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미학 산책 - 한시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탐구한 우리 시대의 명저, 완결개정판
정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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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 책에 대해선 의심이 없어진지 오래다. '정민 브랜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정민 선생님이 쓴 책들은 그 내용 여하에 상관 없이 날 잡아 당기는 마력이 있다. 이 책 또한 그런 마력의 연장선 상에서 보게 된 것이다.
 한시에 대하여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한시 뿐 아니라 시에 대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였기 때문도 하지만, 한시는 대꾸를 맞추고 거기에 전고를 사용하여 왠만해선 무슨 말인지조차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거리감이 있던 그런 분야였던 것이다. 그런 고정관념 때문인지 고미숙 선생님이 쓰신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時空間' 을 '詩空間'으로 오판하여 읽지 않으려 했었다. 결국 읽으며 내가 한시에 대하여 엄청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가 범접하기 어려운 그 어떤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무의식에서는 그런 벽을 넘고 싶은 맘이 싹트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민 브랜드의 파워를 믿고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참 분위기가 산뜻한 책이었다. 양장본으로 만들어진 책이라 좀 진중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곁표지 디자인은 동화책 같은 분위기 였으니 말이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보며 느꼈던 느낌 그대로 였다. 이를 테면 그 책은 어린이를 위한 보급형 책자라면, 이 책은 좀 더 전문적으로 학습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자라고 할 것이다. 그런 산뜻한 느낌 때문인지 빨리 펼쳐 들고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책을 펼쳐 읽게 되면 그 내용은 금새 눈에 들어온다. 한시만 읽어서는 도무지 뭘 얘기하려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한시를 통해 풀이해주는 정민 선생님의 해석은 탁월하다. 국문학 교수이며 한문을 연구하는 분이라서 딱딱한 고전체의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코앞에서 이야기해주듯이 쉽고 간결하게 써있다. 하나의 이야기를 듣는 듯이 편하게 읽다보면, '아! 이 한시에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구나' 금새 깨닫게 되는 형식이다. 이렇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보니 대꾸가 어떻고, 운자가 어떻고, 평측이 어떻고 하는 등등의 딱딱한 한시의 작문법을 탐구하진 않는다. 그런 한시의 형식만 탐구하던 여타의 기존 한시책들은 보다보면 질려서 10편 정도 보다가 그만 보게 되었는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또한 여러 주제별로 한시들을 엮고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민 선생님의 서술 방식도 놀랍다. '궁즉통' 이 화두는 한시를 창작하던 작가들의 고뇌와 그 현실을 여지 없이 들려주며 한시를 통한 놀이라는 주제에서는 재밌는 방식으로 쓴 한시들을 소개 하며 한시에 대한 거리감을 좁혀준다.  

   한시를 나와는 먼 다른 나라 이야기 정도로 알고 있던 나에게 너무나 반가운 책이었다. 한자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책 한 권만 제대로 읽어도 한시 창작법이랄지, 명편 한시들을 어느 정도 아는 셈이니 상식을 쌓는데도 도움이 된다. 정민 선생님의 한시에 관한 다음 책이 은근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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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 - 후집
성백효 옮김 / 전통문화연구회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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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을 하는 사람은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꼭 읽어야 한다. 지금 읽으면 영어를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난해하기 그지 없는데도 꼭 그래야 한다. 왜냐 하면, 그 난해함이야말로 영어의 아름다움, 영어의 조형미이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그 난해함에 빠져 들수록 영어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그렇지만, 힘듦을 겪고 난 후엔 더 큰 깨달음과 경지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게 문장공부라 하여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고문진보는 본토인 중국에서 보다, 고려, 조선에서 더 유명했던 책이다. 문장의 전범을 익히기 위해서는 꼭 독파해야 했던 책인 것이다. 여기엔 여러 문체의 글들이 들어 있다. 그렇기 떄문에 이 책을 한 권 독파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문을 공부한다고 하면서 주저 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어려움을 벗삼아 깨우쳐가는 묘미를 통해 한문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미덕은 여느 번역서 못지 않게 직역에 충실하였다는 것이다. 성백효 선생님의 번역은 대체로 원문에 충실하며 평이하다고 할 수 있다. 전통 한학자답게 처음 한문을 접하는 사람에게 전통의 깊이를 별 어려움 없이 전해주는 것이다. 이 책을 한 권 들고 고문진보의 글 하나 하나를 섭렵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한문 실력도 일취월장해 있을 것이다. 여러 문체를 두루 보았기 때문에 한문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 또한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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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삼성의 이야기가 연일 보도될 때가 있었다. 솔직히 그 땐 그게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했다.  

