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TV 등 언론에서는 노언 촘스키가 영미의 시사지들이 인터넷 투표를 통해서 선정한 '세계의 지성' 중 '최고의 지성인'으로 뽑혔다고 보도했다. 약 2만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약 5000표를 획득, 2500표를 얻은 움베르토 에코를 더블 스코어로 따돌렸다고. 주로 영어권 네티즌이 참여한 것이므로 영미쪽 지식인들이 대거 선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프랑스쪽 지식인들은 톱10 안에 한 명도 들지 못했다). 어제 귀가길에 문화일보에서 이 '톱10'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대중문화'의 산물이기도 한 이런 투표 자체에 별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동시대 지식인들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를 가늠하는 데는 유익한 지표인 듯싶어서 소개하고 몇 자 덧붙인다(내가 흥미를 느낀 건 생물학자들의 부상이었다).

1위 노엄 촘스키(미국). 직업은 언어학자로 돼 있지만, 정치비평가, 문명비평가 정도로 더 잘 알려져야 마땅한 사람이고, 주로 하는 일은 '미국 비판'이다. 네오콘 잡지의 한 편집장은 촘스키와 하워드 진을 가리켜 '정신나간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대중이 보기엔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물론 비판의 테마와 강도와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촘스키의 인지도가 높은 것은, 내가 보기에, 가장 쉽게 글을 쓰기 때문이다(그의 언어학 책이 쉽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가 프랑스의 현학적인 지식인들에 대해서 못마땅해 한 것은 당연한다(푸코 등을 읽다가 좌절한 사람들에게 촘스키는 희망이다). 대중들이 읽을 글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쓰라는 것. 그가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꼽힌 만큼 그의 '전략'은 유효해 보인다.   

  

촘스키의 책들은 국내에 '너무 많이' 소개돼 있다(국내엔 촘스키의 제자들도 여럿 된다). 수준 이하의 번역들도 많다고 하지만, '어렵지 않은' 책들이기 때문인 듯. 그의 전기로는 <촘스키, 끝없는 도전>(그린비, 1999)와 <촘스키>(시공사, 1999)가 같은 해에 나왔다(나는 전자를 읽고 후자를 사두었다). 바쁘신 분들은 <30분에 읽는 촘스키>(랜덤하우스중앙, 2004) 정도를 읽어주시면 되겠다. 책의 역자이자 전문번역가인 강주헌씨는 요즘 부쩍 촘스키에 빠져 있는 듯한데, 가장 최근에 나온 촘스키 책도 그가 번역한 <지식인의 책무>(황소걸음, 2005)이다. 물론 책은 제목에서부터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한마당, 1999)를 떠올리게 한다. 대중적 인지도에다 사회적 책무에 대한 강조에 있어서 촘스키는 우리 시대의, 미패권주의 시대의 '사르트르'이다(사르트르적 의미의 지식인이란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을 뜻한다).

2위 움베르토 에코(이탈리아). 직업은 문학비평가로 돼 있지만, 기본적으론 기호학자이고 게다가 소설가이다. 아마 러시아에서 이런 류의 투표를 했다면, 촘스키를 거뜬히 따돌렸을지도 모른다. 정치비평서들이 일부 '전문서'로 소개돼 있는 촘스키와는 달리 에코의 경우는 소설과 문학비평서, 중세미학연구서 등이 시리즈로 번역/소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러시아보다 국내에 더 많은 '에코'가 나와 있다(그의 '조이스'론이 소개되지 않은 게 아쉽지만). 거의 '에코 천국'이라고 할 만큼.  

 

 

 

 

 

  

 

 

 

국내의 에코 전문출판사로는 열린책들과 새물결을 들 수 있는데, <움베르토 에코 평전>(2004)는 열린책들에서 나왔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에코 붐'을 만들어낸 건 물론 그의 첫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초판은 1986)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에코 자신이 쓴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열린책들)와 이윤기 선생의 번역을 교정해준 것으로 잘 알려진 강유원의 <장미의 이름 읽기>(미토, 2004)가 부수적인 참고문헌이 된다. 개정판도 갖고 있지만 내가 읽은 건 <장미의 이름> 초판이며, 작년에 러시아어본도 구해왔기 때문에 나중에 개정판으로 한번 더 읽어볼 생각인다(<푸코의 진자> <전날밤> <바우돌리노> 등의 다른 소설들은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언급만 하도록 한다). 모두가 알 만한 사실은 <장미의 이름>이 장 자크 아노에 의해서 영화화됐다는 것(숀 코너리와 크리스천 슬레이터 주연). 그리고 대부분이 모를 만한 사실은 <장미의 이름>이 다른 역자에 의해서도 번역됐었다는 것. <장미의 이름으로>(우신사, 1986). 프랑코 모레티의 표현을 빌면 번역 또한 '도살장'이어서 살아남는 번역은 몇 안된다.   

 

자신의 최초 전공이기도 했던 중세미학에 관한 책으론 <중세의 미와 예술>(열린책들, 1998), 기호학자로서 명망을 얻은 책으로 <기호학과 현대예술>(열린책들, 1998)이 국내엔 소개돼 있다(<기호학과 현대예술>은 불어본의 번역이고, 영어본 번역은 <기호학이론>(문학과지성사)이다. 이 국역본보다는 영어본이 훨씬 읽기 쉽다). 기호학자로서의 출세작 <기호학 이론>의 속편에 해당하는 <칸트와 오리너구리>(열린책들, 2005)에 대해서는 한번 소개한바 있으므로 생략하고, 대신에 추천할 만한 것은 에코가 공저한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인간사랑, 1994). 역자가 에코의 제자이다. 에코 기호학에 관한 국내 연구서로는 박상진 교수의 <에코 기호학 비판>(열린책들, 2003)이 유일하지 않나 싶고,  김성도 교수의 <하이퍼미디어 시대의 인문학>(생각의나무, 2003)에는 에코와의 대담이 실려 있다. 좀 특이한 책으론 에코의 축구광적인 면모를 기호학과 엮은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이제이북스, 2003)가 있다.  

