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
요즘 낙이라고는 그냥저냥 야구 보는 재미로 지내고 있다. 언제나 퇴근시간이 늦다 보니 집에 가면 파김치고 비까지 주룩주룩 쏟아지는 눅눅한 날씨인지라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주는 사무실에서 시원하게 야근하며 한쪽 귀로는 야구 중계를 듣고 산다. 비가 자주 오는 날씨로 인해 취소되는 경기도 종종 발생하곤 했지만 그나마 엊그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기록이 하나 나오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20,000호 홈런이 탄생한 것.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기록에 관여된 경기는 그리 클린하지 않았다. 심판의 오심, 빈볼, 선수들 간의 충돌, 거기다 홈런 볼을 차지하기 위한 관중들의 집단 난투극. 하긴 KBO(한국프로야구위원회)에서 2만호 홈런 볼을 가진 관중에게 최신대형 TV와 제주도 왕복항공권과 숙박권을 제공한다니 다툼이 있을 만도 했겠지만 영상으로 보여준 다툼은 피를 부르는 폭력의 현장이었다. (결론은 원래 주은 남자는 집단 난투극에 휘말려 볼을 분실했고 그 볼을 거저 주은 커플이 서로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대치하다. 인터넷 경매에 올려 최종경매금액을 3등분하기로 했단다. 지금 이 사람들 욕 엄청 먹고 있다.)
더불어 적시타로 홈으로 쇄도하는 주자와 포수의 충돌로 포수가 나가떨어져 부상을 입은 사건까지 터져 나왔다. (엄연히 룰을 따진다면 결코 반칙이 아니다. 홈플레이트를 몸으로 블로킹하는 포수를 향해 뛰어 들어오는 주자가 홈 승부 시 포수와 정면충돌은 반칙도 아니고 비신사적인 행위도 아니다. 충돌 후 포수가 공을 잡고 있다면 자동태그로 아웃이 되지만 그 충돌로 공을 놓친다면 주자는 살고 바로 실점으로 이어진다. 이런 이유로 쇄도하는 주자는 일종의 포수의 공 흘림을 노리고 강하게 몸으로 부딪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대적으로 송구를 받은 포수의 무게중심이 높이 있었고 쇄도해오는 타자가 워낙 헤비급인지라 그 어마어마한 충격에 공을 놓치고 손목 부상을 입은 포수는 바로 교체된 후 병원으로 향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사건으로 시끌시끌한 경기로 끝을 맺게 되었다.
전개
워낙 포수가 큰 충격에 나가떨어졌기에 큰 부상이 아닌가 걱정스런 마음에 웹서핑으로 기사를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 포털에 뜬 기사 아래 달린 댓글은 양 팀 팬들의 치열한 공방으로 얼룩져 있었다. 조금은 유치한 표현도 보이고, 상스러운 육두문자도 보이고, 제법 조목조목 이치에 맞게 그날 경기에 대해 풀어 쓴 꽤 괜찮은 내용의 댓글들도 보인다. 이런 와중 어이상실 댓글을 마주치게 되었다.
"충돌 후 공을 흘린 포수가 병신이지, 우리 xxx같았으면 절대 안 흘렸을 텐데..ㅋㅋ"
하긴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별별 오만가지 인간 군상들이 상주하는 공간이다 보니 이런 무지막지한 표현이 난무하긴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전 이와 비슷한 내용의 댓글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L팀의 주장 모 선수가 리그 1위를 달리는 S팀의 투수의 공에 광대뼈를 맞아 함몰이 되는 사고가 있었고 그 경기 후 S팀의 팬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달은 댓글
"그 공을 못 피한 타자가 병신 아니야? 야구선수로써 센스가 부족하군. ㅋㅋㅋ"
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결국 이런 내용의 댓글은 상대팀 팬들을 폭발하게 만들었고 본의 아니게 S팀은 프로야구 팬들의 공공의 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돼 버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빈볼을 던지고 공을 맞은 사고나 홈 쇄도 후 충돌로 부상을 당한 사고나 그 행위 자체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으나 그 팀의 팬의 입장에서 올렸을지도 모를 저런 개념 없는 댓글은 전혀 달라 보이지가 않았다. 다시 말해 피해 팀의 팬으로써 폭발하게 만들었을 댓글이 반전된 상황에서 똑같이 발생한 것.
