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서재에 들락거리는 나는 부침이 심하다. 내키면 몇 개월 하다가 게을러지면 한없이 늘어져 잊고 살기 일쑤다. 그나마 최근엔 석 달째 좀 부지런히 드나든다. 이것도 언제까지일지 장담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알라딘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다. 원래 컴맹이기도 하지만 알라디너에게 제공되는 모든 유용한 것들을 활용하기엔 내 머리가 따라주지 않는다. 컴맹인 채로 사는 것도 편하다고 위안을 삼아 본다.

 

  한데 알사탕 나왔다고 받아가라고 메일이 왔다. 무슨 말인고 싶었더니 이 달의 당선작 운운하면서 알사탕 4000개를 주겠단다. 리뷰라 해봤자 원고 5매짜리 밖에 안 쓰는 초간단 파인데, 이렇게 짧게 써도 당선작으로 밀어주나 싶다.

 

  그게 할 말은 아니고, 어쨌든 알사탕은 적립되었다. 근데 컴맹인 나는 읽어 봐도 그걸 어떻게 쓰라는 건지 모르겠다.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짜린지도 감이 안 온다. 옛날에는 매주마다 당선작을 냈고, 적립금 자체를 쏜 걸로 안다. 그것으로 책 사보면 되는데 알사탕을 주니 어떻게 쓰라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이해력 딸리고 해독력 딸리는 컴맹녀를 위해 친절한 알라디너들 답 좀 주세요. 그것으로 책을 사볼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거며, 그 값어치는 얼마나 되는지 몹시 궁금하답니다. 몇 개월 방치해도 사탕이 없어지지는 않는 것 같은데 단물 빠지기 전에 처분을 해버리고 싶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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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10-30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이건 제가 분명하게 알려드릴 수 있겠네요.
예전에 당선작에 주었던 적립금은 사용하기는 편한데, 상품 구매를 해도 상품마일리지가 적립되지 않아요. 하지만 알사탕은 상품권으로 바꿔 사용하기에 상품구매시 상품마일리지가 쌓여서 다시 적립금으로 바꿔 쓸 수 있답니다. 고로 알라딘은 고객을 위해 당선작에 적립금보다 알사탕-즉 상품권을 바꿔 사용하게 하는 거죠.
알사탕 4,000개는 상품권 2만원으로 바꿀 수 있고, 다른 필요한 것으로도 바꿀 수 있습니다.
http://www.aladin.co.kr/satang/wshop.aspx
위 주소를 복사해서 붙여넣고 클릭하면 바로 알사탕을 바꿀수 있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저는 알사탕 2,000개를 선물상품권 10,000원으로 바꾸어 책을 살 때 사용합니다. 그러면 상품 마일리지가 붙어서 적립금으로 결제한 것보다 일석이조가 되죠.
설명이 되었을까요?^^

다크아이즈 2012-10-31 01:3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이런 상세한 설명을.. 감사합니다. 한 번 시도해보고 안 되면 다시 도움 요청할게요.

프레이야 2012-10-3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 드려요!! 길게 쓴다고 잘 쓴 건 아니지요. 알사탕은 순오기님은 시원하게 알려주셨네요.ㅎㅎ

다크아이즈 2012-10-31 01:33   좋아요 0 | URL
알사탕을 줘도 못 받아 먹는 컴맹(아니 이건 해독력의 문제인 듯)의 비애라니.
프레이야님 '짧고,굵게' 이거 글쓰기에도 해당될 수 있을까요?
 
프라하의 봄 - 할인행사
필립 카우프만 감독, 줄리엣 비노쉬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은 누구나 있다. 내게 있어 그 경우는 동물을 키우는 것에 관한 거다. 개나 고양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상상하면 영혼에 푸른 날개가 돋는 듯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그야말로 상상일 뿐이다. 우선 반려동물을 키우기에 내 성정은 너무 게으르다. 게다가 알레르기성 체질이라는 개와 상극인 핑계거리도 마련되어 있다. 결코 함께하지 못할 그들에 대한 애도라도 해보련다.

 

몇 번이나 미뤄둔 영화「프라하의 봄」을 이제야 본다. 십 년도 훨씬 넘은 영화인데 너무 길어 몇 번이나 보다가 중간에 그만 두곤 했다. 원작인「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현대사에 기반을 둔 철학적 사유를 요구한다면 영화는 그저그런 스토리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그 많은 이야기를 두어 시간의 영화에 담아낸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하다. 원작과 연결하려는 그 어떤 목적 없이 이번에는 ‘카레닌’의 존재에 오래토록 생각이 머문다.

