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작지만 강력한 이야기
필립 볼 지음, 고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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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정립된 원소 주기율표상의 원소는 118개 입니다. 하지만 언제 또 새로운 원소가 발견되고 창조될지 알 수 없다는 걸 본서를 읽으며 새삼 되새기게 됐습니다. AI의 발전과 양자 컴퓨팅의 계발로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가까운 미래가 아니라 다소 시기가 걸려야 특이점이 올거라고 하지만 통합적으로 볼 때 어느 한 분야의 기술적 혁신만으로도 변화는 빠르고 크게 앞당겨지리라 예견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자컴퓨팅과 AI가 만났을 때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원소들을 구조화하고 연구하는 분야라고 하네요. 이 시점이 오면 새로운 결합구조를 이룬 발명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원소의 발견이나 창조도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기에 원소 발견의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돌아보는 본서의 출간은 참으로 시기 적절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본서는 고대그리스철학의 제일질료를 찾던 시기부터 원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본서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제일질료는 고대그리스철학에서는 '아르케'라고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각 철학자의 시기마다 물, 공기, 불, 흙의 단계를 거치며 4원소 중에 물질의 제일질료가 무엇인지 나름의 답을 제시하려 해왔더군요. 그러다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더이상 쪼개지지 않는 근본입자가 있으리라며 그를 '아트모스'라 칭하며 고대철학자들은 세계가 이루어진 근본원리랄까 근본질료랄까를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이후 atom으로 남아 근대에 이르러 원자론을 낳게 되었습니다. 

 

고대 이전부터 이후까지 인류는 흙, 나무, 금속 등을 다루며 물질을 이용하고 변화시켜 활용해왔습니다. 그러다 중세부터 서양에서는 연금술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금속을 다루는데서 더 세밀하게 연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양의 연금술은 동양의 그것과는 다르게 완벽한 금속이라는 황금을 얻기 위한 기법이었다는 것이 과학자들과 과학관련 기고자들의 상식인 모양입니다만, 연금술이란 분야나 분석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서양의 연금술도 동양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존재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마법 체계를 다루는 저작들에서 '현자의 돌'이라고 언급되는 것은 비단 완벽한 금속을 얻는 목적만이 아니라 존재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었음을 고대 저작들은 증거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연금술에서의 '원소 변환'은 유대 마법체계나 카발라 전승에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카드몬'을 회복하는 것을 상징하기도 하고 동양 특히나 고대 신라의 신화서이자 역사서인 [부도지]에 따르면 '복본復本'이라하여 근본을 다시 회복하는 것과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연금술의 결과물인 '엘릭시르' '현자의 돌'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 본연의 능력을 회복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서에서 이야기하는 원소 변환의 이야기는 완벽한 금속을 얻기 위한 연금술의 전승만을 담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쨋건 다시 고대 그리스철학으로 돌아가자면 고대철학자들은 4원소설에서 제5원소인 에테르를 찾고자 시도했고 그 에테르에 대한 믿음은 17세기에 이르기 까지 과학자들의 신념 속에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물질의 힘을 전달하는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매질로서 에테를를 가정했다고 하는데 어느 시점 에테르라는 신화가 사라졌다는 것이 저자 필립 볼씨의 말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고대의 에테르와 같은 개념이 재등장했고 '디바인 매트릭스'라는 저서에서 그렉 브레이든씨는 이 대상의 이름은 현재 명명되지 않았기에 자기 나름대로 디바인 매트릭스라고 가칭하여 부르고 있기도 합니다. 현대라고 에테르의 개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약간 짚어보고 싶은 것은 4원소설이나 5원소설이 과연 고대그리스철학이 기원인가 하는 것입니다. 