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중에 인터넷 카페 '비평고원'의 신년모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알라딘에 서재가 생기기 전까지 주로 활동하던 공간이다. 주인장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 활동하고 있는 멤버이기도 하고. 전체모임은 아니고 '핵심들'만 모이는 자리였는데, 사실 전체 모임을 갖는다고 해서 더 많이 모이는 것도 아니다. 늦게 합석한 탓에 몇 마디 거들기만 하고 아래 사진에는 끼지 못했다. 오프라인에서 아주 가끔씩밖에 보지 못하지만 친숙한 얼굴들이어서 반갑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대안적 비평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인터넷 비평카페 ‘비평고원’의 핵심 회원들이 신년회를 겸해 오랜만에 지난 21일 저녁 서울 신촌에 모였다

경향신문(09. 01. 28) [2009 문화가 희망이다](7) 인터넷 비평공간 ‘비평고원’

계급장 떼고 실력으로 논하자. 인터넷 비평카페 ‘비평고원’(http://cafe.daum.net/9876)은 인터넷 무림의 고수들이 학벌이나 나이 등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필력으로만 자웅을 겨루는 공간이다.

“온라인이기에 오히려 적나라하게 자신을 보이는 논쟁이 가능합니다. 학교에서는 체면을 따지느라 선배를 대놓고 비판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여기서는 15살 차이나는 사람들이 피 튀기는 논쟁을 벌입니다. 이력을 가린 채 오디션을 보듯, 글로써만 승부합니다.”(ID 아이온)

인터넷 비평 공간에서 ‘오피니언 리더’로 꼽히는 비평고원은 2000년 4월 문을 연 이후 이제 10년째를 맞았다. 그간 회원수도 7500여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인문학도라면 비평고원에 대해 대부분 알고 있을 정도로, 웬만한 학회나 문예지 못지 않은 수준 높은 비평과 담론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서양 철학 서적부터 황석영·신경숙 등의 베스트셀러 소설, 영화에 이르기까지 인문학 전반이 이들의 ‘안주거리’. 기존 학계나 문단에서 담아내지 못하는 비판적이며 새로운 담론이 게시판 속에서 펄떡거린다.

“재작년 말에 보고 2년 만이네요.” 비평고원을 이끌어가는 핵심 멤버인 ‘불멸회원’ 등이 신년회를 겸해 지난 21일 한자리에 모였다. 카페장 조영일씨(ID ‘소조’), ‘로쟈’ ‘폭주기관차’ ‘로카드’ ‘ensoph’ ‘K’ ‘n-69’ 등은 “항상 글을 통해 만나다 보니 어제에도 본 것 같다”고 말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비평고원의 매력은 무엇일까. “글의 저자가 글 뒤에 바로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입니다. 글에 댓글을 달면 바로 반응이 오죠. 논쟁이 뜨겁게 붙으면 잠이 안 올 지경입니다.”(아이온)

회원들은 아무래도 대학 강사, 대학원생 등 인문학 전공자들이 많지만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들 가운데는 약사·회사원·군인 등 ‘비전공자’도 수두룩하다. ‘폭주기관차’는 전라도 광주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고, ‘K’는 식품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러나 비평고원 공간에서만은 이들은 누구보다 진지한 학자이자, 토론가다. ‘폭주기관차’는 “인문학 전공자뿐 아니라 노동자 등 누구나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자기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해외파’ 회원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비평고원에 가입해 활동하다 귀국한 대학 연구교수 ‘아이온’은 “외국에서 국내 학계의 동향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라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10살 먹은 비평고원과 함께 고원의 회원들도 성장했다. 카페장 조씨는 제도권 문단에 대해 가차없이 쓴소리를 내뱉는 소장파 문학평론가로 자리잡았고, 인터넷 서평꾼 ‘로쟈’는 인터넷 서점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며 네티즌 사이에 가장 권위있는 서평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쌍수대인’ 복도훈씨는 문학평론가로 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회원들이 각자의 영역을 찾아 나가면서 종전보다 활발한 논쟁이 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회원들은 비평고원의 앞날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로쟈’는 “아고라, 블로그로 인터넷 공간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것 같다”며 “기존 회원들을 대체할 신인의 출현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비평고원의 그간 성과를 정리하기 위해 동인지 ‘비평고원 프로젝트’를 올 봄에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는 ‘가라타니 고진’으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쓴 새로운 글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로쟈’는 “비평고원이 대표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사회에 학술 커뮤니티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며 “이런 공간이 여기저기에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이영경기자)  

09. 01. 27. 

