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교육특강 - 대한민국 학부모와 선생님이라면 꼭 읽어야 할 교육필독서 미래를 바꾸는 행복한 교육 시리즈 1
이범 지음 / 다산에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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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인 실을 풀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교회에서 한참 활동할 땐 이맘 때가 되면 제일 싫었다. 왜 그랬을까? 바로 성탄절을 맞이해서 전구를 장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구 장식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단 말일까? 전혀~ 전구를 장식하는 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교회 정원의 나무들에 휘휘 감아 놓으면 되고, 벽면을 따라 둘러 놓으면 끝나니깐. 하지만 처음에 전구를 박스에서 꺼낼 때 문제가 발생한다. 나름대로 안 엉키게 하려고 잘 정리해서 놓았지만, 막상 꺼내고 보면 여기 저기 엉켜 있으니까. 그걸 일일이 풀려고 하다보면 하루 해가 저무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엔 의욕이 있어서 달려들지만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든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봤다. '차라리 도중에 자르고 절연 테이프로 다시 이어 붙일까?'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그렇게해서는 전구를 오래도록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런 갈등을 하며 손을 대고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다보면 시간이 좀 많이 걸릴 진 모르지만 어느새 풀리게 된다는 것. 꼬인 전구줄의 진리는 멀리 있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은 없애고 그저 하나씩 묵묵히 풀어가다보면 어느새 풀리게 된다는 것이니까.

교육 문제도 이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의 한국 교육을 보면서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짚을 순 없다. 그저 교사의 복지부동이 문제라느니, 매번 바뀌는 교육과정 개편이 문제라느니, 평준화 교육체제가 문제라느니, 소문만 무성할 따름이다. 여기 저기 엉키고 설켜서 전혀 해결이 되지 않을 것만 같은 착각까지 든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은 '모든 교육판을 확 갈아 엎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뿐이다. 어떤 혁명적인 변화가 찾아오길 누구나 바라는 거다. 그런데 과연 그런 변화가 찾아온다 해도 이 문제들이 해결되긴 하는 것일까? 역시 이 문제도 그런 극단적인 생각으론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조급한 마음은 없애고 그저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하는 것.

이 책의 부제는 '대한민국 학부모와 선생님이라면 꼭 읽어야 할 교육필독서'라고 되어 있다. 필독서라니? 이런 명명은 독자들의 소문을 타고 퍼져야 정상일 텐데, 이미 책에 버젓이 쓰여 있다. '필독서'라는 부제가 달린 것이 오히려 이 책의 값어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나타나진 않을까 걱정된다. 그건 나 자신을 소개하면서 '누구나 한 번 나를 만나면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사람'이라 떠벌리는 꼴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설령 진짜 다시 만나고 싶단 생각이 들었을지라도 밥맛이라고 생각하며 다신 연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

이런 부제의 오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개념을 잘못 쓴다는 것부터 알 수 있다. '수월성'과 '평준화', 이 두 단어를 우린 상반되는 교육철학으로 받아들이지만, 실상 둘이 공존할 수 있고 서로 같이 교육 현장에서 쓰여야 하는 개념이라는 것. 수월성 교육의 출발점은 학생의 특기를 더욱 계발 시킨다는 것이고, 평준화는 모두에게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 정답 빨리 맞추기 식 교육에선 이 두 가지가 개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개념을 바로 잡는데 힘을 쓴다. 그리고 교육의 자율화를 의미 있게 강조한다. 현재의 교육 자율화는 '학교 관료'의 자율화일 뿐, 학생의 자율화 교사의 자율화일 순 없다는 것이다. 그건 곧 자율화란 미명의 '획일화'일 뿐이다. 진정 현행 중등 교육이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의 자율화가 뒷받침 되어야 하며, 수능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창의성을 신장할 수 있는 교육이 펼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적으로 제시한 것이 핀란드 교육이다. '책임교육(학력 미달자를 책임지는 교육), 맞춤교육(학생 개인의 특기를 신장시키는 교육), 창의성 교육'으로 핀란드 교육을 정의하고 그런 모델로 중등 교육이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대학교의 개혁도 같이 이루어져야 하고, 학교라는 행정기관(저자는 교육기관으로 보지 않는다)의 개혁 또한 같이 이루어져야 한단다.

