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2010년 4월이고 난 중앙도서관 4열람실 4번 자리에 앉아 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시계를 보면서 ‘햐~ 오늘은 4월 4일이네. 여기에 4시 44분 44초가 되었을 때 시계를 보면 재수 더럽게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더 기막힌 조합이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덧붙여 ‘4월 4일, 4시 44분 44초에 4번 열람실 4번 자리에 앉아 공부했다’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건 뭐 재수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옴 붙었다’고 할 만하다. 아마 이렇게 말하고 있으면 누구나 쉽게 그렇다고 인정할 것이다. 우리는 같은 문화권에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서양 사람들은 좀 의아해 할 것이다. 왜 그런 논리 전개가 가능하냐고 따져 물을 지도 모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四’를 음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死’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 관념 자체를 의심해볼 수 있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이 논리 전개는 순식간에 뒤집혀 진다. ‘四’를 ‘事’로 생각한다면 일이 많은 하루이거나, 누군가에게 대접 받는 하루로 성격이 바뀔 것이고 ‘賜’로 생각한다면 높은 분에게 좋은 것을 받는 하루로 생각해 볼 수도 있으니까. 같은 논리라는 한계는 있지만 어찌되었든 그 연결 고리만 바꿔줘도 우리의 걱정은 괜한 걱정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초반부터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은 것은 돈만큼 고정관념이 확실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고정관념이 ‘돈만 있으면 안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有錢無罪인 상황도 많고 돈 때문에 사람이 자신의 신념도 버리는 상황도 많다. 자본주의 사회이니 ‘돈의 양’이 그 사람의 가치를 나타내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악착 같이 돈을 벌고 또 그 돈으로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부동산 투기, 개발 광풍, 교육으로의 투자 등이 돈을 투자하여 그 이상을 뽑아내고자 하는 욕구의 반영이다. 그쯤 되면 돈은 돈을 낳고 사람은 그 돈의 증식을 도와주는 하인이라 할 만 하다. 그렇게 모아지는 돈이 기쁨을 줄 수 있을까? 자본의 욕망엔 만족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잠시 행복, 긴 불행이 뒤따를 뿐이다. 10억이 있건 100억이 있건 그건 1000억, 10000억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금액이니까. 돈이 불어날수록 충만감보다는 더 큰 결핍감만이 느껴진다.

올해 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을 모았다. 이 정도 되면 만족하고 정말 내가 하고 싶던 일을 찾아서 할만도 하다. 물론 몇 십만원도 없어서 빌빌거리던 때의 나라면 말이다. 하지만 돈이 불어나니 오히려 더 욕심만 생기며 더 아껴 쓰려고만 하는 것이지 않은가? 이런 마음이 한 부분이고 또 다른 부분은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데 평소에 가지고 싶던 것들이 사고 싶다는 거다. 자전거가 아직도 쓸만한데도 더 좋은 것으로 바꾸고 싶고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살 수 있는 돈이 있으니 어떻게든 쓰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거다. 이 두 마음 다 돈이 유포하는 가치관에 충실히 따른 결과다. 돈이 증식되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필요에 의한 구매가 아닌 허영에 의한 구매욕.

내가 번 돈일지라도 그건 단지 한 순간 내가 소유하게 된 것에 불과할 거다. 난 돈이 모여드는 창구가 아니라 돈이 유통되는 통로여야 한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것이 돈이 어느 곳으로 흘러가게 해야 하는지 늘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내가 움켜쥐면 한 푼의 돈에 불과 할테지만 정말로 필요한 사람에게 흘려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생명력 있는 힘이 될 테니까. 그런 내가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겠다.

