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맛을 보려거든 먹어봐야 하고, 세상이 어떤지 알고 싶거든 문 밖을 나서봐야 한다.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을 보여야 하며 책을 쓰고 싶거든 한 자, 한 자 적어나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자명한 이치이고 진리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란 속담이 담고 있는 이런 진리를 체득해 나가는 게 바로 삶이지 않을까.

떠나보는 거다. 여태껏 우린 여행 중이었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 목적지에 왜 아직 도착하지 않았느냐고 어리석은 질문은 던지지 말자. 삶이 여행이라고 한다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건 죽음 이후에나 가능한 걸 테니. 그저 지금은 내가 목표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지만 살펴보면 된다. 방향이 틀리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 테지만 그 낯선 환경에 소스라치게 놀라 여행을 그만두고 싶을 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의욕이 꺾인다면 여행은 그 순간부터 지옥이 될 테니까. 꼭 도착지점에 제대로 가지 않아도 그만이다. 방향만 맞는다면 언제고 도착은 하게 될 테니까. 그게 그저 돌고 도는 듯, 시간 낭비인 것처럼만 보일 테지만 실상 그 좋은 체험의 시간이 될지 어찌 아는가? 생각지 못한 인연을 만날지도 모르고 전혀 뜻밖의 상황을 만나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가게 될 지도 모르니. 그러니까 그 방향만 맞는다면, 줄곧 가보는 거다. 그럴 때 포인트는 조급해하거나 ‘이 곳으로 가면 길을 헤매게 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활짝 웃고 당당히 두 손 흔들며 걷자. 자신을 믿는 그 마음속에 길도 서서히 열릴 테니.

내가 익산 함열에서 논산으로 걸을 때도 그랬었다. 국도의 정신없음과 위험함을 피해서 지방도의 굽이길을 택했다. 그 길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으니 지도를 똑바로 보고 길을 찾아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도 보기가 서툴렀던 나는 금방 길을 잃었다. 지금 내가 가는 길로 똑바로 간다 해도 방향이 맞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이미 고창에서 길을 잃고 돌아본 경험이 있는지라 더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멈춰 있어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걷던 길을 무작정 걸을 수밖에. 그랬더니 곧 표지판이 나오더라. 그 표지판을 보고도 그 곳이 어딘지 알진 못했지만 적어도 강경으로 향하는 방향을 알게 되었다. 그 방향으로 나있는 길로 계속 걸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5시가 조금 넘어서니 곧 논산이 나오더라. 헤매게 되어 불안하긴 했지만 방향만 맞는다면 길은 통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한비야씨는 9년간의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의 역할을 그만 두고 대학 석사 과정에 다니기로 했단다. 이젠 안정을 찾아 멈출 만도 한데도 그렇게 다시 길을 걷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열정적으로 했던 일을 그만두고 다시 새로운 일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민이 있었을까? 어떠한 경로를 거쳤건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하려 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면 오버일까? 난 그녀가 그녀의 길을 의심 없이 방향에 따라 잘 가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거기에 덧붙여 석사 과정이 끝났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나도 여기서 멈춰 있으면 안 된다. 내 길의 방향을 확인하며 무작정 가볼 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범의 교육특강 - 대한민국 학부모와 선생님이라면 꼭 읽어야 할 교육필독서 미래를 바꾸는 행복한 교육 시리즈 1
이범 지음 / 다산에듀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꼬인 실을 풀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교회에서 한참 활동할 땐 이맘 때가 되면 제일 싫었다. 왜 그랬을까? 바로 성탄절을 맞이해서 전구를 장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구 장식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단 말일까? 전혀~ 전구를 장식하는 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교회 정원의 나무들에 휘휘 감아 놓으면 되고, 벽면을 따라 둘러 놓으면 끝나니깐. 하지만 처음에 전구를 박스에서 꺼낼 때 문제가 발생한다. 나름대로 안 엉키게 하려고 잘 정리해서 놓았지만, 막상 꺼내고 보면 여기 저기 엉켜 있으니까. 그걸 일일이 풀려고 하다보면 하루 해가 저무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엔 의욕이 있어서 달려들지만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든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봤다. '차라리 도중에 자르고 절연 테이프로 다시 이어 붙일까?'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그렇게해서는 전구를 오래도록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런 갈등을 하며 손을 대고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다보면 시간이 좀 많이 걸릴 진 모르지만 어느새 풀리게 된다는 것. 꼬인 전구줄의 진리는 멀리 있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은 없애고 그저 하나씩 묵묵히 풀어가다보면 어느새 풀리게 된다는 것이니까.

