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雜記 120528

 

* 논리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이미 4월 24일에 서평을 썼는데, 이 책에 대한 밑줄긋기 게시하지 않았습니다. 메모해 놓았던 것의 일부입니다.

 

p 31~32

1) 안티조선은 <조선일보>가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극우라는 이유로 비판한다.

2)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면,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못하는 북한 정권에 무비판적인 한총련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된다.

3) 따라서 한총련과 손을 잡는 것은 안티조선 정신의 훼손이다.

 

1) 안티조선 우리 모두의 유일한 합의사항은, <조선일보>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2) 한총련은 <조선일보>를 반대한다고 한다.

3) 한총련의 안티조선운동 합류 선언을 반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논리적이라고 할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 논법과 같은 수학적 논리가 있는 반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로 생각할 때 주장의 정당한 근거가 있다면 논리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후자의 경우를 적용했을 때, 한총련의 안티조선의 참여는 참여를 찬성하던, 아니면 반대하던 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논리가 모든 문제의 답을 제시하지 않은 한 예로 생각합니다.

 

* 내용과 형식

 

 제가 학창시절 수학선생님께서 논리 및 집합에 대해 강의를 하시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3단 논법을 언급하시면서 '설탕은 짜다'고 결론은 내리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논리는 형식을 담보하지만 내용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1) 독설가는 나쁜 사람이다.

2) 마립간은 독설가다.

3) 따라서 마립간은 나쁜 사람이다.

 

 마립간은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는데, 위 글을 보고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비논리적이라고 언급한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위 세 문장으로 만들어진 논리는 매우 합당합니다. 마립간이 억울하다면 논리를 문제 삼을 것이 아니고 가정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모든 독설가는 나쁜 사람이 아니거나 마립간이 독설가가 아니라면 ; 마립간은 나쁜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면 논리는 형식을 담보하지 내용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이 수업이후 저에게 어떤 일에 분석에 내용에 대한 분석과 형식에 대한 분석을 나눠서하는 습관이 생겼고, 이것은 저에게 꽤 유용했습니다. 내용과 형식에 관한 저의 가치관에 관해서는 인과 예를 페이퍼로 설명드렸습니다.

 

* 인과 예

http://blog.aladin.co.kr/maripkahn/5598866

 

 이 유용성을 아래의 예로 설명합니다.

 컴퓨터를 이용해 어떤 결론을 내고자 했을 때, 컴퓨터의 하드웨어의 오류나 소프트웨어의 어느 한 곳에 오류가 있든지 필요한 결과물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즉 총괄적/총체적 평가에서는 틀렸다. 이 단일 사건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컴퓨터 하드웨어(논리형식)와 소프트웨어(내용) 중 어느 하나의 문제가 있을 때 이 둘을 분리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둘 모두 교체하는 것이 옳은 판단으로 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총괄적/총체적 가치판단에서 내용과 형식 중 어느 하나가 틀렸다면 전체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이런 가치판단은 여러 상황에 적용( 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주장 (및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에도 적용됩니다. 그리고 문제제기에도 적용되며 문제의 내용이나 문제제기 자체는 옳을 수 있으나 문제제기 방식이 틀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비판에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비판의 내용은 옳으나 비판의 형식이 잘못되었다면, 전체적인/총괄적인 비판은 틀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삼자가 보기에 조롱으로 비춰질 수 있는 비판이 옳은 비판 형식인지는 논의를 해 봐야겠지만요.)

 

* 분노

 저는 분노를 포함한 감정의 표출이 최선의 선택을 방해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누군가가 분노하였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론을 적용하면 자존감을 손상받았을 때, 자존감의 손상이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철학에 도전을 받았거나 상처를 받았을 때입니다. (첫 번째 글에서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두 번째 글에서는 분노의 이유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전의 ㅎ**님과 ㅃ** ***님의 논쟁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 진영/알라딘의 다양성

 누군가가 ‘진영’이란 단어를 언급했을 때, 이 단어가 적절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지난번보다는 이번이 더 이 단어의 색채가 짙어진 느낌입니다. 이것이 공고히 되어 알라디너의 다양성의 회손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 저의 지난 번 글이 논란을 촉매하였거나 이번 글이 촉매가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저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합당하겠군요. 그러나 ㅁ님이 쓰신 글이 저의 입장과 동일하기 때문에 추천과 동의를 댓글로 표시한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저는 기본적인 가치관은 <남명 조식>의 서평에도 썼듯이 인仁과 의義가 충돌할 때, 의를 앞세우는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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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5-29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성, 진영.