 

에코는 잡지에 기고하는 짤막한 에세이로도 유명한데, 국내엔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열린책들, 1995)으로 또 흥행몰이를 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열린책들, 1999)은 그 책의 개정증보판이다. 이후에도 물론 열린책들에서는 그의 에세이집들을 꾸준히 내고 있으나 내가 사거나 읽지 않았으므로 언급을 자제하겠다. 에코의 에세이들에 비교적 일찍부터 눈길을 준 출판사가 새물결이고,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1993)을 시작으로 댓 권을 연이어 출간했었다. 얼마전에 그 책들이 재출간됐다(일부는 독일어판의 번역이다). 이 정도면 에코는 촘스키 뺨치는 지성인이다.  

3위는 리처드 도킨스(영국).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일 듯하지만, 도킨스가 그래도 3위에 오를 줄은 미처 몰랐다. 영국에서의 대중적 인기를 짐작하게 한다. 도킨스에 관해서는 여러 번 소개한 바 있지만, 이 자리에서 다시 간단하게 훑어보기로 한다. 

국내에 제일 처음 소개된 도킨스의 책은 <이기적인 유전자>(두산동아, 1992)이고, 그의 책으로 내가 제일 처음 읽은 책이다. 물론 그때 도킨스란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막연하게 '이타적 행위'라는 게 모종의 심리적/도착적 만족감을 주는 '이기적 행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는데, 늘 그렇듯이 서점을 두리번 거리던 차에 <이기적인 유전자>란 책이 눈에 띄었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리고는 '유레카!'(우리식 버전으론 '심봤다!') 이후에 원서의 개정판을 옮긴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1993)이 출간됐고, 절친한 친구는 나의 권유에 따라 그 책을 읽고서 '유레카!'를 복창했다(그는 한동안 나만큼 도킨스를 욹어먹고 다녔다). 지금의 <이기적 유전자>(2002)는 보다 세련된 장정을 하고 있는바(표지의 진화과정을 보여준다), 이름하여 '고전100선'이요, 대학생/청소년 필독서이다.     

이후 도킨스의 주저라고 할 만한 책으론 <눈먼시계공>(민음사, 1994)과 10년만에 재간된 <눈먼 시계공>(사이언스북스, 2004)이 있다. 작년에 나온 <확장된 표현형>(을유문화사)은 내가 원서까지 사둔 책이지만 아직 읽지 않았으므로 감동을 적기는 어렵지만, 하여간에 다른 책들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최신간인 <악마의 사도>는 이전에 소개한바 있듯이 주로 칼럼모음집인데, '인간' 도킨스의 체취를 가장 강하게 내뿜는다. 도킨스 다이제스트를 원하는 독자라면 <도킨스와 이기적 유전자>(이제이북스, 2002)를 보셔도 좋겠다(다이제스트라 감질이 나겠지만). 

세계석학 30인과의 대담집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가야넷, 2000)에는 촘스키와 에코는 물론 도킨스와의 대담도 실려 있다(지젝도 들어가 있다!). 내가 감히 사두지 못한 <사이언스북>(사이언스북스, 2002)에도 도킨스는 (당연히)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내 기억에 존 브로크맨이 편집한 <제3의 문화>(대영사, 1996)에서도 도킨스를 읽을 수 있다. 그의 호적수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와의 비교는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몸과마음, 2002)를 참조할 수 있다.

4위 바츨라프 하벨(체코). 이 리스트에 들어 있는 유일한 동유럽 지식인. 직업은 극작가이자 정치인으로 돼 있는데, 대통령을 역임한바 있으니 저명한 인사이지만 국내에는 별로 연고가 없는 듯하다.  

뒤져보면 하벨의 책으론 <대통령의 꿈>(들꽃세상, 1992)이 처음 소개됐었고, '하벨 대통령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사상'이란 부제의 <프라하의 여름>(고려원, 1994)과 드라마 <청중>(예니, 2000)이 소개돼 있는 정도. 동구권 희곡모음집인 <탱고 外>(현대미학사, 1994)에도 <도시 재개발 계획>이라는 하벨의 작품이 들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지역적 편향성 때문에 러시아/동구권 지식인들에 대한 소개/이해는 턱없이 부족한 편. 멋쩍은 김에 하벨의 나라 체코에 대한 안내서 두 권 정도만을 적어두기로 하자. 체코 문학 전공자인 김규진 교수의 <체코 문화>(한국외대출판부, 2000), 그리고 체코 여행 가이드북 <체코>(휘슬러, 2005).

5위 크리스토퍼 히친스(영국). 직업은 정치평론가라고 돼 있는데, 톱10의 지식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생소한 인물이다. 나의 견문이 짧은 것인가 하고 검색해 보았더니, 국내에 소개된 건 <키신저재판>(아침이슬, 2001) 달랑 한 권이다. 하면, 나의 '무식'을 탓할 수는 없는 것. 도서관에서 다른 책들을 검색해 보니까 <선교사의 입장: 마더 테레사의 이데올로기>(1995)란 책이 있고, 에드워드 사이드와 공저한 <희생자를 탓하기: 사이비 학문과 팔레스타인문제>(1988), 아담 바르토스란 이와 공저한 <국제 영토: UN, 1945-95>(1994) 등의 저작을 갖고 있다. 아마도 영국의 영향력 있는 정치평론가인 모양(우리의 경우라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두 권의 책이 더 출간되어 추가해놓는다.  

6위 폴 크루그먼(미국). 내가 이름을 아는 몇 안되는 현역 경제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최근엔 反부시 진영의 대표적인 논객이며(뉴욕타임즈에 칼럼을 쓴다) 해마다 노벨경제학상 후보에 오르고 있다고(*결국 2008년에 수상했다). 촘스키와 함께 MIT에 몸담고 있고, 1953년생이니까 나이도 비교적 젊다.  

