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내가 좋아하는 등려군의 노래 '해운'(http://www.youtube.com/watch?v=wYyzMuVa_qw)을 듣다가, 또 그 이상으로 좋아하는 매염방의 '석양지가'(http://www.youtube.com/watch?v=un8V4giKiR8)를 연거푸 들었다(나는 애조를 띠면서도 박력 있는 노래들을 좋아하는가 보다). 어제 한 지인의 문상을 다녀온 탓인가 본데, 노래를 듣다 보니 또 매염방을 나보다 좋아했던 친구도 생각난다(더불어 감정은 얼마나 '추상적'인가란 생각도 다시 든다). 그래서 서재를 검색해보다 '잊혀진' 페이퍼를 읽게 됐다. '매염방의 죽음을 애도함'(http://blog.aladin.co.kr/mramor/429988)인데, 2003년말에 쓴 것을 2004년 봄에 정리해놓은 것이다. 세사르 바예호 시도 곁다리로 붙여놓았는데, 내친 김에 따로 분리시켜놓는다. 일종의 '리바이벌'이다.  

지난주말에 산 정현종의 산문집 <날아라 버스야>에 실린 ‘숨막히는 진정성의 시: 바예호 읽기’를 읽으며, 오래 잊고 있었던 이 페루의 시인 세사르 바예호(1892-1938)를 다시 떠올렸다. 그의 시선집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문학과지성사)가 바로 5년 전인 1998년 12월에 나왔었고, 나는 그해 겨울을 레바나스를 읽으며, 바예호를 읊조리며 보냈다(나는 스페인어권 시인들 가운데 미겔 에르난데스와 바예호를 좋아한다). 평생을 경제적 고통과 병마로 시달리다가 죽은 시인 바예호는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라고 정의하는 그의 시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적은 없다...”이다. “호이 메 구스타 라 비다 무초 메노스(Hoy me gusta la vida mucho menos)...”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적은 없다.
항상 산다는 것이 좋았었는데, 늘 그렇게 말해왔는데.
내 전신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내 말 뒤에 숨어 있는
혀에 한 방을 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엎어져서라도 어쨌든 산다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일 거야.
“그리도 많이 살았건만 결코 살지 않았다니! 그리도 많은
세월이었건만 늘, 언제나, 항상, 항시 세월이 기다린다니!”
이렇게 나는 늘 말해왔고 지금도 말하니 말이다.


Hoy me gusta la vida mucho menos,
pero siempre me gusta vivir: ya lo decía.
Casi toqué la parte de mi todo y me contuve
con un tiro en la lengua detrás de mi palabra.

Hoy me palpo el mentón en retirada
y en estos momentáneos pantalones yo me digo:
¡Tánta vida y jamás!
¡Tántos años y siempre mis semanas!...
Mis padres enterrados con su piedra
y su triste estirón que no ha acabado;
de cuerpo entero hermanos, mis hermanos,
y, en fin, mi ser parado y en chaleco.

Me gusta la vida enormemente
pero, desde luego,
con mi muerte querida y mi café
y viendo los castaños frondosos de París
y diciendo:
Es un ojo éste, aquél; una frente ésta, aquélla... Y repitiendo:
¡Tánta vida y jamás me falla la tonada!
¡Tántos años y siempre, siempre, siempre!

Dije chaleco, dije
todo, parte, ansia, dije casi, por no llorar.
Que es verdad que sufrí en aquel hospital que queda al lado
y está bien y está mal haber mirado
de abajo para arriba mi organismo.

Me gustará vivir siempre, así fuese de barriga,
porque, como iba diciendo y lo repito,
¡tánta vida y jamás! ¡Y tántos años,
y siempre, mucho siempre, siempre, siempre!



한때 인생이 아주 싫었던 날들에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버텼다. 에밀 시오랑의 말대로, 자살에 대한 관념은 자살을 유예시킨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적은 없다!”고 투덜거리면, 어느새 삶은 그럭저럭 살 만한 것이 된다. 그래서 말하게 된다. “엎어져서라도 어쨌든 산다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일 거야.” 내가 지난봄에 그 친구에게 바예호를 읽어주었더라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한해가 가고 있다. 하지만, 늘, 언제나 항상, 항시 또 다른 한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건 산 자들의 몫이다. 저무는 해에 삶을 놓음으로써 자유를 얻은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 내 친구의 명복을 빌고, 매염방의 명복을 빈다(이 도톰한 여가수 덕분에 그 친구가 좀 덜 심심할까?).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죽은 어린 남매의 명복을 빈다. 전철에 몸을 던져 우리가 한국인임을 부끄럽게 한, 한 외국인 노동자의 명복을 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지진으로 숨진 수만의 이란 사람들...  



바예호의 사후에 발표된 시들 가운데 한편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전투가 끝나고,
한 사람이 죽은 전사에게 다가왔습니다.
“죽지 말아!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러나,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갑니다.

두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우리를 두고 가지마! 힘을 내! 다시 살아나!”
그러나,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갑니다.

스물, 백, 천, 오십만의 사람들이 와서 절규합니다.
“이렇게도 많은 사랑도 죽음 앞에서는 힘이 없구나!”
그러나,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갑니다.