<읽어볼만 한 책들>

 

1. 상처받지 않을 권리  - 강신주 著



 

2.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 고미숙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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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8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leeza 2010-04-11 21:18   좋아요 0 | URL
기간제 교사는 아니구요. 그냥 단기 인턴직원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마음 다잡고 있는 중이예요.
아~ 나는 어디로 흘러 가고 있는걸까요^^

찔레꽃 2010-04-08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삼, 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네요. 고맙습니다.

leeza 2010-04-11 21:18   좋아요 0 | URL
제가 더 고맙네요~
 



법정스님이 입적하셨다. 어둔 방에 들어가 자신의 진리만을 찾고자 하셨던 분이 아니라, 세상에 나와 어둠 속에 환한 빛을 비추려고 하셨다. 불교라는 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불교의 타락상에 먼저 마음 아파하셨고 ‘은둔의 종교인’으로 남기보다 세상에 나와 중생의 안녕을 위해 뛰어다니셨다. 그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무소유’라는 말은 단순한 설법이 아니었고 그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향기 그 자체였다. 스님은 입적하시기 직전에 “사리도 찾으려 하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건 자신의 죽음이 죽음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으리라. 언제나 죽음 후대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왜곡되고 날조되기 일쑤였다. 불교에선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사리가 얼마나 나왔냐 하는 것을 경쟁적으로 알렸고 그 사리의 양에 따라 그의 불심이 어쨌느니 하는 말을 하곤 했다. 한 스님의 생애를 돌아보고 그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려 하기보다 그 죽음을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하게 써먹으려 한 것이다. 그런 모습이 어디 불교에서 뿐이겠으랴~ 기독교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사람들은 왜 그의 죽음을 ‘그 죽음 자체로’ 가만히 두지 못했던 것일까? 왜 그를 꼭 다시 살아나게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고 종교적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리도 찾고 탑도 세우는’ 것이었던 거다. 죽음을 죽음 그 자체로 느끼기보다 초자연적인 부활과 연결시켜야만 하는 그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생각’에 법정스님의 유언이 더욱 무게감 있게 들린다.



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그동안 풀어 논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유언으로 드러났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힘들어 한다. 하지만 더 힘든 건 자신이 죽으면 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지워진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잊혀 진 사람이 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두려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편적인 방법으로 자식을 낳으려 하는 것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타고 난 자식을 보며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그들에 의해 제사 지내질 때마다 기억나게 될 것임을 위안 삼는 것이다. 그 방법 외에 자신의 저서를 남기는 일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더욱이 그게 자서전이라면 더 말이 필요 없다. 그건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는 의미 외에 언제까지 기억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을 테니까.’ 사람이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는 지식의 전달이라는 것도 있겠으나 자신을 남기고자 하는 욕구가 더 크다고 생각했다. 그건 언젠가 없어져 그 존재의 의미마저 묻혀버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법정스님의 수필집도 그와 같은 의미에서 벗어날 순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스님은 당당히 그 죽음 이후의 무한 소유의 유혹까지도 말끔히 털어내셨다. 자신을 드러내는 모든 출판물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이 유언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쿵쾅거리며 떨렸는지 모른다. 이렇게 ‘담백하고 맛난 죽음’이 또 있을까 싶다.

죽음에 어떤 멋드러진 의미를 부여하고 사리의 양을 따져 훌륭한 분이라고 치켜세우기보다 그 죽음 자체를 느낄 수 있었던 ‘법정스님’의 입적은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불교의 윤회관에 따라 그는 어딘가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곳에서 무엇으로 태어나든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향기를 한아름 남기고 돌아가셨듯이 끊임없이 향내를 내셨으면 좋겠다.



그런데 여기서 꼭 한번 되짚어보고 싶은 것은, 유명인과 일반인의 죽음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이다. 밑에 있는 글은 고려 시대 학자인 이규보의 <이와 개에 대한 글 蝨犬說>이라는 문장이다.