그의 책으론 <경제학의 향연>(부키, 1997)이 유일하게 내가 갖고 있는 책이다(*화제작 <미래를 말하다>도 소장하게 됐다). 그가 공저처럼 돼 있는 <복잡계 경제학2>(평범사, 1998)도 갖고 있었지만 지난번에 책정리를 하면서 <복잡계 경제학1>과 함께 쓰레기장으로 갔다. 아마도 그 책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 <자기 조직의 경제(Self-organizing Economy)>(부키, 2002)일 것이다. 제목만으로도 대충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데, '복잡계 경제학 개척자'로도 평가된다는 크루그먼은 이 책에서 "복잡계 경제학의 사고방식과 모델을 다"룬다고. "그는 '불안정으로부터의 질서(order from instability)'와 '불규칙한 성장으로부터의 질서(order from random growth)'라는 자기 조직화의 두 원리가 어떻게 도시의 형성과 기술 집중 및 경기 순환 등 제반의 경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자기조직계'에 대한 책들이 한동안 붐을 탄 적이 있는데,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카오스: 현대 과학의 대혁명>(동문사, 1993)이 발단이었다(물론 얀치의 <자기조직하는 우주> 같은 신과학 천문학서도 있었다). 이어서 <복잡성 과학이란 무엇인가>(까치, 1997) 등이 나왔고, <복잡계란 무엇인가>, <왜 복잡계 경제학인가> 같은 일본서들이 번역/소개됐다. '복잡계 경제학'에서 크루그먼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이름은 '수확체증의 법칙'을 주창했던 브라이언 아서인데, 크루그먼은 이를 더 발전시킨 공로가 있는 듯. 이 '자기조직화'는 문학/예술에서도 많이 나오는 테마이며, 들뢰즈를 읽다가도 종종 마주치는 용어이다. 그러니 나중에 좀더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하는 크루그먼의 나머지 책들이다.  

7위는 위르겐 하버마스(독일). 작년 10월에 데리다가 타계하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하버마스와 함께 이 명단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연로한 세계철학계의 원로이지만 하버마스는 언제나 '막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막내였으며(물론 그의 제자들이 2세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1세대 학자들의 파워와 명망에 미치지 못한다) 20세기 독일철학의 막내이다.  

독일 관념론의 적자를 자처하는 독일의 '괴물' 철학자 비토리오 회슬레(<객관적 관념론과 그 근거짓기>(에코리브르)가 지난 여름에 출간됐었다. 회슬레는 방한강연을 가진바 있으며 그때의 인연으로 한국여성과 결혼했다)가 꼽은바, (거명 당시에 생존하고 있던) 20세기 최고의 독일 철학자는 바이스체커, 가다머, 칼-오토 아펠, 하버마스 4인이었다(거기서도 하버마스는 가장 '젊은' 철학자였다).   

 

 

하버마스의 책들은 국내에 '충분히' 번역/소개돼 있다. 물론 질과는 무관하게. 예컨대, 그의 명성을 널리 알린 <인식과 관심>(고려원, 1996)은 오역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책이며, 따라서 '대중들'은 읽을 수 없는 책이다. 프랑스의 난다긴다하는 철학자들을 '신보수주의' 철학자로 몰아세우며 그의 '거장적' 면모를 부각시킨 책이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문예출판사, 1994)이다(이 또한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들이 있다). 기억에 그의 교수자격취득논문인 <공론장의 구조변동>(나남, 2001)부터 <소통행위이론1>(의암, 1995, 이건 2권이 아직 번역되지 않은 대표적인 '부실'번역 사례이다)를 거쳐서 <사실성과 타당성>(나남, 2000)에 이르는 주저들은 대부분 국역본을 갖고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의사소통의 철학>(민음사)와 대담 <테러시대의 철학>(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하버마스에 대한 국내 연구만 해도 (상대적으로) 차고 넘친다. 그래서?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8위 아마티아 센(인도). 경제학자. 인도 출신으로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센의 책들은 수상에 힘입어 바로 출간된 바 있다. <불평등의 재검토>(한울, 1999), <윤리학과 경제학>(한울, 1999)이 그것이다. '경제학의 테레사 수녀'라고도 불린다니까 그걸로도 그의 학문적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그런데도 케임브리지대의 교수이다!).  

센의 신간은 <자유로서의 발전>(세종연구원, 2001)이며, 소개에 따르면 "아마티아 센은 이 책에서 개인을 단순히 분배된 혜택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하는 능동적인 행위자로 보고 논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국가, 시장, 법 체계, 정당, 언론, 이익단체 등을 포함하는 일련의 사회적 장치들이 개인의 실질적인 자유를 충족시키고 보장하는 데 얼마나 공헌하는가 하는 일관된 관점으로 중국과 인도, 유럽과 미국 등 세계의 다양한 나라들을 검토한다. 이 책은 개인의 자유 속에 정치 참여와 경제 발전 그리고 사회진보의 능력이 어떻게 놓여 있는가라는 물음에 지표를 제시하며, 발전에 대한 보다 넓은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알려진 바이지만, <국부론>의 저자이자 동시에 <도덕감정론>의 저자인 아담 스미스는 도덕철학 교수였으며, 경제학의 두 축은 윤리학과 경제(공)학이다. 센은 거기서 잊혀지거나 간과되고 있는 윤리학의 전통을 경제학에서 다시 되살리고자 애쓰고 있는 것. 이를 테면 '아담 스미스 구하기'이다. 그리고 그게 '나라 구하기'이다, 경제기술자들아! 

