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땀한땀 바느질한 핸드메이드 명품 가방 (친구 작품)
아들이 밤늦게까지 공부할 때 한석봉 어무이 심정으로 숨어서 안 자고 만들었다 함.
두 달 걸려서 바느질 완성. 나 같으면 들여다 보다가 속 터져 바늘에 머리를 짓찧었을듯.
글쓰기도 어차피 미메시스라면 한땀한땀 지대로 하다보면 그 누구 것도 아닌 저 만의 명품
가방을 갖게 되는 거겠지.
1. 쓰려면 읽어라 - 쓰기의 어려움
책에 대한 호불호는 취향의 문제이다. 남들이 아무리 권해도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건 나와 맞지 않는 책이다. 억지로 그런 책을 읽겠다고 무리하다 보면 몸과 마음에 나쁜 신호가 온다. ‘그 책 나도 읽었지’라는, 괜한 허영심을 얻기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읽기를 포기하는 게 낫다.
자꾸 읽다 보면 어떤 책이 좋은지, 어떤 책이 내게 맞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 뿐 아니다. 자주 읽다 보면 어떻게 쓰면 잘 쓰는 것인지도 덤으로 알게 된다. 지피지기해야 백전백승하는 건 글쓰기에도 통용된다. 잘 된 남의 글을 열심히 읽다 보면 글 쓰는 방법은 절로 알게 된다. 물론 방법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건 별개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잘 쓰기 위해선 잘 읽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고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너무 많은 답이 있어 답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건 ‘읽기’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잘 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읽기를 좋아하고 읽는 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그들은 ‘글 쓰는 법’ 등에 대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묻지 않는다. 이미 책 속에서 그 답을 얻었기 때문에 물을 이유가 없다. 반면에 그런 질문을 자주하는 사람들은 책을 읽어야한다는 생각보다는 쓰는 데 더 관심이 많다. 쓰고 싶다는 다급한 열망이, 읽어야 쓸 수 있다는 차분한 여유를 가려버린다.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에 대한 답은 죽을 때까지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쓰는 게 먼저 일까, 읽는 게 먼저 일까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잘 된 글 안에 잘 쓰는 법이 있다. 글 잘 쓰는 일은 물어서 될 게 아니라, 많이 읽고 깊게 생각해야 된다. 읽기 훈련이 잘 된 이들이 잘 쓸 수밖에 없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자. 잘 쓰는 방법을 안다고 해서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잘 쓰는 행위 자체는 인내심과의 싸움이다. 그나마 다른 예술에 비해 재능이 덜 따라줘도 극복할 수 있는 게 글쓰기다. 한데, 약간의 재능만 필요한데도 글쓰기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은 왜일까? 이것 또한 확실한 답이 있다. 약간의 재능만 필요한 대신 아주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서이다. 약간의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책만 늘여가니 될 턱이 있나.
자문자답해본다. 글 잘 쓰고 싶은가? 깊이, 섬세하게 읽어라. 그런 뒤엔, 엉덩이 붙이고 군말 없이 쓰면 된다. 단, 글은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쓴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2. 오랜 강도 흐른다 - 올리브 키터리지 <강>편
그 여자 까칠하다. 다른 사람에게 절대 잘못했다는 말을 할 줄 모른다. 착하디착한 남편에게도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사랑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 답례를 할 겨를도 없이 남편은 저 세상으로 떠났다. 대범하고, 빈정대는 이면에 여리고 따스한 여자는 그 성격대로, 상처 주고 상처 받기를 반복한다.
여자에게 남편의 죽음보다 더한 슬픔은 유일한 혈육인 아들의 무관심이다. 우울증 앓는 아들은 재혼한 아내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다. 담당의는 이 모든 상처는 엄마로부터 기인한다는 진단을 내린다. 여자의 악다구니, 매질, 냉소적 태도가 아들의 트라우마가 될 줄 그때는 아들도 엄마도 알지 못했다.
우연한 계기로 여자는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하버드대 출신의 남자는 잘난 척에다 오만한 것으로 마을엔 알려져 있다. 하지만 데이트를 거듭할수록 남자에게 끌린다. 단 한 번도 그 잘난 하버드대 출신이라는 걸 입 밖으로 낸 적이 없다. 역시 겪어보지 않은 모든 것에는 판단 유보가 필요해, 라고 여자는 중얼거린다. 동성애자인 딸과 절연한 사연을 털어놓는 남자에게 여자는 깊이 공감한다. 여자 또한 삐걱대는 모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던가.
여자의 유일한 희망은 죽을 때 숨이 금세 끊어지기를 바라는 일. 남편의 죽음과 희망 없는 아들과의 관계 앞에서 그녀가 바라는 건 그 뿐. 하지만 남자를 만날수록 생의 활기를 얻는 것은 어쩔 것인가. 의외로 보수적 정치 성향인 남자에게 실망하기도 하지만 아픈 남자가 여자를 기다릴 땐 최선을 다해 달려간다.
정서적 심리적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노년의 남녀 눈빛은 적요하고 따스하다. 삶은 완벽하지도 아름답지도 않기에 맞잡은 두 손이 필요한 것. 여자는 아직은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다. 늙은 소도 쟁기질 할 수 있고, 오랜 강은 안으로 깊이 흐른다고 생각한다. 여자 나이는 일흔 넷이고, 이름은 올리브 키터리지. 통찰 깊은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동명 소설의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