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겉멋 들지 않고 허황되지 않으며 허영심 없는 담백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이유는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남의 이목에만 신경 쓰느라 내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는 무뎌지고 사회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느라 내 욕망은 억압한다. 온갖 것들로 치장하고 있지만 난 나라고 할 수 없는 빈껍데기일 뿐이다. 그런 삶을 지속한들 남는 것은 난 왜 이렇게 살고 있지?’하는 신세 한탄뿐이며 현실에 대한 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일 뿐이다. 거적대기에 불과한 나는 바람도 아닌 것들에 쉽게 흔들리며 더욱 나 자신을 위장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게 된다. 그럴수록 삶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표정은 없어지고 활기는 사라질 수밖에. 그렇기에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키우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나 자신은 이대로일 때가 가장 아름답고 멋지다. 무언가를 이루어냈기에 대단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모습이 대단한 것이다.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의 시선, 사회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걸 기반으로 주류적 가치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 ‘자벌적 가난이라느니, ‘소유물에 소유 당하지 않는 삶이라느니 하는 것들은 바로 자신의 삶을 고민했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게 청승맞아 보인다거나 괴이한 행동처럼 보이지 않는 까닭은 자신이 고민한 것이고 그 상황을 즐기며 살기 때문이리라.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할 때조차 몸이 무겁고 얼굴엔 무표정인데 반해, 이 사람들은 몸도 가볍고 얼굴엔 표정이 살아있다. 천진난만해 보이기까지 한다고 하면 오버이려나. 그런 삶이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유가 바로 생활에서 드러나는 그와 같은 차이에 있다.


지리산엔 그런 사람들이 산다. 맹목적으로 살던 관성을 버리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고자 하는 사람들. 낙장불입 시인과 버들치 시인, 고알피엠 여사, 최도사 등의 사람들은 그 곳에 산다. 일상을 만끽하며 의기투합하여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들이 왜 거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묻지 말자. 단지 지금의 모습을 보고 우리 또한 공감하며 내 삶에 질문을 던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들에겐 자기의 소유, 자기 공간이란 개념조차 없어 보인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름엔 찾아오는 숙박객을 위해 아예 집을 비워두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이해가 되는가? 누군 집 사려 아등바등 하고, 차 배기량 늘리려 밤샘 근무까지 자처한다. 소유하여 자신의 재산을 불려야만 자신의 가치가 상승한다고 믿는 것만 같다. 그런 사람들이 어찌 집을 빌려주며 자신의 소유물을 공유할 수 있겠는가. 말짱 헛소리일 뿐이다. 소유한 것이 많으니 신경 써야 할 게 많고 그 때문에 걱정도 많다. 어느 순간 소유물에 의해 소유 당한 영혼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지리산에 사는 그들은 그와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대자연이 누구나 품어주듯 그들도 자연을 닮은 듯하다.


내가 생각하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봤다. 그들이 특이하기에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 또한 몸으로 부딪치며 지금까지 왔을 뿐이다. 나도 과연 그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난 어떤 삶의 모습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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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6-0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보고나니 님의 대문아래 글귀를 다시 읽게 되네요.
생각한대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말이요.
생각하대로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leeza 2011-06-06 20:30   좋아요 0 | URL
자기가 진정 생각하는 삶이 무언지 아는 것만으로도 괜찮을 거 같아요.
남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살게 되는 세상이다보니, 남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