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창녀는 무척 젊게 만들어준다.’ 발터 벤야민이 한 말이다. 그의 사유집『일방통행로』의 「13 번지」소제목은 책과 창녀의 공통점에 대한 부분인데 ‘벤야민다운’ 독창적 생각으로 차 있다. 이 말이 갑자기 떠오른 건 오래된 친구들을 너무 오랜만에 만나고 난 뒤 회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벤야민의 그 말을 내 식으로 바꿔 말하면 ‘오랜 친구는 무척 젊게 만들어준다.’가 될 것이다.

 

  나를 무척 젊게 만들어주는 ‘오랜 친구’는 한 가지 단서를 달고 있어야 한다. 자주 만난 오랜 친구가 아니라 아주 오랜 만에 만난 오랜 친구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삼십 년 정도는 못 만났던 친구라야 나를 젊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오랜 친구라도 자주 만나면 늙음을 공유하는 편한 사이가 되고, 오랜 친구를 삼십 년 만에 만나면 ‘젊음’을 환기시키는 설레는 자극제가 된다. 육체적 현실은 늙었으나 심적 현상은 그때 그대로 임을 확인하는 청량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간 동창 열댓 명이 거의 삼십 년 만에 만났다. 이것저것 다급해진 궁금증만큼 섞어 마신 술 때문에 누군가는 빨리 취했다. 민낯을 드러낸 채 싱크대 앞에서 칫솔질까지 해대는 여자 동창들의 뻔뻔함도 남자애들의 무람없는 너털웃음 속에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삼십 년이 무색할 정도로 모두 청춘으로 돌아가 추억을 공유했다.

 

 

  아내를 잃은 이도, 자식을 먼저 보낸 이도 있었다. 잘난 마누라와 착한 남편을 만난 이도, 게으른 마누라와 보수적인 남편을 거느린 이도 있었다. 사회적으로 앞장서는 이도, 주변부에서 겉도는 이도 있었다. 다양한 세상만큼 저마다 각양각색의 삶을 변주하고 있었다. 다 다른 사람끼리 다만 같은 이십대를 살았다는 공감대 하나만으로 웃고 떠들며 제 젊은 날을 상기했다.

 

 

  그 시절이 떠오르는 음악이 담소의 배경으로 깔렸다. 평소의 나 같으면 신경이 거슬렸을 것이다. 나는 음악이 배경으로 물러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한다. 음악이면 음악이고 담소면 담소지, 담소하는 가운데 흐르는 음악은 소음공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기꺼이 참을 수 있었다. 끄려고도 꺼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담소에 떼밀린, 배경으로서의 음악 또한 그 시절을 환기시키는 귀한 매개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삼십 년 시간의 강을 용케 건너온 우리는, 각자 아팠거나 느꺼웠을 그 시절을 돌아가며 풀어내었다. 앞으로 쌓아갈 나머지 삼십 년도 그렇게 과장 없이, 침잠도 없이 담담하게 맞고 싶다. 늦가을 바람에 흩어지던 낙엽비 아래서 제 젊음을 사고 싶다면, 오래 만나지 못한 청춘의 친구를 소집할 일이다. 책과 창녀 못지 않게 나를 젊게 만들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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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1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너무 좋아요. 글도 사람도. 정말 우리는 그만큼의 시간을건너왔는데 다시 그 시절을 환기하기엔 늦었고 그렇다고 철이 든 것도 아니고ᆢ 삼십년 전의 저를 한번 불러보게 하는 글이에요. 마음이랑 짝하지 마라는 책도있지만 오늘은 구르는 낙엽처럼 딱 그런 마음이랑 짝꿍하고 싶네요. 님도 저도 어느 하나 매인 데 없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잘 지내자구요^^ 잘살기 페이퍼에 감동 먹고 여기다 수다를ㅎㅎ 잘살기 페이퍼는 추천만 누르고 별찜해서 늘 보고 저를 가다듬을 거에요. 현명한 사랑, 사랑을 부릴줄 알아야한다는 페이퍼도요. 고마워요♥

다크아이즈 2012-11-14 22:47   좋아요 0 | URL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게 더 나은 표현일지도...
체력이 바닥이라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어서 열정 넘치는 모든 분들이 저는 부러울 뿐...
프레이야님 알게 돼서 그나마 용기를 얻습니다.
많이 배울게요. 제가 고마울 뿐이지요♥

삼십 년 세월 흘렀어도 몸만 흘렀지 맘은 그대로더군요.
프레이야님도 오랜만에 동창회 가보시어요. 나름 재밌었어요.
 