단지 불법적인 승계가 문제가 된다는 정도로만 보고 있었을 뿐이다. 돌고 돌아 이제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시기 상으로는 많이 늦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읽은 게 아니라 내가 읽고 싶어 읽은 만큼 많은 걸 느끼게 해줬다.  

길게 볼 것도 없다. 이 책은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 꼭 읽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 그것도 삼성 공화국의 사회에 사는 우리이니만치 흘려 들어서도 안 된다. 그건 곧 이거와 같을 테니까. 

나치 전범 재판이 있었다. 악랄하게 유대인을 말살하려 했던 그들이기에 누구나 'A급 전범'이라면 성격 상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원래 나쁜 사람이기에 유대인에게 가혹하게 행동했다'는 논리는 너무도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재판장에 들어선 사람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이었다. 그는 유대인의 생사여탈을 판결하는 최종 실무 책임자였던 것이다. 재판장은 조용했다. 다들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 가졌을 뿐이다. 악랄하고 못된 사람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 기대와는 달리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지 않은가. 거기에 한술 더 떠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한 어떤 악의도 없었다. 단지 위에서 하라는 대로 열심히 도장을 찍고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이다.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지금 그는 전범 재판장에 서있게 된 것이다. 즉, 이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사람이 생각하기를 멈추는 순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을 멈추는 순간, 그건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아무 생각없이 돌을 던졌다. 그런데 그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도 있다.  

왜 삼성에 대해 알아야 할까. 그건 바로 아이히만과 같을 수 있는 우리의 행동을 막기 위해서다. 이제 우린 정치민주화에 이어 경제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분발해야 한다. 그게 우리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었으면 소설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더 술술 읽힐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한국이 나아가야할 길을 찾아보고 서로 토의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해방 후 한국의 기득권자들의 형성 배경과 그들의 욕망이 이루어낸 강남의 형성사를 다루고 있다. 어떻게 하여 땅값이 그렇게 오를 수밖에 없었는지, 그 속에 사람들의 어떤 욕망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부폐한 한국의 자본주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유독 이 책 세 권은 누구에게든 권하고 싶다. 그건 우리의 현재를 알자는 것이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처한 현실에서 열심히 살자는 게 아니라,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으며 생각 좀 하며 살자는 뜻에서 이다. 이런 책을 같이 있으며 같이 토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참 행복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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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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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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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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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대자전 (가죽장정) - 3판
민중서림 편집국 엮음 / 민중서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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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에 나온 자전 중에서는 과히 최고의 명품이라 할 수 있다. 이 한 권만 가지고 있어도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안정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프로게이머 임요한이 스타 대회에 나갈 때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챙기는 것을 보았다. 어떤 마우스나 다 똑같을 터인데, 어떤 키보드나 똑같을 터인데 왜 유독 자기 것만을 고집하는 것일까. 그건 손이 익었기 때문이며 자기 감각이 익었기 때문이다. 자기와 혼연일체된 것으로 해야만 본래의 자기 실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임요한에게 있어서는 자기 키보드와 마우스가 무기인 셈이다.

  한문학도에게 있어서 무기는 여러 경서들과 바로 그걸 꿰뚫을 수 있는 자전이다. 그렇다면 어떤 자전을 고를 것인가? 난 이 자전을 강추 한다.

  이 자전의 장점은 기존에 새로 쓰기 였던 것이 가로 쓰기로 바뀌어 훨씬 보기 편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한자의 자원을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금문이나 갑골문에서 쓰였던 자료들을 참고하여 원래 무슨 의미에서 만들어진 한자인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반절음을 표시하여 본음을 알기 쉽도록 했으며, 중국의 음가까지 병서하여 중국어 학습까지 돕는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바로 한자에 담긴 여러 뜻들과 그 뜻들이 사용된 예들을 들어놔서 경서 공부하는 도움이 많이 된다. 예를 들면 數가 맹자 양혜왕 장에서는 '빽빽할촉'으로 쓰이는데 그러한 예들이 아주 적절하게 설명하게 되어 있다. 또한 그 한자로 구성된 단어들을 실어놓아 문장 학습에 무척 도움이 된다.