이렇게 나름대로 정리하고 나니 '필독서'라는 자기 명명이 그렇게 낯간지럽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직 교사나 예비 교사들, 그리고 자식의 교육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입시설명회장에 찾아다니는 학부모님들은 꼭 봤으면 좋겠다. 교육이 그런 노력으로 단번에 정상화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생각의 변화들이 쌓이면 교육 또한 변화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도 우리의 초딩, 중딩, 고딩들은 그 누구보다도 불행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잖은가~ 그걸 아는 사람이 두 손 두 발 놓고 그런 불행을 당연한 것 인양 가만히 있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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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시작이란다. 뭐가? 그냥 뭐든~

  그저 한 걸음씩 걸어 간다. 바람은 상쾌했고 나무들은 싱싱했다. 공기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리는 듯, 괜찮은 듯, 쓸쓸한 듯, 행복한 듯.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어느 때고 내 마음을 알 때가 있었냐만 요즘은 더욱 심한 거 같긴 하다. 가을을 타나 보다. 가을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도무지 꽉꽉 막힌 이 느낌이란.

 

  그래서 무작정 모악산에 왔고, 무작정 오르고 있다.

 



 

전투적이지 않게, 그저 천천히 한 걸음씩 떼고 있다. 하늘은 새파랗더라. 이렇게 환상적인 날씨는 참 간만에 느끼는 거 같다. 막상 맘을 먹지 못하면 늘 그 속에 살면서도 느끼지 못한다. 에구~ 뭐가 이래? 내가 그동안 그렇게 나몰라라 살아와서 그런 거겠지. 그래서 미덕을 배운다. 산에 내가 있고 난 그 가을 속을 열심히 올라가고 있노라고. 이렇게 말하니깐 뭐 아주 특별한 무언가를 하는 것만 같다. ㅋ 모악산은 한참 개발 중이다. 여기저기 산을 헤집고 난개발이 한창이다. 뭘 얼마나 편안한 공간을 만들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의 거주권을 무시하는 행위란~ 바람 쐬러 나왔다가 산 초입길에 들어선 포크레인과 파헤쳐 놓은 길을 보고선 좀 황당했다. 내년이 지방 선거니까, 그러는 건지? 정말 시민들을 위한 것인지?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오르기만 하니깐 1시간이 조금 넘어 정상에 도착했지 뭔가? 정상에도 뭔가 변화가 있다. 난간을 설치해 놓은 거다. 예전엔 그냥 바위만 있어서 거기에 사람들이 올라서곤 했는데, 이젠 난간에 올라가면 된다. 좀 위태해 보이긴 했다. 많은 사람이 올랐을 때 부러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거기에 올라서 밑을 내다보니.. 우와~~~ 이 한마디 밖에 안 나오더라.

 



 



이렇게 맑은 하늘은 처음이다. 아니 오랜만이다. 안개도 전혀 끼지 않아서인지 전주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정말 다른 것들이 필요없을 정도로 최고의 광경이었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오고 사람들도 모두 올라오길 잘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괜히 나까지 뿌듯해지는 이 기분이란^^

 

가을이 어느새 성큼 온 거 있지. 산을 걷다가 생각난 건데, 인간은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걸 느꼈다.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딱 그것일 뿐이라는 거. 나도 조금 맘을 누그러 뜨리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야지. 아~ '오사게' 좋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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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4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기열전 上 - 사람에게 비추어 시대를 말하다, 고전을 넘어선 고전 강의
사마천 지음, 이인호 옮김 / 천지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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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이 전공인지라 사기를 어떻게든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데 도무지 마땅히 읽을 만한 책을 찾기 힘들더라. 해석만 되어 있는 경우엔 몰입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간단히 알고 가자니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도 들고. 해석도 되어 있고 거기에 숨겨진 내용까지 알려주는 책은 없을까 찾게 됐던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된 것인데.. (난 이 책을 샀다고 표현하지 않으련다. 사기에 관한 책을 한참이나 찾다가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니깐. 발견이란 말엔 어떤 것을 찾게 되었을 때의 기쁨과 즐거움이란 감정이 담겨 있을거다. 내가 딱 그랬으니까^^)  

