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놓아야 오는 게 있다. 모든 걸 버린 뒤에야 짜릿하게 얻는 게 있다. 바로 자유다. 그토록 갈구하는데도 언제나 그것이 멀기만 한 것은 우리 일상 자체가 버릴 수 없는 것들을 위한 연극 무대이기 때문이다. 밥벌이를 위해 힘껏 고개 숙여야 하고, 눈물을 감추기 위해 크게 웃어야 하며, 벼랑이 두려운 나머지 단단히 밧줄을 잡아야 한다. 정말로 자유가 다급하다면 그 모든 걸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 관계망이란 현상과 자유라는 본질을 동시에 얻으려는 모순된 굴레, 그런 인간 속성을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줄 위를 오가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진 못해요.’『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고용주인 ‘나’에게 저처럼 일갈한다.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인 척해도 그것은 실제 자유와는 별 상관이 없다.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은 자유를 위해 제 인생 순간순간을 도박에 걸지는 않는다. 그토록 어리석을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인 조르바는 다르다. 벼랑에 몰리더라도 인간이 줄을 자르지 않으면 무슨 살맛이 나겠냐고 다그친다. 일상의 우리가 우물쭈물하며 생각만 하고 있을 때, 소설 속 조르바는 과감하게 내려놓고 실천한다. 본능의 화신인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부렸다. 춤추고 싶으면 춤추고, 떠나고 싶으면 떠났다. 그에게 과거란 없는 것이며, 미래는 미리 걱정할 게 아니었다. 오직 현재만이 유효한 놀이터였다.

 

 

  무지렁이 단순 일꾼 조르바는 안타까운 인간 굴레를 위무하기 위해 만든 작가의 꽃다발이 아니었을까. 살아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게 완전무결한 인간의 자유라는 걸 방증하기 위해 조르바란 꿈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조르바의 눈에는 팽팽한 긴 줄 끝에 있으면서도 끝내 그것이 자유라고, 행복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인간으로 보일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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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1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교수가 이 책의 영향을 받아 '자유'를 위해 학교에 사표를 냈다는 걸 신문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의 독후감이 그 신문에 실리기도 했죠. 그가 어리석을까요, 그렇게 못하는 우리가 어리석을까요.

그런데 그런 자유 선언도 운 좋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당장 식비와 교육비를 마련하기가 급한 사람은 직업을 버릴 수 없을 테니까요.

팜님, 저, 첫 댓글이라 기분이 좋아요.^^

다크아이즈 2012-12-16 03:56   좋아요 0 | URL
앗, 어리석은 용기를 끝내 실천하는 분도 계시군요. 그럼 김정운 교수는 지금 자유인? 어쩐지 머리칼 휘날리는 것부터 남다르게 보이더니...

이건 딴 얘긴데, 호텔처럼 흰 침대보에 대한 로망이 있어 집침실에도 그렇게 해달라고 아내분께 요구했다는 김정운 교수 말 듣고, 넘 재밌을 것 같아서 저도 그렇게 바꿔 봤다는 거 아녜요. 호텔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신선했다는... 관리하긴 힘드네요. ㅋ

페크님 글에도 언제나 첫댓글을 달고 싶은 일인인 걸요. ^^*


라로 2012-12-15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헉!!!
팜님,,,저 이 글이 저에게,,,,,,ㅠㅠ
말을 못 잇겠어요. 언젠가 이 댓글에 대한 얘기 해드릴께요.
아~~~~팜님에게 갑자기 해드릴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어요!!^^;;(뭐 제 개인적인 얘기라 님께 중요하진 않아요,,그러니까 해드릴 얘기가 많아지는게 아니라 제가 생각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는,,^^;;)

다크아이즈 2012-12-16 03:59   좋아요 0 | URL
나비님 혹, 조르바 때메 자유인을 꿈꾸거나 실천한 경험이 있어서 이런 감탄사 섞인 덧글 단 것 아닐까요?
완전 궁금해요. 개인적일수록 공감하기 쉬우니 언젠가 나비님께 그 얘기 들을 날이 오고 말것이예요. 그날을 기다릴게요. 크...