수백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애원했습니다.
“형제여, 여기 있어줘!”
그러나,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갑니다.

그러자, 전세계 만민이 몰려와 그를 에워쌌습니다.
슬픈 시신은 감동이 되어 그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맨 처음에 온 사람을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걸어갔습니다.

- <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멀리해다오.12>  

03. 12. 30/ 09. 0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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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y me gusta la vida mucho menos
    from Astraea's Say about,,, 2009-02-23 21:11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적은 없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Hoy me gusta la vida mucho menos, - César Vallejo pero siempre me gusta vivir: ya lo decía. Casi toqué la parte de mi todo y me contuve con un tiro en la lengu...
 
 
노이에자이트 2009-02-2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염방 주연 영화 중에 <가와시마 요시코>가 있어요.10여년전 허름한 비디오 테이프 파는 가게에 있더라구요.중국에서 체포되어 전범으로 교수형 당했는데 그 영화 나올 때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이라 어떻게 가와시마를 그렸을까 궁금했지요.그러나 머뭇대고 사지는 않았는데 결국 지금까지 못보고 있어요.

로쟈 2009-02-22 00:07   좋아요 0 | URL
필모그라피에 나오지 않는 영화네요. 출시명이 그런가요?..

노이에자이트 2009-02-22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비디오로는 그냥 히라가나 발음이 아니라 우리말 발음으로 <천도방자>로 나왔더군요.원래는 청나라 왕녀인 중국인이예요.관동군 장교의 내연녀 노릇도 하고...꽤 드라마틱한 삶을 누렸지요.매염방이 가와시마 역을 했어요.유덕화도 나오고...

로쟈 2009-02-23 21:3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대부분 오락영화에만 나와서요...^^
 

고교 독서평설 2월호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괴테문학에 대한 '갑론을박'을 다루려고 했으나 셰익스피어의 경우와는 달리 국내에 소위 '괴테 비판서'가 소개돼 있지 않아서(독일에서도 드물 듯싶긴 하다) <파우스트>에 대한, 보다 구체적으로는 주인공 파우스트의 형상에 대한 논란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실은 괴테의 고전주의 드라마 <이피게니에>와 같이 다루려고 관련자료를 잔뜩 읽었으나 <파우스트> 얘기만으로 주어진 지면이 다 차버렸다(나중에 따로 다루어야 할 듯싶다). 고등학생을 독자로 고려한 글이어서 작품의 줄거리도 자세히 다룬 탓이다.   

고교 독서평설(09년 2월호) 파우스트의 구원은 정당한가? 

괴테 문학의 대명사 『파우스트』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도다.”란 구절과 함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파우스트』는 괴테(1749~1832)가 전 생애를 걸고 완성한 필생의 역작이자 독일 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16세기경에 살았던 기인(奇人)이자 학자인 파우스트에 대한 민간의 전설에 흥미를 느낀 괴테가 처음 집필을 시작한 해는 1773년이다. 그리고 1만 2,000행이 넘는 이 대작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1831년으로, 그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8개월 전이었다. 작품의 완성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파우스트』가 괴테 문학의 대명사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파우스트의 방황과 구원 
‘비극’이라는 부제가 붙은 방대한 분량의 『파우스트』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흔히 제1부를 ‘학자 비극’과 ‘그레트헨 비극’이라 부르고, 제2부는 ‘헬레나 비극’과 ‘지배자 비극’이라 부른다. '학자 비극’은 당대 최고의 학자 파우스트가 자신의 늙어 버린 육신과 학문 수준에 절망하던 차에 메피스토펠레스(악마)의 제안에 따라 계약을 맺는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약 조건은 현세에서 메피스토를 종으로 삼는 대신, 저세상에 가서는 그의 종이 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상에서는 악마의 힘을 빌려 자신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신, 죽은 뒤에는 영혼을 내주겠다는 것이 계약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파우스트의 절망은 무엇이었나? 자신의 서재에서 늙은 파우스트는 이렇게 한탄한다. “아!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심지어는 신학까지도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철저히 공부하였다. 그러나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는 가련한 바보. 전보다 똑똑해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그는 평생에 걸친 공부를 통해, 가장 내밀한 곳에서 이 세계를 총괄하는 힘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했지만 그러한 앎에 도달하지 못한다. 게다가 자신의 서재가 ‘감옥’에 불과했던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그런 의문은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세상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부족해도 참아라! 부족해도 참아라! 이것이 영원한 노래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앎을 위해서 젊음을 희생하고 욕망을 억제했지만 이젠 더 이상 참지 못한다.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을 빌리면, 그는 “이론이란 모두 회색빛이고 푸른 건 인생의 황금 나무”라는 깨달음에 뒤늦게 조바심을 낸다. 이제껏 세상은 그에게 인식의 대상이었으나 이제 그는 세상을 경험해 보려 한다. 그런 파우스트가 모든 소망을 들어주겠다는 메피스토의 제안에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렇게 메피스토가 마녀의 물약으로 파우스트에게 젊음을 선사하고, 다시 청춘을 되찾은 파우스트가 순박한 처녀 그레트헨을 유혹하여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 ‘그레트헨 비극’이다. 여기서 그레트헨은 파우스트의 유혹에 빠져 어머니와 오빠를 죽게 만들고, 파우스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마저 물에 빠뜨려 죽인 죄로 참수형을 받게 된다. 하지만 감옥으로 찾아와 도망을 권유하는 파우스트의 제의를 거부하며 자신의 죄를 참회한 덕분에 영혼만은 구원을 얻는다.         