 

 

 

 

사랑하지 않아야 사랑이 온다. 사랑하면 그 사랑은 달아나기 십상이다.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첫사랑은 실패로 남는다. 사랑을 이론서 안에서만 이해하려 한 치들은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사람들을 기만해왔다. 사랑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혼란이다. 대개 어느 한쪽의 괴로움을 수반하는 심리적 기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이런 주제를 다루었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충만해진다는 것도 거짓이다. 그런 건 신 앞에 모든 걸 맡긴 종교인에게나 가능하다. 실제 더 많이 사랑할수록 패배자일 뿐이다. 덜 사랑해야 승리자가 된다고 통찰 있는 작가들은 말해준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상대에게 무의미하다. 상처가 되지도 않는다. 효력 발생 가능성 제로인 그 비참한 선언은 선언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반대로 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진의를 밝히는 건 상대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 당연히 상처가 된다. 효력 발생 가능성 백퍼센트가 될 그 무정한 선언은 선언으로서의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심리적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모든 걸 자신이 의도한 대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의 속성은 불편부당함에 있다.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상처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첫사랑에 백전백패하는 이유는 사랑을 주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사랑에 저울추가 없다고 믿었던 순정함이 사랑을 그르친 것이다. 사랑만큼 저울추가 확실히 기울어지는 것도 없다. 덜 사랑하는 사람은 연민과 자책은 없을 수 없겠지만, 사랑 앞에서 괴로움 따위는 친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사랑하는 쪽은 상대의 연민과 자책을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사랑 앞에서 늘 괴로움을 친구 삼을 수밖에 없다.

 

몇 십 년 만에 동창 친구들이 모였다. 일분 스피치 시간 동안 어떤 친구가 말했다.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그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웠노라고. 우리는 일제히 웃어젖혔다. 그 친구가 남몰래 누군가를 사랑했다고 생각한 것은 그만의 착각이었기 때문이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말하지 않았어도 그가 사랑한 사람이 누군지를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어려서 순정했던 그 미세한 떨림은 비밀스러울 수가 없었다. 순정할수록 감춘 마음은 더 티가 나기 마련이었다. 사람은 말보다 몸짓과 표정으로 먼저 말한다는 것을 당사자만 몰랐을 뿐이었다.

 

 

현명한 자는 사랑을 부릴 줄 안다. 상처뿐인 순정은 가장 순수한 사랑일지 모르지만 사랑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 상처뿐인 사랑이라면 그것은 사랑일 수가 없다. 제 사랑을 온전하게 주관하지 못하는 사랑을 어떻게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상대 눈빛의 선처에 일희일비하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아픔일 뿐이다.

 

사랑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걸 안 뒤의 사랑이어야 정녕 아름다울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을 버리고서야 온다. 안타깝게도 모든 현명한 것들은 너무 늦게 알게 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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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12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하며 읽었어요. 사랑 참ᆢ

다크아이즈 2012-11-13 07:5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사랑 참 어렵지만 알고 덤비면 덜 상처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그간의 노하우(!)를 아들에게 전수하려니 강력 거부하네요.^^
하기야 체험해야 자기 것이 되지, 질러 가서 피한다고 세련된 사랑관이 나올 것 같지도 않네요. 사랑은 원래 구질구질하고, 던적스러운 거잖아요.

프레이야 2012-11-13 09:5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던적스러운 그놈, 그 이름 사랑ㅎㅎ
노하우 전수는 불가라고 생각해요.ㅋㅋ
사랑은 사람수만큼이나 다르게 제각각 있으니ᆢ
근데 던적스러운, 이거 김훈의 공무도하에서 읽고
오랜만에 보는 표현^^ 사람뿐만 아니라 사랑에 딱 맞는 표현같아요.

라로 2012-11-13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감하며 읽었어요. 더구나 누구를 생각하면서,,ㅎㅎㅎ

다크아이즈 2012-11-13 08:03   좋아요 0 | URL
앗, 나비님 <누구를 생각하면서> 구절, 제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ㅎㅎㅎ
왜 그땐 어설펐을까요? 돌이킬 수 없는 희망을 희망하던 모든 것을 (첫)사랑의 속성에 추가해봅니다.
 