프레이야 2012-12-16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팽팽한 긴 줄 끝에 매달려 있군요, 우리가요.
살아선 자유를 구가할 수 없을테죠. 비자유, 부자유,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자유 비스무리한 가짜자유. 그리고 스스로에게 주는 위무.
간결하면서 콕 아픈 곳을 건드려주는 팜님 리뷰, 제가 늘 좋아합니다.^^

다크아이즈 2012-12-16 04:03   좋아요 0 | URL
프레님, 언제나 긴 줄 끝이죠, 뭐.
살아서 자유를 실천해야 진정한 멋쟁인데,조르바 말고 몇이나 가능하겠어요.
심지어 카잔차키스도 그 자유 실천하지 못했을 거예요.
크레타 섬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님도 잠 못 이루고 계시는군요. 얼른 주무세요. 좋은 목소리로 녹음하시려면 체력 관리해야 되는데...^^*
 

 

 

 

 

  한 줄도 너무 길다. 일본의 독특한 문학 장르인 ‘하이쿠’(俳句)를 가리킬 때 자주 듣는 말이다. 하이쿠는 우리나라의 시조와 비견될 수 있겠다. 글자 수로만 비교한다면 우리나라 단시조의 초장 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독서클럽에서 하이쿠 모음집을 읽고 토론했다. 일본 문학을 깊이 공부한 이가 없으니 수박 겉핥기이긴 했다. 아쉬운 대로 하이쿠에 대한 기본 정보를 나누었다는 데서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큰 소득도 있었다. 짧은 시가 주는 매력과 그것이 주는 치유의 느꺼움을 맛보았다는 것이다. 

 

 

  하이쿠는 총 17글자로 이루어진 5·7·5조의 일본 정형시이다. 지구상의 가장 짧은 시 형식 중의 하나이다. 처음 그것을 접했을 땐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예를 들면 ‘해묵은 연못이여 / 개구리 뛰어드는 / 물소리, 첨벙’ - 마츠오 바쇼의 이 하이쿠는 최고로 꼽히는데,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이게 왜 좋은 시라는 건지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하이쿠 특유의 일본 정서를 살피다 보면 짧은 시가 품은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이쿠는 크게 세 가지 형식미를 갖는다. 앞서 나온 대로 열일곱 글자 내외의 정형성을 갖는다는 게  그 첫번 째다. 두 번째로 짧은 시 안에는 계어(季語기고)가 있어야 한다. 개구리, 장마, 기러기, 첫눈 등 누가 봐도 계절을 연상할 수 있는 낱말들이 하이쿠에 자주 쓰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번째는 절자(切子기레지)를 갖추어야 한다. 세 구 중 어느 한 곳에 여운이나 감탄을 나타내는 어미를 써서 시적 흐름을 끊어주는 것을 말한다. 위의 바쇼 시에서 ‘해묵은 연못에’ 하지 않고, ‘해묵은 연못이여’하고 한 호흡을 끊어줄 때 훨씬 시적 긴장을 유발한다.

 

 

  짧은 시가 주는 긴 여운이 신기해 우리식으로 17자 시 짓기 대회를 했다. 격조 높아 부담스러운 우리 시조에 비해 접근하기가 쉬워서 그런지 회원들 반응이 나쁘지 않다. 하이쿠의 묘미인 촌철살인엔 미치지 못해도 저마다 숨겨뒀던 발설욕구는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겠다. 시가 뭐 별건가. 제 안을 맴돌던 말씀들의 향연을 짧은 호흡으로 쏟아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마다 시인이 아니던가. 모두들 절제된 언어의 명쾌함이 주는 치유 놀이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고 있었다.

 

 

 

 

< 회원들의 미완 촌철살인 하이쿠 모음 >

 

 

 

1.시린 손 불며

기표하는 스무 살

떨리는 손끝

 

 

2. 녹는 똥 밟았다

조카 크레파스 십팔색깔!

구린 신 바닥

 

 

3. 벗은 나무여

가지마다 설움 달아

흐느끼는 온밤

 

 

4. 첫눈길 님 마중

맘보다 차바퀴 앞서네

가드레일 휘청!

 

 

5. 살얼음 꼈네

백로떼 어딜 갔나

호수엔 그림자만

 

 

6. 시린 어깨여

켜진 프린터 소리가

온풍기인 줄!

