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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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으며 현실의 고통을 더 깊이 느낀다. 이것이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일 텐데, 그렇게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니 거부감도 든다. <화씨 911>이란 영화에서 전쟁으로 인해 다친 이라크 사람들을 여과 없이 보여줬을 때 느꼈던 감정과 똑같았다. 그런 악랄한 짓을 자행한 미국에 대한 분노보다 그 화면의 잔인함에 대한 거부감으로 빨리 화면을 넘기고 싶었으니까. 현실을 직면해 본다는 건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가 보다. 그 고통과 쓰라림을 참아낼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기에 낭만적인 생각으로 덧씌우던가, 신이란 절대자를 앞 세워 보호막을 설치하던가, 술 담배 마약류의 힘을 빌려 정신을 몽롱하게 하여 회피하던가~ 다들 현실을 거부한 채 어디론가 도망치기에 바쁜 것이다. '도망친 어딘가엔 뭐가 다른 게 있겠지.' 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건 없었다. 도망치려 발버둥칠 수록 더욱 무겁게 달려드는 게 현실이니까. '그대여 강을 건너지 마소'는 바로 그런 현실을 담담히 말하고 있었다. 보던 순간 막막함과 아찔함이 밀려왔다. 그게 현실이었노라고, 작위가 아니었노라고 말할 수록 오히려 가슴은 무언가 꽉 막힌 듯 답답해져 왔다. 개에 물려 죽은 아들의 시체를 찾아가지 못하는 어머니, 대모 주동자로 잡혀 들어갔으나 동료들의 은거지를 불고나서 풀려난 사내, 베트남에서 시집 와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도망친 여자, 해망 방조제에서 딸이 크레인에 깔려 죽고 그 보상금으로 다른 곳으로 떠난 아버지, 소방관으로 백화점 화재 현장에서 귀금속을 훔쳐 명예퇴직을 하고 사업을 하는 남자, 이들의 이야기를 쫓으며 기사를 작성하고 삶의 무력감에 쪄들어 있는 주인공, 잡지사 편집인으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자. 그 누구 하나 삶에 녹록함은 별로 없다. 이 소설엔 환상적인 필치가 없다는 이야기고 도깨비 방망이식의 희망 이야기가 없다는 이야기다. 다들 바닥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삶이란 말인가? 남루하고 보잘 것 없고 무언가 덕지덕지 붙은 답답한 현실.  

   그런데 그들은 다들 살아가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해망에 흘러 들어가 사업을 하는 이도 있고 새 삶을 찾아 해망에 갔다가 다시 창야로 돌아와 계약직 일을 하는 이도 있으며 아들의 위로금을 찾아서 기존에 살던 집을 보수하고 농사일을 하는 이도 있다. 그 중간 과정들이 모두 주인공의 입을 통해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내막이 있는지는 전부 알 수 없다. 안개 속에서 사물을 보듯 그렇게 두리뭉실하게 윤곽만 잡힐 뿐이다. 그렇기에 객관적인 판단 운운하며 그들의 삶을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할 순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그들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흘러 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런 흘러감이 현실의 장벽이 완벽하게 제거된 해피 엔딩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쓰기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처음의 그 자리다. 남은 시간들 흩어지는데, 나여, 또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작가의 말이다. '그저 새로 태어나든지 망해야 하든지' 라고 말하며 이 말을 덧붙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 작품은 하나의 전환점이 될 거 같은 느낌이다. 강에 몸을 던진 작가는 이제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떠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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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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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으며 현실의 고통을 더 깊이 느낀다. 이것이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일 텐데, 그렇게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니 거부감도 든다. <화씨 911>이란 영화에서 전쟁으로 인해 다친 이라크 사람들을 여과 없이 보여줬을 때 느꼈던 감정과 똑같았다. 그런 악랄한 짓을 자행한 미국에 대한 분노보다 그 화면의 잔인함에 대한 거부감으로 빨리 화면을 넘기고 싶었으니까. 현실을 직면해 본다는 건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가 보다. 그 고통과 쓰라림을 참아낼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기에 낭만적인 생각으로 덧씌우던가, 신이란 절대자를 앞 세워 보호막을 설치하던가, 술 담배 마약류의 힘을 빌려 정신을 몽롱하게 하여 회피하던가~ 다들 현실을 거부한 채 어디론가 도망치기에 바쁜 것이다. '도망친 어딘가엔 뭐가 다른 게 있겠지.' 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건 없었다. 도망치려 발버둥칠 수록 더욱 무겁게 달려드는 게 현실이니까. '그대여 강을 건너지 마소'는 바로 그런 현실을 담담히 말하고 있었다. 보던 순간 막막함과 아찔함이 밀려왔다. 그게 현실이었노라고, 작위가 아니었노라고 말할 수록 오히려 가슴은 무언가 꽉 막힌 듯 답답해져 왔다. 개에 물려 죽은 아들의 시체를 찾아가지 못하는 어머니, 대모 주동자로 잡혀 들어갔으나 동료들의 은거지를 불고나서 풀려난 사내, 베트남에서 시집 와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도망친 여자, 해망 방조제에서 딸이 크레인에 깔려 죽고 그 보상금으로 다른 곳으로 떠난 아버지, 소방관으로 백화점 화재 현장에서 귀금속을 훔쳐 명예퇴직을 하고 사업을 하는 남자, 이들의 이야기를 쫓으며 기사를 작성하고 삶의 무력감에 쪄들어 있는 주인공, 잡지사 편집인으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자. 그 누구 하나 삶에 녹록함은 별로 없다. 이 소설엔 환상적인 필치가 없다는 이야기고 도깨비 방망이식의 희망 이야기가 없다는 이야기다. 다들 바닥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삶이란 말인가? 남루하고 보잘 것 없고 무언가 덕지덕지 붙은 답답한 현실.  