 

 

시험이 끝났다. 시험장에다 날개를 떼어놓고 오기라도 한 것일까. 한풀 꺾인 새처럼 교문을 나서는 그들 어깨 위로 저녁 안개가 내려앉고 있었다. 아무렴, 대책 없이 다사로운 햇살보다는 눈치껏 감싸주는 안개가 그나마 위로가 될 것이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수험생들 가운데 울상 짓는 몇몇의 실루엣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꿈을 얻기 위해 몇 년을 달려왔다. 하지만 아뜩하기만 한 지문(地文) 앞에서 그들은 몇 번이고 그 꿈에 대한 다음과 같은 부정적 정의를 환기시켰을지도 모른다. 꿈은 꾸는 것이지 이루는 것은 아니라고. 너무 어려워 절망의 예고편처럼 읽히는 시험지 앞에서 자조적 탄식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방천지 유리벽인데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은 더해가고, 그 어디에도 출구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맘 아플 몇몇 수험생들에게 자꾸만 감정이입이 된다. 먼 시절을 돌이키면 그 때 내 심정이 딱 저랬다. 이제껏 맛보았을 몸과 마음의 가장 큰 상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낙담은 이르다. 입시는 가장 큰 현재형 고통일지 모르지만 가장 우스운 미래형 코미디이기도 하니까. 힘겨울 그들의 ‘지금’에게 용도 폐기용 충고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건 너무 늦은 깨달음들이 세상엔 널렸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삶은 지속된다. 희망을 버린 절망의 나날보다는 절망을 이긴 앞날이 그래도 더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던 건, 문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문을 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볼 수도 없었고,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고군분투했을 그들이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며칠만 힘겹다가 툭 털고 일어나, 내팽겨 쳐 둔 날개를 가지러 갔으면 좋겠다. 들숨날숨 한 호흡 크게 쉬고 새벽길 나서는 그들 어깨를 상상한다. 안개 자욱한 그 길, 귀 열고 눈 뜨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날개 돋는 시절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니까.

 

 

 

 

*음화홧, 위로 페이펀데 소개 상품은 수능 만점에 관한 거다.

  이런 뒤지럴스런 모순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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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1-09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화홧, 위로 페이펀데 소개 상품은 수능 만점에 관한 거다.
이런 뒤지럴스런 모순이라니..."

이 글에서 저, 빵 터졌어요.


다크아이즈 2012-11-11 08:42   좋아요 0 | URL
페크님, 써놓고도 이 따위 페이퍼가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스스로나 위로하렵니다. 이것도 모순 맞지요? 크~

2012-11-09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에 추천 꾹~^^

다크아이즈 2012-11-11 08:44   좋아요 0 | URL
섬님, 제가 생각해도 이 잡스런 단상은 내용보다 태그가 더 낫다는 생각이...
만나 뵈서 반갑습니다. 저도 찾아 뵐게요.

프레이야 2012-11-09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순도 가지가지ㅎㅎ 뒤지럴스런 ㅋㅋ 요런 발랄한 표현을요! 친구 딸도 생각보다 못 나왔다고 좀 걱정하네요. 에효ᆢ

다크아이즈 2012-11-11 08:4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발랄하다기 보다, 가끔 제가 장소와 때에 맞지 않게 분위기를 망친다는 생각은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님의 위로가 필요할 때. 에효..

2012-11-11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1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4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4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5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댈러웨이 2012-11-11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느와르님, 짧은 페이퍼 참 따뜻하고 좋다, 이러면서 읽어나가다가 덧붙이신 글에서 화들짝! 터프한 분이셨군요! ^^

다크아이즈 2012-11-12 01:44   좋아요 0 | URL
네,역시 댈러웨이님 예리하시네요.
암만 생각해도 따뜻한 면 보단 터프한 게 제 실체인 건 맞습니다.
따뜻하고 싶습니다... 크~
 
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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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오늘은 어제의 집합체이다. 내일 없는 오늘은 있어도 어제 없는 오늘은 신생을 제외하곤 없다. 오늘 내가 하는 모든 몸짓과 생각은 좋든 싫든 어제의 결과물이다. 앙다문 입술, 조심성 없는 매무새, 무심한 위로의 말, 주춤거리며 멀어지는 발길, 재바른 손놀림, 자주 흘리는 눈물, 위선에 찬 악수, 쏘다녀 비릿해진 머릿결, 전의를 상실한 눈빛……. 이 모든 것들은 축적된 어제가 내보낸 오늘 삶의 무늬들이다. 오늘을 이루는 이 무늬결이 단단하거나 부서지는 건 어제 역시 단단하거나 부서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늘을 산다고 믿지만 실은 어제에 갇혀 산다. 오늘을 버리고 싶다는 것은 어제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고, 오늘을 부여잡는 건 어제로 돌아가고 싶다는 완곡한 바람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였으므로.