  한문을 잘 하고 싶다면 이 자전을 통해 그 꿈을 이뤄보자. 간혹 옥편과 자전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다.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은 옥편은 작은 한자사전을 의미하며, 자전은 그것보다 좀 더 큰 한자사전을 의미하는지 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지식이다.

  그렇다면 자전과 옥편은 무엇인가? 한자는 하나 하나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한자를 찾아 알기 쉽도록 한 책이 바로 자전이라고 한다. 옥편은 중국 사람인 '고야왕'이란 학자가 발행한 자전의 이름이다. 그러나 훗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자전의 의미가 되었다. '워크맨'은 소니가 만든 휴대용 음악기기 이름인데 훗날, 그러한 기능을 가진 상품의 명칭이 되어버리거와 같은 거죠. 그렇기에 때문에 옥편이라는 특수 명칭을 사용하기 보다 자전이라는 일반 명칭을 사용하는 게 옳다.

  정민 선생님이 쓴 '스승과 옥편'이란 수필집이 생각나네요. 이 자전이 완전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보았던 스승의 모습이 그 책에 담겨 있죠. 아무쪼록 이 책에 대한 애정으로 보고 또 보고 뚫어지게 만들어서 한문학의 대가 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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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자서전 - 전2권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지음 / 삼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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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추억하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왜곡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사람이 이미 세상에 없다면 그것만큼 결례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왜 추억하는 일 자체가 왜곡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기억을 통해 재구성하는 걸 추억이라 한다. 그런데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과정 속에 생각이란 필터로 걸러지고 이상화된 관념으로 치장되기 때문에 추억은 사실과 달라진다. 현재 박정희 정권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에게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고통괴로움은 말끔히 사라지고 눈꼽 만큼좋았던 기억만 한껏 부풀려진 추억’. 그렇다면 객관적인보도 자료나 자서전을 통해서 추억하는 일은 괜찮지 않을까? 그런 기록들이 객관적이냐를 먼저 따져 봐야겠지만, 그걸 논외로 친다 해도 읽는 사람의 깊이나 관심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읽고도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추억하지 말라고 주문한다면 그건 아예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나는 燕巖 朴趾源의 방법을 통해 왜곡과 추억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연암이 살았던 조선 후기의 祭文들은 사람 이름만 바꿔 써도 될 정도로 천편일률적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추억=왜곡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만하다. 그런 시대적인 한계 속에서도 연암은

살아 있는 석치라면 함께 모여 곡도 하고, 조문도 하며, 욕도 하고 웃기도 하며<祭鄭石癡文>”

로 시작되는 파격적인제문을 썼다. 벗에 대한 그리움을 그대로 써서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레퀴엠을 읊은 것이다. 팔팔 끓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낼 때, 추억은 사실이 된다. 고로 연암의 방법이란 사람에 대한 감정을 가감 없이 서술하는 방법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 방법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그)을 추억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보련다.

그를 본격적으로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선에 뛰어들었고 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란 책을 읽으며 그에게 관심을 가졌었다. 그 땐 그의 행동 하나 하나가 절망의 극복’, ‘정의는 꼭 승리한다.’는 메시지로 읽혔었다. 그로부터 10년여가 흐른 지금 김대중 자서전을 읽으면서도 그 메시지가 그대로 읽히는 건 우연이거나 오독 탓이 아니다. 여전히 그는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난 그가 극복한 절망의 순간을 문턱이라 표현하련다. 지금부터 그가 넘은 문턱들과 그것을 넘으며 어떻게 변해갔는지 살펴보자.

인생의 위기이자 기회인 문턱




아홉살 인생이란 책에선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종종 느닷없이 행운이나 불행이 찾아오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느닷없이 우리의 삶을 뒤흔들어, 우리를 전혀 다른 존재로 바꾸어놓기도 한다. (143p)”

라고 말한다. 문턱은 어쩌면 내 안에 감춰진 참다운 나를 되살리는 한계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한계 영역에 다다르면 벌벌 떨며 두려워할 수밖에 없지만 그걸 넘어서는 순간, 완전히 다른 내가 되는 것이다.