 

카레닌은 여주인공 테레사가 키우는 개 이름이다. 그녀가 즐겨 읽던「안나 카레리나」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테레사의 사랑은 의심하는 사랑이고, 욕망하는 관계이며, 질척이는 무거움이다. 이 모든 원인 제공자는 바람둥이 남편 토마스다. 하지만 그 누군들 무거움의 껍질을 벗고 세파에 가볍게 자신을 내던지며 사는 그를 원망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 사랑의 본질은 실연에 있고, 치졸함에 있으며, 실패에 있다. 영원 회귀니 불변진리니 하는 건 이론에나 가능하다. 이런 사실을 대비시켜 보여주기 위해 쿤데라는 또 다른 주인공 카레닌을 등장시켜 끝까지 독자를 심란하게 만든다.

 

카레닌으로 대표되는 개의 사랑은 이해관계가 없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사랑 따윈 뭔지도 모른다. 괴롭히지도 않는다. 의심하지도 않으며 기대하지도 않는다. 저울질도 탐색도 없으며 파괴도 집착도 없다. 다만 거기 그대로 변함없이 있을 뿐이다. 가변하는 인간의 사랑이 불변하는 개에게 해줄 수 있는 위대한 축복은 안락사이다. 믿음이 보장되지 않는 인간끼리는 절대 할 수 없는 최대의 선물 안락사. 죽음으로써 시퍼렇게 살아있는 카레닌의 순정이 거대한 돛으로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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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0-30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열개 하고 싶어요. 이 복잡미묘한 영화를 이렇게 카레닌에 집중해 쓰시다니요. 사랑과 사랑하는 자의 심연에 자리한 슬픈 본질을 꿰고 계신 느와르님, 반짝반짝 합니다. ^^ 왠지 제 마음이 다 가벼워져요.
오늘도 멋진하루 보내세요.~~~

다크아이즈 2012-10-31 01:3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따뜻한 사람이군요. 배울게요.. 용기주시는 말씀 고맙습니다.

대개의 원작이 영화보다 낫긴 하지만 이건 뭐 쿤데라의 승리네요.
곳곳에 단상의 소재가 되어주는...
 

 

  립스틱을 선물받았다. 요즘 유행하는 매직 립스틱이다. 보기엔 오렌지색인데 칠하고 나면 입술이 선홍색으로 바뀐다. 어떤 것은 립스틱 색깔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명한 초록색인데, 의외로 입술에서 발색되는 것은 화사한 분홍색이라 신기하기만 하다. 다양한 세상에 살다보니 화장품 세계에도 일상처럼 요술이 침투하나 보다. 

 

 썸네일 요술 립스틱 이야기로 시작하긴 했지만 기실 나는 화장품에 별 관심이 없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는 커다란 화장대는 거의 비어 있다. 기초화장품에다 꼭 필요한 색조화장품, 일 년에 몇 번 쓸까 말까한 향수 두어 종류가 고작이다. 그나마 기초화장품은 샘플이 넉넉하다. 그것을 다 쓸 때까지 새로 살 필요도 없다. 

 

  알뜰해서 화장품을 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른 주부들처럼 알콩달콩 살림살이에 관심 가지는 치도 못되기에 그런건 결코 아니다. 여성스럽게 치장을 하는 게 귀찮은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다음 다른 이유를 찾자면 어릴 때의 어떤 영향인 것 같다.

 

