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 지도를 펼치면 성공의 길이 열린다
댄 스미스 지음, 김이재 옮김 / 청아출판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옮긴이가 말하는 지도력(地圖力)이 왜 필요한가를 충분히 실감하게 되는 저작이다. 여러 주제와 사안들을 중점으로 지도와 도표를 제시하고 있는 본서를 통해 많은 사고를 해보게 하는 필요와 유용함이 남다른 저작이라는 감상이 든다. 

 

[우리는 누구인가] 장에서 현재의 기대수명을 지도로 보며 다시 도시화에 대한 지도와 연계해 보자니 팬데믹으로 사회적 불안정성이 높아진 이때, 다시 말해 감염과 부작용, 사망률이 상승하는 이때 인구가 도시로만 밀집해 있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되었다. 실제 인구밀도만큼이나 감염재생산지수도 수도권 지역과 거대 도시들에서 밀도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확진자 숫자 만큼이나 사망자 숫자도 그렇게 높다고 알고 있다.

 

도시화라는 것이 편리에 의해 여러 목적에 의해 추구되어 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팬데믹 이후 많은 이들이 재택근무 비중이 높아지며 딱히 감염 위험도 높은 도시 거주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각성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완전 재택근무 비중이 높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미국 등 서구 국가들에서는 탈도시화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재택근무로 출퇴근의 편리를 위해 굳이 도시에 거주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이유인데 사실 도시 거주는 감염 가능성도 높여줄 뿐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기대 수명이 높아진데 대한 지도는 이 저작의 대다수 자료가 2017년까지나 2019년까지의 정보로 한정되어 있어 그렇다고 생각한다.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 2022년 현재 내지는 이 팬데믹이 끝난 이후의 자료로 다음 개정판이 출간된다면 세계 각국의 기대 수명은 아마도 한층 감소했을 것이다. 빌 게이츠가 계획한대로 다음 팬데믹이 등장하는 이후에는 더더욱 가열차게 기대수명은 감소할 것이다.

 

본서의 도표로는 '2020년 전 세계 도시 인구는 43억 7,900만 명'이다. 지금까지의 추세로는 도시화는 편리와 목적이라는 필요에 의해 거듭거듭 갱신되어 왔다. '1950년의 전 세계 도시 인구는 7억 5,100만 명'이었다고 하는데 인구 증가률을 감안하더라도 2020년까지 상당한 규모로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재택근무나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이직의 자유가 보장되는 프리랜서 업무가 일반화되면 더이상 취업자들에게 감염 가능성이 더 높은 도시생활이 불필요해질 것이다. 그런 위험을 굳이 떠안을 필요도 없고 말이다. 향후에는 탈도시화가 상당한 규모로 일반화될 것이 아닌가 싶다. 탈도시화가 이뤄진다면 대도시들의 부동산가는 당연 하향할 것이다.

 

[부와 빈곤]의 장에서는 부의 분배를 묻는 각국의 Gini계수나 각국의 인간개발지수(HDI)를 각국 국민총소득(GNI) 수준과 비교해 볼 기회도 나쁘지 않았다. 초국적 기업들(월마트 수익:5천억 달러, 보잉의 수잉:930억 달러, 메타의 수익:410억 달러, 맥도날드의 수익:230억 달러)의 수익과 각국의 GNI를 비교해 주는 지도나 JP모건 체이스의 연간 수익(1,314억 달러)과 비교한 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각국 부패지수 이후 지하경제규모와 파나마 및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의 조세 회피 데이터가 유출된 경로를 밝히고 그 데이터에 근거한 각국의 조세회피 실체와 그로 인한 각국의 대응들을 지도로 보는 것도 상당히 유익한 정보였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보는 급증하는 계층 격차를 도표와 그래프 그것도 국가간 양상만을 비교한 정보로 "아! 이렇구나."에서 그치게 만드는 효과가 더 크지 않나 싶다. 물론 [소수의 부유층] 장에서 '2,153명의 억만장자의 총자산이 8조 7천억 달러'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이것도 2019년의 자료일 뿐이다. 조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연설을 인용한 2021년 4월 [포브스]지의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코로나19로 미국인 2000만명이 직업을 잃었을 때 개인자산 10억달러가 넘는 미국 억만장자 고작 650명의 전체 자산은 1조 달러 늘어났다고 한다. 그들의 총자산은 4조 달러가 넘는다고 의회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 중에 발언했다. 실제 데이터로도 이들 650명의 자산은 2020년 1월1일 주식시장 개장 당시 가치는 3조4000억 달러였는데 2021년 4월 28일 주식 시장이 마감할 때는 전체 자산 가치가 4조 6000억 달러였다고 한다.] 2022년 현재 미국의 650명의 총자산 규모가 얼마일지는 감도 오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팬데믹에 배팅해 백신개발에 투자했으며 그로 인한 수익은 쉽게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와 각국 수반, 그리고 각국 정재계인사들이 팬데믹이 오기 불과 2달 전에 팬데믹 상황을 시뮬레이션했다는 것과 빌&멀린다 재단이 중국의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도 후원하고 있었음은 이미 [플랜데믹]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그 저작에서도 밝히고 있는 사실이다. 이것이 음모론이었다면 반론이 나왔을 것이고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슈가 되는 영화이자 저작임에도 누구 하나 오류를 밝히지 못했다. 