그에게 첫 번째 문턱은 목포 형무소에 갇혔을 때다. 한국 전쟁 당시 그는 인민군에 의해 처형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미 100여 명이 끌려 나가 처형되었고 그는 80여 명 속에 끼어 있었다. 삶과 죽음이 한 끗 차이인 살벌한 순간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처형 도중 인민군이 철수하는 바람에 살 수 있었다. 그 후 기지를 발휘하여 감옥까지 탈출한다. 그 순간 그는 밤하늘에 뜬 둥근 달을 보며

그 달빛은 세수를 한 번도 못한, 개구리처럼 배만 튀어나온, 수인복을 입고 있는 나를 비추고 있었다. 80p)”

고 감회를 토로한다. 첫 번째 문턱을 넘으며 전쟁의 참혹함, 이념의 허무함, 정치의 무능함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그 문턱을 넘으며 그는 더 이상 혼자만의 안위를 위해 살아선 안 됨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맡겨 세상이 바뀌길 기대하기보다 직접 자신이 정치를 하여 세상을 바꾸기로 맘먹은 것이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내가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하나의 사변과 또 하나의 사건을 겪으면서 이다. 바로 한국 전쟁과 부산 정치 파동이었다. () 지도자가 깨끗하지 못하면 사회가 혼탁하고, 국민을 기만하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것을 느끼고 보았다. 정치가 바르지 못하면 인권은 짓밟히고 생명과 재산도 지켜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사선을 넘으며 가슴에 몇 번이나 새겼다. ( 90~91p)”

이 문턱이야 말로 자신의 삶에 대한 관심을 넘어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자아가 확장된 순간이라 할 만하다.

두 번째 문턱은 필연적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정치인 생활은 그리 녹록치 못했다. 몇 번 낙선했고 아내도 잃었다. 그럼에도 인제 재보궐 선거에서 뽑히고 목포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실력 행사가 있었음에도 당당히 맞서 이기는 등 관록 할 만한 기록을 남긴다. 그런 만큼 그는 유명해졌고 그에 비례하여 政敵에겐 제거할 대상이 되었다. 명예와 비방은 함께 한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動輒得謗 名亦隨之). 그가 선거 유세를 하러 광주로 향하던 중 교통사고를 빙자한 살인사건을 당한 것은 두 번째 문턱의 맛보기에 해당된다. ‘네 목숨은 내 손 안에 있다는 권력의 충고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주눅 들지 않고 일본과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한국의 진실을 폭로한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권력이 아니다. 국경을 넘어 권력은 작동하기 시작한다. ‘김대중 살해 미수 사건이 바로 두 번째 문턱이다.





현장에서 살해하려던 계획이 변경되어 배에 실려 바다에 떠있게 되었고 정체불명의 비행기가 나타나 바다에 던져지지 않았으며 한국의 시골 민가를 거쳐 그의 집 앞에 버려지게 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박하고 숨 막히던 순간이다. 글로만 읽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소위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직접 겪은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그렇다면 그는 초인이라도 된단 말인가? 아니었다. 그도 사람이었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그만큼 삶에 대한 욕구가 컸을 뿐이다. 바다에 빠지기 직전 살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된다고 체념을 하다가 이내 맘속으로 외친다.

아니다.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 상어에게 하반신을 뜯어 먹혀도 상반신만으로라도 살고 싶다.( 313p)”

남루한 삶일지라도 산다는 것 자체가 축복일 수 있다. 그는 그 순간 을 떠올린 것이다. 처절했기에 더욱 진심어린 고백이다. 그가 살게 된 건 기도의 힘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때문이었다. 이 문턱을 통해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맘 속 깊이 느꼈다. 그건 곧 연대감이었다. 또한 국경을 뛰어넘는 정치의 타락상도 목격했다.