 

 

7. 시린 발걸음

마음처럼 못 가는 건

심장 먼저 언 탓

 

 

8. 마른 잔디밭

성급한 냉이 돋아

당황한 햇살

 

 

9. 얼음 낀 물확

수초는 그대론데

마실 갔나 구피!

 

 

10. 하이쿠 짓는 동지

팥죽 색깔 얼굴만

붉으락 푸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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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12-12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느와르님이 쓰신 건 2번일까요? 아니면 10번? --;



매미소리 쏴-
아이는 구급차를
못 쫓아왔네.

-이시바시 히데노

다크아이즈 2012-12-13 08:11   좋아요 0 | URL
ㅋㅋ 역쉬 예리하신 댈러웨이님
2번이요~~ 제 기질 어디 가겠어요?
하이진(하이쿠 전문 작가들)이 똥 이야기 많이 하길래 저도 그냥 ㅠ

맞아요. 공감각 넘치는 히데노의 저 작품도 넘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기왕이면 댈러님도 17자 한 수 답글을 주시지. 저 넘 감격해서 기절했을라나. ㅋ

페크pek0501 2012-12-13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7번과 8번, 좋아요. ^^

2012-12-16 0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2-12-15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이쿠 한수 올리려고 생각해봤더니 좀 어려운걸요!!
언제 한 수 올려봅지요,,ㅋㅋ

다크아이즈 2012-12-16 04:10   좋아요 0 | URL
나비님, 꼭 한 수 올려 주시어요. 넘 재밌을 것 같아요.
근데, 너무 바쁘신 분이라 하이쿠 짓는 건 힘들지 않으실텐데
시간 내는 게 가장 힘들 것 같아요. ^^*

프레이야 2012-12-16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었지요. 오래전. ^^
그나저나 2번이 정녕 팜님 작품? 화끈하니 참말 좋아요^^

다크아이즈 2012-12-16 04:13   좋아요 0 | URL
넹, 저 좀 저질인가요? ㅋ
논술교실 열었을 때(지금은 집에서는 안 해요.)학생들이 와서 저런 욕
저한테 가르쳐줬는데 넘 재미있어서 정말이지 배꼽 잡고 웃었어요.
그걸로 재배치 한 번 해봤어요. ㅋ
 
[eBook]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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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해당화  - 2. 밀물

 

 

  누구나 야생해당화에 난 가시 같은 생의 송곳날에 찔리곤 하지. 해당화 덤불 무성하고, 흰 꽃 향기 진할수록  그 가시는 아프게 찔러대지. 케빈의 삶이나 올리브의 삶이나 그게 그거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결코 아름답고 달콤하지만은 않지. 아픈 과거를 잊기 위해 케빈처럼 미치광이를 친구해 미치려 하거나, 올리브처럼 위악의 제스처로 자책을 포장하려 하지. 

 

 

  누구나 조금씩 정상이 아니지. 우울증을 대물림해준 올리브의 친정 아버지도, 세번이나 정신발작을 일으킨 시어머니도, 우울증을 대물림받은 올리브 아들도 조금씩은 비정상의 궤도란 일상을 돌지. 자살을 시도한 케빈의 엄마도, 자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케빈도, 마약쟁이 길거리인으로 전락한 케빈의 동생도 평범한 삶의 궤적을 가진 자들에겐 연민의 대상이지. 유산의 괴로움으로 들꽃다발을 만들어 위안받으려는 패티라고 별 다를 수 있겠어?

 

 

  퉁면스런 이면에 슬픔을 간직한 올리브, 나긋나긋하지 못한 행동 뒤의 아픔을 누르는 올리브, 단호한 목울대 뒤에 숨은 진솔하고 인간적인 올리브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아. 살다보면 누구나 올리브가 되어 가는 거지. 무심하게 보이는 일상엔 위악으로, 누군가의 시선이 필요한 자에겐 팔 걷어 부치는 올리브를 그림처럼 떠올려보곤 해. 코끼리 같은 몸집의 올리브가 패티를 구하기 위해 화들짝 놀라 케빈의 차문을 열고 달려가는 걸 상상해봐. 