 

삶이란 이처럼 어제와 오늘이 얽힌 유기적 총체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소설『어제』에서 과거와 현재가 맞물리는 지난한 삶을 무심한 듯 냉정한 필치로 그린다. 장식 없고 건조한 그녀의 문체는 화려하고 다사로운 문체보다 훨씬 더한 감동을 준다. 창녀의 딸이라는 과거도, 노동자라는 현재도 연인에게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주인공의 막막함. 거기다가 연인과 같은 아버지를 뒀다는 혼자만의 비밀까지 감당해야 하는 주인공은 스스로를 제외하곤 어디서도 제 운명을 이해받지 못한다. 끝내 고통스런 어제인 연인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

 

독자로서 가슴이 아픈 건 운명의 가혹함이라는 신파가 아니라 산다는 것의 비루함에 이야기의 초점이 가 있기 때문이다. 결코 과거를 파먹으며 자학하지 않는다. 사랑을 포기한 그 자리엔 현실이란 오늘이 배치되어 있다. 말하자면 죽도록 사랑했던 연인이 떠나도, 더 이상 꿈꿀 이유가 없어도 인간은 어떻게든 현실과 타협해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다만, 어제에 발목 잡힌 오늘이 그 어제를 영원히 밀어내지는 못한다.

 

  어제에 저당 잡히는 걸 견딜 수 있는 건 그것이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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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1-08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렇게 멋진 리뷰를 보게 되다니... 대박 대박!!!!!!!
제가 이런 글을 보게 된 것이 대박이란 뜻이어요. 키득~~~

'나도 요런 글을 써 봐야징.'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2-11-09 09:16   좋아요 0 | URL
간결함 속에 담긴 서늘하고, 섬찟하고, 초연하고, 냉랭하고 그리고 그리고
담대하게 담담한 그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해내고, 저는 바라보고, 페크님은 과한 유머로 화답하시고... 이래저래 이 가을, 또 절망입니다. 휴~
 

 

 

외투를 걸쳐도 좋을 만큼 쌀쌀해졌다. 볼일 때문에 들른 시청사 안의 진열된 화분에서는 막바지 국화향이 진동한다. 창 너머 은행나무 가로수들도 달린 잎보다는 떨어져 뒹구는 잎새가 더 많다. 가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 계절 속절없이 떠나가고 있다. 이맘때면 백만 번이라도 사과를 다시 하고픈 아이 한 명이 떠오른다.

 

은행잎 날리고, 찬바람 돋던 어느 오후였다. 현관 앞 복도에 세워둔 자전거가 없어졌다. 새 것이기도 했지만, 자전거 타기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딸내미를 위해서라도 되찾고 싶었다. 그 즈음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자주 자전거가 없어졌다. 단순 호기심에서 한 번쯤 해보는 장난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 상습 절도범이 계획적으로 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미치자 자전거를 찾고 싶은 것 이상으로 그 절도범 얼굴이라도 확인하고 싶어졌다.

 

아파트 관리실의 협조를 얻어 CCTV를 확인했다. 엘리베이터 안을 비추는 화면에 드디어 자전거 도둑이 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볼수록 화면 속에 비친 얼굴은 내가 열고 있는 논술교실의 회원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모범 어린이였으므로 내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화면을 캡처한 사진을 그 아이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범인이 아니었다. 비슷하게 생긴 다른 애라고 그 아이가 확인해주었다. 너무 큰 실수를 저질러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선명치 않은 CCTV 화질을 믿고 착하디착한 아이를 자전거 도둑으로 몰다니.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었다.

 

사과를 한다고 했지만 내 사과는 충분치 않았다. 사과라는 건 상대가 온전히 받아줄 때까지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진심을 전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몇 년 뒤 한 고등학교 특강 수업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 아이를 보자 반갑고 미안한 마음에 계속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나를 외면했다. 아직 나를 용서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사과를 했지만 상대방이 맘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 사과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었다. 당시 무조건적이고 깔끔한 사과를 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한참이나 지난 그 일을 다시 들춰낼 수도 없고, 노란 은행잎 뒹굴고 찬바람 스미는 오늘 같은 날이면 그때 내 큰 실수와 미흡했던 사과가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다. 몇 번이고 해도 모자랄 나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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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0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와르님의 진심어린 사과에도 마음이 안 풀렸다니 힘들겠군요. 마음이란 게 참 그란거 같아요. 진심만이 마음을 열 수 있게한다니 쉬운말로 들리지만 그게 한번으로는 안 풀리나봐요. 페이퍼 제목처럼 천만번 해야될 일도 있고 또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되는 것도 있고요. 사과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저도 참 서툰 부분이에요. 느와르님 진심이 이렇게 느껴지는데도 ᆢ참 안타깝네요. 솔직한 고백 페이퍼에 울컥 ᆢ 토닥토닥^^

다크아이즈 2012-11-08 01:3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평생 마음의 짐이 될 것이예요. 이 아이 엄마께도 충분하 사과를 하지 못했어요. 역지사지해도 저 역시 쉽게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거든요. 세상에 충분한 사과란 (신이 아닌)상대가 용서할 때까지라는 걸 요즘에야 알겠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