가만히 생각하다 그냥 넘어가기 힘들어 짧은 두 줄의 문장으로 두 댓글의 내용을 올리고 대체 다른 건 뭐냐는 내용을 관련기사 아래 남겼다. 큰 주목을 받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선수가 다쳤는데 그 사실을 가지고 비아냥거리는 정신 상태를 가진 인간형들에 대해 언급을 했었는데...
절정
내 짧은 댓글이 심하게...그것도 지나치게 큰 반향을 몰고 왔다.
무려 40여개의 짧은 답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내 표현을 옹호하는 분도 있고, 그 상황이 비교될 상황은 아니지 않느냐라는 분, 그리고 그 답글과 답글의 충돌로 번지는 말싸움까지 쉽게 말해 난 그들에게 본의 아니게 링을 만들어 주고 프로레슬링 배틀로얄처럼 우르르 링으로 올라가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이해를 잘못 하신 몇몇 분들 덕분에 난 다시 답글을 달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빈볼이던 홈 충돌이던 선수들의 행위를 비교하자는 것이 아닌 그 사고 후 보인 팬들이라는 작자들의 댓글이 내가 보기엔 똑같아 보였다는 내용이라는 주석까지 달아주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이런 해석 때문인지 조금 잠잠해지는 것 같았는데 난데없이 이 페이퍼의 제목을 차지한 악플이 하나 떠버렸다.
"이런 병신..너 언제부터 야구 봤어..너 이번 WBC부터 야구 봤지..알지 못하면 까불지를 말던가! 이 병신아..!"
음.. 뭐랄까 남들이 흔히 말하는 악플이라는 것을 직접 받아보니 일단은 기분이 불쾌해진다. 그런데 그건 잠시였고 이런 악플을 달은 사람에게 갑자기 지대한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난 변태일지도.)
조목조목 그가 남긴 글들을 보니 특정 팀에 대해 광적인 팬임이 드러난다. 더불어 그가 남긴 댓글의 대부분에 관용어구 마냥 "병신"이 꼭 들어가는 문장으로 갖춰져 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내게 날린 "병신"이란 뜻은 어찌 보면 이 사람에겐 평상용어와 다름없을지도 모른다는 해석이 나온다. 근데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궁금증을 못 이겨 조목조목 따져 들어가 보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개인정보를 제대로 관리를 안했는지 약간의 검색 식을 통해 이 사람의 싸이 주소와 여러 가지 주변사항들이 주르륵 검색이 된다.
나이는 나보다 새파랗게 젊고 더불어 여러 차례 해외여행을 자주 나간 여행을 좋아하는 청년인가 보다. 거주지는 P시이며 역시나 야구광팬이다.
결론
결론이라고 할 것도 사실 없다. 그가 남긴 댓글에 그냥 조용히 "명예훼손과 더불어 고발조치"라는 상투적인 으름장을 썼을 뿐인데 알아서 자신의 댓글을 지워버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 기준엔 그래도 넓은 세계를 보고 왔다면 생각도 시야도 넓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알았다는 것. 더불어 너무 지나치면 모자르니만 못하다는 그 닳고 닳은 진실. 더불어 진정한 팬을 욕먹게 하는 일부 광팬들은 결국 자승자박의 결말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뱀꼬리 : 혹시나 싶어 남깁니다. 특정구단의 팬을 비방하는 내용이 아님을 아실 꺼라 생각됩니다. 어느 구단이나 광팬은 분명 존재합니다. 문제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것이죠. 이런 흔히 광폭한 열혈 팬들...같은 구단을 응원하는 팬들에게도 외면 받습니다.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팬인지 그건 스스로 생각하고 고쳐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더불어 저는 나이가 있다 보니 원년부터 야구를 봐왔던 사람입니다. 중학교 첫 생일 땐 불사조 박철순 선수의 사인이 들어간 생일축하엽서도 받았다는.....(연식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중)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