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도의 방식

 

 

  누군가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내가 아는 한 그미는 효녀였다. 오랜 병구완을 한 이도, 임종을 지킨 이도 그미였다. 나는 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게 아니었다. 어머니 곁에서 이미 숱하게 울었기 때문에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것.

 

 

  눈물과 애도는 크게 상관이 없다. 눈물을 많이 흘린다고 애도가 깊은 것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애도가 얕은 것도 아니다. 애도의 양상은 다양하기 그지없다. 애도란 그 대상과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심리적, 정서적 상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읽는다. 어머니에 대한 애도 단상집이다. 사진으로 어머니를 추억한『밝은 방』을 읽었을 때 이상으로 신선한 충격이다. 스물셋에 전쟁 과부가 되어 일흔넷에 죽은, 그의 모든 것이었을 어머니를 작가는 애도한다. 노트 네 조각 낸 메모지에다 마음 깊이 어머니에 대한 단상을 이어간다. 이 년에 걸친 그의 일기는 어머니에게 다가가고자하는 작가의 내밀한 어록이다.

 

 

  어머니에 관한 그 어떤 형태의 문학적 완성품을 생각하면서 메모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이 글이 문학이 될까봐 경계하다가도 결국 문학이 될 거라는 모순을 예감하기도 한다. ‘내 말들이 문학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다름 아닌 문학이야말로 이런 진실들에 뿌리를 내리고 태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라고 적는다.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애도일기는 문학적 성과물로 재탄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 한 가지 안심인 것은 애도일기가 그 어떤 다른 형태의 문학 작품으로 가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그의 죽음이 앞당겨지지 않았더라면 그의 애도 일기는 새로운 형태의 문학 작품이 되는 바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완성된 문학작품보다 때로는 날것의 육성이 더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다. 온전히 일기로만 살아남은 애도일기를 읽는 것은 독자로서는 행운이다.

 

 

 

 

 

 

 

 

 

             다다다            

<아들이 보는 만화영화 다다다, 이런 아들, 무려 고등 졸업반이다 ㅠ>

 

 2. 열정이 더 중요하단다, 아들아

 

 

  나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가장 부러웠다. 시골에서는 피아노 교습소가 있는지도 몰랐다. 고작해야 어깨너머로 배운 풍금으로 기본 화음을 넣어 '꽃밭에서' 정도를 치는 정도였다.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도시로 나왔을 때는 한 반에 예닐곱 정도는 피아노를 배우는 것 같았다. 역시 부러웠다. 하지만 한 번도 부모님께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웃자란 눈치가 알아서 욕망을 제어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건 관심과 열정 부족 때문이었다. 간절히 바랐다면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었고, 그도 아니라면 다른 길도 있었다. 심지어 성인이 되어 경제력이 확보되었을 때라도 배우면 그만이었다. 피아노를 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그 환경을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간절히, 열렬히 원하면 이루게 되어 있다. 그 가난하던 시절, 열성적인 남자 동창은 엄마를 졸라 피아노를 배웠고, 끝내 성악가가 되었다. 진실로 원한다면 환경은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렇더라도 그 옛날처럼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하고 싶었던 걸 못했다는 소리를 자식에겐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방학 중인 아들녀석이 무에타이와 드럼, 영어와 일어를 배우고, 여행과 헬스도 하겠다고 했을 때 '무조건 오케이'라고 답했었다. 하지만 방학 전의 욕망은 다만 희망 사항이었을 뿐, 막상 아들은 그 어느 것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방구들 한 쪽을 차지하고 그 동안 못했던(?) 게임만 즐긴다. 그토록 원했던 건전한 활동(?)들은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겨우 영어 공부한다고 제스처를 취하는데 마뜩잖기만 하다.

 

 

  언제나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기 쉬운 게 사람이다. 간절함이 없는 시도는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성과를 이루는 데는 환경이 아니라 의지가 중요하다. 내가 피아노를 끝내 배우지 못한 것은 부모 탓이 아니라, 내 바람이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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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5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6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3-01-1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악가가 된 동창분의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공자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ㅎㅎ

(子曰 三軍 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삼군의 사령관인 장수를 빼았을 수는 있지만 필부의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만약에 어떤 뜻을 세우고 밀고 나가다가 이런저런 사정상 그 뜻을 접었다면, 그건 애초부터 '진정한 뜻'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겠지요.

다크아이즈 2013-01-16 09:47   좋아요 0 | URL
오렌님 절대공감이요. 사정상 뜻을 접으면 그건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었음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진작에 공자님께서 저런 말을 했다는 게 약오르옵니다.^^*

2013-01-15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6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