교육 문제도 이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의 한국 교육을 보면서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짚을 순 없다. 그저 교사의 복지부동이 문제라느니, 매번 바뀌는 교육과정 개편이 문제라느니, 평준화 교육체제가 문제라느니, 소문만 무성할 따름이다. 여기 저기 엉키고 설켜서 전혀 해결이 되지 않을 것만 같은 착각까지 든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은 '모든 교육판을 확 갈아 엎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뿐이다. 어떤 혁명적인 변화가 찾아오길 누구나 바라는 거다. 그런데 과연 그런 변화가 찾아온다 해도 이 문제들이 해결되긴 하는 것일까? 역시 이 문제도 그런 극단적인 생각으론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조급한 마음은 없애고 그저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하는 것.

이 책의 부제는 '대한민국 학부모와 선생님이라면 꼭 읽어야 할 교육필독서'라고 되어 있다. 필독서라니? 이런 명명은 독자들의 소문을 타고 퍼져야 정상일 텐데, 이미 책에 버젓이 쓰여 있다. '필독서'라는 부제가 달린 것이 오히려 이 책의 값어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나타나진 않을까 걱정된다. 그건 나 자신을 소개하면서 '누구나 한 번 나를 만나면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사람'이라 떠벌리는 꼴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설령 진짜 다시 만나고 싶단 생각이 들었을지라도 밥맛이라고 생각하며 다신 연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

이런 부제의 오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개념을 잘못 쓴다는 것부터 알 수 있다. '수월성'과 '평준화', 이 두 단어를 우린 상반되는 교육철학으로 받아들이지만, 실상 둘이 공존할 수 있고 서로 같이 교육 현장에서 쓰여야 하는 개념이라는 것. 수월성 교육의 출발점은 학생의 특기를 더욱 계발 시킨다는 것이고, 평준화는 모두에게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 정답 빨리 맞추기 식 교육에선 이 두 가지가 개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개념을 바로 잡는데 힘을 쓴다. 그리고 교육의 자율화를 의미 있게 강조한다. 현재의 교육 자율화는 '학교 관료'의 자율화일 뿐, 학생의 자율화 교사의 자율화일 순 없다는 것이다. 그건 곧 자율화란 미명의 '획일화'일 뿐이다. 진정 현행 중등 교육이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의 자율화가 뒷받침 되어야 하며, 수능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창의성을 신장할 수 있는 교육이 펼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적으로 제시한 것이 핀란드 교육이다. '책임교육(학력 미달자를 책임지는 교육), 맞춤교육(학생 개인의 특기를 신장시키는 교육), 창의성 교육'으로 핀란드 교육을 정의하고 그런 모델로 중등 교육이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대학교의 개혁도 같이 이루어져야 하고, 학교라는 행정기관(저자는 교육기관으로 보지 않는다)의 개혁 또한 같이 이루어져야 한단다.

이렇게 나름대로 정리하고 나니 '필독서'라는 자기 명명이 그렇게 낯간지럽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직 교사나 예비 교사들, 그리고 자식의 교육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입시설명회장에 찾아다니는 학부모님들은 꼭 봤으면 좋겠다. 교육이 그런 노력으로 단번에 정상화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생각의 변화들이 쌓이면 교육 또한 변화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도 우리의 초딩, 중딩, 고딩들은 그 누구보다도 불행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잖은가~ 그걸 아는 사람이 두 손 두 발 놓고 그런 불행을 당연한 것 인양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함께하는 교육학 -하 - 2010 대비
전태련 지음 / 마이쌤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내가 누군가에게 배운다는 마음으로 임할 때 가능하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꼭 누군가의 명언인 것 같다. 근데 그냥 지금의 내 생각을 이렇게 멋드러진(?) 글로 표현해 놨을 뿐이다. 

  이걸 사자성어로 바꾸면 '敎學相長' 쯤 될 것이다.  

  전태련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가슴 떨리는 시간이라 한다면 이상하게 생각할까? 뭐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괜찮다. 그 마음은 진심이니까. 강의를 듣는 시간도 좋고 그 내용을 곱씹으며 마인드맵을 작성하는 시간도 좋다. 공부는 고행이 아니듯, 하나 하나 알아가는 재미에 빠져 나도 언젠가 그와 같은 교사가 되어야 겠다고 느낀다. 배움과 가르침의 조화,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면 내가 서있는 자리가 꿈과 희망이 넘쳐 흐르는 자리가 될 것이다.  

  교육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우선 어떤 선생님의 교재를 선택할까 고민한다. 당연하다. 자신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처럼 전태련 선생님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인 사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요하진 않는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정도 전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소중한 길벗이 되리라 확신하니까. 교사의 생각이 바로 서야 교육이 살 것이다. 모두 힘내서 자신의 교육관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예비 교사들이여 꿈을 갖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함께하는 교육학 -상 - 2010 대비
전태련 지음 / 마이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임용을 준비한지도 벌써 어언 4년째다. 결코 자랑할만한 일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준비하다 보니 전공 뿐만 아니라, 교육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게 되었다.  