이 책은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하다. 아주 책이 도톰하니까. 이렇게 두꺼운 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책 내용에 있을 거다. 과연 종이낭비와 활자 낭비를 하려고 이렇게 두꺼운 책을 만든 것일까. 이미 대답은 알고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해석 또한 현대어로 써져 있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열전 내용에 따른 강의까지 아주 충실한 편이다. 솔직히 '고전을 넘어선 강의' 부분이 더 재미있어서 두고 두고 읽곤 했다. 이 책을 통해 '이인호'라는 저자의 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더라. 이 책이 워낙 충실한 사기의 내용을 담고 있고, 저자의 중국학 지식을 담고 있는지라, 이 쪽 계통에 관심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겐 최고의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엔 20편의 열전이 실려 있다. 아마도 3권 정도로 열전강의를 계속 출간할 예정인 거 같다. 벌써 다음 작이 기대되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니겠지. 사기를 번역해 놓은 책들은 넘쳐나지만 본문 내용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한 세부적인 지식들까지 섭취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의 두꺼움은 오히려 반가운 것이 아닐까~ 그런 사람의 필독서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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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세트 (반양장본) - 전3권 - 새 번역 완역 결정판 열하일기 4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 돌베개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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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열하일기의 새 완역본이 나왔다. 그동안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완역본이 있었고(북한에서 번역한 것을 남한에서 출판한 것임) 그린비에서 나온 '열하일기2.0'이 있었다. 열하일기를 애타게 읽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는 그 책들도 귀한 선물이 됐을터다. 나에게도 물론 그런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2% 부족한 느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우선 무엇보다, 보리에서 나온 열하일기는 완역판이고 뒤에 원문까지 있는 점은 맘에 들긴 하지만, 편집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글자체도 눈에 확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첨부자료나 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인지 한번 읽어보겠다는 마음만 없었으면 중간에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그린비에서 나온 열하일기는 정말 맘에 쏙쏙 들었다. 우선 사진 자료들도 많고 전체적으로 편집이 잘 되어 있어 내가 열하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드니까. 그럼에도 아쉬웠던 것은 완역본이 아니라 기행 위주로만 국역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열하일기의 매력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다 읽고 싶은 이에겐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던 차에 이 완역본이 나온 거다. 이 책의 매력은 앞에 나온 두 책의 단점을 다 수용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책을 딱 받아보면 왠지 좋은 선물을 받은 거 같은 뿌듯함이 든다. 새 권의 책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왜이리 '배가 불러오던지'ㅋ 아마 이런 느낌은 열하일기라는 고전의 값어치를 아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원문까지 수록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건 나와 같이 한문 전공자의 바람일 뿐이겠지. 그래도 어쨌든 이 정도의 책이 나와준 것만으로 좋다~ 다음번엔 내가 더 완벽한 책을 내봐야지. 이런 허황된(?) 착각에 빠져 보면서. 

