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물리학
로버트 어데어 지음, 장석봉 옮김 / 한승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밖에 나가서 노는 시간도 많지 않고 TV로 중계 해주는 스포츠경기도 간혹 심심풀이로 보곤 했었다. 그러던 내가 어릴적 읽은 만화책의 주요 스포츠로 등장하는 야구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언제였을까. 우리나라에 한동안 고교야구의 열풍이 대단하던 때였지 싶다.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또 빈둥거리다가 결국 할 일이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TV에 중계되었던 야구를 보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 아마도 나의 호기심이 자극을 받아 지식습득을 하게 되었을테지만 - 나는 야구의 규칙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렇게 재미없어 하던 스포츠 중계가 재밌어지기 시작해버렸다. 그리고 구십년대의 어느 해,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더구나 연장전까지 가는 상황이 되었을 때 열광적으로 TV중계를 보다가 9시 뉴스라는 정규방송 시간때문에 방송중계가 중단되었을 때는 화를 내기까지 하는 상태가 되었었다. 정규방송을 하지 않고 스포츠중계를 하면 화를 내던 나였는데 말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야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유니폼도 멋있었고, 투수가 홈을 쳐다보며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고 모자를 슬쩍 잡으며 공의 구질을 다잡는 모습이 멋있었고, 포수가 홈베이스에서 일어나 '가자!'를 외치며 팀을 독려하던 모습이 종종 그려졌던 만화책의 그 장면이 멋있었고, 홈런을 치고 유유히 달려가는 타자의 멋진 모습뿐 아니라 번트를 치고 기습적으로 달려가는 모습도 멋있었고, 슬라이딩을 하며 안타를 잡아내는 내외야수들의 모습도 멋있었고, 심지어 그들의 수비를 뚫고 직선으로 쭉 뻗어나가며 안타가 되는 공조차 멋있었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지금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가. 한때 품었던 멋지고 폼나는 야구와 달리 '야구의 물리학'은 머리에 쥐가 나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도 이해할 수 없는 도표와 수식이 담겨있고 간혹 읽을 수 조차 없는 수식앞에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나, 라는 자학도 하곤 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 책을 다 읽었다. 솔직히 남는 것은 온통 물음표 뿐이었지만 야구에 대한 나의 로망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이리 장황하게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기도 하다.

책의 앞부분을 간신히 넘기고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물리학의 법칙이 아니라 야구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쓴 것이기 때문에 세세한 계산을 생략하고 넘어간 부분도 있다... 각 장의 끝에 전문적인 각주를 실은 것은 물리학에 특별한 흥미가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사용한 모델들에 관해 간단한 설명을 해 주기 위해서이다'라고 쓰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내가 머리 쥐어뜯으며 도표를 이해하고 수식계산을 할 수 있어야한다는 뜻은 아닐것이다. 그 이후 나는 이 책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주위 친구들에게 내가 읽고 있는 '야구의 물리학'을 펼쳐보이면서 이 책, 재밌다, 라는 말까지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투구, 부분을 살펴보자.
'막대 세 개를 일렬로 나란히 세운 다음 첫 번째 막대는 왼쪽으로, 두 번째 막대는 오른쪽으로 통과한 다음 다시 세 번째 막대를 왼쪽으로 통과하도록 공을 던지기에는 사지타가 너무 작다. 그런데 커브볼이 실제로 휘어지는가 아닌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던 1870년에 프레디 골드스미스가 뉴헤이번에서 그 묘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아마도 골드스미스가 던진 공은 느린 커브볼이었을 것이다. 느린 커브볼의 경우 휘어지는 정도는 회전수가 일정하면 대체로 공의 체공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74)

솔직히 마찰력, 마그누스 힘, 작용 반작용...어쩌구 하는 말을 나는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 봤던 만화책에서 변화구를 표현할 때 느려터진 공이 멋대로 지그재그로 날아와 결국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해 포수의 글러브에 정확히 들어가던 재밌는 장면이 연상되면서 재밌어질뿐이다. 물리학을 모르는 내게 이 글은 그런 장면들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되는 것이고 내가 그것을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투수가 던지는 공과 타자가 반응하여 안타를 치는 경기는 그저 멋있고 재밌다는 걸 다시 확인시켜 줄 뿐이다.
이 책의 저자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눈을 일시적으로 깜빡거리거나 100미터 달리기 출발에서 걸리는 최소 시간이 0.15초라는 것을 바탕으로, 이제 18.2미터 거리에서 0.4초에서 0.5초 사이라는 짧은 시간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제대로 쳐내는 동작을 하기까지 타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눈을 두세 번 깜빡거릴 수 있을 정도의 시간에 불과하다. 그것은 아주 힘든 과제이다. 그.러.나 프로야구 선수들은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임무를 잘 수행해낸다.'(60)

그래, 결국은 이런 얘기다. 물리학적으로 아주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 야구는 야구인 것이다. '오래 전에, 선수들은 동물의 넓적다리뼈로 자신들의 배트를 갈았다. 그렇게 하면 배트가 더 단단해지고, 그 결과 공이 더 빨리 날아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타자들은 배트의 공이 맞는 부분에 못을 박아 넣어 공이 철에 맞게 하는 위법을 저질렀다. ... 그러나 그 효과는 극히 작을 것이다. 만약 지금의 배트 대신 강도가 무한히 큰 물질을 덧댄 배트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120미터짜리 홈런의 경우 비거리의 손실은 약 60센티미터 정도밖에는 줄지 않을 것이다. 선수들이 합법적이건 불법적이건 간에 배트를 더 단단하게 하여 얻는 효과는 심리적인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115)
물리학적으로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하고 투쿠나 타격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무지몽매한 내가 보기에는 눈 깜박이면서 그 사이에 이뤄지는 야구 경기의 진행이 흥미진진할뿐인 것이다. 이것이 야구,인 것 아닌가.

애써서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단지 야구를 즐기면서 보기 위한 것에 덧붙여서 공의 상태, 투수가 던지는 공의 상태, 회전력 등등, 타자가 휘두르는 배트의 속도, 각도, 재질 등등, 이런 것들에 대해 슬쩍 아는 척 말을 하고 싶을 때 이 책을 읽는 것은 무척 즐거울 것이다. 그 이상은? 내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말 못한다. 그저 나는 내 이해력에 맞게 이 책을 술렁술렁 읽었고 이해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아는 척 하며 재밌어했을뿐이다.
야구는 물리학이 아니라 야구일뿐인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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