2부의 무대는 시공간적으로 더욱 확장된다. ‘헬레나 비극’의 배경은 중세의 궁정으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도움을 얻어서 헬레나를 지하 세계에서 불러내 결혼하고 아들도 낳는다. 헬레나를 그리스 어로 바꾸면 ‘헬레네’인데, 그녀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절세의 미녀다. 헬레나와 결혼한 파우스트는 지극한 행복감을 맛보는 듯싶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아들 오이포리온이 날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무모한 시도를 하다가 죽고 만다. 헬레나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파우스트를 떠나고, 다시 파우스트 혼자 남게 되는 것이 ‘헬레나 비극’의 줄거리다. 고대 그리스의 여인 헬레나와 결혼한다는 설정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이 대목은 파우스트의 환상을 무대로 옮겨 놓고 있다.  

마지막 ‘지배자 비극’에서 파우스트는 황제를 도와 전쟁에서 공(功)을 세운 덕분에 거대한 땅을 하사받고 간척 사업을 벌인다. 지금까지의 온갖 영화(榮華)에도 만족할 줄 몰랐던 파우스트는 이 지상의 ‘지배권’을 획득하는 일을 마지막 과업으로 여기고, 바다를 막아 거대한 간척지를 만든다. 파우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결실이 없는 파도는 그 비생산성을 퍼뜨리려 사방팔방으로 접근해 온다. …(중략)… 연이은 파도는 힘에 넘쳐 그곳을 지배하지만, 물러간 뒤엔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다. 그것이 날 불안케 하고 절망으로 이끌었도다! 이 참을성 없는 원소의 맹목적인 힘이라니! 그리하여 내 정신은 감히 비약을 시도하려는 것. 여기서 나는 싸우고 싶다. 이것을 이겨 내고 싶다.”  

파우스트가 이겨 내고자 하는 것은 영원한 반복을 통해서 모든 것을 무(無)로 만들어버리는 파도, 곧 자연의 지배력이다. 그는 이 자연과의 싸움을 위해서 거대한 제방 공사를 기획하여 백성의 노동력을 쥐어짠다. 파우스트가 꿈꾸는 것은 그렇게 해서 얻으려고 하는 ‘자유로운 땅’이고 ‘천국’이다. 과연 그가 그리는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인가? 

“밖에선 성난 파도가 제방을 때린다 해도, 여기 안쪽은 천국 같은 땅이 될 거야. 파도가 세차게 밀려와 제방을 갉아먹는다 해도 협동하는 마음이 급히 구멍을 막아 버릴 게다. 그렇다! 이 뜻을 위해 나는 모든 걸 바치겠다. …(중략)…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위험에 둘러싸이더라도 여기에선 남녀노소가 모두 값진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군중을 지켜보며,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 싶다. 그러면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파우스트는 지상에서 최고의 순간을 맛본다면 자신의 삶을 가져가도 좋다고 메피스토와 내기를 걸었고, 이 대목에서 마침내 그러한 순간에 도달한다. 이로써 그는 죽음을 맞이하고, 메피스토는 계약에 따라 그의 영혼을 지옥으로 수습해 가려 한다. 하지만 천사들이 내려와 “영원히 갈망하며 애쓰는 자, 그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라고 노래하며 파우스트의 영혼을 천상으로 데려간다. 이것이 ‘지배자 비극’의 결말이자 『파우스트』의 대단원이다.  

파우스트는 구원받을 만한가
장엄한 합창과 함께 마무리되는 이 마지막 장면은 분명 감동적이지만 『파우스트』를 구성하는 네 가지 ‘비극’을 따라온 독자라면 한 가지 의문을 떨치기 힘들다. ‘파우스트의 구원은 과연 정당한가?’라는 의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지배자 비극’이다. 이 대목에서 파우스트는 자신이 기획한 과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강압적인 통치자 또는 권력자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는 언덕 위 오두막집이 간척 사업에 방해가 되자 참을 수 없이 괴로워하며 메피스토에게 ‘처리’를 부탁한다. 그러자 메피스토가 보낸 부하들은 집주인인 노부부를 강제로 끌어내려다가 오두막을 통째로 불태우고 만다. 노부부가 그 화염에 희생된 건 물론이다. 비록 파우스트는 이 일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 눈이 멀게 되지만, 그렇다고 그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그의 욕망은 이후에 더욱 거세게 불타오르지 않았는가!    

“밤이 점점 깊어 가는 것 같구나. 하지만 마음속엔 밝은 빛이 빛난다. 내가 생각했던 것을 서둘러 완성해야겠다. 주인의 말보다 위력이 있는 것도 없으리라. 여봐라, 하인들아! 모조리 자리에서 일어나거라! 내가 대담히 계획했던 일, 멋지게 이루어 다오. 연장을 잡아라. 삽과 괭이를 놀려라! …(중략)… 이 위대한 일 완성하는 데는 수천의 손 부리는 하나의 정신으로 족하리라.” 

