 인해 공리성에 기울어져 있던 당시 문단은 어느 정도 균형점을 찾게 된다. “김억에 이르러 비로소 번역은 일본 식민주의 굴레에서 해방을 맞이하였다”는 결론이 가능한 이유다.

김 교수는 “1920년대 말엽 한국 번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외국문학연구회의 활동을 미처 다루지 못한 것은 이번 저술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며 과제를 남겼다. 1926년 가을 일본에서 외국문학을 전공한 유학생들이 결성한 외국문학연구회는 그 이듬해 기관지 <해외문학>을 간행해 한국의 번역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김 교수는 이들의 활동을 다룬 단행본을 계획 중이라며 다음을 기약했다.

국내 출간 도서 중 30퍼센트는 번역서가 차지한다. 그럼에도 국내 번역은 늘 오역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뇌의 무도』가 번역된 지 한 세기가 가까워 오는 지금 김 교수의 이 같은 작업이 국내 번역의 안정된 기반 구축에 한 계기가 될지 그 행보를 기대해 본다.(우주영 기자) 

10. 07. 25.    

P.S. <번역과 한국의 근대> 서문에서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지만, 두 가지 사항을 덧붙인다. 먼저, 김병철 교수의 공적. "나는 이 책을 쓰는 데 누구보다도 기병철 교수님한테서 진 빚이 무척 크다. 교수님께서는 <한국근대번역문학사연구>(1975)를 집필하시어 한국번역사 연구에 그야말로 선구적인 역할을 하셨다."고 저자는 정당하게 지적한다. 일반 독자에겐 그냥 '자료집'처럼 여겨질 테지만 "한국번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마치 금강석 원석을 보관하고 있는 창고"와 같은 책이다. 러시아문학 번역사와 관련하여 나도 참고한 적이 있는데, 아쉬운 것은 도서관에서나 이용할 수 있는 절판된 책이라는 점. 시중에 남아있는 건 속편으로 나온 <한국현대번역문학사>(상, 하) 정도다(그마저도 알라딘에서는 품절이다). 다시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어둔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제목에서 이미 풍기고 있지만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데 자극이 된 책 두 권. 기사에서도 "일본의 두 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의 대담집 『번역과 일본의 근대』(1998), 리디어 류(Lydia H. Liu)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의 『통언어적 실천』(1995)이 모태가 됐다."고 밝혔다. 저자는 두 사람의 책이 "내 책의 어버이"라고까지 했다. 한데, 특이한 건 <통어적 실천>이란 책의 번역서가 '리디아 리우'의 <언어횡단적 실천>(소명출판, 2005)이라고 나와 있음에도 참조되지 않은 점이다(참고문헌에도 빠져 있다). 저자가 번역서의 존재를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모양새다. 전자일 걸로 짐작되지만, 문제는 출판사쪽. 다른 곳도 아니고 같은 출판사에서 낸 책의 서지사항을 "리디어 류의 <통언어적 실천>"이라고 기재되도록 '방치'한 건 너무 무심한 처사다. 그들은 자기가 무슨 책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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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지 2010-07-2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소명은 참 좋은 출판사인데... 마지막 부분은 좀 .. 희비극적이네요.

로쟈 2010-07-26 01:07   좋아요 0 | URL
주로 독자의 무관심을 탓하게 되는데, 가끔씩 출판사들도 무심할 때가 있지요.^^;

2010-07-26 0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6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6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