   그런데 그들은 다들 살아가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해망에 흘러 들어가 사업을 하는 이도 있고 새 삶을 찾아 해망에 갔다가 다시 창야로 돌아와 계약직 일을 하는 이도 있으며 아들의 위로금을 찾아서 기존에 살던 집을 보수하고 농사일을 하는 이도 있다. 그 중간 과정들이 모두 주인공의 입을 통해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내막이 있는지는 전부 알 수 없다. 안개 속에서 사물을 보듯 그렇게 두리뭉실하게 윤곽만 잡힐 뿐이다. 그렇기에 객관적인 판단 운운하며 그들의 삶을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할 순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그들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흘러 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런 흘러감이 현실의 장벽이 완벽하게 제거된 해피 엔딩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쓰기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처음의 그 자리다. 남은 시간들 흩어지는데, 나여, 또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작가의 말이다. '그저 새로 태어나든지 망해야 하든지' 라고 말하며 이 말을 덧붙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 작품은 하나의 전환점이 될 거 같은 느낌이다. 강에 몸을 던진 작가는 이제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떠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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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학기한글역주 - 동방고전한글역주대전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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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이 저물어 간다. 한 해가 저물면서, 특히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이 때 꿈을 꿔보는 게 당연하다.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다를 리는 없지만, 사람들은 새해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맘껏 깊이 의지를 다진다. 그게 자기 위안이든, 자기 최면이든 상관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린 희망을 품고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거니까.  



 

2009년에 읽었던 책 중, 최고의 책은 뭐니뭐니해도 '논어한글역주'였다. 단순한 해석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석학들의 주석서를 꼼꼼히 파악하고 거기에 저자의 견해까지 달고 있다. 논어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게 해주는 해석서라고 할만하다. 그 뿐인가,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려면 거기에 드러난 시대상까지도 면면히 살펴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다 보여준다. 그래서 논어는 캐캐묵은 연묵의 향이 아닌, 신선한 바람에 실려오는 봄내음과도 같은 은은한 맛이 있게 되었던 거다. 번역이란 때론 원본을 모욕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이 책만은 그러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읽고 있는 대학은 원래의 대학이 아니다. 원래는 예기 속에 있던 내용을 '사서'라는 기획에 따라 따로 단행본화 한 것일 뿐이니까. 하나로 뭉쳐진 내용들을 장으로 나누고 경으로 나눈 것은 송대 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중화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불교에 대항하는 신세계 문명 운동이라고나 할까) 대학과 중용을 뽑아냈고 그걸 자신들의 '性理'의 체계에 따라 편집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대학이란 바로 이런 체계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新대학 인 것이다.  