이러한 독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파우스트는 자신을 ‘주인’이자 수천의 손을 부리는 ‘하나의 정신’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그의 영지에 속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하인’이자 ‘지체’가 될 것이다. 이것을 파우스트적 ‘영도자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록 그의 의도가 버려진 땅을 일구어 모든 사람을 위한 낙원을 만들려는 것이라지만, 그의 방법은 결코 윤리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았다. 파우스트적 지배자 형상이 20세기 나치 독일에서는 ‘영웅적 지도자’ 상의 모델이 되고, 동독에서는 민중 동원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과연 역사적 우연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지배자 비극’에 등장하는 개발 지상주의자 파우스트는 근대의 기획자이자 근대성의 화신이나 다름없다. 이때의 근대는 무한한 소유욕과 지배욕을 긍정하고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으로서의 ‘근대 자본주의’다. 이미 ‘학자 비극’에서 파우스트는 ‘그의 정신으로 가장 높고 가장 깊은 것을 파악하고, 자신의 자아를 온 인류의 자아로까지 확대시키는 것이 소망’이라 토로하였다. 그렇듯 무한히 팽창하려는 파우스트적 욕망을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국가적 차원에서 구현한 것, 그것이 바로 ‘근대 제국주의’ 아니던가.  

파우스트의 명령을 받고 세계를 일주하며 무역 거래와 약탈을 일삼아 부(富)를 챙겨 돌아온 메피스토의 이런 독백은 괴테가 통찰한 근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핵심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단 두 척의 배로 떠났던 우리가 스무 척이 되어 항구로 돌아왔다. 우리가 얼마나 큰일을 했는가는 싣고 온 짐을 보면 알 거야. 자유로운 바다에선 정신도 자유스러워지는 법, 사리 분별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중략)… 전쟁과 무역과 해적질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삼위일체인 것을.”   

그런 ‘수완가’ 메피스토를 감독관으로 하여 파우스트가 벌이는 최후의 사업이 대규모 제방 공사다. 하지만 그의 무절제한 욕망 추구는 곧 그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공사 중인 수로가 얼마나 길어졌는지 매일같이 보고하라고 명령하는 파우스트의 등 뒤에서, 메피스토가 인부들은 그 ‘수로(Graben)’를 ‘무덤(Grab)’이라 부른다고 중얼거리는 데서도 암시된다. ‘헬레나 비극’에서 파우스트가 꿈꾸었던 행복과 마찬가지로 ‘지배자 비극’에서 그가 꿈꾸는 지상 낙원 또한 한갓 주관적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으면서까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 파우스트는 과연 무엇을 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과연 파우스트의 영혼은 충분히 구원받을 만한가?   

괴테 자신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그는 『파우스트』를 완성하기 직전인 1832년 6월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파우스트의 구원을 위한 열쇠는 “영(靈)들의 세계에서 고귀한 한 사람이 악으로부터 구원되었도다. 언제나 갈망하며 애쓰는 자, 그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 그에겐 천상으로부터 사랑의 은총이 내려졌으니, 축복받은 무리가 그를 진심으로 환영하게 되리라.”라는 천사들의 합창에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작품의 서두에 놓인 〈천상의 서곡〉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라고 한 하느님의 말과 호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방황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파괴하였더라도 여전히 그 방황은 ‘노력’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그리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일까? 혹 다르게 생각해 볼 여지는 없을까?  

파우스트의 개발주의 VS. 메피스토의 허무주의
파우스트는 “내가 세상에 남겨 놓은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같이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지금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노라.”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자연의 허무에 맞서서 끝까지 어떤 ‘흔적’을 남겨 놓으려 한 것이 파우스트의 기본적인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파우스트의 죽음을 놓고 메피스토는 “어떤 쾌락과 행복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변화무쌍한 형상들만 줄곧 찾아 헤매더니, 최후의 하찮고 허망한 순간을 이 가련한 자는 붙잡으려 하는구나.”라고 평한다. 메피스토가 보기에 모든 창조는 결국엔 무(無)로 휩쓸려 가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영원한 허무를 더 좋아하며, 유위(有爲)보다는 무위(無爲)를 예찬한다.  

 

괴테의 시대 이후 두 세기가 흘렀다. 지금은 과연 파우스트의 개발주의와 메피스토의 허무주의 중 어떤 태도에 더 점수를 줄 수 있을까. 미국의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이 보여 주는 ‘인간 없는 세상’의 연대기가 참조가 될 수 있겠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사라진 바로 다음 날부터 자연이 ‘집 청소’를 하기 시작해서 곰팡이는 벽을 갉아 먹으며, 빗물은 못을 녹슬게 하고 나무를 썩게 한다. 그리하여 인간이 살던 집들은 50년이면 대부분 허물어지고, 습지와 강을 메워 만든 도시들은 물에 잠길 것이다. 300년 뒤면 세계 곳곳의 댐들이 무너지고, 1,000년 뒤엔 인간이 남긴 인공 구조물 가운데 도버 해협의 해저 터널 정도만 남아 있게 된다. 물론 과다하게 배출된 이산화탄소처럼 인간이 남긴 부정적 유산들이 모두 제거·정화되는 데는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테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지워질 것이다. 파우스트의 바람과는 달리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09.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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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7 2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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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7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7 2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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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7 2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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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21의 출판기사를 옮겨놓는다. 라울 힐베르크의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개마고원, 2009)를 다루고 있다. 역사서라고는 하나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과 맞물려서 '르포'처럼 읽히는 책이었다. 더불어, 우리 가까이에서 작동하고 있는 '파괴기계'를 눈여겨보도록 하는. 용산 참사는 그 징후가 아닐까. 섬뜩하고 섬뜩하다...  