 

 

  바다끝 마리나 근처 절벽에서 코를 간질이는 야생해당화 향기가 스쳐와. 케빈은 그 흰 꽃 냄새를 맡다 말고 뾰족한 가시를 떠올렸을지도 몰라. 어쩌면 야멸차고 지리멸렬한 생이 지겨워 죽음을 선택한 엄마의 육신이 부엌 벽에 흩뿌려질 때, 테이블 위에는 야생해당화가 꽂혀 있었을지도 몰라. 슬픔이나 아픔을 간수하는데 꽃보다 나은 위안은 없잖아. 유산의 고통스런 기억을 잊으려 패티도 바닷가에 피어난 야생해당화를 꺾으러 발길을 옮겼잖아. 나리꽃도 좋았을 패티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수록 생에 대한 간절한 희망이 보였다는 건 여간 다행한 게 아니야. 패티도 살고, 케빈도 살리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보며 나지막히 말해 보는 걸. 작가는 올리브의 다른 이름이구나, 하고. 

 

 

  앞으로 펼쳐질 올리브, 아니 엘리자베스의 꽃 이름을 무엇으로 달까, 이런 짠하고 아린 생각을 해봐. 야생해당화처럼 가시로 찌르는 게 삶인 걸. 찔리지 않으면 그건 살아냈다고,견뎌냈다고 할 수 없어. 그런 사람들은 이 책을 펼쳐도 무지 재미 없을 거야. 도무지 난감할지도 몰라.『올리브 키터리지』는 뭐,그런 소설이지. 다음 편 리뷰 제목은 꽃 이름이 아니어도 좋겠어.   

 

 

 

2. 밀물 - 간단줄거리

 

  케빈이 고향에 돌아왔다. 우울증을 앓던 엄마가 부엌에서 권총 자살을 한 이후 열세 살에 아버지와 동생과 이 마을을 떠났다. 바닷가 짠내가 찌르고 야생 해당화 덤불의 활짝 핀 흰 꽃이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패티는 어릴 적 케빈의 소꿉 친구다. 카페에서 커피를 따라주다 창을 통해 케빈이 차안에 앉아 있는 걸 보지만 모른척한다.

 

  케빈은 어릴 적 살던 집 근처 숲에서 라이플로 죽음을 선택하려한다. 엄마의 유전인자가 자신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엄마가 자살할 때 싱크대 벽면까지 육신의 잔해를 뿌린 것을 기억하고 현재 집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그런 모습을 발견할까 싶어 담요를 덮고 결행할 생각이다.

 

  케빈을 발견하고 키터리지 선생이 조수석에 탄다. 케빈은 차창밖 양동이를 든 채 카페 안팎을 왔다갔다하는 여자를 바라본다. 패티라고 키터리지 선생이 전해준다. 결혼 뒤 유산이 잦아서 슬퍼하고 있다고도 말해준다. 케빈은 뉴욕에서 정신과 전공의 과정 중이지만 정신과 전문의가 되지는 않을 거라 말한다. 포말이 이는 바다쪽에서 야생해당화가 빛난다. 엄마처럼 소아과 의사가 되려했지만 불운한 어린 시절 때문인지 광기에 이끌린다. 미친 존재감의 클라라와 연애 경험도 있다.

 

  키터리지 선생은 자신의 아버지도 우울증이었고 그 유전인자가 아들에게 유전되었다고 고백한다. 아버지도 총으로 자살했다고 말해준다. 키터리지는 케빈을 공감하려 애쓴다. 묶인 요트 근처의 야생 해당화 꽃대가 누웠다 일어났다 다시 눕는다. 해당화를 꺾으러 간 패티가 그 가시에라도 찔린 듯 손을 턴다.

 

  유산의 아픔을 잊으려 꽃을 꺾기 위해 패티가 마리나(요트 정박장) 근처 절벽으로 나선다. 케빈과 키터리지가 차 안에 있는 걸 보고 안심한다. 휘청대는 해당화에 손이 찔린다. 키터리지는 우울증 유전자를 아들에게 물려준 자신을 자책한다. 시어머니도 정신병 경력자였기 때문에 거기서 유전인자를 받지 않았다고는 말 못한다고 돌려 말한다. 케빈은 듣기 괴롭다. 광기는 광기를 불러온다고 자신의 몸을 칼로 긋던 미친 클라라를 떠올린다.