당연히 번역을 하신다면 이 대학을 번역하실 줄 알았다. 지금까지 나온 번역서들은 모두 그러했기에. 좀더 추가한다면, 대학혹문까지 번역하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도올 선생은 그런 상식을 깨버린다. 이 책이 新대학이라면 원래 대학의 모습을 찾아 그것을 번역하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 싶은 것이리라. 이미 넘쳐나는 대학 번역본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은 다른 번역본을 내시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야말로 '돈키호테식의 용기' 아니었을까? 늘 있는 길을 따라가는 건 쉽다. 모두가 걸어 반들반들 잘 닦여져 있으니, 맹목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몇 십배 몇 백배의 힘이 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도올 선생은 바로  그 길을 가기로 한 거니까.  

하지만 나는 그의 용기를 사랑한다. '불가능한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견디며 어느 용사도 감히 가려 하지 않는 곳으로 달려가고, 잡을 수 없는 별을 잡으려 하는 것이 진정한 기사의 의무, 아니 특권이다. -돈키호테-' 그의 용기가 바로 이 책 가득 담겨 있으니까. 이 책은 지금껏 대학을 보며 피상적으로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외워왔던 나에게 다른 지평을 열어주는 역작이었다. 그가 새로 만든 길을 통해 나도 새로운 대학의 길을 볼 수 있었고, 또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니까. 그의 용기가 가득 담긴 이 책을 통해 나도 한 걸음 더 걸을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으니까.  

새롭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누구나 소원을 빈다. 그 소원엔 자신의 이상향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고, 어쩌면 전혀 가능성이 없을 지도 모르는 꿈을 꾸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하고 좀 더 나은 나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 않을까. 대학, 학기역주 또한 바로 그와 같은 가능성을 시험한 역작이다. 이 책을 통해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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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 편력은 한비야씨로 인해 촉발되었다고 해도 거짓이 아니다. 고등학생 때 이 책, 저 책 많이 읽긴 했지만 대학교에 올라와선 그 흐름이 끊겼으니까. 그러다 한비야씨의 책을 접하고서 많은 책을 읽게 되었고 독서를 하는 게 시간 낭비가 아닌 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오늘도 우연히 한비야씨의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고 있으니까. 새삼 과거의 기억이 나서 그런 거다. 이 책엔 신앙인의 면모가 유독 도드라져 보이고 지금껏 읽은 책의 그 이야기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좀 식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이 사신 분의 이야기이기에 깨달음을 주는 부분들도 있다. 여기에선 더욱이 책들을 추천해주고 계신다. 그 책들 중에 내가 읽은 책은 딱 두 권 뿐이더라. 서로 관심이 있는 책이 다르니까 그런 거겠지. 어쨌든 그 덕에 2010년을 장식할 독서목록을 얻은 셈이다. 그런데 그것에 이어 ‘나라면 과연 어떤 책을 추천할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도 나름대로 독서를 좋아하니까. 이렇게 추천 도서를 고르며 올해 내가 어떤 독서를 해왔나 알아볼 수 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핸 70권이 약간 넘는 책을 읽었다. 전반기엔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진 못했다. 도보여행도 하며 이것저것 바빴으니까. 하반기가 되어서야 많이 읽어 70권을 채울 수 있었던 거다. 내 독서 목록을 살펴보니, 소설, 수필, 철학 등 다양한 방면의 책들을 읽은 게 눈에 띈다. 하지만 저자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한계겠지.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은 것도 많고. 하지만 어쩌랴, 사람도 만날 때마다 느낌이 다르듯이 책도 마찬가지인 것을.

책 추천 기준은 나에게 영향을 준 정도이다. 짜릿한 충격을 주어 정신없이 읽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나의 삶의 기준을 조금이나마 바꾼 책들을 선별한 것이다.



 
「개밥바라기별」은 빼놓을 수 없다. 한 소년의 성장담을 통해 짜여진 각본을 박차고 나설 수 있는 젊음의 패기를 보았으니까.



「죽은 시인의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젊음은 자신의 길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더욱이 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역할 모델이지 않을까.