언젠가부터 서서히 지치는거 같습니다. 그저 논리 겨룸이었다면 참 재미있게 감탄하면서 보았을 법한데,
언제부터 감정 싸움들로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는지... 아마 저 역시 마찬가지였겠지요.
페이퍼의 어떤 부분이 다른 이를 자극하게 되는건지 심리학적인 호기심도 가집니다만,
그래도 참 잦네요, 요즘, 이런 일들이... 알라딘 서재에 오래 계신 분들께 들으니 예전에는 더 심했다면서요.

음, 마립간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ㅁ님의 의견에 저 역시 공감합니다.
특히 1인 시위가 나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표현의 다양성을 위해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가줄 수는 없는가 하는 부분에서요.
(어쩌면 저와 공감하신 부분이 다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

즐거운 한주되셔요.

마립간 2012-05-29 08:16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던 그 만한 이유가 있을테고, 어떤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당위성이 있어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경우는 감당할 만큼만 (지치지 않을 만큼만) 참여하고 살고 있습니다.
저는 논리 겨룸에 긍정적이고 감정 싸움에 부정적이지만, 감정 싸움으로 번지더라고 감정을 유발한 원인과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R1님이 감정 폭발의 이유를 표현하셨으니, 이제는 S님이 R2님이 요구한 이 요구(논쟁유발)이 '자신의 이익이 아닌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납득시키거나, 자신의 개인적 이익이라면 자신이 그것을 요구할 정당한 자격이 있다는 점을 밝히'는 과정이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마녀고양님도 건강 챙기시고 이번주도 즐겁고 책 읽는 한주간을 만들어 보도록 하지요.^^

라주미힌 2012-05-29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기시는 분 발견했네요.... 지나가다 자취를 남깁니다.
스타일 있으신 분이라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저울질 기준이 저랑은 별로 맞지 않아 보이네요.

마립간 2012-05-29 16:30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님. 제가 즐긴다고 평가하셔도 할 수 없지만 최소한 즐겁지는 않습니다.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가끔 누군가에 시간을 주면 그만한 기다림의 댓가를 주기도 하니까요. (항상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저울질 기준은 각자가 갖고 있는 것이니 맞지 않을 수 있지요. 그리고 제 기준이 객관적이거나 공정하다고 말하지도 않겠습니다. 제 기준이 형성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라주미힌님이 저의 가치관 오류를 지적하셔도 제가 받아들일지 자신이 없지만 저는 최소한 댓글을 지우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라주미힌 2012-05-29 16:37   좋아요 0 | URL
오해했나봐요.. 이런 말도 안되는 추측이 난무하면 대화가 안되는 거죠.. 마립간님처럼 자기설명이 납득할 수준이면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런 답답함이 극에 달했다고나 할까요.
이상 키보드워리어였습니다. ㅎ

마립간 2012-05-29 16:42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님께서 잘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할 말은 이미 다했기 때문에 ... 제가 뭐라하는 것은 사족입니다.

별족 2012-05-29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번도 감정싸움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놔서, -지금까지 알라딘의 어떤 싸움도 감정싸움이었던 적은 없었다고도 생각하지요-. 안녕하세요. 저는 인사 안하고도 본론 들어가는 성격이라 죄송합니다^^

마립간 2012-05-29 16: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별족님. 저의 가치판단이 항상 맞는 것이 아니며 별족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제 판단이 틀렸다면 오히려 바람직한 것이죠.
 

 

* 무제無題 120525

- 말장난?

 

 제가 2012년 4월 23일에 ‘무제’라는 페이퍼를 올렸습니다.

* 무제 120423

 http://blog.aladin.co.kr/maripkahn/5582602

 

 이글 중에 의를 인보다 앞세우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그 반대가 옳은지.’가 있습니다.

 한자를 한글로 바꾸면 ‘옳은 것을 어진 것보다 앞세우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그 반대가 옳은지.’