 

  케빈의 동생은 마약 중독자로 길거리 인생이다. 아버지는 간암으로 죽었다. 의대 졸업식 때 들은 격려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란 말을 듣고 내면이 공포가 증폭되고 영혼이 조여오는 걸 느꼈다. 세상 모든 것이 <우리는 가정과 사랑의 세계에 속해 있고 너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어릴 적 살았던 집을 보니 엄마가 그립다. 키터리지 선생이 빨리 차안에서 내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선생이 급하게 뛰쳐나간다. 꽃 꺾으러 갔던 패티가 암벽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진 것이다. 케빈이 패티를 구하러 뛰어든다. 케빈은 패티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격렬하게 붙잡는 패티를 보며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를 알게된다. 오, 미친, 우스운 알 수 없는 세상이여! 하고 되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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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12-1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밤에 읽으렵니다. 올리브 키터리지잖아요,,더구나 밀물,,ㅠㅠ

다크아이즈 2012-12-16 04:15   좋아요 0 | URL
나비님, 이 작품 광팬인 분들이 알라딘에는 너무 많아 몇 줄 쓰기도 두렵습니다. 그래도 13작품 완주하는 게 목표인데 충고해주시면 도움 되겠지요. 밀물 읽으면서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너무 많이 울었다는...

프레이야 2012-12-16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물은 야생해당화였군요.
누구나 조금씩은 미쳤다, 태그에 공감해요^^
살고 싶어, 행복하게 살고 싶어, 몸부림 치는 그대들 아니 우리들
모두 애잔한 존재지요. 요즘 부쩍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2012-12-16 0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표를 세운 사람의 성공 여부는 부지런함에 달려있다. 참으로 고전적인 말이긴 하지만, 크고 작은 소망이 결실을 맺는 데는 근면·성실보다 나은 게 없다. 부지런한 뒤에 운과 재능을 빌려도 늦지 않다.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에 관한 책을 읽는데 눈시울이 절로 붉어진다. 이런 스승과 제자가 있을까. 깐깐한 스승과 우직한 제자는 찰떡궁합이다. 강진 유배 시절, 주막집 더부살이 신세이면서 서당을 연 일은 다산이 숨통을 틀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유배 18년 동안 다산을 거쳐 간 제자는 많았지만 끝까지 남은 단 한 사람이 황상이었다. 황상은 아전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다산의 제자가 되었다. 열다섯 더벅머리 황상은 외로운 다산에게 믿음직한 아들 같은 의지처가 되어주었다. 스승은 만난 지 이레째 되는 날 귀가하는 황상을 따로 불러 공부에 힘쓰라고 당부한다.

 

 

  황상은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속내를 고백한다. 자신의 세 가지 문제점은 둔하고(鈍), 막혔고(滯), 어근버근하다(戛)고. 그래도 문사를 닦을 수 있겠냐고 여쭤본다. 스승은 제자의 수줍은 질문에 이런 요지의 답글을 내린다. 재빠르고(敏), 날카롭고(銳), 빠른(捷) 게 전부가 아니라고. 재바른 천재보다 미욱한 둔재의 노력이 훨씬 무섭다고 깨쳐준다. 뚫으려면 어째야 하는가? 부지런해야 한다. 틔우려면 어떻게 하는가? 부지런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 부지런해야 한다.

 

 

  황상은 늙어 죽을 때까지 스승의 이 면학문을 몸과 맘에 새겼다. 세 번씩이나 부지런하라고 써준 스승의 말씀을 ‘삼근계’라 부르면서 그 친필을 평생 어루만지며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다산이 죽은 뒤 다산의 아들 학연은 너덜너덜해진 황상의 삼근계를 보고 다시 써주었다. 그 글씨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스승, 제자, 아들의 연결 고리 또한 애잔한 것 말고 달리 말할 길이 없다.