사건의 실체가 밝혀졌는데도 정치 결착으로 진실을 은폐하려는 한국과 일본의 저급한 정치인들의 작태에는 아직도 분노한다. ( 325p)”

저급한 정치의 세계, 부패한 정치의 세계를 보며 고급한정치를 꿈꿨을 것이다. 훗날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는 일본 문화 개방을 주도한다. 일부에선 그를 신매국노라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그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 왜곡이 아닐런지. 그는 일본을 무조건 신봉하지 않는다. 일제시대와 정치 결착을 경험하며 일본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뿐이다.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더라도 우리 것으로 재창조하는 독특한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해방 이후 그 많은 이질적 문화들이 물밀듯이 들어왔지만 이내 버릴 것은 버려서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 나는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믿었다. 오히려 일본 문화를 막는 것이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양질의 문화가 들어오지 않으면 폭력, 섹스 등 저질 문화만 몰래 스며들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를 역사의 어느 한 시점의 우열로만 판단하여 교류할 수는 없다. 문화는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끝없는 상호 학습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문화 교류는 서로를 배우는 과정이다. 일본 문화를 막는 것은 우리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114~115p)”





세 번째 문턱은 신념 자체를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광주 항쟁의 주동자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미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기에 사형선고쯤은 아무 것도 아닐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복된다고 익숙해지는 게 아니다. 바늘에 많이 찔려봤다고 다음에 찔릴 때 아프지 않는 건 아니듯이.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살고 싶었다. 나는 제발 사형만은 면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법정에서도 속으로 기도했다. 재판장의 입 모양을 뚫어지게 보았다. 입술이 옆으로 찢어지면 사, 사형이었고, 입술이 앞쪽으로 튀어나오면 무, 무기 징역이었다. 입이 나오면 살고, 찢어지면 죽었다. 재판관이 입을 열었다. ‘김대중, 사형’ ( 424~425p)”

이렇게 죽는다고 생각하니 정말 삶에 정의란 있는지 의심이 들었을 거다. 그는 편지에

막상 이제 죽음을 내다보는 한계 상황 속에서의 자기 실존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믿음 속의 그것인가 하는 것을 매일 같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 428p)”

라고 쓴다. 첫 번째 문턱을 통해 강한 신념을 가졌고 지금껏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왔는데, 그 순간 삶의 이유죽음의 이유가 된 것이니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하지만 그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감형되었고 작지만 큰 대학인 감옥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 그곳에서 좌절 속에 꽃 핀 희망을 찾아낸다. 희망행복은 거저 오지 않는다. 절망불행에 푹 잠겨 본 사람만이 희망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세 번째 문턱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더 이상 누군가 주는 거짓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이 만든 참 희망을 이야기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환경은 불행할 수 있으나, 그런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뿐 아니라 주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쇼생크 감옥은 절망이 스민 음습한 곳이었지만 앤디한 사람으로 희망이 샘솟는 곳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쇼생크탈출>.




그에게 감옥이 작지만 큰 대학이라 불렸던 이유도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그 후 가택연금, 6.10 민주항쟁, 1314대 대선낙선, 은퇴선언, 영국으로의 출국 등 숨 돌릴 틈 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전개된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럴 수 있는 저력이야말로 세 번째 문턱을 넘으며 얻게 된 것이리라. 은퇴선언 당시 가장 힘든 사람은 당연히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여기까지 왔는데 그걸 이루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도 그는 노자의 생하게 했으되 소유하진 않는다(生而不有)’는 말처럼, 자신이 이루어낸 모든 것을 집착하지 않고 내려놓았다. 그러면서도

나보다 더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더 슬퍼할 수 없었다.( 607p)”

고 말하며 은퇴선언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을 다독였다. 그에게 후광이 비치던 순간이다.

마지막 문턱은 정계복귀의 순간이다. 정계복귀, 그건 은퇴선언을 번복하여 자신의 신용을 무너뜨리는 일이기에 쉬운 결정이 아니다. 더욱이 대선에서 다시 낙선하기라도 한다면, 그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잃게 되고 세간에서 떠도는 대통령병 환자로 낙인찍힐 위험까지 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고 위험부담도 크다. 그런데도 그는 2차 망명 때 폭풍의 귀국을 감행했던 것처럼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원래 문턱이란 그런 것이다. 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넘으려 하는 순간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위험부담이 크다는 건 그만큼 넘는 순간의 변화 가능성도 크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의 문턱은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넘어야만 하는 문턱이었다. 넘지 못하면 죽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네 번째 문턱은 순전히자신이 만든 문턱이다. 세 번째 문턱을 넘으며 감옥이란 불행의 공간에서 행복을 발견해내는 실존철학자가 되더니, 영국에서 그 능력을 더욱 갈고 닦아 이젠 자신의 기회를 창조하는 연금술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기회는 늘 있다. 단지 그걸 포착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것뿐이다. 그가 문턱을 넘으려는 이유는 명백하다.