  

한겨레21(09. 02. 09) 나치와 가자, 피해자는 가해자?

휴전 선언이 무색하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이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하늘만 뚫린 감옥’이라 불리는 가자지구에 이미 수백톤의 폭탄을 쏟아 부었고, 폐허가 된 도시는 수천 명의 무고한 사상자를 내며 생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나치 독일이 저지른 대학살의 피해 당사자였던 유대인 국가가 똑같은 ‘학살’의 가해자로 나선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미 영국의 한 유대계 의원은 이스라엘의 가자침공을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비유하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나치 독일과 이스라엘이 학살의 가해자로 등식화되는 것이다. 이 등식이 말해주는 것은 홀로코스트가 전적으로 히틀러만의, 혹은 독일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홀로코스트는 인류사에서 허다하게 자행된 대량학살(제노사이드)의 한 가지 사례다. 그렇지만 홀로코스트에 대한 성찰이 도달해야 하는 지점은 그 역사적 특수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넘어선 어떤 보편성이어야 한다. 그것이 홀로코스트에 관한 수많은 연구서들의 지향점일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보편성을 획득한 저작이 이미 오래전에 쓰였다는 사실. 최근에 출간된 라울 힐베르크(1926-2007)의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개마고원 펴냄)는 1961년 초판이 간행되어 ‘홀로코스트학’이라는 분야를 만들어낸 고전이다. 그리고 동시에 아직까지도 이를 넘어서는 저작이 없다는 기념비적인 책이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홀로코스트 연구서”란 평판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잠시 유대계의 젊은 정치학도 힐베르크의 행적을 따라가 본다. 1940년대 말 미 컬럼비아대학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저명한 정치학자 프란츠 노이만을 만나 ‘독일정부론’ 강의를 듣는다. 그리고 나치즘의 지배구조를 다룬 노이만의 대작 <베헤못: 나치즘의 구조와 실행, 1933-1944>를 탐독하게 된다. 노이만은 나치즘이 관료제와 군대, 대기업, 나치당이라는 4개의 독자적인 권력 블록으로 구성돼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이 이론은 나중에 힐베르크의 홀로코스트론에도 그대로 수용된다.  

‘나치의 유대인 파괴에서 독일 공무원의 역할’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힐베르크는 자신의 관심범위를 더 확장하여 ‘유럽 유대인의 파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한다. 정부(공무원)뿐만 아니라 나치당과 군대, 그리고 기업의 역할까지도 포괄해서 규명해보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을 실현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은 그가 워싱턴에서 얻게 된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미군이 접수한 나치 문서들 가운데 소련 문제와 관련된 자료를 선별하는 게 그의 일이었는데, 그가 맡은 자료가 책꽂이로 무려 8km에 이르렀다고 한다.   

홀로코스트를 최초로 연구한 학자는 아니었지만 힐베르크가 이 분야의 ‘학장’이란 칭호까지 얻게 된 배경은 바로 이런 기록보관소 작업이었다. 그보다 더 많은 자료를 섭렵한 연구자가 없는 것이다. 그는 나치즘의 각종 행정기구들이 만들어낸 방대한 문서들을 1940-50년대에 내내 수기로 베끼고 원고를 쓰고 타이핑을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2단 교정지 800장 분량의 <유럽 유대인의 파괴> 초판이었다. 1933년에서 1945년 사이에 독일 안팎의 ‘파괴의 장(場)’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사건을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그는 자부했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의 분량뿐만 아니라 그가 내보인 통찰에서도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 통찰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의 구조를 밝혀낸 점. 힐베르크가 보기에 그것은 일회적인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연속적 ‘과정’이었다. 유대인의 개념이 정의되었고, 이어서 유대인의 재산이 약탈되었으며, 유대인이 게토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유대인을 절멸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것을 힐베르크는 ‘파괴과정’이라고 부르며 여기에 참여한 집합적 총체를 ‘파괴기계’라고 명명했다. 그가 보기에 특정기관이 특정과제의 실행을 주도한 적은 있어도 전체 과정을 지휘하고 조종한 기관은 없었다. 이로부터 그가 얻어낸 두 번째 통찰은 홀로코스트가 어떤 의도나 계획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 그에 따르면, “1933년에는 어느 관리도 1938년에 취해질 조치를 예견할 수 없었고, 1938년에는 그 누구도 1942년 사태의 윤곽을 그려볼 수 없었다. 파괴과정은 한단계 한단계 실행된 작전이었고 행정은 한 단계 앞 이상을 내다볼 수 없었다.”   

