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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추웠다. 거리의 나무들은 가지가 잘려나갔다. 가로수 정리 중이었다. 시끄러운 전기톱 소리와 함께 가지들은 떨어졌다. 황량한 기둥만이 남았다. 이파리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추운 냉기가 닥쳐왔다. 나무마저도 추운 날이었다.

 

  나는 꽤 들떠있었다. 지겨운 7교시도 이제 10분을 남겨놓고 있었다. 곧 마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마친다고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지는 않는다. 그저 라면 폴폴 끓여 먹는다. TV와 함께 깔깔대면서 먹는다. 내 방은 난방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이처럼 추운날  따뜻한 거실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다. 비록 벗은 라면과 TV뿐이지만 좋다. 어중간한 오후 시간이라 볼만한 프로그램도 없지만 그래도 좋다.

 

  오늘따라 나는 가방을 두 개 들고 갔었다. 잡다한 프린터, 영어 자습서와 단어장, 몇 권의 소설책과 에세이집, 다이어리와 여러 권의 공책들을 넣은 본 가방 한개. 그리고 악보만 잔뜩 넣은 가방 한 개 더. 문제는 이 악보가방의 무게가 상상을 초월하게 무겁다는 것이다. 책으로 출판된 악보만 5권 정도 있다. 또 악보 파일집만 여섯 권, 그냥 쑤셔넣은 악보만 합해도 곡의 총 수는 거의 300개 정도. 그래도 다 종인데 얼마나 무겁겠어? 이렇게 생각한 나는 학교갈 때 무심코 들고 뛰다가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결국 뛰지도 못하고 지각. 이때부터 이 악보가방과 나의 악연 시작.

 

  마치는 종이 울렸다. 나는 룰루랄라 휴대폰을 받아들고 가방을 챙겼다. 책상서랍에 넣어둔 다이어리 꺼내서 본가방으로, 영어자습서 꺼내서 본가방으로, 악보가방 챙기고. 넣을 공간 없어서 그냥 들고갈 바로 이 [소울푸드] 팔로 받쳐들고. 그리고 3일동안 묵혀둔 우유 3곽 책 위에 얹고 학교 밖으로 나왔다. 여자친구들과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곤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왠걸 자물쇠가 굳게 잠겨있었다. 이런 낭패가! 마침 빨래한 옷을 허겁지겁 입고 나온터라 호주머니에 열쇠도 없었다. 가방 옆 호주머니를 뒤지다가 스테이플러 심에 손만 찍혔다. 할아버지는 컴퓨터 교육 받으러 가셔서 족히 40분은 있어야 집으로 오신다. 이런.

 

  혼자 낙담하여 풀이죽어 서 있었다.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가며 "뭐해~"하며 묻는다. 나는 대답대신 물기 머금은 눈빛 보낸다. 5분이 지났다. 이렇게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아직 종례를 다 안 마친듯 하다. 2초씩의 간격을 두고 계속 전화를 했다. 전화 목록을 보니 무려 스무통. 그런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슬슬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 문자를 보냈다. 격렬한 말투로 보냈다. 10초 뒤 답장이 없길래 다시 전화하니 그제서야 받는다.

 

  "야, 열쇠 갖고 튀어온나"

  "없는데, 내도"

  "아~씨..."

 

  늘 이런식의 대화다. 끊는다는 말도 없이 끊었다. 이제 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이럴 때가 제일 외롭다. 춥고 집문은 잠겨있다. 그 누구도 나를 반겨주지 않는다. 정류장에 왁자지껄 모여있던 친구들은 벌써 차 타고 가버린지 오래. 이 짜증을 털어놓을 사람만 있어도 좋을텐데 없다. 전화해서 털어놓을 사람도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보가방과 손에 든 책, 우유가 슬슬 몸까지 힘들게 만든다. 본가방이 너무 커서 악보가방은 어깨 한 쪽이만 걸쳤는데 장난아니게 무겁다. 식은땀이 뻘뻘난다. 우유는 계속 미끄러진다. 한 개 땅에 떨어트렸는데 떨어지게 전에 발로 한 번 차서 터지지는 않았다. 결국 우유는 집앞에 던져놓기로 결정. 도저히 가방은 길바닥에 놓아둘 수가 없어서 메고 있기로 결정.