 앞의 옳는 것은 어진 것과 동등한 것인데. 뒤의 옳은 것은 앞의 옳은 것과 어진 것을 초월한 옳은 것이네요. 이 뒤의 옳은 것( 틀리지 않은 것)에 절대적으로 해당하는 덕목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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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育兒日記 120515

 

* 첫 독서

 2012년 5월 7일 부모가 읽어 준 것도 아니고 그림책도 아닌 책을 처음으로 읽었습니다. 누고가 그 동안 몇 권의 책을 읽었지만, 대부분 그림책이고 엄마나 아빠가 반복해서 읽어주어 내용은 물론이고 문장을 통째로 외워 읽었습니다. 할머니 집에서 아무도 읽어 준 적이 없는 (그림보다 글씨가 많은) 책을 들고 나름대로 떠듬떠듬... 할머니는 그 모습을 보시고 대견해 하시고, 저도 그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대견.

 

 우리 집에는 플래시 카드가 한 박스(와이셔츠 박스)로 (제 직장 동료로 부터, 안해 친구로 부터 등) 세 집에서 받았습니다. 그 외에 반대말 카드를 포함하여 다른 종류의 낱말 카드가 두 박스. ; 가만 생각하니 이것들이 무슨 소용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사용도 못해 본 것, 버리기도 아깝고.

 

* 엄마와 아직도 실랑이

 아이가 점차 의사 표현을 명확히 하면서 밤마다 아이와 엄마의 실랑이의 원인이 분명해졌습니다.

 “엄마, 내일 출근해.”, “엄마, 내일 일찍 와.”, “엄마, 내일 나, 유치원 데려다 주면 안 돼?”

 그러다가 가끔, “아빠, 내일 출근해?”

 

 퇴근 이후 다음 출근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보내는데, 아이가 불만인 이유는 아마 유치원 친구들과 비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친구들은 엄마가 등원을 시켜 주는데. 그런 식으로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데.

 

* 훌라후프

 지난 주 훌라후프를 사달라고 졸라 사 주었습니다.

 할머니 ; “얘가 훌라후프 사달라고 그런다.”

 나  ; “너 훌라후프 할 줄 알아.”

 누고 ; “할 줄 알아. 내가 얼마나 잘하는데.” (표정, 억양 및 말투가 예술임.)

 나 ; ‘초등학생이 돼서도 운동신경이 있는 아이나 돼야 할 줄 아는 것인데?’

 

 어째든 사주고 해보라고 했더니.

 허리는 뻣뻣하게 가만히 두고 손으로 허리에 놓고 휘하고 돌리더니 훌라후프가 두세 바퀴 돌고 땅에 떨어졌습니다.

 누고 ; “잘하지!”

 나 ; ...

 

 제가 시범을 보여줬는데, 그 다음에는

 누고가 훌라후프를 할 때 ; “아빠, 나 쳐다보지 마.”

 누고가 엄마에게 (울면서) ; “엄마는 아빠에게만 잘 한다고 할 거지. 나한테는 못한다고 할 거지.”

 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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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5-17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감상.
누고가 아빠보다 여러 면에서 낫네요... 호호홋.
특히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측면에서 말이죠.... =========3333333

마립간 2012-05-17 15:01   좋아요 0 | URL
저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이 눈에 띄면서 또 다른 인격체구나라고 느낍니다.

숲노래 2012-05-20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찬히 가르쳐 주면 천천히 잘 하리라 생각해요~

마립간 2012-05-21 08:3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된장님,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育兒日記 120410

 

* 10단위 숫자 명명법

 동화책 50권을 함께 정리하면서 누고가 1부터 50까지 명명법을 파악하고 있음을 알았다. (비록 3곳에서 틀렸지만)

 

* 교우 문제

 그 나이또래가 다 그렇다고 한다. 동년배와 어울리기보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과 노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일단 동생으로 대우받기고 하고 언니들이 노는 것이 재미있어 보기도 할 것이고. 그것을 감안하여도 조금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 조금의 문제는 내가 어렸을 때, 상황으로 추론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4~5명의 친구가 함께 노는데, 내가 좋아하는 놀이와 나머지 사람들(3~4명)이 좋아하는 놀이는 달랐다. 이 당시에 놀이는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데, 내 생각에는 5번 중에 한번은 내가 좋아하는 놀이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0번이면 10번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결론은 내가 그들과 놀고 싶으면 그들에게 맞춰 놀고 그것이 싫으면 혼자 놀 수밖에 없었다.