그러한 연속적 과정에서 독일의 근대적 관료제와 군대, 경제계와 나치당은 각각 어떤 일을 했던가? 행정관리들은 파괴과정의 초기단계에서 나치의 반유대적인 법령을 생산했다. 유대인의 개념을 정의하고 그들의 재산을 강탈했으며 유대인 게토화를 개시했다. 그리고 독일군은 학살작전의 전개와 학살수용소로의 유대인 이송을 담당했다. 경제 및 금융계는 유대인 재산의 강탈과 강제노동, 가스학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나치당은 독일인과 유대인 간의 복잡한 관계와 관련한 모든 문제에 관여했다. 요컨대, 유대인 파괴는 이러한 포괄적인 행정기계의 산물이었으며, 대규모 인간 집단을 단기간 내에 죽이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독일 관리들은 기괴할 정도로 놀라운 문제해결 능력을 발휘하면서 목표에 이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아냈다.   

나치즘의 파괴기계에는 사실상 독일의 주요 기관들이 모두 망라돼 있기 때문에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그 기계의 부속물이 될 수 있었다. 심지어 힐베르크는 유대인 자치기구와 학살센터의 유대인 노동대, 그리고 체념한 상태로 순순히 가스실로 향한 유대인들까지도 학살의 효율적인 진행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파괴기계에 포함시켰다. 그 많던 유대인의 이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힐베르크에 따르면 대부분은 중립을 지키며 일상에 몰두했다. 그렇게 악은 일상화되었고 500만의 유대인이 가스실의 재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지금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일상화된 공습 속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또 다른 ‘유대인’이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떼잡이’로 새롭게 정의된 용산 철거민 농성자들이 경찰의 강압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화재로 숨졌다. 이런 것이 홀로코스트의 보편성일까? 

09. 02. 02.  

P.S. 생각해보면, 노이만/힐베르크가 말하는 나치즘의 네 가지 권력블록은 우리에게도 적용가능한 것 아닐까? 관료제와 군대, 대기업, 나치당에서 군대 대신에 아마도 수구언론이 들어갈 수 있으리라. 무서운 것은 굳이 어떤 의도나 계획 없이 일상적인 파괴기계(행정기계)의 작동만으로도 파국은 일어난다는 점이다. 일상화된 악은 그렇게 영혼을 잠식하며 우리를 죽음으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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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09-02-03 13:38 
    "나치와 가자, 피해자는 가해자?" - 한겨레21
 
 
노이에자이트 2009-02-0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헤못behemoth이라는 표기가 좀 이상하네요.우리말 표기가 그런가요? 노이만의 제자인 피터 게이 책은 꽤 번역이 되었는데 정작 노이만의 책은 번역이 안 되어 있어서 아쉽습니다.

로쟈 2009-02-03 22:07   좋아요 0 | URL
성서의 표기가 '베헤못'입니다. 게이도 노이만의 제자였군요. <베헤못>은 번역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주 주중에 인터넷 카페 '비평고원'의 신년모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알라딘에 서재가 생기기 전까지 주로 활동하던 공간이다. 주인장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 활동하고 있는 멤버이기도 하고. 전체모임은 아니고 '핵심들'만 모이는 자리였는데, 사실 전체 모임을 갖는다고 해서 더 많이 모이는 것도 아니다. 늦게 합석한 탓에 몇 마디 거들기만 하고 아래 사진에는 끼지 못했다. 오프라인에서 아주 가끔씩밖에 보지 못하지만 친숙한 얼굴들이어서 반갑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대안적 비평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인터넷 비평카페 ‘비평고원’의 핵심 회원들이 신년회를 겸해 오랜만에 지난 21일 저녁 서울 신촌에 모였다

경향신문(09. 01. 28) [2009 문화가 희망이다](7) 인터넷 비평공간 ‘비평고원’

계급장 떼고 실력으로 논하자. 인터넷 비평카페 ‘비평고원’(http://cafe.daum.net/9876)은 인터넷 무림의 고수들이 학벌이나 나이 등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필력으로만 자웅을 겨루는 공간이다.

“온라인이기에 오히려 적나라하게 자신을 보이는 논쟁이 가능합니다. 학교에서는 체면을 따지느라 선배를 대놓고 비판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여기서는 15살 차이나는 사람들이 피 튀기는 논쟁을 벌입니다. 이력을 가린 채 오디션을 보듯, 글로써만 승부합니다.”(ID 아이온)

인터넷 비평 공간에서 ‘오피니언 리더’로 꼽히는 비평고원은 2000년 4월 문을 연 이후 이제 10년째를 맞았다. 그간 회원수도 7500여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인문학도라면 비평고원에 대해 대부분 알고 있을 정도로, 웬만한 학회나 문예지 못지 않은 수준 높은 비평과 담론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서양 철학 서적부터 황석영·신경숙 등의 베스트셀러 소설, 영화에 이르기까지 인문학 전반이 이들의 ‘안주거리’. 기존 학계나 문단에서 담아내지 못하는 비판적이며 새로운 담론이 게시판 속에서 펄떡거린다.