  그 시대 기성세대 대개가 그랬듯이 부모님은 전형적인 알뜰살뜰파셨다. 허탄두루 돈을 낭비하거나 재물을 허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까운 친척 중에 소비를 미덕으로 아는 이가 있었다. 그 집에 가면 처마에 걸린 마늘은 말라 비틀어져 있었고, 비 맞아 제대로 말리지 않아 부서진 연탄이 부지기수였다. 부모님은 말했다. '저렇게 살림 살면 큰일난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소리를 듣고 자랐으므로 나는 살림을 못할까 걱정하는 아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날 그집 안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엄마에게는 하나도 있을동말동한 '구찌베니'가 그집 화장대 위에는 무려 예닐곱개나 놓여 있었다. 색깔별로 놓인 그 '구찌베니'를 보는 순간 나는 어린 나이에도 그친척 여자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립스틱을 살 수 있단 말인가. 그집이 못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중에 커서도 구찌베니 따위를 많이 사는 여자는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 결심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는 조금 큰 뒤에 알게 되었다. 알뜰한 것과 구찌베니 숫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여자에게 립스틱 예닐곱개는 많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엄마식 알뜰법이 내게 전이된 것 뿐이었다. 세상을 알게 된 나는 엄마만큼 알뜰한 여자가 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실천한 적도 없다. 다만 어릴 때의 알뜰해야 잘산다는 은연 중 가르침은 내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치장하는데 별 관심이 없고, 립스틱을 다 쓸 데까지 후벼파야 직성이 풀리는 것은 내가 원치 않았던 그 학습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엄마의 방식이 옳고, 옆집 친척의 방식이 글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치장하기 좋아하고, 적어도 화장대 위에 립스틱 열 개 정도는 비치해둘 줄 아는 여자들을 더 매력있다고 생각한다. 노력해도 못 마시는 술이 늘지 않듯이 립스틱을 자주 사고 싶어도 닳을 때까지 화장품 가게에 눈길이 가지 않는 것은 어릴 때의 트라우마가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깊어가는 가을, 큰 맘먹고 갈색빛 도는 립스틱 하나 쯤 사고 싶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매혹적인 여자라면 적어도 색깔별로 열 개 정도의 립스틱은 갖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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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0-29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나는 립스틱을 몇 개 가지고 있나, 확인해 봤더니 다섯 개이군요.
더 사야 할까요?
그중 두 가지를 많이 쓰고 있어요.(섞어 쓰기도 해요.)
자랄 때 어머니의 영향은 큰 것 같아요.
저의 어머니도 검소한 편이셔서 제가 닮은 것 같아요. 사는 것에 별로 취미가 없어요.
게다다 이젠 멋내는 것에 흥미가 없어요. 오늘도 어머니와 외출할 일이 있었는데
순전히 ~ 예의상 화장을 하고 나간 것 같아요. 멋이 아니라 예의상...ㅋㅋ
그래도 맘속으로는 귀찮아도 멋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크아이즈 2012-10-31 01:37   좋아요 0 | URL
아, 페크님. 제겐 몇몇 트라우마가 있는데 그걸 단상으로 정리하고 싶었어요. 오늘도 아는 언니를 만나 점심을 먹는데, 피부 고와지는 법을 열강하는 거예요. 큰 관심이 없었기에 안 들어도 좋았지만 언니가 넘 열심히 메모까지 해주면서 권하는 바람에 잠자코 듣고 있었네요.
치장도 하면서 실속도 차리면 좋으련만 게으름이 발목을 잡는군요. 오늘도 페크님 어떤 매혹적인 글 올라왔나 보러 가야 겠에요. 크~

프레이야 2012-10-3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차나서 화장 안 하는 사람 여기 추가요. 마흔 지나는 무럽부터 비비크림에 핑크톤 립글로스만 그거도 예의 차려야할 경우만요. 남의 눈 괴롭지않게요.ㅎㅎ 화장품 특히 립스틱 한때더라 싶네요. 제 엄마도 참 알뜰해서 고급 립스틱 하나 안 사 쓰시고 살뜰히 붓으로 파서 바르고 그러셨는데 ᆢ이제 엄마의 립스틱을 한번 돌봐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드네요, 님의 페이퍼로요.

다크아이즈 2012-10-31 01:4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그 시대 온건한 부모들 마인드는 비슷했나 봐요.
알뜰살뜰 살림파~
화장에 관한한 동지를 만난 듯, 기쁘네요.
 

 

 

 

 

오늘도 나는 칠칠치 못했다. 서울행 가족나들이를 해야 했다. 이주 전 일박이일 일정으로 남편이 잠자리를 예약한다고 했을 때 그러려니 했다. 그날이 문학기행과 겹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매사에 꼼꼼하지 못하고 덜렁대는 편이다. 도대체 두 가지 일을 생각하지 못한다. 문학기행과 서울행은 각기 다른 일정이니 날짜도 당연히 다르다고만 생각했다.