내가 정계 복귀를 결심한 근본적인 이유는 평생 품었던 내 꿈을 실현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민주주의 국가 완성이요, 다른 하나는 민족 통일에 이바지하고자 함이었다. ( 653p)”

이 문턱을 넘는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자신이 지닌 소중한 꿈이 사람들에게 헛꿈으로 치부되어 그만하면 됐노라고 핀잔 아닌 핀잔을 들을 때, 그는 그게 헛꿈이 아니라 진짜 꿈이며 실현가능하다고 외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문턱을 넘으며 자신의 꿈과 희망에 대해서 더 확고해졌다. 그는 대선 유세 기간 동안 국민들에게 자신의 진짜 꿈을 들려주고 보여줬다. 그 결과 199712월에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어떤 이는 김대중 씨의 당선은 IMF 때문에 어부지리로 된 거야라고 말한다. 과연 그가 넘은 문턱들을 안다면, 이런 식의 결과론적으로 짜 맞춘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 있을까. 그에게 마지막 문턱은 그가 지닌 신념이 얼마나 확고한 지 시험 해보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네 번째 문턱은 그의 예리한 감각이 포착한 기회였다.

아홉살 인생중 서두에 인용했던 내용에 이어

우리는 바로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예전의 나느닷없이 바뀌어 버린 나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 혼란에 빠져 버리기 십상이다.”

라고 결론짓는다. 그도 문턱을 넘으며 이런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 과연 혼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신념이 너를 자유케 하리라

권력의 향기에 취하지 않았다.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길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그것을 정의필승이라 명명했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정의필승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나라의 모든 시대에 국민과 세상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 헌신한 사람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저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불의한 승자들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을 하더라도 후세 역사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 부끄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 393p)”

라고 말했다. 후대까지 바라보며 정의는 꼭 이긴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중용의 저자가 백 세 뒤의 성인을 기다려도 의혹됨이 없다고 외치던 강한 자기 확신이 떠오른다. 자신은 한 줌의 재가 될지라도 당대에 정의를 위해서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있었으니 문턱을 넘어야 할 때 좌절하지 않았던 것이고 넘고 나서 혼란스러울 때도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문턱은 고비임과 동시에 신념을 강화하는 계기였다.

정의필승의 확신은 행동하는 양심으로 이어진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처럼 우리 사회는 침묵과 순종을 강요했다. 아무리 그른 일이 있어도 정 맞을까두려워 표정과 의식을 지워야 했다. 그런데 그는 정 맞아 아플지라도 언젠가 정의는 이기며 세상은 그만큼 좋아질 것이기에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6.15 9주년 기념식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593p)”

라는 연설을 했다. 그 연설은 촛불 집회 이후 정 맞을까벌벌 떨고 있는 우리의 의식을 깨우는 죽비와도 같았다. ‘정의필승행동하는 양심은 그렇게 한 짝이 되어 밀고 끌며 그를 혼란에 빠지지 않게 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그에 대한 추억이며 추모이다. 그의 삶을 문턱이란 틀로 바라보고 나의 생각을 더해 보았다. 이 추억담이 그에 대한 왜곡이 아니라 그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를 보여준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독후감이 여기서 끝나선 안 된다. 애초에 그의 삶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듯 우리에게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를 추억하다가 나를 만나다

누군가를 추억하는 이유는, 그립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걸었던 길을 곱씹으며,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풀고 인생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다. 그의 자취를 더듬으며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그 속엔 나의 모습이 있었다. 그를 만나러 떠난 여행에서 나의 생각과 가치를 찾게 된 셈이다. 이래서 누군가를 추억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서로 남남인듯 자신의 길을 걸어갔지만, 전혀 엇나갔던 포물선이 어느 순간 겹치듯 우리도 만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넘은 문턱들은 그대로 내 앞에 있는 문턱들이었다. 그를 보며 용기를 내어 나의 문턱을 넘으려 한다. 그의 말마따나 꿈을 실현해 보기 위해서. 우리의 이러한 다짐들이 모여 사람 살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남과 북이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정의필승행동하는 양심이란 가르침에 따라 당당히 자신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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