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이 집 짓는 일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관련 법률과는 띌래야 띌 수 없는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헌법도 권력자의 입맛대로 이리저리 바꾸고 해석이 뒤죽박죽인 마당에 그 부속법인 건축법 역시 변화무쌍한 행보를 더하고 있다. 수치적인 변경뿐만이 아니라 아예 항목별 법령을 처음부터 뜯어고쳐 바꿔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더불어 요즘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 관공서(ㄷㅎㅈㅌㄱㅅ)의 일이 100%인지라.(어쩔 수 없다 민영 건설사 일이 물량이 없기 때문에.. 이 일도 못 잡은 사무실은 지금 손가락 빨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법 관련 업무가 꽤 빡빡한 지경이다. 이런 숨 막히는 준법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근래 참 웃기지도 않은 해프닝이 하나 발생했다.
아마 기억나는 분들은 기억나실 것이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각하가 뜬금없이 녹색 성장, 그린정책을 외치시며 자전거를 타고 폼 나게 도로를 질주했단 에피소드. 얼씨구나, 문화부 장관님마저 자전거를 타고 쇼맨십을 보이시기까지 하셨다. (딴 건 다 모르겠고 고가의 전기 모터식 자전거만큼은 탐나더라.) 이런 고귀하신 분들이 하셨던 일종의 국민계몽 운동의 본보기가 엄한 곳에서 실천되기 시작한다. 그것도 무지 빠르게.
사무실에서 성남 쪽에 아파트 하나를 설계하고 있는데. 작업진척 80%가 육박했을 때 설계변경이 하나 떨어진다. 아마 각하께서 자전거를 몸소 타시고 자전거의 중요성을 무지몽매한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주시는 퍼포먼스를 보이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공문으로 날라 온 설계변경 사항을 살펴보며 흘러나오는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대략적인 변경 사항은 이러하다.
1."자전거"를 같이 싣고 세대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 인승수를 늘려 적용할 것.
2."자전거"를 운반하기 쉽게 아파트 동으로 진입하는 계단에는 자전거 바퀴 홈을 설치할 것.
3."자전거"로 통행이 가능하도록 단지 내 자전거 도로계획을 고려할 것.
4."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세대 내 전실개념을 도입할 것.
5."자전거"보관소를 기존의 면적보다 더 많은 공간을 할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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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설계변경의 요지는 오직 자전거에, 자전거에 의한, 자전거를 위한 설계변경인 것이다. 취임 초기 각하께서 "전봇대" 한 마디에 어느 특정지역 전봇대가 다음날 깡그리 사라지는 해프닝이 기억난다.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나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정말로 세입자들이 요구하는 설계사항은 그리도 느리게 반영이 되면서 높으신 나라님의 단어 하나 행동 하나에 뇌세포 회전하는 RPM이 측정불가일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꼴이 비웃장이 심하게 거슬린다. 그들 월급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내는 세금이라고 알고 있는데.....맨날 말하면 뭐하나 그런 인식을 가지고 일을 하는 공직자가 얼마나 된다고
뱀꼬리1 : 길거리 자전거를 위한 도로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면서 아파트 단지 내, 세대 내 자전거를 위한 공간을 늘린다는 것 자체가 일의 순서가 틀려도 한참 틀려먹었다.
뱀꼬리2 : 아참 성남 고도제한도 풀린단다. 롯데월드가 참 큰일을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