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린다. 봄을 재촉하는 비라던데 오늘부터해서 이번 주 내내 추울 예정이란다. 진짜 막바지 추위이긴 한가보다. 이젠 다시 따뜻해질 날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이 추위가 가는 것마저도 아쉽게 느껴진다.

자연은 늘 그렇게 미련없이 때가 되어 바뀌는데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사람에겐 늘 다르게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붙잡고 싶을 때도 있고 빨리 갔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고 말이다. 이번 겨울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더라. 그저 어딘지 알 수 없게 방황하며 얼렁뚱땅 보낸 시간들은 아니었을지? 지난 시간에 대해서만 미련을 두는 못난 나^^ 앞으로 올 시간에 더 많은 것들을 담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나~

오늘은 비가 온다는 핑계로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이렇게 뒹굴고 있다. 해야할 일은 있는데도 이런 날은 좀 여유를 부리고 싶기 때문일까. 이런 날엔 내 마음인데도 잘 모르겠단 말이다. 나 자신도 알 수 없는데 남을 안다고, 세상을 안다고 하는 건 착각이거나 만용이겠지. 이런 날엔 영화를 한 편 보는 게 좋다. 비 소리를 들으며 한껏 영화에 의미 부여를 하는 거다. 무언가 했다는 생각에 그나마 죄책감 같은 건 덜 하겠지^^

작년에 도보여행을 하던 중에 양구에서 원통으로 향하던 길에 있었던 일이다. 점심을 먹지 못했던 터라 늦게서야 식당을 찾아 밥을 먹게 되었다. 그곳엔 이미 마을분들이 앉아서 한 잔씩 하고 계셨는데 그 중 한 아저씨가 나에게 한 말씀하시는거다. 거의 한 달간 여행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다. 속으로 미친 사람이라 생각할지라도 그걸 말로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 식당에서 처음으로 그런 반응을 직접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아저씨는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난 앞뒤 따질 필요 없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해. 차도 있는데 뭐 하러 걸어 다녀. 할 일이 없으니까 그렇지. 그렇게 여유부리기 전에 고추라도 한 군데 더 심겠구만.”이라고 말씀하신 거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반응을 뒷담화가 아닌 앞담화로 듣게 되니 기분이 상할 겨를도 없이 멍할 뿐이었다. 이를 테면 기습 공격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려야 했다. 어차피 이 일 자체가 평범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좋게 보는 사람보다 안 좋게 보는 사람이 더 많을 거니까. 그걸 이제서야 체험하게 된 것 뿐이다. 난 '미친 사람' 맞다~

 

그로부터 10개월이 흘렀다. 지금에서야 보게 된 프로는 <차마고도>라는 다큐이다. 예전부터 얼핏 듣긴 했는데,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하게 기회가 되어 1편부터 보게 된 것이다. 영상미가 끝내준다는 말에 그런 눈요기만 할 생각으로 봤는데, 이건 그냥 단순한 다큐가 아니었다. 그 안에 잔잔하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2편 순례의 길은 라싸로 순례를 하러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그들이 가는 길은 내가 걸었던 길보다 훨씬 멀고 훨씬 험했다. 그 길을 그들도 걸어서 갔던 것일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딱이다. 그들은 삼보일배를 하면서 그 길을 가고 있다. 이쯤 되면 내가 왜 작년 도보여행 때의 이야기를 꺼냈는지 대충은 짐작이 될 것이다. 단지 한 달 정도를 걸어서 여행한 나를 보고도 그 아저씨는 '미친~'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꺼내셨는데, 과연 이들의 모습을 보시면 아저씨는 뭐라고 하실지 반응이 기대가 되어서 이다. 아마 좋은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완전히 미친~'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이들은 완전히 미친 거 맞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무지막지한 일을 할 순 없다. 그들은 순례의 길을 떠나며 두 조로 나누어 길을 떠났다. 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는 아래 사진과 같이 삼보일배(오체투지)를 하며 길을 떠나고 나이든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는 윗 사진과 같이 수레를 끌려 길을 나선다. 삼보일배를 하기 위해 손엔 나무로 된 발판을 달았고 몸엔 고무로 만든 옷을 입었다. 아무리 질긴 고무라 해도, 단단한 나무라 해도 그게 남아날 수는 없었다. 헤어지고 닳고 또 다른 고무로 기워내고. 고무나 나무가 그렇게 될 정도면 이들의 몸은 어떻겠는가? 온 몸에 멍이 드는 건 당연한 것이고 이마엔 피멍까지 들었다. 그들의 여행은 고난의 길이었고, 나 자신은 하나도 없는 길이었다. 아래 사진 처럼 눈 밭에서 오체투지 하는 저들의 모습에서 난 가슴 찡한 울림을 느꼈다. 미쳐도 완전히 미쳤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떠나기 위해서는 나이든 사람들의 도움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에겐 짐이 없잖은가? 어디서 어떻게 자고, 어떻게 먹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바로 나이든 사람들이 모는 수레 속에 그 해답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천막과 먹을 것을 수레에 싣고 이들보다 앞서 가서 이들을 위한 천막을 치고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임무가 오체투지 하는 젊은 이들보다 가볍다고 코웃음치진 말자. 이들은 나이가 많아 그 무거운 수레를 끌고서 가기에도 벅차니까. 이들 또한 젊은 이들의 그 오체투지와 똑같은 마음가짐, 정신력으로 이 고행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모습이 '시간은 돈', '스펙이 나의 경쟁력' 운운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정상적으로 보일리가 없다. 이들은 시간을 죽이고 있고, 스펙을 쌓으며 미래를 준비하기 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의 모습이 충실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이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거나, 아니면 한심함을 느끼거나 하는 건 모두 이들의 삶을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어떤 특별한 것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반응은 극과 극이지만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다는 데엔 공통점이 있다. 그렇게 요원하게 생각해서는 이 다큐는 '바보상자'가 내보내는 연극에 불과할 뿐이다.

 



이들은 왜 그 길을 떠나야 했던 것일까? 왜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면서 길을 가려 했던 것일까? 여기에는 어떤 종교적인 메시지가 숨겨 있을 것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일생에 한번 마호메트의 유적지를 찾아 순례를 떠나길 바라듯 이들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삶의 가장 큰 영광을 누리기 위해 고단한 길을 군말 없이 나선 것이다. 이들을 우리가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미쳐도 한참 미친 그들을' 우리가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이들의 '미침'을 나도 본받고 싶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요새 간판과 스펙 싸움을 당당히 거부한 '김예슬 양'의 모습이 떠올랐다. 외모만 봐서는 전혀 닮은 부분은 없지만, 이들의 삶은 비슷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바로 '미쳤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미쳤다. 일류대라는 간판을 벗어던진 것도 그렇고, 자본주의의 충실한 하수인이 된 대학을 정면 비판하며 새 길을 개척하려 한다는 점도 그렇다. 그 '미침(狂)야 말로 진정한 미침(及)아닐까? 순례의 길을 떠났던 그들은 라싸에서 다시 10만배를 하고 각자가 꿈꾸던 삶을 찾아 떠났다. 그들에게 순례는 한 생애의 마지막임과 동시에 다른 생애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김예슬 양도 자신이 꿈꾸던 삶을 찾아 미련없이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미침(狂)주는 진정한 미침(及)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