손님이 나에게 말했다. “어제 저녁에 한 불량한 사람이 큰 몽둥이로 놀던 개를 내리쳐 죽이는 것을 보니 그 광경이 너무 슬퍼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다시는 개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 거라 다짐했어요.”
나는 그 말에 대꾸하며 말했다. “어제 어떤 사람이 난로를 끼고 이를 잡아 태워 죽이는 것을 보니 가슴이 너무나 아프더군요. 그래서 그 때부터 다시는 이를 잡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손님이 어이없어 하면서 말했다. “이는 아주 작은 생물이예요. 나는 큰 생물의 죽음을 보았으니 슬퍼할만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지요. 그런데 자네는 작은 미물로 대조하였으니 어찌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내가 말했다. “모든 혈기가 있는 생물은 사람들로부터 소, 말, 돼지, 양, 곤충, 개미에 이르기까지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다를 수 없습니다. 어찌 큰 생물이라 하여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생물이라 하여 그렇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개와 이가 죽는 것은 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비유적으로 들어 대조를 한 것이니 어찌 놀린 것이겠습니까. 당신이 그런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당신의 손가락들을 깨물어보지는 않는 것입니까? 유독 엄지손가락만 아프고, 나머지 손가락이라고 해서 아프지 않다는 말입니까? 몸에 있는 것 중에는 크고 작음이 따로 없습니다. 고르게 피가 돌기 때문에 고통은 똑같은 것이죠. 하물며 각각 기운을 받은 것이라면 어찌하여 저것이라 하여 죽기를 싫어하며 이것이라 하여 죽기를 즐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집에 돌아가시면 맑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십시오. 그래서 달팽이 더듬이 보기를 소 뿔 같이 하고 메추라기를 큰 붕새와 같이 볼 수 있게 된 후에 나는 당신과 함께 올바른 도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客有謂予曰 “昨晚見一不逞男子以大棒子椎遊犬而殺者, 勢甚可哀, 不能無痛心, 自是誓不食犬豕之肉矣” 予應之曰 “昨見有人擁熾爐捫蝨而烘者, 予不能無痛心, 自誓不復捫蝨矣” 客憮然曰 “蝨微物也. 吾見庬然大物之死, 有可哀者故言之, 子以此爲對, 豈欺我耶” 予曰 “凡有血氣者, 自黔首至于牛馬猪羊昆蟲螻蟻, 其貪生惡死之心, 未始不同, 豈大者獨惡死, 而小則不爾耶? 然則犬與蝨之死一也. 故擧以爲的對, 豈故相欺耶. 子不信之, 盍齕爾之十指乎? 獨拇指痛, 而餘則否乎? 在一體之中, 無大小支節, 均有血肉. 故其痛則同. 況各受氣息者, 安有彼之惡死而此之樂乎? 子退焉, 冥心靜慮, 視蝸角如牛角; 齊斥鷃爲大鵬. 然後吾方與之語道矣.”

법정스님 한 분의 죽음은 대한민국을 흔들 정도의 관심과 파급력이 있었다. 연일 매스컴 첫 머리에 보도 되었고 그의 생애를 쭉 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땅의 수많은 민초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는 다들 쉬쉬하며 별관심이 없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용산 사례’가 아닐까 한다. 그곳에선 한 명이 아닌 여섯 명(경찰 1명 포함)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고 그것으로 모자라 온갖 악성루머가 그들을 물들였다. 그래서 일년 가까이 장례식을 치루지 못했던 것이다. 이규보의 말대로 사람 목숨이 다 똑같다고 한다면, ‘법정 스님의 죽음이 갖는 의미〈 용산 참사 희생자의 죽음이 갖는 의미’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건 물론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이규보는 위의 글을 통해 바로 우리의 이와 같은 마음을 비판하고 있다. 권력의 높고 낮음, 명성의 있고 없음,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우리들의 속물근성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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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린다. 봄을 재촉하는 비라던데 오늘부터해서 이번 주 내내 추울 예정이란다. 진짜 막바지 추위이긴 한가보다. 이젠 다시 따뜻해질 날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이 추위가 가는 것마저도 아쉽게 느껴진다.

자연은 늘 그렇게 미련없이 때가 되어 바뀌는데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사람에겐 늘 다르게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붙잡고 싶을 때도 있고 빨리 갔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고 말이다. 이번 겨울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더라. 그저 어딘지 알 수 없게 방황하며 얼렁뚱땅 보낸 시간들은 아니었을지? 지난 시간에 대해서만 미련을 두는 못난 나^^ 앞으로 올 시간에 더 많은 것들을 담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나~

오늘은 비가 온다는 핑계로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이렇게 뒹굴고 있다. 해야할 일은 있는데도 이런 날은 좀 여유를 부리고 싶기 때문일까. 이런 날엔 내 마음인데도 잘 모르겠단 말이다. 나 자신도 알 수 없는데 남을 안다고, 세상을 안다고 하는 건 착각이거나 만용이겠지. 이런 날엔 영화를 한 편 보는 게 좋다. 비 소리를 들으며 한껏 영화에 의미 부여를 하는 거다. 무언가 했다는 생각에 그나마 죄책감 같은 건 덜 하겠지^^