이 책을 통해 열하일기에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기 전에 예전 역사스페셜에서 2부로 했던 '열하일기편'을 보고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미 25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박지원이 살던 시대와 우리 시대는 너무도 다르니까. 그냥 책을 집어들었다간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넉다운 되기 딱 좋다. 어떤 것이든 예비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접하게 되면 그냥 접할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듯이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게 연암이 살던 당시의 풍경들과 친해지고 나면 이 책을 보는 것 또한 재밌는 여행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준비 되었다면 이제 우리가 연암의 발자취를 따라 맘껏 열하로 떠나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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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
마샤 그래드 지음, 김연수 옮김 / 뜨인돌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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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섬뜩한 노래 가사가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가사 뿐 아니라 노래 자체도 굉장 우울하다. 이 노래를 들을 때 생각났던 장면은 「에반게리온」에서 수많은 레이가 일제히 얼굴을 들던 장면이었다. 내 안에 있던 수많은 내가 고개를 들고서 또 다른 나에게 아우성을 치는 것만 같았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중적이다. 여러 역할을 수행하다보니 그렇게 여러 명의 자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엔 너무도 나약한 어린 자아도 있고 누군가에게 잘난 체 하려는 거만한 자아도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자아들이 들쭉날쭉하며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다중성을 통합하여 '~한 나'라고 규정될 수 있는 단일한 나를 만드는 일은 가능할까?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 제목이 참 아이러니하다. '동화=공주'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동화≠공주'라는 전혀 아리송한 표현이 되니까. 동화 속의 공주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공주란 타이틀만 있으면 평생 잠만 자더라도, 평생 순진한 얼굴을 한 체 세상사에 무관심하더라도 괜찮다. 오히려 그런 순수미와 백치미 때문에 핸섬한 왕자들이 다가와 구해주고 싶어질 테니까. 거기다가 좀 위험한 상황(악랄한 도적에게 잡혀간다거나 독이 든 사과를 먹는다거나)까지 연출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뒷일은 전혀 걱정하지 마시라. 모든 건 왕자가 다 해결해줄 거니까. 공주는 그저 그 왕자를 따라 '그 후로 둘은 행복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게 바로 동화 속에 그려진 공주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그런 동화를 보고 자라온 아이들이 꿈꾸는 행복한 가정상이다. 지금도 내 주위엔 그런 영향 탓인지 '언젠가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날 거라 기대하는 친구들이 있다. 너무나 순진하거나 너무나 바보이거나.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의 제목은 그런 일반적인 생각을 여지없이 깬다. 그건 이미 동화라는 유아적 상상의 공간에서 공주가 뛰쳐나왔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제목만 보고서 이 책이 끌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선 왠지 코엘료의「연금술사」가 떠올랐다. 길을 걸으며 자신을 알아가는 모습이 비슷해보여서 였던 것 같다. 길 위에 놓인 존재, 수많은 사건들은 지금까지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만을 맹목적으로 걸어가던 주인공을 각성시켜 자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도록 돕는다. 예전엔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한 모습으로 통합된 나 자신을 만들려 노력했다면, 이젠 내 속에 감춰진 여러 모습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만약 세상에 정답 같은 게 있다면, 그건 길 위의 예기치 않은 사건 속에 있을 것이다. 무언가 삶의 정답이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공주도 처음엔 평범한 공주였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화 속 공주'였다. 하지만 약간 다른 게 있었다면 아무 것도 안 하고 왕자만 기다리지는 않았다는 것. 품위 있는 공주가 되기 위해 자신의 욕망(함부로 울어선 안 되며, 왕성한 호기심이 있어도 안 된다. 그건 천박한 짓이니까)들을 거세해 나가야 했고 왕실규범에 따라 행동을 정형화해야 했다. 군에 들어가기 전엔 모두 자유분방하고 행동이 제각각이지만 훈련을 받고나선 하나의 기계처럼 정형화되듯 말이다. 처음부터 공주는 이중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다. '비키'라고 불리는 어리고 감정적인 자아는 공주 안에 억압된 욕망들이 표현된 것이다. 이런 이중적인 자아를 인정하고 늘 같이 이야기하며 지내던 공주는 어느 순간부터 그걸 인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아마도 감정에 치우친 자신의 모습보다 이성에 의해 왕실규범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공주가 되고 싶을 때부터 였을 것이다. 그 때 공주는 "언젠가 진짜 사랑이 빅토리아에게도 찾아올 것이다. 그 때는 이 세상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다 (39p)"라고 말한다. 이 말을 통해 자신을 단일한 존재로 만들려 한 진짜 이유는 지금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누군가로 인해 찾아올' 행복을 위해서였음이 드러난다. 자기 스스로를 불행으로 내몰면서 언젠가 그런 불행한 나를 건져줄 왕자가 나타나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공주는 비키라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옷장에 가둬버린다. 이미 공주는 그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편견이 가지게 된다. '공주는 ~~하다'와 '왕자는 ~~하다'라는 동화 속에 흔히 등장하는 그런 편견들. 과연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공주는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그런 공주는 왕자를 만난다. 그런데 다행히도 왕자는 공주의 편견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사람이었다. 사랑에 눈 먼 그녀, 공주! 아마 그 순간 공주의 눈엔 왕자의 편견에서 벗어나는 모습들은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눈이 멀면 그런 법이다^^ 그래서 둘은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한다.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거다. 왜냐? 동화책엔 '그 후로 오래 오래 행복했다'고 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 걸? 행복은 잠시 뿐이고 또 다른 불행이 시작된 거다. 왕자는 두 얼굴의 사나이였으니까. 이건 무슨 '헐크'라는 영화도 아니고~ 공주의 편견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깔깔박사'의 모습과 신경질적이고 불평과 불만에 가득차 공주는 멸시하는 '하이드 박사'의 모습. 공주는 왕자의 본래 모습이 '깔깔박사'인데 누군가 몹쓸 저주를 걸어서 때론 '하이드박사'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연 왕자의 본 모습은 뭐란 말인가? 이런 상황에선 두 가지 해법이 있다. 왕자라는 편견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그는 더 이상 왕자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그 정의에 맞도록 바꾸던가, 아니면 자신의 이런 불행을 바꿔줄 수 있는 또 다른 왕자를 기다리던가. 공주가 택한 방법은 왕자의 저주가 풀릴 수 있도록 돕는 거였다. 하지만 그렇게 도우면 도울수록 둘의 관계는 멀어진다. 왜 둘의 관계는 자꾸 꼬여갔던 것일까? 그 해답은 이미 윗줄 어딘가에 나와 있다. 공주는 스스로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누군가가 그 행복을 만들어 줄 거라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건 곧 왕자에게 바라는 게 많다는 이야기다. 그 뿐인가 그녀는 '왕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편견이 있다 보니, 은연중에 왕자에게 그런 모습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비극은 이런 데서 시작된다.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할 때.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모르긴 해도 한 번도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어. 당신이 원하는 왕자라는 것도 당신이 꿈꾸었던 어떤 사람이지, 당신과 결혼한 이 사람이 아닌 거야 (125p)" 왕자의 절규다. 왕자는 공주가 바란 이상형의 인물일 순 없다. '하이드박사'의 모습 또한 왕자의 모습일 테니까. 공주는 왕자의 다중적인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건 곧 자신의 다중적인 모습도 인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될 때 자신 안에 수많은 가능성이 드러나며, 행복도 그 안에 싹튼다.