 

 차선책으로 10번의 놀이 중 절반만 참여하겠다는 생각도 했으나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머지 친구들이 나를 빼고 놀 때, 유대감이 강화되기 때문에 모든 놀이를 참여하거나 모든 놀이에서 제외된다.

 

 지난 주 누고와 친구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아이에게 이제는 정리 정돈을 할 나이가 되었다고 놀고 나면 정리 정돈하라고 유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와 놀면서 친구에게 정리 정돈 친구에게 요구했고, 그 친구는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누고는 색칠하고 오리고 만들기를 좋아하는데, 함께 할 친구가 별로 없다.

 

 어린이 집에서도 가장 많이 어울려 놀던 친구 중에 남자 아이도 있었다. 유치원에 입학하고 나니 남자 아이들은 남자끼리 어울려 노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이 모임에 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여자 아이들과 놀기에는 놀이 스타일이 본인과 맞지 않는 모양이다. 누고는 언니 오빠라는 단어보다 ‘형님’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초록반 형님들... ”

 

 <푸름이 이렇게 영재로 키웠다>에 보면 독서를 통해 사회성을 키웠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 자신을 돌아볼 때 독서( 자체)가 사회성을 키웠다고 볼 수 없다.

 

* 동생

 누고가 동생 만들어 달라고 졸라대고 있다. 심심하대나.

 ‘동생이 네 장남감이냐?’

 동생 낳아줄 엄마와 키워 줄 할머니를 잘 설득해 봐라. 아마 교우관계의 갈등의 해결책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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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4-18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사회성이 독서로 될까..싶습니다.
그 관계의 변화무쌍한 상황성과 시간성은 그야말로 불측^^

동생: (아빠는 언제라도 OK? ^^ )
꼭 교우관계 갈등의 해결책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주변에 대한 인식의 확장 (우리집에는 왜 아이가 나 혼자 인가...뭐 이런)

주어진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자녀의 일인 듯 합니다.
아들 만 둘이 있는 집은 딸 하나 있었으면...
딸 만 둘이 있는 집은 아들 하나 있었으면...
자녀가 없는 집은, 딸이든 아들이든 하나 있었으면...
자녀가 많이 골치아픈 집은, 무자식이 상팔자여~ 뭐 이러구...

그러니...
정답이 있는 그런 것이 아니더구만요~ 마립간님^^

마립간 2012-04-18 08:06   좋아요 0 | URL
교유관계에 있어 제 경험을 보자면 자신에 맞는 친구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흔하지 않지만 없지는 않거든요. 그 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슬기롭게 보내느냐가 관건인데, 아이를 어떻게 도와줄까 생각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없습니다. 게다가 맞벌이라서.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육아에 비교적 부담이 적은 할아버지와 아빠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할 수 없고, 육아 직접적 부담이 있는 할머니와 엄마는 요즘 같은 양성평등의 시대에... ^^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아들 2명, 딸 2명이 공부도 잘하고 효도하면 좋지요. 그런데 형제 수가 그 정도로 많으면 그 중에 다른 형제와 구분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조선인 2012-04-18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독서로 사회성을 키울 수 있는지는 의문.
마로의 경우 친구들과 놀기 어려울 때-가령 장난감을 가지고 경쟁해야할 경우- 독서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린이집이건 유치원인건 늘 장난감을 가지고 다투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거의 늘 한쪽에서 책만 읽었다는 거. 덕분에 말도 글도 빨라 선생님들이나 언니오빠들에게 인정받는 경향이 있어,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도 같은 반 친구들보다도 생뚱맞게 같은 학원의 언니 오빠의 깍두기 노릇하는 게 일이었습니다. 지난해 드디어 같은반 단짝이 둘 생겨 좀 기뻐했는데, 5학년이 되어 반이 갈라지니 그냥 또 흐지부지.
아무래도 딸에게는 친구보다 엄마, 아빠, 동생, 사촌의 비중이 압도적인 듯 해요. 학교 선생님은 누구하고나 원만하게 지낸다며 칭찬해 주시는데, 이것 역시 누구와도 깊은 관계가 아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구요.
저의 경우 어릴적 소꿉친구와 지금도 연락하고 사는데, 딸이 그냥 나와 다른 건지, 사회성이 낮은 건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회성이 꼭 인품을 뜻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긴 하죠.
하아, 제 넋두리가 길었네요.