작년에 도보여행을 하던 중에 양구에서 원통으로 향하던 길에 있었던 일이다. 점심을 먹지 못했던 터라 늦게서야 식당을 찾아 밥을 먹게 되었다. 그곳엔 이미 마을분들이 앉아서 한 잔씩 하고 계셨는데 그 중 한 아저씨가 나에게 한 말씀하시는거다. 거의 한 달간 여행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다. 속으로 미친 사람이라 생각할지라도 그걸 말로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 식당에서 처음으로 그런 반응을 직접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아저씨는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난 앞뒤 따질 필요 없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해. 차도 있는데 뭐 하러 걸어 다녀. 할 일이 없으니까 그렇지. 그렇게 여유부리기 전에 고추라도 한 군데 더 심겠구만.”이라고 말씀하신 거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반응을 뒷담화가 아닌 앞담화로 듣게 되니 기분이 상할 겨를도 없이 멍할 뿐이었다. 이를 테면 기습 공격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려야 했다. 어차피 이 일 자체가 평범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좋게 보는 사람보다 안 좋게 보는 사람이 더 많을 거니까. 그걸 이제서야 체험하게 된 것 뿐이다. 난 '미친 사람' 맞다~

 

그로부터 10개월이 흘렀다. 지금에서야 보게 된 프로는 <차마고도>라는 다큐이다. 예전부터 얼핏 듣긴 했는데,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하게 기회가 되어 1편부터 보게 된 것이다. 영상미가 끝내준다는 말에 그런 눈요기만 할 생각으로 봤는데, 이건 그냥 단순한 다큐가 아니었다. 그 안에 잔잔하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2편 순례의 길은 라싸로 순례를 하러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그들이 가는 길은 내가 걸었던 길보다 훨씬 멀고 훨씬 험했다. 그 길을 그들도 걸어서 갔던 것일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딱이다. 그들은 삼보일배를 하면서 그 길을 가고 있다. 이쯤 되면 내가 왜 작년 도보여행 때의 이야기를 꺼냈는지 대충은 짐작이 될 것이다. 단지 한 달 정도를 걸어서 여행한 나를 보고도 그 아저씨는 '미친~'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꺼내셨는데, 과연 이들의 모습을 보시면 아저씨는 뭐라고 하실지 반응이 기대가 되어서 이다. 아마 좋은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완전히 미친~'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이들은 완전히 미친 거 맞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무지막지한 일을 할 순 없다. 그들은 순례의 길을 떠나며 두 조로 나누어 길을 떠났다. 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는 아래 사진과 같이 삼보일배(오체투지)를 하며 길을 떠나고 나이든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는 윗 사진과 같이 수레를 끌려 길을 나선다. 삼보일배를 하기 위해 손엔 나무로 된 발판을 달았고 몸엔 고무로 만든 옷을 입었다. 아무리 질긴 고무라 해도, 단단한 나무라 해도 그게 남아날 수는 없었다. 헤어지고 닳고 또 다른 고무로 기워내고. 고무나 나무가 그렇게 될 정도면 이들의 몸은 어떻겠는가? 온 몸에 멍이 드는 건 당연한 것이고 이마엔 피멍까지 들었다. 그들의 여행은 고난의 길이었고, 나 자신은 하나도 없는 길이었다. 아래 사진 처럼 눈 밭에서 오체투지 하는 저들의 모습에서 난 가슴 찡한 울림을 느꼈다. 미쳐도 완전히 미쳤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떠나기 위해서는 나이든 사람들의 도움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에겐 짐이 없잖은가? 어디서 어떻게 자고, 어떻게 먹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바로 나이든 사람들이 모는 수레 속에 그 해답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천막과 먹을 것을 수레에 싣고 이들보다 앞서 가서 이들을 위한 천막을 치고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임무가 오체투지 하는 젊은 이들보다 가볍다고 코웃음치진 말자. 이들은 나이가 많아 그 무거운 수레를 끌고서 가기에도 벅차니까. 이들 또한 젊은 이들의 그 오체투지와 똑같은 마음가짐, 정신력으로 이 고행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모습이 '시간은 돈', '스펙이 나의 경쟁력' 운운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정상적으로 보일리가 없다. 이들은 시간을 죽이고 있고, 스펙을 쌓으며 미래를 준비하기 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의 모습이 충실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이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거나, 아니면 한심함을 느끼거나 하는 건 모두 이들의 삶을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어떤 특별한 것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반응은 극과 극이지만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다는 데엔 공통점이 있다. 그렇게 요원하게 생각해서는 이 다큐는 '바보상자'가 내보내는 연극에 불과할 뿐이다.