“재작년 말에 보고 2년 만이네요.” 비평고원을 이끌어가는 핵심 멤버인 ‘불멸회원’ 등이 신년회를 겸해 지난 21일 한자리에 모였다. 카페장 조영일씨(ID ‘소조’), ‘로쟈’ ‘폭주기관차’ ‘로카드’ ‘ensoph’ ‘K’ ‘n-69’ 등은 “항상 글을 통해 만나다 보니 어제에도 본 것 같다”고 말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비평고원의 매력은 무엇일까. “글의 저자가 글 뒤에 바로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입니다. 글에 댓글을 달면 바로 반응이 오죠. 논쟁이 뜨겁게 붙으면 잠이 안 올 지경입니다.”(아이온)

회원들은 아무래도 대학 강사, 대학원생 등 인문학 전공자들이 많지만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들 가운데는 약사·회사원·군인 등 ‘비전공자’도 수두룩하다. ‘폭주기관차’는 전라도 광주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고, ‘K’는 식품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러나 비평고원 공간에서만은 이들은 누구보다 진지한 학자이자, 토론가다. ‘폭주기관차’는 “인문학 전공자뿐 아니라 노동자 등 누구나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자기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해외파’ 회원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비평고원에 가입해 활동하다 귀국한 대학 연구교수 ‘아이온’은 “외국에서 국내 학계의 동향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라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10살 먹은 비평고원과 함께 고원의 회원들도 성장했다. 카페장 조씨는 제도권 문단에 대해 가차없이 쓴소리를 내뱉는 소장파 문학평론가로 자리잡았고, 인터넷 서평꾼 ‘로쟈’는 인터넷 서점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며 네티즌 사이에 가장 권위있는 서평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쌍수대인’ 복도훈씨는 문학평론가로 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회원들이 각자의 영역을 찾아 나가면서 종전보다 활발한 논쟁이 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회원들은 비평고원의 앞날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로쟈’는 “아고라, 블로그로 인터넷 공간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것 같다”며 “기존 회원들을 대체할 신인의 출현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비평고원의 그간 성과를 정리하기 위해 동인지 ‘비평고원 프로젝트’를 올 봄에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는 ‘가라타니 고진’으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쓴 새로운 글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로쟈’는 “비평고원이 대표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사회에 학술 커뮤니티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며 “이런 공간이 여기저기에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이영경기자)  

09. 01. 27. 

P.S. "이런 공간이 여기저기에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는 전언은 한 단계 해석을 거친 것인데, 내 기억엔 비평고원 같은 카페가 대표적인 대중지성적 공간으로 주목받는다는 것은 한편으론 한국사회에 변변한 학술 커뮤니티가 없다는 뜻도 되기에 좀 씁쓸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건 '로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장 권위있는 서평꾼'이라는 말이 좀 우스운데, 사실 알라딘에 서재가 만들어지던 2004년쯤에 내겐 '블로그'란 말조차도 생소했다. 어쩌다가 이후에 몇 년간 소위 '인터넷 서평꾼'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주목'을 받을 줄은 미처 몰랐다. 이 또한 생각하면 씁쓸하다. 나는 더 많은 동료들을 만나게 될 줄 알았고 자연스레 발을 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무엇이 두려워 몸을 사리는 것일까? 하긴 이런 게 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걸 '그들은' 진작에 알아챘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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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평고원의 10년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6-30 21:00 
    다음 카페 '비평고원'이 개설 10주년을 맞아 기념문집을 냈다. 출판사쪽 표현으론 씨북(Cbook)이다. "블로그북(Blook)의 경우 기본적으로 단일저자로 이루어진 출판물인 데 반해, Cbook(카페북, 커뮤니티북)은 엄청나게 많은 복수의 저자로 이루어진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비평고원의 '원년 멤버'이자 '핵심 멤버'(카페에서는 '불멸회원'이라고 칭한다)로서 나도 그 '복수의 저자'로 참여하고 있으니
 
 
마늘빵 2009-01-27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회원이지만 잘 들어가보진 않는데, 학업을 계속 하시는 분만 계셨던건 아니었군요. ^^

로쟈 2009-01-27 23:21   좋아요 0 | URL
사진에서도 1/3은 비전공자이거나 직장인입니다...

비로그인 2009-01-27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 좋은 개살구... 라는 걸 알아챘는지도 모르고요... 그렇지 않다면 자아에 대한 불안감 혹은 견고하지 않은 자신감, 혹은 외부적 조건에 대한 불신감인지도 모르지요... 혹은....

제가 즐겨 읽는 NYT 기자/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는 신문의 블로그를 통해 왕성한 블로그 활동을 합니다. 심지어는 FACEBOOK 에까지 '진출'해서 독자와, 그리고 사회와 적극적으로 연동하여 대화하고 소통하는 기자 중 한 사람입니다. 전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마음이 열려 있는 데다가 특히 글쓰기의 전범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호감이 가는 사람입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 한국에서, 자신에 대한 부족감, 불안감, 혹은 심리적이 아닌 물리적인 조건의 걸림돌이 있더라도, 혹은 자신의 실력의 모자른 면까지 드러날(뽀록날) '위험'이 있더라도, 사회 일반, 그리고 특정 독자와 왕성하게 연동할 수 있는 장치로 블로그가 훌륭한데, 아쉽다는 생각을 간혹 하곤 합니다.

이 포스트를 보니 평소에 갖고 있던 그런 감상이 다시 고개를 드네요...^^ 그런 사람들이나 현상을 탓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요 다만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을 뿐입니다.