9위는 역시나 도킨스의 경우처럼 나를 놀라게 했는데, 미국의 생물/지리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이다. 사실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지만 다이아몬드가 대중적인 인기만큼이나 지식인으로서 대우받는다는 사실 자체는 흥미롭다. 다이아몬드에 대해서는 여러 번 언급한 바 있기 때문에 군말을 덧붙이지 않겠다. 요컨대, '다이아몬드의 모든 책'이며, 그의 최신간 <붕괴: 어떻게 한 나라가 망하는가>가 빠른 시일 안에 번역되기를 기대한다(*<문명의 붕괴>로 번역되었다). 

10위는 인도 출신의 소설가 살만 루시디. 문제작 <악마의 시>로 1989년 이란정부(호메이니)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더욱 유명해진 작가. 그런 연유로 노벨상을 타기는 힘들겠지만(이번에 터기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는 파묵이 논란 끝에 수상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전해지지만), 아마도 루시디는 노벨상 수상작가보다 더 유명한 작가일 것이다(루시디의 문학에 대해서는 언젠가 박노자가 한 칼럼에서 비판적인 의견을 제기한바 있다). 그의 작품으론 <악마의 시>(문학세계사, 2001), <무어의 마지막 한숨>(문학세계사, 1996)가 번역돼 있고 <하룬과 이야기바다>(달리, 2005)도 올해 나왔다. 좀 오래된 번역으론 <한밤의 아이들>(하서출판사, 1989)과 <악마의 수치>(청림출판, 1989) 등이 있다(*이젠 '루슈디'로 소개되고 있다).  

 

05. 10. 18.

P.S. 이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7위,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가 19위에 올라 있다고. 울포위츠를 선정 리스트에 올린 시사'잡지'들의 양식이 좀 의심스럽긴 하다(하긴 '은행' 눈치도 봐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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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버마스 이야기 (1)
    from to be immortal 2007-06-29 16:15 
    ...
  2. 하민혁의 생각
    from haawoo's me2DAY 2009-10-01 23:19 
    #하우R_ '세계의 지성' 톱10l로쟈의 저공비행 http://is.gd/3Qu5I 이 분, 보면 볼수록 정말 대단하다
 
 
주니다 2005-10-1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촘스키가 1등 먹었다는 소식을 접하니 얼마전 조선일보에서 봤었던 '책조차 안 읽는 한국의 보수들'이란 기막힌 칼럼이 떠오르는군요.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510/200510100417.html
그나저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도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더군요. ㅠ.ㅠ
5장 '~사랑의 이데올로기'와 관련해서 좀 더 읽어줘야 할 책/논문이 있다면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딸기 2005-10-18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반적으로, 논쟁적인 스타일의 사람들-매스컴에 많이 등장해서 인지도가 높은 사람들이 뽑힐 수 밖에 없는 조사였습니다만, 몇몇 인물들은 저도 꽤 재미나게 책을 읽었던 사람들이기에 결과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습니다 ^^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경우는 그야말로 '논란'이 많지요. 저는 '키신저 재판'을 꽤 재미있게 읽었답니다(책 자체의 밀도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촘스키 책에도 히친스가 종종 언급되곤 했어요. 이라크전에 찬성했다는 얘기 듣고 저도 좀 의아해 했었습니다. 히친스는 영국 출신이긴 하지만 20년 넘게 미국에서 활동했으니, '미국 지식인'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겁니다. 히친스가 이라크전 지지선언, '나는 왜 좌파가 아닌가' 선언 등등을 내놨을 때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심지어 책 한권 달랑 읽은 저조차도 그 심정이 이해가 가더라니까요. :)

호랑녀 2005-10-1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 한 권, 아는 사람 세 명...ㅜㅜ
내가 얼마나 얕은지, 지성과는 얼마나 거리가 머~~~ㄴ 사람인지 알게 하누만요 ㅜㅜ

로쟈 2005-10-18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니다님/ 라캉의 성공식은 사실 굉장히 난해합니다. 조금 가닥을 잡으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아시겠지만, <성관계는 없다>(도서출판b)란 책에 모아놓은 논문들이 수준높은 해제들입니다. 같이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마이어스의 요약보다 더 용이하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겠네요(핑크의 글 정도가 만만할 수 있지만).

딸기님 혹은 딸기우유님/ 히친스의 책을 읽어보셨군요.^^ 저겐 좀 생소한 이름이기에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는데, 네오콘들이 그렇듯이 히친스도 국제문제에 있어서는 '과도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하긴 '넘들'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게 지식인의 조건이긴 하죠. 좌파이건 우파이건.

호랑녀님/ 상당히 '대중적인' 리스트와 거리가 머시다면, '비대중적'(=귀족적)이신 거 아닌가요?..

yoonta 2005-10-19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르게--------->위르겐...
인식과 관심이 그렇게 오역투성이였군녀..어쩐지 죽어라고 안읽히더니만..-_-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도 안읽히는건 마찬가지..
리차드 도킨스나..제럿 다이아몬드등이 올라온건 좀 의외군요..생물학자들이 이렇게 인기가 많다니..상대적으로 호킹같은 물리학자가 없는것도 그렇고...

프랑스 지식인들이 한명도 안보이는것도..좀 그렇네요..뭐 유명한 분덜은 대부분 타계하긴 했지만..

비로그인 2005-10-19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촘스키가 푸코 등을 평한 글을 읽은 적이 있던데 촘스키는 거의 푸코 등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상식에 기대어서 그들을 격하시키고만 있던데..쩝. 그리고 도킨스의 그 무지막지한 과학주의도 토마스 쿤에게 공감하고 있는 저에게는 부담스럽더군요. 생명의 존엄이 단지 DNA의 연속성에 인한다는 논지에도 전혀 동의할 수 없고요.(그렇다면 "왜" DNA가 보존되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 그렇다면 우리는 DNA의 연속성이라는 유일의 가치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지?)... 회슬레를 언급하셨던데 정말 회슬레가 "괴물 철학자"인가요? 인식론 상대주의의 윤리적 귀결을 비판하면서 독일 관념론의 부활을 외치던데, 그 당위성에는 공감하지만 그게 실제로 가능할지는 좀....흠.... 비트겐슈타인 이후로 철학은 끝났다고 믿고 있는지라....