 



이들은 왜 그 길을 떠나야 했던 것일까? 왜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면서 길을 가려 했던 것일까? 여기에는 어떤 종교적인 메시지가 숨겨 있을 것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일생에 한번 마호메트의 유적지를 찾아 순례를 떠나길 바라듯 이들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삶의 가장 큰 영광을 누리기 위해 고단한 길을 군말 없이 나선 것이다. 이들을 우리가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미쳐도 한참 미친 그들을' 우리가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이들의 '미침'을 나도 본받고 싶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요새 간판과 스펙 싸움을 당당히 거부한 '김예슬 양'의 모습이 떠올랐다. 외모만 봐서는 전혀 닮은 부분은 없지만, 이들의 삶은 비슷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바로 '미쳤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미쳤다. 일류대라는 간판을 벗어던진 것도 그렇고, 자본주의의 충실한 하수인이 된 대학을 정면 비판하며 새 길을 개척하려 한다는 점도 그렇다. 그 '미침(狂)야 말로 진정한 미침(及)아닐까? 순례의 길을 떠났던 그들은 라싸에서 다시 10만배를 하고 각자가 꿈꾸던 삶을 찾아 떠났다. 그들에게 순례는 한 생애의 마지막임과 동시에 다른 생애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김예슬 양도 자신이 꿈꾸던 삶을 찾아 미련없이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미침(狂)주는 진정한 미침(及)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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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하루-150년만의 공개 카톨릭 신학교 ', '길 위의 신부들-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를 보고 

  왜 사는 거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사냔 말이다. 친구의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졌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정의 짐을 어깨 가득 지고서 정작 자신을 죽여가는 것만 같아 그게 답답했을 뿐이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일방적인 도움은 받지 않는 게 좋다. 언제든 족쇄가 될 수 있으니까. 그건 내가 일방적인 희생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건 상호 간에 의존적인 관계로 만드려 어느 순간엔 서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게 될 테니까. 어느 순간 그 친구가 "집에 돈을 다 대주느라, 난 아무 것도 못하고 요 모양, 요 꼴이야."라고 자조하는 말을 한다면, 그건 확실히 자신이 판 무덤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리라. 친구의 상황이나 나의 상황이 다른 건 별로 없다. 단지 난 내 앞 길에 대한 중압감만을 느끼며 나의 길만을 간다는 점이 다를까. 여기에 멈춘 우리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 건가? 