로쟈 2009-01-27 23:25   좋아요 0 | URL
미네르바 사태에서도 알 수 있지만, 사실 온라인의 힘이란 게 공권력을 오버하게 만들 정도니까 무시할 수 없지요. 대중지성적 공간으로서도 좋은 교제공간이면서 교육공간이 될 수 있을 터인데, 가능성이 아직은 많이 묻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주 시사IN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엊그제 스크랩한 기사(http://blog.aladin.co.kr/mramor/2516936)에서도 언급된 <희망의 인문학>(이매진, 2008)이 서평의 대상이다. 인문학의 활로와 관련해서는 예전에 쓴 '시민 가까이의 인문학'(http://blog.aladin.co.kr/mramor/2374561)도 같이 참조해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시사IN에 실은 마지막 서평기사여서 기억에 남을 듯싶다.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학사, 2007)을 다룬 것이 맨처음이어서 얼추 아귀도 맞는다(http://blog.aladin.co.kr/mramor/1729882). 해서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행복한 인문학'까지로 일단 매듭을 지어놓는다. 가뿐하게 이젠 다른 여정의 가방을 꾸려야겠다...      

시사IN(09. 01. 17) 배곯는 소외자들 인문학으로 배불리다 

“누군가 내게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참 좋았어요, 행복했어요, 그리고 많이 배웠어요,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을 내 입에서 너무 쉽게 가볍게 내뱉는 것만 같아 침묵으로써 모든 말을 대신하고 싶다.”  

이 소박하면서 지극한 인문학 예찬론은 대학의 인문학자나 인문학도의 것이 아니라 자활지원센터 인문학과정 졸업자의 것이다. 가난한 살림 때문에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이분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 뒤늦은 배움과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고 공부에 대한 열정도 다시 지피게 되었다고 말한다.  

2006년 방한하기도 했던 미국의 교육자 얼 쇼리스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강좌’, 곧 ‘희망의 인문학’을 모델로 하여 국내에 여러 인문학 강좌가 만들어졌다.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 교도소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재소자 인문학, 자활근로자와 지역주민을 위한 인문학 등 갈래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모두가 사회적 빈곤층이면서 인문학 소외계층에 속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은 그 인문학 코스의 강의를 수강한 사람의 사연과 성취에 대해서도 들려주지만 오히려 이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운 ‘교수님’들의 체험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장 끼니 한 끼가 절실한 사람에게,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는 것이 소망인 사람에게 한 줄의 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두들 그런 의문과 함께 강의를 시작했지만 인문학의 희망과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깨달음인가. 다른 삶과 다른 사회를 꿈꾸려는 근원적인 충동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점, 그리고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과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점 등이다.  

흔히 인간의 욕구에는 위계가 있어서 생리적 욕구와 소속감, 자존심에 대한 욕구 등이 먼저 충족된 후에야 비로소 자아실현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도덕적인 삶과 문화적 향유는 경제적 성장 이후 생각해보자는 ‘성장 이데올로기’가 기대는 것도 그런 단계론이다. 불만의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먼저라는 얘기다. 과연 품위 있는 삶에 대한 욕구는 다른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야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과 소통하는 희망의 인문학 수업’ 참여자들은 생각이 다를 듯싶다. 시인을 꿈꾸는 한 노숙인이 이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니까 말이다. “교수님, 제가 시를 썼는데, 여기에 쉼표를 찍어야 할까요,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요?” 

09. 01. 13.  

P.S. 주간지 서평은 편집팀의 교열을 거쳐서 실리게 되는데, 그간에 가장 많이 교정을 받은 것은 복수접미사 '들'이다. 시사IN 편집팀은 좀 어색하다 싶을 정도로 '-들'이나 '-적'이란 접미사를 기피한다. 덕분에 불필요한 접미사를 나도 많이 경계하게 됐지만 그럼에도 매번 몇 군데씩 교정됐고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사안의 대부분은 수용하는 쪽이다. 하지만 교정에도 '미스'가 날 때가 있다. "도덕적인 삶과 문화적 향유는 경제적 성장 이후 생각해보자는 ‘성장 이데올로기’가 기대는 것도 그런 단계론이다"는 문장이 지면에서는 "도덕적인 삶과 문화적 향유는 경제적 성장 이후 생각해보자는 ‘성장 이데올로기’가 기대되는 것도 그런 단계론이다"로 수정됐다. '기대고 있는'이라고 적으려다가 간결하게 쓴답시고 '기대는'이라고 했더니 오히려 오해를 유발한 듯하다.  

 

말하고자 한 바의 요점은 '일단 배부르고 보자'는 식의 성장 우선주의 이데올로기와 인격 발달 단계론이 '공모'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탈피해야 할 것은 그런 공모이고 결탁이다. '시는 영혼의 끼니'라고 프랑스 시인 르네 샤르는 말했다. 우리의 영혼 또한 우리의 위만큼이나 풍족함을 요구한다. 인간은 돼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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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ce 2009-01-13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처음 글을 남기네요. 반갑습니다.
지금 노트북 앞에 시사인이 있는데, 이 글을 읽고 서평기사를 찾아봤습니다.
'이 글을 로쟈님이 쓰셨구나'하는 반가운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
올 한해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_ _)

로쟈 2009-01-14 01:03   좋아요 0 | URL
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

비로그인 2009-01-13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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