 

세계의 부패와 부의 축적은 어떤 식으로든 격차를 확장하고 일부에서는 죽음을 불러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정보에 민감하고 민활하게 대응해야 한다. 본서에서는 [권리와 존중]의 장에서 범죄자, 아동, 여성, 성소수자, 소수자의 인권 등을 다루고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각국의 정보를 거시적으로 돌아보는 정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좀더 상세한 정보는 각자가 더 확장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정보들이 보다 나아지는 세계로 가기위해 변화되어야 할 부분들을 알려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살아남아야 세상도 바뀐다는 생각도 들었다. 몇 십억 명의 대대적인 인구 감소가 이뤄진 직후라면 그때 부패니 빈곤과 부니 차별이니 하는 문제들이 더이상 무슨 논란꺼리가 되겠나 싶기도 했다. 어느 정도의 변동사항이 있다하더라도 지속되는 바가 있어야 변화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종교들이 종말이라거나 개벽이라거나 하면서 이 학살의 시기를 자기들의 종교교리에 따른 해석으로 호도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 종교의 창시자들도 바라지 않는 바일 것이다. 특정 세력이 의도를 가지고 인구감소를 추진하는 것을 그저 시대의 흐름으로 종교적인 특정시기가 다가온 것만으로 치부하게 대중을 선동한다는 건 대응의 방법을 차단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말이다.

 