카톨릭 대학교는 7년 과정이었다. 사제가 된다는 건 대단한 결심이다. 가장 인간적인 성욕, 명예욕을 포기하고 한 세상 자신이 믿는 신만을 의지하며 나가야 하는 거니까. 더욱이 모든 것들이 짜여져 있다. 그 길에 들어선 이상, 그 답답함이 싫다고 해서 나올 수도 없다. 끼가 많던 그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것들을 승화시키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한 가지만 바라보고 물질적인 욕망이나 사회 진입의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되기에 그들이 더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지금의 나의 답답한 현실이 반영된 해석일 뿐임을 안다. 어쨌든 그들은 사회에서 쓰임 받을 것이기에 그게 부러운 것이었겠지. 하지만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나갈 수 있느냐고 한다면 나는 손사래를 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하는 맘만 같았을 뿐, 그 길은 서로 달랐으니까.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란 이름을 듣게 된 건 작년 촛불 집회 때였다. 그들은 삼성이란 거대 권력과 싸웠고 처참하게 패했다. 진실이 가려지고 어둠이 득세하는 세상을 목도한 것이다. 그들은 그런 억울한 상황에서도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세상에 묻힌 어둠을 드러내고 외칠 수 있는 그들이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현실을 지배하는 가치들에서 일정 부분 떨어져 있고 신의 보호를 믿는 사람들이기에 그런 대단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거겠지. 아니, 모든 신부님들이 그런 것은 아니니까 그들이 그만큼 더 깨어 있다는 증거겠지. 그 분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더불어 사는 삶'에 도움이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각 자의 길이 있다. 그건 나 혼자 방탕하게 살아도 된다는 식의 말은 아니다. 어떤 선언 뒤엔 그 선언에 따른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니까. 그들에게 왜 사냐고 하면 그들은 웃을 것이다. 여기에 어떤 수식 따위가 필요할까. 그럼 뭐하러 그런 길에 들어섰고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그게 옳은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라 말하겠지. 무언가 그로 인해 주어질 떡고물이나 명예 따위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행동은 더욱 칭송 받고 사람들 마음에 울림을 주는 것이리라. 내가 이 두 편의 천주교 관련 방송을 맘이 뭉클해졌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나의 삶의 지표가 될 이야기들. 정령 그렇게 자신의 일을 초연히 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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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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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을 보려거든 먹어봐야 하고, 세상이 어떤지 알고 싶거든 문 밖을 나서봐야 한다. 누군가 사귀어 보고 싶거든 마음을 보여야 하며 책을 쓰고 싶거든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가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삶의 진리이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란 속담이 담고 있는 이런 진리를 체득해 나가는 게 바로 우리의 삶의 여정이리라.  

  떠나보는 거다. 여태껏 우린 여행 중이었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 목적지에 왜 아직 도착하지 않았느냐고 어리석은 질문은 던지지 말자. 삶이 여행이라고 한다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건 죽음 이후에나 가능한 걸테니. 그저 지금은 내가 목표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지만 살펴보면 된다. 방향이 틀리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 테지만 그 낯선 환경에 소스라치게 놀라 여행을 그만두고 싶을 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의욕이 꺾인다면 여행은 그 순간부터 지옥이 될 거다. 꼭 도착지점에 제대로 가지 않아도 그만이다. 방향만 맞다면 언제고 도착은 할 테니까. 그게 그저 돌고 도는 듯, 시간 낭비인 듯 보일 테지만 실상 더 좋은 시간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생각지 못한 인연을 만날지도 모르고 전혀 뜻밖의 상황을 만나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니. 그러니까 그 방향만 맞다면, 줄곧 가보는 거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조급해하거나 '이 쪽으로 가면 길을 헤매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쓸데 없는 걱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활짝 웃고 당당히 걸어야 한다. 자신을 믿는 그 마음 속에 길도 서서히 열릴 테니까.  

  내가 도보여행 중 익산 함열에서 논산으로 걸을 때도 그랬었다. 국도의 번잡함과 위험함을 피해서 지방도의 굽이길을 택했다. 그 길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으니 지도를 똑바로 보고 길을 찾아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도 보기가 서툴렀던 나는 길을 잃고 말았다. 지금 내가 가는 길로 똑바로 간다해도 방향이 맞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이미 고창에서 길을 잃고 빙빙 돈 경험이 있는지라 더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가만히 있어서는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걷던 길을 무작정 걸었고 걷다보니 표지판이 보이더라. 그런데 그 곳이 어디인지 아무리 지도를 봐도 모르겠더라. 하지만 단서 하나는 잡았다. 강경 쪽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됐으니까. 그 방향만 알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5시가 좀 넘어서야 논산에 도착하게 되더라. 헤매게 되어 불안하긴 했지만 방향만 맞다면 길은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비야씨는 9년 간의 월드비젼 국제구호팀장의 역할을 그만 두고 대학교 석사 과정에 다니기로 했단다. 열정적으로 했던 일을 그만두고 다시 새로운 일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민들이 있었을까? 어떠한 경로를 거쳤건 그녀는 다시 시작 지점에 서있다. 그런 그녀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왜였을까? 난 그녀가 그녀의 길을 굳건히 잘 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덩달아 석사 과정이 끝났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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