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내가 좋아하는 등려군의 노래 '해운'(http://www.youtube.com/watch?v=wYyzMuVa_qw)을 듣다가, 또 그 이상으로 좋아하는 매염방의 '석양지가'(http://www.youtube.com/watch?v=un8V4giKiR8)를 연거푸 들었다(나는 애조를 띠면서도 박력 있는 노래들을 좋아하는가 보다). 어제 한 지인의 문상을 다녀온 탓인가 본데, 노래를 듣다 보니 또 매염방을 나보다 좋아했던 친구도 생각난다(더불어 감정은 얼마나 '추상적'인가란 생각도 다시 든다). 그래서 서재를 검색해보다 '잊혀진' 페이퍼를 읽게 됐다. '매염방의 죽음을 애도함'(http://blog.aladin.co.kr/mramor/429988)인데, 2003년말에 쓴 것을 2004년 봄에 정리해놓은 것이다. 세사르 바예호 시도 곁다리로 붙여놓았는데, 내친 김에 따로 분리시켜놓는다. 일종의 '리바이벌'이다.  

지난주말에 산 정현종의 산문집 <날아라 버스야>에 실린 ‘숨막히는 진정성의 시: 바예호 읽기’를 읽으며, 오래 잊고 있었던 이 페루의 시인 세사르 바예호(1892-1938)를 다시 떠올렸다. 그의 시선집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문학과지성사)가 바로 5년 전인 1998년 12월에 나왔었고, 나는 그해 겨울을 레바나스를 읽으며, 바예호를 읊조리며 보냈다(나는 스페인어권 시인들 가운데 미겔 에르난데스와 바예호를 좋아한다). 평생을 경제적 고통과 병마로 시달리다가 죽은 시인 바예호는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라고 정의하는 그의 시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적은 없다...”이다. “호이 메 구스타 라 비다 무초 메노스(Hoy me gusta la vida mucho menos)...”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적은 없다.
항상 산다는 것이 좋았었는데, 늘 그렇게 말해왔는데.
내 전신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내 말 뒤에 숨어 있는
혀에 한 방을 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엎어져서라도 어쨌든 산다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일 거야.
“그리도 많이 살았건만 결코 살지 않았다니! 그리도 많은
세월이었건만 늘, 언제나, 항상, 항시 세월이 기다린다니!”
이렇게 나는 늘 말해왔고 지금도 말하니 말이다.


Hoy me gusta la vida mucho menos,
pero siempre me gusta vivir: ya lo decía.
Casi toqué la parte de mi todo y me contuve
con un tiro en la lengua detrás de mi palabra.

Hoy me palpo el mentón en retirada
y en estos momentáneos pantalones yo me digo:
¡Tánta vida y jamás!
¡Tántos años y siempre mis semanas!...
Mis padres enterrados con su piedra
y su triste estirón que no ha acabado;
de cuerpo entero hermanos, mis hermanos,
y, en fin, mi ser parado y en chaleco.

Me gusta la vida enormemente
pero, desde luego,
con mi muerte querida y mi café
y viendo los castaños frondosos de París
y diciendo:
Es un ojo éste, aquél; una frente ésta, aquélla... Y repitiendo:
¡Tánta vida y jamás me falla la tonada!
¡Tántos años y siempre, siempre, siempre!

Dije chaleco, dije
todo, parte, ansia, dije casi, por no llorar.
Que es verdad que sufrí en aquel hospital que queda al lado
y está bien y está mal haber mirado
de abajo para arriba mi organismo.

Me gustará vivir siempre, así fuese de barriga,
porque, como iba diciendo y lo repito,
¡tánta vida y jamás! ¡Y tántos años,
y siempre, mucho siempre, siempre, siempre!



한때 인생이 아주 싫었던 날들에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버텼다. 에밀 시오랑의 말대로, 자살에 대한 관념은 자살을 유예시킨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적은 없다!”고 투덜거리면, 어느새 삶은 그럭저럭 살 만한 것이 된다. 그래서 말하게 된다. “엎어져서라도 어쨌든 산다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일 거야.” 내가 지난봄에 그 친구에게 바예호를 읽어주었더라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한해가 가고 있다. 하지만, 늘, 언제나 항상, 항시 또 다른 한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건 산 자들의 몫이다. 저무는 해에 삶을 놓음으로써 자유를 얻은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 내 친구의 명복을 빌고, 매염방의 명복을 빈다(이 도톰한 여가수 덕분에 그 친구가 좀 덜 심심할까?).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죽은 어린 남매의 명복을 빈다. 전철에 몸을 던져 우리가 한국인임을 부끄럽게 한, 한 외국인 노동자의 명복을 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지진으로 숨진 수만의 이란 사람들...  



바예호의 사후에 발표된 시들 가운데 한편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전투가 끝나고,
한 사람이 죽은 전사에게 다가왔습니다.
“죽지 말아!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러나,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갑니다.

두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우리를 두고 가지마! 힘을 내! 다시 살아나!”
그러나,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갑니다.

스물, 백, 천, 오십만의 사람들이 와서 절규합니다.
“이렇게도 많은 사랑도 죽음 앞에서는 힘이 없구나!”
그러나,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갑니다.

수백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애원했습니다.
“형제여, 여기 있어줘!”
그러나,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갑니다.

그러자, 전세계 만민이 몰려와 그를 에워쌌습니다.
슬픈 시신은 감동이 되어 그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맨 처음에 온 사람을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걸어갔습니다.

- <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멀리해다오.12>  

03. 12. 30/ 09. 0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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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y me gusta la vida mucho menos
    from Astraea's Say about,,, 2009-02-23 21:11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적은 없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Hoy me gusta la vida mucho menos, - César Vallejo pero siempre me gusta vivir: ya lo decía. Casi toqué la parte de mi todo y me contuve con un tiro en la lengu...
 
 
노이에자이트 2009-02-2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염방 주연 영화 중에 <가와시마 요시코>가 있어요.10여년전 허름한 비디오 테이프 파는 가게에 있더라구요.중국에서 체포되어 전범으로 교수형 당했는데 그 영화 나올 때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이라 어떻게 가와시마를 그렸을까 궁금했지요.그러나 머뭇대고 사지는 않았는데 결국 지금까지 못보고 있어요.

로쟈 2009-02-22 00:07   좋아요 0 | URL
필모그라피에 나오지 않는 영화네요. 출시명이 그런가요?..

노이에자이트 2009-02-22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비디오로는 그냥 히라가나 발음이 아니라 우리말 발음으로 <천도방자>로 나왔더군요.원래는 청나라 왕녀인 중국인이예요.관동군 장교의 내연녀 노릇도 하고...꽤 드라마틱한 삶을 누렸지요.매염방이 가와시마 역을 했어요.유덕화도 나오고...

로쟈 2009-02-23 21:3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대부분 오락영화에만 나와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