P.S. "이런 공간이 여기저기에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는 전언은 한 단계 해석을 거친 것인데, 내 기억엔 비평고원 같은 카페가 대표적인 대중지성적 공간으로 주목받는다는 것은 한편으론 한국사회에 변변한 학술 커뮤니티가 없다는 뜻도 되기에 좀 씁쓸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건 '로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장 권위있는 서평꾼'이라는 말이 좀 우스운데, 사실 알라딘에 서재가 만들어지던 2004년쯤에 내겐 '블로그'란 말조차도 생소했다. 어쩌다가 이후에 몇 년간 소위 '인터넷 서평꾼'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주목'을 받을 줄은 미처 몰랐다. 이 또한 생각하면 씁쓸하다. 나는 더 많은 동료들을 만나게 될 줄 알았고 자연스레 발을 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무엇이 두려워 몸을 사리는 것일까? 하긴 이런 게 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걸 '그들은' 진작에 알아챘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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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평고원의 10년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6-30 21:00 
    다음 카페 '비평고원'이 개설 10주년을 맞아 기념문집을 냈다. 출판사쪽 표현으론 씨북(Cbook)이다. "블로그북(Blook)의 경우 기본적으로 단일저자로 이루어진 출판물인 데 반해, Cbook(카페북, 커뮤니티북)은 엄청나게 많은 복수의 저자로 이루어진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비평고원의 '원년 멤버'이자 '핵심 멤버'(카페에서는 '불멸회원'이라고 칭한다)로서 나도 그 '복수의 저자'로 참여하고 있으니
 
 
마늘빵 2009-01-27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회원이지만 잘 들어가보진 않는데, 학업을 계속 하시는 분만 계셨던건 아니었군요. ^^

로쟈 2009-01-27 23:21   좋아요 0 | URL
사진에서도 1/3은 비전공자이거나 직장인입니다...

비로그인 2009-01-27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 좋은 개살구... 라는 걸 알아챘는지도 모르고요... 그렇지 않다면 자아에 대한 불안감 혹은 견고하지 않은 자신감, 혹은 외부적 조건에 대한 불신감인지도 모르지요... 혹은....

제가 즐겨 읽는 NYT 기자/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는 신문의 블로그를 통해 왕성한 블로그 활동을 합니다. 심지어는 FACEBOOK 에까지 '진출'해서 독자와, 그리고 사회와 적극적으로 연동하여 대화하고 소통하는 기자 중 한 사람입니다. 전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마음이 열려 있는 데다가 특히 글쓰기의 전범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호감이 가는 사람입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 한국에서, 자신에 대한 부족감, 불안감, 혹은 심리적이 아닌 물리적인 조건의 걸림돌이 있더라도, 혹은 자신의 실력의 모자른 면까지 드러날(뽀록날) '위험'이 있더라도, 사회 일반, 그리고 특정 독자와 왕성하게 연동할 수 있는 장치로 블로그가 훌륭한데, 아쉽다는 생각을 간혹 하곤 합니다.

이 포스트를 보니 평소에 갖고 있던 그런 감상이 다시 고개를 드네요...^^ 그런 사람들이나 현상을 탓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요 다만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을 뿐입니다.


로쟈 2009-01-27 23:25   좋아요 0 | URL
미네르바 사태에서도 알 수 있지만, 사실 온라인의 힘이란 게 공권력을 오버하게 만들 정도니까 무시할 수 없지요. 대중지성적 공간으로서도 좋은 교제공간이면서 교육공간이 될 수 있을 터인데, 가능성이 아직은 많이 묻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