「추방과 탈주」는 구조적인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고 거기서 어떻게 벗어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역작이었다.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는 환상과 착각에 빠질 때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史1~4」헝클어진, 한 쪽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치우친 국사의 현실을 보여주고 두 발로 서서 역사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애틋한 과거의 모습, 과거사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연금술사」그건 자신의 신화를 찾아가는 모험이다. 그 이야기 속에 나의 꿈이 영글더라.



「도올선생중용강의」,「노자와 21세기 1~3」올해 건진 최고의 작품이다. 늘 피상적으로 읽었던 중용의 참맛과 노자의 참맛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알 수 있게 되었고 책 읽는 재미도 오랜만에 느끼게 해줬으니까.

9권으로 추려보았다. 나에게 의미 있었다고 다른 이에게까지 꼭 그러리란 보장은 없을 것이다. 단지 나에게 그랬듯이 다른 이에게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정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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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21세기 - 3- 완결편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0년 5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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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21세기 - 2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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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21세기 - 1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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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상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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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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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보려거든 먹어봐야 하고, 세상이 어떤지 알고 싶거든 문 밖을 나서봐야 한다.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을 보여야 하며 책을 쓰고 싶거든 한 자, 한 자 적어나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자명한 이치이고 진리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란 속담이 담고 있는 이런 진리를 체득해 나가는 게 바로 삶이지 않을까.

떠나보는 거다. 여태껏 우린 여행 중이었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 목적지에 왜 아직 도착하지 않았느냐고 어리석은 질문은 던지지 말자. 삶이 여행이라고 한다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건 죽음 이후에나 가능한 걸 테니. 그저 지금은 내가 목표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지만 살펴보면 된다. 방향이 틀리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 테지만 그 낯선 환경에 소스라치게 놀라 여행을 그만두고 싶을 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의욕이 꺾인다면 여행은 그 순간부터 지옥이 될 테니까. 꼭 도착지점에 제대로 가지 않아도 그만이다. 방향만 맞는다면 언제고 도착은 하게 될 테니까. 그게 그저 돌고 도는 듯, 시간 낭비인 것처럼만 보일 테지만 실상 그 좋은 체험의 시간이 될지 어찌 아는가? 생각지 못한 인연을 만날지도 모르고 전혀 뜻밖의 상황을 만나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가게 될 지도 모르니. 그러니까 그 방향만 맞는다면, 줄곧 가보는 거다. 그럴 때 포인트는 조급해하거나 ‘이 곳으로 가면 길을 헤매게 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활짝 웃고 당당히 두 손 흔들며 걷자. 자신을 믿는 그 마음속에 길도 서서히 열릴 테니.

내가 익산 함열에서 논산으로 걸을 때도 그랬었다. 국도의 정신없음과 위험함을 피해서 지방도의 굽이길을 택했다. 그 길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으니 지도를 똑바로 보고 길을 찾아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도 보기가 서툴렀던 나는 금방 길을 잃었다. 지금 내가 가는 길로 똑바로 간다 해도 방향이 맞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이미 고창에서 길을 잃고 돌아본 경험이 있는지라 더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멈춰 있어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걷던 길을 무작정 걸을 수밖에. 그랬더니 곧 표지판이 나오더라. 그 표지판을 보고도 그 곳이 어딘지 알진 못했지만 적어도 강경으로 향하는 방향을 알게 되었다. 그 방향으로 나있는 길로 계속 걸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5시가 조금 넘어서니 곧 논산이 나오더라. 헤매게 되어 불안하긴 했지만 방향만 맞는다면 길은 통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한비야씨는 9년간의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의 역할을 그만 두고 대학 석사 과정에 다니기로 했단다. 이젠 안정을 찾아 멈출 만도 한데도 그렇게 다시 길을 걷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열정적으로 했던 일을 그만두고 다시 새로운 일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민이 있었을까? 어떠한 경로를 거쳤건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하려 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면 오버일까? 난 그녀가 그녀의 길을 의심 없이 방향에 따라 잘 가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거기에 덧붙여 석사 과정이 끝났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나도 여기서 멈춰 있으면 안 된다. 내 길의 방향을 확인하며 무작정 가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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