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면 선화공주와 무왕의 사랑이 참 절절하다.
하지만 나로선 두 가지 의혹이 든다.
우선 당시 백제와 신라의 관계를 생각하면 국혼이 성사되기 힘들어 보이고,
삼국시대에 왕족간의 국혼이 성사된 다른 사례가 없다는 것.
또 하나. 삼국유사에는 '서동요' 설화가 수록되어 있지만, 삼국사기에는 관련된 언급이 전무하다.
이러한 의혹을 바탕으로 내 마음대로 드라마를 각색해본다면?
핵심 : 선화공주는 이중간첩이다!
진평왕에게는 딸만 있을 뿐 아들이 없었다.
맏딸 덕만공주를 후계로 정했으나, 사상 최초의 여왕이라는 것이 불안했다.
귀족의 반발도 걱정되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강력한 적국 백제.
이에 덕만 못지 않게 영리한 딸 선화공주는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한다.
스스로 서동요를 지어 퍼뜨리고, 이를 구실로 궁중에서 나와 위덕왕의 서자 장을 유혹한다.
선화의 미모에 혹한 장은 아내의 소원대로 집안의 재물을 신라로 기꺼이 빼돌린다.
(설화에 따르면 장은 선화의 조언에 따라 금덩이를 수레채 신라로 보낸다)
선화의 야심은 재물 몇 푼에 있지 않았다.
선화는 왕자비로서 궁궐을 드나들며 위덕왕과 그의 아우 사이를 이간질하였고,
그 간교에 넘어가 아좌태자가 살해되고 위덕왕까지 모살되어 혜왕이 집권한다.(588년)
선화는 혜왕(599년)과 그 뒤를 이은 법왕까지 연달아 암살하고,
남편을 왕으로 만들어 백제왕권을 휘어잡으려 한다.(600년)
하지만 귀족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집권기반이 약한 무왕은
선화 대신 다른 여인을 왕비로 삼고, 선화는 후궁으로 밀려나게 된다.
게다가 또 하나의 변수가 있었으니, 선화 역시 무왕을 사랑하게 된 것.
이제 선화는 이중 간첩이 된다.
진평왕이 선화를 믿고 백제 침공 계획을 세울 때마다 이를 누설하여 신라를 돕고,
백제가 신라를 칠 때마다 정보를 알려 신라의 대패를 막는다.
동생의 슬픈 사랑을 아는 선덕여왕은 자신의 집권(632년) 이후 백제를 선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왕은 오랜 세월 선화의 이중간첩 행적을 의심하게 되고 늙은 아내에 대한 애정도 식어
처형의 집권을 계기로 선화에게 완전히 마음을 돌리게 된다.
그간 귀족의 반대로 선화의 아들을 태자로 책봉하지 못해
장장 32년간이나 공석으로 비워놨던 태자 자리에 정비의 원자인 의자를 책봉한 것(632년).
이제 선화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선화의 아들 임간은 복수를 결심한다.
백제의 침공 계획을 외숙모 선덕여왕에게 제공하고 선덕여왕은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옥문지의 때아닌 개구리 울음 덕분에 예지할 수 있었다는 거짓말을 퍼뜨린다. (636년)
하지만 선화의 만류로 인하여 임간은 와신상담 본격적인 복수를 미룬다.
641년 무왕이 죽고 의자왕이 집권을 한다.
의자왕은 해동증자로 불릴 정도로 계모인 선화공주에게도 효성이 지극했고,
배다른 형제에게도 좌평이라는 높은 관직을 주어 중용한다.
하지만 임간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이중간첩을 자처하여
두 나라 간의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기밀을 빼돌려 양국의 힘의 균형을 유지한다.
하지만 647년 선덕여왕이 사망하고 왕위에 오른 선화의 사촌 진덕여왕은 임간을 신임하지 않았고,
이에 임간은 자중하며 다시 기회를 노린다.
654년 진덕여왕이 죽고 태종무열왕이 집권하자 김유신이 다시 임간에게 접근하고
임간은 미뤄왔던 복수의 칼날을 뽑는다.
임간의 본격적인 농간에 놀아난 의자왕은 15년간의 현정과 달리
신라 출신의 후궁을 들이는 등 여색을 탐하게 되고, 성충이나 흥수 같은 충신을 멀리하게 된다.
결국 5년에 걸친 임간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660년 백제는 끝내 신라에게 멸망하게 된다.
드디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는 60년에 걸친 이중간첩의 역사를 은폐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결과 서동요 설화만 남기고 선화공주도 그의 아들도 잊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