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仁과 예禮

 

 중학교 3학년 도덕시간이었습니다. 겨울 방학을 앞두었거나 아니면 연합고사(고등학교 입학시험)이 끝났을 때라서 수업, 공부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 때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평소 질문하고 싶었던 것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평소에 정말 궁금했던 것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어떤 의견을 갖고 있으실까?

 

 질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학생들이선생님들께 인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의다. 이런 정도의 예의를 지키는 것은 옳은 것이다. 그런 행동이 없다는 것은 나쁜 것이다. 2) 그러나 형식적인 인사도 나쁜 것이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데, 싫은 티를 내면서 얼굴을 찌푸리고 인사를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의 인사는 옳지 않다. 공경의 마음을 담아서 인사를 하자.

 결론적으로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것은 존경하는 선생님을 만났을 때, 마음을 담아서 인사를 정중하게 한다. ; 여기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그런데 존경하는 마음은 없는 선생님을 만났을 때, 마음을 담지 않은 “형식적인 인사는 해야 되는 것인가?” 하지 않는다면 1)을 거스른 것이고 해도 2)을 거스른 것입니다.

 

 (일단 그런 질문을 선생님께 했다는 것을 놀라워 하시면서) 선생님께서 다음과 같은 답변을 주셨습니다.

 우선 동양과 서양의 문화/전통이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서양의 경우는 학생들이 교내에서는 선생님께 인사를 하지만 학교 밖을 나서면 학생이 스스로 존경하는 선생님께만 인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 밖에서 선생님이 학생으로부터 인사를 받으면서 당황해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핵심은 형식보다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에 반에 동양,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허례허식이라는 용어와 1970년대의 가정의례 준칙이라고 결혼과 같은 개인사에도 국가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했을 정도로 형식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죠.

 제가 그런 질문을 하였다는 것이 사고방식, 가치관이 서구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설명은 여기까지였습니다.

 

 같은 고민을 성경을 읽으면서도 느꼈는데,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28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7

 

 도대체 행위가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야, 안되다는 것이야?

 

* 제 나름대로의 가치판단을 위한 비유는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하였습니다.

 예禮(형식)는 컴퓨터의 하드웨어이고, 인仁(내용)은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입니다.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면서 최대의 컴퓨터 성능을 가지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라고 해도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못하면, 아예 작동을 하지 않고, 그 반대의 경우는 (작동은 하겠지만) 컴퓨터의 기능을 제대로 사용한다고 할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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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05-02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임 선생님은 아니셨지만, LOS 도덕선생님,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집니다.

카스피 2012-05-0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우리의 가치관이 서구화되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 지네요.

마립간 2012-05-04 08:50   좋아요 0 | URL
저는 그 당시에 서구적 사고 방식보다 합리, 논리적이라는 가치관으로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읽는 서양 사람이 쓴 (번역)책에서 동양적 사고 방식이나 가치관이 많다고 느끼는 데, 이것이 일반적이 흐름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에 번역책에 의한 bias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