마립간 2012-04-18 11:48   좋아요 0 | URL
정확한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푸름이는 아마 마로같은 상황을 사회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누고도 마로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 있기에 아이에게 도움이 되려 하는데, 생각나는 것이 없네요. 그래도 조선인님의 댓글이 저에게 (그리고 누고에게) 격려가 됩니다.

마녀고양이 2012-04-21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님.... ^^, 어디서 그런 호칭이 나왔나요?
듣는 이야기마다 너무 이쁜 누고입니다... ^^

마립간 2012-04-23 08:11   좋아요 0 | URL
어린이집을 다닐 때 조금 느겼던 것인데, 유치원을 다니면서 이제는 스스로 배우는 것 같습니다. 가족 대화 중에는 '형님'이란 말을 언급할 기회가 없어요.
 

 

 

* 育兒日記 120409

 

* 숙제

 유치원을 다녀본 경험이 없는 나는 유치원을 공적으로 생각해야 될지 아니면 사적으로 생각해야 될지 이성적으로 감정적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일단 판단하기 애매한 것은 알라딘에 의지하는 내 습성으로 말미암아 유치원 1년 동안 (길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아이에게 숙제라는 것은 없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희한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 나비 모양의 그림에 모자이크로 종이를 붙이는 것인데,  엄마가 숙제하고 아이는 숙제하는 엄마를 감독하고 있다.

 

* 죽음

 아이가 어제 심각하게 내게 묻는다.

 “왜 나이가 들면 죽어야 돼?”

 내가 잘못 들은 줄 알고, 3번 다시 물었으나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라고 물으니

 “내가 생각한 것이야.”

 나는 일단, “그것은 자연의 순환이야.”라고 대답했는데, 아이가 무엇을 물어본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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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4-0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가 숙제하고 아이는 숙제하는 엄마를 감독하는 모습은 여늬 가정에서도 볼 수 있을거에요.^^
누고의 죽음에 대한 물음에 조금이라도 도움 될까 싶어 리뷰 주소 남깁니다.
http://blog.aladin.co.kr/714960143/4497944

마립간 2012-04-10 08:37   좋아요 0 | URL
미국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는 부모가 하라는 뜻으로 내 주고 캐나다에서는 부모가 도와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읍니다만. ; 우선 유치원에 과제물을 숙제로 여길지 문제인데 (육아일기 120403), 우선 차트랑공님의 의견처럼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의 어렸을적 경험으로는 부모가 숙제를 해 주는 것을 생각하기 힘듭니다. 여기에 아이와 엄마의 관계가 깔려 있는지라 (육아일기 120127) 아빠로서 개입하기도 좀 뭐한 상황입니다.

죽음에 대한 책의 소개는 감사합니다. 한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인 2012-04-09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제 -> 엄마 눈에 아무리 미숙해 보여도 숙제는 아이가 하는 게 맞아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참으려면 정말 답답해 미칠 만큼 힘들어도요. ㅋㄷㅋㄷ
죽음 -> 전 '내가 함께 있을게'도 추천합니다.

마립간 2012-04-10 10:31   좋아요 0 | URL
아이가 숙제를 미숙하게 하는 것을 엄마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가 저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엄마보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지시합니다. 엄마가 하지 않는다면 못하고 마는 것이죠. 아빠인 저에게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거든요. 제 입장이 난처합니다.

<내가 함께 있을게>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녀고양이 2012-04-1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벌써 실존 철학에 뛰어들었군요...
그런데 '순환'이라는 단어를 알아듣나요? 이야.... ^^

숙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런.
마음에 걸리시면 옆지기님께 일단 따로 물어보시는게 좋을거 같은데요.

마립간 2012-04-10 13:48   좋아요 0 | URL
제가 어렸을 때 섭섭했던 것이, 제가 묻는 질문에 어른들이 대답이 없거나 나중에 학교에 가면 배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혹 너무 어린이로 여기고 쉽게 설명하는 바람에 정확한 설명이 아닌 것입니다.

아이가 '순환'이란 단어를 이해 못 했을지 모릅니다. 정확지 못한 설명보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정확한 설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그냥 설명합니다. 잘 모르겠으면 다시 묻거나 마음에 묻어 두었다가 커서 알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안해는 아이의 숙제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아이한테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일단은 개입하지 않으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