 

출발 하루 전에야 두 일정이 겹친다는 것을 알았다. 한심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 둘 다 빠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문학기행 중간에 순천까지 남편이 데리러 오는 수밖에 없었다. 반나절만 소화하는 기행이 즐거울 리 없었다. 눈은 송광사 단풍에 머물렀건만 마음은 자책의 방망이질로 따끔거렸다.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다. 기숙사에서 급히 나오느라 아들은 속옷과 양말을 챙기지 못했다. 모전자전이다. 야무지지 못하고, 질질 흘리고 다니고, 제 것도 잘 갈무리하지 못한다. 땀이 많은 체질이라 속옷 갈아입는 것을 좋아하는데 시무룩하다. 이때를 대비했을까. 남편이 아이의 속옷과 양말을 내놓는다. 녀석의 얼굴이 환해진다. 면봉과 치실, 간식까지 꼼꼼히도 챙겼다.

 

남편의 준비성 하나 만은 인정해야 한다. 사람이니 단점이 없을 수 없다. 남편도 나만큼 약점이 있다. 소심하고, 잘 삐치는데다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면이 때론 이해가 안 되고 갑갑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내 칠칠치 못한 점을 커버하는 한, 그 약점은 큰 게 아닌 게 돼버린다. 억울한 면도 없지 않지만 어쩌랴. 내 허점은 잦고 드러나지만 그의 약점은 뭉근한데다 숨어 있으니.

 

부부는 서로 달라야 잘산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허점투성이 내 기질을 남편이 공유하고 있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싫다. 갑갑하더라도 나와 다른 약점을 가진 상대가 훨씬 낫다. 다른 사람끼리 보듬고 살라고 조물주는 남녀를 만든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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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8 0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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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8 17: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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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8 0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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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8 17: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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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2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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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1 0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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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0-29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서로 같은 것보다 달라서 '조화'를 이루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같으면 아마 잘 살지 못할 걸요.ㅋㅋ
저도 남편이 저와 달라서 다행이라 여길 때가 많아요.

다크아이즈 2012-10-30 00:44   좋아요 0 | URL
페크님, 다른 게 다행인 건 진리인 것 같습니다. 그 다름이 이해되지 않은 순간순간은 미쳐버릴 것만 같은 게 문제지요. 크~
 
본다는 것의 의미 동문선 현대신서 16
존 버거 지음, 박범수 옮김 / 동문선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시청(視聽)과 견문(見聞)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갔다. 포항 칠포리 암각화를 본 뒤였기에 그 둘을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자연에 가까운 가을 풍광을 만났다. 늪, 들, 물, 잎 등이 맞춤하게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인위적인 것으로부터 암각화 주변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이 느껴졌다.

 

암각화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댐 건너 먼 풍경으로만 보였다. 답사 온 한 무리의 학생들이 앞 다퉈 망원경으로 호수 건너를 관찰한다. 암각화가 보인다고 소리치는 쪽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쪽으로 나뉜다. 보인다고 소리치는 쪽은 소수지만 목소리가 크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말하는 쪽은 다수지만 그 소리가 작다. 투덜대는 목소리가 작은 건, 꼭 봐야 하는 것을 남들은 봤다는데 자신은 못 봤으니 주눅이 들어서 그렇다.

 

그들 틈에 끼어 망원경을 들여다본다. 강 건너 바위는 흐릿하기만 하다. 수면에 직각으로 내리뻗은 절벽단층만 보일 뿐 암각화는 그 어디에도 새겨져 있지 않다. 세월에 풍화되어 그림이 흐릿해진 걸까. 아님 안경 없이 봐서 그런 걸까? 분명 보인다고 소리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땀까지 흘려가며 망원렌즈와 씨름하고 있는데 현장지킴이 아저씨가 다가온다. 뭘 봤다는 학생들은 착각한 거란다. 암각화는 현재 볼 수 없다나. 얼마 전 태풍으로 수위가 높아져 물 속에 갇혔단다. 갈수기인 봄에나 드러난다는데 그나마 이끼나 먼지가 껴 제대로 된 그림을 보기는 쉽지 않단다.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이란 말이 있다.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을 말하고, 견문은 제대로 보고 듣는 것을 말한다. 시청은 견문과 그 깊이와 넓이가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시청’하면서 ‘견문’했다고 착각한다. 아무 것도 본 것이 없는데도 ‘시청’이라도 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안 본 사람이 흘려 본 사람을 이기고, 흘려본 사람은 제대로 본 사람을 앞선다. 그런 부조리한 상황이 곳곳에서 연출된다.

 

제대로 보고 듣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려운가. 시청에 머물 게 아니라 견문을 넓히는 연습이 무던히도 필요한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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