 나의 다중성을 허하라. 그래서 때론 한없이 즐겁기도 하지만, 때론 언제 그렇게 쾌활했냐는 듯이 우울하고 외로움에 치를 떨기도 한다. 그게 바로 나의 모습일 뿐이다. 때론 엄숙주의로 조금의 미동도 없이 심각한 표정을 취할 때도 있지만, 때론 기분이 들뜨면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한다. 그게 모두 나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다. 어찌되었든 그들은 나를 하나의 관점으로만 평가하고 있을 테니까. 그게 진정한 내 모습이든 아니든 난 내 내면의 소리에 더 귀기울이며 나의 행복을 위해 살 것이다. 공주는 길을 떠나 많은 경험을 하며 자신이 얼마나 애초에 얼마나 완벽하고 독특한 사람이었는지 인정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것이며 자기를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공주는 살아가면서 왜 그토록 오랫동안 왕자를 갈망했는지 생각 했다. 실은 때로 왕자 없이는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공주에게는 자신을 사랑해줄 왕자가 필요했고, 자신이 아름답고 특별하고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왕자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필요했다. 왕자니, 자신을 구해주느니, 사랑에 빠지느니 하면서 배운 것들을 떠올리니 그보다 잘못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는 이제 여전히 자신이 살아가면서 왕자를 원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삶의 여러 요소 중의 하나가 될 뿐, 자신의 삶 자체가 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왕자가 있건 없건 간에 자신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을 만큼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78p)" 공주의 변화에 동감했다면 이젠 내가 변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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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9 2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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