고대인도철학의 전승에서는 이미 지(흙), 수(물), 화(불), 풍(바람), 공(비어있음 또는 공간)의 5대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불교나 요가의 전승에서는 이것을 자연히 수행 체계로 체험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 고대 신라의 전승인 부도지를 보아도 4대 내지는 5대의 체계가 보입니다. 신화서라고 간과한다거나 일본역사학계가 주장하듯 위서로 몰아간다면 할 말 없을 수도 있지만 찾아보면 중국도 한족의 전승이 아닌 그 외 여러 민족들의 전승을 조사해 보면 오행만이 아닌 그 이전부터 통용되어왔던 4대나 5대의 전승이 남아있을 겁니다. 황제헌원이 5대에 대응한 오행의 개념을 내놓아 정통성을 주장하고 이후 한족이 중국의 여러 민족들을 복속시킨달까 통합시키며 황제헌원을 기원으로 삼는 한족 중심의 오행개념이 근본 축이 되어 과거의 4대 또는 5대의 전승 체계가 자연스레 묻히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한족 중심의 역사개념이 아니라 한족이 주변 아류 민족으로 치부하던 유목민족들의 역사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 정신문화를 다시 되찾는 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원소 변환을 목적으로 하던 연금술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연금술의 발전은 자연히 화학의 발전을 가져왔고 화학자들의 시대는 자연히 이전보다 원소 발견의 개척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플로지스톤이라는 연금술의 개념이 화학의 시대를 가로지르며 남아있었는데 '소거된 공기'라고 믿어지던 플로지스톤은 고대그리스철학의 에테르처럼 사람들의 개념과 믿음으로 존재하던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물론 에테르가 현대에 와서 되살아난 것과는 다르게 물질이 연소되며 공간을 가득 채우면 불이 꺼지게 된다고 믿던 그 공간을 가득채워야 하는 존재 플로지스톤은 처지가 다른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로지스톤이 공간을 가득채우면서 연소되는 것이 아니라 산소가 반응하면서 연소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중세 이후 화학자들은 새로운 원소를 찾아내기 시작하며 그 개척의 역사 속에서 결국 다양한 기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플로지스톤을 찾아헤매고 그 영향력을 연구하던 결과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다 근현대에 들어서며 기존의 원소만이 아니라 새로운 원소들을 창조해내기 시작합니다. 과학자들이 그토록 미신적인 대상으로 여기던 '원소 변환'이라는 연금술의 연대기가 다시 이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직도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게르마늄이 어느 정도 인체에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게르마늄은 물론 창조된 원소는 아니고 자연계에 있는 원소 중 하나이지만 원소들이 생명체에게 악영향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효능을 논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도 연금술 시대부터 이어져온 상식입니다. 그렇다면 '원소 변환'을 거친 새로운 원소가 나타나 인간의 정신과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가정일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또한 '엘릭시르' '현자의 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며 동양의 선도에서 말하는 '단'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과학의 시대, 진보해나가는 과학은 과거를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를 증거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본서는 철학과 문명사에서 부터 시작해 연금술과 화학의 시대를 거쳐 핵의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원소 발견과 창조의 역사를 차분한 어조로 전하는 과학서입니다. 여러 리뷰어님들의 완성도 높은 리뷰가 기대되기도 하는 책이기도 하고요. 저로서는 많은 감흥을 준 책이지만 그 감흥들을 어찌 담아내야 할까 고민하게 된 책이기도 합니다. 짧은 이 감상으로 다 담지 못할 책입니다만 과학적 해석을 하기에는 이과적 대뇌가 아니기에 부족한 리뷰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다른 리뷰어님들의 리뷰를 읽으며 제가 못보거나 지나치며 읽은 대목들에서 어떤 깊이가 더 있는지 배우고 싶습니다. 본서는 자못 건조할 수 있는 과학사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냈으며 다수의 이미지들로 따분할 여지를 주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원소 관련 저작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본서로 시작해 다른 저작으로 나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감상이 들었습니다. 정통 과학사서로는 처음 읽은 저작이라 쉽게 권해서는 안될지도 모르지만 선뜻 권해 드릴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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