 

 

  어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부지런한 게 좋은 거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이든 정보든 내게 부지런하라고 말할 스승은 도처에 넘친다. 다만 내게 황상 같은 우직함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둔하고, 막히고, 어근버근한 그 우직함을 황상에게서 빌려오고 싶다.  스승 사랑 담뿍 받고 그 사랑 실천한 황상이 부럽기만 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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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10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 이런 좋은 글로 아침을 열 수 있는 저는 참 행복해요*^^*
마음에 새겨봅니다. 새기면 저도 좀 부지런해질 수 있을까해서요.
둔하고, 막히고, 어근버근한 우직함으로 부지런하게...
평화로운 하루 보내세요^^

다크아이즈 2012-12-10 23:16   좋아요 0 | URL
황상 같은 제자가 있을까 싶어요.
누군가의 우직한 제자가 되기엔 너무 닳아버린 제 자신을 채칙하는 글입니다.
스승은 제자가 만드는데, 다산을 스승이게 한 황상의 순정함이 참으로 놀라울 뿐입니다.

프레님도 제 맘의 스승이자 도반^^*

라로 2012-12-15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읽고도 댓글을 못 달았었어요. 저도 저 책을 갖고 있는데 첫 부분만 읽고 아끼고 있는 책이지요. 님의 글을 읽고 새해가 되면 다시 잡으리,,,라고 결심했다는,,ㅋㅋ

다크아이즈 2012-12-16 04:24   좋아요 0 | URL
나비님 꼭 끝까지 읽어 보시어요. 이 책 한 권으로 할 말이 너무 많아요.
순전히 정민 선생의 수고 덕이지요. 정민 선생 같은 학자 100명만 있으면 한문으로 된 모든 자료들을 우리는 손쉽게 얻을 수 있는데...
문체도 어쩜 그리 간결, 단정한지요...
 

 

 

 

 

 

  때론 시 자체보다 시인의 말이 더 시적일 때가 있다.

  원래 시부터 보는데, 어쩌다 시인의 말부터 읽은 시집이다.

  한창훈 소설가의 발문도 좋은데, 맨 뒷장 시인의 말을 보니

  왜 이정록 시인이 시인인지 알겠다.

 

 

  시인의 말, 이 말이 한 편의 시보다 더 좋아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낭송 잘 하는 이가 중저음 목소리로 읊었다.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자 돌려  가며 다시 읽었다. 그 때 누군가 이 아까운 새책 - 책 험하게 보는  내가 왜 이 책은 조심스레 다뤘는지는 묻지 말아 달라 -의 뒷 표지 안쪽을 확, 꺾어 꺾은 선을 아래 위로 내는 것이었다. 눈에 불이 났다.  평소 말 실수가 잦은 이라 좀 짜증이 났다. 진중한 사람이 그랬다면 이해심이 넘쳤을 것이다. 지금 시집을 바라보는데 그 꺾인선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왜 남의 새 책 표지에다 맘대로 책 골을 만드나. 나는 표지에 꺾은선을 만들며 책을 보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무심코 한 행동이니 시인의 말처럼 '손가락질은 하지 않'겠다. 손짓은 웃으며 타인에게 할 때 어울리고, 손가락질은 엄정하게 스스로를 향할 때 발전이 있는 법.  

 

 

   이정록 시인은 문장  털기에 능하다. 그래서 내 맘이 원하는 진짜 시인이다. <문장 털기, 혹은 흩뿌리기>란 내가 지은 말이다. 말들이 달린 나뭇가지를 흔든다. 마구 흔든다. 끝까지 살아 남은 것만 추린다. 다 털려 나목의 상태로 줄기만 남은 것, 그것이  알짜배기 문장이다. 나머지 잎새와 꽃잎일랑은 미련두지 말자. 그건 읽는 자의 몫이거나, 맘에나 쟁여둘 일이다.  형용사는 간혹, 부사마저 드물게 이렇게 써도 마음이 움직이는 것, 무심한듯, 털털한듯 서늘한 문장 그런 것이 제대로 된 문장이다. 웃음을 말하지 않는데도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물을 감추는데도 눈물이 흐르고, 가슴을 쥐어짜지 않는데도 심장이 따끔거리는 것, 탈탈 털어버린 문장 속에서 이런 걸 발견하는 기쁨이란!

 

  혹자는 이런 문장을 무미건조하다고 한다. 무색 무취 무맛인 문장이 발산하는 깊이와 재미에 빠졌다면 무조건 고! 맥진할 따름인뎌.  

 

   귀한 시집 주신 분도 시인의 말이 맘에 들었음에 틀림없다. 시인의 말을 옮겨 적는 내 손끝이 예민해진다. 문장 부호 하나라도 틀리게 받아 적을 까봐.

