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 앰비션 - 이기적 야망의 종말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이정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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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독서 동기

 

선한 의도와 선한 동기로 선한 목적을 행하며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도 그려 보게 하는 제목이었다. 이런 동기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나름 적지 않단 걸 알기에 알아가 보고 싶었다.

 

+ 저작 빛깔

 

: 저자에 대하여

저자는 현재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사상가로 대표되고 있다.

유럽 전역을 뒤흔든 대안 언론사의 창립멤버라고 하며 유럽 언론인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다고 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주제 등 사회 현안에 실증적 사료 연구를 심층보도하는 그의 기사들은 유럽 유수 언론들에 게재되고 있다. 명연설로 다보스 포럼 회의장을 침묵으로 몰아넣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로 사상가로 더욱 크게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 전작에 대하여

전작인 [휴먼 카인드]가 워낙에 유명세였으나 사실 그 책의 내용들은 자못 편향된 시각이며 기울어진 논점이기도 했다. 세계대전 중의 크리스마스 휴전이나 유럽 일부 교도소의 운영이 더 재소자를 교도교화하는 데 유익했던 일화 등으로, 인간들은 선한 의지와 선한 배려로 더 나은 사람을 만들어 왔고 더 나은 사회를 구성해 왔다는, 서로를 위한 선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논리가 너무도 편중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로 향하는 유대인들과 게토의 유대인들을 구제한 사람의 일화가 있다면 홀로코스트를 구상하고 시행하고 운영해온 것도 분명 인간들이며 백인참 천인참의 악명 높은 난징대학살이나 관동 대지진과 조선인 학살도 그렇고 731부대의 실험도 인간이 마냥 선하다고 하기엔 그렇다. 유럽 미술사에도 작품이 남은 프랑스 구조선 내에서의 굶주린 이들이 일부 승객을 잡아먹은 식인 사건도 있었고, 왜란 직후 흉년이었던 선조 대에 식인 사건이 즐비했던 것도 그렇다. 중국에서는 진나라 장수 백기라는 사람이 수십만 포로를 생매장한 사건도 있고 중국사에서 이런 급 사건은 이때가 마지막도 아니었다. 분서갱유는 어찌할 것인가?

 

인간에게 선한 본성이 있다지만 그렇다면 그 본성에 반대되는 삶을 살게 하는 게 세상이거나, 대부분에게 그 본성이 사라지고 일부에게만 남아 있도록 만드는 게 이 세상이란 결론에 이르도록 할 뿐이다. 세상은 결국 사회이고 사회는 사람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사람이 문제라는 결론에 이른다. 선한 자가 다수라기보다는 다수의 악한 이들 사이에 다수의 방관자와 일부 선한 사람의 분포가 아닌가 싶다.

 

저자가 전작에서 인간은 선한 본성을 기르기 위해 진화했다며 든 예 하나도, 누군가를 죽이면 부족원 모두가 그 살인자 한명을 다수가 창으로 여러 차례 한꺼번에 찔러 죽인 예다. 이게 저자가 인간이 선하게 진화해온 계기라며 든 예다. 살인자를 다수가 한꺼번에 찔러 죽이면 그 또한 선으로 포장되는 게 이 사회다.

 

: 저서 내용

어쨌건 본서는 인간의 선한 본성이 주제가 아니라 더 나아가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간의 선한 의도, 선한 목적, 선한 의지를 선한 야망이란 표현으로 정의했고 이를 실천하는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시작은 한 사람이되 자신에게만 갇히지 말고 다수를 구성하라며 저자가 컬트라 칭하는 집단 구성의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또 선한 의도를 전달하려고만 하지 말고 사회가 수긍할 바를 찾아야 한다며 노예제 폐지를 외치면서 백인 선원들의 사망 사례가 많은 것으로 공감을 얻어내 노예선의 운항을 중단시켜 더는 노예를 양산하지 않은 사례를 예로 들기도 한다. 그리고 수치에만 주목하지 말라면서도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는가를 검증하면서 진행하라는 조언도 한다. 의도만이 아니라 타자의 편향을 이용해서라도 실제적인 성과를 내라고 말하는 것이다.

 

+ 감상

 

이 모두를 시작하는 첫걸음이자 근본을 선한 야망이라고 칭하는데, 저자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이타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방안을 전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만의 성취를 위해 살아가는 것을 의미 없는 것이라 말하고 있으며 이타주의를 벗어난 삶을 실체가 없는 걸 추구하는 것마냥 서두를 떼고 있다. 이런 논리가 듣기가 좋아 다수가 칭송하고 두둔하기는 하겠으나 저자가 말하는 성과를 가져오는 과거의 시위와 그저 모여 구호를 외치다가 흩어지는 플래시몹 형태에 현대 한국의 시위가 다른 것처럼 그런 다른 반응만이 있을 뿐이지 않은가 싶다.

 

이 시대 상황이 저자의 이상과 같은 방향으로 가기보다는 다수가 우려하는 통제사회로의 방향성이 더 커보이긴 한다. 그래도 들어봄직한 이상을 들어볼 기회가 아닌가 싶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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