 

  그런데 마침 교문을 나오는 친한 여자무리 발견. 얼른 달려갔다. 집에 안가고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나는 "집문 잠겼어"하며 흑흑대는 행동을 취한다. 내 모습에 깔깔대는 그들. 전에도 이런 상황이 자주 있었기에 익숙하기도, 재밌기도 했었겠다.

 

  그들은 붕어빵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돈 없는데, 하면서도 따라갔다.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여러개 사서 하나는 주겠지 하는 심정으로 갔는데 다들 치사하게 하나씩만 사먹는다. 처절하게 "꼬리만...꼬리만 주라"라고 해도 못 본척 돌아선다. 에잇, 치사한 것들아 하면서 집으로 갈려던 차에 친하게 지내던 동생 한 명이 다가온다. 불쌍한 오빠 붕어빵 하나만 사주라 하고 부탁하니 흔쾌히 허락한다. 그녀도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해놓은 상태라 그 보답으로 사주겠노라 했다. 고맙게도 1,000원 어치 3개를 사준다. 그리고는 내 손에 쥐어준 뒤 "꼭 내 부탁도 들어줘"하며 쌩하니 지나간다. 바쁜일이 있나보다 하고 나는 붕어빵 봉지를 들고 여자무리를 향해갔다. 역시 쥐떼까지 모여든다. 범석아 한입만, 꼬리만 주라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싫다고 말하며 끝내 꼬리 하나씩 떼줬다.

 

  그 친구들도 보내고서는 혼자 집앞으로 왔다. 그리고 악보가방을 집앞 땅바닥에 내팽겨쳐 버리고 붕어빵 하나를 꺼내들었다. 슈크림으로 속이 꽉 찬, 꼬리가 없어진 괴상한 모양의 붕어빵이었다. 한 입 베어물었다. 입 안에 부드럽고 달콤한 슈크림이 퍼져나갔다. 사르르 녹는다는 표현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깨달았다. 갓 구운 빵과 슈크림의 조화가 어찌나 맛깔나던지. 그 추위에 떨던 내 속이 단번에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30분 정도의 설움이 붕어빵 하나로 해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붕어빵은 내게 손난로 였으며, 온풍기였다. 붕어빵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 날 하루종일 스트레스 쌓인 채로 밤 지새웠을 거다. 내가 다리뻗고 푹 자게 해준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붕어빵. 슈크림 붕어빵.

 

  나의 필력이 훨씬 못 미치기는 하지만 이러한 형식으로 [소울푸드]는 전개된다. 자신들의 살아온 이야기, 겪었던 이야기를 음식과 연관지어 이야기한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젊고 그들은 나이가 꽤 있다. 나는 현재형이고 그들은 과거형이다. 나는 아직 세상을 많이 겪어보지 못했고 그들은 겪을대로 겪어봤을 것이다.

  초반에는 끼워맞춘다는 생각이 들어 쉬이 글이 읽히질 않았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정말 끼워맞추기 식이었다. "연애는 카레라이스다"라는 문장이 특히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는데, 은유법을 사용했다고 해도 아직 사랑을 잘 알지 못하는 내게는 끼워맞추기 식 밖에는 되질 않았다.

 

 

 

  [소울푸드]를 읽으며 내내 한 가지 생각만이 들었다.

 

  "대체 소울푸드가 뭐야?"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할 시간도 없었고 해서 그냥 읽긴 했지만 이 궁금증 때문에 집중이 안되었다. 그러다 '황교익'씨의 글에서 명쾌한 해답을 얻게 되었다. 추상적인 것이 아닌 거의 '개념'에 가까운 설명이었다.