주니다 2005-10-19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라캉의 성공식은 인내심을 갖고 다시 들여다보겠습니다.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은 번역상태가 어떤지요? 제 허리상태는 별로 안좋습니다만. 흐흐흐

2005-10-19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0-1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 오타는 수정했습니다. 생물학자들의 부상은 의외이지만 당연한 현상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호킹의 경우는 물론 <시간의 역사> 같은 '대중적인' 책도 있지만, 아무래도 생물학보다는 접근하기 어렵지요.

구스님/ 가다머가 '회슬레'를 칭찬하면서 서양철학사의 보기 드문 천재라고 부른 적이 있지요(둘은 교양철학 방송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고, 국내에도 방영된바 있습니다). <헤겔의 체계> 같은 대저를 20대에 툭툭 써놓는 걸로 보아 ('천재성' 여부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괴물'로서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군요. '비트겐슈타인 이후'라는 '초기 비트겐슈타인'에 국한된 것 아닐까요? 비트겐슈타인 전공 철학자들이 아직도 많은 걸 보면, 엔드게임(Endgame)은 당분간 더 지속될 거 같습니다.

주니다님/ <공론장의 구조변동>은 사놓고 아직 안 읽었지만 번역에 대해서 지적하는 의견은 아직 못 봤습니다. 그보다는 '허리상태'에 더 신경쓰심이.^^

이네파벨님/ 별로 간추리진 못했습니다(제가 좀 수다스럽죠). 퍼가시는 건 언제라도 무방합니다. 다만, 오타나 착오 같은 게 창피할 따름...

비로그인 2005-10-1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슬레가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임에는 동감하지만 과연 그의 철학적 시도가 성공할 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스럽네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살아 있었다면 리처드 도킨스를 누를 수 있었을까요? 요즘은 정말 사회생물학의 인기가 치솟더군요. 다니엘 데넷 같은 철학자가 주목 받는 것도 그런 흐름에 서 있는 것 같고요.(물론 다니엘 데넷은 사회생물학의 주된 흐름에 비판적이지만요.)

로쟈 2005-10-1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넷은 <확장된 표현형> 개정판에 서문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도킨스와는 절친한 사이인 듯하고. 개인적으론 데넷의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다윈의 위험한 사상> 같은 책이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게 유감입니다.

yoonta 2005-10-1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촘스키가 푸코를 어떻게 비판했는지는 모르겠는데..푸코와 촘스키는 '정치'를 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요..비교적 전통적인 무정부주의에 기반한 촘스키의 정치는 주로 미디어에 대한 비판을 통해 대중들에게 '새로운 정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방식인 반면 푸코는 '이론적 개입'을 통한 새로운 정치를 추구한 사람이죠..때문에 촘스키가 푸코를 정말로 이해했느냐 안했느냐는 중요한것이 아니게 됩니다..촘스키가 푸코를 비판했다면 아마도 그런 입장에서 했을 것이고요..이론적 비판이 아니란 거죠..

딸기 2005-10-19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이 글을 제 홈페이지에 퍼가도 될까요?

로쟈 2005-10-20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물론입니다. 근데, 오타나 다 수정됐는지 모르겠네요. 머리도 감을 걸 그랬나...

딸기 2005-10-2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 보니 상당히 미인이신데요 ^^

2005-10-21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05-10-25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 말을 한다고 기분 좋아하실 것 같지 않은데... 흐흐.

니브리티 2005-10-2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로쟈님 미인이시죠..^^;;

로쟈 2005-10-25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그런 식의 반응들을 보이시면 '전환'할 수도 있습니다!?..

쿠자누스 2005-11-02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위에 올라온 '세계의 지성' 가운데 '하바마스'와 통화를 했었지요.
[그의 제자라는] "송두율 교수의 구속에 항의하는 탄원서를 한국정부에 보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라는 질문에 "그의 전화를 며칠 전 받았다. 탄원서 쓴 일 없고
쓸 생각도 없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참 비정하더군요.
코소보 전쟁 때는 이 침략 전쟁이 "정당하다"고 말해서 놀란 적이 있는데
여하튼 권력에 순종하는 기질이 보입니다.
이 사람 책애서 건질 게 무언지 참 궁금합니다.

쿠자누스 2005-10-30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위 바츨라프 하벨(체코)도 코소보 전쟁이 '인권 회복을 위한' 전쟁이라고
환호를 했으니 별 볼 일 없는 사람이겠고

5위 크리스토퍼 히친스(영국)는 치밀한 고증을 통해서
키신저를 국제 전범재판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여 주목을 받았지만
이스라엘 문제만 걸리면 '돌아버리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아요.

911 테러를 네오콘의 Insider job이라는 분석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반 유태주의자들이라고 비방하니까요.

또 1위 촘스키는 911이 '미국의 중동 정책에 대한 저항'이라고 했으니
히친스와 비교하면 오십보 백보겠지요.

그 유명하다는 사상가 지식인들이 다 무언지 회의가 갑니다.