 

 

시인의 말                         이정록

 

쓰는 게 아니라

받아 모시는 거다.

시는, 온몸으로 줍는 거다.

 

그 마음 하나로

감나무 밑을 서성거렸다.

손가락질은 하지 않았다.

바닥을 친 땡감의 상처, 그 진물에 펜을 찍었다.

홍시 너머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사랑의 주소는 자주 바뀌었으나,

사랑의 본적은 늘 같은 자리였다.   

 

                          -정말, 이정록,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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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0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에요. 문장털기요!
그래서 올리브 키터리지도 좋아할 거라고 직감했구요.
표지 꺾는 거 저도 남편이 그렇게 해도 싫더라구요.
그래도 이 시집의 경우엔 용서ㅋ해 드리기로 해요, 우리.ㅎㅎㅎ
문장털기, 이거나 마음에 꼭 새길랍니다. ^^
근데 님, 늘 아주 늦게 잠자리 드시나 봐요. 건강 챙겨야 돼요.^^

2012-12-07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07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12-06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시 넘은 새벽에 이 시를 가지고 노셨군요. 팜 님 멋져요.
저도 모아 두었던 시집을 다시 꺼내 읽어 보고 싶게 만드는 페이퍼예요. ^^

다크아이즈 2012-12-07 10:43   좋아요 0 | URL
페크님, 누구나 다 시를 쓸 필요는 없지만, 읽고 쓰는 이라면 시집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좋은 시집을 만나면 심장 박동수가 급격히 올라요.
좋은 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축복 중에 하나 맞지요?
시집 읽는 페크님의 생각 가지치기 기다려 볼게요^^*

이정록 2012-12-07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 쓰는 이정록입니다. 번개라도 하고픈 아름다운 칭찬이네요.고맙습니다.

다크아이즈 2012-12-07 10:57   좋아요 0 | URL
이정록 시인님 친히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시인님을 지난 여름 바닷가 강연에서 뵌 적 있지요.
멀리 앉아 있었지만, 시인님이 왜 시인일 수밖에 없는지 그때 이미 눈치챘지요.
은근히 까다로운 저 같은 독자를 만족시키는 시인님이라니...

마음은 벌써 번개자리에 가있습니다.^^*

제 리뷰 중, <꽃은 까지려고 핀다>는 그때 강연회에서 누군가 <시인의 서랍>을 선물로 주셨는데, 시인님께서 한 줄 흔적 주셨지요. 그걸로 적은 단상이자 시인님에 대한 제 헌사입니다.

시인이 완벽한 문장으로 시를 말할 때 시쳇말로 저는 뿅~ 가버립니다.
저 지금 당연히 뿅뿅~~ 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주말 맞이하시길...


라로 2012-12-07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글 역시 밤에 읽을래요!!!
이 혼잡한 순간에 어떻게 이 글을 읽을 수 있겠어요!!(누가 뭐래나??ㅎㅎ)

다크아이즈 2012-12-08 17:03   좋아요 0 | URL
나비님 안 읽어 주셔도 이렇게 찾아와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격인걸요.
웬체 바쁘신 나비님이니...
따땃한 봄바람 불면 프레님과 이곳으로 놀러오세요.
제가 초대 한 번 할게요. 진심이어요.^^*

라로 2012-12-15 14:15   좋아요 0 | URL
"시인의 말을 옮겨 적는 내 손끝이 예민해진다. 문장 부호 하나라도 틀리게 받아 적을 까봐."라는 문장을 읽고 시인이 어땟을까요!!! 저도 떨리는걸요!!
글 잘 읽었어요. 시집은 안 산지 천년은 된 것 같은데 보관함에 담습니다.

다크아이즈 2012-12-16 04:28   좋아요 0 | URL
시인님은 아마 문장 털기에 능하다고 헌사를 바친 제 말에 고마워했을 듯.
실제로 할 말만 하는데도 서정성과 털털함이 다 보이니 이런 시를 어찌 좋아하지 않겠어요. 구질구질하게 뱉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시에 비하면 천상 시인이죠, 뭐.

나비님, 시집은 많이 읽을수록 좋긴 해요. 몸과 맘 정화되고, 문장도 배우고...

2012-12-07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08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09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09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