  물론 본격적인 임용고사에서 교육학은 1차 합격을 위한 디딤돌일 뿐이다. 100만점의 1차 시험 중 20점 정도만 차지하니깐. 하지만 임용에 합격한 사람들은 교육학점수에서 합격 불합격 여부가 크게 갈린다. 나 또한 지금까지 좀 쉬쉬하면서 전공에 투자했던 터라 이젠 그 실수를 만회하고자 하는 거다. 

  '전공만 잘하면 교육학은 과락만 넘을 정도면 된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교육학은 교육의 기본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부라는 한 가지 목표에선 둘다 통하니깐. 고로 교육학을 잘 정리하고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전공도 잘 할 수 있다는 말씀. 교육학을 공부하다보면 내 삶이 바뀐다. 또한 교육에 대한 가치관도 변한다. 성적위주의 교육을 할 것이냐, 아이들 개개인을 위한 교육을 할 것이냐라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공과 함께 교육학을 공부하자. 그렇게 하다보면 나도 어느새 내가 바라던 선생님의 상을 갖게 될 것이다.  

  서설이 너무 길었다. 어찌 되었든 그런 경로를 통해 내가 접하게 분은 전태련 선생님이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멋진 분이다. 그간 여러 교육학 선생님들의 강의를 듣고 공부도 해봤지만, 이 분만큼 교육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지니신 분은 없었다. 이 분을 통해 공부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고, 거기에 더불어 삶의 자세도 바뀌었다. 이 책을 사시는 분들은 교육학 강의도 같이 들을 것이다. 맘껏 그 분과 대화하는 자세로 그 분의 강의에 빠져 보는 건 어떨까? 

  이번 최신판은 여러모로 맘에 든다. 책도 깔끔하지만 많은 부분이 보강되어 교육학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이나, 나처럼 다수생에게도 딱 맞게 편집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맘껏 이 책에 빠져 교육학의 세계를 파헤쳐보는 일만 남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ogos678 2009-02-12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3수 끝에 중등임용고사 합격했어요. 벌써 10년도 넘은 얘기지만 지금도 가끔 노량진 학원 근처에서 어묵으로 저녁 때우고 공부하던 시절이 떠오른답니다. 님에게 꼭 합격의 기쁨이 함께하길 바랄게요.
 
다르게 사는 사람들 -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 이야기
정순택 외 지음, 윤수종 엮음 / 이학사 / 200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8년 한국은 들끓었다. 촛불은 타올랐고 허무하게 꺼졌으며, 보란듯이 국가 권력은 민초의 저력을 짓밟으며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무하게 모든 것이 끝났다. 그 사이에 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자기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며, 검인정 체제로 운영되는 근현대사 교과서를 토씨하나까지 바꾸려 했으며, 국가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참교육'을 외치며 일제고사에 자율권을 준 교사를 해임시켰다. 그리고 언론 독립을 외치며 고군분투하던 YTN교사들을 해임시켰다. 2008년의 한국 사회는 국가권력은 살아나고 개인은 그 권력에 순응해야만 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런 변화를 '민주주의의 퇴보'라고들 흔히 말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로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이다. 그건 다른 말로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라는 말이기도 하다. 나를 선으로 놓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악으로 놓는 그런 이분법에서 벗어날 때 가능하다. 나 외의 것들을 타자화 하지 않을 때 나와 너가 주인이 되는, 그래서 다양한 객체를 인정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2008년의 한국은 이런 기본적인 가치가 여지 없이 무너져 내렸다. 가슴이 아프다.

  이렇듯 나 안에만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2008년의 한국사회를 보고서 가슴이 아팠던 사람에게 이 책은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려주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나만이 절대 진리일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만이 참된 지식일 수 없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 신화에 갇혀 살게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런 확신은 곧바로 타인에게 강요하게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작은 생각의 차이가 때론 커다란 차이인 것처럼, 절대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차이인 것처럼 생각되게 마련이다. 자폐증! 인식의 자폐증은 병은 아니지만, 병보다 더 심한 병인 까닭이 거기에 있다. 병은 스스로 자각하게 되면 나으려고 병원을 찾게 되지만, 인식의 자폐증은 병으로 생각하지 않기에 자각도 못할 뿐더러 그런 삶을 계속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 폐악을 우린 2008년 정부 정책의 밀어부치기에 충분히 지켜볼 수 있었다. 바로 그런 나 자신의 어리석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런 류의 책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나와는 너무도 다른, 그래서 평소엔 가까이 할 수 없었던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고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소수자로 인정 받는 여성의 입장에서, 장애인의 입장에서, 동성애자의 입장에서 쓴 글들을 보며 그들을 느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인식의 자폐증에서 깨어날 수 있다. (이건 혹 영화 '매트릭스'에서 매트릭스란 가상현실을 깨닫고 현실에 눈을 뜬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거다)

  나라는 개체의 한계를 벗어나 타인과 정말로 어울려 살 수 있는 한국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더불어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것과 전혀 다른 생각들도 인정하고 같이 보듬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처벌할 수 있는 월권을 누가 주었는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천만의 말씀, 만말의 콩딱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