로쟈 2005-10-3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자누스님의 '회의'에 공감합니다. 제가 공감하지 않는 것은 '그 유명하다는 사상가 지식인들'에 대한 쿠자누스님의 (애초의)'기대'입니다(지금은 안 갖고 계시겠지만). 지식인들은 성인군자가 아니며 무오류적이지도 않습니다. 단지 대중보다 우월한 식견을 바탕으로 하여 남의 일에 간섭할 따름이며, 그러한 간섭이 간혹 여론을 환기시키고(호도할 때도 있지만) 사고를 자극할 뿐이겠지요(때로 사고를 치기도 합니다.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하고). 영미 네티즌들이 뽑은 리스트와는 다른, 쿠자누스님의 대안적인 리스트를(가능하다면) 기대해봅니다...

yoonta 2005-11-01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촘스키가 911테러를 insider job이라고 하지 못하는데에는 저도 불만이 있습니다..그렇다라고 주장하지는 못할지라도..최소한 문제제기는 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촘스키처럼 명망있는 지식인이 911테러에 대한 음모론적 접근을 한다는건 지극히 조심스러워야 될 일인 것도 사실이지요..때문에 기존에 알려진 사실들..언론에 보도된 사실들만을 기초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해 나갈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그런 부분에서의 역할만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고 보는것 같고요..때문에 물론 911테러의 내부공모론 같은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내면 네오콘에 대한 결정적 타격이 될수있긴 하지만 테러와 관련된 모든 정보가 정보기관에 의해 통제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함부로 그것을 발설할수는 없겠죠..그것을 두고 촘스키의 한계라고 말하는 것도 문제인것 같습니다..유태인문제와 관련해서 촘스키는 같은 유태계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할정도로 급진적인 주장을 많이 해온 사람입니다..히친스와 같은 부류와는 분명 다르죠..

네오 2005-11-01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크루그먼은 지금 MIT가 아니라 프린스턴의 재직중입니다....

로쟈 2005-11-01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제가 참조한 건 알라딘의 저자 소개라서. 어쨌든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쿠자누스 2005-11-02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님: 한 인간의 사상의 크기는 그가 떠맡은 고통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인류사에서 되풀이 되고 있는 과두 권력의 유희(테러, 전쟁)에
휘말려 희생되는 먼 나라 사람들의 고통에 대하여 그 사람들이 어떤 발언을 하는지 유심히 살펴 봅니다.

저는 대안의 서양 현대 사상가로 라이프니츠
http://www.utm.edu/research/iep/l/leib-met.htm

쉴러
http://www.theatredatabase.com/18th_century/friedrich_schiller_001.html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영향을 받아 미국 독립전쟁을 성사시킨, 벤자민 프랭클린을 정점으로 삼은 유럽-미국 지식인 써클의 후세대를 찾고 있습니다. 오늘의, 보이지 않는 대영 제국의 보이지 않는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비법을 전수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지요.

쿠자누스 2005-11-04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 : Insider job 이론은 세계 최고 수준의 독립 저널리스트들/자발적 사설 탐정들에 의해서 세계화하는 추세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인류 역사 이래,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은 열외지만, 이만한 연구 공동체가 지구상에 존재한 일이 있었을까요 ? 인류의 미래가 걸린 일에 이름도 없는 수많은 지성인들이 발벗고 나서는 판에, 촘스키나 히친스가 딴 소리를 하는 게 너무나 한심했지요. 국제정치의 수많은 공식버전을 처참하도록 찢어놓는 그들의 무시무시한 내공이, 그날의 가상 현실앞에 맥을 못추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 촘스키의 문제는 그의 주장이 사실임을 입증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의 인식 반경이 정말로 그 정도라면 그에게 불행이고 그런 게 아니라면 그를 신뢰했던 사람들의 불행이라 생각합니다.

yoonta 2005-11-02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11의 내부자공모론이 수많은 독립저널리스트 혹은 탐정들에 의해 제기되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저도 911사건 초기부터 내부공모쪽으로 의심했었죠. 국내에 간행된 몇권의 책들 그리고 웹에서 접한 글들을 읽어보고 그 심증을 굳히기도 했습니다. (타플리의 책은 아직 못봤네요) 독립저널리스트들중 일부 예컨데 이리유카바 최같은 분은 촘스키도 그가 이야기하는 그림자정부의 관련인물로 보기도 하죠..그런 관점에서는 촘스키조차도 911사건을 공모한 그룹의 일원으로 보일수도 있더군요..

그런데 이처럼 심증이 가기는 하지만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촘스키같은 분이 (그 역시 '내부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심증'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울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예를들어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같은 경우 역시..수많은 음모론이 '세계화'되기는 했죠..그러나 그 결정적인 팩트를 알수없는 상황에서 그 가설들을 주장하는 것은 촘스키가 보기에는 뭔가 불충분해 보이고 그런 상태에서 그것을 문제제기하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그런 점에서 올리버 스톤감독같은 분은 용기있는 분이죠) 저는 아직 촘스키가 911과 관련되어 어떤 언급을 했는지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그의 입장은 미국의 잘못된 중동정책이 테러를 불러왔다하는 점만 지적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쿠자누스님이 지적하신 insider job을 비록 촘스키가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저는 위와같은 정도만의 정치적 해석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가 할 일을 다하고 있다고 봅니다..

'팩트'를 발굴해 내는 일은 아직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주어도 될것 같네요...좀더 시일이 지나 그 발굴된 '사실들'이 좀더 풍부해지고 그리고나서도 촘스키가 올리버 스톤감독같은 발언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분명 그의 '한계'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죠.

그러나 아직은 그런 평가를 하기에는 좀 이르다고 봅니다.

쿠자누스 2005-11-09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FACT를 발굴하는 것, 그것이 그의 직업 아닌가요 ?
insider job 이론가들의 Fact를 찾는 방법론, 문제제기 능력(http://peacemaking.co.kr/news_view.php?no=1348)을 촘스키 같은 석학이 보여주지 않는다는 게 좀 이상합니다. 그의 발언은 권력이 바라는 최대치의 발언이라 봅니다. 최근까지의 연구 성과를 보면, 911도 검사의 기소가 가능한 단계로 가는 듯 합니다. 문제는 미국 내부의 정치지형이겠지요. 케네디 암살 사건이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것도 거기 관련된 세력이 미국 권력의 한 축에 버티고 있기 때문인데 지금 체니/럼스펠드 주변 인물들이 기소되는 걸 보면 예측 못할 일이 벌어질 것 같기도 합니다. 성공한 쿠테타의 장본인들이 사형선고 받는 거, 불가능하다면 미국엔 미래가 없겠지요.