 

 

  현상이나 사물을 글로써 표현해야만 개념이 생기고, 그 개념이 정립되었을 때에야 그 현상이나 사물이 뚜렷하게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인간의 지적 활동이란 대체로 이런 식의 '조작'을 바탕으로 한다. 소울푸드는 음식에 대해 인간들이 보이는 특정의 기호를 하나의 개념으로 정립한 것이다. 조금 느슨하게 말하면, '인간은 어릴 때 먹었던 음식에 대해 강한 기호를 나타내는데 그 기호가 집착 수준에 이른 것'정도가 될 것이다. 먹고 싶어 '환장'하겠고, 또 먹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식일 것이다. 그런데, 이 소울푸드란 것이 과연 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낱낱의 현상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있다.  (164p)

 

 

  아하, 이것이 소울푸드라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아까 쓴 붕어빵은 내겐 소울푸드가 아닌 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붕어빵을 소울푸드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 붕어빵은 내게 온기를 불어넣어 준 음식이 될 테니까.

 

  이 개념대로라면 나의 소울푸드는 아마 '치킨'이 될 것이다. 어릴 적 엄마가 손수 만들어주었던 그 수제 치킨을 엄마와 마주보고 먹었던 일, 아빠가 돌아오는 길에 사오기를 손 모아 기도했던 일, 지금까지도 그것이 먹고 싶어 환장하겠고 또 먹으면 다음 먹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그런 음식이 바로 '치킨'이다.

 

 

 

  이 글도 그렇게 무거운 주제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지는 않는다. 내가 말한 붕어빵이나 치킨보다 더 흔한 라면으로 [닥치고 정치]와 나꼼수로 무서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어준씨는 글을 썼고 성석제 작가님은 우리 고유의 장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 외에도 술이나 커피, 카레, 주먹밥, 소세지 등의 음식들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가 끓여주었던 된장찌개에 대해 무한사랑을 표출하는 이충걸 작가, 이탈리아에서 소 내장 스프를 먹고 감동을 받은 박찬일 작가 부터 빨계떡(빨갛게 맵고 계란과 떡이 들어간 라면)이 자신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는 박상 작가에까지 소소하지만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또 웃음 터트리는 글들이 가득하다. 우리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가 가득하다.

 

 

  엄마가 그랬듯 나도 아들에게 커피의 이 맛만큼은 꼭 가르쳐주고 싶다. 원래 커피는 그런 거라고, 매일매일 마시는 거라고. 매일매일 마셔도, 또 또 생각나서 마시고 싶은 그런것, 힘들고 지칠수록 더욱 뜨겁고 달콤하게 나를 깨우는, 마치 소설처럼, 사랑처럼, 바로 너 처럼. (182p)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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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2-16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올라왔네 ㅋ..ㅋ
도장 꽝! (대체 무슨 자격으로?)
정성스런 리뷰 잘 읽었어요 :)

Arch 2011-12-16 16:45   좋아요 0 | URL
두분 다 신간평가단이에요? ^^ 소울푸드란 개념이 좋아요. 책은 어떨지... 여러명이 한 주제에 대해 쓴 글은 몇 꼭지만 좋은 경우가 있어서.

이진 2011-12-16 18:32   좋아요 0 | URL
ㅎㅎ 수다쟁이님은 소설이구, 저는 에세이입니다!
진작에 소설로 갈걸... 지금 후회중 ㅠㅠ
소설 대상도서가 무척무척.. 심하게 부럽거든요 ㅋㅋ

이책도 그래요
몇꼭지는 영 별로인 게 많답니다..
많지는 않은데.. 쩝

Arch 2011-12-19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세이도 신간평가단에 들어가는거라면 저도 신청할걸, 아쉽네요.

이진 2011-12-19 16:10   좋아요 0 | URL
ㅠㅠ 저는 소설신청할 것을.
저는 에세이가 저와 맞는 줄 알았는데,
역시 읽다보니 소설이더군요. 쩝