[전쟁과 평화] 장은 21세기의 전쟁을 지도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2018년까지의 기록이지만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등에서의 전쟁들이 다시 급증하는 추세임은 명백하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인 위상으로 볼 때 이 지역의 문제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주는 사안으로 확대되는 상황은 언제와도 놀랍지 않은 상황이다. 본서에서 도표와 사진으로 보여주는 각국의 군비증강 사례나 전쟁 사망자 수, 난민 수 등도 주목하게 되는 바다. 게다가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핵을 사용할 시기가 언제일까도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원유, 원자재 등으로 각국의 공급망 문제를 불러일으켜 생산과 무역에 차질을 불러와 경제에 총체적인 문제를 일으키는데다 두 곡창지대의 전쟁으로 식량문제 마저 불러와 달리 말할 것도 없는 대재난의 시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화가 30년을 이어온 지금, 전쟁이 결코 전쟁지역만의 참상에서 끝나는 사태가 아니게 된 것이다. 왜 하필 대중들이 대감염병과 그에 대한 백신으로 야기되는 문제들에 주목할 때 즈음 전쟁이 터졌을까? 그리고 왜 서구 사회는 이 전쟁을 지속하려 열의를 보일까? 아마도 이 이후 기다리는 것은 그레이트 리셋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응안은 무엇일까? 인류가 보다 아프지 않고 지속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와 변화에 대한 정보들을 흘려듣지 못하겠는데 그런 때 출간된 이 책도 나름의 역할을 해 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지금을 바로 아는 기회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외의 내용이라면 [인류의 건강] 장에 있는 팬데믹, 영양실조, 비만, 흡연,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정신건강, 물과 위생, 병에 걸린 사람들의 내용들이 있는데 그 중 영양실조와 비만에 대한 데이터가 인상적이었다. 영양실조와 비만은 영양이라는 문제에 앞서 분명한 분배의 문제가 선행한다고 생각한다. 장 지글러의 저작들을 보면 고기를 위해 사육되는 소와 돼지들에게 초대량의 곡물이 투입되고 있고 버려지는 음식쓰레기의 양이 측량키도 버거울 지경이지만 지구의 한 켠에서는 굶주리고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본서에서는 지구의 인구가 날로 증가 추세인데도 불구하고 2005년 15% 였던 영양부족 상태인 사람들의 비율이 2015년부터 11%로 소폭 하락해서 2018년까지 줄곧 11%인 상황이다. 이것은 엄연한 분배의 문제이다. 부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치중하여 축적되는 상황하에 부가 편중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날로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그 나라 그 민족 그 사람들이 국가 운영을 제대로 못하고 경제 운영을 못해 그 나라 사람들이 그런 것에 무슨 공감과 연민이 필요할 것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가 치중되는 나라에서 태어난 이들과 굶주리는 그 나라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차이라면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 어떠한 환경에서 자라나게 되었느냐는 차이가 유일한 것이 아닐까? 단지 이러한 운명적인 하나만으로 누군가는 영양과다가 되고 누군가는 영양결핍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부조리는 타파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국가와 세계의 운영기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부라는 것이 선순환되는 기조로 말이다. 고작 몇 퍼센트의 사람들에게 거의 대부분의 부가 치중되는 구조라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마지막 장인 [지구의 건강] 장이 있는데 생물의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는 것을 돌아보고 인류의 수자원 문제를 짚어본데는 의의가 있었다. 하지만 에너지 기후변화, 녹색지구 만들기에 대한 논조에 다소의 이견이 있다. 지금의 환경문제, 기후변화문제는 노선이 정해져버렸으며 그것이 과학계에서도 주류가 되어버렸지만 한 편으로는 기후변화는 지구적 차원의 주기를 두고 일어나는 변화이지 인간의 탄소배출로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는 과학계의 연구 결과들도 있다. 처음에는 이 둘이 첨예한 대립을 했었지만 전 지구적인 대응책 마련이 세계를 블럭화하고 층차를 두고 각국의 개발을 제재하기 쉬운 현재의 체제로 확립되고 말았다.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에게 달려있고 스스로 하기 나름이라는 현대 과학과 철학의 주류적 관점에 익숙해 있어 기후변화도 인간이 바꿀 수 있다는 전제가 더 받아들이기 쉽고 마음도 편할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역사와 변화를 거시적으로 연구하는 과학분야들에서는 지구의 기후는 다른 주기로 접어들어서이지 인간이 영향을 주어서도 아니고 인간이 영향을 줄 수 있지도 않다고 말하고 있다. 본서의 내용처럼 1950년대 부터 인간의 탄소배출이 거세지고 지구의 변화를 인간이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분명한 건 그러한 주기는 지구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반복되어오는 여러 주기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한 주기설을 무시하고 기후문제를 가장 뜨거운 이슈로 자리매김한 것은 탄소배출권이라는 주제로 개발항로인 국가들을 제한하기 위해서라는 견해가 무엇보다 타당하지 않나 싶다. 이에 대해 이견이 있는 학자들이라면 각자의 연구를 공정하게 발표하고 경쟁하면 될텐데 다수의 경제계는 탄소배출이 기후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연구에 압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기업의 생산과 연구개발에 악영향을 주는 이론인데도 말이다. 이는 거대한 계획의 일부로 기후변화 문제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없다면 시도되지 않을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들의 항로는 그레이트 리셋을 향하고 있다. 기존의 체제와 체계들을 모조리 무無로 되돌려버리고서야 맞이할 수 있는 시대를 향한 걸음걸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사람들은 냄비 안의 가재가 산채로 조용히 익어가듯 별다른 문제제기도 없이 그렇게 그레이트 리셋 이후, 뇌 임플란트를 이식해서 뇌를 기계와 연동하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중앙컴퓨터(AI가 탑재된 양자컴퓨터)에 제어 당하며 살아가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제기들은 마치 음모론의 우스운 털 하나처럼 우스며 지나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아귀 하나하나가 이러한 결론을 가르키고 있다. 인간이 가축이 되는 시대를 말이다. 

 

[지금 세계]라는 본서는 결코 음모론과는 1도 관계가 없는 저작이다. 그럼에도 어느 관점으로도 정보는 해석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기에 좋을 만한 이런 리뷰를 써보았다. 이 리뷰에서 언급한 정보들은 본서가 보여주는 숱한 정보들에 일부의 일부도 안되는 것들이다. 이 시대를 말하는 정보들을 둘러보고 다시 그 정보 위에 새로이 접수되는 정보들을 쌓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으로 진실이 덮히고 있는 가당치도 않는 일들이 많았다. 미국 정부에서는 조지오웰의 [1984]에서와 같은 '진실부'라는 부서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시대를 만만히 보다가는 시대에 당하고 말 것이다. 시대를 바로 보아야 하리라 생각한다. [지금 세계]를 바로 본다해서 반드시 미래를 예비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을 알아야, 지금 이 순간을 바로 딛고 서야, 이 순간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시대를 논하는 저작들에는 관심이 절실히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지금 이 시대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라면 몇 번이고 거듭 읽어봐도 좋을 책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