로쟈 2005-11-0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의 논쟁에 대해서는 '구경'만 하겠습니다. 한가지, "한 인간의 사상의 크기는 그가 떠맡은 고통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쿠자누스님의 말씀은 음미해볼 만하지만, '환원적'이라는 의구심도 갖게 됩니다. 말씀하신 고통은 자신의 고통인가요, 아니면 타인의 고통인가요? 고통의 주체, 혹은 인칭의 문제 자체가 굉장히 복잡한 것 같습니다. 더불어, 자신이 감당하는 고통을 다시 감당해야 하는 '언어'의 문제도 걸려 있습니다. 사상의 언어적 구성물이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큰 고통은 자신의 고통을 언어로, 사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 드러나는 것 아닐까요?

'먼 나라 사람들의 고통'(먼 나라!)에 대한 감수성은 치하할 만하지만, 그 고통에 끼여드는 게 아니라 거기에 대해 '발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그 고통은 그 '발언'으로 감싸지고 구제되는 성격의 고통인가요?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어디까지 발언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런 물음들을 저로선 갖게 됩니다. 데리다의 얘기지만, 테러란 '죽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죽어가게 내버려두는 것'까지도 포괄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무한책임입니다. '테러/전쟁', '먼 나라' 등의 표현은 문제와 책임을 국지화시키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요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쿠자누스님의 고견을 앞으로도 경청하겠습니다...

yoonta 2005-11-02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촘스키는 그렇다고 치고..쿠자누스님께서 대안의 사상가로 추천하신 두 인물..라이프니츠와 쉴러는 어떤 점에서 추천하시는 건가요? 라이프니츠같은 경우..들뢰즈가 연구하기도한 사상가이기도 합니다만..

혹시 헤르메스주의나 신비주의의 계보와 관련된 것이 이유는 아닌가요? 쿠자누스님의 닉네임에서도 왠지 그럴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하얀재 2005-11-0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자누스님은 말 곳곳에서 도덕원리주의자의 혐의를 풍깁니다. 송두율교수가 하버마스의 제자라지만 탄원서를 안 써주었고 또 써줄 생각도 없다는 그의 말에서 꼭 하버마스가 비정한 사람이라는 결론이(그것도 도덕적 결론이죠) 도출되지 않습니다.

또한 코소보 전쟁이 정당하다는 그의 주장에서 권력에 순종한다는 도덕적 판단을 이끌어내는 님의 말도 그러려니 합니다만 그 결기가 보기에 안타깝군요. 이하 제 시간이 아까워 생략합니다.

그리고 로쟈님의 '겸손'도 보기에 느끼하군요. 남의 감수성에 대해 '치하'하기에 앞서 먼저 님부터 표현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해주셨음 합니다. 어렵게 갈 거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을 돌리는 것은 결국엔 자기오만, 지적 거드름 없인 나오기 힘든 자세입니다.

로쟈 2005-11-02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변태님/ 제가 '겸손'하다는 얘기는 오랜만에 듣는군요(적어도 이 서재에서만큼은 그닥 겸손하게 행세하지 않았는지라). 그런데, 다른 대목에서라면 몰라도 제 댓글에서 ('겸손'에 가려진) '자기오만'과 '지적 거드름'을 알아보셨다는 건 놀랍습니다. 저는 님이 '도덕원리주의자'의 혐의가 풍긴다고 한 쿠자누스님의 견해에 대해 '환원적'(마찬가지로 모든 사안을 몇 가지 도덕적 원칙으로 환원하는 것이죠)이지 않은가라는 의구심을 제기했고, 사안은 생각보다 복잡한 듯하다는 의견을 보탰습니다. 어떤 표현이 부정확했는지(그래서 느끼했는지) '분명하게' 지적해주시면 좋겠습니다(어렵게 갈 거 없이요). 혹 시간이 나신다면...

yoonta 2005-11-02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변태님이 로쟈님을 아직 잘 모르시나봐요..^^

쿠자누스 2005-11-0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변태님: 비정하다는 느낌 뿐만이 아니었지요. 단순한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질문에 마치 무언가에 압박을 받는 듯한 긴장되고 톤이 높은 음성, 게다가 마지막엔 누구도 자기에게 탄원서를 부탁한 일이 없다는, 불필요한 얘기까지 덧붙이는 그에게서‚ 좀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제 느낌으론, 그가 송 교수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아서 그런 답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나토는 지난 90년대 10년 가까이 서구 매스컴과 공모하여 그들의 침략전쟁을 ‘인도주의적 개입’ ‘도덕적 ACTION’으로 위장하고 유고 연방을 산산 조각내고는 반식민지로 만들었지요. 하버마스는 나토의 여론 조작에 말려 들었으니 스스로 파산 선고를 한 셈이지요.

쿠자누스 2005-11-05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 : 쿠자누스는 Nikolaus von Kues 이름을 도용한 것이고요 신비주의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라이프니츠, 쉴러 두 사람을 제가 꼽은 이유는, 우선 그들의 삶과 저작이 너무나 흥미롭고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는 반면에 현대에 들어와 거의 잊혀졌기 때문이지요. 두 사람 모두 병사했다고 전해지지만 대영제국이 암살했다는 게 저의 가설입니다.

쿠자누스 2005-11-03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님: 보내 주신 질문, 제가 답하기에는 너무나 어렵네요. 그 답을 구하는 데에 같이 생각해 볼 만한 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아래에 소개합니다. '세계의 지성인'이 되는 자격조건에 대한 해설입니다.


Such a person, guided by the humanist ideal. has the duty
to pursue his own self-development,
and to do his utmost to develop all his latent capacities
for the benefit of all mankind.

