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역사책을 찾고 있었다. 어떤 연표나 인물 위주의 역사책이 아닌, 사건 위주로 쉽게 쓰여진 그런 역사책을 말이다. 이이화 선생님의 '한국사 이야기'도 맘먹고 읽으려 하다가 그만 두었으며,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도 샀지만 7차 교과서로 컬러화 되었음에도 도무지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대충 훑어보기만 했다.
난 왜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걸까? 그건 아무래도 내가 한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다 보니 과거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일거다. 하지만 그런 표면적인 이유보다 더욱 큰 이유는 내 스스로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지식들만 가지고 있을 뿐, 하나의 줄기로 꿰지 못하기에 더욱 공부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때 단순한 이름 끼워 넣기 공부로 역사에 대해 질려버린 까닭인지, 도무지 쉽게 쓰여진 책이라 해도 끝까지 읽은 적은 별로 없다. 거기다가 ‘나이도 있으니, 좀 전문적인 책들을 봐야지, 어찌 그림이 가득한 책을 보랴...’하는 허례허식까지 있다 보니 도무지 역사와 친해질 수 없었던 거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신문지상의 광고로 알게 되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이라는 그런 일반적인 문구로 설명된 책이어서 ‘한번 정도 볼 필요는 있겠다’라고 생각되어져 펼쳐 보게 되었다. 처음에 그저 펼쳐 보았을 땐, ‘뭐 다른 책들이랑 별반 다르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접게 되었다. 그렇게 스쳐지나갈 뻔한 인연이 다시 닿게 된 것은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서이다. 교과서라는 원론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음에도 왠지 편하게 볼 수 있었던 책이어서, ‘접때 봤던 그 책도 혹시.....’라는 맘이 생겼고, 그래서 펼쳐들게 되었다.
書緣(책과의 인연)이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와 인연이 없을 듯 하다가 다시 엮어지게 되는 과정이 말이다. 사람의 인연과 별반 다르지 않던 놀라운 인연의 끈으로 이 책을 집어 들고 읽어보니....이런 저런 그런.... 읽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린 학생들을 위한 책이라지만, 나에게도 적격인 책이었다. 편안한 이야기를 해주듯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한국사에 대한 가치를 바로 잡을 수 있었으며, 한국사의 위상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난 당연히 조선 시대까지만 읽으려 했었다. 한문학에서 다루는 부분이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왠지 4권까지만 읽고 그만두면 찝찝한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했으며, 우리의 현대사를 다시 한번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밌고 흥미진진한 역사책은 처음이지 않나 싶다.
더욱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상식도 많이 알았으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훈민정음 창제의 배경. 삼별초 항쟁, 명성황후 시해 등)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또한 역사란 무언가를 암기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 안에 나의 생각을 담아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나의 뿌리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들이 나의 부담을 한결 덜어주었다. 모처럼 즐겁고 우리나라 역사 기행을 한 기분이었다. 맘껏 읽으며 우리 역사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덧 현대사의 암울한 그림자를 지나 현재에 이르렀다. 맘껏 행복에 웃음 짓게 만들기도 하고, 비극적인 현대사에 눈물짓기도 했다. 역사책을 읽으며 이렇게 맘껏 몰입해보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