That also includes the development of his emotions
away from infantile egocentricism and
toward the true intercourse with human reason.

Such a person must no longer force himself to do
what reason decrees, but
his actions must come into harmony with his sense of joy.

The individual who passionately accomplishes
that which is necessary
has, as Schiller says, a beutiful soul.

로쟈 2005-11-03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통에 대한 감수성 하면 제게 바로 떠오르는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실러(쉴러) 또한 그는 직접 인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레비나스의 자기 윤리학의 거점을 마련한 것도 이 작품에 대한 (어린시절의)독서를 통해서였습니다. 제 생각에 쿠자누스님의 윤리학에 라이프니츠 이상으로 중요하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윤리학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아주 오래된 숙제이기도 한데...(제가 워낙에 핑계가 많은 '학생'이라서...)

yoonta 2005-11-0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콜라우스 쿠자누스(Cusanus, Nicolaus) 이사람과 Nikolaus von Kues 이사람은 같은 사람 아닌가요? 쿠자누스가 Kues혹은 Cues출신이라서..Nikolaus von Kues 이렇게도 부르는걸로 아는데...어쨋든 제가 말씀드리는 분이 그분이라면..쿠자누스는 르네쌍스시대를 이끈 신비주의의 대가죠..신과 우주를 수와 비례로 설명하려고 하였고 신과 우주의 무한성을 주장하여 부정신학을 주창하기도 한 사람이죠..그러한 신비주의사상은 케플러나 뉴튼같은 과학자에게도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알고있습니다...더불어 르네쌍스에도 큰 영향을 주어..범신론으로도 해석되는 르네쌍스 자연주의와도 연결되는 인물이죠..결과적으로 라이프니츠나 스피노자에도 큰 영향을 주고요..특히 라이프니츠는 그의 단자론 철학에서 보여지는 신비주의의 영향을 쿠자누스에게서 받았다고 볼수도 있고요..쉴러는 잘 모르겠지만.. 쿠자누스나 라이프니츠 더불어 같은 독일지식인이고..괴테와 같이 르네쌍스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일종의 독일 신비주의 사상가들의 계보혹은 유사성 같은게 보인다는 점에서 여쭈어 본 것인데요...좀 다른 시각이신것 같군요..

대영제국에 의해 라이프니츠나 쉴러가 암살당했다는 이야기는 첨 듣는 이야기네요..현대에 와서 쉴러나 라이프니츠가 잊혀진게 당시 대영제국의 의도때문이라고 보시는 것 같은데..그러한 라이프니츠와 쉴러를 암살해야만 했던 당시 대영제국의 음모?가 오늘날의 세계와 어떤 연관이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쿠자누스 2005-11-0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님: 도스토예프스키도 쉴러를 읽었군요. 그의 윤리학도 흥미롭겠네요.

Yoonta님: 전 처음에 그 두 가지 이름에 많이 헷갈렸지요. 신비주의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몰라서 더 공부해보아야 겠네요. 저는 그들을 플라톤 학파의 대표 주자로 봅니다. ‘대영 제국의 암살'이라는 가설의 근거로는....

1. 라이프니츠는 러시아 황제의 고문이기도 했고 말년에는 영국 왕실의 재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유럽 최고의 외교관이었는데 그의 장례식이 썰렁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그가 영국 재상이 되는 걸 결사 반대하던 세력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닐까요? 그들이 바로, 미적분의 원조가 (돌팔이) 뉴튼이라 우기고 라이프니츠를 표절범으로 매도하는 사기극을 꾸몄지요. 유럽/러시아/중국의 문화 과학 교류, 유라시아 산업화를 추진한 그를 대영제국이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2. 쉴러는 영국의 제국경영전략을 꿰뚫어보고 미국 독립 전쟁에 이념적 기초를 제공했기에 또 미국이 독립한 후에는 '유럽의 미국화'라는 음모를 꾸몄기에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을 거라 봅니다. 쉴러의 사상을 음악으로 표현한 모차르트도 오스트리아에서 개혁파가 제거될 때 주검도 없이 사라졌지요. [영화/연극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를 '정치적 무뇌아'로 각색한 (대영제국의) 치졸한 엽기극이었구요.]

대영 제국은 지금도 지구 영토의 상당 부분과 금융, 에너지/지하자원 시장은 물론 의식산업까지 장악하고 있으니 그들의 촉수로부터 우리는 하루도 자유로울 날이 없을 겁니다.

로쟈 2005-11-04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자누스님식의 '음모론'이군요. 그러고 보니, 부시도 대영제국의 푸들인가요?

쿠자누스 2005-11-08 0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대통령 가운데 암살된 4 사람의 공통점은 '미국의 영국화/ 재식민화'에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평양에서 출간된 어느 책에는 그들이 '인민을 배반'했기때문에 불행한 죽음을 자초했다고 써있더군요.] 부시 가족 3대는 친영파의 '원조'라고나 할까요. 부시 조부는 히틀러에게 흘러가는 월가의 비자금을 관리하던 일이 들통나 국가 반역죄로 옥살이를 했지요.

새들처럼 2005-11-08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이아몬드의 <붕괴>가 <문명의 붕괴>로 번역돼 나왔네요.

로쟈 2005-11-0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이미 몇자 적었습니다.^^

sayonara 2006-04-26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많이 읽을지언정 다양하게 읽지 못하는 제 자신이 초라하네요.
에코와 크루그먼에만 심취했었던 편협함이란... 한편으론 앞으로 읽을 책이 많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고... ^_^

로쟈 2006-04-2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에 오랫만에 댓글을 달아주셨군요. 에코만 해도 워낙 박식하고 폭넓은 사람인지라 '편협함'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요. 에코를 다 따라 읽으면서 편협해지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

sayonara 2006-04-27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엄청난 위로를...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